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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9)_이 위대한 일을 지금 실제화하는 가장 성경적 원리(눅16:10,마633,고전1:9,요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26.06.13|조회수6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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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9)_이 위대한 일을 지금 실제화하는 가장 성경적 원리(16-10,633,고전1-9,요일1-3)

 

 

해방된 것 같죠? 지금은 영원히 해방되어 있는데요. 사실은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나가보면 내가 해방되었는지 묶여있는지 구분도 잘 안 됩니다. 사실은 위대한 일을 지금 시간 안에서 실제화하는 가장 성경적인 원리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죠. 그냥 알고 있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렇죠? 그냥 지식에 불과하면 바리스인들처럼 또 돌아가 버립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과 연관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죠. 지금 내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절대로 아무것도 안 매일 것 같죠. 그렇죠? 집에 가도 끄떡없을 것 같죠. 가버리지 마. 택도 없어. 그럴 것 같죠.

 

그런데 집 앞으로 가면 점점 가슴이 쪼그라들어. 어떡하면 좋아.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건 실제예요. 이게 하나님의 우주적인 원리인데 오늘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실제화는 가장 핵심적인 성경 원리를 가지고 실제화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뇌과학적인 것을 가지고 어떻게 선포하고 명령하고 그것을 내 삶에 완전히 새로운 습관이 되기 위해서 내가 살아가느냐 그걸 봤는데 성경적인 원리를 한번 보도록 하죠. 추상적인 개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어떤 능력이 나타나야죠. 물론 핵심은 성령의 보증입니다. 우리에게 보증해서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 힘을 가지고 역사한다고 그랬죠. 힘을 가지고 성경에 걸리지 않으면 결코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성경 말씀을 그 원리를 가지고 우리 삶에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물질에 대한 해방에 대한 원리는 오늘 이 시간으로 끝내겠습니다. 물론 질병이나 그다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부분에 대해서 아직 남아있는 것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유하려면 완전한 자유를 누려야죠. 그렇죠? 그런가요? 일부는 자유하고 일부는 하지 않고 그러면 그것도 성경이 아니죠. 전부라야 합니다. 그렇죠? 전부 전부. 첫 번째로, 우리가 볼 것은 아까 누가 보면 16장 10절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걸 말합니다. 첫번째 두 번째가 이제 마태법 6장 33절이고요. 그렇죠? 작은 것 같지만 이게 가장 핵심적인 원리 중에 하나입니다.

 

지금 지극히 작은 것에 원리를 여기서 발견해야 합니다. 이거에 대해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아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 말하는 게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그렇죠? 이미 거기에 속해 있는 우리 존재 자체 해당되는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산다라는 걸 말해요. 당위성을 말하는 거지. 존재가 먼저입니다. 행함이 먼저가 아니고 존재가 먼저예요. 이걸 착각하면 율법으로 돌아가고 또 내가 힘써 하려고 하면 이제 거기에 걸려들어요. 걸려들어도 내가 할 수 없는 걸 하려고 덤빕니다.

 

그러면은 이제 축도화합도 안 되고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다시 저주 아래로 떨어집니다. 어쨌든 이 16장 10절의 핵심은 만물을 다스리는 영생의 권세는 어떤 거창한 종교적인 업적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이런 걸 보면 뭔가 큰 거를 해야 할 것 같고, 뭔가 위대한 일을 해야 할 그런 생각을 합니다만 아닙니다. 여러분. 그런 게 아니에요. 지금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그 인식부터 시작된다고 그랬는데 지금 나에 속한 것들 중에 아주 지극히 작은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아주 작은 물질, 아주 짧은 시간 아니면 스쳐 지나가는 옆에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그 삶의 태도에서 실제화가 되기 시작해요. 왜냐하면은 그게 나는 거기에 속했다라는 증거로 보여지기 때문에 작은 것에 점점 그게 적응이 되면 큰 것으로 발전하는 진짜 엄청난 그런 큰 일도 우리를 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라는 거죠. 그렇죠? 우리도 애들 때 보면 조그만 것부터 배우잖아요. 그렇죠? 글 배울 때 처음부터 긴 문장을 경제 원론을 갖다 놓고 막 이렇게 하면 누가 알아요? 모르잖아요. 그렇죠? 단어 아주 작은 것부터 플래식 카드인가 이거 이거 뭐 이러면서 바나나 지나가고 땅콩 지나가고 이러면서 하잖아요.

 

그거하고 똑같아요. 우리 삶도 지금 시간 안에 있기 때문에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지. 이런 훈련을 통해서 그게 들어가야 한다는 거 아니에요. 그 안에 있는 자이면서 우리는 육체를 읽고 있어서 세 사람인데 아직 세 사람이 좀 미약하다는 거죠. 우리 육적인 것도 점점 훈련하면 강하게 되는 것처럼 아까 뇌도 이야기했잖아요. 뇌의 가소성 원리 점점 사용하면 고속도로처럼 뚫린다고 안 사용한 건 없어지고 마치 그것처럼 세 사람도 지속적으로 이 땅에 이 땅에서 사는 방식을 배운 적이 없잖아요. 세 사람이. 그렇죠? 이 땅에서 천국의 원리로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잖아요. 이 땅에서 사는 법은 나면서부터 우리가 배워서 너무 잘 알지만 그건 이미 지나가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은 당연히 안 되죠. 왜냐하면, 없어졌는데 어떻게 그렇게 삽니까?

 

그런데 새 것이긴 한데 새 것으로 사려다 보니까 살아본 적이 있어야지. 그렇죠? 그래서 어떤 그런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이제 어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데 실제 말은 영생을 사는 우리는 어떤 물질을 쓸 때도 아주 작은 것부터 이게 주님의 뜻인가 이런 묻는 습관을 계속 들이는 거예요. 이걸 주님 내가 저쪽으로 흘려보내는 게 맞는가요? 천원짜리 하나라도 그냥 불쌍하니까 줘버려야지 그게 무조건 옳은 것 같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얼마든지.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주는 걸 싫어할 수도 있어요. 그렇죠? 막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지 않아요? 안 그러면 하나님이 그냥 모든 걸 사통팔달되게 해놔버리지 뭐 이렇게 하겠어요.

 

아브라함이 원하는 거 다 막듯이 이렇게 막아야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근육이 생겨서 올라오거든요. 그런 것들을 우리가 했던 SH 그런 것들이 가장 강력한 방법이에요. 그 아주 작은 거에서부터 순종하는 걸 이제 체득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은 이제 만몬의 결박이 끊어지기 시작해요. 작은 것부터. 그런데 그 만몬이라는 이 재물이라는 게 결국은 마귀에게 속아서 그렇게 마귀가 그걸 제일 싫어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의지대로 막 베풀고 이런 거 막 이제는 얼마든지 좋아합니다. 뒤에서 육신의 자기주장 의지하시죠? 얼마든지 베풀으라고 합니다. 얼마든지 하라는 거죠.

 

그게 하나님과 상관없기 때문에 그런데 아주 작은 거 가지고 이제 이거 하나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그거 이제 안 되게 하는 거예요. 그거 아주 크고 많습니다. 마귀는 마귀는 그래요. 그래서 그걸 못하게 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습관적으로 확 해버리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1초 1초 이야기했죠. 성령님 1초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그게 로렌스 형제가 쓴 책에도 보면은 안 된다고 그러잖아요. 자기도 잘 안 된다고 까먹었다가 한참 후에 돌아와 가지고 아이고 주님 어떡해요. 어떡해요? 안 한다고 그랬어. 그 사람. 내 본성이 그런 걸 주님 아시죠? 용서해 달라고도 안 그래. 원래 그런 인간인데요. 주님 이제 정신 차리고 들어왔으니까 주님 하세요. 이렇게 한다고 그랬잖아요. 인간이 다 지나간 거기 때문에 그게 그런 것들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 것들이.

 

그런 습관이 그런 하나하나 하다 보면 습관이 되죠. 아까 뇌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하나 하다 보면 뭔가 하려고 할 때 맞아 물어봐야지 이게 나를 확 장악해요. 그게 얼마나 놀라운지 알아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됩니다. 그거 분명히 됩니다. 이게. 그래서 3차 법칙에서 제가 말씀을 드린 게 그런 거예요. 뭐든지 내가 행동 내 삶의 전부가 하나님께 속한 거잖아요. 뭘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 속한 거기 때문에 내 원대로 하던 것을 이렇게 티컬을 거는 거죠. 하나씩. 그게 이제 여기서 미리 습관에 돌아가는 것들을 다 막아버리는 거예요. 순간 탁 막는 거죠. 가로채는 거예요. 하이재킹 가로채는 거예요. 그래 그게 바로 가장 작은 거에 충성하는 거예요. 이게 노하고 16장 10절이에요.

 

그러다 보면 이게 쌓여요. 쌓여요. 그래서 가소성의 원리에 의해서 여기 점점 점 하나하나 둘 하다가 연결이 돼서 신경조직이 시냅스가 돼서 이게 나를 통제하는 거죠. 우리 신경이 통제하는 거잖아요. 우리 머리가 예수님이잖아요. 그래서 머리를 말씀으로 통제를 하기 시작하는 거죠. 이 말씀을 가지고 자꾸 넣는 거죠. 말씀이 신경조직이 되게 하는 것과 그래 말씀이 예수님이니까. 내 머리가 되는 거죠. 이런 원리요. 작은 것부터 하는 거예요. 작은 것부터. 엄청난 거 내가 한번 하려고 기다리고 계지 말고 니 집을 오늘 당장 팔아서 교회 갖다 줘라 그런 건 절대로 안 옵니다. 죽을 때가 여러분 안 올지도 몰라요. 운 좋은 사람 올지도 모르고 새 집 받기 위해서 듣고 봐. 듣고 봐. 한 집 줄게.

