고구려 고분벽화 - 오회분 4호묘
고구려인들의 신앙 세계 벽면에 '가득'

| ▲오회분 4호묘 널방 동벽의 청룡과 신선 |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함께 갔던 사람들이 관람을 다 마치고 나올 때에도 나는 쉽게 그 전시실에서 발걸음
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의 신앙 세계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벽화 속에 가득 펼쳐져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현재 이 모형 전시장은 없어졌으며, 그 대신 집안시 오회분 4ㆍ5호묘 곁에 벽화 전시장을 만들어 놓고
4호묘 내부를 찍은 비디오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벽마다 신선 그려져 있어
오회분 4호묘는 5호묘와 달리 사람들의 방문을 막아 벽화 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1500 년 전의 그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채색을 아직 간직하고 있지요.
현무)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명의 신선이 그려져 있지요.
치우쳐 있기 때문에 주작이 한 마리만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입구가 한쪽에 치우친 것은 오회분 5호묘와 다른
점입니다.
그리고 널방 네 벽의 모퉁이 아래에는 괴수, 위에는 용 두 마리가 교차해 있습니다. 또 네 벽의 윗부분에는 용이
서로 몸을 꽈서, 천장과 아래 공간을 구분 짓고 있습니다. 이것은 5호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욱이 천장 맨 위 덮개 돌에는 황룡이 그려져 있어요. 이 4호묘의 황룡은 빨강과 노랑이 강렬하게 대비되어 강한
인상을 줍니다.
대장장이 신·수레바퀴 신도 섬겨

| ▲수레바퀴신 ▲숫돌가는 신 |
오회분 4호묘는 5호묘와 달리 해신과 달신이 서로 다른 돌에 그려져 마주보고 있습니다. 또 아래 고임돌 벽면
가운데에는 용을 그려 넣어 두 신을 떨어뜨려 놓았고, 위쪽 고임돌 가운데에는 해ㆍ달ㆍ북두칠성 등을 그려 신
들을 떼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오회분 4호묘는 5호묘와 비슷한 소재를 벽화에 그렸지만, 화가들이 다르게 그림을 그리려 한 흔적이
아주 뚜렷합니다. 유행만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려고 노력했던가 봐요.
위쪽 고임돌에 그려진 9 명의 신선은 거문고ㆍ소ㆍ횡적ㆍ뿔피리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남쪽에 그려진 신선은 약단지를 들었고요.
보면 불꽃을 든 불의 신, 대장장이 신, 수레바퀴를 만드는 신, 숫돌에 쇠붙이를 가는 신, 용을 타고 모자를 쓴 신,
달을 든 달신, 해를 든 남자인 해신, 소머리를 한 농사의 신이 그려져 있습니다.
장이ㆍ수레바퀴 신을 해신ㆍ달신처럼 중요한 신이라고 보았던 것을 알 수 있지요.
조선 시대에는 대장장이를 농민보다 못한 신분으로 여겼지만, 고구려는 달랐습니다. 대장장이들을 우대했기에
대장장이 신도 함께 섬겼을 테니까요.

학과 용을 타고 승천하는 신선과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용의 몸뚱아리가 적-황-청의 보색대비로 그려져있으며 비늘은 지금도 선명하다.
오회분 4호묘 ②




오회분 5호묘

소머리에 벼이삭을 들고 질주하고 있다.

오회분 4-5호묘는 사신총과 함께 7세기 고분에 속한다.

무덤의 구조와 벽화의 배치상태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삼실총 ①





삼실총 ②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긴 칼을 찬 무장이 묘실의 무덤 주인을 보호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11명으로 구성된 행렬도의 10번째 위치하는 것으로 봐서 평민으로 보인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와 통이 넓은 바지는 고구려 평민들의 전형적인 복식이었다.
사신총

삼각형 천장 받침대가 만나는 부분을 귀면 판석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각저총



차린 음식을 즐기며 담소하고 있다.

말의 등에는 안장이 놓여있고 마부의 손엔 채찍이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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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도 연탄군 송죽리 고구려 벽화 고분에서 1600여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고구려인의 모습.

북한 황해도 연탄군 송죽리에서 발굴된 고구려 벽화.부리부리한 눈의 고구려 호랑이.훼손으로 인해 주위는 떨어져나갔다.
쌍영총
평남 남포시 쌍영총의 8각기둥과 주두
안악 제1호분
황해도 안악 제1호분 벽화의 주두.
덕흥리 고분
평남 대동군 덕흥리 고분의 주두.

