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7)_고후8:9절 안에서 물질로 부터 자유함에 이를 수 있는 영적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26.06.13조회수58 목록 댓글 0https://youtube.com/live/z48uWY1qz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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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7)_고후8-9절 안에서 물질로 부터 자유함에 이를 수 있는 영적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고전8-9,갈3-13,롬8-17,엡2-6)
지난 시간에 어떻게 돈의 노예가 되는가 물질의 노예가 되는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만 택해야 합니다. 여러분. 둘 다 절대로 우리는 섬길 수가 없어요. 주인이 두 사람이 동시에 될 수는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둘 다 동시에 섬기려고 하면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무지하게 힘들어지죠. 어떤 주인을 들어가야겠습니까? 여러분 원치 않아도 이미 님이 먼저 찍었기 때문에 답이 없어요. 이미 그렇게 택해서 자신을 주라 부르고 여기 오셨어요.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오셨잖아요. 그렇죠? 그러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미 그러면 이미 우리는 결정된 운명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도 그 법에 따라서 살 수밖에 없어요. 다른 법을 따르면 분명히 수고와 슬픔, 고통과 괴로움이 저주의 증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고 특히 물질로부터 완전한 자유 꿈도 꿀 수가 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우리는 택해야 하고 이미 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물질의 법칙, 천국의 경제학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아멘 그걸 염두에 두고 한번 오늘 고린도서 8장 구조를 통해서 물질로부터 자유함에 이를 수 있는 성경적인 원리를 오늘 도출해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8장 구절을 보시면은 잘 보셔야 돼요. 우리 성경 구조를 몇 번 했는데 다 아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묵상할 때마다 새로운 게 계속 올라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이가 알그니와 은혜라는 거예요. 전부 일방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은혜예요. 너희가 알거니와 알고 계시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엄청난지 그렇죠? 거기에 이제 보세요. 부여한 신자로 부여하신자가 어떻게 됐어요? 부여하신자로 나를 위해 나를 위해 가난하게 가난하게 됐죠.
나를 위해 가난하게 된 것은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어떻게 나를 부유케 하려? 이 부여하신자와 가난하게 됐는데 이 가난한 나를 위해 부여한 나를 위해가 아니고 부여하신 분들은 가로막힙니다. 여기는 안 계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단어들이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개념의 단어와 다릅니다. 여기에 부여환자는 어떤 부여환자일까요? 문자적으로 보면 부여와 가난이 대비되어 있는데,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죠.
부여환자죠. 그리고 가난한 자는 파산해서 없는 자가 가난한 자죠. 우리 제가 이 단어 이 문장을 성경 가운데 고인도서 8장 구조를 만났을 때 가슴이 설레더라고요. 야 나도 이제 부자로 살 수 있다. 라는 그런 갑자기 막 여름을 어떻게 읽어요? 나도 이제 부자가 될 수 있구나 이런 마음이 안 들었어요. 처음에 성경 읽을 때 부자이면서 가난하게 되셨기 때문에 나를 위하여 그렇게 됐대요. 그러면 나는 무조건 부자가 돼야 되는 거잖아요. 이건 피할 수 없는 거잖아요.
아메 아직도 부자가 안 됐어요. 성경 읽은 지 30년 된 것 같은데, 여러분 어떤가요? 오늘 보도록 하죠. 세상적인 단어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에요. 제가 처음 이 구절을 보고 되게 기뻤어요. 가능성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보면은 그러잖아요. 우리를 부욕케 하려고 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예수님이 못하는 게 없잖아요. 바로 부옇게 될 줄 알았어요. 저는 그런데 아직 아직 자, 보세요. 그 부여가 무조건 아니라 하면 안 돼요. 세상적인 것에 전혀 상관없다. 이렇게 하면 안 돼요. 그러면 전부 가난하게 살아야 되잖아. 물질적으로 그건 아니죠. 그건 아니에요.
이건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 그래서 부자하고 가난하고 이 수준을 벗어난 이야기예요. 이거는 물질적으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법칙이 그 안에 들어가 지난 시간에 짧게 했지만, 여기에 기독교 신앙의 핵심 부분이 들어가 있는데, 이걸 뭔가 하면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거룩한 교환이라고 그래요. 이게 신학용어로 그래요. 신학용어로 거룩한 교환. 뭘 교환했다고요? 가난한 나와 부자 예수님과 교환. 맞교환했어요. 그럼 우리는 부자죠. 당연히 부회환자죠. 내 모습하고도 상관없는 거예요. 이건 벌써 실망하는 눈치가 많이 이걸 원어로 이렇게 직역을 해도 크게 차이는 안 날 겁니다.
여기에 우리가 지금 찾아야 할 것은 물질적인 자유를 위한 성경 원리를 찾아내는 데 있습니다. 제가 부흥에 처음부터 말씀을 드렸지만 물질적인 자유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물질이 워낙에 매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은 다른 것으로부터도 쉽게 질병 그다음에 우리가 피하고 싶은 이런 모든 성품 이런 것들로부터도 자유롭게 되면 다 했잖아요. 그렇죠? 인식하는 뇌가 어떤 자리에 있고 인식하는 것과 선포하는 것과 명령하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뇌를 완전히 새롭게 OS를 깔아 가지고 우리의 삶을 마치 뇌를 속이는 것처럼 그렇게 그렇죠? 우리 이게 새창조의 어떤 부분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부분과 연결해서 이 가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결해서 한번 보도록 하죠.
여기서 가난하게 되다라는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는 정확히 완전히 파산한 자를 말합니다. 철저하게 파산해서 아무것도 없어. 구걸해야 될 처지에 도달한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육적으로 문자적으로 그래요. 그래서 이게 가난한 자는 그런 뜻이고 이 부자라는 것은 여기 부여한 자는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상속한 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가난한 자는 단순한 물질적인 가난함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이 가난한 자는 영적으로 파산한 사람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파산하는 사람을 말해요. 그러니까 어떤 상태의 분리, 분리.
죄로 인해서 죄로 분리된 자가 바로 이 가난한 자.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죠. 심령이 가난한 거하고 좀 달라요. 물론 이제 같이 쓰는 단어이기도 해요. 어떨 때는. 그런데 그건 하나님의 부여에 이르기 위해서 내 안에 있는 부여를 몰아내고 다 밟아버리고 하나님으로 채우려고 하니 잘 안 되어서 막 애통하는 그런 상태. 그걸 가난이라고 그래요. 어쨌든 이 가난은 죄로 인해서 분리된 상태. 그래서 영적으로 파산한 상태를 가난한 자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게 여기에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법도 하죠. 잘 들어보세요. 끝까지 가면 알게 돼요.
어쨌든 두 가지의 단어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는 걸 먼저 하시고 그래서 영적인 의미는 그래요. 이 거룩한 교환을 말해요. 이게 교환되는 거예요. 영적으로 완전히 파산해서 파산하면 여러분 육적으로도 고통과 괴로움 안에 있어요. 왜냐하면, 가시와 엉픈퀴를 내기 때문에 땀 흘려. 수고해도 수고한 만큼 우리가 얻을 수 없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계속 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거하고도 상관이 있습니다. 전혀 없는 게 아니에요. 어쨌든 이건 뭔가 하면은 예수님이 부자인데 부유한 자인데 가난하게 됨을 통해서 맞교환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하되고 성도가 승귀된다. 이런 신학적인 용어로 그렇게 말해요.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부여한 자가 된다. 맞교환이에요. 예수님은 그걸 위하여 왔다고요? 아시겠어요? 그걸 위하여 오셨어요? 대단한 거 아니에요? 엄청난 거죠. 놀랍게도 이 가난이 십자가에서 다 죽었어요. 맞나요? 예수님이 가난한 자로 와서 가난을 다 우리 가난한 우리가 예수님에게 가난이 전가됐죠. 이게 이거잖아요. 죄죠. 통칭해서 그걸 말해요. 여기가 전가돼서 죽었죠. 그래서 이거 죽은 거예요.
우리 분리로부터 오는 모든 저주는 거기서 다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도 다 죽은 거예요. 그렇죠? 여기서 뭔가 이제 우리가 찾아낼 수 있어요. 이게 맞교환됐다고요. 빌리포스 2장 5절에서 7절, 8절, 9절 다 아시죠? 근본 하나님 자체잖아요. 내 하나님과 동등 대물 취약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애를 피워 종의 형체 종의 형체 가난한 자 이게 우리가 물질의 종에 매여 죄의 종 그다음에 물질의 종, 보이는 것의 종, 만물의 종, 종으로 되죠. 우리가 분리되는 순간 이 종, 이 종, 이 종의 모습으로 왔다고요.
부여한 자, 이 부여한 자는 신성에 충만한 모든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이 모든 것을 창조 다스리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걸 부여라고 그래요. 우리가 알고 있는 부자하고 좀 다르죠. 이걸 포기하고 나처럼 가난하게 내려와서 가난한 나와 함께 죽어버렸어요. 로마서 8장 3절 기억나시죠? 죄의 그 몸의 죄를 정하사 죄의 몸으로 내려왔다고 그랬죠. 우리하고 똑같은 모습으로 와야 담당할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의 몸으로 여기서 저의 몸이 결국 이 가난한 자죠. 이게 다 죽은 거죠. 이게 다 죽은 그러니까 우리는 이게 여기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죠. 나 자유 얻었네, 늦자유 해방되었네, 해방되었네 이런 다 그거예요. 자기를 부정하고 종의 형체로 내려와서 끝난 게 아니죠. 그렇죠. 중요한 것은 거기서 이 부여함이라는 게 창조주의의 권세와 능력을 다 포함하는 거예요. 엄청난 거죠. 그런데 그걸 다 내려놓고 가난하게 내려온 우리처럼 똑같은 피조물과 같은 똑같은 모습, 죄의 모습, 죄의 몸된 모습 똑같이 내려온 것은 죄인의 형상으로 왔다라는 걸 말하죠. 로마스 8정에 정확하게 여기에 엄청난 비밀이 들어가 있어요.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가 제사장이 양에게 안수할 때 거기에 내가 내 게 싹 다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하고 똑같은 모습으로 죄의 모습으로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왔다라는 것은 내 죄의 모습과 나의 가난한 모습, 나의 모든 분리에 대한 저주받은 모습을 그대로 싹 다 똑같이 가지고 왔다라는 거죠. 그게 죽어버리는 거죠. 그럼 끝나는 거예요. 그걸 말해요. 그래서 갈라디아 3장 13조를 한번 보시죠. 에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데사 율법의 저주에서 송냥하셨다고 그러죠. 그래서 나무 아래 있는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들 그러니까 그 나무는 십자가를 말하고요.
십자가에서 이 저주를 다 싹 가져간 여기에 그러니까 가나안 죄의 저주 저주의 증사 의제 했던 거 기억나죠? 탐욕과 두려움과 시기질2Y런 것들이 저주로 말미암아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부정성들이잖아요. 이런것들을 싹 다 저주도 다 가져갔다고요. 그 몸에 저주받은 모습 그대로 왔으니 가난한 그대로 오셨고 제 모습 그대로 오셨고 저주받은 그대로 오셔가지고, 저주를 받았으니 죽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십자가가 죽은 거예요. 완전히 다 가지고 가신 거죠. 이 예수께서 누굴 위하여 나를 위하여 여기도 보면 나를 부회하신 자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누굴 위하여?