 

새 집 타고 그런 농담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면은 다른 걸 예비해 놓잖아요. 그런 거창한 일을 생각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아주 사소한 것부터 해보세요. 그냥 이게 습관이 되게 하세요. 작은 것. 아주 작은 것부터 맨날 아무 할 일이 없어서 할 게 없다. 아니요. 많아요.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성경 볼 때도 성경 보는 건 다 당연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거 하고 성경님 내가 성경을 보려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깨닫게 해주세요. 다릅니다. 성령의 역사함이 달라요. 완전히 달라요. 여러분 해보시면 알겠지만, 그래서 고 작은 어떤 물질, 주물질을 먼저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물질적인 작은 순종이 만문의 결박을 끊어요. 이해가시죠?

 

그 물질이 처음에는 무조건 내 원함대로 사용하게 습관이 되었잖아요. 그게 저주의 증상으로. 그렇죠? 그런데 그게 이제 결국은 만모네 종노릇 하는 거라고 그랬는데 그걸 끊는 제일 작은 방법이 그런 거예요. 그거를 이제 옛날에는 맘모니 시키는 대로 했는데 이제는 안 하네. 작은 것부터 안 하는 거죠. 그러면 이제 그게 결박이 꺼내기 시작하는 거야. 그게 내 원리하고 같이 돌아가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그래서 그걸 이제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흘려보냈잖아요. 그럼 뭐예요? 그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죠. 그럼 그 통치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천원의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천원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거는 물질이 크고 작음이 아니에요. 그 순간을 말하는 거예요. 그 순간은 이제 내가 만몬의 통치에서 끊어져서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죠. 그게 천 원이든 만 원이든 억이든 상관없죠. 그러지 않나요? 하나님은 많고 작은 그런 개념이 아니에요. 이거는 내가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의 개념이죠. 엄청난 거죠. 그게 원리예요. 그런가요?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 흘러 들어가게 만드는 거죠. 원래 내가 저 사람에게 뭔가를 주려고 하나님이 계획하고 있었는데, 나를 감동해서 주잖아요. 그러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그 사람에게 흘러가는 거죠. 그럼 그 사람에게 하나님나라가 시작하겠죠.

 

처음에 아주 미세한 것 같지만 그게 원리예요. 우리는 아주 작은 걸 놓치는데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물 한 잔 소자 별 볼 일 없는 애에게 물 한 잔 갖다 준 것이 나에게 한 거라고 그랬거든요. 나에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거죠. 그게 섬기는 거예요. 물질을 섬기는 게 아니고 나를 섬기는 게 아니고 내 멋대로 하는 건 나를 섬기는 거죠. 그러면 그거 물 한 잔 그냥 줬는데 예수님을 섬긴 것 같아. 옛날에 힐트 노틸 이야기했죠. 비 오는 날 그냥 차나 한 잔 드시지요? 이렇게 차 한 잔 대접한 것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잖아요. 그런 것 같은 거예요. 마치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뭔가 하면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재조정해야 돼요.

 

그게 마태봄 6장 33절이에요. 먼저 먼저라는 단어가 예수님이 딱 못 박아놓은 거예요. 먼저 먼저 하라는 거예요. 먼저 뜻이 하늘에서 하늘에서 먼저 땅에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늘에서 먼저 뜻이야 하늘에서 이루어진 게 땅에서 이루어져야 맞죠? 그래서 먼저 그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거예요.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이걸 교회 다녀도 잘 모릅니다. 그렇죠? 나라와 의가 뭔지 여러분 이제 다 알죠? 그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라를 다스리는 건 그러니까 2천 원짜리 하나도 하나님이 주기에 흘려보내는 감동을 주면 가는 게 다스림에 순종한 거죠. 그럼 하나님 나라가 임한 거죠.

 

하나님 나라는 의화 평강과 희락이 은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진 거고, 평강은 아시고 희락도 아시고 그럴 때 기쁨과 평강은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걸 평강이라고 그래요. 평안을 내에게 충어라 살롬. 그게 이루어지는 걸 말해요. 그게 하나님 나라예요. 그거 우리는 만들어내려고 하죠. 이걸 많은 걸 끌어모아서 편안해지려고 하죠. 아닌 거예요.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기쁨을 누려보려고 하죠. 많이 가지면 다다익선이 안 됩니다. 안 돼요. 그건 안 됩니다. 여러분 세상의 법이지. 그건 될 것 같지만 절대로 안 돼요.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인생을 허비합니다. 지금은 내가 젊어서 잘 모를지 모르는데 기다려보세요. 어떻게 되는가?

 

분명히 그를 뼈저리게 느낄 때가 와요. 그때는 늦어요. 여러분. 넣는다니까요. 이건 우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에요. 이건 본질. 그럼 이거 하나님 나라는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을 때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작은 거 하나의 하나님의 뜻에 따라 흘려보내면 그게 이제 그때 이루어지고 내 안의 기쁨이 작은 헌신 큰 기쁨 기쁨이 어디 갔어? 거기 눈에 띄는 옷을 입어야지 작은 헌신, 큰 기쁨 이런 게 그때 일어나는 거예요. 거기에 그때 몸에 어떤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그랬죠? 아이돌핀 그런 거예요.

 

그게 기쁨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해놓은 장치예요. 그러니까 엔돌핀하고는 차원이 다르죠. 이런 것들이 몸에도 정확하게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기쁨이 계속 충만하면 병 잘 안 걸리겠죠. 그래서 천국에는 병도 없고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그런 거예요. 이런 기쁨이 계속 되다 보면 병도 떠나갑니다. 진짜로 떠나가요. 그리고 몸이 고통스러운 것도 떠나가고요. 떠나가요. 그런데 아주 억세게 일을 해도 몸이 안 피곤하고 이런 것들이 된다니까요. 진짜로 돼요. 막 기뻐서 일하면 피곤하던가요? 안 그러죠? 모세가 140, 120, 수해 밝아야 되는데 수해 안 밝아.

 

140이 돼도 기력이 쇠하지 않고 눈이 흐리지 않고 아직은 괜찮아요. 저도 기력이 안 쇠하고 눈도 안 흐려요. 그래서 제가 그거 가지고 맨날 기도합니다. 왜 그렇게 초를 치고 그래요? 아직 100년을 더 해야 되는데 60년을 가지고 초를 치고 내가 제일 늦게 죽을 거예요. 여러분 다 가고 나서 보내고 나서 가야지 먼저 가면 또 엉뚱한 대로 새버릴까 봐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돼. 뭐 아멘이야. 아멘은 내가 제일 먼저 가야 돼. 그 나라는 이제 하나님이 다스림을 받는 그 상태가 그 나라가 이루어진 거죠.

 

우리는 아직도 죽어서 가는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이게 전혀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서는 고생하며 살든 찌질이로 살든 간에 나중에 좋은 데 간다. 이거 누가 그렇게 합리화했을까요? 마귀죠. 마귀죠. 왜? 이걸 움켜잡고 안 흘려보내면 절대로 이게 안 일어나거든요. 지금 물질적인 측면을 말하는 거예요. 아시겠죠? 돈만 말하냐고. 또 그럴까 봐. 지금 물질의 자유함에 대해서 아는 거죠. 맞나요? 주제를 흐리면 안 돼요. 왜 돈만 가지고 이야기했지? 진짜 그렇게 하시면 안 되고 이게 상태라는 개념의 상태 아시겠죠? 그러니까 지금 상태가 되면 되는 거지. 내가 열심히 해서 죽어서 가는 것으로 이제 제발 그건 까먹으세요. 그 나라와 을은 방금 했죠.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죠. 바른 관계가 어떤 거예요?

 

하나님은 하나님 자리에 나는 내 자리에 이렇게 있는 거죠. 하나님 여봐라 하면 네. 이관계죠.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백성 세굴라 가장 귀한 존재로 우리를 소유합니다. 하나님이 유업이라고 그랬잖아요. 에베스 설정할 때 기억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유업이라니까요. 보물은 유업이잖아. 유산이잖아. 여러분들 금덩어리 하나 있으면 막 뭐 도둑 안 맞으려고 주머니 달고 다니잖아요. 안 그래요? 너무 무거워서 안 돼요. 아니 그러면 현찰로 수표로 바꿔서 카드로 넣어다니면 돼. 그렇죠? 그것처럼 품고 다니잖아.

 

품고 보성 여기 품고 다니잖아. 12개 예수님의 가슴에 새겼다고 그랬거든요. 그게 우리예요. 하나님이 될 때만 그런 거지. 내 멋대로 살 때는 하나님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죠? 그게 의라고 그랬죠. 하나님이 이걸 위해서 우리를 불러. 내셨고 그렇죠? 이 관계를 먼저 구하는 거예요. 먼저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 모든 것, 이 모든 것이 뭐든가요? 마태경 6장 앞에 보면 뭘 먹을지 뭘 마실지 걱정도 하지 마라. 들풀을 봐라. 알아서 다 입힌다. 공중의 참새를 봐라. 방앗간에 가면 언제든지 먹는다. 이런 거 다 써져 있잖아요. 그렇죠? 그것 다 너도 그런 존재인데 왜 그거 걱정하느냐 이거지. 니가 그거를 이 모든 것을 구하려고 인생을 여기다 바쳤으니까 안 된다. 이 말이거든요.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건 우선순위 아니고 이게 우선순위예요.