평양 덕흥리 고분 묘주와 지석글씨. 왼쪽에 묘지 주인공이 꽃무늬로 장식된 화려한 방에 앉아 있는 보습을
그렸다. 위에는 주인공의 신상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에 따르면 그는 이름이 진이고, 요동태수와 유주 자사 등을 지냈으며 77세에 죽었다.
안악 제3호분

현재 북한에 있는 안악 3호분의 마구간 그림. 주인공의 생활 면모를 그린 동쪽 측실 벽화 가운데 하나다.
마구간 구유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말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대륙을 달리던 고구려인들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부채 혹은 햇빛가리개의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귀신밑으로 S자 비슷한 손잡이까지 달려있는 것이 특 징. 고구려 벽화에서 보는 유일한 형태이다 안악 3호분 전실 동쪽 벽면에 있는 수박놀이하는 역사(力士) 그림. 상투를 머리 뒤로 묶고 아랫도리 일부만을 가린채 금방이라도 한번 맞붙을 역사들의 체구와 역사들의 몸짓을 다소 희화적으로 과장되게 그렸다. 일본 나라 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된 고구려 승려화가 담징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법륭사 금당벽화 비천도 진본. 서기 756년 일왕 성무(聖武) 사후 작성된 법륭사 헌물장의 일부.왼쪽에서 네번째 줄 아랫부분에 '고구려 비단 (高麗錦)'이란 구절이 보인다. 1940년 평양에서 병기창공사를 하던 중 발견한 고구려 '금동미륵반가상'(왼쪽)과 6세기쯤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반가사유상' 1998년 7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의 흉상. . 고구려와 발해의 피지배층이었던 말갈족 주거지로 추정되는 마리아노브카 토성에서 나온 삽 등 철제 유물들 옛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동북평원의 왼쪽에 위치한 대싱안링의 고구려시대 흔적인 돌절구. 일제 어용학자들이 식민사관에 근거로 이용한 광개토대왕비, 일본인들이 비문을 조작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경복궁내 신축한 국립중앙박물관이 1996년 12월 13일 개관을 앞두고 6일 미리 공개됐다. 사진은 고구려실에 전시한 금동투조장식 복제품. 진품은 평양 진파리 1호분에서 발굴돼 현재 평양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높이 14cm, 너비 23cm. 고구려하면 대륙적이고 강인한 것만을 연상하지만, 이 유물은 고구려가 얼마나 정교 하고 섬세한 기술을 지닌 국가였는가를 보여주는 명품이다. 보장왕21년(서기662년) 고구려의 실권자 연개소문은 평양 부근 사수에서 방효태가 이끄는 당군을 격파했다. (그림1)오회분4호묘 벽화: 청룡 집안의 오회분4호묘 벽화에는 아름다운 오색청룡(五色靑龍)이 등장한다.(그림1) 화려하고도 복잡한 연속무늬 위에 묘사된 까닭에 창공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앞발을 크게 내닫으며 포효하는 모습에서 우주적 수호신 특유의 힘과 기세는 완연히 느껴진다. 벽면에 가득 차게 그려진 청룡의 몸은 온통 비늘로 덮여 있고 몸통 부분은 색동주름치마를 입은 것처럼 긴 띠를 이루며 오색으로 채색되었다. 목과 몸통의 경계는 녹색, 적색 두 줄 목띠로 구분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연속마름모꼴 색띠가 차곡차곡 이어진 것처럼 묘사된 목 위에 덧그려진 불꽃 모양의 무늬이다. 양 어깨에서 날개처럼 뻗어나가는 불꽃 형태의 무늬가 사신이 뿜어내는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낸 것이듯이 목 위의 무늬도 청룡의 기운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부분에 굳이 눈길을 모을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신과 같은 신수(神獸)를 둘러싼 상서로운 기운은 어깻죽지나 허리, 네 발의 무릎 근처처럼 움직이는 힘이 강하게 나타나는 데에 묘사하는 것이 상식이고, 실제 고분벽화나 전각화(塼刻畵)에서 이와 같은 표현방식이 적용된 사례를 찾아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벽화 속 청룡 목 위의 불꽃 모양 의 기운은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어떤 의도를 담은 표현일까. 중국 한대의 문헌 『논형(論衡)』에는 ‘용은 한 치의 나무, 곧 척목(尺木)이 없으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시대를 한 참 건너 뛴 뒤 쓰인 당대의 문헌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용의 머리 위에 한 가지 물체가 있으니, 박산(博山)처럼 생겼고 이름을 척목이라고 한다. 용은 척목이 없으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는 글이 실려 있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디딤대로 삼았던 한 치 크기의 나무가 용의 머리 위에 붙어 있는 박산 모양의 승천 장치로 바뀐 것이다. 박산은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신선의 세계로 한대에는 향로 뚜껑 도안에 많이 쓰인 전설상의 산이다. 박산향로는 한대에 특히 많이 만들어 졌지만 남북조시대의 전각화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후대까지 애용되었던 기물 가운데 하나이다. 당대 이전 어느 시기부터인가 척목이 용의 머리 위에 있는 물체로 인식되고 표현되기 시작했음은 고분벽화나 전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북조시대의 전각화 등에서는 화염보주 형태로 묘사된 척목을 청룡 뿐 아니라 백호의 목 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그림2) 박산의 형태가 아닌 화염보주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전하는 화염보주에 대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림2)중국 강소 상주 척가촌 南朝墓 전화: 백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척목이 처음 발견되는 것은 장천1호분 앞방 천장고임에 그려진 청룡에게서 이다. 