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로마서 14장 8절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한국교회를 대표하셨던 김준곤 목사님이 계십니다. 오래전 믿음기도원 학생여름성회에 김준곤 목사님께서 특별 강사로 초청이 되셨습니다. 귀한 목사님께서 어떤 말씀을 전하실까 학생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설교를 마치시기 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어떤 질문을 하든지 여러분들은 ‘오직 예수’라고만 대답하십시오.” 그리고는 질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자, 여러분들도 똑같이 한번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김준곤 목사님이 하셨던 것처럼 질문하면 “오직예수”라고 힘차게 대답만 하시면 됩니다...아셨죠!
우리의 구원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인류의 소망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우리의 힘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우리의 지혜는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우리의 능력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우리의 보배는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생명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나는 누구의 것입니까? 오직 예수!
나는 누구를 위해 삽니까? 오직 예수!
잠을 자도? 오직 예수!
밥을 먹어도? 오직 예수!
공부해도? 오직 예수!
집에 있을 때에도? 오직 예수!
학교에서도? 오직 예수!
매일 매일? 오직 예수!
어디에 있어도? 오직 예수!
무엇을 해도? 오직 예수!
세상 끝까지? 오직 예수!
영원토록? 오직 예수!
이 설교가 김준곤 목사님의 그 유명한 ‘백문일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설교를 처음 듣는 분들은 설교 참 쉽다,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집회에 참석할 정도의 열심 있는 신앙인이라면 누가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오직 예수, 교회 다니는 사람은 누구다 다 아는 기본 중의 기본 아닙니까? 그런데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의 질문은 단순히 우리의 지식을 확인하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예수님을 가장 귀한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당신은 정말 예수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당신은 정말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정말 예수님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있습니까,
당신은 정말 예수 없이는 못삽니까,
당신은 정말 오직 오직 오직 예수입니까?
바로 이것을 묻고 계셨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마음을 깨닫자, 오직 예수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오직 예수라는 대답대로 살고 싶은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렇게 살겠다는 결단으로 오직 예수를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따라 하던 학생들도 있었지만 ‘오직 예수 오직 예수’를 외치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교회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의 소망도, 인류의 소망도 없습니다. 오직 죄와 사망과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놓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예수님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인이십니까? 주일날만 주인이 아니라 일 년 365일 주인이십니까? 교회에 있을 때만 주인이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인이십니까?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할 때만 주인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인이십니까? 진지하게 자신의 하루생활을 돌아보며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매일 매일, 어떤 장소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어느 누구와 함께 있어도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공부하는 목적, 일하는 목적, 결혼하는 목적, 장사하는 목적, 저축하는 목적, 자녀들을 기르는 목적, 운동하는 목적, 여행하는 목적,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목적이 예수님과 상관이 있습니까? 만약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예수님과 관련지어서,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부르는 형식적인 관계는 갖고 있을지 몰라도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생활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종, 예수님의 종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종으로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내 욕심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말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한다면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당연하지요. 이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가슴을 치고 회개할지언정,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면서도,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사람을 광신주의자로 치부하는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지요.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친구야, 믿는 건 좋은데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아라.’ 세상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충고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에 깊이 빠지면 훌륭한 직장인이고, 공부에 깊이 빠지면 좋은 학생이고, 운동에 깊이 빠지면 뛰어난 운동선수인데, 예수님께 깊이 빠지면 왜 이상하게 생각할까요?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도 주님이고, 성공도 주님이고, 돈도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왔던 사람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성경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형식적인 관계였는지,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 적이었는지를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것은 오직 예수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오직 예수님만을 주님으로 섬기는 참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고, 이것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이렇게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가슴을 쳐야 합니다.
오직 예수로 살면, 모든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 평안을 누립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위대한 선교사 스탠리 존슨은 진짜 기독교인이 되면 그 인생에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불안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두 번째가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기쁨이 있는 것이고, 세 번째가 환난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부광감리교회에 김정자라는 성도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철저한 불교 신자였지만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후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나는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종교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종교로 개종했습니다,”라고 간증할 정도로 오직 예수밖에 모르고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믿음생활을 시작한 지 7개월 되었을 때, 자신이 운영하는 흑염소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실수로 오른쪽 손목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목사님과 많은 교인들이 김정자 성도가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해서, 예수를 믿어서 이런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문병을 갔습니다.