 

이게 먼저고 그러면 이건 따라오는 거예요. 따라오는 거. 그런데 우리는 따라오는 걸 먼저 인생을 여기다가 걸어서 이렇게 이 모든 걸 더하려고 했죠. 그러면 이게 하나님의 경제 법칙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오이코노미아가 안 됩니다. 그럼 이건 하나님이 책임이 안 되는 거예요. 먼저예요. 우리 지금까지 너무 많이 했고. 그렇죠? 그게 언약이고요. 이 상태가 된 것을 영생이라고 그래요. 죽어서 가는 게 아니고 지금 영생. 하나님과 코이노니아 그 다음에 만물과 옆에 있는 사람과 코이노니아 그래서 흘러가는 거죠. 흘러가는 거죠. 먼저예요. 그게 먼저예요.

 

그걸 철저하게 지금 산 가운데 현재화해야 돼요. 여러분. 그걸 안 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교회 열심히 다니고도 힘든 거예요. 고통이 안 떠나가는 거고, 삶이 안 풀어지는 거고, 계속 메인 것 같고, 공공한 게 해결이 안 되고 그런 거죠. 안타깝지 않아요. 이제 여러분은 다 아시기 때문에 여러분부터 먼저 실제화해야 돼요. 이게 영생의 삶을 현재화하는 가장 강력한 기동장치 같은 거예요. 원동기 같은 그런 역할을 해요. 발전기. 이해 가시나요?

 

영원을 지금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만물을 수단화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나를 도구로 내어드리는 게 먼저죠. 그럴 때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이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그 경지에 들어가는 거죠. 우리는 반대로 구해서 그게 완비되면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죠. 그러다가 시간이 다 가버리는데 수구와 슬픈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인생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우리가 가난히 날아가. 80 되신 분 날아가는 것 같죠? 남아있는 게 없는 것 같죠. 우리가 날아가는 것.

 

날아가는데 어떻게 날아가요? 성경 계약이 수고와 슬픔 가운데 날아가는데 맞아요. 맞아요. 수고와 슬픈 80 살고 보면 그것도 눈 깜짝한 것 같아. 그리고는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하고 쓸쓸히 떠나는 거예요. 인생은 다 그런 거 아닙니다. 속지 마세요. 인생은 절대로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스도인이지 짐승이 아니에요. 그렇죠?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나를 통치의 통로로 내어 드릴 때 이건 다 소유 안에 있다고 그랬죠? 다스림 안에.

 

그게 우리의 본질이에요. 우리의 존재라고요. 이 반대로 한번 살아보세요. 어떤가요? 충분히 살아보셨잖아요. 만족이 있었나요? 충분히 그 정도면 충분해요. 저처럼 60년을 더 살아봐야 알겠어요? 그러면은 그 사이에 없을지도 몰라. 이미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니까요. 내일 있을지 없을지 우리는 모르는 거예요. 진짜로 그런 거거든요. 그러지 않아요. 여러분 평생을 이 고통하며 괴로움 가운데 이렇게 살지 말아야죠. 이제는 다 아는데도 그렇죠? 다 아는데도 이거 안 하면 어떻게 돼요? 다 알면서도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돼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이걸 실제로 어떻게 하느냐? 얼마 전에 했어요. 제사장 할 때 상번제 상 상번제를 드려야 돼요. 아침 저녁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통로입니다. 저녁에 자기 전에 내가 오늘 하루 주님의 통로요. 주님의 것이었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때 회개하고 밤에 자는 동안에라도 그렇게 되길 원합니다. 이거예요. 여기는 밤낮으로 되어 있지만 아침과 저녁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하루 종일을 말해요. 영원 안에는 시간이 없잖아요. 우리는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딱 지금을 말해요.

 

지금 이 순간만 말해요. 이게 영혼과 맞닿아 있는 거예요. 그런데 1시간 후에는 닿아 있을지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그렇죠? 직업만 있는 거예요. 하나님 안에는 이 직업만 이게 안 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렇죠? 내일이 안 올지도 모르잖아요. 우리에게 모든 사람에게 다 오는 내일인가요? 아니라니까요. 자고 안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지금만 영혼과 닿아있는 거예요. 이 영혼은 이 영혼은 그래서 지금하고만 닿아 있어요. 내일도 아니고 모레도 아니에요. 내일 돈 좀 벌고 나면 하나님이 택도 없는 소리 돈을 좀 벌긴 했는데 아직 멀었어. 내일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죽어도 안 됩니다. 지금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해야 돼요. 그게 시작이에요. 그래서 아침저녁 지금 순간 나는 주님 것입니다.

 

나는 주님 안에 있습니다. 이것으로 시작을 해야 돼요. 실제화의 시작이에요. 그게 여러분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뜰 때 주님이 오늘 내가 무엇을 해서 무엇을 더 많이 모을까요? 소유할까가 아니고 주님 나를 통해서 오늘 누구를 평정하길 원하십니까? 무엇을 평정하길 원하십니까? 무엇을 다스리기를 원하십니까? 이렇게 해야 돼요. 그게 우리예요. 우리의 정체성. 그게 우리의 본분, 우리의 직업. 그럴까요? 제사장 그래요.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뭔가 하지 않겠어요? 그래요? 그러죠? 그런데 그건 엄청 실제화가 빨리 돼요. 계속하면. 이게 순간순간 팍팍 기억나게 해요. 뭘 하다가도 맞아.

 

이렇게 뇌가 점점 이제 캐치해서 파고들기 시작해서 습관화가 되면서 우리 삶을 인도합니다. 놀랍게도 진짜로 그래요. 여러분 해보셔야 그래서 지금이 바로 영혼과 맞닿는 그때가 되면 나를 위협하는 모든 대상 모든 대상에서 내가 누리고 다스리는 복의 환경으로 변하기 시작해요. 그게 땅이 만물이 만물이 나에게 응하는 역사예요. 그 시작은 아주 작은 것부터예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부터예요. 그래서 작은 것의 원리,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원리 이 두 개가 같이 가야 돼요.

 

누가? 보험 6장 16장 10절 마태오 보험 6장 33절 같이 가야 돼요. 그런가요? 그래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들어와 하나님 내일은 주인은 하나님이지 하나님이 염려할 일이지 내가 염려할 일이 아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하시죠? 그래서 그 다음에 이제 흘려보내는 걸 거기에 계속 추가해야 돼요. 만몬이란 완전히 독이거든요. 그러니깐 설명하기가 쉽지를 않죠. 독약의 설탕을 탄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면 마실 때는 달콤한 맛이 나면서 죽는 거. 그게 맘몬이에요. 그래서 이 맘몬의 독성을 제거하려면 맘몬은 우리를 장악하는 방법이 소유와 축적이었죠.

 

소유하게 하고 쌓아놓게 하고 그것이 줄어들 때마다 불안을 일으키고 두려움을 일으키고 그러죠. 소유는 계속 많은 것을 내가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을 불어넣는 거죠. 그게 탐심과 두려움이라고 그랬죠. 기억나시죠? 만몬이 우리를 어떻게 조정하는가? 말씀을 드렸어요. 소유와 축적이에요. 소유욕과 축적하려는 생각. 그걸 통해서 내가 내 삶의 안전을 행복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만모니나를 노예상꽃 통제하는 방법이라고 그랬죠. 이를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을 여는 거예요. 물꼬를 트는 거예요. 옛날에 여러분 논에 물 대봤어요? Married.

 

저기 히말라야 이런 데 보면은 산에 이렇게 계단식 논 해놓은 거 봤죠? 거기 보면 맨 위에서 뭘 막아버리면 어떻게 돼요? 터지지. 터져서 다 내려가지 그럼 내가 터져 죽는 거예요. 그게 만문에 장악돼서 죽는 거란 말이죠. 물꼬를 하나 이만큼 틀어놨잖아요. 완전히 틀어놔버리면 싹 다 빠져버리고 이 뚝이 이만큼 하면 위에 이만큼만 열어놓으면 되죠. 그러면 이만큼 차고 그다음부터 내려가잖아요. 우리에게 그것부터 하라는 거예요. 그걸 시작하면 내 손에 있던 것이 흘러가죠. 점점 흘러가죠. 내 손에 진 것이 하나님 것이 맞네요. 라는 그게 증거죠. 흘러가게 놔두기 시작하면 나는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게 맞네요. 라는 온몸으로 증가하는 거죠. 그게 그렇죠. 온몸으로 말하는 거죠. 그런가요?

 

이웃에게 흘러보낼 때 그 물질은 더 이상 불의한 재물이 아니라 영원한 처소를 사는 거룩한 재물이 되는 거죠. 그게 바로 원리예요. 만몬의 독성을 제거하는 거예요. 그걸 큰 거 말하는 거 아니야. 작은 물 한 잔. 그게 내게 한 거라는 거죠. 그래서 이게 실제화를 하려면 움켜쥐려고 할 때는 만몬의 노예가 돼요. 100%입니다. 그건 성경의 원리가 그래요. 그래서 만물이 나를 움켜쥐고 흔드는 거하고 똑같잖아요. 그런데 손을 펼 때 이제 만물의 통치자가 되는 거죠. 통치를 실제로 하나님이 하지만 나를 통해서 흘려보내는 게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잖아요. 거기에 동참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이제 내가 통치자가 되는 거죠. 내가 지배자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완전한 순종을 통해서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게 역설이라고 아까도 그랬죠.