청룡의 엉치 위쪽에 표현된 척목은 삶은 계란을 어슷하게 잘라서 올려 놓고 그 주위에 가는 털들을 붙인 듯한 모습이다. 물론 가는 털들처럼 표현된 것은 상서로운 기운이 어려 있고 뻗어 나가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덕화리1호분 벽화에 이르러서야 척목은 청룡의 목덜미 위에 묘사된다. 형태도 화염보주의 외형과 비슷하다. 오회분4호묘청룡에 이르면 화염보주의 보주에 해당하는 부분은 보이지 않고 상서로운 기운이 강한 불꽃 형태 로 뻗어 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또 한 번 변화를 보인다. 동아시아에서 하늘을 나는 존재에 대한 관념은 서아시아 및 유럽의 그것과 달랐다. 중국이나 한국 옛 왕조의 화가들이 용이나 백호와 같은 신수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그릴 때에 등에 날개를 덧붙이지 않은 데에서 이런 관념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도 날개를 달지 않은 채 하늘을 날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음을 용의 승천에 척목이 필요하다고 상정한 글과 이에 바탕을 둔 회화적 표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승천을 위한 매개물에서 몸에 달아야 하는 장치로 바뀐 척목의 형태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변화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승천장치로 보기 어려운 강한 기운의 표현으로 바뀌는 것이다. 아마도 고구려 화가들은 청룡과 같은 우주적 신수에는 승천을 위한 최소한의 보조 장치나 매개물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어떤 소설의 제목이다. 하늘로 비상하려면 날개가 있어야 된다는 관념, 날개가 없으면 날 수 없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중근동과 유럽 사람들에게 하늘은 날개가 있는 존재 에게만 허용된 세계였고, 날개 달린 것의 도움 없이는 이를 수 없는 공간이었다. 천사도 등에는 반드시 날개가 달려 있었고, 신들도 천상과 지상 사이를 오갈 때에는 거대한 새나 날개 달린 말의 힘을 빌렸다.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우주적 크기의 산이나 거대한 나무를 두 세계의 통로로 삼을 수는 있었지만 무한한 창공 을 날아다니려면 날개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공룡과 비슷한 모습을 한그리이스나 북유럽 신화 속의 드래곤이 등에 박쥐의 가죽날개 같은 것을 달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도 이러한 관념 위에서이다. (그림1)오회분4호묘 벽화: 청룡 집안의 오회분4호묘 벽화에는 아름다운 오색청룡(五色靑龍)이 등장한다.(그림1) 화려하고도 복잡한 연속무늬 위에 묘사된 까닭에 창공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앞발을 크게 내닫으며 포효하는 모습에서 우주적 수호신 특유의 힘과 기세는 완연히 느껴진다. 벽면에 가득 차게 그려진 청룡의 몸은 온통 비늘로 덮여 있고 몸통 부분은 색동주름치마를 입은 것처럼 긴 띠를 이루며 오색으로 채색되었다. 목과 몸통의 경계는 녹색, 적색 두 줄 목띠로 구분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연속마름모꼴 색띠가 차곡차곡 이어진 것처럼 묘사된 목 위에 덧그려진 불꽃 모양의 무늬이다. 양 어깨에서 날개처럼 뻗어나가는 불꽃 형태의 무늬가 사신이 뿜어내는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낸 것이듯이 목 위의 무늬도 청룡의 기운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부분에 굳이 눈길을 모을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신과 같은 신수(神獸)를 둘러싼 상서로운 기운은 어깻죽지나 허리, 네 발의 무릎 근처처럼 움직이는 힘이 강하게 나타나는 데에 묘사하는 것이 상식이고, 실제 고분벽화나 전각화(塼刻畵)에서 이와 같은 표현방식이 적용된 사례를 찾아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벽화 속 청룡 목 위의 불꽃 모양 의 기운은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어떤 의도를 담은 표현일까. 중국 한대의 문헌 『논형(論衡)』에는 ‘용은 한 치의 나무, 곧 척목(尺木)이 없으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시대를 한 참 건너 뛴 뒤 쓰인 당대의 문헌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용의 머리 위에 한 가지 물체가 있으니, 박산(博山)처럼 생겼고 이름을 척목이라고 한다. 용은 척목이 없으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는 글이 실려 있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디딤대로 삼았던 한 치 크기의 나무가 용의 머리 위에 붙어 있는 박산 모양의 승천 장치로 바뀐 것이다. 박산은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신선의 세계로 한대에는 향로 뚜껑 도안에 많이 쓰인 전설상의 산이다. 박산향로는 한대에 특히 많이 만들어졌 지만 남북조시대의 전각화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후대까지 애용되었던 기물 가운데 하나이다. 당대 이전 어느 시기부터인가 척목이 용의 머리 위에 있는 물체로 인식되고 표현되기 시작했음은 고분벽화나 전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북조시대의 전각화 등에서는 화염보주 형태로 묘사된 척목을 청룡 뿐 아니라 백호의 목 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그림2) 박산의 형태가 아닌 화염보주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전하는 화염보주에 대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수레바퀴신 대장장이신