나를 위하여 이 저주를 나를 위하여 저주를 받았다. 그렇죠? 그래서 율법의 저주의 속려 율법은 이걸 지키지 않으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 저주를 받아 죽는다. 그게 율법이잖아요. 그래서 한 가지 율법에 인해서 저주를 받았죠. 심판을 받아서 저주를 받았잖아요. 그리고 그 저주를 담당했다라는 거죠. 그러면 이제 완전한 자유죠. 그래서 그리스도의 가난함은 단순한 경제적인 결핍을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이 인간 바로 나. 그렇죠? 이 인간의 영적인 모든 파산 상태를 다 짊어진 거예요. 짊어지고 죽은 거죠. 죽을 때 그때 안수했잖아.
우리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우리 세상 죄가 거기 싹 다 들어간 거죠. 우리의 이거 가나? 저주 제모 다 넣으세요. 여기다가 다 넣으시면 돼. 이걸 싹 다 하고 십자가에 죽은데 그 죽음은 제사장도 동물에게 안수하면 제사장도 죽었다 라는 표시잖아요. 안수한 우리도 죽은 거예요. 세상 죄.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었기 때문에 그때 나도 죽은 거야. 나의 가난도 나의 저주의 모든 정상도 이 죄를 쉬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이 모든 것까지도 다 거기에 탐욕, 두려움 이런 것 전부 다 죽은 거예요. 그래서 육체와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겠죠.
세상도 다 전부 다 저주받은 세상도 그때 다 못 박힌 거예요. 그러면 이제 부활하잖아요. 그런 뜻이죠.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하면 하늘의 상속자가 됐어요. 그게 어디에? 로마스 8장 17절 가난의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욕케 한 그 정확한 내용이 로마스 8장 17절에 가서 볼까요?
16절에 성령이 치니 우리로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가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성령이 증가하고 성령이 인치고 성령이 보증한다고 그랬죠. 자녀인 것을 증가하는데 어떤 자녀냐고 보세요. 자녀이면 또한 후사, 후사는 상속자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걸 상속할 수 있는 상속자라고요. 그런데 상속자인데 어떤 상속자인가 보세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예요. 왜? 하나님 그리스도도 아들이잖아요. 우리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바로 첫 번째 상속자인 거죠. 이건 그냥 보통 일이 아니죠. 상속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것의 상속자예요.
이 상속은 어떤 건가요? 뭘 상속했죠? 에베소스 1장에 했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그걸 완전히 상속한 거예요. 우리가. 그러니까 공동상속자, 예수님과 예수님과 공동상속자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부여 신자로 가난하게 나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면 가난한 나로 부역해야 하는데 이 부여가 어떤 건지 아시겠죠? 그렇죠? 자 어쨌든 뒤에 가서 더 상세하게 보도록 하고 어쨌든 예수님이 가난해지심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얻은 부여함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권세예요. 정확하게 우리 부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권세예요. 이게 이제 글로 써서 2장 9절에서 10절 나오죠. 그렇죠?
몸을 잇고 내려오셔서 모든 것을 다 그 안에 육체로 거하고 있다고 그랬죠. 하나님의 모든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그 안에서 육체로 거하고 있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해졌으니까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게 이거예요. 부여한 자예요. 그게 우리가 지난 시간에 했던 에베소스 2장 6절의 하늘에 안치운 자. 그렇죠? 정확하게 기억나요? 내가 하나님과 아버지와 하나 된 것 같이 그게 엄청난 거라고 그랬죠. 너희도 하나가 되는 그 모습은 그냥 대충 그런 게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상속자가 되는 권세인데 이 상속 자가 되는 권세는 만물의 주인이신 아버지잖아요. 그걸 상속받는 거죠. 아들의 자격으로 이제 상속받아서 그걸 누리는 거예요. 안 기뻐요. 엄청 기뻐야 되는 건데 예수님처럼 상속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주인이고 나는 상속받아서 같이 관리하면서 다스리는 사람이죠. 아버지 다 주인이 아버지인데 내가 좀 쓰게 안 주겠어요. 여러분 애들한테 주잖아. 못된 짓 하면 일부러 딱 맞고 안 주기도 하죠. 그러긴 하지만 어쨌든 아들은 아들이거든요.
이건 폐할 수가 없어요. 이미. 여기서 물질로부터 자유함에 이르는 성경적인 원리를 도출해내야 되는데 이 구절을 통해서 도출할 수 있는 경제적인 원리는 이거예요.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될 부분이 뭔가 하면 거룩한 교환이 이루어졌는데 소유에서 가치가 이제 바뀌었어요. 뭘로? 관리로 관계 이렇게 이제 원리가 전환됐어요. 옛날에는 소유하려고 이 땅에서 발악을 했잖아요. 그런데 소유가 됩니까?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다고 그랬어요. 안 잡혀요.
그걸 잡을 수 없도록 존재가 저주를 받았잖아요. 그렇죠? 그게 안 되도록 하나님이 정해놨는데 우리는 그걸 잡으려고 애쓰니까 수고가 슬픔이고 헛수고죠. 고통과 괴로움이고 무거운 짐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 그거 아니죠. 이제는 소유가 가치였는데 이제는 관계가 가치예요.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로 변한 거예요. 이건 이게 이루어진 거라고요. 이건 이제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가치가 없는 거라고. 이쪽으로 가치가 이동한 거라고요.
이거는 우리가 부여에 대해서 정의를 새롭게 해야 되는 되게 중요한 부분 그래서 성경적인 부여함은 도대체 이 부여함은 성경적인 부여함은 뭐냐 그러면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고 누구와 연결되어 있느냐 이거예요. 대기업 그룹 회장의 아들과 그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과의 차이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거 아래에서 일하려니까 데모해서 몇 억 내놔라 이렇게 하지만 아들도 데모합니까? 아들은 가만히 있으면 네 게 내 거잖아. 내 게 내 거고, 그거 많이 했죠. 만물이 다 내 것이리. 출혈기 19장. 그렇죠?
집에 있는 탕자에게 아버지가 뭐라고 그러던데 내 것이 다 니끼다 그랬잖아요. 바로 그 관계 안으로 우리가 들어간 거죠. 그러니까 이 부유함에 대해서 가치의 재정립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는.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이건 안 된다고. 이거는 이걸 옛날로 돌아가서 이걸 여기에 가치를 두고 살면은 수고와 슬픔을 벗어날 수 없. 이게 저주의 증상이잖아요. 소유하고 움켜잡으려고 하는 것은 공허로 인한 탐심을 채우려는 거였잖아요. 그 저주의 증상이죠. 그런데 그게 저주를 지금 다 십자가에서 싹 다 가져갔죠.
그런데 우리는 더 이상 그 저주의 증상 안에 헤매면 그 주류의 증상으로 나타난 게 이 소유하려는 욕구잖아요. 그리고 이거 없어졌다고 그런데 뭔가 계속 움켜잡으려면 어색해야 돼. 이제 왠지 어색하고 왠지 막 그렇게 하려고 하면 머리가 띵하게 아프고 온몸이 막 이렇게 가슴도 찢어지는 것 같고, 설사도 나오고 이렇게 해야 돼. 온몸이 거부하기 때문에. 그런 경험 안 해봤어요? 한 번쯤 해보면 좋은데 이게 이건 이제 우리 게 아니라고 사실은 아니 다 내 것인데 뭘 또 소유하려고 그래요? 자기 것도 또 소유해요. 자기 건 그냥 누리는 거잖아. 우리는 그런 사람으로 바뀐 거예요.
그래서 관계 대기업 회장 아들이라고 우리는 대기업 회장이 직접 경영에 참여합니까? 잘 안 하거든요. 보고나 봤지? 오늘 내가 이만큼 썼습니다. 알겠다. 이렇게 하는 거지. 직접 그거 언제 다 관여해요? 안 해봐서 모르겠어요. 님의 아들들이 쫙 깔려 있잖아요. 아시겠어요? 그 아들들이 만물을 소유하고 다스리는 거예요. 그런데 옛날에 소유의 개념으로 아직도 예술인을 믿고 있다고 하니까 이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부야함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돼요.
얼마나 가졌냐가 아니고 내가 누구와 연결돼 있느냐 이거를 그러니까 누가 연결돼 있어? 만물의 주인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무효자예요. 그런데 난 맨날 부족해요. 맨날 부족해? 안 부족해? 여러분들 내가 보니까 안 부족하다고 안 부족해. 안 부족해. 부족한 게 아니라 그 부가 그냥 안 흘러가고 이렇게 꽉 쌓여 있어. 그냥 순환이 안 되고 있을 뿐이야. 그런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맞아요. 정확하게 법적으로.
그래서 10편, 23편 1절 예호하는 나의 목 자신이 내가 일생에 부족하리로다. 그게 아버지 목자잖아요. 그런데 그거 23편은 여호 아닌 나의 목자신이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러고 나갈 때는 또 안 그러고 그러죠. 맨날 낑깅대죠. 이러면서 이게 뭐가 잘못됐을까요? 도대체 그러니까 내가 누구인지 몰랐던 거예요. 대기업의 회장 아들이면서 평사원인 줄로만 알고 살았던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에베소스 1장에 성령과 능력이 기름부터 부어주셔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니까 맨 처음 사도 마을이 뭘 알게 해달라.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몰랐던 거예요. 우리는 나도 몰랐던 거예요. 하나님을 알아야 나를 알거든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는 나를 알 수가 없어요. 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혜와 계세영이면서 먼저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다 된다라는 걸 말하고 있고 하나님이 아는 것은 영생의 관계 안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이게 영생의 관계잖아요. 그건 모르고 우리는 하나님을 그냥 문자로만 알면서 주여주여. 하나님 하나님 하긴 했는데 몰랐던 거예요. 사실은. 그냥 문자로만 지식적으로 조금 알고 있었던 거예요.
성경에 나와 있는 지식 정도로 이 깊은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이런 상속자의 관계 죽어서나 하는 줄 알았죠. 그래서 이 땅에서 못 취하니까 죽어서 나는 몇 층짜리 몇 층짜리 이런 걸 불태우고 있잖아요. 너는 1층도 안 돼. 그럼 뭐해? 거기 와서 5층짜리 집 관리하려면 얼마나 힘든데 왜 그 짓을 해? 거기 와서도 하인을 두고 살아야지. 어떤가요? 물질적인 결핍이 나의 가치 하락이 이제는 아니에요. 소유의 부족함. 소유의 넘침이 나의 가치가 내려가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고. 이미 그건 끝났어요. 끝났다니까요. 그게 매여 있는 건 아직도 이 저주에 알아서 허덕이고 있는 거예요.
저주를 이미 다 가져갔는데도 우리에게 임했던 그 저주가 여기에 속하잖아요. 이미 다 가져가고 없어요. 그건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분리되는 순간에 우리에게 심판과 형벌이었죠. 그게 그거였어. 그런데 그걸 예수님이 다 담당하고 끝냈어요. 그러면 이게 끝난 거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방식은 소유하는 방식이 아닌 거죠. 이제는 에덴에 소유 안 했잖아요. 아 그런데 이게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영 이게 안 되죠. 그걸 되게 해야 되는 거죠. 되게 하기 위해서 보증인이 와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안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돼야 되는 거예요. 내가 가진 게 별로 없다.
해서 기죽을 필요 있을까요? 나는 2천만 원짜리야 이러면 되겠어요. 제가 그러면 안 된다라는 거죠. 그런가요? 이걸 깨닫는 게 이제 자유함의 시작이에요.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아시겠어요? 이게 시작이야. 그다음에 부여함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청지기 정신이 이제 우리에게 박혀야 돼요. 어제도 잠깐 말씀을 드렸죠. 청지기는 통로예요. 통로. 흐르는 통로예요. 그러니까 이제 청지기를 제가 뭐라고 했던지 기억나요?
