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11)_'엔 크리스토'를 보증하고 가르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롬8장, 갈5장, 요일2장)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26.06.19조회수61 목록 댓글 0https://youtube.com/live/Nr_5FtE8f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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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11)_'엔 크리스토'를 보증하고 가르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롬8장, 갈5장, 요일2장)
지금 열한 번째 시간으로 가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차이에 대해서 나누면서 에베소 실장과 함께 연결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이스라인 크리스도를 우리 삶 가운데 실제로 일어나게 하고 보정하는 게 바로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함께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스 1장을 지난 시간에 그림을 그렸던 거 기억납니까? 영원. 예언과 지금 바로 이 시간 안에 있는 우리를 말하고 이것을 연결하는 게 성령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렇죠?
이 영혼은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계획하고 이루어 놓으신 모든 것을 말하는데 그것이 에베소스 1장 앞부분 1장 1절에서 10절까지의 내용 하면 그것을 유업으로 우리에게 주셨다고 그랬습니다. 그런가요? 그것을 보정하는 게 이제 13절 성령인치고 보장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게 딱 보면 샌드위치 구조죠. 이게 이제 시간 안에서 우리에게 집행하는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한다는 능력 능력으로 능력으로 네 가지 이야기했죠. 그렇죠?
예수님께 하셨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그걸 이루어 21절, 22절, 23절이 되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런가요? 이 부분을 잘 머릿속에 두셔야 합니다. 이게 영원과 현재의 그림입니다. 정확하게 아들됨과 상속을 보정하는 게 영원에서 이미 이루어진 거죠. 그런가요? 그걸 신령한 복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렇습니까? 이 땅에서 영원과 현재의 연결의 통로가 되는 게 바로 성령이고 그것을 집행하는, 이루어 보장하는 성령이라고 그랬죠.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게 단절이 됩니다. 그렇죠?
이미 완성된 것은 절대로 패하여지지 않고 변화할 수 없는 거라고 그랬습니다. 우리의 신분이죠. 신분. 아들 양자로 이미 입적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건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거기 때문에 누구도 병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도 그 영혼에 있는 것을 끌어내려서 지금 시간 안에 우리가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게 지금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지금 그 안에 가라. 그래서 이 전체가 하나님의 섭리 그런가요? 전체가 하나님의 기획 경영하심이라고 그랬고 그걸 시간 안에서 집행하는 0인데 우리에게 완성된 것을 이루어지고 우리에게 누릴 수 있도록 보정하고 행하시는 능력으로 행하시는 분이죠.
그게 바로 성령인데 그래서 성령에 인도하심을 보증하심을 받지 못하면은 이미 보증금을 내고도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거와 똑같아요. 보증금을 내면은 입주할 수 있죠. 우리가 그걸 못 하는 거예요. 성령이 부정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은 그런 결과를 가지고 영원한 힘이 완성된 승리한 것이라고 그랬죠. 시간을 내서 누리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그게 바로 뭔가 하면은 교재 단절입니다. 이게 이 부분이 그래서 성령 안에서 교제하는 부분이 그렇게 중요한 거죠. 그런가요? 우리를 이끌어 거기 안에 두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도록 부르셨다고 그랬죠. 그 교재는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죠.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지죠. 그런가요? 말씀을 우리에게 밝히시는 분은 성령이고요. 만약에 그것이 단절이 된다면 우리는 여기서 우리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이걸 얻으려고 노력을 하겠죠. 그러다 안 되면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이라고 푸념을 하면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러면 성령을 거스르면 안 되겠죠? 성령을 거스르는 건 육체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고요. 육체를 거스린다는 건 간단하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때 성령의 보정, 교재함을 통해서 우리를 영월하니 완성되니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거죠.
우리가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이 막는 게 아니고. 그렇죠? 그래서 크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는 것은 성령을 쫓아 행하는 자입니다. 성령을 쫓아 행하면 크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이제 안 속죠? 속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본분이에요. 성령 그리스도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것은 제3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죠. 그럼 제3이 없이는 성령은 역사를 안 해요. 그런가요? 성령이 우리를 인도한다. 라는 것은 우리가 성령 쫓아 행한다라는 것은 조건절이 아니에요. 지난 시간에 한 것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단지 이제 주제가 성룡으로 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그렇죠?
성룡을 쫓아 행한다라는 것은 내가 열심으로 성룡을 쫓아야 할 것 같은 그런 착오를 불러올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쫓아양하지 않으면 안 되겠죠. 그런가요? 오라 하면 가야죠. 강제로 땡겨오질 않습니다. 그런 거죠. 동전의 양면과 같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성령을 쫓아 행하는 행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부분을 정확하게 깨달으셔야 돼요. 우리는 그게 좀 문자로 자꾸 보면 헷갈려서 열심히 내야 될 것 같은 그런 물론 열심히 내지 말라는 이야기가 하는데 성령 충만을 받으라 그러면 받으면 되는 거죠. 거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당연히 성령 충만해야 되는 걸 말하죠. 그렇죠? 성령 충만을 받아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부분을 깨닫고 하셔야 돼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을 쫓아 행하는 자가 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맨 먼저 용언을 그래서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게 되면 이 용언을 완성된 것을 누리지 못하게 단절시키고 있는 뭔가를 먼저 제거하겠죠. 그게 바로 육체라는 거잖아요. 그렇죠? 육체는 성령을 거스르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그걸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나라는 옛사람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을 만족시키는 거에 마치 그것이 복음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교회를 오랜 시간 다니고도 이거는 죽어서나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게 속임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성령에 오시면 우리를 먼저 새롭게 창조하는 사회를 하신다는 거 거룩하게 하는 일을 한다는 거죠. 그렇죠? 왜요? 보증했으니까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보증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걸 누릴 수밖에 없어요. 지금 이 안에서 안 누리면은 정상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수고와 슬픈 가운데 염려하면서 때로는 두려워하면서 고생하면서 쉬지도 못하고 사는 게 속고 사는 겁니다. 반드시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보증인까지 있기 때문에요. 보증하신 성년까지 계시기 때문에요. 그런가요?
그런데도 그걸 누리지 못하는 예언은 육체가 강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다른 말로 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은 그 자아를 먼저 부정하라는 거고, 그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거예요. 같은 맥락에서 흐르는 겁니다. 그걸 못 박아야 안에 있는 게 아니고 안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성경의 인도하심을 받아가 못 박는 삶을 산다라는 거죠. 그런가요? 이렇게 정확하게 정리를 하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성령을 쫓아 행하려고 성령과의 교제를 사모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것도 하나님이 먼저 아십니다. 교제하도록 그 안에 넣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주체는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이 먼저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그 교재로 인도하시는 거죠. 인도해서 누리라는 거죠. 왜?
언약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과관계가 아니에요. 그렇죠? 여기까지 이제 이해가 되셨고 그래서 강제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서 막 그냥 목을 확 틀어주고 나쁜 짓 안 하게 하고 그렇죠? 죄도 안 짓게 하고 욕도 못하게 하고 이러면 좋겠죠. 저도 옛날에 그렇게 기도했어요. 아니 로봇처럼 만들지. 왜 이렇게 멋대로 살기 위해서 부엉에 한 것 같죠? 제법 거룩해 보이지 않아요? 인성도는 돼야 되는 거예요. 원래 일부러 쉬는 사람도 있잖아요. 쉬는 게 아니고 쇠한 거예요. 쇠한 거.
성령은 그래서 감동을 통해서 하시지 강제로 절대로 안 해요. 그게 뭔가 하면 인격, 지극히 인격적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제하기를 원하시지 강제로 정해놓은 대로 가라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충분한 자유 의지를 존중합니다. 안하면 좋겠죠. 멋대로 안 하게 하면 좋겠죠. 주님 내가 혹시 잘못하면 무조건 막으세요. 딱 막아주면 좋겠죠? 안 합니다. 잘못하고 나서 연락이 맞고 그래서 감동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음성으로 들려주시고 교제하심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교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결과 성령의 교재가 그래서 한 해에 보증이 아니고 크리스도 안에 있는 보정으로서의 결과예요. 이해 가시죠? 보정했기 때문에 감동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음성을 주시고 이런 교제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마치 붙어있는 것처럼 헷갈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이미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성령이 부정하시고 먼저 이걸 완성하셨잖아요. 부정하시는 것은 성령이 중간에 있고 현재로 나타나는 게 성령의 부정하심의 결과죠. 성령이 없는 신앙 생활은 여러분 사실 없는 겁니다. 그렇죠? 그래서 율법 아래 신앙이 죽은 거라고 하는 게 바로 그거요.
사도가울이 자기 여유로 했던 그 모든 게 성령을 대적했던 거예요. 우리도 이제 그 정도는 쉽게 할 수가 있죠. 그래서 강제로 안 합니다. 여러분 나를 보증했으니까 나를 인도해서 하라고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목을 끌고 갈 때까지 기다리면 안 돼요. 아시겠죠? Come in. 감동할 때 얼른 해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성령은 이제 요한에서 2장으로 가면은 성령이 가르치시는 대로 주안에 거하라 하죠. 또 그러니까 이게 또 반대 같잖아요.
우리는 거한다고 이미 1장 30절 고른도 그렇게 딱 못을 박아놨는데 요한열사 2장에 24절부터 27절 8절 사이는 또 거하도록 가르친다네요. 그러면 성령이 꼭 먼저 갔죠. 그게 아니에요. 그래서 어제 한 거하고 똑같아요. 그 안에 거하고 있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들을 가르쳐주는 거죠. 그 안에 거하고 있는 걸 알게 해서 그렇게 행하고 살도록 계속 역사를 하시는 거죠. 그렇죠? 그게 이제 상원외주를 통한 친밀한 관계를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서론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로마스 8장 1절에서 13절까지 갈라디아스 5장 16절부터 그 이하까지 그다음에 요한일서는 2장 24절부터 그 이하까지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로마스 8장 1절에 생략된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죠. 그리스도 안 해 있는 자에는 결코 정재함이 없나니 이런 생명의 성령이 재화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습니다. 그리스데스 안에 있는 자에게 정재함이 없나니 거기에 생략되어 있다고 그랬죠. 그게 이제 사본의 여러 가지 차이가 나기는 합니다만 생략된 부분이 육신을 쫓지 않고 성령을 쫓아 행하는 자라고 그랬죠.
