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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조용은(趙鏞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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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
소앙(素昻), 자 경중(敬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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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함안(咸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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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경기도 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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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활동 |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조선법학전수학교(朝鮮法學專修學校)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하여 국무위원 겸 외무부장 등을 지내고, 제네바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었다. 1922년 임시정부의 내분을 수습하려고 김구(金九)·안창호(安昌浩) 등과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결성하고, 1928년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으며, 1937년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 결성에 한국독립당 대표로 참가하였다. 1945년 8·15광복으로 귀국하여 국민의회를 조직하고, 상무위원회 의장을 거쳐 1946년 한국독립당 부위원장이 되었다. 1948년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김구 등과 남북협상에 참가하였다. 정부 수립에 불참하였다가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득점으로 당선되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198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조소앙선생의 사망관련 기록 <김흥곤 / 전 조소앙 비서 북한거주> “평양에 있는 남산에 한 정부병원 그게 남산병원이란 말이지, 정부병원이란 말이야. 거기 지프차타고 상급대우 해주니까 들어갔는데 그 병명을 밝히기를 학질로 사망했단 말이야. 그날 저녁에... 분명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제가 그때만 해도 조소앙 측근 비서니까... 내가 거짓말 하겠느냐 말이야. 기가 막힌단 말이야. 멀쩡한 사람을 투신자살 했다고...” * 단식사망설 재북평화통일추진협의회에 통일방안이 북한정권과 다르다고 판단한 북한정부는 납북인사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엄항섭, 명제세, 노일환’ 등에 반혁명분자라는 혐의를 씌어 연행한다. 북한정권의 탄압에 분노한 조소앙은 단식으로 항의한다. 조소앙은 단식을 하던 중 학질에 걸리지만 끝까지 병원치료를 거부한다. 그리고 얼마 후 결국 병세가 악화돼 사망한다. *조소앙 투신자살설 평양주재 소련대사관 일등서기관이 작성한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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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 |
*조선중립화 통일방안
우리조선이 북으로 중국과 소련, 남으로 일본 또 멀리는 미국의 간섭과 침략에 얼마나 시달려 왔습니까? 급기야는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 36년을 식민지 노예로서 상가집 개만도 못한 신세를 감수해야 했던 쓰라린 과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쓰라린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고 진정한 완전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고 우리가 나라의 주권자가 되자면 강대국의 간섭과 침략과 예속을 단호히 배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나라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화하는 것, 중립화 통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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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부친: 독립운동가 조정규(禎奎) 선생, 모친: 독립운동가 박필양(朴必陽) 여사, 아내: 독립운동가 오영선 여사, 여동생: 조영제(한국여성동맹), 동생: 독립운동가 조시원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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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물 |
김규식, 김 구, 김원봉, 여운형, 김성주, 김두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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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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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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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
독립기념관 경내 삼균주의 어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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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
《한국문원(韓國文苑)》(1932), 《소앙집》《유방집(遺芳集)》(1933), 《소앙문집》 상·하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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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단체 |
삼균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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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출처 |
네이버백과, 다큐인물현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