청직이 오이코 하나님이 하나님의 집 이 땅 우주 전부를 다스리는 관리하는 것을 오이코노미아 경륜이라고 그랬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 자신이 창조한 피조개 전부가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뜻이에요. 그게 오이코노미아라는 뜻이고 그러면 그걸 다스리는 내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오이코 노모스 이렇게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 따로 오이코스가 피조물이죠. 만물 그렇죠. 연계까지 전부 다 전부 다가 이 오이코스예요.
그거를 처음 시작해서 끝까지 모든 걸 철저하게 계획해서 다 관리하는 분이 하나님이고 완전히 그런데 대리인을 하나 뒀어요. 대리인은 혼자 하기가 힘들어서 심심해서 혼자 하면 좀 심심하잖아요. 그렇죠? 이건 심심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정체성이에요. 우리를 어떻게 대우하느냐 그걸 말해요. 엄청난 거예요. 우리를 자신이 창조해낸 이 모든 피족의 집이죠.
그 집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세웠다고 우리를 이 총총 관리하는 창조해서 이 모든 것을 계획하는 분 계획 관리하는 분이 하나님이고 관리 혼자 하면 심심하니까 같이 하자. 나는 너를 그런 사람으로 세웠다. 이건 보통이 아니죠. 동역이잖아요. 동역.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이걸 오이코스를 우리가 물려받아서 함께 관리하자. 함께 관리하는데 어떻게 관리할까요? 하나님의 경륜대로 하겠죠. 모든 것을 하나님이 있게 하고 없게 하고 만물이 돌아가게 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잖아요. 우리는 거기에 이를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거기 모든 기획관리를 우리에게 알게 해서 요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그게 에대네. 제사장 아담이었어요. 우리에게 이걸 다시 회복시켜준 거죠. 그래서 관리하는 그 관리 경제 하늘의 경제학이죠. 하늘의 경제학대로 경영하도록 우리를 오이코노모스로 세웠다. 관리자로 이건 보통이 아니죠. 대기업 회장이 있으면 내가 그 모든 것을 관리하도록 전무이사 전무이사보다 더 한 거죠. 부회장 정도면 될까요? 원하는 대로 다 하세요. 이미 다 줬어요.
이게 오이코노모스예요. 이 단어가 왜 괜히 나온 단어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집을 경영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계획서가 바로 이거 암에 어렵죠. 그래서 예수님이 와서 산상수원에 보니까 계획 관리하는 방법이 전혀 다르지. 옛날에는 그냥 끌어모아서 살고 그렇게 했는데 예수님이 오니까 가난한 자가 복이래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은 가난한 자고 애통하는 자고 이런다고 그랬죠. 전혀 다르죠. 옛날에 그게 문자적으로 옛날에 그랬던 것 같은데, 이거 이제 이걸로 왔어요. 우리가 완전히 바뀐 사람들이라니까요.
청지기에 대한 철저한 정신이 있어야 되겠죠.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다. 이제 하나님이 세우신 관리자다. 관리하는 데 아무 능력도 없이 관리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 부여함이 우리에게 온 거죠. 신성의 모든 충만한 능력이 있어야 이걸 관리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과 소통을 해야 관리를 하든지 할 거 아니에요. 오늘 저거 해라 저거 해라 이런 거. 그렇죠? 그게 바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지. 땅개미처럼 일하면서 오늘 요만큼 소유하고 내일 요만큼 더 소유하고 그래서 이렇게 하다가 훅 날려버리고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아멘 그러니까 실패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아멘 그것만으로도 여러분 땡 잡지 않았어요? 몰랐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여환자로 내려와서 자신은 하나님의 집을 관리하는 사람의 역할을 철저하게 100% 하고 가셨죠. 예수님은 부여를 소유하고 있었던가요? 아니었던가요? 쌓아둔 게 아니라 있는 걸 다 내줘버렸죠. 다 내줘버렸죠. 그게 바로 청지기 정신이에요. 청교도정신이 아니고 그 다 내어줘 버리므로 어떻게 했어요. 나를 살린 거죠. 이 가난한 나를 부여한 자로 만들었죠. 그러면 이제 물질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사명의 도구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는 도구라고 우리는 통로 역할이라는 거죠.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흘려보낼 때 하늘의 창고가 열리는 역설적인 풍요가 우리에게 임하는 거예요. 그때 예수님이 아무것도 안 가졌는데 다 가졌죠. 그렇게 살았잖아요. 주가 서시겠다. 하라. 우리도 가면 되겠죠. 제가 아파트가 없는데 이제 한번 가보려고 신축 아파트에 가서 주가 쓰시겠다. 하라 301동 10층 내놔라. 그러면 주가 그렇게 하라 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죠? 하라 하면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알아서 한번 해보겠다.
그러면 그건 내가 관리하는 거잖아.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해야 되는 사람이거든요. 그렇죠? 이해 가시죠? 그럼 내 몸뚱이도 내가 관리하면 안 되겠죠. 어떻게 해야 될까요? 주가 쓰시겠다. 그러면 아 이 본선이 안 될 것 같지 않아요. 왠지 그게 바로 마귀가 속이는 거예요. 마귀의 속임수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요. 이제 그걸 다 벗었잖아요.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면서 그거를 열어서 마음의 눈을 열어서 보여줘야 그게 보이는 거예요.
아 이게 잘못됐구나 이게 속았구나 그래서 내가 땅에서 땅개미처럼 살다가 빙빙 돌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서 속아서 죽어가고 있구나 이게 보이는데 그게 지혜와 계시의 영역인 거고, 마음의 눈이 열어져서 그 풍성함, 놀라움, 우리를 위해서 예배한 이 모든 것, 소유, 상속 이런 거 그다음에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우리의 위치 이런 것들이 싹 가려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이 뭔지도 모르게 다 갈아버렸잖아요. 그렇죠? 그 첫 번째 하나님을 알게 하고 두 번째 그 하나님의 우리를 위하여 예배한 그 풍성한 것 그다음에 소망의 풍성함, 하나님의 소망 이런 것들이 싹 다 가려져 있어서 안 보였던 거예요. 그래서 그게 열려 보여야 이게 전부 다 아 맞구나 이게 되는데 여태까지 그게 가려 있었던 거예요. 뭐에 가려 있었을까요?
마귀신학에 가려 있었던 거예요. 그게 바로 번영신학복타령이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우리 인생을 왜곡했는지 아시겠어요? 그 번양 신학을 통해서 바라보며 와서 내 것으로 만드는 거죠. 전부 다 얼마나 엄청나게 왜곡됐는지 아시겠어요? 저도 한때 그게 왜곡됐어요. 속아서. 인생이 완전히 속아버렸다니까요. 지금이라도 그걸 깨달은 게 얼마나 아찔한지 진짜 아찔하더라고. 특 하면 인생을 날릴 뻔했다. 그래서 제가 반은 건졌어요. 반은 날리고 반은 건졌다니까요. 얼마나 건진 것 같아요. 80% 건져 80% 아메 거기도 반 이상 건졌네요.
오래 살 거니까 거기도 80%는 건진 것 같아. 이걸 속았더라는 거죠. 그래서 마귀가 속이는 걸 미혹한다라고 그래서 눈을 가리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지혜와 계시에 여기면서 눈을 열어봐라. 그런 이유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물질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고 우리가 받은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도구예요.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살 때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정해놓은 거죠. 그렇죠? 이게 역설이에요.
청지기는 소유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청지기에게 모든 걸 다 줬다고 그러거든요. 아들이라고. 그러면서 이게 역설 같은데, 실제로 일어나고 있죠. 예수님은 다 사용할 수 있었잖아요. 사도마을도 다 가능했잖아요. 제자들도 다 가능했거든요. 이 땅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집행하고 다스릴 수 있는 때가 바로 물질이 소유가 아니고 관리의 사명의 도구라는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흘려보낼 것. 때가 바로 이 위치 안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이해 가시죠? 그게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잖아요. 그러면 그 관계 안에 있는 거죠. 그 관계 안에 있기 때문에 사실 하는 거죠. 동전의양면과 같다.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부여함으로 부여한 자이겠죠? 그런가요? 예수님이 만물을 소유하고 집행하고 계시는데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우리가 공동소유자로서 그래서 사도 마울은 거기서 빌리포스 사상 12절, 13절 전수받은 거예요. 지난 시간에 한 것처럼. 그래서 빛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밀을 전수받은 거죠. 이게 그 비밀이에요. 우리도 다 전수받았죠. 그래서 내가 아무리 빛을 내도 끄떡도 안 하는 거예요. 아무리 풍부해도 교만하지 않고 왜? 내 게 아니니까.
여기 그러기 때문에 이 물질에 대해서 완전한 자유를 이제 누려요 바로 그럴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관리가 이루어져서 나도 하나님의 소유, 내가 가진 것도 하나님의 소유 여기에 하나님이 원한다면, 그것도 전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라 라고 할 때 내가 순종해서 그대로 흘려보낼 때 내 자신의 삶도 시간도 가진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도 그렇게 흘러 나를 통해서 흘러갈 때 그때가 바로 일체의 비결을 안 돼요. 그게 사도바울은 그걸 하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비천해도 사도바울은 비천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도바울을 통해서 뭔가를 흘려보내서 하나님은 이루셨거든요.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거는 다 가진 자였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왜요?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으니까.
그럼 가진 자가 쓸 수 있는 거잖아요. 가진 자 안에 있으니까 그걸 쓰는 거예요. 안 가졌지만 가진 것. 비할 바가 없죠. 그래서 이 원리가 그거예요. 그리스도의 은혜가 바로 이 팔장군이 은혜라는 거예요. 은혜로 우리에게 이미 줬다 라는 거예요. 선물 줬다 라는 거예요. 이걸 깊이 깨달으면 물질의 유무와 상관없이 내면에 이제 부여 충만함을 이미 가지고 있는 거예요. 누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아요. 더 이상 왜 환경을 오이코노미아 하나님이 하고 있잖아요. 그 안에서 오이코노모스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지배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기에 있을 때는 지배당했죠.
우리가 환경에 환경에 조금만 안 좋으면 내가 흔들리고 거기에 요동하고 거기에 묶이고 매몰되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여기 이쪽으로 오면 이제 이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오이코노미아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모든 환경을 다스리는 자잖아요. 관리하는 자. 그리고 여기 메일 수가 없죠. 우리는 이미 이쪽으로 이사 온 사람들이라고요. 그런 사람들이에요. 내가 누군지 정확하게 아셔야 돼요. 그렇고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사도바우는 이 비밀을 전수받은 거예요. 성령리 다메스에게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놀랍죠. 그래서 이 소유하고 가지려는 탐심정욕 이것으로부터 그게 우상숭배라고 그랬잖아요.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할 수 있었던 거죠.