그러니까 정확하게 킹 제임스 버전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 예수환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지함이 없습니다. 그들은 육실을 따라 걷지 않고 성령을 따라 걷습니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육신을 따라 걷지 않고 성령을 따라 걷습니다. 그런데 이절로 넘어가면 바로 그게 나오죠. 이절로 넘어가면 바로 그 내용이 바로부터 나오는 거잖아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삼항의 법에서 해방하였고 사절에 육신을 쫓지 않고 성령을 쫓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표 배역을 이루려 하심이라 반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생략이 됐다.
이런 말도 있고 여러 가지 말이 있는데, 어쨌든 이 부분이 생략되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가? 그건 아니에요.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느냐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이해 가시죠? 서론이 했던 그대로예요. 이 사본 차이 해석의 차이가 있는데, 이게 성경신학 우리는 신학 많지만 성경신학이라고 그래요. 이게 정확합니다. 성경신학이라고 하는 게 성경신학적으로 이제 우리가 이걸 뭐라는가 하면은 우리의 행위와 크리스도 안에 있는 신분의 차이라고 그렇게 말했죠. 존재와 행함. 계속한 게 그거예요. 존재와 행함.
어제도 했잖아요. 우리는 그 안에 이미 있죠. 존재하야. 영어에는 be being이라고 그러고 그 안에 있기 때문에 행할 수 있죠. 이거는 doing이라고 그래요. 존재와 행함 하야와 할라크 기억나요? 할라크 하야 할라크 이거는 존재하지 않으면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행암으로 존재 안에 있다. 이건 율법이에요. 율법. 그래서 그 행암을 먼저 강조하다 보면은 거기서 나가떨어집니다. 사도바위처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전일에 거기까지 가는 거죠.
그래서 율법 안에는 생명이 역사하지 않아서 결국은 사망으로 끌려가게 되는 게 그게 마귀가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속이는 속임수라고 했죠. 일루마스 7장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존재와 행암이 여러분 이 성경신학적으로 정확하게 있는 게 먼저다 라는 걸 말하고 있어요. 이걸 먼저다 나중이다 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사실은 함께 역사하잖아요. 예수님과 성경과 하나님이 그 섭리 안에서 말씀대로 성경을 운영하기 때문에 따로 떨어져 있는 각각의 객체이기는 합니다만 역사하는 거랑 똑같죠. 능력은 똑같고, 목표가 똑같죠. 그렇기 때문에 이걸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논리일 수도 있습니다. 이해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이해를 위해서 함께 갑니다.
함께 함께 가야 돼요. 항상. 왜냐하면, 삼위일체로 역사하기 때문에 그래요. 성령은 존재로 있는 것을 역사하는 건 성령의 능력인데 그 존재가 역사하기 위해서는 이미 계획이 있어야 되고 계획이 말씀이고 말씀이 이미 응했기 때문에 그러잖아요. 그래서 말씀이 없는 역사는 없고 말씀이 없는 성령의 사역은 없습니다. 말씀이 없이는 성령도 당연히 역사하지 않지만 천사들도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10편, 103편. 1절에서 24절 그게 말씀을 이루는 영 하나님의 역사하는 곳에 있는 그 영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다고 그랬죠. 천사 천군이라고 그랬는데 영이잖아요. 그게 전부 그리스도 아래에 발화돼 있죠.
에베소스 2장 20절 이하의 성령의 역사에서 모든 걸 거발하래. 그리고 만물을 그 소유로 그래서 모든 이름은 거발하래. 굴복하죠. 그래서 그 말씀 안에 굴복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선포할 때 굴복합니다. 내가 이용해서 하는 말씀이 아니고 받은 말씀을 가지고 선포할 때 그대로 천사도 순종하고 굴복하는 겁니다. 이해 가시죠? 그래서 천사사역이라고도 많이 말들 합니다. 그건 성경신학의 말은 아니에요. 사람이 지어낸 말이에요. 성경신학으로 보면 존재와 행함이 먼저고 그 다음 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로 엮여져 있어요. 그래서 성경이 운행하시고 빛이 있으라 이걸 우선순위를 따지라고 그러면 안 되죠. 상태를 말하는 그렇죠?
따로따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 부분을 알고 계시면 이제 성경이 어떤 데는 거룩하다 해놓고, 또 거룩하다. 이미 다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또 막 박아라 하고 오늘 말씀처럼 그 안에 있다고 했는데 또 그 안에 거하라고 가르친다고 하고 이렇게 웃음 같은 것들이 계속 나오잖아요. 이런 것들을 우리가 원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성경을 읽을 때 계속 헷갈리는 거예요. 이런 것 같고, 저런 것 같고, 그런데 그 아도를 가르친다 라고 했는데 앞에서 그 하고 있다. 이건 이미 까먹어버려요. 까먹어버리기 때문에 그거 읽을 때는 또 새로 아 그 아도를 가르치는구나. 언제 또 그 안에 있다고 말했지? 그것도 성경을 다 뒤져서 찾아도 안 나와.
또 콜린전서 1장 30 외워놓으면 금방 될 텐데 유한일서 읽을 때 되면 그걸 까먹어버린다니까요. 그 안에 있는 걸 까먹어버려. 새로운 게 나왔네. 우리를 그 안에 가도록 가르치는구나 그러면 성령을 쫓아 행해야 그 안에 가할 수 있겠네 이런 말을 잘못하면 하게 돼요. 이해되셨죠? 요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깨닫고 계시면 되겠죠.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는 이미 신분적으로 완성된 거고, 그 부분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은 성령을 해서 말씀을 통해서 일어나는 그런 것들을 우리가 볼 수 있는데, 결론부터 이제 말씀을 드리자면 성령을 쫓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의 원인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이고 그 안에 있다라는 증거입니다. 거 그게 성경신학의 정의예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 라는 것을 인을 치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고 보증해서 이루시는 분이 성령이다. 이해되셨나요?
그리고 보면 사절에 육신을 쫓지 않고 영을 쫓아 행하는 예계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리라 그러면 또 막 엄청 영을 쫓아 무조건 영을 쫓아 행해야 될 것 같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영을 쫓아 행하도록 보증이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필수적으로 성령의 인도화면을 우리는 받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는 그걸 이게 성령의 인도화면을 통해서 이루어졌는지 아닌지 이 부분을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잘 모르는 거예요.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이미 성령께서 인도하고, 있었던 거예요. 예를 들어서 성경을 읽다가 어떤 부분이 확 꽂혀와서 아 맞아. 내가 이렇게 살았지.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그러면서 이제 똑바로 살아야지 막 이런 깨달음이 오고 결단이 오면 물론 율법적인 경우도 있긴 하죠. 그렇죠? 서로 사랑하라. 그러니까 사랑하지 않은 거 금방 알잖아요. 그럼 사랑해야 되겠다. 그래서 행함으로 가는 거 하고는 다르죠. 그렇죠? 깨달음을 통해서 내 존재를 보는 거 하고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게 성령에 인도하심이에요. 전부 성령에 감동하심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게 하는 건 성령이거든요. 내 안에 있는 제 성을 보게 하고 깨닫게 하는 것도 성령 그걸 고치게 고치고 제거하게 하려고 감동해서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성령이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성령 인도함을 받고 있는 중인데 그걸 잘 몰랐던 거죠. 인식을 못 하고 살았던 거죠. 이해 가시죠?
그래서 사절에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쫓자 행하는 우리에게 이게 이제 필사 과정에서 1절의 결론을 강조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필사할 때 삽입했다. 이렇게 말하기도 해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전체 문맥 안에서 이미 그게 반복되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 구절의 위치와 논리적인 순서인데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증거라는 거예요. 그것만 정확하게 여러분 새기고 계세요. 성령을 쫓아 행해야 그 안에 있다 라고 하면 그거는 성경신학적으로 안 맞아요. 이 부분만 정확하게 알고 계셔야 그러면은 우리의 삶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렇죠?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거죠. 그게 증거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는 막 성형을 막 잘하고 이런 부분이 아니에요. 누구나 똑같은 그거는 그렇죠? 단지 성령인도화심이 얼마나 많이 깨어 있느냐 그게 중요한 거죠. 그리고 성령인도화심을 무시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데 안 그래요. 뭐 오늘 날씨가 좀 짓궂어서 집에 있지 뭐 교회 안 가고 또 이런 생각이 드는데 속에서 그래도 가야지 가야지 이러면 육신의 감동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무시대죠. 마치 그런 거예요. 그렇죠? 저는 목이 지금 쉬어도 나왔거든요.
목이 쉬어도 나왔거든요. 목이 쉬어서 안 나오신 분 있죠? 잘 생각하셔야 돼요. 이게 감기가 아니고요. 마귀가 우리 이번 부흥회가 진짜 중요한 거였거든요. 그걸 엄청 방해했어요. 물론 감기 증상이 조금 있는 것도 사실 맞아요. 그런데 제가 이 정도 목이 있을 정도로 감기가 걸리면 앓아누워야 돼요. 저는 거의 감기가 안 걸려요. 수년 동안 감기라고는 거의 걸려본 적이 없는데 어쩌다가 진짜 독하게 걸렸다. 그러면 못 일어나요. 온몸이 확 완전히 죽어버려요. 그 정도로 심한데 전혀 다른 증상이 없어요. 머리도 안 아프고 콧물도 안 나오고요. 전혀 다른 증상이 없다니까요. 이걸 또 확 쫓아낼 때는 또 괜찮아요.
그러다가 또 누구 걸 확 쫓아내고 나면 또 그러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돌고 돌아서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속지 마세요. 물론 우연히 감기와 겹친 경우도 있기는 해요. 그것까지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약 먹으면 금방 나을 것 같지만 오래 갑니다 하면 또 오래 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죠. 마귀 새끼가 좀 질긴 거예요. 그런 거 아시면 되겠어요. 분별하셔야 돼. 그렇다고 무조건 또 이건 마귀야. 마귀 이런 것도 곤란해요. 분별을 잘 하셔야 돼요. 자,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 아니다. 라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왜? 이걸 보증했기 때문에 성령은 절대로 내 안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그랬잖아요. 14장, 15장, 16장. 그렇죠?
