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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구 趙琬九 [1881.3.20~1954]

작성자★혁명가☆|작성시간06.07.08|조회수423 목록 댓글 14
6.25 전쟁당시 납북 (한독당상무위원·54년 10월27일 평양에서 병으로 숨지면서 임종을 지켜보는 동지들에게)

상해임시정부시절 그를 가장 가까이 따랐던 안우생(안중근의사조카)독립투사을 가까이 불러앉히고 눈물 흘리며)



우생이,과거가 왜 이렇게 허무하게 생각되지.

지난 40여년동안 한 일들이 말이지.

누가 시켜서 한일도 아니고

오직 우리 자신들의 결심에 따라 떨쳐나서

이국만리 대륙의 도시와 촌락을 헤매고 다니며

오직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행복을 찾겠다고 싸운 것인데

그것이 오늘은 왜 이렇게 허무하게 생각되는지 모르겠네.

오늘의 이런 현실을 보면,

죽자고 40여년을 싸웠는가 하고 생각하니

정말 허무하고 마음아프기만 하고 서글프기만 하오...........

우리 한독당을 지켜다오.

당간판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한이야.

통일을 못보고 가는 것이 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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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우천(藕泉). 1881년 3월 20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내무주사직을 사직하고, 10년 국권피탈 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동지사(同志社)를 결성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고, 이어 1921년 임시정부 내무차장, 1923년 상하이 한국인거류민단의사회 의사장, 1924년 노동총판이 되었다. 1935년 광복전선(光復戰線) 결성에 참여하여 난징[南京]에서 전단·표어 등을 배포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1936년 김구(金九)·이시영(李始榮)과 함께 한국국민당 결성을 주도하였다. 1944년 임시정부 내무부장에 이어 재무부장을 역임하고, 1945년 광복이 되자 임시정부 국무위원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그 후 한국독립당 비서부장으로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비상국민회의 재무위원장, 민주의원 의원, 좌우합작위원회 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원 등의 직책을 맡으면서 중앙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신탁통치반대·남한단독정부수립반대 등 시종 김구의 중립노선을 따랐으며,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에 참여하여 남북15요인회담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민족반역자처단협회] 작성&출처-민족반역자처단협회(http://cafe.daum.net/kok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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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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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리수 | 작성시간 04.08.15 코끗이 찡하네요.
  • 작성자사랑한다한국! | 작성시간 04.09.28 가슴이아픕니다!!아파요!! 평화통일!! 우리한민족이 조금만 생각하면 ㅜㅠ
  • 작성자녹둔도 | 작성시간 05.03.08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요 선생님
  • 작성자重傳/이희빈 | 작성시간 09.06.30 이 글을 많은 분들께 알리기 위하여 이곳으로 모셔갔습니다! http://blog.daum.net/hblee9362/11303231
  • 답댓글 작성자重傳/이희빈 | 작성시간 09.06.30 이 글을 많은 국민들께 알리기 위하여 이곳으로도 모셔갔습니다! http://blog.korea.kr/app/log/hblee9362/40609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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