움켜쥐고 인색하고 통장 잔고 때문에 마음이 왔다 갔다 휘둘리고 이거 만문을 섬기고 있다는 증거라고 그랬죠. 거기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거예요. 존재가 변했다니까요. 대기업 사원에서 대기업 회장 아들로 변했다니까요. 별로 안 기뻐해요. 이게 실감이 안 나는 거죠. 우리가 물질에 매이는 이유가 뭐라고 그랬어요? 그것이 내 생명과 안전과 미래와 행복과 기쁨을 보장해 줄 수 있다는 망상 때문에 말 그대로 망상이에요. 그건 절대로 나를 보장 못해요. 여러분 가진 물질이 여러분을 건강하게 해주던가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라는 말은 다 알죠. 왠만한 성경에 안 나와도 속담에 다 있잖아요. 그런데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죠. 웃기세요. 여러분 그게 바로 속임수예요. 막이 저주의 증상이 하나님이 거기에 묶여놨다고 그랬잖아요. 나를 떠난 자는 절대로 존재가 아니다. 거기서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발버둥쳐도 소용없어요. 일생에 발버둥쳐도 안 된다고. 전도서가 그거잖아요. 그렇죠? 하나님이 내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시는가요? 다음에 거기에다가 물질이 좀 많으면 좋겠죠. 할렐루야.
그런데 성경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아무도 가진 사람이 없어. 신기하죠. 솔로몬은 실패한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쓴 거예요. 틀림없이. 왜냐하면, 자기가 이것도 일부러 다 해봤다고 그랬잖아요. 처첩도 그네로 보고 수레도 빠져보고 건물도 다 지어보고 모든 걸 다 지혜롭게 해보고 해봐도 안 되더라, 소용없더라, 헛수고더라, 수고더라, 슬픔이더라, 고통과 괴로움이더라, 번민이더라. 알고 나서 마지막에 결론은 여화를 경외하는 게 인간의 본분이다. 이게 이거거든요. 경외하는 것은 100% 순종하는 자잖아요. 여기 안에 있는 걸 말해요. 이게 인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라고 그렇게 알은 거죠. 하나님이 그걸 경험하게 둔 거예요. 그렇게 하고 아니다라는 걸 밝혀놨잖아요.
우리는 전도서 읽으면 다 알아야 되는 거예요. 더 이상 그걸 굳이 누려보고 아니다라고 하고 싶겠지만, 그건 허용이 안 돼 있어요. 이제. 지금은 성령 안에서 있잖아. 허용이 안 돼요. 그건 보증인이 와 있기 때문에 허용이 안 된다고. 그래도 굳이 내가 한번 해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또 그건 곤란합니다. 그러면 물질에 메이는 이유는 그것이 내 생명과 안전과 행복 기쁨을 보장한다고 믿는 환상 때문이에요. 그러고 그게 저주의 증상이에요. 그렇죠? 그거 믿나요? 이제 저주의 증상이라는 거. 그걸 이미 이제 다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다 가져갔기 때문에 우리는 이걸 상속한 자 이렇게 살 수가 없어요.
우리는 이렇게 하면 수거 슬픔이 계속 가중되게 해놨다니까요. 진짜로 그걸 관리하고 움켜쥐고 하려면 노심초사 마음이 얼마나 갈라져야 돼요? 산산이 갈라져야 되잖아요. 얼마나 힘들어요. 그렇죠? 궁중 나는 새가 막 농사지으려고 애쓰던가요? 그것과 똑같죠? 우리와 공중 나는 새가 다를 바 있나요? 피조물 안에서 우리에게 준 원리는 이거거든요. 저주받았을 때는 공중 나는 새가 아니고 땅에 속한 개미처럼 일을 해야 그게 저주 왜 땀 흘려? 일을 하라고 그게 저주거든요. 땀 흘려 일을 하면서 가시 엉근퀴에 찔리면서 살라.
그거 이제 다 끝났다고 다 가져갔다고 그런데도 왜 자꾸 그렇게 그게 속임수의 마귀의 속임수라고 그게 그래서 많이 가진 것을 막 이렇게 자랑하고 싶고 막 이렇게 하고 싶은 건 아직도 저주에 허덕이고 있는 중이에요. 왜냐하면, 공허를 못 채우고 있다는 증거죠. 그게 하나님으로 이 관계 안으로 들어가서 충만해주면 그게 가치가 없어지는 거예요. 가치가 이동했잖아요. 가치의 전환이라고요. 관계 안으로 가치가 전환된 거예요. 이건 더 이상 가치가. 그래서 11장에 뒤에 가면은 40 몇 장? 세상이 감당치 못하더라. 세상의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는 이 안으로 이동한 거예요. 여기 안에 있으면 대기업 회장이 돈 걱정하겠어요?
그러니까 이 땅개미가 와서 막 나 오늘 이거 샀다 이러면 자랑하는 거 보면 대기업 회장님 보면 어떻겠어요? 같잖게 여기는 거죠. 우리도 그렇게 됐죠. 이제 같잖지 않아요? 하찮지 않아요? 여러분 옆에서 막 났다고 많이 가잖아도 뽐내는 거 보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가소로운 것들 이렇게 해야 맞는데 침 질질 흘리죠? 부글부글 끓어요. 그러니까 꽉 차 있으면 안 끓거든. 이게 비어 있으면 막 끓어오르잖아. 이게 그런 거예요. 그게 저주의 저주. 못 사는 거예요. 그럼 많이 가진 사람은 부글부글 안 끓을 것 같아요. 그래도 비어있는 부분이 많이 있거든요. 공허. 그래서 탐욕은 끝이 없는 거예요. 이야 진짜 그렇더라고. 끝도 없어요.
그건 그래서 죽는 거예요. 그게 바로 저주의 증상이에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가치가 이동됐어요. 존재 자체가 이동됐어요. 바뀌어서. 이걸 소유의 가치가 아니고 이제 관리하는 자라니까요.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머리가 하나님이고 맨날 하나님과 함께 관련 하나님의 지령에 따라서 손이 움직이잖아요. 머리의 지령에 따라서 발이 가잖아요. 이런 사람이에요. 우리가. 그런데도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다. 이건 좀 심각하죠. 그러죠. 그래서 성경에 나트륨 6장 33절에 그 뒤로 내려가면 어제 했던 6장 24절에서 공중단은 새도 나오고 들풀도 나오고 나오다가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게 이거예요. 이거. 그 나라와의는 이거죠. 그 나라 안에 들어가는 거죠. 다스림 안에 다스림이 하나님이 하나님 나는 머리와 몸의 관계를 유지하는 관계 유지죠. 그 다스림 바실레아야 하나님이 다스리는 게 천국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이 다스리는 대리로 해서 다스리면 그게 천국이 이루어지는 거죠. 천국은 기쁨과 편광인데 성령 안에서 그래서 성령이 인도와 신을 받아 살아가면 편광과 기쁨 안시 거기 안에 다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소유하고 내가 아둥바둥 가지고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그게 없는 거예요. 저주의 증상이니까.
가시에 없는 키가 있고 수고가 슬픈 땀을 내면 있으나 멋 누리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그래서 먼저 그 나라와 애를 구하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랬죠. 염려합니까? 여러분 입을 게 너무 많아서 염려하죠? 오늘 이걸 입어야 뽐내나 저걸 입어야 뽐내나 너무 많아. 하나만 있으면 세상 편할 텐데 안 입고 다니면 더 편하겠는데 입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할 수 없이 입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먼저 그 나라와 을을 구할 수 있는 담대함이 내게 생기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특권이에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보기를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더해서 오늘 이 8장 9절은 우리는 이미 하늘의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정체성을 주는 거예요. 이게 내 자신을 좀 무시하지 마세요. 이제 아메 내가 누구인지 무시 좀 하지 마시라고요. 예수님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자신을 죽여가면서까지 위치를 옮겨놨는데 난 이거 싫다고 여기 가서 내가 개미처럼 살겠다고 그렇게 하시냐고 자꾸 아메. 그래서 이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우리는 더 이상 물질의 노예가 안 돼요. 진짜 안 됩니다. 여러분 배짱 튕긴다니까요. 내일이면 또 내일 하나님이 또 내일을 내일은 내일이 알아서 한다. 내가 아니고 내일 하루는 하나님이 하지. 내가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내일이 오게 할 수 있어요? 나한테.
그럼 내일이 있다라는 것은 그 경영 관리가 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안에 있으면은 당연히 그거 그냥 묻어가는 거잖아요. 아닌가요? 그때 뭐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내일이 안 오나요? 그렇게 마치 내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속았어. 이 노예가 더 이상 안 돼요. 그러면 다음에 어떻게 되는 물질을 다스리고 나누고 하는 진짜 부효한 자가 되고 그런 삶을 우리가 살게 되는 거죠. 멋있지 않아요. 그 원리를 하나 더 발견해 보도록 하죠. 여기에 잘 보면 여기에 표시해 놨어요. 앞에 부여한 자 여기다가 표시를 해놓으세요. 앞에 부여한 자 그리고 뒤에 내가 부여한 자 거기도 표시를 해놓고, 연결을 해 놓으세요. 이콜로 해 놓으세요.
무슨 말인지 알죠? 이거 이거 하라고 이거 두 개 이게 두 개 연결하라고. 아멘 이건 그냥 발견되어지는 게 아니에요. 이거 두 개를 딱 연결해 놓으라. 그리고 다시 보세요. 우리가 어떤 사람이라고요? 그럼 모르는 거야? 아직 그럼 모르는 거야? 실패했어. 내가 그럼 모르는 거야. 예수님과 똑같은 부여자 이걸 말하는 거예요.
우리를 부효하게 했는데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병신학의 부효가 아니고 부효하신 자가 내려와서 가난하나를 부효하게 한 것은 예수님과 똑같은 부효를 소유한 자를 말해요. 이렇게 우리를 만드셨다고요. 이게 얼마나 엄청난지 아시겠어요? 읽을 때 부여하신 자로 가난한 나로 예수님과 똑같이 이렇게 부여한 자로 만들었대요. 이렇게 읽어야 돼요. 이거는 천지차예요. 여러분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라니까요. 우리가 신성에 충만한 부유함, 만물을 소유한 부유함. 그런데 예수님이 언제 만물을 다 들고 다니던가요? 만물을 이고 다니냐고요. 예수님이 그냥 입으로 다 해결하지 아메 여러분도 입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주가 쓰시겠다. 니끼 내 거라 하더라. 이렇게 하면 되는 거죠. 아니면 그런 건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 니끼 내끼다. 그다음에 반전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죠? 그다음에 에베소스 2상 6절에 보면 하늘에 안 치운 자인 예수님처럼 안 치운 자가 맞죠? 정확하게 놀라운 일이에요.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 안에 있죠. 그러면 예수님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형상에까지 자라간다고 그랬죠. 그걸 위해서 우리를 불렀고 예수님과 똑같이 카피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고 로마스 8장 29절 우리는 예수님과 똑같은 모습인 거예요.
지금 외모가 아니라 예수님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그 모든 것이 나와 똑같은 상태라고 골로세스 2장 구절 10절을 봤을 때도 그렇고 그런가요? 이 성경 구절을 4개, 5개, 6개를 다 연결해서 가지고 계세요. 엄청 중요한 내용. 제가 아침에 묵상을 며칠 동안 이걸 계속 묵상을 했어요. 계속 주시고. 예수님처럼 부활연합해서 천상에 앉아 있는 게 낫죠. 그리고 앉아있는데, 예수님처럼 부환자죠. 지금 그런가요? 그러면 지금 이 땅에 나도 예수님처럼 와 있는 거죠. 할렐루야 반전이 이제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만들어진 자가 아니고 부유한 자로 예수님처럼 똑같이 우리도 이 땅에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와 있는 거죠. 그럼 예수님이 이 땅에 가난한 자로 와 있으면서 어떻게 살았어요?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로 와서 살긴 살았는데 부유한 자로 살았죠. 그 삶이 어떻던가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가난한 자에게 줘서 부환자로 만든 삶이었죠. 우리는 그런 삶을 사는 자예요. 그게 바로 청직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그 모든 자원을 가지고 누군가를 살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다 흘려보냈죠. 마지막에 자기 몸까지. 십자가에서 다 흘려보냈죠. 그래서 살렸죠. 다 살렸죠.