내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영원한 섭리 여기를 누릴 때까지 안 떠나고 부정했기 때문에 그걸 계속 가르치는 거예요. 계속 인도하고, 계속 내 안에서 보게 하고 알게 하고 깨우치게 하고 감동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는 거예요. 그걸 아셔야 돼요. 그건 증거로 나타난 내가 그 안에 있다는 증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내가 그 안에 있나? 오늘은 밖에 있나? 이건 절대 의심하면 안 돼요. 그건 내가 이 시집의 아들인가? DNA 검사를 해봐야 되나? 이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아시겠어요? 여러분 검사하면 예수 DNA 나옵니까? Y 염색체 없어요? 예수님은 너무 깊은 거 말하면 또 아시겠죠? 에어로그는 이제 종자가 달라요.
종자가 예수파예요. 예수의 DNA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DNA 안 바뀌어요. 그래서 진짜 음수할 때 DNA 하는 거야. 하다가 우리는 그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좀 잘못한다고 밖에 떨어서 나가야겠고 그게 아니에요. 성령의 인도함에서 단절되기는 하겠죠. 더 이상 거부하면 거부하면 하겠어요. 인격적인데 같이 가자꾸나 하는데 싫다고 그러면 성령님이 억지로 가야 돼. 자식아 안 한다는 거야. 그렇다고 떠나지도 않아요. 안에서 기다려요. 끝까지 기다려요. 같이 갈 때까지. 이해하셔요? 그런 분이에요.
성령의 가장 큰 성품 중에 하나가 오래예요. 마귀도 오래 참아요. 문 앞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 제게 성명을 거부하나? 그때 확 무는 거예요. 그러죠? 먼저 유혹하겠죠. 자,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걸로 해석 가능하냐? 그 개념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건 조건이 아니에요. 정체성의 문제. 만약에 성령을 쫓아 행해야만 결코 정지함이 없다. 일절이 그렇게 해석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렇다면 이건 심각한 거예요. 우리는 다시 행위로 돌아가야 돼요.
열심히 성령을 쫓아 행해서 정재함이 없는 권한으로 우리가 들어가야 돼요. 그래서 정체성이 먼저라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그러면 우리가 행위 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돼버리는 거예요. 그럼 심각하죠? 사도바울이 성령이 충만해지니까 그게 아니라는 걸 정확하게 말한 거예요. 여기서 바울의 논리는 그리스도인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성령을 따라 살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있는 게 원인이고 쫓아 행하는 게 결과라는 거예요.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영적인 지표 같은 그런 거죠. 그 다음에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은.
그래서 성령이 통치하는 구역이에요. 정확하게 그러죠. 왜요? 생명의 성명의 법이 역사하는 구역이잖아요. 거기가. 그래서 안에 밖에는 재화사망의 역사거든요. 그게 육체죠. 육체는 재화사망이 로마스 극장에서 항상 저의 세력이 물어뜯으려고 계속 우리를 미국하잖아요. 끌고 가잖아요. 멋대로 살라고. 그럼 성령은 내 멋대로 사는 걸 반대로 성령의 소역대로 이끌잖아요. 그 차이죠. 그래서 그게 성룡과 악령의 차이라고 제가 수없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룡을 쫓아야 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정시켜주면서 동시에 그 그리스도 안에가 성령의 통치 구역이라는 거요. 그게 영적인 영역이에요. 그래서 단순히 관념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것은 실제예요. 지금 실제 그래서 지금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고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에 완전히 터닝 포인트예요. 그러니까 뉴턴 같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엄청나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걸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 아래 땅에서 이거를 누리는 것은 성령의 통로를 통해서 영혼을 현재로 끌어오르는 거라고 그랬죠. 영혼의 현재와는 성령의 사역이에요.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죠. 우리는 구원받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예요. 맞나요? 성려 스님을 주로 고백하는 순간 성령이 내조하잖아요. 그때부터 성령으로 인해서 역사하는 거예요. 그건 이제 여러분 어떤 지식도 아니고 실제예요. 실제.
그래서 그리스도 에스완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재야 3항의 종로를 타는 우리를 해방시키는 거예요. 이미 완성됐지만 계속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 종로를 타는 걸 계속 해방시켜야죠. 그래야 이걸 정확하게 이루어진 걸 시간 안에서 실제로 누릴 수 있는 거잖아요. 성령의 사역이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이 함께 역사하고 같이 있는 거예요. 그게 하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거라고 그랬죠.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하나님의 영이에요. 그런가요? 그리스탄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제 죄의 법이 아니라 성령의 법이 다스리는 영역으로 이사 온 거예요. 이사. 이전항 이전 주소 이전하고 거주지 이전 신고해야 되잖아요. 그거예요.
성령이 역사하는 그 안으로 우리는 들어온 거예요.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성령의 인도하신과 통치를 받게 됩니다. 좀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가 성령에 대해서 모를 때도 이미 우리를 그렇게 통치하고 인도하고, 있었어요. 단지 육신의 소용이 강해서 육신을 쫓아 행할 때는 성령이 그냥 가만히 계시는 거예요. 그 자유의지를 여러분 없애버리지는 않습니다. 그 자유의지로 성령 안에 교재들도 해야 되는데 그 자유의지를 없애버리면 어떡합니까? 그렇죠? 그렇지 않나요? 자유 위주로 말씀도 지킬 수 있는데, 그거 없애버리면 로보트가 되는 거죠. 그럼 교제가 안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동물하고 다를 바가 없죠. 그런가요?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의 본성, 본질을 법적으로 완성된 것을 말하고 그 안에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에서 시간 안에서 우리에게 이걸 선물한다라는 거죠. 그러죠. 그래서 성형에 민감한 것, 성형의 규제, 감동 이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이걸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예요. 엄청나게 중요한 거죠. 영원을 현재에서 지금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예요. 그런데 이제 율법 아래서는 이게 죽어서 가는 곳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내가 사도바울처럼 말씀을 많이 지킨 만큼 이걸 차지하는 걸로 착각하게 만들죠. 번영신학이 바로 그런 거라고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래서 남의 세계에서 고꾸라치고 나니까 여러분들 이제 다 고꾸라졌잖아요. 다시 일어났잖아요. 저처럼 그게 현실화되는 거예요. 얼마나 엄청난 선물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고꾸라지는 건 여러분 재앙이 아니고 선물이에요. 진짜로 완벽한 선물이에요. 그렇죠? 세상 사람도 그런 말을 하더라고. 고꾸라쳐 한번 실패해보고 엄청난 고난도 당해봐야 된다. 이렇게 그런 말 들어봤어요? 젠슨 황이란 말이에요. 엔비디아 시총 1위예요. 지금 세계에서 제일 비싼 회사예요.
그분이 대단한 분이에요. 식당에서 창업한 식당 구석에서 알바하면서 창업한 사람이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모르겠는데 성경적인 말을 하네.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런 거죠. 자, 좀 전에 비잉과 투잉 존재와 행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존재와 행위를 결정하는 겁니다. 분명히 아셔야 돼요. 행위가 존재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열법과 복음의 차이죠.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것은 나무의 뿌리가 근원에 딱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존재 자체를 말하고 성령을 쫓아 행한다라는 것은 나무에서 열매가 맺히게 하는 성령이 진액을 뽑아 올려서 가지 끝까지 가게 해서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우리가 가지죠. 머리는 예수. 그래서 거꾸로 해놔요. 사실 예수의 예수께뿌리를 받고 있잖아요. 우리 몸이고 그 몸이 움직이게 하는 건 신경조직망들이죠. 그게 성룡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그래서 두뇌가 진행하는 대로 성령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켜져라 잡아라 이런 열매가 나타나는 거죠. 그게 성령이라는 거예요. 뿌리가. 열매 없는 뿌리가 있겠어요? 그런 거죠.
그래서 뿌리에 박는 게 본질이 먼저라는 거예요. 열매를 맺는 것은 행위고요.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바로 그 행위라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그래서 그건 강제조항이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당연히 나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본성이에요. 세 사람의 본성이라고요. 우리는 세 사람이죠. 세 사람의 원성은 육체를 따라 행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육체는 막의 종, 노릇 하는 부분이잖아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는 건 사실은 막의 종, 노릇이고 막의 종이 그게 바로 육체의 원암이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미 세 사람이기 때문에 성령을 쫓아 행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쫓아 행하다 보면 사랑과 애락과 화평과 이런 열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거고, 그걸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고 이런 오래 참고 이걸 나온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널 사랑했잖아. 이렇게 참았잖아. 이건 막이에요. 그러니까 율법이라고 그게 이해 가시나요? 그게 참는 건 당연한 거예요. 참는 게 안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는. 그렇죠? 예수 믿기 전에는 그게 당연했는데 예수 믿고 나면 그게 당연하지 않아야 돼요. 옆에서 콕 찌르면은 폭발하면 당연한 거죠. 예수 미키잖아요. 지금은 안 그러죠. 모르겠어요. 그게 아직 이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잖아요. 죽을 몸이라고 그랬죠.
제 몸은 이미 다 죽었고 자유의지도 뭐 자유의지가 아니고 주상의지 죽었고 몸 다 육체와 청과 욕심임이 색상을 사모하는 마음부터 해서 다 죽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육체는 죄 세력이 계속 지배해서 몸의 사욕을 쫓게 한다고 그랬잖아요. 이 관계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면 되겠죠. 그래서 뿌리와 열매가 분리가 될 수가 없죠. 머리가 우리 몸인데 예수님은 나는 분리 불가예요. 그래서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죄악에 빠져 넘어 있더라도 나는 분리된 건 아니에요. 그래서 넘어져도 또 일어나는 거예요. 그 안에 뿌리가 있기 때문에 성령이 계속 역사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일어나라, 일어나라 하는 거예요. 막 죽을 것 같은데도 안 죽고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그래서 뿌리와 열매의 머리와 몸이 불가인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성령을 따라서 하는 것은 분리불가예요. 동전의 양면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구분하려고 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같이 나오지 않으면 내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이해하시죠? 이 수를 정확하게 진짜로 믿는 사람들은 이게 나와야 되는 거죠. 뿌리에서 가지로 영양분이 계속 올라가는데 열매 나 안 맺을 거야. 말이 안 되잖아요. 그건 내가 맺고 싶다고 맺고 맺기 싫다고 안 맺고 그런 거 아니죠. 나는 부러져 버릴 거야. 되나요? 안 됩니다. 부러져도 붙어 있다니까. 가지가 부러져도 열매가 맺는 거 봤어요?