그런데 김정자 성도가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친구들을 멀리 하도록 이런 일을 겪게 하신 것 같습니다. 두 손으로 죄를 짓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한손으로 천국 가는 것이 더 좋잖아요,” 하면서 환하게 웃더랍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장부 정리를 위해 왼손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한 후 정상인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그런 사고를 당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어도 당했을 사고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니까 끔찍한 사고에 지지 않고 용기 있게 이겨내며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정자 성도가 가지고 있던 신앙의 힘이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김정자 성도는 특별한 예수님을 믿고 있어서 그런 삶을 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똑같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불평하고 있습니까? 똑같은 예수님을 믿는데 왜 그럴까요? 이것이 그냥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오직 예수밖에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똑같은 사고를 당해도, 똑같은 문제를 만나도, 그냥 예수의 사람과 오직 예수의 사람은 전혀 다르게 반응합니다.
마가복음 4장 35-41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는 중에 큰 광풍이 만났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평상시에는 고요했으나, 북쪽의 헬몬 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따뜻하게 데워진 호수의 공기와 만나 광풍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제자들이 만난 광풍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상치도 못했던 순간에 제자들이 만났던 것과 같은 광풍을 만납니다. 그 광풍으로 인해 우리 인생이 가라앉는 것과 같은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로 벌벌 떨었습니다. 예수님이 안계셨다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 배에 예수님이 함께 계셨는데도 그랬습니다. 이것이 그냥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을 받은 후에 오직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오직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된 제자들은 광풍이 아니라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전승사에 보면 의심 많던 제자 도마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는데, 뼈 마디마디를 잘라내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라고 강요하며 뼈마디를 잘라낼 때마다 도마는 오직 예수만을 외쳤다고 합니다. 그냥 예수가 오직 예수로 바뀌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로 살면, 참 지혜를 얻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가야하지 말아야 할 길을 가고, 교제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 교제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합니까?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앞으로 자기 인생에, 자기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어느 길을, 어떤 일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지금 여러분이 처해 있는 상황은 과거 여러분이 했던 크고 작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의 인생은 지금 여러분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진리와 거짓, 축복과 저주, 행복과 불행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지혜가 있다면 나중에 후회하고 통곡할 어리석은 선택을 왜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참 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이 바로 지혜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24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골로새서 2:3에도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공부를 많이 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 있는 그 놀라운 지혜와 지식을 얻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유혹과 거짓과 속임수 속에서도 형통의 길, 승리의 길, 영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유언장을 쓰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구역장님들에게도 유언장을 써오도록 했습니다. 한 구역장님의 유언장을 잠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 나는 천국으로 간다. 나의 몸은 죽었어도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것이다.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걷고 교회를 섬기고 세워라.
딸에게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아빠는 먼저 천국에서 너희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아빠는 항상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보고 있을 거다. 너는 마음을 굳게 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너는 아빠에게 중학교교사가 되겠다고 했다. 아빠는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교사가 되였으면 좋겠다.
또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믿음의 가정을 꾸려나가기를 바란다.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엄하게 가르쳐서 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으로 키우기를 바란다.
아들에게
너의 이름의 뜻은 ‘성령을 전한다’ 라는 뜻이다.
나는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의 종으로 키우겠다고 서원을 했다. 너는 반드시 주의 종의 길을 걸어가라. 너는 이 길이 싫다고 반발할 수도 있고 이 아비를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짜 만나게 되면 이세상의 모든 것이 배설물로 여겨질 것이다. 나는 네가 진짜를 위해서 살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이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너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다. 너의 생명은 너의 것이 아니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네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 같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 진리를 깨닫게 될 거다.
