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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회

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10)_'그리스도 안에 있고'와 '그리스도 안에 있으라'의 모순(고전1:30,요15:4,골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26.06.13|조회수85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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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10)_'그리스도 안에 있고''그리스도 안에 있으라'의 모순(고전1-30,15-4,2-6~)

 

 

영원과 지금 심화학습을 계속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스 1장의 주제 말씀이었는데요. 다들 기억하고 계시지만 거기에 보면은 그리스도, 아네스 앵크리스도 많이 나오죠. 그렇죠? 그리스도 안에서가 신약 성경에만 240회 정도 나와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단어가요. 그 유사 단어 합쳐서 그리스도 안에서 에스토 안에서 그 안에서 이렇게 비슷한 같은 의미로 쓰인 조금씩 다른 그런 단어들이 240회 정도 나와요. 엄청 나오죠.

 

사도바울의 서신서에만 앵크리스토 그 단어만 80여 차례 정도 나오고 그와 비슷한 건 한 훨씬 더 많이 나오고요. 그러니깐 신약성경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의 성경의 핵심을 찌르는 내용이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구원의 핵심부터 시작해서 성화에서 완성까지 이르는 동안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를 완전히 정복을 해야 이게 신약성경이 완전히 이해가 되어지고 내 삶의 구원의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가 되고 그것이 땅에서 내 시간 안에서 적용될 때 어떻게 일어나야 하고 이런 것들이 정확하게 정의가 됩니다.

 

여러분 어쨌든 그리스도 안에서 대충 알면은 인생도 좀 대충 될 수 있어요. 진짜 중요한 단어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서 보도록 하죠. 에베소스 1장에 그리스도 아네스라는 말이 수없이 나왔는데 10번 이상 나오죠. 에베소스 1장에만 그렇습니다. 두 성경구조를 먼저 대조를 해보도록 하죠. 뒤에 고려 논서 1장 30절 우리가 주일날 오전에 했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면서 1장 30절로 이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요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

 

이 한 구절은 엄청나죠. 우리와 그리스도의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완전한 연합을 표현하는 부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는 예수님의 지혜가 내 것이죠. 그러죠. 우리에게 지혜가 되고 의가 되고 그러니까 예스님이 이루어 놓은 의가 내 안에 완전히 증가되어서 나를 이제 어롭다 하게 되는 어롭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 라는 거죠. 거룩함은 우리의 육적이 모든 부정한 제약된 자와 이런 것들을 다 벗은 걸 말하고 구속함은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라는 걸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건 그런 겁니다. 그렇죠?

 

이 부분을 이 구절과 요한복음 15장 4절에 보면 나의 안에 가라 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면 나도 너의 안에 가리라. 여기서 뭔가 모순이 있죠. 우리 안에 이미 있다 라고 못을 박아놓고는 또 나의 아니 거하라 예수님이 직접 그런 말을 하면 이게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잘못하면 율법으로 치우쳐요. 마치 요한복음 15장 4절을 읽으면은 우리가 노력해서 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오죠. 그러지 않나요? 이런 부분들을 아주 세밀하게 여러분 묵상하고 깨닫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내 삶이 헷갈리지 않아요.

 

잘못하면 율법으로 가서 이게 공수표가 또 됩니다. 글로세서 2장에 가서 한번 추가로 더 보죠. 2장6절에 보면은 이장 6절 글로세스 이장 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의 예술을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 그 안에서 행하라고 합니다. 그 안에서 거하라. 그 안에서 그 안에 있으라. 너희는 그 안에 있고 그 안에 있으라. 여기는 또 그 안에 거하라. 그 안에서 행하라. 그 안에서 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 행하는 겁니다. 그렇죠? 그 안에서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말입니다.

 

주와 종의 관계, 섬기는 자와 섬김을 받는 자의 관계를 여기서 정확하게 표현해 놓은 부분입니다. 그리고 골라세스 1장 17절에는 우리가 그 안에 있을 때만 살아있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렇죠? 사도행전 17장에도 발자리통이라는 말씀이 나오고요. 이런 부분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임의와 아직이랑 신학적인 용어를 가지고 푸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좀 뭔가 이렇게 와닿지가 않아요. 상가운데 와닿지 않아요. 정확하게. 우리가 꿰뚫어야 합니다. 우리 노력으로 요왕복음 15장을 보면 우린 노력으로 그리스 안에 거해야 할 것 같지 않아요. 그걸 문자적으로 읽으면 100% 그렇습니다.

 

그러면 내 노력에 따라서 그 안에 거할 수도 있고 노력 안 하면 튕겨 나와 밖에서 있을 수도 있고 이렇게 돼버리죠. 이러면 이제 그게 올가미가 돼요. 일생에 거하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거하는 겁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그거 하는 거예요? 여기 안에 있는 겁니까? 이게 도저히 이게 문자적으로나 인간의 개념으로 이게 이해가 금방 안 돼요. 그 안에 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어요. 진짜. 요한법 15장에도 보면 그렇고 그 안에 있을 때만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라고 했는데 그러면은 어떤 한계가 딱 정해져서 여기 안으로 넘어가면 아니고 나오면 바뀌고 경계가 있나요? 이게 갑갑하죠.

 

거해야 할 것 같고, 노래 크면 그 안에 거할 수 있는 것 같은 그런 해석이 될 수도 있고 그러죠. 그래서 거하려고 애써야 되지 않겠어요? 어때요? 애써야 할 것 같지 않아요? 애써야 하는 건 맞긴 합니다만 모순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율법과 복음의 경계 안에서 계속 헤맵니다. 뭐가 이래 안 되면 내가 그 안에 거하지 않아서 그런가? 또 밖에 또 에덴에서 쫓겨나서 내가 헤매고 있나 이런 생각 얼마든지 합니다. 일이 꼬이면은 바로 그렇게 아 그런 말씀도 드렸죠. 그런데 제가 정확하게 거하는 거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렸어요. 그것까지 다 알고 계셔야 돼요.

 

이 거하라라는 고린던스 1장 30절에 거하라 라는 이건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말해요. 이제 하나씩 정확하게 짚어보도록 하죠. 십자가에 이미 박혔는데 또 못 박으라고 그러잖아요. 예시는 그 부분도 해결해야 됩니다. 물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드렸어요. 많이 드렸고 그게 정말 현재 내가 시간 안에서 내 삶에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꿰뚫어 알고 있어야 내 삶이 헛되지를 않아요. 잘못하면 또 아까처럼 의심하게 돼요. 내 자신은 이게 거하는 게 맞나? 아닌가? 어떻게 해야 거하는 거고, 어떻게 아닌 거고, 이런 것들이 의문이 생길 수가 있죠. 어쨌든 에베소스 1장에 보면은 그리스도 아네 거하라. 그리스도 아네라는 단어가 쭉 많이 나옵니다.

 

그리스도 아네의 영적인 에비스 1당이 3절부터 14절까지 한 문장이라고 그랬죠. 기억나요? 그때 나눠드린 거고, 그 다음에 뒤에 또 한 문장 이렇게 되어 있다고 그랬는데 그 문장 전체를 이어주는 끈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입니다. 앤 크리스도예요. 그걸 영적으로 정확하게 해석했을 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보기 복의 유일한 구역이 바로 그리스도 안해라는 겁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줬다고 그랬잖아요. 그 복이 실제로 있고 이루어지고 현실화되는 게 그리스도 안해라는 거예요. 전부 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게 유효하다는 걸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실 때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단 하나도 주지 않겠다.

 

그거하고 동일한 말입니다. 그게 에베소스 1장 4절의 말씀이고 그 다음에 그 신령한 법이 4절을 5절로 넘어가면서 양자 되는 법 7절로 가면서 죄사함과 그다음에 넘어가면서 기업이 되는 것이고. 기업이 된 것을 상속하는 거고, 그거를 기업이 된 것을 보정하는 게 13절로 가서 성령의 2인칭과 보정함 이것까지 다 합쳐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건데 구원의 모든 과정이 오직 그리스도라는 영적인 공간 안에서만 일어난다 라는 뜻이에요. 밖에서는 절대 1도 없다. 라는 걸 말하고 있는데, 이게 뭔가 하면 마치 이런 거죠. 은행에 가서 우리가 계좌를 개설하잖아요. 계좌를 개설하면은 그 계좌 안에 돈을 확 넣어놓잖아요.

 

그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라는 의미예요. 그 안에 계좌 안에 신뢰만 복이 잔뜩 있는 거죠. 그런가요? 그게 그리스도 안에예요. 그걸 들어가서 누려야 되는 거죠. 찾아 써야 될 거 아닌가요? 그걸 보정한 게 성령이고 성령은 그걸 보정해서 누리고 누릴 수 있게 이 땅에서 한다고 그랬고요. 마치 은행 계좌 같은 거 아니면 창고 안에 가득 쌓아놨는데 우리가 열쇠를 가지고 열고 들어가서 쓰는 그런 게 그리스도 안에 그러면 좀 쉬울까요? 은행 계좌가 그리스도예요. 그러니까 계좌를 있으면 뭐해요? 찾았어야지 그리스 안에 있다라는 것은 계좌 안에 들어있는 걸 내가 쓸 수 있다. 그런 의미예요. 그렇죠?

 

그리스도가 계자고 계자만 있으면 뭐 했어야지. 그렇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모든 게 하나님이 절대 주권에 해당되는데 사전에 보면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택했다고 그랬거든요.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그랬어요. 우리의 구원이 어떤 우연이나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가 선택해서 우리가 이룬 것도 아니고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이미 사마일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 있었다는 건데 그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영원 이전에부터 그리스도 안에 이미 확정되어 있는 사건이라는 걸 이게 사절의 내용이에요. 에베스 1장 사절.

 

이걸 잘 보면 로마스에 가면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고 사망에 이른다고 그랬죠. 죄와 사망의 법. 대표성이죠. 대표성.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이제 소속이 아담 안에서가 아니고 이제 세 아담 안에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진 거죠. 이게 인제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이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옛 것이 아니다. 라는 걸 계속 주입하라고 그랬죠. 제가 영적으로 여기 그렇죠. 편도체가 아니고 전두엽에 계속 코일링해서 나중에 자동으로 자극하면 자동으로 화가 나오듯이 누가 자극해도 이제는 자동으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그건 내가 더 이상 아니지.

 

이게 나올 때까지 해야 돼요. 진짜 그거 습관은 우리는 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거든요. 세상 사람들은 안 되지만 세상 사람들도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서 뇌를 개소시키려고 하잖아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세요? 카드 여러분 혹시 블랙 제이크 하는 거 봤어요? 아 몰라요. 놀러도 한번 안 가봤어요. 그런데 무슨 남자만 해요? 여자도 많아요. 있어요. 어쨌든 그런 게 있어. 카드 돌리는 걸 봤죠? 딱 해서 돌려주는 거 봤죠? 그 딜러들을 훈련을 어떻게 하는가? 하면 옛날에 우리나라에 그러니까 불법 도박장이 많이 있었는데, 거기에 블랙제이크 카드를 딜러하는 애들 훈련을 어떻게 시키는가.