 

그래서 내가 베푸는 그 순간이 바로 직원과 영원이 딱 맞닿는 시간이에요. 연결이 되는 시간이에요. 그걸 보정하는 게 성령이죠.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자꾸 저기에 갖다 줘라. 먼저 전화해서 화해해라. 먼저 용서해라. 그거 물질하고 다를 바. 뭐가 있어요? 내가 움켜잡고 있는 건 똑같잖아요. 다시는 내가 안 하리라. 그것도 내가 움켜잡고 있는 거죠. 그런데 먼저 해라. 먼저 해라. 꿀물 타라. 그거가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뭐예요? 그 꿀물 타는 걸 통해서 그 사람을 내가 하겠다. 어떻게? 통치하겠다. 그거잖아요. 그렇죠? 그게 물질을 흘러보내는 거랑 내가 가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하나님께 받아서 흘려보내는 거랑 똑같죠. 원리는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내 자신의 문을 열어서 흘러보내기 수문을 여는 거죠. 흘러보내기 시작할 때 그때가 바로 바로 그때예요. 그때가 이게 이루어지는 거예요. 이게 이루어지는 거고, 하나님 나의 통치가 실제 되는 거예요. 실제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해야지. 아무리 해도 소용없어요. 아무리해도.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그래서 내가 흘려보내는 그 순간은 이제 물질의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고 물질을 부리는 청지기로서의 영적인 실세 실권을 가지고 행하는 자가 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이걸 하셔야 돼요. 코람데오 항상 저 앞에 있다. 내가 지금 내가 뭘 하더라도 저 앞에 있다. 그걸 아셔야 돼요.

 

주님은 그걸 모를 것 같아요. 아주 철저하게 기록하고 있어요. 내가 뭐하는지 아주 전부 다 안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하나님은 대화하시죠. 그래서 지금이 바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천지기 노릇을 하는 순간이다. 라는 걸 잊지 말아야 돼요. 내가 지금 그 안에 있다. 그게 바로 그 말이었어요. 바로 이제 좀 이해가 빨라지죠 미래에 가면 우리가 하늘나라의 영생을 영원히 누리죠. 그걸 지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를 지금 이 땅에 끌어내리는 방법이에요. 그게 하나님 앞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거죠. 이건 믿음을 통해서 산 가운데 실제로 나타나겠죠.

 

이 부분을 정확히 새겨야 돼요. 여러분 적용해보세요. 제발 되나 안되나 적용해보세요. 하셔야 돼요. 왜냐하면, 우리는 거기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해서 거기 가려고 하는 게 아니고 거기에서 온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지 않고 있다라는 것은 이건 심각하게 자신을 봐야 돼요. 나는 거기에 속한 사람이 맞는가 이것부터 점검해 봐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속한 사람이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죠. 안 하고 있는 것은 속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 불의한 청지기처럼 자기 멋대로 하고 있든지 둘 중에 하나죠. 그럼 점검할 쉽죠? 간단하잖아요. 내가 어떻게 사느냐? 금방 알아요. 그걸로 점검을 하셔야 돼요.

 

아버지가 그렇게 사나 안 사나 보지 말고 편집사가 그렇게 사나 안 사나 생각도 하지 마시고 나부터 보면 돼 그러면 이제 에베소스 1장 말씀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충만함에 거한다면, 우리는 오늘 만나는 모든 상황 속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자가 더 이상 아닌 거예요. 더 이상 아닌 거예요. 해보세요. 아닌 거예요. 그 원리로 한번 살아보세요. 아주 작은 것부터 해보세요. 삶이 어떻게 되는가 변하는가? 내 심정이 어떻게 변하는가? 그것부터 나와요. 부족한 자가 아니에요. 부족함을 하나님의 자비로 채우는 자로 살게 되는 거죠.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우는 자로 살게 되죠.

 

그러면 하나님의 것이 왜 흘러나갔기 때문에 흘러 들어와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이제 물꼬를 2개 트럭 그러면 2배로 흘러 보내줄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하나 쓱 막아서 좀 쓰고 또 보내고 이러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많이 흘러보내면 빨리 채워야 될 거 아니에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경제학이에요. 우리는 그런 걸 모르기 때문에 딱 가둬놓고 나 혼자만 하려니까 물이 썩어버려. 그렇죠? 그게 물이 계속 돌아야 미꾸라지도 새로 들어오고 그러지? 아니에요. 달팽이도 새로 들어오고 그러지. 고여 있으면 다 썩어버려. 우리는 그런 거 보면 내가 썩는다고요. 내가 내 존재가 썩어요. 그래서 내 존재가 냄새가 나는 거예요. 막 하수구 냄새가 나고 그러죠. 축사할 때 안 맡아보셨나?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될 때 그게 바로 만물을 다스리는 청지기의 당당함이 그게 나오고 흘러보내면 또 들어온다. 없는 걸 어떻게 흘러보내라 하겠어요? 하나님이 절대로 말 안 해요. 하나님은 있는 걸 받지 없는 걸 달라고 안 합니다. 그건 완전한 자유잖아요. 우리는 이거 보내라 하면 주겠다. 라는 말과 똑같은 거예요. 왜? 흘러보내면 없잖아. 그래요. 그런데 흘러보내기 전에 먼저 줬잖아요. 아닌가요? 먼저 준 거잖아. 그러니까 흘러보내고 없으면 없어요. 주님 그러면 또 들어오는 거지. 그러면은 이제부터 내가 물꼬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개 트겠습니다. 그럼 들어오자마자 다 나가버려.

 

그러면은 자고 일어나면 다 넘치게 들어와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하나님의 원리예요. 여러분 그게 정지기의 당당함이죠. 그러니까 많이 쌓아놓고 thinking대는 사람은 절대로 못 올려보내죠. 그래서 그것 때문에 움켜서 이러고 사는데 하나도 없는 사람이 이러고 까불고 있어. 사도바울이 그랬잖아요. 우리는 그런 사람이죠. 아멘 아닌가요? 그런 사람이라니까요. 그래서 움켜쥐고 있을 때는 하나님의 법이 안 통하죠. 그래서 내가 평생을 그걸 움켜진 걸 더 쌓아야 되고 더 쌓아야 되고 더 쌓아야 되고 거기에 내 몸과 마음과 온갖 정력을 다 쏟아부어야 되는 거죠. 그게 바로 움켜쥐는 거에 대한 노예가 돼버립니다.

 

물질이 돈이 내 주인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움켜쥐는 건 끝이 없어요. 끝이 없어요. 만족 안 하죠. 절대로 죽어도 못합니다. 그래서 평생 거기에 매여 죽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말씀하신 육체가 됨이라 저주예요. 그걸 다 끊고 나를 부한 자로 흘려보내는 자로 만들어놨는데 아직도 우리는 그렇게 사려고 하죠.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성경적인 원리고 하나님의 원리예요. 지금 우리 손에 들린 작은 하나 주님의 마음으로 사용할 때 이 영생이 지금 실제가 돼요.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야. 영원히 그때 지금이야. 그런데 하나만 더 말씀을 드리죠. 그 흘러보내기 전에 먼저 채워야죠. 맞나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충만 안에 거하는 게 문제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런 사람이죠. 에베소스 1장 보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다라는 걸 인식하는 게 먼저예요.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이다. 라는 걸 알아야 할 거 아닌가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움켜쥐고 있어 봐요. 내 인생을 갉아먹는 거예요. 거기에. 그거 움켜지는 데도 많은 힘이 들어야 되고 더 많이 움켜지려면 더 많이 거기에다 정열을 쏟아야 되고 가족도 희생시켜야 되고 친구도 희생시켜야 되고 내 시간도 희생시켜야 되고 모든 걸 다 희생시켜야 되잖아요. 그런데 안 흘러나가죠. 그래서 죽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충만함 안에 먼저 거하는 게 우선이에요. 이게 먼저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9절 요한이에서 1장 3절이 바로 크게 청직 역할을 수행하기 전에 주인의 식탁에 먼저 초대를 받은 사람이 돼야죠. 그렇죠? 그래야 뭘 끌고 오든지 하죠. 그런가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가 먼저죠. 그걸 실제 그래서 고린던스 1장 구절로 다시 가보면 우리를 왜 불렀다고요? 그리스도와 사귀기 위해서 불렀다고 그게 코이노니아잖아요. 사김이라는 건 코이노니아 연합 하나 된 삶을 말한다고 그랬죠. 그게 먼저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데 오늘과 같은 이런 말씀을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려고 열심히 애를 씁니다.

 

어떻게 애를 쓰는가 하면 교회 열심히 하고 열심히 헌신하고 열심히 충성하고 이게 그 나라를 이루는 건 줄 알아요? 아니에요. 그건 그 나라와 의가 아니고 내 육신의 자기 주장 의. 그래서 사도와울이 죽은 거예요. 고통 가운데 죽었다고 그랬어요. 그걸 율법과 복음의 차이예요. 생명이 없는 사람은 율법과 복음을 구분 못 합니다. 생명 안으로 들어와야 복음이 뭔지 알아요? 복음은 우리를 생명 안으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고 그 생명 안으로 들어오면 연합되어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그다음에 이제 만물 안으로 흘러보내는 관계가 되는데 그것 없이 그냥 율법적인 믿음 안에서 하면 이게 가량이 찢어지는 거예요.

 

아무리 해도 그가 안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무리 내가 자선을 베풀어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흘러가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하나님이 다스림이 아니죠. 그건 뭐예요? 내가 어떻게 해보려는 거잖아요. 그래서 실패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사김이 먼저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두었다고 그랬잖아요. 왜 두었겠어요? 사귀라고 교제하라고. 그건 하나 됨을 말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내 생명이 동일한 거죠. 그 하나를 말해요. 그것 없이 할 수 있는 거 아니죠. 예수님의 능력이 없이는 사랑을 못하죠. 기쁨을 누릴 수 없죠. 사랑과 희락과 화평가 안 나오죠. 그런데 우리는 그걸 만들어내려고 하죠. 율법 안에서.

