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로(Shiloh)
< 역사 배경 >
본문 말씀 = 수18:1
본문에는 르우벤, 갓, 므낫세, 유다,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을 분배한 후에 이스라엘 자손(子孫)들이 실로에
회막(會幕)을 길갈에서부터 가나안의 중심부(中心部)인
실로로 옳긴 사실은, 이제 실로에서 모든 정치적(政治的),
종교적(宗敎的) 실무(實務)가 행사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렇듯 실로는 초기 이스라엘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곳이므로, 이에 대한 지리적 특성과 그 의의(意義)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意味)있는 일일 것이다.
1. 지리적 특성
실로는 벧엘의 북쪽, 곧 벧엘에서 세겜으로 이르는
큰 길(道)의 동쪽에 있던 에브라임의 성읍(城邑)이다.
해발은 낮고, 남서쪽을 제외(除外)하고는 모두 구렁으로 둘러
있으며, 목초(牧草)와 물을 가까이에서 확보(確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형상 적으로부터 쉽게 방어할 수 있는 곳은 못되었다.
하지만 가나안 당의 중심에 위치(位置)하고 있어 전국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모여들기가 편한 이점 때문에 가나안 정복 초기(初期)에는
적절(適切)한 요충지(要衝地)가 되었다.
그러다가 후대(後代)에 와서는 대로(大路)와 광대(廣大)한 농사(農事)
지역의 미비(未備) 로 가나안의 중심지 역할(役割)을 감당하지 못했다.
한편 실로의 거주민(居住민)들은 실로 사람(Shi-lonite)으로 불리웠고,
실로 북쪽에는 다아낫 실로(Taanath-Shiloh)라는 촌락(村落)이 있었다.
이후 고고학자인 로빈슨 은 벧엘 북동쪽의 16km 정도(程度)에 있는
현재의 길벳 세일룬(Khir-bet seilum)을 실로와 동일시(同一視) 했다.
2. 역사적 개요
여호수아가 실로(Shiloh)에 회막(會幕)을 세움으로써
이때부터 실로는 사무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중심지(中心地)가 되었다(삿18:31, 왕상1:9, 24).
그래서 길갈에서의 첫 번째 땅 분배(分配) 이후 두 번째
나머지 일곱(七) 지파(枝波)의 땅 분배시(分配時)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실로(Shiloh)에서 이를 의논(議論)하고 제비를
뽑게 되었던 것이다(수18:8~10, 19:51).
또한 실로에 제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제단(祭壇)을
쌓았던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지파(枝波)가 모인 곳도 바로 이 곳이다(수22:12).
더욱이 실로는 사사 시대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이뤄지던
성지(聖地)였으며(삿21:19),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패하여 법궤를 빼앗기기 전까지 중앙 성소(聖所)로서 역할을
감당(堪當)하여 왔었다(삼상4:3, 4).
그리고 B.C. 1050년 경 블레셋에 의해 파괴(破壞)된 후
성소(聖所)로서의 기능(機能)은 거의 상실한 채 예레미야
시대(時代)까지 존재(存在)해 있었다(렘41:5)..
3. 의의(意義)
실로는 가나안의 최고(最高) 중심지(中心地)로서 지리상의
위치로 볼 때 신12장에 규정(規定)된 "중앙 성소의 규례"에
가장 적합(適合)한 곳이었다.
그러나 사사 시대 때에 불신앙(不信仰)과 퇴폐 풍조가
만연(蔓延)함에 따라 그 의의(意義)를 상실(喪失)하였다.
그리고 후대에 예루살렘 성소가 세워짐으로써 이스라엘의
정치적(政治的), 종교적(宗敎的) 중심지(中心地)가 실로에서
궁극적(窮極的)으로 예루살렘으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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