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57:5,11
아둘람과 엔게디 동굴에 숨어 지내며 지은 찬송시라니 그는 땅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기도와 찬송.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의 기도.
다윗의 영성을 닮고 싶습니다.
주님!
제 눈이 하나님께 고정되기를 원합니다.
일어나는 세상 정세에 대해서는 둔할지라도 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는 온통 열려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영성이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고난 중에도 흔들림 없는 감사,
평안한 중에도 더욱 기억하는 감사.
그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1절)
다윗이 사울을 피해 굴에 있을 때 지은 시라고 하는 이 시편은 어려움이 다 지나기까지 주의 날개
아래에 피하겠다고 합니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두려움 속에서
도 주님께만 온전히 의지하겠다는 다윗의 고백이 위대합니다.
그렇기에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그 자리를 피해 나가는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의 행위를 봅니다.
온 맘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되 온 맘 다해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새벽에 깨어 하나님의 영광이 온 하늘에, 온 땅에 가득하심을 찬양합니다.
어떻게 보면 다윗이 언약궤 앞에서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표제처럼 ‘그가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을 때’라고 합니다.
사울의 위협, 그를 밀고하려는 사람들, 이방나라 사람들... 온통 사방이 적들에 둘러싸여 밤낮을 알 수 없는 깜깜한 동굴 속에서 사람들, 동물들의 배설물로 뒤섞인 열악한 환경 안에서도 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변함이 없다 노래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1절)
깜깜한 동굴을 아래 숨어 있는 자신을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라 표현한 다윗.
샵을 이전하며 지하로 내려오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소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어려워질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떠한 공간에 있을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밤낮을 알 수 없는 장소에서도 일찍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께 감사기도와 찬양을 드렸던 예배자 다윗처럼 저도 더 가까이 하나님께 다가가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딸 되길 원합니다.
6 원수들이 나를 잡으려고 덫을 놓습니다. 그래서 내가 근심 중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내가 가는 길에 구덩이를 파 놓았지만 그들 스스로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셀라)
8 내 영혼아, 일어나라. 비파야, 수금아, 잠에서 깨어라! 내가 새벽을 깨우겠다.
어리석은 자가 원수들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짐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도 빠질 수 있는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이 우리를 구덩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일어나 깨어있는 영혼, 그 영혼만이 세상이 나를 위해 마련해 놓은 장애물에 빠지지 않게 하고 걸리지 않게 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며 능력이 됨을 다시금 느껴 봅니다.
말씀과 기도를 놓치지 않으며 나의 힘과 능력 되시며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영혼이 깨어 있는 주의 자녀 되길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주님의 그늘 아래에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을 한다면 아마 폭우가 쏟아지는 날 안전한 집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기분이지 않을까 합니다.
완전한 안전함 그리고 평안함..
폭우가 내게 영향을 미칠수 없는 곳에서 쉼을 얻둣 주님의 그늘 아래에서 재앙으로부터 몸과 영혼이 쉼을 얻고 싶습니다.
온전한 맡김이 이런 것일 겁니다.
재앙들이 내게 어찌하랴 라는 고백을 담대히 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