그게 바로 우리예요. 우리는 그래서 움켜잡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 여기에는 물질적인 가난까지도 다 포함이 되어 있어요. 사실은 그게 영적인 저주가 그것까지 이어져서 나타나잖아요. 그것까지 다 포함되어 있어.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그걸 흘려보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셔서 가난한 나에게 흘려보내서 부안자로 자신하고 똑같이 만들어 놨잖아요. 우리도 이미 그렇게 부안자가 되어서 우편에 앉아있는 사람이죠. 존재죠. 그런데 이 땅에 지금 와 있잖아요. 예수님처럼 똑같죠. 너무 기가 막히죠. 우리에게 뭘 기대하겠어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기대하겠죠.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다 부은 거예요.
갔다가 와서 다 부어서 그렇게 사는 걸 통해서 너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부한자다 라는 걸 다 알게 하라는 거예요. 그게 부여한 자야. 우리는 그냥 물질에 막 매여서 이러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지금 가진 거하고 상관없어요. 전혀 상관없어요. 대부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그렇게 살아요. 가능성이 제일 많죠. 그렇죠? 가능성이 시골에 가면 집도 있잖아. 거긴 안 돼. 힘들어.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 된 것처럼 우리도 직업 이 땅에서 예수님 3일 제한하님과 또 하나 된 그 모습은 다르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와 계셨던 그하고 똑같은 성육신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 거요. 우리에게 다 줬잖아요.
그렇죠? 맞나요? 이건 엄청난 거예요. 여러분. 그리고 그리고 거기에다가 하나 더 엎어야 될 게 뭔가 하면 인치고 보증까지 했어요. 예수님도 인치고 보증을 했잖아요. 성령과 능력을 기름부터 부으니까 그때부터 나가서 말하면 다 돼버렸잖아요. 아닌가요? 능력으로 에베소스 1장을 보니까 인치고 보정해서 능력으로 네 가지를 가지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고 그랬죠. 예수님을 그렇게 올려서 부활케 하시고 다시 만물을 다 정복하고 소유하고 그 소유주가 돼서 우리에게 물려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 일을 이루려고 내 안에 오셔서 능력으로 역사하게 그렇죠.
힘과 위력과 역사함과 능력으로 우리 안에 지금 똑같이 하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사람이죠. 내가. 그래서 바로 성육신한 신인류 정확하게 맞죠. 우리에게 자신을 부어넣었잖아요. 하나님과 내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이 우리도 똑같이 그 안에 있게 해서 완성품으로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만들었잖아요. 그럼 우리도 똑같이 지금 존재는 하늘에 있고 이 땅에 예수님처럼 이 땅에 와 있잖아요. 부한 자로서 우리가 가난하게 됐죠. 지금 가난하게 된 이유가 뭐라고요? 남편 가난한 남편 부하게 하려고요. 아멘 그럴 때 잘 들으세요. 비밀은 거기에 있어요.
그렇게 살 때 바로 이걸 우리가 누리는 거예요. 이 다스리고 소유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는 이걸 그때 누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때 다 누렸잖아요. 그때 우리가 누리는 거예요. 부의 법칙을. 아시겠어요? 그게 하늘의 경제학이에요. 하늘의 경제학을 이 땅에서 실현하는 방법이에요. 그게 만물이 아닌 것 같은데, 내 것 같고, 내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고, 없는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을 다 살리는 능력자인 거 이런 것들이 그때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 통로가 될 때 예수님처럼 이해하셔요? 그런데 과거에 저주받은 습관을 가지고 이걸 계속 움켜쥐려고 하면 그건 상관없는 거예요. 그 순간만은 상관이 없는 게 된다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그게 저주의 정상인데 하나님이 보정을 하겠어요. 성령이 보정하시겠냐고 안 하죠. 이해 가시나요?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 이미 하늘에 앉혀 있죠. 에베스이스 육적. 그런데 육신을 입고 이 땅에도 있죠. 야곱 이야기할 때 했잖아요. 하늘에 밝아서 안 보이니까. 내려가서 꼬라지 보고 올라오라고. 우리도 지금 우리 꼬라지 보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거라고 천사들이 뭐하는가? 보고 있을 거라고 저놈 딴짓하고 있어요. 주님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는 그런 사람이에요. 6을 잇고 있지만 성육신한 사람 똑같은 모습이에요. 그래서 더 이상 이 따위의 메인 자가 아니죠. 우리는 하나님께 메인 자예요. 완전히 만물 안에 사는 자가 아니고 만물 안에서 만물을 소유하고 다스리는 자예요. 우리가 우리가 그렇게 살 때 그 관계가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거죠.
그게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이죠.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행하도록 우리는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죠. 맞나요? 정확하게 하나님은 그걸 기대하는 거예요. 그렇게 예정되었고 우리의 운명이요. 아까 로마스 8장 29절 예수님과 똑 닮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왔다고. 맞나요? 그런데 그걸 우리는 거부할 수 없어요. 그게 경륜이라고요. 오이코노미아. 그 안에 우리가 있고 그래서 오이코노모스예요.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지어진 운명이고 그거 운명이 보통인가요? 그래서 그렇게 살 때 완전한 자유 예수님은 무엇에도 안 매였죠. 오직 아버지에게만 매여 있었죠. 우리에게도 그 일이 일어나요.
그게 진짜 진정한 제사장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이 땅에 부효자로 와 있어요. 예수님처럼 부효한데 이 땅에 가난한 자로 와 있어요.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은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로가 아니라 부효자로 살겠죠. 가난을 입은 부여자 겉모습. 그렇죠? 그런가요? 정확하게 나는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아셔야 돼요. 하나님의 경륜은 예수님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말씀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죠. 그래서 이 땅에 온 예수님이 하나님의 경륜이에요. 그런가요?
그래서 이 땅에 온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경륜을 온몸으로 연기하셨죠. 우리에게도 똑같이 예수님이 오셨죠. 우리도 이제 온몸으로 그걸 경륜을 보여줘야 할 사람들이죠. 우리도 성육신하는 하신 말씀과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말씀을 주셨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 그래서 죄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말씀이 통해서 나타나게 돼 있고 그 말씀이 진리일 때 우리를 통해서 역사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 완전한 자유함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는 게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의 영이 성령이 그래서 우리 안에 그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해지면은 그리스도가 충만해진 거고, 성령이 진리의 말씀에 기름을 부어서 보정해서 행하게 하는데 예수님처럼 살게 하죠. 그래서 질리의 성령이 오순절날 내려오니까 전부 다 그렇게 살죠. 제자들도 그렇게 살죠. 예술이. 성령과 능력이 충만하면 그렇게 살죠. 우리도 그렇게 사는 그것이 진짜 바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거 그렇게 살 때 우리는 가장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겠죠. 아닌가요?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게 바로 청지기예요. 청지기. 그냥 우리는 관리자 정도만 생각하는데 이 오이코노무스하고 오이코노미아를 생각해보면 엄청난 거예요.
이 만물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자예요. 만물 내가 어떻게 다스리겠어요? 머리가 있잖아요. 예수님이 머리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그래서 제자들이 가서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내가 좀 쓸게 하면 매맞지?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하니까 바로 되는 거잖아요. 우리도 주께서 저기 가서 쓴다고 그래라고 말을 듣고 가면 되는 거예요. 우린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러면 당나귀 소유하고 있어야 쓰는 거예요. 그거 어떻게 소유하고 맨날 다니냐고 그걸 저기 아프리카에 있는 땅을 어떻게 맨날 이고 다니냐고 거기 가서 써라 그러면 아멘 그걸 쓰면 내 거지 그게 그렇게 되는 거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라고요. 이해하시죠? 이건 존재의 놀라운 변화예요. 왜 그게 안 되느냐? 아직도 옛날의 가치가 나를 자꾸 속이는 거예요. 너 그거 없으면 죽는다. 이렇게 미래 보장 못 받는다. 이렇게. 그게 만몬이 우리를 쥐고 흔드는 거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속는 거예요. 이미 완성되어 있는데, 이게 안 됐으면 예수님도 안 됐어야 맞는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제자들도 안 돼야 맞는 거예요. 다 됐잖아요. 우리는 왜 안 돼요? 되고 있는 줄 많이 된 거예요. 많이. 그래서 오늘 이 8장 구조를 레베소스 1장과 연결해서 풀어보면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성형의 보정하심과 딱 연결해서 보면 물질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원리가 도출이 돼요. 그러지 않아요. 고린도수가 좀 전에 예수님과 예수님 우리를 위해서 가난해졌기 때문에 우리가 얻게 된 부여함의 결과를 말하죠. 이건 맞나요? 결과를 말하고 에베소스 1장은 그 부여함의 구체적인 실체를 먼저 말해요. 10절에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그거를 소유하는 게 부암의 실체예요. 아들이 되어서 그거를 함께 누리는 게 실체예요. 구체적인 실체죠. 그게. 그런데 그걸 누리도록 확정하는 것은 성령이죠. 그게 에베소스 1장인 거예요.
그래서 에베소스 1장과 오늘 이 8장 구조를 연결하면 물질로부터 완전한 자유함을 능력적인 원리가 그 속에 딱 들어가 있어요. 부여함의 실체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극을 말해요. 아들이 되는거였죠. 아들이 된 것 중에 아까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경륜이 거기에 비밀이 있는데, 1장 10절이었죠. 그런가요? 1장 10절 내용 하늘과 땅이 그리스도의 머리로 모든 것을 끌어모아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가 일어나는 거죠. 그걸 우리에게 훅 홀라당 넘겨 줬는데 우리의 힘으로 안 되니까.
성령이 인을 치고 보증해서 끝까지 그걸 우리가 이 땅에서 지금 행할 수 있게 하는 것 오이코노모스를 행할 수 있게 그게 바로 2절에서 3절로 가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 바로 우리죠. 그래서 그 충만이 우리 안에 있다. 이게 보증이죠. 그런가요? 그래서 에베스투스 1장에 보면 우리가 입양된 거 먼저 나오는 거예요. 아들로 입양된 거 아까 로마스 8장 17절에 입양된 거 입양되면 끝났나요? 아니 공동상속한 걸 말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 하늘의 부유함의 실체예요. 그게. 그런데 이 땅에서 누리려니 힘이 딸리잖아. 그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 능력에 따라서 우리가 그거를 행하는 거죠.
상속자가 되어서 그래서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사람들이요. 그게 우리의 가장 큰 부양이죠. 이해가시나요? 대기업 회장 아들이 된 그거라고요. 그러니까 아멘 그래서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우리를 구원했다고 그랬죠. 구속했다고. 그건 뭔가 하면 이것 때문에 진 빚. 죄의 빚. 그렇죠? 예수님이 청산 집작으로 피로 청산했기 때문에 탕감을 받아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적자 인생이 아닌 거예요. 분리의 제조에서 가난해서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된 거죠. 그게 부여한 거예요. 그게 실체예요. 그래서 그게 성명으로 보정이 되니까. 절대적인 안정감을 우리는 가지고 있죠.
