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13
하나님을 경외함이 땅바닥에 떨어진 세상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고 싶었던 엘리야의 마음이 숨어있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다가도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찾게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이 택하셔서 백성 삼은 나라가 얼마나 타락했으면 왕이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고 살지 죽을지를 이방 신 바알세붑에게 묻도록 신하들을 보냅니다.
하나님을 무시한 아하시야왕은 반드시 죽을 거라는 엘리야의 말을 왕의 권력으로 무시하고 누르려고 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땅에 떨어진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위엄보다 눈에 보이는 왕의 권력울 더 의지했던 첫 번째 두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
같은 말로 오십부장 세 사람이 엘리야를 불렀지만 하나님의 위엄을 인식한 사람은 세 번째 오십부장 혼자인 걸 봅니다.
하나님께 둔해지면 세상 일들을 근심하게 되고 하나님께 민감해지면 세상을 뚫고 나갈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막 8:17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 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14)
아합의 왕 밑의 오십 부장이지만 그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능력이 두렵기도 했지만 자신의 부하들도 아끼는 그런 마음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어디든 소속되어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외면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나가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심을 묵상합니다.
손해 보는 것 같고,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도 그것이 믿음으로 나가는 일이라면 당당한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오십부장의 입술의 말이 아닌, 그의 마음과 동일한 언어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자신의 일을 감당케도 하시고 죽음도 면케 하신 게 아닐까!
어떤 상황에도 신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속에 간사함과 이중성이 없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이 되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열왕기하는 솔로몬의 사후 분단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어떻게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에도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북이스라엘 왕 아하시야는 결국 죽고 맙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삶의 환경이 좋아지니 사람들의 생각도 복잡해지고 너무 많은 다른 점들이 나타납니다. 정치와 경제의 이해관계에 따라 너무 많은 다름과 차이가 나타나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도 혼란스러워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 매일 깨달으며 살기 원합니다.
나는 내 믿음대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주님앞에 책망받을만한 일은 아닌지 생각하며 살기 원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3절)
열왕기하를 다시 시작하며, 이 책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에게 "왜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가"를 알려 주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열왕기서를 읽다 보면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며 영적으로 타락해 가는 모습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아하시야 왕은 병이 들자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알세붑에게 답을 구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선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그러느냐"라고 책망하십니다. 결국 이 질문은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현재를 살아가는 저에게도 던져지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 앞에 멈춰 서기보다 내 생각과 방법으로 먼저 해결하려 하고, 염려와 계획에 붙들릴 때도 많습니다. 그 순간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실패한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삶의 분주함 속에서 잠시 멈추어 하나님께 묻고, 가장 먼저 주님을 찾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만이 제 삶의 참된 답이 되심을 기억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말씀을 묵상하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왕들은 왜 하나님을 진실히 믿지 않았을까...’
그들의 조상들에게 하나님이 애굽에서 구해주신 것과 광야에서 먹이신 것 그리고 약속한 땅을 주신 것을 수도 없이 들었을 텐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도 있는데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시겠다고 하셨어도 진실한 왕 한 사람이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니님께 무릎 꿇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복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셔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도록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통해 믿음의 동역자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슬픔이 기쁨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이스라엘의 아하시야왕이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왕궁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심한 부상을 입자 그는 블레셋 땅에 사람을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자기가 회복될 것인지 물어 오라고 명령하였다.
3 그러나 여호와의 천사는 디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아하시야왕이 보낸 그 사람들을 만나 이렇게 말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이 말씀을 읽고 뜨끔하였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께 늘 묻고 그가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성격이 매우 급합니다.
급한 성격덕에 뭐든지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해야 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빨리빨리 선택하고 해결해야 하는 나의 결정에 하나님께 뜻을 구하고 나아가는가 생각해 보니 많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 하나하나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내 생각 내 마음대로 나아갔던 날들을 돌이켜 봅니다.
나의 삶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삶의 모든 문제와 상황들 앞에 내 뜻과 의지가 먼저 앞서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문제 모든 선택과 결정 하나님께 의뢰하며 그의 뜻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지혜로운 믿음의 자녀 되길 소망합니다.
아하시야가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을 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부모인 아합과 이세벨에게 물려받은 우상숭배가 삶의 습관이 되어, 인생의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에게 묻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릴 때와는 다르게 마음을 터놓고 조언을 구할 어른을 찾기가 참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저에게 나이를 불문하고 언제든 무엇이든 여쭤볼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최근 교회의 여러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하며, 하나님께 더 적극적으로 묻지 못하고 낙심했습니다.
모드 문제의 답이 오직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때문에 이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며 자책하며 지냈습니다.
아직도 제 안에는 이런 연약한 생각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듭니다.
이제 제 모든 생각의 짐을 내려놓고 주님께 다시 묻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우리가 개척했다는 이유로 우리의 업적처럼 여기며 인간적인 눈으로 계산하고 낙심했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이 힘든 시간을 통해 교회의 여러 부분들을 새롭게 빚어가고 계심을 믿는다. 이제 낙심 대신 주님께 더 열심히 묻고, 주님이 주시는 답을 묵묵히 기다리며 오늘도 맡겨진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훈련시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