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炎症)
경사 허남석
과로 탓이었을까. 갑자기 몸이 무겁고 열감이 내려앉았다. 손님의 발길도, 전화벨 소리도 뜸한 부동산 사무소 문을 서둘러 걸어 잠그고 차에 올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놀란 아내가 이마를 짚어보더니 병원에 가자고 재촉했다. "조금 누워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내심 내키지 않는 마음을 얼버무리며 고꾸라지듯 침대에 몸을 뉘었다. 유효기간도 모를 감기약 한 봉지를 찾아 단숨에 삼키고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차도는커녕 발끝부터 허리를 지나 머리끝까지 오한이 파도처럼 차올랐다. 거 봐, 병원에 가자니까! 아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지난 코로나19 때 겪었던 고열과 오한의 서슬 퍼런 소용돌이가 다시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119구급차에 실려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은 깊은 밤의 정적 대신 차가운 긴장감만 가득했다. 밤을 꼬박 새우며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대기했지만, 날이 밝아오도록 내 이름을 부르는 의료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아내의 볼멘소리가 응급실 벽에 부딪혀 흩어질 뿐이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다가온 간호사는 의사가 없어 더는 진료할 수 없으니 귀가해 기다리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의대 증원 정책으로 촉발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과 의료 공백. 연일 뉴스 화면을 장식하던 그 대란이 내 삶의 한복판을 관통할 줄은 몰랐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처럼, 스스로 환자가 되어 벼랑 끝에 서 보지 않고는 그 안타까운 고통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애꿎은 환자들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결국 발길을 돌려 찾아간 지역의 일반병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대학병원의 공백을 메우느라 밀려든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병실을 배정받고 검사를 진행했다. 진단명은 '염증 수치 과다'. 정상 범위를 열 배 이상 훌쩍 웃도는 수치였다. 내 몸의 혈액이 온통 염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불꽃에 오염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열흘 가까이 독한 주사액을 맞으며 치료를 이어갔지만 염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 단 한 수저도 뜨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체중은 하루가 다르게 내려앉았다. 고열과 오한은 밤낮으로 내 몸의 왕 노릇을 하며 숨통을 조여 왔다.
그 무렵 서울의 큰 병원에 근무하는 조카가 내 소식을 듣고 염려 섞인 조언을 건넸다. "혹시 세균 검사는 해보셨어요?" 원인균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조카의 질문은 뜻밖에도 담당 의사의 과민한 진노를 샀다. 자신의 처방을 불신한다는 자존심의 상처였을까. 차갑게 얼어붙은 병실의 공기를 뒤로하고, 우리는 서둘러 서울의 병원으로 이송을 결정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고통을 끝내기 위한 뜻밖의 전화위복이었다.
서울 병원에서의 치료는 다행히 순조로웠다. 주치의의 따뜻하고 사려 깊은 눈빛은 직전 병원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까지 다독여 주는 듯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흐르는 신뢰라는 끈이 얼마나 큰 치유의 힘을 가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비록 먹지 못해 체중이 10킬로그램 가까이 빠지는 곤욕을 치렀지만, 열흘쯤 지나자 마침내 고열과 오한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평온이 찾아왔다.
퇴원을 며칠 앞둔 날, 아들 내외와 어린 손주들이 병문안을 왔다. 병원 정원의 푸른 잔디 위에서 손주들을 품에 안는 순간, 몸속에 남아 있던 나쁜 염증의 패잔병들이 한순간에 퇴각하는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약물보다 더 강렬한 가족이라는 온기가 내 몸의 면역 세포들을 깨운 것이리라. 마침 서울에 일정이 있어 찾아와 주신 목사님들의 간절한 위로와 기도를 받으며 마침내 귀갓길에 올랐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내 몸을 흔들고 간 '염증'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염증(炎症)의 사전적 의미는 외적의 침입이나 손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회복하기 위해 면역 체계가 치르는 '격렬한 방어 행동'이라 한다. 한자를 뜯어보면 '불 화(火)' 자 두 개가 나란히 겹쳐진 '불꽃 염(炎)' 자를 쓴다. 내 몸속에 치열한 불이 일어났던 것처럼, 지난 2년 가까이 우리 사회와 의료계 역시 뼈아픈 염증을 겪어냈다. 정부의 강수와 의료계의 반발로 시작된 대란은 수많은 조율과 상처를 거치며 이제야 겨우 후속 과제를 논의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몸의 염증이든 사회의 염증이든, 불(火)이 겹쳐 일어난 자리는 뜨겁고 아프다. 그러나 그 불길은 결국 무너진 곳을 고치고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한 면역의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모진 불길을 견뎌내고 다시 삶의 터전 춘천의 마당을 밟으며, 내 몸과 이 사회가 치러낸 열병이 한층 더 건강한 내일을 위한 치유의 흔적이기를 조용히 바래본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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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백암산인 작성시간 26.06.07 글을 읽다 보니 정말 그때 고생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코로나 때도 많은 고초를 겪으셨는데 뒤이어 염증으로 위중한 상황까지
이르셨다는 말씀을 들으며 가슴을 쓸어 내리던 생각이 납니다.
저는 종교를 잘 모르지만 모두가 경사 장로님의 신실한 신앙의 힘이자
하느님의 가호와 은총이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아프지 마시고 부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초엽(화선) 작성시간 26.06.15 얼마나 힘드셨을까.
가뜩이나 작은 체구에
10키로도 넘게 내리셨다니.
모든 아픔을 이겨내신
경사님이 경이롭고 대단해 보여요.
"가족의 온기" 어떠한 약보다
으뜸이라고 여기시는 경사님의
마음을 또 다시 만남니다.
이번 문학기행에서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글을
써야한다는 경사님의 말씀.
저도 따라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