완전한 미래에 대한 보증 그런가요? 돈의 보증 돈 위에 하나님 그게 내 보증인이요. 그래도 안되겠어요? 그래도 안되겠어요? 그러면 돼야죠. 그러면 우리가 매 순간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그게 보증이잖아요. 그러면 매 순간 이거를 맛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거죠.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그거 끌고 오라 한 거 지금도 나타나서 끌고 오라 할까요? 내 안에 계셔서 성령의 보증이니까. 성령을 통해서 감동을 해서 그거 해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끌고 오면 되는 거죠. 그거 내 건가요? 내 거지. 내 게 아닌데 내 거지. 끌고 오면 내 거잖아요.
그런 사람이 돼버린 거죠. 이해 가시나요? 그럼 없다고 걱정할 거 있겠어요?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예요. 그렇죠?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아요.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있으면 나눠주기 전에 있는 걸 믿어. 있는 걸 의지해서 이거 내일까지 써도 충분히 남고 1년 후에까지 충분하고 이렇게 딱딱 계획하에 하잖아요. 그렇게 내일이야. 해가 안 뜨면 어떡해. 내일 하늘이고 훅 불어버리면 어떡해. 그 보증이 안 되죠. 성령은 훅 부르면 불려가나요? 내 속에 있는데, 어떻게 불려가? 그대로 보증하는 거예요. 이렇게 사는 보증을 하는 게 성령님이라고 아시겠어요?
하늘과 땅에 하나 된 모든 질산에 딱 정렬된 그거를 보증해서 집행할 수 있도록 지금 내 안에 와 계신다고 어떨 때 내가 의지할 때, 성령님만을 의지할 때 그때 그 질서 안에 다 이루어진 것들을 집행하게 하죠. 그런가요? 나를 의지하면 이렇게 되죠. 그런 게 그게 저주의 증상이라고요. 너무 쉽지 않아요? 너무 쉽죠? 땡 잡은 거야. 땡 잡은 거야. 오늘 집에 가면 큰소리 치세요. 다 내 거야. 아 내 거야. 스님이 지금 명령하면 바로 즉시 시행된다. 까불지 마. 시행을 왜 안 해요? 시행을 하는데 뭐부터 시행하는지 아세요?
니꺼 풀어라. 예수님도 자신을 다 풀어버렸잖아요. 그럴 때 그건 내 거예요. 왜냐하면, 그럼 하늘 문이 열려 있어요.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일된 걸 누린다고 그랬잖아요. 그 안에 들어가는 거죠. 예수님은 항상 그 안에서 자신을 다 내버렸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하나 되어 있는 걸 항상 누렸던 거예요. 우리는 푸는 게 그래서 그거를 누리는 키예요. 그러면 이제 갈등이 생기죠. 풀면 보증을 못 받는데 그게 내 보증이 아니고 성령이 보증이라니까요. 보증인이 바뀌었다니까요. 물주에서 성령으로 보증인이 바뀌었다. 아시겠어요? 이 물건 누구 거예요? 하나님 고자. 우리는 그걸 잊고 살아요. 어느 정도 이제 잡혀가요.
이 엄청난 상속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거. 하늘은 열려 있는 거잖아요. 하늘은 땅에 의하고 땅은 만물의 만물은 낭에게 응하는 게 지금 그걸 우리에게 선물로 줬잖아요. 싫어요? 안 가질래요? 받았어요. 못 물려. 그거를 못 물리도록 성령이 보증을 해. 그러면 이제 니 것부터 풀어라 걱정을 할 필요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는 거예요. 풀고 나면 더 채워진다니까. 그게 하늘의 법칙이에요. 하늘의 경제학이라고.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다 던져버리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그게 만물을 통치하는 자리로 가버렸잖아요. 그 완전한 엄청난 새로운 나가 됐죠.
그리고 거기에 만물을 소유로 다 줘버렸죠. 그게 이루어진다고요. 우리도 내 자신을 우리는 예수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부여한 자로 지금 똑같이 가난한 모습으로 와 있지만 부여한 자고 예수님처럼 살도록 우리는 이 땅에 있잖아요. 그게 그거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풀라고 하니까 왜 인상이 자꾸 바뀌는 거죠? 자신을 푸는 거예요. 우리는 소유에만 집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거 아까운 걸 이렇게 생각하지만 우린 존재 전체가 주님 안에 있는 거라니까요. 예수님처럼 가난하게 되어서 행한 것처럼 우리도 부여한 자로 지금 가난하게 되어 서서 예수님이 예수님처럼 똑같이 살도록 그렇게 이미 다 보증하고 있다고 성령이 그래서 그걸 그렇게 하도록 보증한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안 하는 거에 대한 보증을 안 한다고 바꾸면 이해하세요?
그럼 그렇게 살도록 보정을 해서 왜 하늘과 땅의 모든 걸 소유하고 다스리고 누리라고 보정한다고?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처럼 함으로 이해 가시나요? 어렵나요? 무지하게 쉽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보증인으로 반지를 끼웠다고 그랬잖아요. 아 이 강력한 법적 약속이에요. 셋이 보정했잖아요. 성부성자 성령이 보정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렇죠? 우리 헤블리스 할 때 했잖아요. 세상에도 둘만 보정하면 되는데 셋이 보정을 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풍성, 자신의 모든 풍성한 기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확실한 증거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먼저 계약금으로 준 거예요.
자신의 모든 풍성함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보증한 것이 성령인데 그게 계약금이라고 계약금은 계약 걸고 나면 누릴 수 있잖아요. 그게 성령이라고요. 거기에서 우리는 물질로부터 완전한 자유로함을 누릴 수 있는 영적인 원리를 깨달아야죠. 이제 물질로부터 속박함이나 매임을 당하는 사람이 이미 아니에요. 우리는 그건 S사람 저주받은 자하고요. 이제 우리는 소유자에서 상속자로 위치가 이동된 거예요.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었다고요. 물질에 얽매이는 이유는 내 힘으로 벌어서 소유하고 지키고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한다고 믿기 때문에 물질에 얽매이는 거죠. 그런데 그것이 그걸 이룰 수 없다라는 걸 알면서도 할 수 있겠어요. 그건 아니죠. 그런데 새로운 보증인이 나타났다니까요.
메이지 않는 그걸 누릴 수 있는 소유자가 아닌 상속자예요. 상속자하고 자그만한 소유자하고 다르죠. 상속자라니까요.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고 상속자라고요. 모든 걸 가지고 다스리면서 누리면서 이런 사람이지 그걸 소유하는 사람이 움켜쥐는 사람이 아닌 내 건데 왜 움켜져요? 상속받았는데 뭘 또 달라고 그러려고 그래요? 아닌가요? 개념 차이를 아시겠어요? 우린 그런 사람이에요. 개미처럼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고 독수리처럼 날다가 꼭 가서 먹고 이런 사람이라고 상속자 이해가시죠? 그걸 성령이 보증을 한다고요. 너는 상속자다. 보증을 한다고요.
그래서 성령이 바로 보증금이죠. 옛날엔 돈이 보증금이었죠. 이제는 성형이 보증이 돈은 없어질 수 있지만 성형은 안 없어져요. 그건 장고하고 상관없어요. 내 안에 계신 성명으로 보증인이 이미 바뀐 거예요. 우리는. 그래서 그 보증인이 바뀌는 순간 물질의 모든 메임에서부터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자유함의 근거원리예요. 이거를 실천하면서 살아야죠. 성령이 그걸 이 땅에서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계속 그거 놔라, 저쪽에 풀어줘라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유가 그거예요. 옛날로 살지 말고 지금 그 안에 있는 상속자로 살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처럼. 이해 가시죠?
그럼 내 안에 그 예수님이 와 있는데, 어떻겠어요? 그렇게 살도록 나를 계속 안에서 감동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감동이 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괜히 저 사람한테 이거 줘야 할 것 같다. 이런 감동 구제하고 싶은 감동 누군가를 위해서 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주고 싶은 감동 시간 물질만 있어요? 많잖아요. 우리가 가진 거. 그런 것들부터 하나님이 하나씩 하나씩 하는 거예요. 그게 보증하였기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그게 보증 안 했으면 그냥 콕 틀어지게 하죠. 수고와 슬픔 가운데 죽게. 보증했으니까 콕 틀어지는 건 그건 고통이니까. 풀라고 하는 거예요. 왜? 그게 그런 순간에 우리는 이 하늘의 부여를 통째로, 상속해서 누리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노라는 거야. 그 약이에요. 그럼 요만큼 가면 저만큼 가라 다 거기에 해당하는 법이에요.
그게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완전한 자유함을 누리는 거예요. 왜? 그만큼 가기 싫은데 그만큼 가라 하니까 가기 싫은 거. 그게 나를 옥죄고 있어 봐요. 밤새 힘들어요. 갈 걸 괜히 안 가지고 밤새 힘들잖아요. 그게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성령이 그걸 계속 말하는 거예요. 그게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계속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해버리고 마는 거예요. 하고 나면 속이 죽어.
자유 나 자유 얻었네 니 자유 얻었네 이렇게 자유 나 해방 받았네 니 해방 받았네 여기서 여기로 아멘 그래서 이 존재로 이제 우리는 갈아탔기 때문에 이 존재 안에서는 이제 성경에 나오는 그 청지기 비유처럼 가진 걸 막 소비하는데 왜 소비하던가요? 친구를 얻기 위해 소비하죠. 그렇죠? 그게 뭐든가요? 오이코노모스 청지기잖아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했다. 하죠. 나중에 그게 그게 뭐든가요? 가진 걸 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었죠. 청직이 자신을 말해요. 자신이 모든 것, 가진 모든 것. 그거를 남의 것이라고 그랬죠.
내 것이 아니라 그걸 어떻게 풀던가요? 빚쟁이들에게 다 탕감해줘 버리죠. 그리고 그 빚쟁이들을 얻죠. 그걸 말해. 그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합니다. 죄에 짐을 지고 죽어야 하는데 살아 있으니까 목숨을 빚졌잖아요. 예수님이 와서 그 빚을 자신의 목숨으로 탕감했죠. 청지기가 그걸 한 거죠. 그래서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한 거룩한 낭비가 된 거예요. 그게. 그래서 천지기 비유 맨 끝에 보면 뭐라고 나오는가 하면 똑같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거기에 딱 붙어 있어요. 정확하게. 그리고 마태범이 그 6장 끝 부분에는 가면 33절이 붙어있는 거 그 나라와 애를 먼저 구하라.
솔로몬이 입은 화려한 왕의 옷 들풀보다 못한다고 했죠. 그 이야기했죠. 왜 그런지 그건 자기가 막 애써 만들어서 멋지게 꾸며 입었는데 그건 지가 안 가잖아. 그런데 들풀은 오늘 꽃이 펴라 하면 폈잖아요. 꽃이 져라 하면 졌잖아요. 하나님 뜻대로 살았죠. 솔로몬은 지 멋대로 살아서 화려한 걸 쌓았는데 그거 들풀만큼도 하나님이 인정하라는 거예요. 이해가시죠? 우리에게 그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은 그게 바로 천적이라는 거죠. 그게 그렇게 해서 죽어가는 자를 사들였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없어질 것을 우리도 없어질 거잖아요. 결국 이걸 다 내 거 아니죠. 결국. 그런데 내가 막 막 사용해 사용하는데 누구를 위해요?