그 안에 이렇게 수액이 흘러서 맺는다니까요. 신기하게 떨어져 나가지 않으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왜 이렇게 성령에 따라 살지 말라고 못하고 맨날 내 멋대로 살지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내가 속았구나. 이걸 깨달으셔야 돼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원래 아니다. 나는 그래서 인지 내 위치를 먼저 선점하라고 그랬죠. 진짜 중요한 거요. 그래서 내가 뭐가 확 올라오더라도 이건 내가 아니잖아.
이거 나는 그러지도 않아 있는 사람인데 확 사랑이 올라와야지 이게 진짜지 이게 올라와 그럼 올라올 때 그때 하이재킹 해야죠 반대로 이제는 아메 나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이잖아. 이건 내 거 아니잖아. 그게 올라오면은 이제 다 이게 단절로 가거든요. 왜냐하면, 올라오면은 그게 고속도로 그쪽으로 확 따라간다고 그랬잖아요. 그걸 확 따라가면은 성형의 보증이 막히는 순간이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여기에 있는 열매 이거 이거 이거 못 노리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율법 안에서 그건 당연한 건 줄 알고 단절된 상태에서 이걸 안에 있는 걸 생산하려고 열심히 사랑하려고 하고 열심히 헌신하고 열심히 봉사하려고 했던 거죠. 그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라는 거예요. 예수님. 그런데 그걸 부추기는 게 마귀신학, 번영신학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요. 정확하게 알고 계셔야 돼요. 동전의 양면. 앞면만 있는 동전은 없어요. 뒷면만 있는 동전도 없고요. 그렇죠? 정확하게 알고. 그래서 결론적으로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가.
그게 아니고 성령을 쫓아 행하는 삶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보이지 않는 영적 신분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결과다. 그래서 8장 1절에 생략된 그 문구는 신약 성경에 흐르는 전체적인 맥락 안에 동일하게 퍼져 있어요.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가 240회 정도 나온다고 그랬죠. 신약 성경 되게 얇거든요. 여기 사복음사 안에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리스도가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죠. 그다음에 사보험서 빼고 얼마나 많이 나오는 거예요. 240여 회 정도 나온다는 것은 그게 핵심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 앵크리스토를 외치세요.
그래서 뭔가 내가 분이 올라오는 것뿐만 아니라 뭔가 하려고 할 때도 1초 법칙 앵크리스토 에세이지 똑같은 거예요.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앵크리스토라고 먼저 말하세요. 그러면 내 생각대로 하려는 게 죽어요. 거기서 그 한 번 두 번 세 번 하면 이제 네 번 다섯 번 계속하면 결국은 이제 자동으로 앵크리스도 되는 거예요. 앵크리스도 그게 전두엽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그게 이제 주야라로 말씀을 묵사하고 교제하고 이런 삶이 우리에게 그대로 나타나는 결과가 되겠죠. 왜요?
계속 그렇게 말씀과 성령의 기름부심, 성 말씀의 깨달음, 새겨짐 이런 걸 통해서 우리가 새롭게 창조되잖아요. 뇌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렇게. 새롭게 창조됨을 통해서 우리가 변해가고 있다라는 증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동시에 우리가 왜냐하면, 이건 완성된 걸 가지고 말하는 거잖아요. 주술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그 완성된 것을 내가 그 완성된 것을 지금 살고 있다. 라는 표현이지 주술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이건 이미 성경 구절에 이미 못 박혀있는 거잖아요. 고려조선서 1장 30절 우리가 성경을 쫓아 행하는 것도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것이 당연히 나타나는 거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사는 게 지극히 당연한 거죠. 그래서 이걸 가지고 선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거예요.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맞잖아요.
그걸 그렇게 선포하는 건 당연한 거죠. 나는 이씨 집안 10대 손이다. 그거하고 똑같은 거잖아요. 그러죠? 너 누구야? 그러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나 애들 많이 놀랐잖아요. 옛날에 그래서 그 다리 가보자고 막 그 다리 보여주고 오면 큰일 나 평생 자기는 다리 아래에서 온 사람인 줄 알고 결국은 다리 아래로 가요. 그게 본적이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게 본적이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라는 게 계속 내 삶의 현실이 되도록 그거를 선포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나는 대통령의 아들이다.
나는 뭐 그리고 회장의 아들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걸 주술이라고 그러면 되겠어요. 아닌 놈이 그러면 문제지. 그러니까 예스도 안 믿는 놈이 나는 그러지도 않아 있다. 이게 문제지. 교회 다니는 사람은 그러지도 않아 있다. 그러면 주술이 아니에요. 당연한 거잖아요. 그런가요? 똑바로 알고 행해야지 그러지 않고는 계속 휘둘립니다. 육체에 휘둘린다니까요. 육체 원하는 대로 순살같이 가버려. 제가 그랬잖아요. 뇌가 게으르다고요. 뇌가 무지하게 게으르대요. 자극이 오면 생각하는 그런 과정을 완전히 생략해버립니다. 생략하고 바로 핸드업으로 오면 바로 폭발하는 바로 폭발. 그런데 오면은 그리스도 안으로 보내는 거죠. 폭발하기 전에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
그래서 1초만 해보세요. 1초만. 죽을 사람도 진짜 살립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할 때 그게 싹 사라집니다. 진짜로 그래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이 그 정도로 강력한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 있다 라고 할 때는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거죠. 안에 있는 것과 역사는 동전의 양면이라고요. 그래서 이런 많은 말씀이죠. 이게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건 말씀으로 이미 정형화되어 있는 법이잖아요. 그 말씀에 따라 역사하는 건 성경이죠. 그럼 그 말씀을 내가 내 속에서 선포하고 있으면 성경이 당연히 역사예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지금 살도록 보정하는 거잖아요. 그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알겠어요? 뭔 말인지 아시죠? 아멘 말씀과 성령이 같이 가잖아요.
항상 그래서 그걸 말씀이 있는 그대로 선포를 했으면 성령이 역사에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너는 성질을 안 낼 수 있도록 내가 사랑으로 오래 참음으로 감사함으로 희락으로 이렇게 역사가 성령이 바로 고속도로로 그쪽으로 간다는 거예요. 그런 역사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작정 그렇게 말하면 그래서 나는 성질이 더러우니까 건들지 말라 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막이에요. 그래서 그게 막이라고 그 관계를 확 뭉개버린 거예요. 그래서 더러우면 혼자 살아요. 왜? 남을 두릅혀 와서 더러우니까 너 가만히 있어. 말이 안 되잖아요. 더러우면 너 혼자 해. 이렇게 해야죠. 그렇죠? 어이 다들 조용하시네 다들 더러워서 그런가? 뭔 일이에요?
도대체 우리의 신분 결코 정재함이 없는 자유함을 얻은 자들이고 우리는 그러니까 어떠한 뭐로도 우리를 정제할 수 없어요. 지금은 누군가 옆에서 너 왜 그따위야? 이렇게 말하면 절대로 수용하지 마세요. 나는 그런 게 있긴 하지만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어. 결코 정재함이 내게 올 수 없다. 니나 잘해라 이렇게 너나 잘하세요. 이렇게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전부 다 이제 너나 잘하세요. 너나 잘하세요. 그러면 또 똑같은 거잖아. 그런 데 영향을 받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그렇게 정지하는 건 악의적인 거예요.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예수님은 나는 결코 너를 정지하지 않노라고 했죠.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걸 죄를 다 사해놓고, 또 정지하면 돼요. 자기 목숨을 가지고 다 사했는데 너 왜 그따위야? 안 하죠. 당연히. 그러죠? 아직 그게 남아 있어서 힘드는구나. 내 안에 들어오라. 그러면 다 된다.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그렇죠? 정지하지 않고 이해 가시죠? 그래서 완전한 자유함을 누리는 사람이고 그 자유함을 얻은 사람은 더 이상 육체의 본능 죄를 따라 자신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게 되는 그 삶이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라는 거죠. 그게 안 나온다라는 것은 아직도 육체의 모습이 강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거의 장치도 또 있어요. 내려가면 영어로 행시를 이런 걸로 나와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성령을 따라 사려고 하는 마음이 이미 때도 아이고 또 내가 이런 후회하잖아요. 그게 바로 이미 그 안에 있다. 라는 증거예요.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욕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 확실하다 라는 증거예요.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증거죠. 만약 그 안에 있지 않고 성려 인도함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욱하고도 아무렇지 않고 시원해야 돼요.
성질을 확 내고 당연히 내일 끝내야지 하면 그리고 시원하죠. 시원하네요. 니까짓 것이 더불고 있어. 이렇게 시원해요. 시원한 거 아니에요? 시완하면은 종이 다른 겁니다. 그렇죠? 이 스완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아직 6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걸 하고 나면은 그 안에 있는 살아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막 이렇게 그렇죠? 만지잖아요. 그러면 막 손이 욱하고 나면 집에 가서 이제 몇 시간을 낑깅대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게 증거예요. 여러분.
아무렇지 않은 분 있어요? 없잖아요. 더 하고 싶어요. 더 확 퍼부어주고 싶어요. 그러면 종이 다른 걸 확률이 있을 수도 있어요. 자 그래서 그런 성형을 따라 사려고 하는 몸부림은 내가 그 안에 있는 구원을 노력해서 유지하려고 하는 몸부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착각하시면 안 돼요. 그건 율법이에요. 그래서 사랑하는 주님과 발맞추어서 걷고 싶은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있다라는 증거예요. 성령이죠. 그렇죠? 그렇게 아시면 되겠고 그다음에 이어서 13절이 나온다고 그랬는데 13절로 가보면 영어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이게 또 초건절처럼 붙어있죠. 죽이면 그렇죠?
