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반민특위기록]][반민특위조사기록]피의자신문조서/염경훈

작성자★혁명가☆|작성시간07.01.15|조회수27 목록 댓글 0
피의자신문조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피의자 염경훈[廉璟薰](창씨명 大倉國幹)
右 반민족행위처벌법 위반 피의사건에 관하여 4282년[1949] 8월 22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서기 박규호[朴圭浩]를 입회시키고 피의자에 대하여 신문함이 如左함.


성명, 연령, 신분, 직업, 주거 及 본적지는 如何.

성명 염경훈
연령 56년(단기 4227년[1894] 11월 10일)
신분 평민
직업 無
주소 서울市 鍾路區 明倫洞2가 160의 2
본적 咸鏡南道 端川郡 利中面 聞岩里 9번지


작위, 훈장, 기장을 受하고 연금, 은급을 受하며 又는 공무원이 아닌가.

없습니다.


于今것 형사처분, 기소유예 又는 훈계방면 등을 受한 사실 有無.

없습니다.


피의자의 가족상황을 말하라.

본인(피의자) 외 9인인데 처 강희분[姜羲分]은 당년 40세, 장남 태련[泰鍊]은 당20년 景福中學 6년 재학중, 차남 태설[泰卨]은 당 15년 京畿中學 2년 재학중, 장녀 정희[貞姬] 당 12년, 3남 태균[泰均] 당 10년은 국민학교에 다니며, 2녀 송자[松子] 당 8년, 3녀 금자[金子] 당 5년, 4남 태국[泰國] 당 3년들이 있습니다.


피의자의 재산상황은 如何.

동산, 부동산 전연 없습니다.


피의자의 학력 及 경력을 말하라.

舊韓國時 隆熙 4년[1910] 咸南 唯新中學 4년 졸업, 피의자 25세時 곡물 及 해산물상회 경영을 시작하여 해방될 때까지 계속하였으며 단기 4267년[1934] 咸南道評議員에 당선(민선) 1회(만3년) 同職에 있었습니다.


道評議員에 출마하였던 동기 如何.

피의자는 別意가 없었으나 지방 유지가 경제진흥을 위하여는 피의자가 출마하여야 된다는 권고, 추천하였던 까닭이올시다.


피의자가 中樞院 參議로 있었다는데 사실인가.

전연 無根한 사실입니다.


피의자가 왜정치하에 전쟁 수행키 위하여 거액의 국방헌금을 하였다는데 사실 여부.

강제적으로 할당된 헌납금 이외는 한 사실이 없습니다.


이외에 왜정에 협력한 일은 없는가.

없습니다.


피의자가 中樞院 參議를 지냈으며 다액의 국방헌금을 하였다고 투서하였던 사람이 있는데 어쩐 일인가.

無根한 사실이오나 必竟 피의자를 중상시킬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道會 議員으로서 피의자가 한 행사를 말하라.

도예산 심의, 결산보고 청취 등 이외는 별로 없습니다.
右 본인에게 閱覽시킨바 相違가 無하다하고 서명 날인함.
공술자 염경훈
단기 4282년[1949] 8월 22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윤영기[尹榮基]
입회인 서기 박규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