 

그래서 수고와 슬픔밖에 없는 거예요. 해도 해도 안 되는 거고, 계속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실패한 거예요. 여러분이나 저는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래서 너를 불러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와 더불어 사귀게 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믿음으로 우리를 그 안에 집어넣고 사귀게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1차적인 목적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 오면 무조건 하나님이 일을 한다고 그러죠. 하나님이 일을 한다고 바빠 죽어. 전부 다 얼마나 바쁜지 몰라. 일주일 내내 프로그램에 탁 매여가지고 내일은 뭔 요일? 내일은 뭔 요일? 내일은 이거 하는 날 내일은 척하는 날 내일은 선거대 연습하는 날 내일은 팥죽거리는 날 완전히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하죠.

 

그게 먼저가 아니에요. 먼저 이 관계가 먼저예요. 이 관계가 문제예요. 그런가요? 그것 없이 하면 그게 율법이 되어서 나를 죽이는 거예요. 그게 로마스 7장이죠. 그래서 우리를 부르신 1차적인 목적은 사김에 있어요. 그 안에 요만보고 17장, 21절 거기 연합되어서 그 안에 거하는 게 뭔지 내가 아버지와 하나 된 것 같이 너희도 그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 되길 원한다. 그게 먼저예요. 그래야 그 다음에 흘러가지. 뭐가 있어야 흘러가지. 어떻게 흘러가겠어요? 그런가요? 이게 청지기와 연결해보면 주인의 마음을 모르는 청지기는 결국 자기 이익을 계산하게 되죠. 그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안에 있어서 연합해 있어야 하나님을 알고 뜻을 알고 다 그게 생명이 흘러와서 능력도 되고 이렇게 해야 하나님 뜻대로 할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 밖에 있어 봐요. 모르면서 계속 자기 선악 기준으로 하는 거죠. 그러죠 IMO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선하면 하나님도 선하게 생각할 것이다. 라는 잘못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아니에요. 절대로 하나님 뜻대로만 선한 거예요.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어요. 우리는 선하지 않아요. 그 휴머니즘 인간이 짜내는 생산하는 그 지극의 선도 하나님에게는 선이 아니에요. 악이에요. 죄악이라 하나님과 분리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연합하지 않고는 이걸 못하는 거예요. 절대로 율법이 되고 자기 의가 되어서 결국은 자기가 죽고 망합니다. 그게 율법이에요. 그래서 주인의 마음을 모르니까 어떻던가요? 아까 제 멋대로 허배하잖아요. 그래서 주인이 오라 하니까 그때 푹 생각났죠? 푹. 이거 아니구나. 그때 팍 생각난 거잖아요. 그러면 지금 생각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지검 1초 지검 주님 뭔가요? 이거면 되는 거지. 왜?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걸 잠깐 있고 멋대로 했잖아요. 청직이 제멋대로 했잖아요. 그래서 소환됐잖아요. 소환돼서 잘못했습니다. 하고 다시 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에요? 넌 잘못했으니까 죽여버려. 이거 안 하니까 아닌다니까요. 똑바로 해 이 말이지. 그런가요? 지금 아이고 잘못했네요. 여전히 지금 똑바로 할게요.

 

그러면 되죠. 그럼 교재도 없는데 뭐가 똑바른지 알아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안에가 먼저예요. 그러니까 그게 안 되면 결국은 자기 멋대로 하고 자기 이익을 계산하고 자기가 옳은 대로 합니다. 우리는 옳을 수가 없는 종자거든요. 그걸 아셔야 돼요. 그래서 주님과 깊이 사귀는 자는 주님의 기쁨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그게 생명을 공유한 자잖아요. 네 마음은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네 마음이고 이렇게까지 가는 거예요. 결국은 우리는 그 단계까지 가야 돼요. 그래서 내 생각대로 한 게 주님의 생각이 돼. 야 왜 새 생명? 새 생명은 이수님의 생명하고 똑같은 거잖아요. 옛것이 다 없어져 버리고 나면 그것밖에 더 있겠어요. 그러면 내 멋대로 하면 아까 정직이가 지 멋대로 했는데 그게 지혜로운 거죠.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거기까지 가야죠. 그게 우리예요. 이미 그렇게 되어 있잖아요. 시간 안에서 그거를 실행해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가 충성하는 것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에요. 친밀함부터 나오는 거예요. 제가 주님과의 교제하면서 했던 그 친밀함이에요. 친밀함. 그래서 모든 사회학 모든 일, 교회의 일뿐만 아니라 모든 치유사회의 모든 일의 시작은 그 친밀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교재에서부터 코이논이야. 그걸 벗어나면 전부 다 내 것이 돼버려서 그게 나를 죽여 그 율법은 의무는 죽이는 거다 라는 말씀이 바로 그거예요.

 

그다음에 고란절에서 1장 9절에 그다음에 요한은 예를 들어서 1장 3절로 가면 이제 거기에는 보면 생명을 공유하는 걸 말해요. 진짜로 우리의 사김은 이것이니 바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거라고 그랬죠. 그 함께가 생명의 공유예요. 생명의 공유. 그냥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걸 말하는 수준이 아니에요. 그렇죠? 코에노니아 자체가 하나로 연합되는 거라고 말했죠. 그게 현실화되도록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했고 계시록에 완성이 된 게 나와 있고 그 모습이라고 그랬죠. 우리는 이미 완성되어 있고 그 모습이기 때문에 그 완성된 것을 지금 시간 안에서 끌어내서 행해야죠. 그것은 율법이 아니라 삶 자체죠. 세 사람의 삶의 방식 자체잖아요. 율법이 아니에요. 그런가요?

 

주야로 묵상하는 건 율법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주야로 묵상하는 율법이던가요? 예수님 자체가 복음인데 왜 삶이 그거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런 삶을 만든 게 아니고 삶이 그거기 때문에 그런 삶을 자연이 살은 거예요. 자나깨나. 말씀 조심 꺼짓 말씀 다시 보자 그게 삶이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그러지 않는가요? 우리 하나님과의 그리스도와의 사김 그 자체는 우리 존재 자체예요. 노력해서 이루는 게 아니고 존재 자체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냥 되는 거예요. 하기 싫어도 그냥 되는 거죠. 하기 싫은 건 내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진짜 나는 하고 싶어 죽지도 않아. 그냥 그냥 그게 삶이요. 그게 삶이요.

 

그냥 자연스럽게 사라지죠. 암에 왜 입을 다물죠? 어색해요. 아 재고해야 돼 그러면 사김은 단순한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가 아니고 생명을 공유하는 걸 말해요. Yet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완전한 하나를 이루고 거기서부터 나오는 걸 말해요. 단순한 대화 수준이 아니에요. 삶 자체가 공유되는 거죠. 그러면 그 통치권은 자연적으로 나오겠죠. 흘러가는 건 자연적으로 나오겠죠. 이게 우리예요. 이게 우리의 존재라니까요. 애쓰는 게 아니에요. 사실은. 왜 이렇게 주안에 거하여 있는데, 또 주안이 거하라 이런 말도 있죠.

 

그건 뭐겠어요? 너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게 나와야 된다. 라는 거지. 주안이 거해서 열심히 노력해서 거해서 그 삶을 보여주라가 아니에요. 그런가요? 빨갱이는 가만히 있어도 빨갱이잖아. 노랑이는 가만히 있어도 노랑이. 여러분은 천국의 존재이기 때문에 가만히 가도 흘러가야 돼. 그걸 말하는 거지. 억지로 꺼내서 주라. 그 말이 아니에요. 그게 그냥 제일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냥 하라는 거예요. 안 하고 있으니까. 그 말이죠. 이해 가시죠? 그 생명이 이미 나와 하나가 됐기 때문에요. 사귀면 단순한 대화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함께함, 생명의 공유 나눔. 그걸 말해요. 신성의 충만함을 보여주는 거예요. 충만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고 보여주는 거예요.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해졌다. 했지. 질 거다 했나요? 그런 거 잘 아시네 잘 아셔 근로자에서 2장 구절은 그리스도가 먼저 충만하고 이게 청지기와 연결을 해보면 우리가 만물다스리고 누릴 수 있는 이유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에 우리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발전소의 전기 전선을 연결해서 나에게 연결하는 것도 똑같아. 이 플러그를 여기다 꽂는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럼 내가 전기를 생산하는 건가요? 아니죠. 바로 그거예요. 내가 힘써 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스의 생명에 플러그가 꽂혀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흘러나오는데 그게 온몸으로 보여주는 게 베풀고 남을 위해서 내 자신을 주고 이런 게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거죠. 율법 안에서는 그거를 하라고 막 설교하죠. 왜 그렇게 성경에 하라는데 안 합니까? 용서하라는데 왜 안 합니까? 사랑하는데 왜 안 합니까? 그러면 이제 사랑하려고 밤새 묵상한 저 주님 내가 오늘 또 사랑 못했네요. 오늘도 내가 째째하게 오가지고 꼭 틀어지고 있었네요. 그러면서 내일부터 하겠습니다. 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면서 나가면 되나요? 안 돼요. 죽어도 안 되는 거예요. 그게 플러그가 빠져 있는데, 어떻게 되겠어요? 그게 율법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율법 안에서 그걸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다 죽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오호라 나는 공관자로다. 이 사망의 몸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 말씀에 속아서 내가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그게 로마스 7장이고요. 그래서 8장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거기서 해방해서 그래서 성령이 보정하고 인을 친 거예요. 소유하고 나를 그렇게 살도록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아야 영혼을 지고 살 수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날 거 아닌가요? 그게 성령의 부정이야. 마치 성령은 전선 같은 거예요. 프로그램 확 꽂으면은 이제 성령을 통해서 흘러들어오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그게 성령님이에요. 그 뽑힌 상태에서 그거를 생산하려고 선풍기를 돌리려고 경운기 시동 그런 것도 아니고 아무리 해봐요. 내가 나온아 거짓을 수십 년 한 거예요. 저도.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자식 봐라. 전기 안 꽂혔잖아. 이 자식아 꽂아야지.

