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孔㒚
고려(高麗) 조선(朝鮮)의 문신(文臣)
자(字)는 백량(伯良) 호(號)는 고산(孤山)
서기 1358년(지정 18년 무술(戊戌) 생(生)
서기 1380년(홍무 13년 경신(庚申)에 급제하시고
서기 1384년 갑자(甲子) 벼슬이 문하시랑(門下侍郞)동평장사(同平章事)에
이르셨다.
정보은. 이목은과 함께 교우하시면서 강명(講明)정학(正學)하시고
척불루의(斥佛累疑)를 열어 차려올려 미움을 사시어 예안으로 귀양가시다
靑山白雪圖 寒風詩는 牧隱이 지어 주시고(감사공타보참조)
牧翁이 크게 칭찬하여 당시 名流標榜九逸之首라고하다
我太宗이 여러차례 등용하려 하였으나 불응하시고 順天적소로 길을 떠나시며
詩를 읊어 가로대 “흥망성쇠는 하늘의 뜻이로대 굽히고 않는 것은
도해심(起伏衡天意屈伸度海心)이라
또 말씀하시기를
“돌을 세워 천년을 갈것같지만 그대들의 원성은 만고에 강물에 뜨리다
(石立千秋面江浮萬古聲)
나라와 절개를 지키시다가 서기1413년 (癸巳) 향년 56세로 謫所에서
臨終하시는데 기러기가 삼일간을 울다가 公이 돌아가시자 마자
기러기떼가 락주에 빠저 죽으니
세칭 “삼일포비락주”라고 한다
墓는 全羅南道 麗川郡 三日邑 락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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