 

하면 이만할 때 납치를 해간대요. 납치를 해가서 딱 철창 안에 가둬놓고 밥만 준대요. 밥만 주고 카드만 이렇게 카드를 어떻게 하는가? 하면 플래시카드 우리 애들 훈련시킬 때 감자, 고구마 이렇게 지나가면서 이거 고구마 이렇게 하면서 탁탁 보여주잖아요. 그것처럼 카드를 이렇게 하나씩 지나가면서 입력카드로 계속 훈련시킨대요. 이렇게 처음에 천천히 가면 이렇게 지나가도 잘 모르잖아요. 그럴 때마다 한 대 맞는 거죠. 두 장 지나가고 뭐 지나갔지? 모르면 그러면 신경 바짝 쓸 거 아니에요. 그거 안 오면 맞고 밥을 안 줘버리니까 그렇게 해서 몇 년 동안 지나가면 아무리 빨리 지나가도 뭐가 지나가는지 이게 자동으로 입력된다는 거예요.

 

놀랍죠? 그게. 여기에 여기에 전두엽에 마치 그런 세상 사람도 그렇게 한다니까요. 우리도 이거 내가 거리스도 안에 있지. 앵크리스터 앵크리스터 앵크리스터 일이 생길 때마다 앵크리스터 앵크리스터 해봐요. 성질 나오다가 앵크리스터 하면 그거 없어져 버려. 진짜로 그렇게 돼요. 그게 이제 편도체 하이재킹에서 전도엽 하이재킹이라고 제가 말씀을 드린 가소성의 원리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게 훈련한대요. 그러면 이제 노론꾼들이 오면 그걸 여기에 얼마를 걸고 이런 것들을 봐가면서 그걸 조정한다는 거죠.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죠. 놀랍죠. 그거 하는 게 빠를 뻔하지 않았어요.

 

큰 읽고 있잖아요. 그 다음에 뭐가 나올 건지 확률은 남아 있는 게 확률이니까. 확률 싸움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한다라는 거죠. 그렇게 훈련한대요. 마치 그런 것처럼 우리도 이제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 안으로 옮겨졌다. 정체성 자체가 옮겨졌기 때문에 그렇게 사려고 노력을 하는 건 맞겠죠. 가만히 있으면 애가 자라나요? 먹어야 될 거 아니에요. 마치 그런. 그래서 그게 그 아래 거하라 라는 애씀으로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인데 좀 이따가 더 설명을 드리고 어쨌든 그리스도 안으로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진 세 사람이죠. 그리고 세 사람이라 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사건에 참여한 사람을 말해요.

 

그래서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부활해서 신간형적 연합을 이루고 있는 에베소스 2장 6절의 상태라는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고 또 대표 아담 안에서 그리스 안에서 대표성의 원리를 동시에 말하고 있고 그다음에 다른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부분을 이걸 비교를 해보면은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좀 전에 말씀을 드렸던 요한범 15장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준 거잖아요. 나의 안에 거하라. 나도 너의 안에 거하리라. 이게 포도나무와 가지. 그 안에 거하라 할 때 몇 번 했던 내용인데 자세하게 한 번 더 보도록 하죠.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도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처럼 너희도 네 안에 있어 이게 엄청난 거라고 그랬죠.

 

예수님과 하나님의 하나가 된 그와 똑같이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과 하나가 되어 있다. 이건 그리스도인의 엄청난 특권이거든요. 이건 엄청난 거예요. 엄청난 일이라고 그랬죠. 그 부분 다 안 까먹었죠. 어쨌든 바울이 그리스도 아네라고 하는 말이 바울의 교리에 어떻게 보면 기초라고도 할 수가 있을 정도로 바울이 엄청 많이 사용했어요. 거의 이 단어만도 80회 이상 앵크리스도만 그리스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안에 이런 것까지 다 합치면 훨씬 더 많죠. 그러니까 이게 예수님의 가르침하고 일치하죠. 나의 안에 거하라. 나도 너의 안에 거한다. 그러니까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생명력을 공급받아서 열매를 맺죠.

 

그러면 가지가 내려가서 끌어올려야 하는 건 아니죠. 그렇죠? 그런가요? 그리스도 아네라는 것은 상태적인 개념이에요. 그래서 상태적으로 생명의 단절이 없는 완전한 유기적인 연합인데 그것도 친밀한 완전한 연합의 상태를 말할 때 그리스도 아네라는 단어를 써요. 이게 로마스 8장의 1절 2절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특권이 있죠. 정재함이 없는 거예요.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이제 절대로 정재함이 없어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건 하야예요. 하야. 존재라고 그랬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이 세 존재로 창조된 자이기 때문에 이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아요. 죽고 나서도 변하지 않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거죠. 그런데 새로운 피조물인데 어떻게? 그리스 안에서 완전한 유기적인 연합을 머리로 해서 몸과 머리 관계처럼 절대로 분리불가한 존재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떨 때는 안에 있고 어떨 때는 밖에 있고 이건 가능하지 않아요. 가능한가요? 가능하지 않아요. 완전한 친밀한 연합의 상태 안에 어떠한 단절도 가능하지 않는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그 안에 있을 때는 절대 정죄하며 왜냐하면, 예수님이 의가 됐잖아요. 그렇죠?

 

거기에 우리에게 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그룩함과 구속함 이 네 단어는 구원의 전부를 묘사해요. 전부를 묘사. 우리는 지혜 없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렇죠? 척 보면 착해야 돼요. 이제는. 그래서 내가 머리가 이런 말 절대 하면 안 돼. 그거는 옛날에 편도체 하이재킹이야. 아니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그거 말하면 안 돼. 완전한 기억력이 성령님이잖아요.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잖아요. 저도 이거 엄청 시험해요. 한참 전에 했던 거 제목 기억 안 나면 기억나게 해달라고 떼를 쓰면 나요. 신기하죠. 됩니다. 해보세요. 여러분. 자꾸 속지 말고 뇌에는 되게 게으르대요.

 

원래 뇌에는 뇌에는 게을러서 어떤 자극이 팍 오면 중간 과정을 안 거치고 무조건 가버린대. 그게 편도체 하에 적힌 고속도로 그게. 그러니까 쟤가 왜 저러지? 라는 생각이 뇌에는 안 해. 고속도로를 먼저 달려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콕 하면 무조건 욱 올라오잖아요. 그거 자동이죠. 자동 안 올라오는 게 이상한 건데 세 사람이잖아. 우리는 세 사람이기 때문에 그게 안 올라와야 되거든요. 그런데 올라오잖아요. 그래서 계속 너는 이제 올라오면 안 된다. 저리 가라.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게 우리가 말했던 건 뇌에 대한 이야기예요. 성경적으로 맞아요. 경전에 이르는 훈련이잖아요.

 

어쨌든 우리는 이 존재 자체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것은 이미 존재 자체를 말해요. 그것도 세상에 생기기 이전부터 이미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기 때문에 분리불가예요. 분리불가. 에덴에서는 우리가 잘못해서 분리가 됐죠. 그런데 이제는 아니에요. 잘못해도 그 안에 있어요. 위안이 되죠. 우리 애들이 잘못한다고 바로 옆집 아들이 되어버립니까? 쫓아내버려도 내 아들이죠. 호적이 안 바뀝니다. 호적이 박아도 그대로 그런가요? 흔적이 있다니까요. 몇 월 며칠 바가다 안 바뀌어.

 

그래서 그런데 그리스도 아내라는 것은 그래서 존재 자체를 말하기 때문에 이건 어떤 내가 뭔가를 하는 거에 의해서 잘하는 거에 의해서 잘못하는 거에 의해서와 상관없는 거예요. 내 노력과의 쓴 이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 안에 있는 존재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미 이게 앵크리스트예요. 그래서 그 안에 있으면은 마치 구약시대 도피성 같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사람은 율법의 저주나 사단의 도발이나 고발로부터 완전한 보호를 받는 게 이게 바로 결코 정재함이 없다라는 이 단어예요. 그리스도 안에는 그냥 그렇고 그런 정도가 아니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고 내 자신을 인식하고 그 안에 있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라는 건 엄청나게 달라요. 우리 삶이 완전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니까요. 점점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죠. 어쨌든 고린도 후소 5장 17회 자리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됐다. 이게 새롭게 창조된 존재라는 거잖아요. 그런가요? 새로운 존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전 것은 나와 이미 상관없는 거예요. 그런데 남아있는 그 부분에 대한 걸 우리가 이제 처리되어야 할 부분이죠. 어쨌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러니까 있어야 할 것 같은 조건절인데 그러지 않아요.

 

그런 게 아니고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을 새롭게 말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리스도 안에는 단순하게 가치관이 바뀌거나 도덕적으로 뭔가 이 사람이 좀 개선이 됐다든지 개과천선했다든지 이런 수준이 아니고 존재 자체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새로운 종이라고 그랬죠. 신인류. 그걸 아셔야 돼요.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있다와 동시에 일어나요. 이게 갈레데아서 2장 20절에 보면 정확하게 나와 있잖아요. 네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 것이다. 그러니까 완전한 상온해주죠.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건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있다라는 상온해주를 말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렇죠? 지금까지 했던 거 계속 반복하면서 심화하는 거예요. 이게 우리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고. 우리의 삶의 전부가 이 기준 안에서 이루어져 가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럴 때 우리는 완전한 보호와 완전한 권세와 능력 이것들을 다 누리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게 그리스도인이라는 거죠. 그런가요?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계시는 상호 내조의 신비가 여기에서 볼 수가 있고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실제로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를 하고 그대로 이루어진 걸 볼 수가 있죠. 그런데 이 두 개를 종합해보면 나는 나의 옛것은 이미 죽고 없다는 거죠. 중요한건 그거예요. 죽고 없다. 예수 안에 있다.

 

라는 것은 이제 내가 옛날의 본성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존재 자체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산다라는 거죠.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는 내 존재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완전히 교환된 걸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보면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 라는 말이 정확하게 맞아야 되는 거예요. 정확하게 왜 웃죠? 정확하게 맞아야 되는 거예요. 그게 이미 이건 법적이에요. 법.

 

법적으로 도장을 우리 출생신고하는 거하고 똑같아요. 우리 호적을 하나님 안에 올려놓은 거예요. 호적이 신인류 세 사람이라니까요. 같잖아. 보여요? 안 나와서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잘못 훈련해서 열심으로 내가 이 말씀을 지켜내려고 해서 잘못 훈련받은 것 옛사람이 그걸 지켜서 마치 새것처럼 행동하려고 한 거죠. 그래서 안 됐던 거예요. 우리가 완전히 고통과 괴로움. 이 사람은 저주받은 상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잖아요. 분리의 상태. 그걸 벗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워요. 잘못 알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결국 물고기에게는 물이 있어야죠. 새에게는 공기가 있어야죠. 창공을 날아다닐 수 있는 공기. 물이 없고 공기가 없다면 물고기도 존재할 수 없고 새도 땅에서 걸어다닐 수 있나? 그게 절대적인 환경이죠. 우리에게 우리 성도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물속에 그리스도 속에 마치 그런 관계라는 거죠. 이건 그냥 말장난도 아니고 신학적인 어떤 정의도 아니고 종교적인 어떤 소속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 자체를 말해요. 그러니까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계속해야 돼요. 나는 옛날의 나가 아니다.