그러면 또 성령에 막 성령으로 또 내가 육체하고 싶은 것도 맨날 즐기면서 살아야지 이렇게만 문자적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이 보정하고 있기 때문에 몸의 행실이 나오면 계속 후회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몸의 행실로 사려고 할 때 계속 안에서 그러면 안 되지 이렇게 몸의 행실을 계속 죽입니다. 왜냐하면, 보증을 했잖아요. 이걸 누리도록 이걸 누리려면 그게 나오면 못 누리잖아.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계속해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방향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거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직 몸의 행실이 있기 때문에 아직 죽을 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이 죽을 몸은 두 영의 전쟁터예요.
그러니까 악령의 지배를 받든지 성령의 지배를 받든지 그러죠. 이쪽에 지배를 받으면 이쪽으로 저쪽에 지배를 받으면 저쪽으로 중립적인 몸은 중립이거든요. 죄는 이미 쌓였기 때문에 중립 안에서 성령 인도하심을 보증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은 계속 일어나는 것이고. 악령은 그거를 방해해서 못 누리려고 옛날에 있던 걸 빼앗겼으니까 다시 장악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래서 계속 내 원하는 대로 살라고 부추기는 거예요. 안에서 네가 지금까지 성질 부리면서 살았는데 왜 갑자기 성질 안 내려고 그래? 그러면서 확 내버려. 속에서 확 저질러버려. 계속 그러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있죠. 그런 거예요. 그게 이제 13절 영어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한다.
이게 이미 죽은 것을 시간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죽여가야 하는 걸 말하고 이게 시간 안에서의 실제화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 거죠.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거예요. 이미다. 죽은 몸이기 때문에 그래서 죽게 한 것도 성령이잖아요. 그러면 이 시간 안에서 우리는 이걸 누리기 위해서 누리지 못하도록 계속 단절시키는 육체에 대한 것을 성령은 지속적으로 터치하겠죠. 감동하든지 하지 말라고 하든지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서 하든지 그렇게 해서 그게 올라오려고 할 때 Anchrist 이것도 그 부분 중에 하나예요. 잘 보시면 그게 십자가하고 똑같은 거예요. 앵크리스도 하는 순간에 내가 확 가려는 게 죽잖아요.
그래서 성령이 인도하심을 받아 그게 육체에서 십자가에 죽는 거가 시간 안에서 나타나면은 이제 단절된 게 회복되는 이걸 누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영어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여기 뭐라고요? 산다라고요. 산다. 이게 바로 이걸 사는 걸 말해요. 사는 건 수그리스트의 생명 초의 해를 말해요. 에수 그리스도처럼 산다라는 걸 말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제 시간 안에서는 이제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아직도 남아있는 제 몸을 죽여가는 걸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거를 시간 안에서 누릴 수 있도록 성령이 지속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거죠. 그게 보정하심이에요.
그래서 그게 이미 죽었음과 죽어야 함에 우리가 했던 의미와 아직 그거예요. 그래서 이걸 또 문자적으로만 다른 걸 다 잊고 지나가다. 이것만 탁 꽂히면 또 열심히 내가 몸을 죽여야지 막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고요. 이미 죽은 것을 성령이 보정해서 아직 남아있는 영혼 안에서는 과거 완료죠. 과거에 완료된 것들을 시간 안에서 지금 살 수 있도록 끌어당기는 거죠. 그래서 과거를 현재로 사는 거라고 그랬죠. 처음 들었습니다. 왜 그러시죠? 우리는 과거를 사는 사람이에요.
현재로 이건 그러니까 이 긴 싸움을 싸우는 거예요. 그것만큼 쉬운 게 있어요. 진 싸움을 싸워봐. 맨날 지어터질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습리가 보장되어 있는 거예요. 지금 성령 안에 행하면 무조건 승리해요. 내 멋대로 행하면 무조건 무조건 패배하는 거죠. 이해 가시죠? 그래서 우리를 패배하는 걸로 두겠어요? 아니 보증했기 때문에 패배하려고 나가는 걸 죽이는 거죠. 그래서 강제로 확 죽이는 게 아니고 그거 하면 안 되지 이렇게 하죠. 그러면 아니요. 오늘 해야 되겠습니다. 해버리고 맛을 보는 거죠. 그렇죠? 그런 거죠.
그래서 성령은 신사적이고 지극히 인격적이고 섬세한 분이라고 제가 성령의 교재를 말하면서 말씀드렸죠. 얼마나 이 관계 안에서 성령이 보정하실 때 어떻게 우리에게 역사하는지 잘 아셔야 돼요. 그래서 핵심은 말씀이라고 그랬죠. 말씀이 0일 때 성령이잖아요. 말씀과 영의 가치관. 그래서 말씀 안에서 교재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린 거예요. 그게 가장 먼저예요. 그래서 말씀의 영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미 이루어진 영적인 사실을 시간 속에서 실제화 여기에 actual 하는 그런 이루어가는 거예요. 이게 우리 삶의 성화 전체 권론을 쫙 꿰뚫는 게 바로 이거예요.
이제 너무 잘 아시죠? 이게 23절에 이미 죽었음과 죽어야 함에 이게 일치가 신비적으로 일치하는 거예요. 그래서 법적인 과거의 완료 로마스 6장 6조를 보면 이미 우리는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일으켰다 라고 되어 있고 제 몸이 죽었다. 이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종결된 사건이죠. 마찬가지고 물론 스님이 재림할 때 우리 몸이 완전한 부활로 이루어지겠지만, 지금 영적으론이 완성된 거잖아요. 이게 이제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되겠죠. 완성된 걸 시간 안에서 그게 경험하게 경험하면서 사는 게 성령의 인도화심인 거예요.
성령의 인도화심을 통해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걸로 나타난다라는 거예요. 왜? 이미 완성된 거기 때문에 그런 거죠. 몸의 행실을 죽임을 통해서 여기에 도달하는 게 아니고 이미 완성되기 때문에 영혼에 완료된 걸 시간 안에서 끌고 내려와서 실제로 그 영이 우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몸을 계속 복종시키게 한다라는 거죠. 그게 13절이에요. 이해하시죠? 그래서 우리에게 물리적인 몸 그다음에 습관 내 관성들은 여전히 있죠. 이런 게 아까 우리가 이제 뇌의 그런 물리적인 법칙 이런 것까지 동원해서 제가 말씀을 드린 거고, 이게 이제 시간 속에서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걸로 나타나야 된다. 그래서 경험하게 하도록 능력으로 역사한다고 그랬죠.
아까 성령이 보증하고 역사해서 이게 마지막에 21절에 23절에 이루어지게 한다고 했잖아요. 그게 바로 이 내용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의 사역이라고요. 보증이라고. 우리 상 가운데. 그래서 우리 상 가운데. 머리를 쳐들고 올라오는 이 몸의 행실을 자꾸 죽여가는 것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원함을 쫓아 행하는 걸 자꾸 죽여가는 것으로 나와요. 그래서 많이 죽였죠. 여러분. 그렇죠? 많이 죽였죠. 이것도 팔아버리고 저것도 팔아버리고 친구도 떨어져 나가고 좋아하는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도 떨어져 나가고 다 떨어져 나가죠. 신기하죠. 어디 가면은 머리가 왜 아픈지 아시겠어요? 가지 말라 라는 신호예요.
거기 굳이 가서 머리 박고 막 깨지도록 참고 오면은 영어로 몸의 행실을 못 죽이기 때문에 이 보증한 것을 누리기 어렵다라는 걸 경고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런 거 아세요? 그래서 일단 완수하고 와야 되는가요? 완수하고 오면 이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해가세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0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우리는 그런 민감해야 돼요. 그래서 여기도 피 바르고 여기도 피 바르고 여기도 피 바르고 기름 바르고 한 이유가 그거예요. 기름은 성형의 능력이기도 하고 구별이기도 하잖아요. 그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거기 가지 말라 이런 뜻이에요.
사실은 갈 곳, 머리, 다리를 뻗을 곳을 다 보고 다리를 뻗어라 그런 말이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게 몸으로 막 느낌이 먼저 오는 거예요. 어디 가면 머리가 먼저 아프다든지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막 구역질이 먼저 올라온다든지 배가 뒤틀리도록 아프다든지 등줄기가 쪼개지게 아프다든지 몸이 막 가렵다든지 몸이 막 가렵다든지 이런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예민해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보정하는 이걸 다 누릴 수 있는 거거든요. 이해가시죠? 그래서 성경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은 정말 은혜인 거예요. 완전한 은혜에 해당한다는 거예요. 아직도 남아있는 이 몸의 습관 이런 것들 관성처럼 움직이잖아요. 아까 뇌도 게으르다고 그랬잖아요. 몸에 무조건 반응해버린다고 생각 안 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 성령이 항상 3초 먼저 앞서간다고 제가 옛날에 말씀드린 적이 있죠. 그게 실제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성령충만을 구하는 거예요. 성령충만하고 명령을 했으니까 아멘하면 성령충만을 달라고 계속 구해야 되는 거예요. 충만하게 되면은 이제 육체 이걸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체의 소욕을 자꾸 안에서 밟아버립니다. 성령이 뇌보다 먼저 앞서서 하기 전에 이미 발랐다. 그래서 떨어져 나간 거예요. 자꾸 옛날 것들이 생각도 안 나고 옛날에 막 그렇게 즐겨했던 것들이 어느덧 보면 이제 이미 싫어져 있는 것 본능이 바뀐 거죠. 그게 이해하시죠? 그다음에 그래서 로마스 8장 13세를 이미 죽었다라는 사실이죠.
사실을 근거로 해서 오늘날 내 삶에 고개되는 몸의 행실을 성령의 능력으로 제압하라는 거예요.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다라는 걸 말하고 있는 거예요. 부정했기 때문에 이해 가시죠? 그래서 이미 승리한 전제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빨치산에 남아있는 것만 그냥 소탕해야 되는 그런 거죠. 그렇죠? 우리 온몸에 편강에 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 안에 나타나는 이런 걸 가만히 두면 안 돼요. 질병도 가만히 두면 안 되고 이 마귀의 놀음도 가만히 두면 안 돼요. 그래서 계속 축사하는 거예요. 축사도 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그랬잖아요. 손을 올리면 낫는다 했잖아요. 그걸 계속 해야 돼요.
