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리 (79세)
영도를 넘어서면 (부산)시청이 있잖아요.
거기를 못 찾겠더라구요.
전차를 타고 가면서 시청을 찾았는데 거기를 못 찾고
빙빙 돌다가 말을 탄 일본(경찰)에게 잡혔지요.
*부산광역시 영도구 / 1940년 전후
탈출에 실패한 뒤 할머니는 불과 집을 지척에 둔 영도에서 엄중한 감시속에 꼬박 3년을 위안부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 부산에는 대규모 병력이 주둔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위안소가 존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신주백 책임연구원 /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
그 당시 부산은 군사적 요소라기 보다는일본의 병참하고 수송의 중요한 거점이거든요.
특히 그 화북지방이라든지 만주에서 실질적으로 중국국민당이라든지 중국공산당내지는 유격대와 싸웠던 대워들이 본국으로 귀대할 때 부산에서 잠시 에... 그 배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전투에서 지친 자신들의 어떤 심신을 푸는 공간으로서의 위안소가 존재 했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후 일본군의 전선은 확대일로를 걷는다.
결국 태평양의 서쪽지역 대부분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태평양전쟁발발 (1941년 12월 8일)
1941년에는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시작된다.
이후 42년 1월에 필리핀 마닐라 함락, 2월엔 싱가포르 함락, 3월엔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일본의 전선은 미얀마까지 확대되어 간다.
*신주백 책임연구원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군인이 진출하는 공급으로서(?)의 위안소가 갔다라고 볼 수 있는데요.
위안소자체를 붙박이식하고 정착형 위안소하고 이동식 위안소로 나눌때에 사실은 그 남방에 투입되었던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라든지 뉴기니아 그 다음에 솔로몬제도 이런 지역은 그 지리적으로 굉장한 아주 적도에 인근한 지역이거든요.
그 인근한 지역까지 군대가 이동하는것은 대체적으로 이동식 위안소의 설치로 볼 수가 있는데요.
1942년 시기가 되면 일본군내 남방진출에 최대의 남단지역이 바로 이런 뉴기니 내지는 솔로몬제도 이런 지역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말하자면 버마전선까지 일본군이 진출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본군 위안소가 있던 지역분포도1
1940년대 이후가 되면 일본의 위안소건립은 훨씬 조직적이 된다.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에는 가장먼저 위안소를 세우고 군대를 배치했다.
거의 모든 전선에 위안소가 존재했다.
일본군 위안소가 있던 지역분포도2
위안소는 군이 직접 신축한 경우도 있었고 현지 집을 개조한 경우도 있었다.
겨우 몸하나 누일만한 좁은 공간에서 위안부는 하루종일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위안소내부1
위안소내부2
*문필기 (81세)
제일 힘이드는게 남자 상대하는게 제일 힘들어요.
군인 상대하는게 힘든게 그것이야.
그리고 또 군인을 안받으면 또 안되지요.
그 놈들이 그런 것을 시키려고 우릴 끌고 갔는데.
그게 개도 아니고 소도 아니고... 나는 그런것을 생각하면 아니 생각도 하기 싫어.
이런걸 이야기하고 나면 꿈자리가 너무 엉망이야.
나는 꿈자리가 너무 엉망이야.
이제는 눈물도 마르고, 정말 웃음도 메말랐는가봐.
좋은게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