수산리고분 현실 북쪽 벽에 그려진 귀신 얼굴모양 부채. 묘지 주인공 부부의 시종들이 들고 있던 것으로,


고구려 유물들 ①





고구려 유물들 ②





복제품 진품운 평양박물관




오회분의 태양신과 달의 신이 마주보고 있는 벽화 사진
오회분의 태양신
오회분의 달의 신
오회분의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와 옆에는 용과 학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신선의 모습
오회분의 학을 타고 횡적(옆으로 부는 피리)을 불며 하늘을 나는 신선
오회분의 불의 신과 농경의 신
집안 오회분4호묘 널방 천장고임에는 누구나 그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神이 등장한다. 한 손에 곡식 이삭을 든 채 앞으로 내 닫는 머리는 소, 몸은 사람인 특별한 존재. 농사의 신이다.(그림) 고대 중국의 신화에서 농사의 신이 신농으로 불리고 소머리에 사람 몸인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東夷系 신들의 하나로 알려진 점을 고려할 때, 6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 모습을 드러낸 소 머리 농사의 신 역시 신농으로 불리며 믿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인의 종교신앙에서 농사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최초의 신적 존재는 시조 주몽의 어머니 유화이다. 큰 강의 神 河伯의 딸, 때문에 그 자신도 물의 세계를 다스리는 능력을 지녔음이 확실한 유화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남으로 떠난 아들 주몽에게 비둘기를 전령으로 삼아 '오곡의 종자'를 건넨다. 물고기와 자라들이 만든 다리를 건넘으로써 부여의 추격병들을 간신히 따돌린 주몽이 곡식 씨앗을 건네 받은 곳이 큰 나무 밑이었다는 기사에서 우주 기둥 및 신의 사자 비둘기를 매개로 한 여신과 영웅 사이의 교통을 읽어낼 수 있다.
곡식 씨앗을 건네 받은 뒤 卒本에 이르러 새 나라를 세운 주몽은 어떤 존재로 보아야 할까. 큰 위기를 모면한 건국시조 주몽이 어머니 유화로부터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곡식 씨앗을 건네 받은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주몽은 아버지 해모수로부터는 빛의 세계, 어머니에게서는 물의 세계와 교통하는 능력을 한 몸에 받은 신성 영웅이다. 그 자신 빛과 물의 만남이 이루어낸 결정체이다. 빛과 물은 곡식의 씨앗을 싹틔우고 자라서 열매 맺게 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들이다. 주몽은 빛의 신과 물의 신의 만남에서 비롯된 새 세계의 씨앗이자 열매이다. 주몽이 건네 받은 곡식 씨앗 역시 고구려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 피워 나가는 바탕이자 결실이 될 것이다.
6세기 집안의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농사의 신, 소머리의 신 신농을 언급한 고구려의 문헌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仙界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로 묘사되는 소머리의 仙人이 2세기의 漢 화상석에 등장할 뿐 3세기 이후 중국의 종교미술에서 신화상의 신농은 확인되지 않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소머리를 한 농사의 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 궁금할 따름이다.
(그림)오회분4호묘 널방 고임 벽화: 농사의 神
오회분의 대장장이 신의 모습
오회분의 수레바퀴 신
오회분의 천정과 벽화의 모습


)으로 보인다. 3시 방향의 이
), 진(震:
), 손(巽:
),
), 곤(坤:
), 태(兌:
), 건(乾:
)이 된다. 방위상으로 북쪽에 감(坎:
), 남쪽에 이(離:
)가 오도록

), 만물의 근원인 물(水), 태음의 

▲오회분 4호묘 널방 동벽의 청룡과 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