권세를 가지고 이미 완성되었으니까 하는 거지. 그 밖에. 그러니까 성령의 인도함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면서 내게 나타날 때 떠나갈 지어다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건 이제 그 안에 지속적으로 있으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순종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갈 때 그게 능력이에요. 그게 능력의 근원이라고 어제도 말씀을 드렸죠. 열심히 사역하는 것, 열심히 애쓰는 것보다 거하는 것, 아니 있으면서 섬기며 회비하는 것, 순종하는 것, 그게 성과를 내는 것보다 먼저 만유의 주와 교제하는 거 그게 능력의 근본이라고요.
그런 상태 안에 계속 있을 때 이제 이게 자동으로 나타나는 그러면 이제 왠만한 것이 와도 다 꿈쩍도 타격을 안 받죠. 지금 타격을 받는다라는 것은 빨리 그만두라는 이야기거든요. 그런 걸 예민해서 빨리빨리 잘라버려야 돼요. 그리고 빨리 부혈을 적용하면서 씻고 안에서 수위로움으로 몰아내버려야 돼요. 왜 이러지? 왜 이러지? 하는 순간에 자꾸 왜 이러지? 하지 말고 왜 이러지? 아니고 더러운 것 나가라 예수 이름으로 그걸 하셔야 돼요. 이해하시죠? 그래서 왜 영어로 왜 영어로 죽여야 하느냐 이제 아시겠죠?
내 의지나 내 힘이나 아니면 내 고된 어떤 수행, 기도원 같은 것을 고된 수행으로 죽이는 게 아니에요. 옛날에 많은 수도원 영성이나 막 이런 거 무릎을 꿇고 계단을 계단을 올라가고 바닥을 혀바닥으로 핥고 그거 무슨 짓이야? 그게 도대체 막이지. 그런가요? 그러니까 이 핵심은 왜 영으로 죽이라고 하는가? 하면 내 힘으로 안 된다라는 거예요. 내 의지로도 안 되고 내가 어떤 노력, 종교적인 활동을 통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성령이 나타남으로 나 오직 이루어진다라는 걸 말하고 있어요. 그렇죠? 십자가를 지는 게 내 힘으로 되면 수 많아도 되잖아요. 그러잖아요. 히브리스 9장 14절 다 기억하시죠? 그렇죠?
그 십자가를 지는 능력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거고, 그래서 그 십자가의 스님이 달림을 통해서 그 피가 우리의 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죠. 그런가요? 다 성령사 얘기죠. 그러니까 우리 힘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성령으로 해야 된다는 거예요. 성령의 도우심이라는 거죠. 내 힘으로 죄를 죽이려고 해보세요. 그게 바로 율법주의가 되는 거예요. 때로는 금욕주의가 되는 거고, 그러면 어떻게 결국은 사도바울처럼 패배하는 겁니다. 저도 그렇게 해서 패배한 거고, 여러분도 그렇게 해서 다 패배해서 여기까지 온 안된다는 거예요. 옥수색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들어왔을 때도 내 힘으로 막 몰아내려고 하지 마세요. 성령을 힘입어야 돼.
성령에 감동함을 받아야 되고 이 수혜로움으로 이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마세요. 인치고 부정하시는 분은 성령이죠. 그런가요? 우리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이잖아요. 죽고 부활하고 우편에 앉히고 만물을 거발하는 인물을 굽게 하는 모든 게 성령의 사회관에서 이루어지는 거죠. 우리도 그걸 성령의 도심을 의지해야죠.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는 거예요. 계속. 그래서 우리에게 실재화의 주체는 성령이라는 거예요. 성령.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리임이 완성된 성리를 시간 안에서 효력을 발생하게 하는 게 성령이라는 거죠. 이해가시죠?
그래서 내가 성령님을 의지할 때 2천 년 전에 이미 십자가의 죽음이 완성이 이루어졌지만 오늘 내 안에서 탐욕과 분노, 두려움 이런 모든 부정한 것들을 실제로 죽이는 역사가 2천 년 전에 아까 히브리스 9장 14절에 성령 20자가를 못 박은 것처럼 완료된 2천 년 전에 그게 지금 시간 안에도 성령이 와 있잖아요. 시간 안에도 지금 우리가 예수님이 죽을 때 우리의 육체, 정, 욕심 사모하는 것들부터 해서 내 안에 가난 질병 이거 다 저주 봐주겠죠.
그러면은 지금 내 안에 임한 성령도 내 육체 정과 육신과 질병과 이 모든 것도 실제로 일어나게 하겠죠. 그래서 과거에 완료된 걸 시간 안에서 지금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게 성령의 도심이라는 거고, 실재화의 주체가 성령이라는 겁니다. 우리 이걸 반드시 여러분 까먹지 말고 기억하고 계세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승리의 효력을 지금 현재 나의 시간 속으로 끌어와서 집행하는 분 그분이 성명이에요. 이해가시죠? 그래서 육체와 정과 욕심과 혈기와 분노와 두려워하는 것과 가난한 것과 가난에게도 명하세요.
그 다음에 질병 이런 것들도 다 그때 해결됐죠. 모든 저주가 다 그러죠. 에베소스에 보면 모든 게 그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충만하게 하고 우리를 그 행동 대장으로 세워놨잖아요. 물론 머리는 따로 계시지만 그게 지금 우리 현재예요. 그럼 지금 현재 나타나는 육체의 모습들은 언제든지 그때서 역사에서 성령이 없앤 것처럼 지금 성령을 의지하면 역사에서 없애는 거죠. 그래서 질병의 부분도 내 안에 올라오는 이런 것들도 두려워하는 것도 나가려고 하는 것도 이게 다 단칼에 베버렸어요.
이미 단칼에 베버린 것 남아있는 건 성령이 보정해서 그걸 제거할 수 있는 그래서 완성된 것을 현재로 끌어오는 성령 그분을 의지해야 돼요. 그럴 때 탐욕도 분노도 두려움도 내 안에 있는 이 모든 역사나 악한 형들의 개량, 질병 이런 것들도 실제적으로 2천 년 전에 완성된 그걸 지금 실존하는 능력이 되는 게 바로 성룡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도 안에서를 지금 실제로 이루고 나타나게 하는 게 바로 성령이에요. 그래서 성령님과의 교재, 감동, 인도하신 말씀을 볼 때 영어로 깨닫게 되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지금 시간 안에서 이 완성된 것을 이렇게 이게 영원 안에서의 현재에서 영혼을 누리는 거예요.
그래서 죽이면 살리라.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 그 말이에요. 영어로 이미 죽은 것을 지금 남아있는 거 아직 남아있는 거 죽이면 예수님처럼 산다. 그게 가난한 자로 부하게 되시면 부한 자로 가난하게 되시면 가난한 나로 부여 지금 부여를 누리게 하는 거거든요. 그걸 죽여버리면 되는 겁니다. 그게 매일의 십자가라는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성형으로 말미암아서 올라오는 걸 아니야. 하는 순간이 그게 십자가거든요. 그래서 그 아니야. 하는 그걸로 딸려가면 이거를 못 사는 거고, 그거를 1초 만에 죽여버리면은 이걸로 누리며 사는 거죠.
어떤 걸 택하시겠어요? 그것도 자유의지 성향을 의지해야죠. 당연히. 그렇죠? 그래서 이 산다는 게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내 인격과 삶을 통해서 전체적으로 나타나서 풍성하게 하는 삶 자체를 말해요. 그냥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부유한 자로 사는 영원해서 완성되었고 시간을 초월해 계시는 성령께서 완성된 것을 지금 나 안에 부정하는 게 성령의 사회입니다. 맛볼 수 있게 하는 거라고 그랬잖아요. 그렇죠? 시식 코너. 이 완성된 걸 시식하는 시식 계속하세요. 시식을 한 바퀴 돌고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계속하세요.
한 번 하고 가지 마시고 그래서 성령님을 찾고 과거에 완료된 것을 지금 시간 안으로 끌고 와서 이루어 달라고 이미 죽은 것은 지금 죽이소서 이렇게 가는 거죠. 성령으로 의지하는 거예요. 그게 성령으로 인해서 줄여서 가는 게 아니고 이해가시죠? 그래서 그리스도 아네라는 것은 성령하네 성령 인도하시마네 하고 같은 말이라고 보시면 되겠죠. 그래서 갈라디아스로도 가면은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러면 육체 욕심을 이루지 아니 아니라 그게 바로 그 내용이에요. 성령을. 그럼 성령을 쫓아 행하라는 게 먼저가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보존했기 때문에 우리를 지금 시간 안에서 성령이 항상 쫓아오도록 인도한다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를 인도할 때 멍하니 계시지 마시고 뭐라 하면 그냥 드세요. 아멘 시식코너에 가서 이거 먹어봐라 하면 드시라고요.
아멘 그거 먹지 말라 하면 먹지 마시고요. 아멘 술 한잔 할까? 속에서 하지 말라 하면 하지 마시고 그래야 되는 거죠. 그러면 하지 말라는데 했다. 그럼 이제 수고하십니다. 되면은 이거 육체 안에 익지 않다로 그래서 갈레아데아스가 쭉 나온 거예요. 거기 그래서 육체의 일을 연지하니 시기질투, 당직구 이런 것들이 그러니까 육체를 따라가버린 거예요. 아직도 남아있는 거. 그거는 결국은 망하는 거죠. 고통스러운 거잖아요. 그래서 시간 안에서 실재하는 과정은 도식하면 첫 번째는 인식하는 거예요. 그렇죠?
인식하는 remind가 아니고 이건 이미 있는 거 그걸 다시 인식을 다시 레코니션 레코나이즈 그거죠. 나는 그리지도 않게 이미 죽은 자구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구나 앵크리스도 이걸 인식하라는 거예요. 우리 뇌 그거 할 때도 한 것처럼 이거는 실제적으로 성경 신학적인 도식이에요. 지극히 성경적이고 그래서 그걸 인식했다면, 올라오는 걸 이제 너는 죽었잖아. 어디서 까울리고 있어? 권리가 없어. 질병을 안 해서 너는 불법이야 하세요. 불법이야. 어디서 또 나타나? 불법이야. 그렇게 하시라고.