 

갑갑해요. 그렇죠? 여러분 아직 꽂혀 있어요. 확인해 보세요. 꽂혀 있는지 뽑혀 있는지 고장 났는지 전선이 꼬였는지 하나가 터졌는지 합선이 일어났는지 보시라고 그것도 안 보고 난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하지 마시고 만하면 에베소스 1장이죠. 22절, 23절. 이게 우리의 몸을 통해서 흘려 보내겠다. 이게 바로 사규임이에요. 사김이라고 주고받는 대안은 시작이고요. 이 통로가 흘러가는 게 그게 사김의 본질이에요. 그러죠. 우리는 그런 말씀에 따라서 그렇게 행하고 있다면 이미 완전한 사김 안에 있는 거죠. 그렇죠? 왜? 이 말씀이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말하는 거니까요. 영으로 들릴 때.

 

그래서 영으로 열린 말씀이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게 나를 그렇게 자연적으로 만들어 가잖아요. 그렇죠? 사김이 다스림보다 먼저고 먼저인 이유는 만약에 사김이 없이 청지기직만 강조해서 그거를 다스림만 강조하면 이제 신앙은 그때부터 노동이 되는 거예요. 그걸 율법이라고 그래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빠졌어요. 저도 그랬고요. 율법 안에 빠져서 그거를 아주 성실히 충실하게 얼마나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결과가 수고와 슬픔인 거죠. 공허. 그게 그런 종교적인 노동이 돼버려요. 그게 서도벌이 말했던 거예요.

 

고린도사삼작의 의무는 율법은 죽이는 거고, 영은 살리는 거 이 율법이 죽이는 거 안에서 열심히 죽으려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사도가을도 그래서 죽었다고 그랬죠. 그런데 그러나 그리스도의 충만함 안에 거하는 사김이 전제가 되면 이제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함 안에서 사김이 먼저 이루어지면 이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이거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지? 그거 없어져요. 나를 지킬 수 있지 이런 개념도 없어져요. 주님과 사귀게 돼요. 왜요? 주님의 생명. 주님이 그런 거 걱정하던가요? 베드로야. 내일 뭐 먹을까? 생선 좀 잡아올래? 그런 말 하던가요? 그런 걱정 안 하잖아요. 내일 태풍 불면은 낚시 못할 텐데 어떡하지?

 

오늘 미리 내일 먹을 거 반만 먹고 남겨놓을까? 이런 거 하던가요? 안 하죠? 그게 주님 안에 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주님 안에 있으면 그런 거 걱정할까요? 안 하겠죠? 하겠어요? 안 한다니까요. 그래서 주님과 사김이 먼저 전제가 되면 이제 그 주님 안에 있는 거죠. 그러면 주님이 모든 것을 공급하는 분이심을 알죠. 그런가요? 빌리퍼스 419에 있을 것을 그리스 안에서 공급하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그 목자가 예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목자잖아요. 그렇죠?

 

예수는 주요 그리스도의 주가 될 때 내 목자가 돼서 여호 하나 언약의 하나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내 목자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는 거예요. 절대로 없는 거예요. 절대로. 그게 바로 그게 전제가 먼저 돼야 돼요. 그래서 부족함이 없는 걸 알아요. 이제. 하나님이 언제든지 공급하신다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사도가올이 먼저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한 거예요. 여러분 그게 성령과 능력이 임해서 우리 눈을 열어줘야 아는 거예요. 지혜와 계시의 영임에서요. 그렇죠? 그래야 아는 거지. 내가 아무리 율법으로 연구해도 이걸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이건 한순간에 성령의 역사만 알아버릴 수도 있다니까요. 그래서 오순절로 봐요. 성령의 화물이 맞는데 한순간에 전부 다 풀어버리잖아요. 그게 수십 년 동안 신원생활을 해서 그런가요? 아니거든요. 그 순간에 지혜와 계시의 형이면서 하나님을 아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 모든 공급자의 힘을 아는 거예요. 그리고 안전장치임을 아는 거고, 내 미래의 완전한 보장임을 알아버리는 거예요. 내가 배워서 아는 게 아니고 그 성령이 들어와서 그걸 알게 하는 거예요. 알게 하는 그거 풀어도 아무 일 없다. 다 줘버려도 아무 걱정 안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오는 거죠. 이해가요? 그게 바로 성령이라고요. 그래서 그게 되는 거죠. 이제 먼저 그게 다스림이 사기보다 먼저 가는 거죠. 그래서 그러면 어때요? 재물을 쌓아두려는 탐욕이 내 안에서 역사를 못하는 거고, 그때부터 이제 재물에 대해서 자유함을 누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렇게 했더니,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네. 그래서 좀 더 해버렸어. 그러니까 이것 봐라. 흔들어 넘치도록 또 다시 넘치도록 채워야 흘러갈 거 아니에요. 그렇죠? 째째하게 해주면 넘어갈 게 없잖아.

 

물도 이게 이만큼 와야 넘어가지 그때부터 이렇게 파놨는데 넘어가야 이만큼 해놓고, 야 넘어버내라 넘어버리고 넘어갈 게 있어야지. 그래서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야 넘어갈 거 아닌가요? 그게 하나님이에요. 그걸 알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겠어요? 이제 연락해. 아 이거 움켜쥐려고 고생고생했는데 아이고 바보같이 왜 그래? 이러기 너무 편한데 그래요. 그래서 기도할 때도 이렇게 아는 사람 있죠? 왜 웃어요? 그렇게 했어요. 이렇게 하세요.

 

이제 이게 이루어지면 이제 내가 만물의 만물의 세상의 모든 것에 종에서 해방되기 시작합니다. 이걸 맛봐야 하죠. 맛봐야 하세요. 실제로 해보셔야 돼요. 그러면은 이제 두려움이 제거되고 염려가 제거되고 권위가 회복이 돼요. 권위가 만물의 주인의 친구다. 내가 그게 바로 에베소스 1장 23절 아메 그 충만한 자가 나의 주인 되신다. 나의 물주시다.

 

그러면 이제 내가 뭔가 가져서 이렇게 가우다시 가우다시가 그런가? 그거 안 해도 돼. 이제 언제든지 하면 돼. 언제든지 까불고 있어. 그래서 남편이 그러면 까불고 있어 하세요. 더러워서 안 줘도 돼 이렇게 해버리세요. 아메 왜 이렇게 웃어? 교장 선생님한테 가서 그렇게 까불겠어. 이렇게 하다가 잘린다. 지혜롭게 하라잖아요. 지혜롭게. 교장 선생님 하나님이 쓰시라 합니다. 이렇게 해야지 하나님이 오늘 휴가 보내라 합니다. 이렇게 해야지 그냥 내가 와서 휴가 갈 테니까. 꼼짝 마 이러면 그날로 집에 가. 휴가 안 가고 집에 갑니다.

 

집에 그래서 당당해지는 권위가 회복이 되고 두려움이 제거되고 염려 탐욕이 제거되고 권위가 회복되고 그다음에 영생이 실제로 지금 현재가 그때 이루어지는 거예요. 지검주님과 교재. 해야합니다. 죽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교제는 대화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생명을 공유하는 거예요. 삶을 공유하는 걸 말해요. 주님의 삶을 공유하는 거예요. 그러면은 때로 모든 걸 나 존재를 흘려보내기 시작할 때 바로 그때가 영생이에요. 그게 지금 영생이에요. 지금 영생. 그래서 결론은 존재가 행함을 결정하는 것. 우리는 행해서 존재가 되려고 노력했죠.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했죠. 다 실패한 거예요. 그래서 안 되는 겁니다.

 

죽어도 안 되는 겁니다. 우리는 주님과 원팀이에요. 아시겠어요? 따로 놀면 안 됩니다. 여러분. 한 하나가 되어서 그분의 자원을 흘려보내는 거지. 내가 노력해서 억지로 물을 갖다 대는 거 물 찍어 들고 와서 한 붓고 물 찍어 들고 와서 붓고 그거 아니라고. 그냥 열어라 하면 열면 돼요. 닫으라 하면 닫으면 돼요. 채울 시간이다. 그러면 그런 거죠. 그럼 지금이라는 시간 안에서 영원을 사는 법을 이제 우리는 다 아는 거죠. 다 말했잖아요. 물질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법을 다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런데 이 의식의 전환이 생각보다 삶에 부딪혀 보면은 이게 안 쉬워요. 그렇죠?

 

그거를 이제 우리를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은 그게 왜 그런가 하면 우리의 몸에 배어있는 결핍에 대한 본능 때문에 그래요. 저주의 본능이죠. 이미 다 가져갔는데도 아직 좀 몸이 남아 있잖아요. 그 몸의 기억 속에 습관 속에 마치 코일링 되어 있는 것처럼 그걸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해서 그걸 쪼개 내버려야 되는 겁니다. 새 회로를 만들어 내야 되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저주의 증상이 남아 있어요. 그게 끌려갈 수 있어요. 얼마든지. 그런데 그게 끌려갈 때 예를 들어 장고를 보고 떨림이 올 때가 그때가 바로 불안할 때가 아니가 때가 바로 이 영생을 실천할 때 기회죠. 아마 기회죠. 자주 부족한 게 좋겠죠. 기회를 포착해서 그때 어디서 까불고 있어?

