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自手成家)한 호경(湖鏡) 공재록(孔在祿)
호경(湖鏡) 공재록(孔在祿)선생은 1906년 11월 13일 경기도 화성
시 정남면(正南面) 신리(新里)에서 곡부공씨(曲阜孔氏) 어촌공
(漁村公) 19대손인 수열(秀烈)씨의 4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나 6
세 때에 부친과 사별하고 편모슬하를 떠나 생활하였다.
성실하고 근면한 호경(湖鏡) 선생은 30여년의 각고(刻苦) 끝에 자수성
가하였고, 주경야독으로 문장을 해득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명성(名聲)은 널리 알려져 지방의 각급 단체장(團體長)으로 추대되었
고 특히 성환초등학교 육성회장 15년, 직산향교 장의(掌儀)와 전
교(典校) 12년간 등을 역임하는 동안 사회봉사운동에 앞장섰으
며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의 고취와 충효정신 함양운동에 앞장
섰고, 그리고 말년(末年) 에는 기금 일천만원(壹千萬원)으로 재
록장학회(在祿奬學會)를 설립하여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굴의 의
지를 가지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장
학금을 지급하기에 이르렀다.
선공후사(先公後私)하고 선의후리(先義後利) 하는 호경(湖鏡) 선
생의 충효(忠孝), 봉사(奉仕), 자립애향(自立愛鄕)의 정신과 업
적을 후세에 길이 전(傳)하고자 지방 여러분이 뜻을 모아 1981년
에 추념비(追念碑)를 천안시 성환읍 매주리 성산서록(城山西麓)
묘(墓) 아래에 세웠는데 전 천원군수(前天原郡守) 이관현(李寬
鉉)은 그 비문말미에서, "슬프다 1980년 경신(庚申) 9월30일 향
년 75세로 영면(永眠) 하시니 인자하신 존안(尊顔)을 어디가서
대하며, 랑랑(朗朗)한 음성(音聲)은 언제 다시 들으리요, 성산
(城山)에 감도는 잿빛구름은 여러사람의 수심(愁心)을 더하건만
월봉산(月峰山) 둥근달은 만고(萬古)토록 교교(皎皎)하도다" 라
고 애도(哀悼)했다. 향토인(鄕土人) 김성열(金聖烈)은 추념비건
립을 돕고 인영선(印永宣)은 삼가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