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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집 신작 / 2026

내 이름은 하지

작성자경사났네|작성시간26.06.05|조회수33 목록 댓글 2

내 이름은 하지

 

경사 허남석

  나는 하지. 첫 손주가 말을 배울 때 처음 그렇게 불렀고, 이제 네 살이 된 둘째 손주도 나를 하지라고 부른다. 신기하게도 둘째는 가끔 또렷한 발음으로 할아버지라 부르기도 하지만, 내게 가장 정겨운 이름은 역시 하지.

 

첫손자가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 ‘할아버지라는 발음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에서 받침 을 빼고 가운데 글자까지 건너뛰어 맨 끝 글자인 를 붙여 부르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하지라는 말은 이제 여섯 살, 네 살 된 손주들이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친근하게 불러주는 나만의 특별한 대명사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에 사는 며늘아기에게서 반가운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유월 초하루, 첫손자 도윤이가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더니 엄마, 오늘부터 도윤이 생일이 다가온다며, 축하한다고 말해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번 생일에는 여자 친구인 소은이와 영아 때부터 어린이집을 함께 다닌 이안이를 비롯해 좋아하는 친구들을 잔뜩 초대할 거라며 벌써부터 들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느새 저렇게 자랐나 싶어 대견하고 뭉클했다는 며느리의 글 위로, 사랑스러운 도윤이의 환한 미소가 겹쳐 흘렀다.

 

2021621. 첫손자 도윤이가 세상에 첫울음을 터뜨린 날이다. 공교롭게도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는 절기, ‘하지(夏至)’가 바로 도윤이의 생일이다.

 

두 주 전쯤 주말, 우리 집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아들 내외와 도윤이, 은준이 였다. 아파트 주차장에서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 우리 집으로 오르는 그 짧은 순간에도 복도 통로가 손주들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그 우렁찬 소리를 들으면 하지하미(할머니)’의 반가운 마음도 증폭되어 하늘로 쓩 하고 솟아오른다.

 

손주들이 온다고 하면 오기 전부터 이곳저곳 갈 만한 곳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둔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즐거운 목소리를 가득 싣고 춘천 방방곡곡을 달린다. 서면의 애니메이션박물관과 토이로봇관, 캠프페이지 안의 춘천꿈자람어린이공원’, 춘천시립도서관과 국립춘천박물관, 구봉산 카페거리는 물론이고 웬만한 키즈카페는 안 가본 곳이 없다.

최근에는 며늘아기의 지혜와 순발력 덕분에 춘천 레고랜드 연간이용권을 할인된 금액으로 구입했다. 덕분에 서울에서 아이들이 내려올 때마다 레고랜드에서 함께 손을 잡고 달리며 잊지 못할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손주 도윤이가 이 방 저 방에 세워둔 탁상달력을 하나씩 거실로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달력 칸마다 제법 형체를 갖춘 글씨로 허도윤또는 도윤이 생일이라고 진하게 꾹꾹 눌러 써넣는 것이 아닌가. 혼잣말로 무언가 쫑알거리던 녀석은 마침 곁으로 다가서는 나를 보더니, 짐짓 억울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하지, 621일은 도윤이 생일인데 달력마다 하지라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지 생일이 아니고 도윤이 생일이라고 표시하는 거예요!” 순간, 소파와 안마의자에 앉아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아내의 입에서 파안대소(破顔大笑)가 터져 나왔다. 거실 가득 웃음소리가 그칠 줄을 몰랐다.

 

녀석은 달력에 적힌 붉은 글씨의 하지(夏至)’가 할아버지의 이름인 줄 알고, 왜 자기 생일날에 할아버지 이름이 대장처럼 박혀 있는지 샘이 났던 모양이다. 제 생일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 달력마다 아기자기하게 영역 표시를 해둔 손자의 질투 어린 고백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모른다.

 

그래, 도윤아. 달력에 적힌 그 하지는 할아버지 이름이 아니라, 이 세상이 가장 싱그럽고 푸르게 빛나는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란다. 그 빛나는 날에 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가장 큰 선물로 와주었으니, 621일은 온전히 우리 도윤이의 날이 맞고말고 아무렴.

 

달력 가득 진하게 적힌 손자의 이름 석 자를 바라보며, 다가오는 유월의 햇살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품는다. 할아버지의 친근한 별명이자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절기, 그 아름다운 하지에 태어난 우리 첫손자 도윤이의 여섯 번째 생일을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한다. 우리 귀한 손주들, 지금처럼 건강하고 밝게, 넓은 세상으로 씩씩하게 자라 거라. 하지할아버지와 하미할머니가 늘 너희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 사랑 한다 우리 도윤아 은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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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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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백암산인 | 작성시간 26.06.07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듬뿍 담긴 아름다운 글을 읽었습니다.
    손자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행복함이 잔잔하게 느껴집니다.
    하지 날이 생일인 도윤이, 발음이 안 되어 할아버지를 부르는 하지,
    생일을 기다리는 도윤이의 깜찍함이 잘 묘사된 명수필입니다.
    곧 돌아노는 도윤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둘째 손자 은준이도 형아와 함께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 작성자초엽(화선) | 작성시간 26.06.15 달력에 박혀있는 절기 하지에
    도윤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아요.

    넘 예쁘고 귀여운 도윤이 은준이.
    그리고 하지하미의 손주 사랑.
    마치 달콤하고 포근한 솜사탕처럼
    읽는내내 기분이 두둥실 ..

    보름간의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길에.
    기분좋은 글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경사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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