 

그걸 나는 누구인가를 계속 새기라고 제가 계속 말씀을 드렸잖아요. 내 존재하는 것, 내 호흡하는 것. 그게 완전히 영적인 내 환경 안에 내가 그런 영적인 환경 안에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라는 거죠. 내 존재 자체가 그런 거다 라는 거죠. 그래서 에베소스 1장에 보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받고 용서를 받고 거룩함을 잊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으로서 이 땅에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국 그것을 이 땅에서 현재로 이루어지게 하는 성령이 보정하고 있고 이것보다 완전한 게 있나요? 이건 완벽한 거예요. 완벽한 거죠.

 

그래서 그리스도 아내와 성령 아내는 같은 말로 볼 수가 있게 되는 거예요. 어쨌든 성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어내라 라고 요구하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안에서 믿으려고 노력도 했고 그렇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노력도 하고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라는 노력도 무지하게 했죠. 전도도 하고 교회 활동도 하고 엄청나게 했잖아요. 그러죠? 맞나요? 그게 바로 율법이라는 건데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무언가 스스로 이루어내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거기서 우리가 잘못 살았던 거예요. 그게 아니고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걸 먼저 알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세 사람이다. 이걸 먼저 알았어야 되는 거예요. 사실은. 그냥 예수 믿고 교회 와서 열심히 해서 복 받는다. 여기에 꽂혀가지고 존재에 대한 인식 자각이 전혀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옛날이 죽을 몸, 아직도 죽을 몸이 선한 일을 해서 자기가 옳다는 걸 증가하고 싶고 믿음이 있다는 걸 증가하려고 했고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산다는 걸 증가하고 이런 거였죠. 마치부자청년. 채로 영생을 자기가 만들어내려고 한 것처럼 그런 잘못된 신앙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몸에 임한 저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거예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볼 수가 없었죠. 그래서 먼저 내가 그리스도 안에 누구인가 이걸 먼저 알아야 돼요. 성경한 거에서. 에베소스 1장이.

 

그게 창세 이전부터 지금까지 1장 안에 작게 있는거죠. 그걸 깊이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새로운 존재라는 걸 깊이 깨닫고 그 안에 마치 은행 계좌처럼 그리스도라는 보물이 계좌예요. 그거를 풍성함을 누리라고 초청받은 자들이라는 걸 몰랐던 거예요. 모르고 이 죽을 몸이 열심히 해서 그걸 믿음으로 잡아당겨서 내가 만들어내는 걸로 알고 있었다는 거기에 바로 속임수가 있죠. 바로 마귀가 그걸 가지고 속이는 거예요. 놀랍게도 그래서 바울 오일이 예비소 7장에 오면 우리가 누구인지 똑바로 알라고 계속 기도한다고 그랬죠.

 

지혜와 끼시의 영이면서 마음의 눈이 열려서 그 계좌가 얼마나 풍성한 건지 보게 해달라고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이걸 써놓은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보증하는 게 성령이니까. 그 성령을 구하라는 거잖아요. 그게 그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는 게 그런 거예요. 성령 충만. 성령의 인도함이 없이 그거를 우리가 육적으로 행해서 이루려고 하니까 고통스러운 거예요. 힘들고 어려운 거요. 이 글로세스 1장 7절에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존재가 된다. 있을 때만 하야 존재가 하야 존재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사는 걸 말해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존재가 된다는 건 그거예요.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 새로운 피조물로 산다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사는 걸 말해요. 전부 다 내 옛날의 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더 이상. 더 이상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사대형제 17장 28절 기억하시죠? 우리가 그럴 힘입어. 그럴 힘입어가 엔크리스트예요. 엔크리스트. 그럴 힘입며 살고 사는 것은 살고 조회 조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하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냈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고 기동하고 기동하는 것은 움직이는 걸 말하고 그다음에 있는 이라 존재 그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존재 정체성이에요.

 

그다음에 그 아래 29절을 보면 신의 소생이라고 되어 있어요. 우리가 신의 소생. 그러니까 신과 한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사생전. 사자행전 17장 28절 우리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아야죠. 28절 우리가 걸을 힘의 묘 218페이지 우리가 그럴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여아 콜로세스 1장 17절하고 같은 말이죠. 있느니라. 너의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수생이라 하니 우리가 그의 수생이라고요. 신적인 기원이죠. 그거라는 29조를 보세요.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신의 소생이에요. 그러니까 고린도전서 1장 30절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바로 이 말이에요. 하나님의 소생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가족이죠. 하나님의 가족처럼 살아요. 하나님의 가족처럼 살고 있어야 되는 걸 말이에요. 이산가족이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잃어버린 30년 세월 이 문장들을 성경 구절들을 잘 기억하고 계시죠? 어린전서 1장 40절로다시가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했죠.

 

네, 좀 전에 아까 요한복음 15장에는 또 우리가 그 안에 있어야 할 것 같고, 있으면 조건절이 붙어있는 것 같고, 그래서 우리의 노력으로 그 안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이런 혼동이 착각이 아니면 오해가 계속 이게 명확하게 성경을 정의하지 못하면은 우리 삶이 또 율법으로 가버리고 잘못하면은 또 헛수고를 하게 돼 있어요. 그리고 잘못하면 어숙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임의와 아직 사이 그걸로 설명을 하는데 요한보고 고령전서 1장 30절은 존재 상태, 신분적인 연합, 이미 이루어진 것들 법적으로 변함이 없는 사실 그걸 말해요. 정확하게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이루어진 법정적인 사실, 하늘의 법 안에서의 사실이에요.

 

요한복음 15장이 강조하는 것은 뭔가 하면은 고린전서 1장 30절은 법적인 상태를 말해요. 이건 완료된 거예요. 이미 그러면 여왕복음 15장 4절은 뭔가 하면 완료된 이 상태를 지속 지속해야 할 관계를 말해요. 관계를 말해요. 관계를 말해요. 그러니까 요한보험 15장 4절 이런 경우는 열심히 노력해서 그 안에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게 이제 요건 완료된 사실과 그다음에 우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살고 있는 모습이 나와야 되는 그 안에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잖아요. 그게 현실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야 하는 걸 말하고 있는 거죠. 그 주체는 하나님이죠.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이 그렇게 나았다라는 거예요. 우리를 그리스 안으로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가요? 그래서 이건 신분의 문제죠. 신분. 우리 신분의 문제예요. 니 신분 좀 내놔. 그러면은 거기 1등 30절이 써져 있는 거야.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인이다.

 

신분증 내놔라 그러면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이거죠. 법정에서 예를 들어서 죄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 그때부터 이제 무죄 영원히 무죄죠. 그거하고 똑같아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영구의 소속이 바뀌었다. 너는 이제부터 아담 안에 있는 자가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완전히 소속이 땅땅 바뀌었다. 이걸 말해요. 변하거나 취소되거나 하지 않는다. 영적 출생증명서예요. 영적인 출생증명서. 신고는 하나님이 했어요. 하나님이 낳아서 하나님이 신고해놨다고.

 

너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바로 내 아들 그래서 이 신분은 내 노력이나 내 감정이나 내 환경에 따라서 안 변하죠. 절대로 안 변합니다. 이시가 갑자기 박씨가 되고 그러지 않잖아요. 그런가요? 재수 없으면 박씨가 되고 그런가요? 밥맛 없으면 이시가 되고 아이고 난 이 씨 싫어. 박 씨 할 거야. 이거 안 되잖아요. 이미 끝난 거야. 끝난 거야. 그렇죠? 반면에 요한복음 15장 4절 아까 콜레스테스 2장 6절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 이건 우리가 응답해야 할 지속적인 교재를 말해요. 그러니까 이 신분에 응하여서 지금 살고 있어야 할 경험을 말해요. 지속적인 규제, 경험적인 연합을 말해요.

 

그러니까 삶의 연합으로 나타나야 하는 걸 말한다는 거죠. 이해 가시죠? 그러니까 이건 강제조항이 아니라 응답이죠. 그 안에 있는 존재로서의 응답이죠. 그러니까 내가 왕자로 태어났으면 그냥 왕자로 이렇게 사는 거 이상한 거 아니잖아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게 이상하지 않죠. 자연스럽죠. 암에 뭐가 훅 올라와도 가오르고 있어 이게 아주 자연스럽게 되죠. 이제 자 보세요. 그래서 요한범 15장 4절이나 고려시대사가 2장 6절 이런 구절들을 보면 마치 우리가 노력에 따라서 그립상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처럼 혼란이 옵니다. 순간 막 이런 게 헷갈릴 때고 절대로 헷갈리시면 안 돼요.

 

여기서 말하는 거하라는 것은 신분을 유지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 안에서 살아라. 그 안에 거하고 있으라는 건 신분을 유지하라. 열심히 노력해서 그 안에 딱 달라붙어 있어서 신분을 유지하라는 게 아니고 그 은행 계좌를 알아서 좀 잘 써라. 그 관계를 풍성하게 누리라 이런 뜻이에요. 이해 가시죠? 풍성하게 누리고 계시죠? 누리고 계세요? 안 누리고 계신 것 같아요? 오늘 보니까 이렇게 빼꼼히 나와요. 이렇게 보고 있는 어디서 한 대 맞고 온 것 같아요? 아니에요. 잘 들으세요.

 

교회 출석을 열심히 한다든지 교회 일을 열심히 한다든지 봉사를 열심히 한다든지 하나님 일을 한다든지 사역을 한다든지 이런 게 먼저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해하시나요? 그 안에 내가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관계를 풍성이 누리고 있는 교제하고 있는 그 상태가 우선이라는 거예요. 계속 이걸 강조하는 거예요. 이걸 비유한다면, 결혼식과 결혼생활 그런 거죠. 결혼하면 반지를 끼워주잖아요. 결혼하면 혼인신고 하잖아요. 누구와 누구 혼인했다고 혼인신고 하잖아요. 그러면 그때부터 어떻게 자요? 부부관계 안에서 살아야죠. 부부관계를 하면서 살아야죠. 따로따로 사나요? 그걸 말해요.

 

그러면 막 노력해서 부부 관계라는 걸 보여줘야 되나요? 떼 보면 나오는데 뭘 노력해서 보여줘요? 내가 기분 나빠서 하러 밖에 나가 있으면 부부관계가 아닌가요? 그렇게 하셨나? 한번 연락이 싸우고 나면 부부 관계가 끝났나요?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결혼한 부부관계는 일단 혼인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부부관계가 됐죠. 그게 1장 30절 그러나 부부 관계 혼인신고한다고 해서 저절로 행복해집니까? 그런 거예요.

 

저절로 행복한 부부 관계가 돼요. 그건 아니죠.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부부 관계 안에서 합당한 걸 행해야 될 거 아닌가요? 그럴 때가 행복한 부부관계가 되겠죠. 매일 대화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같이 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있잖아요. 밤에도 같이 있고 낮에도 같이 있기도 하고 그런 부부관계 안에 거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그게 바로 요한보험 15장 사절이에요. 법적으로 옛날에 미국에 이런 데 가면 있잖아요. 계약 결혼하는 거. 그렇죠? 영주권 받으려고 계약 결혼하는 거. 그런 거. 마치 그런 것처럼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부부처럼 삽니까? 그러지는 않잖아요.