 

이렇게 장고가 나를 해결하지 못한다. 네, 해결자는 하나입니다. 이 편도체 하이재킹 그때 해야 돼. 우리가 해야 돼. 이제 이미 죽은 저주의 증상이 아직 나무 밑동을 잘라도 열매는 그냥 맺어요. 그렇죠? 금방 안 시들죠. 마치 그런 것처럼 그때까지는 우리가 정복해야 돼. 어쩔 수 없어요. 그래서 작은 것부터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게 그런 것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게 위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제 내가 그 안에 있는데, 위기가 아니잖아요. 위기가 아니고 기회죠. 진리대로 내 삶 가운데 이루어질 기회가 온 거잖아요. 할렐루야 해야지. 그러면 아멘 남편이 또 확 움켜잡고 있으면 할렐루야 기회가 왔네. 드디어 하늘의 것을 내가 흘려보낼 기회가 왔네. 이렇게 해야지. 아이고 죽었네. 저 인간 언제 또 마음이 풀릴까?

 

가서 또 알랑방구 끼고 그러면은 그게 좋은 노릇 하는 거지. 좋은 노릇 하는 거지. 평생 아멘. 그래서 돈 벌러 가는 거지. 성질 나 너만 발 있어. 나도 발 있다. 그러니까 성질 나 좀 벌면 갈라 쓰자. 그렇게 되는 거죠. 아닌가요? 맞아. 왜 여자들이 돈 벌겠어요? 괜히 경제적인 독립을 하려고 그러죠. 그런데 독립을 하려고 보니 한 달에 300 하니까 될 것 같은데, 보니까 안 되거든. 400으로 500까지 가야 된다.

 

그러면 이제 투잡 이렇게 뛰고 하다가 골병 들여서 쓰지도 못하고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하다가 아이고 어깨 아파라 어깨 아프죠 거기 손가락도 좀 아프고 지금 보니까 허리도 아프고 뒤지겠어 내가 그걸 쳐다보면 아파 그래요. 그러니까 정복을 하라니까 가서 그냥 정복당하고 있으면 어떡해요. 그래서 마귀는 계속 그래요. 그걸 너는 너 필요하다 너 필요하다. 그걸 보고 막 졸아들게 만들죠. 그럴 때마다 그걸 바꾸세요. 이 지금이 기회다. 절호의 찬스다. 절호의 찬스. 아멘 절호의 찬스다. 영생을 현재 할 수 있는 강력한 훈련 기회가 왔다. 아멘 그래서 없어도 뻗어버리세요.

 

할렐루야 주님이 내일 당연히 먹을 걸 오케이 옵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아멘 남편하고 둘 다 뻗어버리세요. 가서 할렐루야 아이 까짓것 뭐 죽기밖에 더 하겠어? 안 죽어? 그러면 남편한테 가서 뻗어버리세요. 니 안 줘도 된다. 인간아 너보다 더 큰 물주 여기 있다. 여기 한 대 맞는다고요? 그러다가 지혜롭게 하시라니까 지혜롭게 주님 그렇게 한 말 해버릴까요? 그럼 하라. 그러면 가서 그렇게 전하라 하겠다. 하나님이 까불지 마라.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 말도 안 교재가 먼저라고 그랬잖아요. 교재가 먼저 그거 행하는 걸 먼저 하려고. 그래서 이렇게 해보세요.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교재가 안 됐잖아. 그럼 교재가 안 됐는데 먼저 가서 하면은 한 대 맞고 이빨 먹지도 못해 그러면 아시겠어요?

 

무조건 그만두면 안 되고 주님 이렇게 하고 나서 그 다음에 해야 돼요. 아시겠어요? 돈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이 사김을 더 진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이제 마지막으로, 드리죠. 우리는 뭔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항상 앞서죠. 청지기적인 책임감. 그건 꽝이에요. 절대로 그거 먼저 하면 안 돼요. 그게 앞서면 의식의 전환은 고통스러워요. 전환이 안 돼요. 숙제가 돼버려요. 그러면 이게 점점 고통으로 와요. 그래서 거기에 매여요. 율법에 매여버려요. 그래서 그걸 율법이라고 하고 욕했던 거예요. 사람들.

 

먼저 그걸 해야 되는데 안 하고 그걸 안 하려니까 짜증나고 하려니까 안 되고 막 이러니까 율법이라고 막 그렇게 말한 거예요. 그건 내가 이해하죠. 먼저 1장 구절이 먼저예요. 그 사기만 해서 그걸 실제화하는 게 면제라고요. 그렇죠? 하나님 나라의 부호를 생각하면서 막 애써서 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 부여함 자체이신 그분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확보해야 돼요. 아시겠어요? 그게 먼저예요. 그것도 안 되는데 알았어? 이 영감. 이 잘 먹고 잘 살아 하면 그때부터 이제 물만 마셔야 돼요. 물도 못 먹게 할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 안으로 먼저 들어가야 돼요. 그게 먼저예요. 그걸 확보해야 돼요. 그래야 플러크를 꽂아야 선풍기를 돌리지.

 

그렇죠? 그거 먼저 꽂으세요. 선풍기 하루 종일 돌리면 어떻게 해야 돼요? 뭘 어렵게 하루 종일 꽂아 놓아야지 진짜 아이고 뽑지 말고 하루 종일 꽂아 놓으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하루 종일 주님한테 확 박혀 있어요. 그리고 흘러나가도록 그러면 되는 거잖아요. 밖에 나왔다가도 얼른 꽂아버리세요. 깜빡했네. 어이구 꽂는데 이게 1단을 안 넣었네. 그럼 또 얼른 가서 넣으면 될 거 아닌가요? 잘못했다. 할 시간이 어딨어요? 가서 얼른 꽂아야지 그런가요? 그래서 작은 것부터 먼저 한번 해보세요. 그래서 성공하면 이제 달라져요. 달라진다니 그게 우선이에요. 그 안에 있으면서 이제 작은 것부터 시작을 해야죠. 이해가시나요? 영생은 그런데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이미 주어진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그 방식대로 사는 것은 시작을 해야 돼요.

 

내가 영생을 살게 해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면 뭐라고 그러겠어요? 하나님이? 니가 이미 그다 그걸 살게 달라고 하면 어떠냐 어떻게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요. 그냥 하면 되는 걸 그저 살게 주시옵소서 미워하지 않게 주시옵소서 기도하면 안 되는 거야. 사실은 그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는 충만함이 내게 있는데, 뭘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 아닌가요? 그 안에 들어가면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부엉이한테 계속 그랬잖아요. 앵 크리스토. 앵 크리스토 계속 그 안에 그게 먼저 이해 가시죠? 그래서 그 의식이 완전히 전환되고 삶이 전환되기 시작하게 되면은 그 끝에는 어떤 게 기다리고 있는가?

 

그게 바로 코린도스 6장 10절이에요. 이해 가시죠. 없어도 다 있는 것 같고, 있어도 없는 것 같은데, 많은 사람을 다 부욕해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약한데 강한 것처럼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 실제 일어납니다. 실제 일어나야 돼요. 그거 안 일어나면 우리는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예요. 성경이 이미 다 보정한 거고, 성령이 보정한 거고,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장치가 다 가동되고 있어요. 그래서 먼저 우리는 소유가 아니고 존재가 먼저 돼요. 존재. 존재 이행이 먼저 돼요. 그래서 하나님과 코이노니아 그다음에 만물과 코이노니아 옆사람과 코이노니아가 일어나지 나는 왜 그 일이 안 일어날까? 그러면서 열심히 그거를 정직의 직무를 행하려고 하면 거기서부터 이제 고통이 시작돼요. 고통. 율법적인 행함 가운데 메말라가는 거예요.

 

점점 메말라가는 거예요. 이제 마지막 결론을 맺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채워야 할 결핍이 없는 상태여요. 사실은. 그렇죠. 우린 그저 안에 있는 자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어떠한 것도 나를 흔들 수 있는 근거가 없어져버린 겁니다. 이해하시죠? 그런 상태예요. 우리는 이런 상태가 될 때 만몬이 가장 무서워하는 통제, 불가능한 자유화 이게 그래서 히브리 11장에 나오는 세상이 세상이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세상을 하찮게 위에서 보는 그런 상태가 되는 거죠. 주인과 하나가 됐기 때문에 그래요.

 

그럴 때 모든 만물을 누리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집이 내가 되는거죠. 맞나요? 그런데 창고와 상관이 없고 내 능력과 상관이 없습니다. 창고에는 이미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주인의 뜻에 따라 무조건 쓸 수 있는 결재권을 가지고 있는 거죠. 오늘은 이만큼 했다. 내일은 이만큼 됐다가 그 다음 날은 그걸로 누군가 빚을 탕감해주는 천지계의 삶이 내 삶의 실제로 일어나는 거죠. 그렇죠? 지금 그분과 다스리는 그분과 가장 친밀한 관계로 우리는 지금 빚어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세요. 그건 나가 아닙니다. 완성된 존재.

