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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도(酒道) 1

작성자솜사탕(적토마)|작성시간22.05.12|조회수172 목록 댓글 0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 크게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 오히려 격식을 깨는 주법을 더 멋스러워 한다. 그래서 밤거리에는 취객의 노래와 갈짓자 걸음이 드물지 않고 대체로 그것을 너그럽게 보아 넘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사람들은 우리에게는 주도와 술 문화가 없다고 탄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본래의 술 문화는 "격식을 차리지는 않지만 엄격한" 법도가 있었다. 그 법도의 유일한 원칙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 술의 주인인 한 술은 좋은 것이다 . 잔을 돌리되 세 순배 이상 하는 것은 술 못 먹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므로 천박하다고 보았다. 사람을 아끼는 문화 ,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문화가 우리 문화의 특성이듯 우리 술 문화의 특성도 사람과 사람 , 사람과 자연, 사람과 신 사이를 가깝게 해주는 화합과 화해의 술 문화였다 . 그리고 예의와 절제 속에서도 딱딱해지지 않고 마치 "흥에 겨워 부르는 추임새 "처럼 자연스러운 파격이 있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술문화가 대단히 고상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어 왔다. 술을 음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음식물로 인정한 우리 민족은 술 자체를 숭상할 뿐 아니라 술에 따른 그릇까지도 중시하여 특별하게 제작하였다. 술 마시는 예절을 소학에서 가르침으로써 누구나 술 마시는 범절이 깍듯하였으며, 술을 먹는 모임에는 모름지기 노래와 춤과 시조를 곁들임으로써 운치를 돋우어 우아하고 고결한 풍류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신라 벌휴왕 3년, 시정거리에서 술주정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고구려 안원왕 2년, 흉년이면 사원에서 양조하는 것까지 금지하였으며, 고려에서는 지방고을에 명령하여 배불리 먹고 마시는 것을 금지시키도록 했고 , 조선 태종원년에는 왕 스스로가 금주하여 백성들의 비밀음주를 금지시켰다.

 

우리 조상들은 술은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반드시 상대의 주량에 한계가 있음을 먼저 명심했다 . 성인례를 한 성인에게만 술을 권했다. 즉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나 체력이 강건한 사람만이 술을 먹을 자격이 있는 것임을 뜻한다 .체력이 나약한 미성년이나 지각이 흐린 정신박약자에게 술을 주는 것은 아주 부도덕한 행위로 규정하여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음주전통이 곧 술을 대단히 고귀한 음식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 남으로부터 ‘술을 대접 받음 ’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숙한 인격자임을 뜻하게 되어 영광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의 음주예절은 두 가지가 있는데 향음주례과 군음(群飮)이다. 향음주례는 세종이 주나라 예법을 바탕으로 절도를 가다듬어 향교와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교과과목으로 가르치게 했던 육예(六禮) 가운데 하나로, 어른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예의절차를 밝히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향음주례의 일관된 정신은 의복을 단정히 입고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 음식을 정결하게 요리하고 그릇을 깨끗이 할 것, 행동이 분명하여 활발하게 걷고 의젓하게 서고 분명하게 말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절도가 있을 것, 존경하거나 사양하거나 감사할 때마다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여 절을 하거나 말을 할 것 등이다. 군음은 오직 떼지어 모여서 부지런히 마시고 노래하고 즐기기 위한 술마심이다. 따라서 군음에는 일정한 형식도 절차도 없이 자유롭게 거리낌없이 즐기는 것이니 애당초 예절을 논할 것이 없는 것이다.

 

술을 마심은 사교의 자리이다 . 말로 의사를 표현할 때는 예로부터 세 번을 권하여 요청하고, 세 번을 사양하여 피하는 법이 있는 바 , 처음 요청하는 것을 예청(禮請)이라 하고 처음 사양하는 것을 예사(禮辭)라 한다 . 거듭 다시 청하는 것을 고청(固請), 거듭 사양하는 것을 고사(固辭)라고 하며 , 마지막으로 세 번째 청하는 것을 강청(强請), 이에 끝까지 사양하는 것을 종사(終辭)라 한다 .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소학에서 술에 임하는 예법을 익힘으로써 술로 인한 추태와 분쟁이 거의 없는 풍속의 고장, 예의의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 요기(療飢)를 위한 술집은 있었으나 몰려 다니며 먹는 습속이 없었고, 술집에 노래와 춤을 추는 기생은 있었으나 옆에 앉아 같이 마시는 작부는 없었다. 또한 술자리를 반드시 공개했을 뿐 아니라 아들과 제자들을 동행하여 술시중을 들게 함으로써 술 먹는 법도를 익히게 하였으니 술자리를 고상하게 승화시켜 일컬은 바 풍류(風流)라고 하였다 . 풍류란 덕풍의 유행이나 모든 사람이 그 덕성스러운 행실에 감동하여 본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는 술 먹는 자세를 크게 반성하여 조상들의 음주풍속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자료수집 : 국순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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