 

딱 이 관계 같아요. 예수님과 우리가 혼인한 관계 연합해서 하나가 완전한 하나가 됐으니까 그 안에서 모든 걸 공유하죠.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안 그런가 봐요. 니 것 따로 내 것 따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신기해요. 부부 관계가 행복해지려면 결혼만 하면 됩니까? 결혼만 하면 행복해지냐고요? 그게 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부부 관계에 필요한 것들을 서로 행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게 요한모음 시보장 사절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어떤 수준의 문제죠? 그렇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분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동안 그 신분을 일단 가졌잖아요. 마치 혼인신고한 것처럼.

 

그리고 각자 따로 이렇게 알아서 살면 어떻게 돼요? 행복하기 위해서 각자 따로 살고 다 하잖아요. 아 그거하고 똑같아요. 우리 예수님과 결혼하고 고멜처럼 공휴일이 왜 나갔을까요? 다른 남자를 만나서 살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나간 거잖아요. 그런가요? 다른 남자는 누군가요? 세상풍조나. 그렇죠?

 

문가의 여인처럼 계속 가라죠 그 신분을 우리는 예수 믿으면 바로 혼인관계, 바로 이 관계, 법적 관계 안에 들어가는데 그러면서 세상 풍조를 따르거나 지속적으로 죄를 짓거나 아니면 자기만을 위해서 뭔가를 계속 자기 원함을 위해서 홀로 뭔가를 하려고 하거나 그러면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누리는 걸 누릴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건 뭐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 뭐냐고요? 은행 계좌 안에 있는 돈이잖아요.

 

그러니까 처음 에베소스 1장에 말했던 그 아들의 법적인 지위 그다음에 하늘과 땅에 하나 되게 해서 준 상속한 거 그거 못 누리는 거예요. 그건 영생이고 복락이죠. 그걸 못 누리는 거라는 거예요. 법적인 지위는 가지고 있더라도 내가 그리스도와 그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것들은 못 누리는 거죠. 고멸이. 그걸 자기가 만들어 보겠다고 나갔죠. 그런데 나중에 걸레가 되어서 매물로 나왔죠. 매물 그것도 사왔죠 우리도 그렇게 몇 번 산지 몰라 그래도 또 밖에 나가고 싶죠. 왜?

 

그게 우리 몸이라는 거예요. 옛날에 아직 습관이 관성처럼 남아 있어요. 훅 돌아가 버리잖아요. 훅 돌아가 버려. 그러니까 뭐가 옆에서 훅 하면 바로 훅 반응을 해줘야 되잖아요. 반응을 하는 순간. 평강과 힐합과 이건 다 날아가 버리고 없는 거죠. 그 순간만은 없는 거죠. 그런데 그게 나오려고 할 때 제가 1초 법칙이 했죠. 0.5초면 충분할 거예요. 내가 크리스토 아니다. 앤 크리스토만 외쳐도 그건 이길 수 있어요. 놀랍게도. 그게 이쪽을 이쪽을 이쪽을 지금 이 염색하는 거하고 똑같죠? 전두엽의 코일링하고 이 부분을 우리가 예수님이 왜 내 안에 있으라 그러면 나도 내 안에 있으리라. 부부 관계를 하려고 노력을 해야죠.

 

부부 안에서 부부의 어떤 연합하려고 하는 그런 어떤 노력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가만히 있으면 되나요? 가만히 혼자만 밥하고 빨래하고 맨날 그러기만 하면 돼요. 돈도 안 벌어오고 그런 어떤 기본적인 관계에서 점점 발전돼서 완전한 연합 안에 있는 관계로 발전을 해야 되잖아요. 법적인 이미 완성이 되어 있는 신분이니까. 그걸 말해요. 그런데 그 안에 있다라는 그것만 믿고 내멋대로 나가서 탕자처럼 고멸처럼 살아봐요. 그게 바로 세상 풍조를 따르는 거고,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의 습관적인 행위죠. 옛사람은 썩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안에는 생명이 없는 거예요.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내 고집대로 내 자아를 가지고 내 계획대로 사는 한은 그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계좌가 있어도 인출권이 없는 거예요. 인출을 못 하는 거예요. 마치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편간과 기쁨, 행복 이런 것들은 거기에서 나와서 내가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순간 이건 없는 거예요. 누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썩어져 가는 구석을 쫓는 옛사람이니까. 그건 저주의 습관들이 그대로 내게 묻어나갈 수밖에 수고와 슬픔과 고통, 괴로움 이런 것들이 올 수밖에 없죠. 그걸 말해요. 그래요. 부부 생활 잘 하고 계시죠? 깨가 쏟아져요. 암에 깨가 쏟아져요.

 

알러지가 쏟아져 그것도 쏟아져야 돼 같이 있으니까 그래서 성경은 이미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신분을 먼저 예스 하나님이 고려인도전설 1장 37이 이미 너희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이다. 새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발 그 신분에 걸맞게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살아라. 그게 이거예요. 그러면 가지와 줄기가 붙어 있으면 어떡해요? 저절로 사랑과 희락과 이게 저절로 맺히는데 고매처럼 떠나면 자기가 행복을 기쁨을 생산해내려고 하다가 썩어져 가는 거예요. 그걸 말하는 거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에베소스 1장에 말한 그걸 하나도 못 누릴 거예요. 이거 못 누리는 거죠. 그렇죠? 이걸 못 누리니까 어떻게 돼요? 죽을 때까지 고생하는 거예요. 거기서 그거를 조금이라도 더 취해보려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계좌번호를 알고 있잖아. 비밀번호도 다 알고 있고 그렇죠? 비밀번호 뭔가요? 1234 뭐 연구 연구 십자가죠. 십자가 돌리잖아요. 돌리면 바로 열리잖아요. 그리스 안에 있는 모든 자원, 자유환, 편광, 심, 권세 이런 것. 못 누르는 거예요.

 

고멜처럼 세상 풍조를 따르거나 내 자신의 몸과 생각 계획을 따르거나 내 의지를 따르거나 My way 하면 못 누르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너희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이니까. 거기에 걸맞게 행동해라 그런 말이죠. 그런가요? 결혼했으니까 결혼생활하라. 결혼하고 시집가서 다 가는 날 바로 집에 오지 말고 집에 와서 그런 말이죠. 옛사람처럼 살면 결혼하고 혼인신고 다 하고도 옛사람처럼 산다는 것은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하고 산다는 것하고 똑같은 거잖아요. 그렇죠? 크게 어떻게 편한 삶이 되겠어요? 절대로 안 되죠.

 

그러니까 그 신분에 걸맞게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살아가는 거죠. 그게 영생이죠. 친밀한 교재 안으로 들어가는 거. 그런가요? 그런데 왜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이게 신앙의 역설이에요. 성경이 우리에게 그리스도한이 거하라고 명령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안에서 쫓겨날까 봐 불안해서 노력하라는 게 아니고 정반대예요. 정반대. 그래서 예수님이 15장 4절 이후에 바로 포도나무와 가지를 그걸 말하죠. 설명을 하죠. 뿌리가 땅에 박혀있는 건 신분이에요. 땅에 딱 이렇게 뿌리가 박혀있는 건 신분적으로 완성된 거죠. 그럼 빨아올려야죠. 그렇죠. 그게 노력이라는 거 아래서 물론 밀어 올리기도 하지만 위에서 빨아올리기도 해야죠.

 

영양분을 계속 흡수하는 것. 그 은행 가서 계좌에서 인출하는 건 내가 해야 되잖아요. 마치 그게 노력이라는 거죠. 이해하시나요?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우리의 모든 삶의 근원이신 그분으로부터 더 많은 은혜를 끌어올리려는 하나의 노력이라는 거죠. 그게 율법적인 노력을 말하는 게 아니고 구하려고 하려는 노력이 아니고요. 그 안에 있으면서 뿌리가 진액을 빨아 올려야 되잖아요. 그래서 사랑 안에 뿌리바가 점점 강해지려고 그러잖아요. 그런가요? 그 빨아올리라는 거예요. 말숨을 읽는 것도 그 뿌리 말숨 안에서 이걸 생명의 능력을 빨아올리는 거죠. 하가 안으로 들어오는 거잖아요.

 

그런 거예요. 기도할 때도 성형의 능력을 공급받기도 하고 그러죠. 충만해지기도 하고 그런가요? 그리고 안에 거하려고 노력하는 게 그런 거라는 거죠. 그거 전혀 안 하고 있으면 혼인하고 그날부터 각자 방에 이렇게 따로따로 사는 거 하고 똑같죠. 그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 언제 우리가 공유할 수 있어요? 못하잖아요. 그거예요. 바로 그래서 이건 율법적인 노력하고 달라요. 신성의 충만함을 누리기 위한 것이지. 율법이 아니죠. 이건 존재의 본능이잖아요. 외사람도 외사람의 본능이 있죠. 세 사람도 세 사람의 본능이 있잖아요. 그건 그리스도가 친밀하게 지내는 게 본능이에요. 성경을 읽으면서 교제하는 게 본능이에요. 우리는. 그래서 그 본능을 지금 훈련하고 있는 거죠.

 

그런 거지. 이걸 율법이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거해보지를 못했으니까 이게 마치 율법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잖아요. 결혼하기 전에 매일 전화가 끊고 나면 또 전화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헤어지고 나면 또 와서 보고 안 그랬어요. 아무도 안 그랬어요. 신기하네요. 전화기가 없었어요. 뭘 없었어요.

 

저도 전화기 있었는데, 늦게 아 그러구나 그 예수 그리스도라는 은행 계좌를 우리가 인출해 쓰는 게 부부 관계예요. 그 인출을 해야죠. 우리가 박혀 있으면 빨아 올려야죠. 성경 읽는 거는 율법이 아니에요. 그래서 본능이에요. 세 사람의 본능이라고 묵상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본능이라고요. 그거 해야 할 의무가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운 본능이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예요. 아시겠어요? 부부가 부부관계를 맺는 게 이상한 건가요? 밤에 같이 이불 속에 자는 게 이상한 건가요? 모르겠어요.

 

안 해봐서 그런 거죠. 그래야 애를 낳잖아요. 생명이 충만해지는 거잖아요. 넷째, 다섯전, 여섯전으로 알면서 점점 충만해져야 되는 거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얘가 쑥 나옵니까? 손만 이렇게 문지르면 나옵니까? 얘가 큰 거 아니잖아요. 바퀴벌레처럼 그런 거죠. 뿌리의 원리가 바로 그거고, 이게 신앙의 역설 같아요. 마치 거해할 것처럼 노력해야 되는데 아니에요. 본능이에요. 세 사람의 본능적인 행위예요. 그러니까 이걸 자꾸 묵상하고 이런 게 율법 같으면 율법이 아닌 거예요. 율법이라고 하면 곤란한 거예요.

 

이거는 그거는 격리되어 있는 사람들이 억지로 하려니까 율법 아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서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고 너무 하고 싶어서 막 이렇게 하는 그런 것들이 솟아오르잖아요. 막 성경이 막 충만할 때 막 그러잖아요. 그냥 하루 종일 성경 봐도 아무렇지도 않고 그렇죠? 그런 적 있었잖아요. 없었어요? 없어요? 있죠. 그게 진짜 본능이라고요. 그 안에 있을 때의 본능. 그럼 옆에서 미쳤다고 하죠. 그 사람이 밖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그 미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죠. 다른 본능이니까. 세 사람이니까. 그렇죠?