나는 네가 종의 길을 걸어 갈 때 오직 마음을 굳게 하고 걸어가기를 바란다. 너의 제일 가까운 사람이 때론 너의 시험거리가 되어 하나님을 선택하느냐 우상을 선택하느냐 하는 골목길에 들어 설 것이다. 그때 너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마음을 굳게 하고 나는 죽어도 하나님을 선택하겠다는 각오로 걸어가야 한다. 이 길만이 사는 길이고 축복의 길이다. 성경에서 많은 사람이 이 골목길에서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다. 결과는 어떻게 되였을 것 같니? 네가 스스로 성경을 찾아보아라. 다 저주의 길을 갔다.
아빠는 너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할 것이다. 또 우리 예수님도 너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할 것이고 너의 앞길을 가르쳐줄 것이다.
부모님께
저를 특별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나를 건강하게 자라나게 하였습니다. 농촌에서 시내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나 혼자 뿐이었고 날마다 그 먼 길을 자전거로 데려다주시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저는 천국으로 갑니다. 저의 소원은 아버지 어머니도 예수님을 믿고 천국으로 오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후회하지 마시고 지금 선택할 수 있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으로 올 준비를 하세요. 아버지 어머니가 저를 사랑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하십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구역장님뿐 아니라 모든 구역장님들의 유언장에 공통적으로 들어갔던 내용이 예수님 바로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에게, 남은 가족들에게 신신당부했던 것이 오직 예수님만 붙잡고 살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우리가 그렇게 붙잡고 살았던 것들이, 우리가 그렇게 안달하며 살았던 것들이, 우리가 그렇게 빠져 살았던 것들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직 예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만을 붙잡고 나니까 자녀가, 가족이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가 너무 분명한 것입니다. 왜 미리 유언장을 썼습니까? 이제부터 남은 인생은 오직 예수님만 붙잡고 지혜로운 인생, 후회 없는 인생, 열매 맺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로만 살면 마지막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의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정말 보람 있고 의미 있고 값진 인생을 살았다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평안과 기대 속에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로 살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 약속을 붙잡고 승리했습니다.
김상태 씨는 동생이 3년간 운영해 온 정치망 어장의 사정이 어렵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인수해서 영덕호의 선주가 되었습니다. 정치망 어장이란 합법적으로 바다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구역을 말하는데, 대부분의 어장 사정이 썩 좋이 않았습니다. 어장 관리에 드는 비용에 비하면 걷어 올리는 것이 형편없었습니다. 그나마 위치가 좋으면 괜찮겠는데, 가장 작은 김씨의 어장은 500m 거리를 두고 동서남북으로 즐비하게 들어선 어장들 사이에 끼어있어서 많은 고기떼를 기대하기에 가장 힘든 어장이었습니다.
김씨의 배 영덕호가 빈 배로 돌아올 때가 자꾸 늘어나자 김씨도 모르게 풍어제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선원들이 고기를 많이 잡으려면 풍어제를 드려야 한다고 간청할 때마다 김씨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날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풍어제를 해서 만선이 되면 하루치 이자라도 갚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그렇게 해서 일단 어느 정도 빚을 청산한 후에 회개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변변히 밥벌이도 못 해 오는 못난 남편, 무능한 아버지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그래서 망한다 해도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김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오직 예수님으로만 살기로 결단했던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설령 고기가 잡히지 않아 부도가 난다 해도 풍어제를 드릴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이곳 바닷가 마을에 작은 교회가 들어서면서 김씨는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바다가 곧 삶의 터전이자 신앙 그 자체인 어촌에, 교회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교회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오직 예수 안에만 참된 소망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오직 예수로만 사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믿음 하나 가지고 20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부도가 난다고 풍어제를 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덧 성탄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교회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교회 건물은 지어진 후 20년 동안 한 번도 손을 보지 못해, 슬레이트 지붕은 비가 샜고 낡은 벽은 곧 허물어져 버릴 듯 했습니다. 몇 안 되는 교인들이 비새는 지붕 아래 모여 소박하게 예배를 드릴 때마다, 김씨는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요즘처럼 살기 힘들 때는 그 기도가 더욱 간절해 졌습니다.