 

그 자체가 지속적으로 내 안에 인식이 되어 있어야 되고 그걸 행하는 것은 내 안의 힘으로 역사하는 성령으로 말미하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하면서 계속 나가면 돼요. 성령님. 1초 1초 계속 그걸 하세요.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할 거예요? 어떻게 흘려보낼까요? 어떤 뜻이? 하나님의 뜻이 맞나요?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 자꾸 하다 보면은 하이재킹 돼요. 진짜로. 내가 새롭게 구동 오퍼레이션 OS 시스템을 갖게 돼서 나도 모르게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돼야 맞아요. 그게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 보증하시는 성령 할렐리아 그래서 우리는 내가 어떻게 살든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뭐냐

 

 

 

1. 작은 것에 충성

 

1-1. 존재가 먼저다

- 존재가 먼저, 행함이 먼저여야 함

- 존재를 먼저 하는 것이 곧 내 삶의 태도임

- 큰 것보다 작은 것에 충성해야 함

- (중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해야 큰 것에도 충성하게 됨

- 작은 것에 집중하면 큰일도 이뤄낼 수 있음

 

1-2.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함

- 우리가 사는 것은 이미 큰 것보다 작은 것부터 시작됨

- 이러한 작은 것에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함

- 이 훈련을 통해 삶의 방식을 새롭게 배울 수 있음

- 뇌의 가소성 원리처럼, 작은 것에 집중하면 점점 강해짐

- 이 땅에서 사는 방식을 새롭게 배워야 함

 

1-3. 작은 것에 충성하는 삶

-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

- 하나씩 따뜻한 습관을 갖다 주님께 맡기고 행동해야 함

- 물질을 사용할 때도 작은 것부터 주님의 뜻인지 묻는 습관을 가져야 함

- 만몬(마귀)은 작은 것부터 막으려고 함

- 큰 것보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결국은 만몬의 싫증을 사라지는 것임

 

2. 순종하는 삶

 

2-1. 작은 것부터 섬기는 삶

- 작은 것부터 섬기는 삶을 통해 신경조직이 시냅스가 되어 통제할 수 있게 됨

- 이 통제는 우리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제하는 것임

- 성령의 역사하심은 작은 것부터 시작함

- 생각하고 성경을 보는 것도 성령의 역사하심과 연결되어 깨달아지게 됨

-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작은 물질부터 말씀을 드려 순종하게 됨

 

2-2. 통치의 원리

- 물질적인 순종이 만물의 결박을 끊음

- (중요) 물질이 처음에 사용되다 보면 저주의 증상이 나타남

- 저주의 증상을 끊기 위해선 작은 것부터 통제해야 함

-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천국의 기적이 일어남

- 이 기적은 물질의 크기와 상관없음

 

2-3. 우선순위의 조정

- 먼저라는 단어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야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함

-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함

-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임

-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순종함으로 이루어짐

- 작은 헌신과 기쁨이 누적되면, 기쁨이 충만해져 병이 없고 고통이 없어짐

 

3.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소유와 축적

 

3-1.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소유와 축적의 의미

- 하나님은 우리를 귀중한 존재로 보유하며, 우리를 통해 일하심

- 소유와 축적의 원리를 통해 우리의 존재를 이해해야 함

- 이 관계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이 뭐든가도 봐야 함

- (중요) 먹을지, 마실지 걱정하지 않고 그 원리를 이해해야 함

- 모든 것을 구하려고 인생을 여기다 바치면 안되며, 이는 하나님의 경제 법칙에서 벗어남

 

3-2.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자신의 역할

-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의 통치를 도와주는 것

- 이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함

- (중요) 우리의 역할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나를 도구로 내어드리는 것

- 그럴 때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등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

- 스스로 이런 역할을 맡으면 하나님의 경제 법칙에 맞춰진 생활이 가능해짐

 

3-3. 영생을 위한 현실화와 절제

- 이 영생의 삶을 현재화하는 가장 강력한 기동장치가 자신을 통치의 통로로 내어드리는 것

- 가름대의 가르침에 따르면 "나는 주님의 통로이며, 주님 안에 있다"

- 나를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평정하길 원하나, 무엇을 다스리길 원하나, 어떤 이는 누리고 다스리는 복의 환경으로 변화

- 이 변화의 시작은 아주 작은 것부터이며, 이를 통해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대상에서 복의 환경으로 변해가야 함

- 그 이후에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평정하길 원하나, 무엇을 다스리길 원하나, 어떤 이는 누리고 다스리는 복의 환경으로 변화

 

4. 믿음의 만물 관리

 

4-1. 흘러보내는 삶

- 물꼬를 트는 것과 같은, 내 삶의 문을 여는 것이 중요함

- 물꼬를 트는 방식에 따라 내 손에 있던 것이 흘러가게 됨

- 흘러보내면 온몸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이 증거됨

- 이웃에게 흘러보낼 때, 물질은 불의한 재물이 아닌 거룩한 영원한 처소가 됨

- 흘러보내는 방식이 만물의 통치를 의미함

 

4-2. 통치자가 되는 흘러보내기

- 내가 흘러보내는 순간, 나와 하나님, 그리고 이웃이 연결되고 통치자가 되고 통제자가 됨

- 내 통치가 실제가 되는 순간, 그 전까지 물질의 지배를 받지 않음

- 나의 흘러보내는 순간은 물질을 부리는 청지기로서의 영적인 실세를 갖게 됨

- 나의 문을 열어 흘러보내면, 문이 열리는 순간이 옴

- 하나님은 나를 통해 보이지 않는 통치를 이루어 가심

 

4-3. 통치자의 삶

- (중요) 내가 그리스도 충만함에 거한다면, 모든 상황 속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자가 되지 않음

-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끌어내는 것이 믿음의 표현임

- 부족함을 채우는 자로 살게 되면, 하나님의 것이 흘러 들어옴

- 흘러보내면 물꼬를 2개 트럭이 되고, 하나 쓱 막아서 좀 쓰고 또 보내면 일이 이어짐

- 물이 썩지 않으려면 달팽이를 새로 들어와야 함

 

5. 그리스도와의 연합

 

5-1. 하나님의 원리와 정지기

- 하나님의 원리는 움켜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함

- (중요) 정지된 그대로를 올려보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이 통하지 않음

- 물질, 돈, 권위가 내 주인이 되면 움켜쥐는 노예가 되어 죽음에 이를 수 있음

- 성경 원리에 따라 하나님과의 연합이 우선되어야 함

- 예수님과 연합한 자만이 영생을 가질 수 있음

 

5-2.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한 준비

- 고린도전서 1장 9절과 3절을 따라 먼저 주인의 식탁에 초대받아야 함

- 그리스도와 사귐을 위해 자기 주장이 아닌, 하나 됨을 구해야 함

- 하나님과의 연합은 우리의 육신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능력에서 비롯됨

- 사도바울의 고통은 율법과 복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

- 복음은 우리를 생명 안으로 이끌어 연합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만듦

 

5-3. 연합의 결과와 중요성

- 예수님과의 연합은 우리의 기쁨과 희락, 화평을 가져옴

-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중요하며,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않아야 함

- 주님과 연합한 자는 주님의 기쁨을 자연스럽게 알게 됨

-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주님의 생각과 행동이 되어야 함

- 주님과 깊이 연합한 자만이 새 생명을 얻게 됨

 

6. 사귐과 주님의 생명

 

6-1. 사귐의 시작과 중요성

- 사귐은 노력이 아닌 자연스러운 친밀함에서 비롯됨

- (중요) 모든 사회학, 교회의 일, 치유사회의 일은 사귐에서 시작됨

- 예수의 요한복음에서 생명을 공유하는 것, 즉 사귐을 강조함

- 생명을 공유하는 사귐은 하나가 되는 것, 즉 통치권이 자연스럽게 나타남

- 주님과의 사귐은 우리 존재의 자연스러운 결과임

 

6-2. 사귐의 본질과 결과

- 사귐은 단순한 대화가 아닌, 생명을 공유하는 것임

- 사귐은 신성의 충만함을 보여줌

-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것은 수준을 넘어서는 삶을 의미함

- 예수의 삶은 이미 완성되어 있고, 그 모습을 시간 안에서 행해야 함

- 율법이 아닌 삶 자체를 통해 주님의 생명을 나타내야 함

 

6-3. 사귐의 결과와 변화

- 그리스도의 충만함 안에서 사귐이 이루어지면 두려움이 없어짐

- 사귐이 없으면 삶에 대한 새로운 목표와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음

-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자신의 몸을 통해 흘러가야 함을 강조함

- 에베소서 1장은 사귐이 다스림보다 먼저고, 다스림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제시함

- 사귐이 주님의 생명과 연결되어야만 진정한 삶이 가능함

 

7. 부족함의 잠재력

 

7-1. 주님을 향한 믿음

- 믿음이 먼저 와야 함을 강조함

- 예수님은 하나님의 목자이기에 부족함이 없으심

- 하나님의 공급자인 주님을 알아야 함을 깨달음

- 사도행전을 통해 성령과 능력의 중요성을 깨달음

- (중요)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밝힘

 

7-2. 성령의 역사

- 성령은 지혜와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힘을 줌

- 오순절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한순간에 풀어짐을 강조함

- 성령은 하나님을 알게 하고 미래의 완전한 보장으로 이끔

- 성령을 통해 믿음이 행함으로 이어지고, 진정한 영생이 이루어짐

- 영생은 존재가 행함을 결정하는 것임을 앎

 

7-3. 주님을 향한 영생

- 물질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영생의 의미를 생각함

- 영생은 저주의 본능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임을 앎

- 죽음은 죽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를 흘려보내는 것임을 깨달음

- 하나님과 일치하는 삶을 통해 주님의 자원을 흘려보내는 영생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함

- 주님을 향한 믿음은 삶의 모든 부분으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함

 

8. 구원의 확신

 

8-1. 하나님의 뜻과 사랑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함

- 우리의 존재와 행동이 먼저여야 함

- 우리는 세상에 없는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생명을 누리는 것임

-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중요함

- (중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우선순위여야 함

 

8-2. 성경적 사명

-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계획과 보증을 믿어야 함

-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메갈라기를 극복해야 함

- 우리는 율법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함

- 우리의 행동은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해야 함

- 우리가 주님과 더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영은 더 깨어남

 

8-3. 새로운 삶

- 성령을 의지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감

-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희망을 두어야 함

- 우리는 이미 주어진 생명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함

- (중요) 우리의 우선순위는 성령이 이끌어주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함

-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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