 

그다음에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게 이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꼭 조건 같죠?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럼 없으면 또 한 건가? 이거는 조건을 갖추면 그렇게 해주겠다. 이런 협박이 아니에요. 협박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바로 그거다 라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세 사람 완전히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이다. 라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 안에 그 하면이라는 조건이 아니에요. 특권을 말하는 거예요. 이거는 그러니까 그 보장이 보장 세 사람에 대한 보장 거래처 안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세 사람으로 사는 게 당연하다라는 보장이지 그게 조건이 아니에요. 그럼 그걸 조건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또 연락해야 될 것 같잖아요.

 

그러면 내가 노력으로 그 안에 거하려다가 결국은 실패하죠. 그게 율법의 실패예요. 열심히 해서 마치 예수님의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겁니다. 열심히 한 만큼 내가 예수님을 닮은 걸로 착각. 그게 완전히 사단이죠. 그래서 한 문장으로 정리를 한다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신분 1장 30절 은혜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니까 그 은혜를 근거로 해서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과 친밀함을 선택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게 바로 15장 사절이에요. 그러니까 존재의 본능이죠. 존재 본질. 존재에는 그 안에 살며 기동하는 거 있잖아요.

 

그 안에 살아있으면 이렇게 움직인다. 그 안에 있으면 이렇게 산다. 그게 어떻게 조건이 돼요? 본질이죠. 그렇죠? 그렇게 친밀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산다. 성경을 일구 묵상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기도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서 인도함을 받고 이게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삶의 방식이다. 이런 거죠. 그런데 그거를 거꾸로 하면 큰일 난다 라는 거예요. 노력해서 내가 그 안에 거하려고 한다. 이건 이제 사단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걸 두 문장을 볼 때 이게 혼란이 생길 수 있는 건 당연해요. 왜냐? 아직도 모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성경, 사도바울의 성경이나 신약 성경을 잘 보면 사도바울은 에베스 서대에 보면 1장에 먼저 그 신분을 말하죠.

 

그다음에 2장에 가면 그게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말하고 그다음에 그렇게 이루어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원리 다음에 행암이 나오죠. 원리행음 원리행음 이렇게 돼 있어요. 계속 그래서 하나님도 아브라함의 너는 복이다. 하고 진짜 복자로 만들죠. 그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우리는 이미 거룩한 신분이죠. 그러니까 점점 거룩함으로 갈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거룩하지 않는 건 점점 이렇게 떨어져 나가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너는 거룩한 사람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라. 당연한 거 아니에요. 거룩하지 않는데 열심히 살아서 거룩하게 돼라. 이게 율법이죠. 그래서 그건 불가능한 거잖아요. 그래서 망하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라.

 

이건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거 뒤집으면 그게 나와야 되는 걸 말하는 거고, 우리가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안에 거할 수 있다. 없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죠. 그러니까 우리의 노력은 구원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고 이미 그 어마어마한 그리스도라는 보물을 캐내어 누리기 위한 기분 좋은 수고 이런 거죠. 이해하시나요? 빨아올려야 될 거 아니에요. 계좌를 인출해서 써봐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죠? 나는 결혼했어. 그리고 니 남편과 어떻게 잘 살고 있어? 모르겠어. 결혼생활의 깨가 쏟아져 그래야지 모르겠어. 그게 뭔데? 이거하고 똑같은 그게 심각한 거죠. 그러면 결혼했으면 결혼생활 해야죠.

 

그런가요? 1장 30절은 결혼반지 15장 4절은 결혼생활. 그런가요? 그 결혼 생활을 지금 시간 안에서 보증하는 건 성령이죠. 성령. 그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그 결혼 생활의 풍요로움이 우리 삶 가운데 지금 실제로 집행이 된 거죠. 요한에서 이장으로 가면은 그게 안에 가하고 나는 그 안에 가고 그러면서 성령이 길음범이 가르치는 대로 그 안에 가라. 그래서 그 안에 거하는 삶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가르쳐서 그 안에 있게 한다라는 거죠. 그 안에 살게 한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 결혼 반지와 결혼 생활은 코이노니아를 실제로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게 바로 성령의 보증하심이라는 거죠. 여기에 묘미가 있는 거예요. 이미 이루어진 완성된 법적인 사실 상태를 시간 안에 배달해 오는 거예요. 누가요? 성령이요. 시간 안에 배달하는 분이 성령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사도바울이 에베소스 1장의 딱 아들이라는 못을 박고 그다음에 유업 상속자라는 걸 딱 말하고 중간에 성령의 내용이 들어가고 그다음에 또 그 관계 아래서 형성되는 게 어떤 건지 쫙 보여줬잖아요. 만물을 충만케 하는 거. 그 안에 성령이 딱 들어가 있죠. 요한복음 14장 같지 않아요? 사랑하라 그러고 보야사 성령을 너에게 보내주리니 그 다음에 성령이 임하면 그래서 그 안에 있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사랑하게 된다. 딱 그거죠. 우리가 그걸 정확하게 예수님이 말한 거하고 똑같아요. 그래서 성령의 역사니까 그 성경을 그렇게 쓰신 것처럼 예수님이 성려 말씀 자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 되겠고 그렇죠?

 

그 안에 성령이 계셨기 때문에 성령이 이제 내 안에 오니까 사도바울 안에 들어가니까 말을 똑같이 그렇게 쓰는 거예요. 먼저 그걸 못 박아놓고 그다음에 성령이 보정했다. 하고 그래서 성령의 개시의 형을 구해서 이게 지금 못 박아놓은 거 그게 얼마나 엄청난 건지 알고 누리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게 성령이 오면 우리 안에 능력으로 역사한다고 그랬죠. 예수를 죽음에서 부활해서 모든 만물을 거발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만물거발의 소유가 되게 한 게 그 성려의 능력으로 말미암았잖아요. 우리 안에도 너희를 위하여 동일하게 역사한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그거를 이제 성령을 통해서 역사에서 현실에 이루겠다. 그게 2장 1장 21절 22절 23절 그거예요. 만물을 충만케 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 그리스도 안에서요.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가 된다.

 

그래서 너희는 그리스도 만물이 내 것이고.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이게 그리스도 안에 잖아요. 그걸 보증하는 게 성령이고요. 그래서 성령의 인체신고한 보증은 그 신령한복 에베서스 1장 10절에 신령한복은 이미 이루어진 과거죠. 이루어진 과거의 승리적 그걸 성령해 두시므로 오늘 나의 삶의 시간 속으로 끌어오는 거죠. 그게 성령님이에요. 시간 속에 지금 지금 내 삶 속에 그걸 끌어와서 팽하도록 하는 분이 성령. 그러니까 혼인관계의 법적인 완료된 혼인관계를 지금 시간 안에서 그 혼인관계 안에서 혼인생활, 결혼생활을 충만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분이 성령이라고 해요.

 

성령이 도우시므로 시간 속에 실제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바로 해외에서 1장 13절 그 다음에 나오는 그 내용들이에요. 그게 능력으로 역사하는 거 우리 안에서. 그래서 지금도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거예요. 혼인생활을,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 엄청난 계좌 사용권 그 안에 있으면 막 사용할 수 있잖아요. 이거. 그렇죠? 우리 부엉에 대한 거 그거. 이 놀라운 것을 왜 우리가 계속 잊어버리고 못하고 있느냐라는 건 우리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야 돼요. 내가 왜 이렇게 못하고 있지? 계속 질문을 던져야 된다니까요. 에베소스 1장 앞부분에 분명히 신분을 말하고 중간에 성령이인을 치고 보정했다.

 

그래서 현실에는 너에게 나타나게 하고 있다. 예수님을 통해서 그렇게 이룬 것처럼 너에게도 나타난다. 그게 현재화고 시간 속에서 그 영원에 완성된 것을 배달하는 배달 그래서 이 영원 영원 아까 법적으로 완성된 것과 지금 시간 시간 안에 있는 나의 파이프라인 이게 성령이에요. 그렇죠? 전기 플러그에 꽂으면 전기가 흘러와야죠. 안 흐르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게 성령이에요. 성령 안에서 영혼과 지금이 연결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영혼의 현재화의 보증이 성용 나를 택하여서 소유로 삼고 완성삼고 이미 영원하게 완성된 것을 시간 안에서 집사님을 이렇게 인을 딱 쳐서 잡고 이제 완성된 것을 끌어당겨서 보정해서 이루게 그게 성룡이라고 해요. 그래서 우리는 그 신분에 걸맞게 살 수 있어요. 그 시대의 신성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안 사는 게 이상한 거죠. 그런가요? 그게 우리라고요. 이게 영혼과 지금이라는 관계 얼마나 엄청난 건지 몰라요.

 

그런데 우리는 그 안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밖에서 이 성경 말씀을 보고 지켜서 그걸 따내보려고 복을 받아보려고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고 이미 복을 잔뜩 받고 내려온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복 그 자체로 와 있는 사람들이 그 복을 사용해야지 누려야 할 사람들이지 복을 생산해야 될 사람들이 아니 그러니까 복타령에 물들어 있다가 제가 나눠드린 그 파일 보셨죠? 그거 제가 쓴 게 아니고 성경학자들이 해 놓은 거예요. 제 이야기를 할까 봐. 그게 완전히 처음에는 이단시비가 붙었던 거예요. 이단은 아니다. 왜? 똑같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잖아요.

 

예수님의 피를 인정하잖아요. 그런데 십자가는 왜곡시켰어요. 안 읽어봤어요? 읽어보셔야 된다니까.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요. 십자가를 왜곡하게 되면 십자가를 이용해요.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온다니까요. 꼭 읽어보셔야 돼요. 그러니까 이 크레임을 절대로 까먹지 마세요. 이제 이걸 그래서 통틀어서 그리스도 안에 이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게 지금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지금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꼭 우리의 노력으로 거해야 될 것 같지만 그게 아니고 지금 이 완성된 영혼을 성령이라 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흘려들여서 내 삶의 실제로 지금 이루어지게 하라 그 말이에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그게 에베소스 1장 10절까지 맞나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인치고 보정해서 이 땅에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그게 1장 22절 이해가요?

 

앞에 시 이론과 같이 이미 10절까지 그럼 그 아래는 성령의 이인치식을 보정해서 그다음에 23절 머리로 통해서 몸을 통해서 충만하게 하는 게 이루어지게 하죠. 그러니까 만물이다. 우리를 통해서 복을 받게 해야 되는 거예요. 이거예요. 이거. 그래서 그 안에 있는 내가 가는 곳마다 그게 이루어지겠죠. 우리가 임제 안에 갈 때 모든 게 그 안에 다 있고 그를 먼저 찾을 때 그 발 앞에 모든 것이 정렬되리라. 그게 그 말이에요. 그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지금 이 땅의 나를 통해서 성령이 부정하심으로 이루라 그거예요. 그 말씀을 하는 거예요. 그게 콜이라고 그랬죠. 완성하라. 내 안에 이루어지게 하라.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라.