그런데 그걸 이루는 데는 하나님의 대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걸 아셔야 지금 나타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마시라고요. 하나님의 정해놓으신 건 반드시 이룹니다. 그래서 그걸 철저하게 깨달으셔야 돼요. 먼저 인식해. 나는 그 안에 있다. 그러면 완전한 자다. 요즘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맨날 그것부터 해요. 나는 지금 크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머세처럼 내 몸이 나이는 들어갈지는 몰라도 기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력이 펄펄 나는 사람입니다. 눈도 절대로 어두워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안 어두워져요. 과실화니까요. 그게 우리에게 이루어져 있는 그거잖아요.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질병에게도 계속 말합니다.
그것도 제가 주일날 할 건데 그거 땡겨 써야지 거기는 없잖아. 그런 게 그걸 당겨 써야 된다고 그게 이제 인식을 했으면 의지로 뭐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선포. 그렇죠? 그러면 이제 성룡님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지금 내 삶에 실제화하도록 해 주십시오. 왜? 보정했으니까 성룡님께 구해야죠. 보정한 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나 체하지 않게 하라. 눈이 어두워지지 않게 머리 더 이상 안 빠지게 하라. 당연히 나게 하라도 하죠. 그건 이미 옛날에 없어진 거기 때문에 저주받은 저주의 증상이잖아요. 저주를 다 가져갔잖아. 납작한 것도 동그랗게 되게 해라.
그걸 안 했어. 별 불편함이 없어서 모자 쓰면 안 돼. 모자 쓰면 못하고 갔나? 그래서 보증하신 성령님께 도움을 청하세요. 그래서 직행 파르시아에서 때로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라 했잖아요. 교제하는 거 안에 그것도 들어있다고. 하나님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이대로 우리가 살기를 원하지 비실비실하면서 살기를 원하겠어요? 아니요. 비실비실하면서 사는 거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다 해결했잖아요. 저주 가난. 그다음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이전에 이미 채찍에 맞을 때 질병은 해결됐습니다. 그거 해결됐잖아요. 2천년 바로 며칠 전에 그럼 끌어당겨 와야지.
끌어당겨 와서 질병은 불법이다. 하세요. 불법이다. 내 안에서 장난하지 마라. 거쳐준 힘이 있거나 떠나. 예수님과 함께 그 도움을 구하시라고 계속 그리고 실제적으로 내 삶이 이루어지도록 재해습관은 계속 끊어지고 수구리스트의 생명이 나타나도록 해야죠. 물론 하시는 주체는 있지만 연합해야죠. 그게 계속 나타나도록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나는 그렇게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지혜도 내 것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뭐든지 보면 척척 된다. 이제 항상 아침에 한다니까요. 나는 들떨어지는 너네들하고 달라. 이제 여러분 말고 너네들이라 했잖아.
저 너네들 세상 사람들 이방인 이야기예요. 세상 사람들하고 나는 다르다. 이제 척 보면 자기다. 뭐든지 모든 걸 지혜롭게 행할 수 있는 그 지혜가 내 것이다. 이미 왜 예수님이 그랬잖아요. 1장 30절에 그게 실제로 나타나게 해야죠. 그걸 집행하는 건 성령이니까. 성령님 지금 나타나게 하시오. 도와주시라고 그래서 성령을 의지하는 거죠. 명령하는 게 아니고 의지하는 거잖아요. 그거는 성령의 교재 안에서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떤 순간에 SH 성령님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성령은 이 완성된 걸 현재 안에 집행하는 형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게 지금 환경 안에서 그대로 완성된 게 집행되어 이루어지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게 얼마나 지혜로운 거예요. 그러죠?
안 그러면 육적으로 행해서 또 수고와 슬픈 고통을 면할 길이 없잖아요. 이게 우리 부흥회 때 했던 메커니즘 그거 그대로예요. 그런 것들을 놓치시면 안 돼요. 계속 철저하게 알고 계셔야 돼요. 내 안에 사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그리스도의 생명은 신의 성품이잖아요. 우리도 그 성품으로 살 수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살아야죠 그게 진짜 그리스도인이죠. 그렇죠?
그래서 성화라는 것은 하나님이 크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완성된 거룩 완성된 거룩을 성령의 도심을 받아 현재 미완성된 시간 안에서 그 거룩으로 완성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이 생활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체성의 선포죠. 그렇죠? 죽지 않으려고 하는 발부둥이 아니에요. 이미 죽은 걸 현재화하는 정체성을 선포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복음입니다. 매일 성령 안에서 승리를 실재화하는 사람 이해가시죠?
그래서 이제 에베소스로 가면 에베소스 2장에 보면 24절부터 나오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우리를 가르친다고 그랬잖아. 24절부터 해서 27절 28절 지금 그 안에 거하라까지. 그렇죠? 그럼 성명이 그 안에 거하도록 가르친다라는 게 이제 이해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걸 보정하는 거예요. 그 안에 거하면 이건 누리는 거잖아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이거잖아요. 그럼 그 안에 거하도록 가르치는 거예요. 시간 안에서 아직 남아있는 거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 거하지 못해서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부정으로 와 계시기 때문에 성령이 여기 아니 거하도록 우리를 계속해서 가르치신다는 거죠. 그게 성령의 가르치시는 그대로 그 아래에요.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가르치시고 환경을 통해서 가르치시고 감동을 하시고 음성을 통해서 가르치시고 전화해라, 꿀물, 타라 이런 걸로 가르치시고 이럴 때 그 안에 과하도록 가르치는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몸은 하기 싫어하는 게 많잖아요. 성령이 가르치는 것과 육체의 소욕은 항상 반대가 되니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그래서 내 마음에 안 드는 걸 주로 하세요. 내 마음에 드는 걸 주로 하지 마시고 훅 하고 싶은 건 내 마음에 드는 거잖아요. 그걸 하지 마시고 꼭 참는 거 하기 싫은 거잖아요. 그거 하면서 여인도 하시면 거의 99.9% 그러면 뭐가 이로워지겠어요?
영원을 지금 현재로 사는 역사가 만물을 충만케 하고 부유한 자로 사는 역사가 없어도 있는 것, 있어도 없는 것. 아무것도 없는데 모든 사람을 부욕케 하는 것.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이건 이미 나와 있는 성경 신학이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선물 에베소스 이미 주셨잖아. 상속 자로마스 8장 17절에 이미 이루어진 거고요. 그렇죠?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잇고 있는 존재라고 변할 수 없는 거예요. 절대로. 그건 존재가. 그러면 그런 대로 살아야죠. 옛날처럼 살면 안 되는 거야.
우리는 하낼 거 다 내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리고 이거면 이제 밖에 밖에는 아니겠지만, 성령과의 교제가 단절되므로 연의 완성된 이 승리를 지금 시간 안에서는 누릴 수가 없게 되는 거죠. 굳이 우리가 왜 그렇게 이루어 놓으신가 이미 승리한 걸 왜 우리가 빼앗기려고 합니까? 그래서 이제 우리를 그 안에 심어놓은 것과 그 안에 심도록 가르치는 성령 헷갈리지 않겠죠?
동전의 양면 보정한 시간 안에서의 이제 이야기 그건 영혼 안에서 심었고 완성됐고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 시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고 거룩해져야 하고 거룩하게 하는 성향이고 그다음에 그 안에 거하게 하는 거하도를 가르치는 성향이고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건 영원 안에서고 이건 시간 안에서 실제와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 외에는 답이 없어요. 그래서 말씀 안에 있는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이고요. 말씀이 0이기 때문에 인치심, 보정하심, 인도하심. 그래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이죠. 에비에소스 1장의 그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정확하게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신분적으로 이미 연합되어 완성되어 있는 부분 함께 동행하며 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온몸으로 살아내게 하는 게 바로 이 성령님이에요. 완벽한 거잖아요. 우리 수염 믿는 우리는 진짜 엄청난 존재 존재들이에요. 이 땅에서 막 세빠지게 일하면서 고통 가운데 헤매며 살도록 끝났어요. 그거 이미 끝났다고 하면 우리를 일 시키기 위해서 부르셨나요? 쉬도록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누리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나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열심히 일을 시키마 이거던가요? 열심히 사역하게 해서 똥 빠지게 하겠다. 그건가요?
너를 그러니까 그 그리스도 안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것도 쉼이 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그게 세 사람이에요. 크리스도 밖에서 몸이 닳도록 일하는 것과 크리스도 안에서 몸이 닳도록 일하는 건 달라요. 몸이 닳도록 일해도 세하지 않아. 기력이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래서 그 안에 그 안에 그 안에 앵크리스도 앵크리스도 대문짝만큼 써놓으세요? 아니면 여기 붙이고 다니면 안 보이잖아요. 여기 써놓은 사람 안 보이잖아요. 이제 봐요. 그래서 반지 여기다 그것보다 더 실제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 호흡을 할 때 호흡을 하면서 나는 그리스도 안 해.
내쉬면서 행한다. 숨을 쉴 거 아니야. 여러분 숨을 안 쉬든지 숨을 들이 쉴 때 나는 그리스도 안 해. 그러면서 내쉬면서 나는 그리스도 안 해. 행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 해. 행한다. 그리스도 안 해. 행한다. 해보세요. 그것도 자꾸 습관화하면 된다니까 뇌를 속여야지. 그래서 숨은 다 쉴 거 아니야. 밥 먹을 때만으로 안 돼. 주님 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다음에 밥 먹으면서 까먹어버려. 기도할 때도 숨을 쉴 거 아니에요. 그걸 계속 인식하세요. 이미 주신 그리스도 안이라는 구원이거든요. 영생이에요. 이게 풍성한 은혜를 실제 삶에서 누리고 순종하고 날마다 가르치고 이끄시는 분이 바로 이 성령이에요. 성령.
