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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집 신작 / 2026

봐! 내 말이 맞지

작성자경사났네|작성시간26.06.21|조회수23 목록 댓글 2

                        봐! 내 말이 맞지

                                                          경사 허남석

나는 자주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이 순간까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이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내게는 유독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기의 순간들이 많았다. 물론 다른 이들이 겪은 삶의 궤적을 일일이 다 알 수 없으니, 나의 이런 생각도 주관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 위태롭던 순간들은 1980년 5월 29일, 33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면서 잦아들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5일, 고향 군청의 재무과 세정계 차석으로 복직하게 되면서 내 삶은 비로소 평온한 궤도에 진입하는 듯했다.

 

그러나 복직 첫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발령받은 자리에 앉자마자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지금은 팀장이라 부르지만 당시는 계장이라 불리던 상사가, 내가 들으라는 듯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툭 던지는 게 아닌가.

“뭘 저런 걸 데려다 놨어.” 가뜩이나 좌불안석이던 자리에서 그런 소리까지 들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참담한 심정이 차올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온갖 고난을 겪었지만, 그 순간의 정신적 고통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참고 견뎠다. 갓 제대한 군인 특유의 충만한 기백과 의욕이 발동했다. 세정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서 그 계장님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는, 나 자신도 모를 오기가 작동한 것이다. 그 오기는 몇 달 지나지 않아 빛을 발했다. 업무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자, 늘 기세등등해 보이던 계장님의 기세가 내 눈에는 오랫동안 납작하게 엎드린 것처럼 보였다. 훗날 그분은 고참으로서 1순위 사무관 시험 대상자가 되어 두 번이나 도전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 시군으로 전출되었다가 퇴임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 후 나는 1년여간 근무했던 세정부서를 떠나, 주무과 말석 자리인 병사계로 발령을 받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세정부서에서 보여준 능력을 유심히 살피던 인사부서의 ‘발탁 인사’라는 풍문이 돌았으나, 내게 직접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새로운 자리 역시 순탄한 출발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담당 병사계장님의 못마땅해하는 눈초리가 역력했다. 병사업무라는 게 병역법에 의거한 현역 입영이나 예비군 관련 업무를 다루다 보니, 자칫 삐끗하면 형사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기우에서 비롯된 걱정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발령 후 가진 첫 회식 자리에서 나는 “계장님 발에 흙 한 가루 묻히지 않게 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라며 만용에 가까운 호기를 부렸는데, 지금도 문득문득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멋적은 미소를 짓게 된다.

병사계로 옮겨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우리 과의 주무계장님이 병사계장 옆을 지나가다가 슬쩍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병사계장의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를 던졌다.

“봐! 내 말이 맞지.”

나는 40여 년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그 짧은 한마디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내 어깨가 아닌 타인의 어깨를 통해 전해진 그 은근한 ‘격려’와 ‘칭찬’은, 젊은 치기에 의욕만 앞서던 내게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에너지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고희를 지난 지금까지도 인생의 굽이길을 헤쳐 나가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나는 분명 이 세상 속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이가 저마다 귀한 ‘한 사람’이다. 인류는 결국 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룩한 합(合)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 사람이 없으면 인류도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한 사람의 존재는 더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한 타인을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과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다시 꺼내는 이유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고, 배려하는 미풍양속을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 작은 배려가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로 퍼져나갈 때, 비로소 우리 삶의 가장 고귀한 가치와 덕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내 귓가에는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온 따스한 그 목소리가 맴돈다.

“봐! 내 말이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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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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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초엽(화선) | 작성시간 26.06.22 new 서울로 올라가는 길,
    경사님의 따끈한 수필은
    저를 미소짓게 합니다.

    어찌 이리 잘 표현 하셨는지.
    제목도 탁월!!문체도 탁월.
    그저 부럽기만 해요.

    경사님을 알고 있다는
    것만도.영광임에도.,
    곧 구인문학도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서운함도 커지네요.
    구인문학이 아니더라도.
    함께했던 세월을 핑게로.
    아주가끔 식사 같이
    할 수있었음 좋겠어요...
    그냥 소리의 답답한 넋두리요.

    오늘의 수필은 읽혀지는 글 최고입니다!!
  • 작성자백암산인 | 작성시간 16:08 new 경사님의 탁월한 업무 능력은
    일찌기 강원도청의 여러 내노라 하는
    분들로부터 검증 받으신 바 있어
    재론의 여지가 없겠습니다.

    그 만만치 않은 실력을 초임지인
    양구에서부터 발휘하셨으니,
    떡잎부터 알아 본 주무 계장님의
    혜안이 날카롭습니다.

    낭중지추란 말이 있는데
    경사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말이 맞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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