 

먼저 그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게 하라. 그런 거죠. 요인일서 4장 13절로 가서 보면 그의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 그가 우리 안에 있는 줄 안대요. 그러니까 성령을 주심으로 내가 영원한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지금 내가 있는 이 시간 안에 있는 줄을 안다라는 경험으로 안다는거죠. 그래서 시간 안에서 내가 지금 그걸 경험함으로 현재로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성령이에요.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줄을 안다고요. 이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격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교제함으로써 상호 간의 관계, 상호 내주를 언제든지 확신할 수 있는 거죠.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는 거죠. 그런가요? 우리의 지금 신분이야 지금 신분이야 우리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지금 그래서 옛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죽을 몸에 끌려다니면서 그 분리 상태의 저주 아래 살 것인가? 결단해야 되는 거예요. 이건 이미 되어 있는데, 멍뚱한 결단을 하느냐? 아니죠. 아까 이거 나야네 거하라.

 

지속적으로 이 진액을 빨아올려서 열매를 맺게 하는 건 물론 하나님의 일이지만 그런 걸 노력을 통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내 안에 그게 이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해야 되잖아요. 성령이 그걸 가르쳐 준다고 그러잖아요. 그 성령이 오면은 그 안에 있다라는 걸 내가 그 안에 살고 있다라는 걸 알게 된다라는 거죠. 이게 그게 성령님이에요. 보증하고 인체 신분이 그러한 거예요. 그래서 신분에 걸맞게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아직도 종노릇 하면서 그렇게 막 끌려다니면서 사느냐 그 말하고 똑같아요. 제가 옛날에 아프리카 처음 갔을 때 이야기한 적 있었죠? 그게 아프리카는 최근까지 식민지였잖아요.

 

제가 갔을 때도 식민지에서는 다 해방되었는데 아직도 그 경제력이나 모든 어떤 문화, 학문, 언어 이런 것들이 유럽 언어를 다 쓰고 있잖아요. 자체적인 아프리카 토속 언어가 있긴 해요. 그걸 자기들끼리 쓰긴 하지만 모든 관공서 그다음에 문서나 TV 이런 전부 글씨는 영어 불어 그다음에 스페인어, 프로토콜 이거 다 쓰고 있거든요. 전부 외국어죠. 자기들한테는. 그런데 그게 이제 본국 모국화 되어 있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노예 해방된 지 제가 갔을 때도 벌써 몇십 년이 지났거든요. 그런데 가서 보면은 계속 이러면서 따라다녀요. 빠뚜롱 빠뚜롱 그러면서 따라다녀요. 빠뚜롱 뭔지 아세요? 빠뚜롱 모르세요? 옷은 많이 입고 다니시는데 빠뚜롱 주인님 주인님이에요. 빠뚜롱. 불어로 빠뚜롱 빠뚜롱 빠뚜롱 그래요. 주인님이라는 뜻이에요.

 

주인님 주인 나으리 주인 나으리 그 말을 계속 그러면서 다니는 거예요. 애들이 뭘까요? 노예근성이죠. 노예근성 우리가 그런다는 거 아닌가요? 우리 이미 그렇게 애수 믿는 순간 해방되어서 얘기 안 해. 이렇게 딱 존재로 이미 딱 못 박혀서 있는 사람들인데 계속 옛날 사람들이 근성을 가지고 살더라는 거죠. 염력은심해. 노예 물질의 노예 혈기 분노에 노예 많죠. 큰 노예로 살고 있더라는 거예요. 여전히 그런 게 올라오면 즉각 이제 우리가 1초 만에 그냥 앵크리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게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는 거예요.

 

그때 그리스도 안에 할 때 이미 뇌는 그쪽으로 흘러요. 고속도로가 그쪽으로 가다가 이쪽으로 빠지는 거예요. 이쪽으로 가다가 이쪽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빠지는 거예요. 편도체 납치되어 가다가 이쪽으로. 이쪽으로 가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으로 확 들어가는 거예요. 그럼 그거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 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이제 이게 바리케이트가 쳐져서 이쪽으로 안 가. 자동으로. 이제 그게 우리잖아요. 우리는 자동으로. 그래서 그게 내가 위치 선정을 먼저 하라고 그랬죠. 그게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얼마나 중요한 나는 그리스도 아내라는 이 개념이 얼마나 나를 완전히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거예요. 사실은 새로운 피조물의 존재로 살게.

 

거기에는 슬픔이 없잖아요. 수고도 없고 쉼이 있는 거예요. 평강과 안심. 수고하고 무거운 짐 다 내를 알아.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그게 글씨도 아니거든요. 그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있어야 돼요. 실제로. 그런데 계속 노예근성이라는 게 남아가지고, 조금만 툭 하면 폭 쏟아내는 게 노예근성. 조금만 뭐가 잔고가 떨어지면 아이고 큰일 났네. 이게 노예건성 일주일 내내 그러고 왔어요. 왜 이렇게 크게 웃어요? 아이고 합창을 했어요. 누가? 그게 노예근성이에요. 편도체 하이재키. 그게 그쪽으로 가보면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살아?

 

이 아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렇게 거하라 하는 건 또 명령인 것 같지만 당위성을 말해요. 당위성. 그렇게 우리는 살 수 있기 때문에 살아라는 거지. 그러죠. 그래서 이런 말씀을 보면서 영적인 어떤 생명력을 호흡하는 게 마치 뿌리가 진액을 빨아들여서 열매를 맺는 거하고 똑같잖아요. 이렇게 말씀이 생명으로 들어오면 그게 성령의 충만암하고 똑같잖아요. 성령 충만의 명령 받은 거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성령 충만으로 사는 걸 말하지. 성령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걸 말하죠. 그렇죠? 억지로 내가 노력해서 성령을 잔뜩 끌어넣어서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잘못하면 율법으로 빠져요. 그래서 이게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렸죠.

 

그러니까 영원을 지금으로 끌고 오는 거에 대해서는 제가 이번 부응하면서 구체적으로 더 집중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이건 완성된 영혼을 현재 시간 안으로 끌고 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안에 완성된 그리스도라는 그 계좌 안에는 뭐가 있을까요? 부환자라고 그랬잖아요. 다 있어요. 그렇죠? 이건 재정의 결핍도 아니 그 다음에 질병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것도 할 거예요. 이제 줄라오쯤에 가서 이것도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기억력이 안 나 이런 것까지 다 해야 돼요. 진짜로 해야 돼요. 우리는 그렇게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절대 세상 사람들하고는 다르다니까요.

 

세상 다른 사람처럼 교회 다녀서 그걸 몰랐을 뿐이에요. 그거 나눠드린 그 번영 신학 때문에 그거를 마치 내 인간이 그거를 하나님이 할 일이죠. 인간이 그거를 그림을 그리면서 품음으로 해서 마치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이용해서 내 원하는 걸 만들어내는 그런 매직 같죠? 그건 아니거든요. 이 안에 들어가 있는 걸 지금 시간 안에 누르는 건 하나님의 원이에요. 여기서 니가 분리되어서 이거를 막 여기다 그림 하나 그려놓고 이렇게 끌어내리는 게 아니에요. 십자가의 공로를 완전히 부정하는 거죠.

 

아니 이미 완성되어 있는 걸 내가 이 시간 안에서 성령의 통로를 통해서 현재 안으로 내려오게 하는 거지. 그걸 내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에요. 그런 노력은 우리가 할 필요가 당연히 있죠. 성경을 읽는다든지 기도한다든지 묵상한다든지 이런 게 바로 진액을 빨아올려서 열매, 열매 날을 새롭게 하는 과정에서 계속 성경과 말씀과 성경 말씀 다 크고요. 전부 그런 거죠. 그래서 옛사람에 끌려서 분리된 자의 저주 안에서 자꾸 사려고 그러죠. 우리는 옛사람이 이게 관 안에 내 안에 있고 습관이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거를 차단해야죠. 그런 노력은 해야죠. 그렇죠? 그게 그 안에 내 안에 거하라 라는 그 노력이 그런 거예요.

 

그거 노력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나는 마치 끝내 갈 일이 일어날 때마다 크리스하네. 나는 있다. 맨날 그것만 외치고 다녀봐요. 되겠어요? 잘못하면 미친 사람 취급받네. 이런 이런 많은 것들이 그 안에 이미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이거에게 휘둘리거나 속거나 그러지 않는다. 라는 걸 말하는 거죠. 그 안에 있다 라고 하면서 옛날 사람처럼 계속 살아봐요. 그럼 수가 슬픔이죠. 그런가요? 그거를 착각하시면 안 돼요. 그래서 여기서 이제 결론을 제가 말씀을 드리면서 가죠. 결혼을 한 사람은 결혼생활을 당연히 해야 되고 결혼생활이 아주 부드럽고 물 흐르듯 잘 되게 하는 성경의 부정하심이죠.

 

그래서 성령이 어떤 그 안에 생기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시잖아요.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마치 뿌리에서 빨아올려서 진액으로 공급하는 게 성령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 삶의 전체가 이런 하늘에 속한 모든 부환자, 신성의 모든 충만함에 이런 충만 능력 이 신성한 권능 그거로 우리는 이미 충만해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러죠? 홀리소스 2장 9절 10절. 그렇죠? 에베소스 1장에도 그러고 1장 마지막에도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 그리고 사도 마울은 에베서스 3장 16절 이하에 보면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충만하길 원한다 라고까지 또 이야기 우리는 그걸 충만할 수 있다라는 거고, 있어야 하는 걸 말이죠. 그렇죠?

 

그러면 그 엄청난 충만, 부유함, 완전함 안에 걷는 비결을 이제 실제로 우리가 알아야죠. 그게 바로 그리스도 아내입니다. 아내인데 거기에는 애쓰는 것이 아니고 거하는 게 문제예요. 이게 애쓰는 게 아니죠. 거하는 그 자체죠. 결혼했으면 결혼생활 해야죠. 그래야 애가 나든지 깨가 쏟아지든지 참시름이 나오든지 나올 거 아닌가요? 거하는 게 참기름 생산하는 거죠. 그럼 참기름 생산하려고 하면 되겠어요? 그건 아니죠.

 

그래서 애쓰는 게 아니고 진정한 능력이 나를 통해서 실제로 일어나고 이루어지고 실제화되는 비결은 애쓰는 게 아니고 구하는 거예요. 먼저. 그러니까 그 안에 사는 게 먼저죠. 결혼했으면 살아야 돼요. 살아야 애가 낳죠. 그 애가 바로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의 능력이잖아요. 그런가요? 열둘. 전통이 가득하면 창피를 당하지 않고 이런 거 우편에 앉는 능력이 딱 거기서 나오잖아요. 그래서 첫 번째 애쓰는 게 아니고 거하는 거예요. 두 번째 일하는 게 아니고 사용 일하는 게 아니고 예배하는 거예요.

 

이 관계 상원에서 이 관계 안에 거한다라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걸 말해요. 아바드 기억나죠? 첫번째는? 애쓰는 게 아니고 거하는 것 두 번째 일하는 것이 사역이 먼저 그게 아니고 우리가 열심으로 뭔가 하나님이 일을 하는 게 먼저가 아니고 아바드가 먼저예요. 섬기며 예배. 예배라고 그랬죠. 예배가 먼저예요. 그러니까 내 삶에 풍성한 하나님의 능력이나 그런 기적과 같은 그런 역사들은 일어나지 말라는 건 아니잖아요. 손을 댄 적 나으리라. 이건 기적 같은 일이잖아요. 그거 일어나야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손을 댄 적 나리라는 이렇게 해서 낫게 하려고 하죠. 아니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먼저 그 안에 관계 안에 사는 게 먼저 거하는 것. 두 번째 아바트 섬기며 예배하는 게 먼저 일하는 게 먼저가 아니래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이런 거에서 제일 많이 뭐라고 할까요? 사역의 오류를 범한 것. 너무 애쓴 거죠. 너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조금만 시간을 다른 데 이렇게 한가하게 이렇게 지나가고 있으면 속으로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이런 강박관념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게 아니라는 걸 말씀해주신 거예요. 그거 아니라고 일은 네가 안 하고 내가 한다. 네가 노력해서 한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말이에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노력은 안 하면 안 되죠. 해야죠.