그 받는 자를 영원한 생명 부유한 자로 들어오게 하는 거기에 사용하라는 거 그걸 말해요. 그게 예수님이 나와 맞교환하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맞교환하는 거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게 그럴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라는 보증을 성리하는 거예요. 그런데 멋대로 살면 보증이 안 돼요. 여러분 아시겠어요? 그걸 말하는 거죠. 그래서 요약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난해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이란 부유함을 얻었죠. 그게 팔장구절 그리고 에베소스로 오면 성령님은 그 상속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라는 보증인이죠. 보증금이 되셨죠.
1장 14절에 그래서 이 완전한 보장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물질을 두려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청지기 나누고 다스리고 그렇게 할 때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에게도 안 메이죠. 어떤 권세, 세상의 어떤 물질 환경에도 안 메이죠. 우리는 그 완전한 자유를 거기서 누릴 거예요. 이게 바로 완전한 자유함을 누리는 영적인 원리이고 우리 삶에 적용해야 될 부분 현재 일상에서 재정적인 결정을 내릴 때 이게 심한 도전이 오죠. 우리에게. 조그마한 것도 풀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잘. 그래서 아주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거잖아요.
나의 존재부터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바로 오이코노미아 안에 있는 거죠. 우리는 그걸 이제 하나님 뜻대로 집행해야 할 정직이고. 그렇죠? 그런데 그거를 이제 하나님 뜻대로 내가 흘려보내기 시작할 때 이제 내가 그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주 작은 것부터 해보세요.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작은 것부터 주님 이거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이렇게 습관을 들여보세요. 그러면 내가 예를 들어 내 시간도 주님 이거 내가 오늘 이렇게 사는 게 좋을까요? 우리 일상적인 루틴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거예요. 순간순간 가능한 거죠. 로렌스처럼 밥그릇 닦으면서도 완전한 자유함 이런 거죠. 예를 들어서 그 밥그릇 닦는 거, 집어치우라는 거 아니에요. 집어치우라는 게 아니고 그걸 하나님 안에서 하는 거죠.
그렇죠? 바로 그게 성령이 보증이니까. 성령이 인도하죠. 그래서 순간순간 그런 것들을 해보라는 거죠. 누구를 위해서 얼마를 내가 오늘 한번 써야겠다. 이런 감동이 오면 아주 작은 것부터 한번 해보시라고 큰 거 처음부터 하려면 안 돼요. 아주 작은 아주 작은 시간부터 누굴 위하여 내가 한번 님이 나에게 전부를 희생한 것처럼 조그마한 것부터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해보세요. 그게 훈련이에요. 자유함을 누리는 훈련이라고요. 그렇게 됐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내가 점검을 해봐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 삶을 살아봐야 돼요. 우리는 항상 불안이나 염려, 미래에 대한 어떤 그런 것 때문에 움켜잡고 있는 이것들을 놓기가 정말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걸 하나씩 경험할 때 이제 알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뭄이 들어서 애굽으로 도망갔는데 하나님이 다시 갖다 놓고 더 많이 줘버렸잖아요. 그거 한번 경험했잖아요.
그러면은 가뭄이 오면은 어떻겠어요? 꼼짝하겠어요. 이런 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감동이 와서 누구에게 이걸 피로 저 사람이 이거 없으면 죽을 것 같아서 하나님이 갖다 줬어. 예를 들어서 그러면 아깝잖아요. 그런데 그게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지켜봐야 돼요. 그다음에 거기까지 가봐야 돼요.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하시는 걸 보고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잖아요. 그게 청직이죠. 그러면은 그 청지기는 이제 하나님의 법 안에 있으니 하나님의 모든 부유함을 누리죠. 평간과 안식, 기쁨 이걸 다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이게 많고 적음하고 상관이 있어요? 아니요.
내가 아무리 없다고 해도 줄 건 얼마든지 있어요. 사랑을 줄 수 있죠. 위안을 줄 수도 있고 위로를 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해줄 수도 있고 내 시간을 내어서 봉사해 줄 수도 있고 얼마든지 있는 거예요. 그게 달란트라는 거예요. 우리에게 주신 그게 우리는 얼마든지 있어요. 없다고 하면 안 돼요. 그런데 내가 가진 것,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의무겠죠. 그래서 보증인으로 와 계신 성령께서 계속 감동하는 거죠. 이렇게 사용해라. 저렇게 사용해라.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아침저녁으로 제사장이니까. 번제를 드리는 겁니다. 아침에도 나를 받으소서 저녁에도 나를 받으소서 하루 종일 나를 받으소서 그래서 하루 종일 나를 받으소서 해놓고, 내 멋대로 하루 종일 살고 있으면 받으소서가 아니잖아. 그러면 이걸 못 누리는 거죠. 여기 안에 있는 에덴의 행복 하나님 나라는 평강과 희락이라 안 누려지는 것.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어와 평강과 희락이죠. 성령 안에서 누리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계속 지속적으로 성령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어야 맞죠. 이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이 0이 될 때 또 성령이고 그래서 우리가 하는 매일 하는 그 교재들이에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점점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그게 그래서 점점 자유함을 지금 우리가 누려가고 있는 거예요. 누려가고 있고 우리 부엉의 한 그런 어떤 그런 머리를 이렇게 하는 그런 것들까지도 같이 하면서 가는 거죠. 이해 가시죠? 그래서 이거는 이미 완성된 거잖아요. 그런데 이미 와 아직 그 사이에서 우리는 계속 긴장 가운데 있긴 하지만 성령이 보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완성된 것을 누릴 수 있잖아요. 그게 보증금 미리 치른 거잖아요. 그래서 누릴 수 있는 거거든요. 이걸 예수님이 누렸던 걸 우리는 누릴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성령 안에서. 성령 인도함을 받아서 행할 때 우리는 그걸 누리는 거예요. 그게 비밀이에요. 사도 마을은 항상 성령 충만을 받으라 라고 한 거고, 성령 충만은 말순 충만이라고 돼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완전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잘 안 되죠. 그래도 계속해야 돼요. 우리 성령인두암을 받는 거 하면서 했잖아요. 계속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뭔가 말할 때 순종을 해야 되고요. 그럴 때 우리는 이걸 누리는 거죠. 그 상태 안에 있기 때문에 보증된 걸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소유가 아니고 상속자로서 다스리는 집행하는, 통치하는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걸 그게 완전한 자유함의 비밀이에요. 이해가시죠? 그걸 가로막는 것들이 우리 안에 있죠.
아직은 육적인 어떤 그런 본능들, 습관들 이런 것들이 있지만 거기에 계속 말씀이 들어오고 성령이 운행하시면 결국은 그게 비춰서 드러나고 돌이키고 씻고 회귀하고 그러면서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결국은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로마스 8장 14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이게 아들 관계 안에 있는 거잖아요. 성령이 인도함을 받는 그 동안에는 우리 부여함을 실제로 행하고 있는 거죠. 그럴 때 우리는 완전한 물질이 메이지하는 거예요. 왜? 그걸 풀었을 때 그게 끝나는 게 아니에요. 세상 것은 어느 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지죠. 그런데 그거 푸는 거는 돌아예요.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기 때문에 그걸 알아야죠.
그래서 보증하신 하나님의 성령 인도함을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하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은 부효자로 살게 되는 게 바로 그 시점입니다. 이게 지속적으로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면 되는 거잖아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니까요. 진짜 일어난다니까요. 그러면 사도 바울이 말한 고린도스 6장으로 가겠죠. 그런가요? 6장. 없는데 다 있어. 아무것도 안 가졌는데 다 가졌어. 다 가졌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을 다 예수님이 아무것도 안 가졌는데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부역해버렸잖아요. 그거죠. 우리에게 그런 완전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부욕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 부효자가 그걸 말하고 만물의 소유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모든 것을 함께 누리는 부효자예요. 째째하게 굴 수가 없어요. 우리는 이제 안 된다니까요. 하려고 해도 안 된다니까요. 가난하게 되는 것은 성육신을 통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걸 말하고 우리도 이제 그와 똑같은 루트로 와 있죠. 하늘에 안치 혼자고 여기 와 있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겠죠. 당연히. 그 왜 그렇게 살 때 가장 우리는 행복하도록 예정이 되어 있고 그렇게 살도록 보증인까지 와 있고 그래서 성령이 오면 계속 자아에 매여 있던 것을 자꾸 쪼개는 거예요. 그래서 거룩하게 하는 거죠.
거룩하게 하는 영이라고 그랬고 그다음에 이것을 다 벗어버리게 새롭게 하는 영. 그래서 영생을 소유하도록 한다. 디도스 3장 5절에서 7절이 바로 그거예요. 성령에 충만하게 와서 그걸 소유하게 한다고 그랬죠. 성령이 쉽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고 이런 존재를 계속 만들어 가서 결국은 이걸 영생 안에서 누리게 하는 사람으로 우리를 빚어가는 게 성령 그게 보증이에요. 그래서 성령인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항상 그걸 보증받아서 이 땅에서 지금 그 영원을 지금으로 예수님처럼 이 땅에 와 있지만 영원을 항상 누릴 수 있다. 십자가로 갈 때 그 영혼과 한 번 분리됐잖아요. 그래서 고통스러웠던 거예요. 그게 우리가 이걸 누리고 있는데, 단절돼버려 봐요.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없죠. 이제는 보증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그리스도 영적인 부유함을 맛본 사람은 이 땅에 이 물질에 안 매이는 거예요. 드디어. 드디어 안 매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자식을 달라 하니까 곧바로 던져버려요. 가져가시오. 그게 처음부터 되겠어요. 우리도 점점 이제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점점 되어져 가고 있는 거예요. 성령이 보정해서 말씀이 계속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거잖아요. 결국은 우리는 완성된 부효자로 지금 지속적으로 살 수 있게 하시는 거예요. 그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 순간을 부효자로 사는 거죠. 그러죠. 아직도 남아있는 건 계속해서 만들어 가시겠죠. 그렇게 해서 성화되어 가는 게 성령의 사역이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한 물질의 자유함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거예요.
성령 안에서 아멘 그렇게 우리는 살아야 될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이요. 엄청난 사람들이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를 이제 세상으로 가라는 거예요. 묶여 있지 말고 세상으로 가서 나처럼 죽어가는 사람 너 부유함으로 살리라는 거예요. 부유한 자들이여 가서 살리라는 거예요. 우리는 가난한 자가 아니에요.