“하나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지켜 주이소. 모두들 사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교회도 저도 겨울을 나기가 너무 힘듭니다. 겨울이 지나기 전 수리할 수 있게 도와 주이소. 살아계신 하나님, 제발 저에게 응답해 주이소.”
김씨의 간절한 기도는 계속되었고 그렇게 해서 성탄절 전야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성탄절 새벽이 되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쯤 되었을까 동생에게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형, 너무 많이 잡혔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혔다고!” 동생은 이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김씨는 급하게 항구로 달려 나갔습니다.
2000년 12월 25일 새벽, 어장에선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영덕호가 이끄는 그물 안에는 길이 1m 이상, 몸무게만도 10kg이 넘는 방어가 백 마리도 천 마리도 아닌 무려 5천여 마리가 일렬도 늘어서서 그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중 2천 5백 마리 정도를 뭍으로 끌어올리는 중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2.5t 급의 작은 배가 열 배도 넘는 무게를 싣고 왔으니, 물고기가 그렇게 잡힌 것도 기적이지만 배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더 큰 기적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김씨의 입에서는 오직 한 마디 말만 나왔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동생과 열두 명의 영덕호 선원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었습니다. 김씨는 정신을 차리고 빚에 시달리는 아들을 위해 밤낮 애태우며 기도하시던 노모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김씨의 어머니는 할 말을 잃고 내내 울기만 하셨습니다. 성탄절 아침에 주님이 주신 기적이었습니다.
일단 첫날 끌어올린 방어 2천 5백여 마리를 마리 당 16만 9천 원에 팔고, 다음 날 나머지를 다시 끌어올리러 바다에 나갔습니다. 동생은 고기가 더 들어오면 그물이 찢어질 수도 있기에 그물 입구를 묶어 놓았습니다. 실재로 그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그 위로 넘친 고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쯤 되면 다른 어장에도 최소한 몇 백 마리쯤은 들어가 있는 것이 정상인데 다른 그물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극심한 고난과 유혹 속에서도 끝까지 오직 예수로만 살았던 김씨에게 주신 기적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김씨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보잘 것 없는 나의 작은 어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친히 보여 주시고, 그로 인해 늘 쉽게 흔들렸던 내 풀뿌리 같은 믿음이 그분 한 분만을 바라보도록 조금 더 자라났다는 것이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라고 말했던 베드로의 고백이, 바로 앞으로도 거친 바다와 더불어 살게 될 나의 고백이 될 것이다.’할렐루야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놀랍습니다. 오직 예수로만 사는 자들에게는 이런 기적 같은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예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의지하고 사람도 의지하고, 예수님도 바라보고 세상도 바라보고, 예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종으로 팔려간 요셉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에스더도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오직 주님만 붙잡았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도 오직 주님께 자신의 생명을 맡겼습니다. 기적 같은 승리를 체험했던 인생들은 하나같이 오직 주님, 오직 예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과 어떤 어려움 속에 있다할지라도,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오직 예수님만 붙잡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면, 오직 예수의 사람이 되면 반드시 승리할 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찬양하며 기도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어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오히려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을 권면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온갖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승리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역사학자들 중에는 진정한 유럽은 바울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단한 평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위해 하늘나라에 예비해 놓으신 칭찬과 상급과는 비교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입니다. 그는 오직 예수의 사람이었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 이것이 사도 바울의 인생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나 죽으나 자신은 오직 주님의 것이라는 이 믿음 하나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 앞에 세상이 변화되었습니다.
이제는 결단할 시간입니다. 그냥 예수의 사람으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오직 예수의 사람으로 사시겠습니까?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의 삶이 달라집니다.
오직 예수의 사람이 되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결코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사람이 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 속지 않습니다. 거짓과 유혹에 속아 헛된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멸망의 길, 저주의 길을 벗어나 형통의 길, 축복의 길을 걸어갑니다. 오직 예수의 사람이 되면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국은 승리합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믿음으로 사십시오.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고 오직 예수만을 붙잡고 오직 예수만을 의지하고 오직 예수만을 위해 사는, 오직 예수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