 

열심히 성경도 연구하고 할 일을 해야죠. 그런데 그것만 집중하고 다른 거 아니더라고요. 그게 아니고 일이 먼저가 아니고 쓰는 게 먼저가 아니고 사역이 먼저가 아니에요. 그 안에 첫 번째 거하는 거 먼저고 거하면서 예배하는 게 먼저고 그 다음에 내 사역 노력 어떤 그런 걸 통해서 이루어내는 성과가 아니라 이 만유를 소유하고 계신 그 만유의 주님과 교제하는 것. 이게 모든 신성한 능력, 모든 충만함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그 반대로 사육도 열심히 하면 그런 기적도 나타나고 제가 그때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라는 부흥회를 하면서 회개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런 내용들이었어요. 이거를 몰랐던 게 아니라 알면서도 예습관대로 열심히 하려고 하는 그런 사역도 열심히 뭐 성경 있는 거 기도하는 것도 열심히 목상도 무조건 열심히 그래서 밥 먹고 배불러서 이렇게 산책하면은 이 시간에 에비에서 이상을 봐야 하는데 이런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디 놀면서도 머릿속엔 계속 이거 돌아가고 있습니다. 계속 돌아가고 이거 안 좋아요.

 

이거 좋을 것 같죠? 안 좋아요. 하나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애 낳는 건 못하는 거예요. 친밀한 관계가 있어야 애를 낳는데 각방 쓰면서 열심히 땅 파는 거하고 똑같아요. 열심히 대한민국을 다 뒤집어 봐요. 기적이 일어나는가? 뒤집는 일만 일어나겠지. 예수님은 말 한마디면은 대한민국을 엎었다 놨다가 물에 넣었다가 하늘에 올렸다가 할 뿐인데 그걸 몰랐어요. 그러니까 이게 자연적인 옛날에 열심히 하던 습관이 남아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열심히 해야 돼요.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감동을 받아서 피땀 흘려서 하더라도 해야 돼요. 뇌가 열심히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한번 피땀 흘려서 해봐야지 이게 폭탄형으로부터 온 거예요. 뇌 속에 남아 있었던 뇌의 습관이에요. 근육의 배어 있는 그런 자동적으로 나오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 제가 아 이거 아니구나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 나는 주님의 동력자제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래서 엄청 돌이켰어요. 후회 회계도 많이 하고요. 성과 이런 거에 대해서 엄청 집착을 많이 할 수밖에 없죠. 왜? 열심히 하니까.

 

아니 그럼 그만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안 일어나잖아. 그러면 이제 블랙아웃 되는 거예요. 동굴 트럭 실제로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착각한 거예요. 이 안에 있는 게 먼저인데 이 안에 있으면서도 나의 안에 거하라. 나의 안에서 살아라. 이런 걸 또 율법으로 행하고 있었던 거하고 거의 열심히 해야 된다라는 이런 어떤 관념 때문에 먼저 들어온 거죠. 그게 뭐든지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 하나님의 일은 뭐든지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 안에 있는 게 열심히.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 있는 그걸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부부 관계를 아주 잘 해줘야 하는데 각방에서 열심히 예수님은 혼자 가둬놓고 나 혼자 열심히 들락날락 들락날락 예수님 이거 드세요. 저거 드세요. 이거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래서 이런 걸 엄청 말씀을 많이 주셨는데 이제라도 정신 차려야 되겠다. 진짜 그런 능력이 제가 어느 순간부터 막 열심을 다해서 기도하고, 이런 걸 안 하는 게 그거예요. 지금 예배하면서도 내 안에서 성령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그게 진짜거든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기도하는 시간이다.

 

그러면 오늘 기도하다가 주님 뭐 치유하시렵니까? 아니면 오늘 치유하겠다. 이런 게 와야 그게 교제잖아요. 친밀한 부부 생활이잖아요. 그게 와야 간땡이 오늘 부은 거 싹 취합니다. 이렇게 간땡이 취한다. 해라 그러면 간땡이 오늘 나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 나아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간땡이 부었잖아. 저 사람 내가 가가지고 간땡이 그거 아니라는 거죠. 제가 그거를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게 많았던 거죠. 그런 것들은 이제 꽤 됐죠? 벌써 돌이키기 시작한 지 꽤 되긴 했는데도 아직도 관성이 남아 있어서 가다 보면 손부터 이렇게 하려고 안 하는 거예요. 감동이 오지 않으면 절대로 안 합니다.

 

그걸 해서 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내 선이잖아요. 그것도 하나님의 선일 거라는 착각 속에서 하는 거죠. 그게 아니에요. 그래서 그 관계 안에서 밀접한 관계가 먼저예요. 그래서 첫 번째 애쓰는 게 아니고 거하라 먼저. 그래서 거하라고 지금 그 안에 거하라. 이 안에서 지금 그 안에 그러니까 설교할 때도 그 안에 그래서 제가 여기 엄청 기도하고, 옵니다. 내 멋대로 놀리지 않게 하시고 내 말을 내 입에 담아난 대로 그대로 하게 하시고 그렇게 그 안에 사는 게 먼저 일을 많이 하는 게 먼저가 아니라 예배는 뭐예요? 섬기면 주를 주로 섬기는 거죠.

 

그러면 그 긴밀한 친교 안에서 주님이 원하는 걸 우리가 읽어낼 수 있죠. 성경을 죄야로 묵상하고 기도하고, 교제하고 그러다 보면 감동이 되고 주시는 말씀도 있고 성경 읽다가 깨달아서 주시는 말씀도 있고 이런 게 우리에게 오는 메시지잖아요. 주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잖아요. 그러면 그걸 가지고 그대로 행하는 게 예매예요. 삶에서 일어나는 그게 섬김이죠. 주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그다음에 내가 열심히 해서 뭔가 성과를 내려고 하는 거 아니다. 여러분 정확하게 들으셔야 돼요. 그거 아니다. 그게 아니고 만유의 주님과 교제하는 게 먼저다.

 

그랬을 때 왜 만유를 주님이 소유하고 다스리고 계시잖아요. 우리는 거기에 참여해야 맞는 거지. 그거를 내가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이 일하고 있는 걸 내가 열심히 뭐 해서 성과를 내 아이가 그걸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거 안에서 이걸 발견해 내야 되고 비결을 알아야 되고 우리가 신적인 그런 모든 충만한 권능 안에서 삶을 행하고 걸어가는 그 비결을 사도바울은 전수받았다고 그랬는데 저도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되는 거고, 그걸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걸 보면은 정말 멋진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안에서 보면 우리가 보기에는 좋은 일, 나쁜 일, 막 이런 거 천지지만 그게 전부 다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로 보여질 거 아니에요. 그러면 좋은 일, 나쁜 일, 기분 좋고 이런 게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주님이 하시는 대로 나는 같이 하는 거잖아요. 숟가락 하나 올려놓는 거잖아요. 그런데 숟가락만 올려놓으면 먹는 거죠. 같이 먹는 거잖아요. 은행 계좌를 쓰는 거잖아요. 그거 있죠. 그 충만한 안에서 충만하는 것 세 가지 기억하시겠어요? 애쓰는 게 아니라 거하는 것.

 

그다음에 일하는 것 먼저 일하는 게 아니고 예배 섬기는 것 예배하는 예배는 소중한 걸 제일 최선의 주는 거라고 제일 먼저 그다음에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만물의 주님과 교제 그러니까 만물을 다스리는 주님과 교제하고 있으면 그 만물 안에서 내가 그 다스림의 통로가 되어서 동력자가 그러면 그 안에 있는 걸 다 누리는 몸이잖아요. 머리만 누리겠어요? 머리만 있다. 보면 안 되잖아요. 손발도 같이 누리잖아요. 덩달아 우리는 그런 관계라는 거예요. 그래서 크리스도 아내가 먼저예요. 그래서 신약 성경의 앤 크리스도 240회가 넘게 나와 있어요. 크리스도 안에서 크리스도 안에서 인스크리스도 그 안에서 뭐 안에서 그런 내용이 나오는 거예요.

 

이거를 까먹고 자꾸 우리는 옛날에 옛사람의 본성, 율법의 본성이에요. 그게 율법에는 성경을 읽고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 본성이 먼저 들어왔잖아요. 그래서 뭐든지 열심히 해야 되고 뭐든지 말씀대로 살아야 되고 뭐든지 성경도 많이 읽어야 되고 이런 의무감이 먼저 앞서 있으면은 이제 그 결과물을 보면 내가 이제 성질납니다. 마음대로 안 되면 성질나고 이런 것들이 막 오는 거죠. 거기서 넘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비교를 꿰뚫어야 돼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게 전부 성경 안에 이게 완전한 삶을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게 그리스도 안에서 마치 율법 같지만 절대 율법이야. 행하는 것도 그 안에 보장하신 성령과 성령의 능력과 힘, 기름부음을 통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 절대 아니죠.

 

성령이 이루시는 거죠. 힘을 줘서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 영원히 완성된 것을 지금 시간 안에 끌고 와서 나를 통해서 집행하게 하는 분이 성령이에요. 그게 영원과 현재가 하나 되는 시점이 성령 안에서예요. 그리스도 안에서. 그걸 보정하는 게 성령이죠. 성령과 그리스도. 그다음에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하나 되어서 내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내가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게 그리스도 안에서이고 그럴 때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나를 통해서 당연히 예수님이 열심히 노력해서 이렇게 한 게 아니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 친히 그 일을 하신다 이렇게 우리도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 친히 그 일을 하신다 이렇게 되는 게 맞죠. 요한복음에 쭉 나와 있는 거. 그렇죠? 그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약성벽을 통틀어 한마디로 요약해라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성경도 물론 마찬가지죠. 그러지도 않았어요. 이게 얼마나 엄청난 건지 이제 우리 삶의 진짜 실제화가 돼야 돼요. 실제화가 진짜로 실제화가 돼야 그래야 우리 신앙생활이 종교생활을 넘어서 삶이 돼요. 이 삶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우리가 그 존재라는 걸 알게 되고 실제로 이루어지는 걸 누릴 수가 있는 에베소스 1장에처럼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걷는 것, 완전한 행복이 그 안에 있다. 율법이 아니라 존재다. 존재. 그걸 보정해서 이루는 성령이 시간 안에서 우리를 그렇게 행하여 간다. 다음에 그렇게 다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1. 그리스도 안에 거함

 

1-1.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240회 정도 등장함

- 사도바울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단어만 80여 차례 나옴

- (중요) 신약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며, 구원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일어나는 모든 것이 포함됨

- 구원의 시작과 완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됨

-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우리와 그리스도의 절대 끊어지지 않는 연합을 의미함

 

1-2. 그리스도 안의 의미

- 그리스도 안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이루어진 복이 임함을 의미함

- 하나님은 복을 주실 때,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단 하나도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심

- 구원의 과정은 오직 그리스도라는 영적인 공간 안에서만 일어남

- 그리스도 안은 우리에게 복이 잔뜩 있는 계좌와 같음

-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것은 중요함

 

1-3. 그리스도 안에서 행함

-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는 구절은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 행하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함

-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는 문자적으로 그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함

-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모순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헛되게 됨

- 우리가 노력하여 그 안에 거하려고 해도, 거하는 것이 항상 나쁘지는 않음

- 거하려는 노력은 정확하게 인식하고, 삶에 적용되어야 함

 

2. 그리스도 안에 거함

 

2-1. 그리스도 안에 거함이란?