1. 물질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1-1. 부여와 가난
- '부여'와 '가난'은 대비되는 단어이나, 성경은 '가난한 자'를 통해 물질의 법칙을 얘기함
-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 파산한 자, '부여한 자'는 물질적 풍요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상속한 자를 뜻함
- '가난'은 영적으로 파산한 상태, 즉 죄로 인해 분리된 상태를 의미함
- '가난한 자'가 복음을 전하도록 했는데, 이는 부여에 이르기 위함이었음
- (중요) 가난은 물질적으로 자유를 누리는 법칙이 들어간 성경 원리임
1-2. 물질적 자유를 위한 성경 원리
- 부여받은 자가 가난한 자가 되어, 예수님과 교환하게 된 것에서 '거룩한 교환'의 개념이 나옴
- 물질적 자유를 위해선 다른 것들과의 자유, 질병과 성품 등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함
- 인식, 선포, 명령을 통해 뇌를 속이는 것처럼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음
- 물질적 자유를 통해 다른 것들과의 자유, 질병 등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음
1-3. 부흥과 부여
- 물질적 자유를 위한 성경 원리의 핵심은 '거룩한 교환'임
- 물질적 자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의 자유, 질병 등으로부터의 자유도 중요함
-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 파산한 자, 부여받은 자는 물질적 풍요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상속한 자를 뜻함
- 가난한 자가 되어 예수님에게 가난이 전가된 것은 죄에서 다 죽었음을 의미함
- 부여받은 자는 부유한 자이지만, 가난한 자가 되어 물질을 잃어버린 것이 부유함이 상실된 것임
2. 가난한 자
2-1. 예수의 가난함
- 우리는 물질의 종, 보이는 것의 종, 종의 모습으로 살았음
-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나와 함께 죽었음
- 로마서 8장 3절에 죄의 몸을 정하여 가난한 자로 내려왔다고 기록되어 있음
- 우리는 죄의 몸이 된 우리 자신을 부정하고, 종의 형체로 내려와야 함
- 죄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의 안수를 통해 죽음을 맞았음
2-2. 부여함의 의미
- 부여함은 창조주의 권세와 능력을 포함함
- 우리는 죄의 몸과 저주받은 모습으로 이미 왔음
- (중요) 가나안의 죄의 저주를 담당하여 죽음을 맞았음
- 이로써 우리는 부여함을 얻었고, 예수는 우리를 위해 죽음을 각하심
- 우리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고, 부여함은 단순한 경제적 결핍이 아님
2-3. 상속자의 부여
- 가난하게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부여함을 얻었음
- 가난한 나로 오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권세를 얻음
- 이 권세는 하나님의 모든 신성의 충만함이 그 안에 거하는 것과 연결됨
- 부여함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한 자로서 그 상속자가 됨
- 이 상속자는 하나님의 아들 자격으로 관계된 자이며, 아버지 다의 관점에서 본 아버지의 자녀임
3. 부여와 청지기
3-1. 소유의 부여함
- 성경적 부여함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닌, 누가 연결되어 있느냐임
- 아버지가 아들에게 소유한 재산을 물려준 이야기는 내 것이니 다 내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반성하고, 가치의 재정립이 필요함을 의미함
- 우리가 사는 방식은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영생을 추구하는 방식임을 알아야 함
- 우리가 가진 것과 상관없이,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자유함의 시작임
- (중요) 성경에 나온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함
3-2. 청지기의 정신
- 청지기는 흐르는 통로이자 하나님의 경륜으로, 오이코노미아(하나님의 집, 즉 세상)를 다스리는 사람임
- 청지기는 우리를 대리인으로 세웠고, 계획과 관리를 하게 됨
- 우리는 대리인인 청지기를 통해 하나님의 경륜대로 경영할 수 있음
- 이는 보통의 창조가 아니라, 우리가 먼저 정체성을 가진 대리인으로 세워진 것임을 의미함
- 예수님은 청지기의 정신을 우리에게 물려주심
3-3. 부여와 청지기
- 청지기는 만물을 다스리는 관리자이며, 하늘의 경제학대로 경영하도록 세움
- 우리는 오이코노미아로서 하나님의 경륜대로 계획과 관리를 함
- 에덴에 소유하지 않고, 물질적인 결핍이 아닌 소유의 부족함과 넘침이 가치를 내림
- 죄로 인한 하나님의 분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과의 분리로부터 벗어나야 함
- 예수님이 담당하시고 끝내신 것이라, 우리는 사는 방식을 바꿔야 함
4. 천국의 비밀
4-1. 천국의 비밀 전수
- 예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천국의 비밀을 전수받음
- 천국의 비밀은 물질적인 부유함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른 관리와 소유임
- 우리는 하나님의 관리자로, 물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닌 소유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함
-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소유하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함
- (중요) 예수님은 부여한 자로 내려와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하고 물질을 관리함
4-2. 물질을 대하는 자세
- 청지기의 정신을 가지고 물질을 관리할 때, 풍성한 풍요와 소망이 임함
- 예수님은 관리자로서 물질을 소유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흘려보내는 삶을 사심
- 마귀는 우리가 물질을 소유하려는 마음에 속이고, 결국 우리를 속이고 사로잡음
- 번영신학으로 왜곡된 생각에서 벗어나, 물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닌 소유의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 함
- 예수님은 물질을 관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심
4-3. 하나님의 소유와 관리
-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흘려보낼 수 있음
- 하나님의 뜻에 따라 흘려보낼 때, 내 삶과 시간도 하나님의 것임을 알 수 있음
- 그리스도의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고, 우리는 이를 감당해야 함
- 사도바울은 비천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음
- 우리는 물질을 소유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관리하고 소유해야 함
5. 저주의 증상
5-1. 탐욕의 위험성
- 물질을 통해 내면의 충만함을 이미 가졌다고 믿게 됨
-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오이코노미아에 속해야 함
- 사도바우는 성령의 전수받은 비밀을 알게 됨
- 탐심정욕으로부터 우상숭배를 탈출할 수 있었음
- 존재가 변하고, 환경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자가 되었음
5-2. 가치 전환
- 물질이 내 생명과 안전, 행복과 기쁨을 보장한다고 믿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함
- 성경 속 유명한 인물들도 물질을 얻었음
- 솔로몬은 실패한 인간으로, 모든 것을 다 해봤지만 실패함
- 공중 나는 새가 아닌, 땅의 개미처럼 일해야 함
- 물질을 막을 자랑하는 것은 아직도 저주의 증상임
5-3. 천국의 길
- 많이 가진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저주의 증상임
- 가치가 이동되고, 관리하는 자가 되어야 함
- 하나님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자가 되어야 함
- 나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대리로 대변하는 것이 천국임
- 천국은 기쁨과 편광이며, 성령 안에서 이루어짐
6. 하늘의 경제학
6-1. 우리의 정체성과 부여
- 성경에서 우리는 '하늘의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정체성을 가짐
- 이 정체성은 우리의 물질적 허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는 데 도움을 줌
- 우리는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물질의 노예가 아닌, 부유한 자로 살아갈 수 있음
- 예수님은 이 땅의 가난한 자로 오셔서, 우리를 부유한 자로 만들었음
- (중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 때, 예수님처럼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나누고 전할 수 있음
6-2. 부여한 자의 삶
- 예수님은 가난한 자로 오셔서, 부유한 자로서 자신과 똑같이 만들어 놓으심
- 우리는 이 땅에서 부유한 자로서 살 때, 물질적 허물에서 벗어나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음
- 예수님은 우리의 부유함을 나누고 전할 때, 우리가 하늘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음을 깨닫게 하심
-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부여받은 자로서, 하늘의 모든 것을 누리고 지키며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함
- 이 땅에서 물질적 가난을 포함한 영적인 저주를 이겨내고, 예수님처럼 와 있는 것과 같아야 함
6-3. 하나님의 아들 됨
- 우리는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로 오셔서, 부유한 자로서 살아가는 자임
-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질적 부유함을 나누고 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하심
- 우리는 물질적 부유함을 누리며,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어 이 땅에서 완성품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함
-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완성품으로 만들어 하시고, 하늘의 경제학을 이룸
-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되어, 부유한 자로서 이 땅에서 완성된 존재가 되어야 함
7. 말씀과 경륜
7-1. 하나님의 경륜과 우리의 사명
- 우리가 하늘에 앉혀 있음에도 땅에 머물고 있음
-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자 왕 같은 제사장임
-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행하게 됨
- 우리는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로 오고, 부효자로 살게 됨
- 예수님처럼,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경륜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함
7-2. 부여함의 실체와 성령의 보정
- 우리가 입양된 것은 하늘의 부여함의 실체, 아들이 된 것임
- 이 땅에서 부여함을 누리려면 성령의 보정이 필요함
- 성령은 우리의 말씀과 역사하심
- 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귀를 누리도록 보증하심
- (중요) 에베소서 1장은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그 실체와 부여함의 구체적인 실체를 말함
7-3. 완전한 자유와 성령의 보증
- 우리는 하늘의 부여함을 누리고, 이 땅에서 능력적으로 행할 수 있음
-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것임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를 끌고 오라고 하심
-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함
-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의 보증으로 부여함을 누리도록 이끄심
8. 성령의 보증
8-1. 물질의 보증인
- 있으면 나눠주기 전에 있는 걸 믿고 의지하여 딱딱 계획함
- 보증 안 되면 내일 해도 보증 못 받음
- 성령은 불려갈 때까지 보증하는 것임
- 내가 성령님을 의지하면 질서 안에 다 이루어진 것들을 집행함
- (중요) 나를 의지하면 어떤 성령님이 의지하는지 보증이 됨
8-2. 성령의 보증인
- 물질의 보증인은 하나님이고, 성령은 보증이 됨
- 예수님이 자신을 다 내버리니 하늘과 땅이 하나 된 것을 누리게 됨
- 우리는 예수님처럼 가난하게 되어 부여한 자로 살도록 보증받음
- 성령은 우리가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 소유자가 아닌 상속자로 살아가게 보증함
- 예수님처럼 성령님의 보증을 통해 완전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음
8-3. 자유함의 누림
- 성령이 계속 풀어줘라 하면 옛날보다 더 풀어줌
- 보증인이 바뀌면 물질의 모든 메임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음
- 성령이 보증인으로 이미 바꾸어 우리에게 주심
- 우리는 소유자가 아닌 상속자로,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음
- 성령이 실천하며 살도록 하여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함을 누리도록 함
9. 하나님의 나라
9-1. 죄와 용서
- 예수님이 우리에게 짐을 지고 죽었음
- 천지기 이야기에서 보듯, 거룩한 낭비가 된 것이 빚쟁이들을 얻게 됨
- 솔로몬이 자기 화려한 왕의 옷을 들풀보다 못했다고 이야기함
- 하나님 뜻대로 살았다면, 꽃이 져도 졌음
- (중요) 자기가 하라는 대로 행하면, 천적과 같음
9-2. 천적과 영적 자유함
- 자신의 욕심을 위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죽어가는 자가 됨
- 예수님이 나와 맞교환하심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부유함을 얻음
- 성령이 보증이 되어, 우리를 지켜주심
-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면,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
-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 때,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됨
9-3. 자유함의 훈련
- 아브라함이 가뭄에서 돌아온 일화를 통해, 작은 것부터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줌
- 내가 가진 것, 즉 내 시간과 능력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것이 자유함의 훈련임
- 감동을 받아 작은 것부터 시도하다 보면, 나아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됨
- 성령이 보증이 되어, 우리의 부유함과 평강을 누릴 수 있음
- 성령 안에서 교제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음
10. 영적 부유함과 성령의 역사
10-1. 하나님의 영적 부유함 이해
- 영적 부유함은 소유자가 아니라 통치자임을 인지함
- (중요) 성령이 인도함을 받을 때 완전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음
- 세상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영적 부유함은 돌아옴
- 성령이 오면 자아에 매여 있던 것을 분해하고 새롭게 함
- 이로 인해 영생을 소유하게 됨
10-2. 성령의 역사와 부유함의 완성
- 성령이 영혼을 통해 내부를 분해하고 새롭게 함
- (중요) 성령이 충만해지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상태가 됨
- 성령 안에 있으면 영원을 누릴 수 있음
- 성령이 보증하는 순간을 부유함으로 살아감
-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순간을 부유자로 삶
10-3. 성령의 역사와 세상으로의 부유함
- 성령의 사역은 성령을 통해 물질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함
-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성령의 사역임
- 우리는 세상으로 가서 부유함을 누리며 살아가야 함
- 부유한 자는 부유함으로 살 것을 권장함
- 우리는 가난한 자가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부유함을 누릴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