- 성령은 우리를 보정하고, 누리게 하며,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함

-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어 주권적으로 만드심

- (중요)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고, 그 과정은 영원 이전부터 있었음

-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고, 사망에 이르렀으나, 구원받음

- 우리는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진 새로운 정체성이 있음

 

2-2.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

-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사건에 참여하는 것임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묻히고, 부활하며, 신간형적 연합을 이룸

- 에베소서 2장 6절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로 정체성이 있음

- 바울은 '그리스도 아네'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을 강조함

- '그리스도 아네'는 존재라고 표현하며,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임

 

2-3.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특권

-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친밀하고 완전한 연합을 의미함

-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정죄 없이 완전한 존재로서 구원받음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가 없으며, 의와 그룩함, 구속함을 가짐

- 우리는 머리와 몸처럼 절대 분리불가한 존재로, 머리와 몸이 하나이어야 함

-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특권을 얻는 것임

 

3. 그리스도 안에 거함

 

3-1. 그리스도 안에 거함이 되는 과정

- 우리 몸에 잘못된 훈련이 있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음

- 편도체 하의 고속도로를 먼저 달았다가 뒤로 후퇴하는 것과 같이, 잘못된 신앙도 있을 수 있음

- 우리는 세 사람이기에 잘못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함

-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내 노력이나 개선에 상관없음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율법이나 사단의 도발로부터 보호받음

 

3-2.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

- 그리스도 안에 있다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라는 상호 상호의미를 말함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완전히 교환되어 있음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 생명으로 완전히 교환된 자임

- 다른 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말이 정확해야 함

- 이 존재 자체를 인식해야 함

 

3-3.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

- 에베소서 1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새로운 존재임을 밝힘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완전히 교환된 자임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상호 내조의 신비를 말함

- 예수의 기도를 통해 이를 이루어 냄

- (중요) 옛날의 본성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임

 

4. 성령 충만과 관계

 

4-1. 하나님의 인도와 성령 충만

-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고 기동하는 것이 됨

-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 정체성을 말함

-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중요함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산다 함

-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소생, 즉 하나님의 가족처럼 살고 있다는 뜻임

 

4-2. 신분과 관계의 유지

- 신분과 신분은 내 노력이나 감정,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음

- 요한복음 15장 4절과 고린도전서 1장 30절은 이미 이루어진 법적 사실을 말함

- 요한복음 15장 4절은 완료된 사실을 지속해야 할 관계를 말함

- 신분은 내 노력이나 감정에 따라 변화하지 않음

- (중요) 요한복음 15장 4절은 신분에 응하여 현재 살아가야 할 경험을 말함

 

4-3. 풍성한 관계의 누리기

- 풍성한 관계의 누리는 결혼식과 결혼생활에 비유할 수 있음

- 교회 출석이나 사역 등이 먼저가 아니라, 그 안에서 관계를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 중요함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안에서 교제하고 있는 상태가 우선임

- 계속 강조하는 것은 신분을 유지하라는 뜻이 아님

-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있고, 그 안에서 관계를 풍성하게 누리는 것이 우선임

 

5. 결혼과 행복

 

5-1. 혼인신고와 부부관계

- 혼인신고 후 법적으로 부부관계가 성립됨

- (중요) 하지만 혼인신고만으로 행복해지지는 않음

- 부부관계를 통해 매일 대화하고 사랑 표현하며 함께 있음이 중요함

-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의 혼인관계로 인해 이득을 누리게 됨

- 세상풍조를 따르거나 죄를 짓는 등 옛사람의 습관을 따라서는 안 됨

 

5-2. 그리스도 안의 신분과 행복

- 예수님을 믿으면 혼인관계의 법적 신분을 갖게 됨

-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동안 죄를 짓거나 자기 계획을 따르면 불행해짐

- 그리스도인은 은행 계좌처럼 영생과 복락을 누리는 신분을 가짐

- 옛사람의 생활 방식은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과 같음

-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따라 살면 수고와 슬픔, 고통이 찾아옴

 

5-3. 부부 관계의 노력과 행복

- 부부관계를 통해 사랑과 희락이 저절로 맺히도록 노력해야 함

- 노력하지 않으면 자기 계획대로 사는 것이 됨

- 부부관계는 법적으로 완성된 신분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나가야 함

- 결혼한 부부는 집에 와서 함께 거해야 함을 명령함

- 신분에 걸맞게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살아야 영생임

 

6. 그리스도 안에 거함

 

6-1.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노력의 중요성

- 은행 계좌인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노력이 생명의 근원이자 삶의 근원임

- 율법적인 노력이 아닌, 사랑 안에 뿌리바를 빨아 올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빨아 올리는 노력이 필요함

- 말숨을 읽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고, 충만해지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노력임

-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노력은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와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짐

-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하여 각자 방에 따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한 것임

 

6-2. 본능적인 행위로서의 기도와 묵상

- 기도와 묵상은 본능적인 행위이며,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본능임

- 기도와 묵상은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과 동일함

- (중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노력은 본능이지만, 거룩함으로 가는 과정에서 노력이 아닌 자연스러운 본능에 해당함

-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의 삶의 방식임

-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이미 거룩한 신분이며, 점점 거룩함으로 나아가야 함

 

6-3.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노력의 실패와 주의점

-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노력이 사단이 되는 것은 주의해야 함

- 자신의 노력이 예수님의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율법의 실패임

- 성경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신분을 근거로,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와 친밀함을 선택하며 사는 것임을 가르침

-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는 노력은 구원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분 좋은 수고임

- 우리의 노력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에 있어 불가능하며, 친밀함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짐

 

7. 성령의 보증

 

7-1. 결혼과 성령의 보증

- 성령이 결혼과 결혼 생활을 보증함

-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결혼 생활의 풍요로움이 이루어짐

- 요한복음 14장에서 성령이 임하면 그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됨을 언급함

- 예수님은 성령이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 역사한다고 말씀하심

- (중요) 성령은 시간 속에서 현실에 성취되는 것을 보증함

 

7-2. 성령의 역할

- 에베소서 1장 10절에서 성령이 이미 이루어진 과거를 보증하고, 현재 내 삶의 시간 속으로 끌어옴을 밝힘

- 신령한복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성령의 보정으로 인해 현실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함

- 영혼과 몸이 연결된 관계에서, 성령은 신령한복을 통해 완성된 것을 보증하고, 내 삶을 통해 이루어지게 함

- 우리는 복을 받아 이미 내려온 사람들에 해당하며, 복을 생산하거나 누리는 것이 아님

- 복은 사용하는 것, 생산하는 것에 해당하며, 성령을 통해 완성된 것을 흘려보내는 것이 중요함

 

7-3. 성령의 보증과 시간

- 성령은 만물을 충만케 하시고, 우리를 통해 복을 받게 함

- 성령은 완성된 영혼을 통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보증함

- 성령을 통해, 우리는 만물을 통해 복을 받게 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완성됨

- 우리는 성령을 통해 현재에 이미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음

- 성령은 우리를 통해 복을 받게 하고, 복을 통해 완성된 것을 이룸

 

8. 성령충만

 

8-1. 성령과의 관계

-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 형성 및 교제함으로써 상호 간의 관계, 상호 내주를 확신할 수 있음

- 신분에 걸맞게 살아야 하며, 지속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노력하여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야 함

-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음을 보증하고 인격신분으로서 우리를 거듭나게 함

- 성령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나타나는 열매를 통해 우리에게 보증을 주심

-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경험한 바를 통해, 아직도 일부 사람들이 본국 언어를 사용하며 노예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함

 

8-2. 성령 충만의 삶

- (중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아내라는 개념에 거하면 완전한 행복과 평강, 안심을 얻게 됨

- 영적인 생명력을 호흡하는 것이 뿌리가 진액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으며, 성령의 충만과 동일함

- 성령 충만의 명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 충만으로 살아가야 함

- 율법으로 빠져나가지 않으려면, 노력해서 성령을 통한 분별을 행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함

- 우리는 이미 완성된 그리스도이며, 성령의 통로를 통해 현재 시간 안으로 내려와야 함

 

8-3. 성령 충만의 과정

- 우리는 영원을 현재 시간 안으로 끌고 오는 작업을 통해 완성된 영혼을 만들어내야 함

-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부환자와 질병 치료의 기적을 경험하게 됨

- 번영의 신학에 휩싸인 우리가 아닌, 이미 완성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함

-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성경 읽기, 기도, 묵상 등이 필요함

- 분별된 자의 저주 아래에 갇혀 옛 신분에 끌려다니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진정한 자유와 평강을 얻게 됨

 

9. 거하는 신성

 

9-1. 거하는 신성과 열심히 하는 신성

- 하나님의 충만함과 능력은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임

- 그리스도 안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함

- 열심히 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충만을 통해 나타나는 것임

- 내 안에 거하는 것, 즉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있어야 함

- 내 삶의 풍성한 능력은 내 안의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옴

 

9-2. 사역과 열심히 하는 신성

-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먼저여야 함

- 나의 일, 나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일과 교제하는 것임

- 하나님의 능력과 충만함이 나타나도록 해야 함

- 열심히 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열심히 해야 하는 기적과 하나님의 능력임

- 열심히 하는 것과 함께, 다른 것들도 해야 함

 

9-3. 거하는 신성과 열심히 하는 신성

- (중요) 기도, 성경 공부, 목상, 산책 등 열심히 하는 것보다, 내 안에 거하는 것이 먼저임

- 나의 안에 거하는 것, 즉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함

- 열심히 하는 것과 함께, 나의 안에 거하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는 것이 중요함

- 그리스도 안에서 열심히 해야 함을 깨닫고, 내 안의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야 함

- 하나님의 능력과 충만을 통해, 열심히 하는 것과 함께 나타나도록 해야 함

 

10. 관계 안에서 섬김

 

10-1. 예배와 섬김의 관계

- 감동이 없으면 절대 안 함

-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면, 예배와 섬김이 먼저여야 함

- 일보다 예배와 섬김이 중요함

- (중요) 크리스천 아내가 먼저여야 함

- 크리스천도 성경을 읽고 선한 일을 행하려는 본성이 먼저 옴

 

10-2. 성경의 중요성

- 율법과 성경을 통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올바름

- 성경을 읽고 깨달아야 함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예배임

- 성령이 이루시는 것임

- 성령과 그리스도가 하나 되어 내 안에 거함

 

10-3.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 신약성경의 교훈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것을 보며 행해야 함

-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 안에 완성된 것을 집행하는 분이 성령임

-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 친히 일하심을 알아야 함

-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나를 통해 나타남

- 에베소서 1장에 같이 옴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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