그게 요한 1세 2장 24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연합된 존재가 지금 그대로 나타나도록 삶에 기름을 부으시고 실제 사건이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기름을 붓는 거예요. 놀랍죠. 우리에게 일이 일어나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버드나무와 가지 비유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자동으로 열매를 맺게. 그래서 결론을 내고 마칩니다. 여러분. 이걸 어떻게 삶에 적용하느냐 부흥회 때 했습니다. 했지만, 이걸 집중적으로 여러분 묵상을 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돼요. 한 번 읽고 하는 것으로 지나가 버리면 또 뇌의 관성에서 하이재킹 당합니다. 또 편도체 아이재킹 또 당해요. 중간 과정 거치고 바로 나가버립니다.
이게 이제 성령 안으로 나가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곳으로 나가게 계속해야 돼요. 이 신분을 계속 인식 맨 먼저 위치 선정하라고 했죠. 그래서 신분을 인식했으면 이제 성령에 인도함을 따라 진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게 바로 위한일서 2장 24절에서 27절 8절까지예요. 그 안에 거하도록 가르치는 게 성령의 부정하심의 활동이에요. 그게 그 안에 거하도록 지금 2천 년 전에 이루어진 걸 지금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 이유가 그거예요. 성령님이 시간 안에서 그 구원을 이루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옛날 사람처럼 그렇게 저주받은 상태로 수고와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 염려, 근심, 분해 그다음에 두려운 마음 이렇게 살지 말고 이 천국을 지금 살라고 천국의 보증으로 승려 오신 거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살라고. 친밀하게 그 안에 교제할 때 우리는 그 삶이 자동적으로 사라질 거 아닌가요? 그렇죠? 그래서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게 바로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예요. 얼마나 중요한 말씀 안에서의 교제, 골반교제 이런 것들이 실제적으로 계속 안 된다고? 아니요. 여러분. 아무런 어떤 음성이나 감동이 없다고 인도를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인도해서 오셨잖아요. 계속 인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감동도 주고 깨달음도 주고 많은 방법으로 이미 엄청나게 많이 인도하고, 계신다고 그 안에 거하도록 가르치고 계신다고요.
그래서 내 삶이 좀 부족하고 연약하게 느껴질 때라도 나는 그 안에 있는 걸 의심하지 마세요. 신분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러다가 큰일 나지 안 납니다. 절대로 안 납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막 살아라는 이야기는 아니죠. 막 살면 대가는 치러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그 안에 심어놓기 때문에 그건 안 변해요. 절대로 그 안에서 항상 평안을 누릴 수 있어요. 우리는 이미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제 그게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거고, 그다음에 성령의 가르침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해야 돼요.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신분을 가졌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 안에 성령께서 죄에 대해서 깨닫게 하시고 이게 옳은 걸 이게 그른 걸 알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감동을 주시고 그럴 때 고집을 꺾고 순종하셔야 돼요. 그게 우리는 그 안에 있다라는 증거예요. 그 안에 있다라는 걸 성령의 인도함을 통해서 지구 온몸으로 살고 있는 증거예요. 그렇게 살 때 우리는 이걸 그냥 누르는 거예요. 이 밖에서는 이걸 누리려고 뼈빠지게 일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있을 때 이걸 누리는 거고,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그 안에 있을 때 교재를 통해서 그래서 애쓰는 것보다 일하는 것보다 성과를 내는 것보다 그 안에 있으면서 교제하면서 예배하면서 섬기는 게 모든 능력이 나타남의 본질이에요.
성령사회의 본질이라고 사회계의 본질이라고요. 그래서 매일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주안이 거한다는 것은 주님을 계속 의식하고 기도하고, 그분의 뜻대로 하루를 선택하는 그런 과정들이에요. 그래서 그게 성령이 우리를 그렇게 인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밤에 자다가 새벽에도 2시에 3시에도 콧벌떡 깨우기도 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럼 왜 일어났지? 이렇게 하지 마시고 성령님이 하실 말씀이 있구나 이렇게 해야 되는데 아이 진짜 이렇게 하지 마시고 누가 그랬어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주안이 거한다는 것은 그 안에 거하고 있으면 그 안에 서로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 게 지극히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서 주님을 옆에 있는 사람을 계속 의식하고 대화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고 이런 거. 그렇죠?
주안에 거하는 건 그런 게 그냥 삶이잖아요. 본성이잖아요. 주님의 뜻대로 하루를 살기를 선택하고 이런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 안에 거하는 삶의 과정이에요. 교제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성령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 자친이에요. 예수님과 교제가 끊어지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교제하는 게 결국 예수님 안의 교제를 지속적으로 누리는 과정이죠. 그래서 거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때문에 거하는 건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거 아니죠. 같이 사는 거죠. 짝짜꿍도 하고 세세세도 하고 뽀뽀도 하고 이런 거. 그렇죠? 이런 거. 이런 거를 가르치는 게 성령이라고 교재. 성령의 교재를 통해서 이루어지겠죠. 당연히. 그럼 거기에 순종을 해야 돼. 고집을 꺾어야 돼요. 그러면 꿀물 타라 하면 꼭 타셔야 돼. 그거를 어기는 순간 이걸 못 누리는 거예요.
그게 성령을 슬프게 하는 거죠. 성령을 슬프게 하면 하나님이 마음이 아파합니다. 그걸 아셔야 돼요. 성령을 슬프게 한다는 것은 성령은 지극히 인격적이고 우리가 교제하는 분이라는 걸 이미 말씀을 드렸죠. 그렇죠? 그래서 성령을 슬프게 하는 것은 교제가 점점 멀어지는 걸 말하고 교제와 멀어지게 되면은 그렇다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죠. 그 구원이 끊어진다든지 성과의 어떤 관계가 끊어지는 건 아니지만, 점점 멀어지겠죠. 안에 계시긴 하지만 그럼 그게 점점 멀어지면 교재가 점점 단절이 되게 되겠죠. 그럼 교재가 점점 단절이 되면 어떻게 되나요?
기쁨과 평안도 점점 하나님과 분리되었을 때 나타나는 모든 증상들이 점점 강해지게 나타나겠죠. 육체의 이런 현저하니 그게 점점 나타나겠죠. 성질이 점점 강하게 올라오겠죠. 이런 일들이 벌어져 사랑과 희락과 올해 참온과 기쁨과 행복이 점점 소멸되어 가겠죠. 진액이 점점 마르겠죠. 뼈가 마르겠죠. 그런가요? 그러면 환경이 점점 마르겠죠. 그러면 내면이 점점 말라지겠죠. 그런가요? 결국은 구원의 즐거운 활력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예배 자리에 있어도 마음이 냉랭해지고, 기도를 하려고 해도 영적으로 뭔가 감동이 안 오고 막히고 기도도 잘 안 되고 느낌이 점점 안 좋아집니다. 그게 바로 다빗이 10편, 51편에 한 이야기예요.
구원의 즐거움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18, 51편에 보면 주의 그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달라고 32편에 보면 뼈가 마르는 것 같고, 진액이 화하는 것 같고, 고통이 막 불티가 날아오르는 것 같은 괴로움이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게 제 가운데 있을 때는 성룡이 역사를 못하는 거예요. 떠난 게 아니고 이 관계 안에서 이걸 누리게 하는 게 점점 멀어지겠죠. 그래서 내가 힘드는 거요. 영적으로 육적으로 다 힘드는 거예요. 그렇게 크게 자꾸 놔두면은 영적으로 감각이 떨어져요. 계속. 그래서 밖에 나가도 머리 안 아픕니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강력해져서 그런 게 아니고 완전 물들었기 때문에 그 잉크물에 잉크가 한 방울 더 타봐야 비슷한 거하고 율법 아래 있으면 그렇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깨닫게 하고 분별하게 하고 이런 게 우리를 가르치는 성경인데 그게 이제 점점 무시하고 멋대로 이렇게 원하는 대로 살게 되면 분별력이 어려워져요. 결국은 이걸 해야 할까? 저걸 해야 할까? 점점 소경처럼 분비를 안 가는 거예요. 혼돈으로 빠지게 되는 거예요. 유혹과 거짓에 쉽게 넘어갑니다. 야 이거 하면 대박난다 그러면 바로 그냥 훅 빨려 들어가서 돈을 싹 잃고 옵니다. 그래서 나이 들어서 제일 많이 하는 게 뭔지 알아요? 교회 목사님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게 뭔지 알아요?
얼마나 많은지 몰라 할 일이 없으니까 떼거지로 뭉쳐다닙니다. 우르륵 갔다가 저리 우르륵 그래서 그런 사람한테 걸리면 될 것 같잖아. 목사잖아. 또 거기서 그랬다면서 목사들 잔뜩이 있었다면서 MB 거기에 MBG, MBG 그렇게 되는 거예요. 분별해야 한다는 거예요. 성령의 인도암을 받고 있을 때는 욕망에 따라 살지 않잖아요. 그런데 성령이 점점 약해지니까 내 욕심이 확 올라오고 이거 이렇게 하면 금방 돈 법니다. 아멘 이렇게 생각을 거치지 않고 아주 쏙 빨려 들어갑니다.
아멘 용케 살아나왔어. 그게 바로 마기충만입니다. 육체가 충만한 거예요. 육신의 수욕이 확 올라옵니다. 그러면 인생을 걸어주게 되는 거예요. 고통과 귀로. 거기 성공하셨어도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분명해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정도 해서 끝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저처럼 바닥에 나앉지 않은 게 감사한 거예요. 그 정도에서 부르셨잖아요. 그래서 감사하죠. 아직 50평짜리 집도 있잖아.
나는 없다니까 없다니까 왜 자유 못 하는데 나보다 더 가진 것도 많은데 더 자유해야지 그 무거워서 못 올라가는 거지 자 이제 한마디 더 하고 마치죠 성령님을 슬프게 하고 지속적으로 거부하게 되면은 우리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육적으로 힘들어지고 환경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이 가만히 안 있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이 징계가 오기 시작합니다. 그게 12장이에요. 징계를 받는 자, 사생활을 징계 안 하죠. 아들을 징계한다고 그랬거든요. 알을 잘못하면 징계하기 시작해요. 그래서 바로잡기 제가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돌아온 거예요. 그 아들을 가르치시면 이걸 룰이라고 가르치는데 자꾸 거부하잖아요.
그러면 보증은 했고 약속은 했고 거기 지켜야 되잖아. 그래서 할 수 없이 돌이키는 거예요. 이사회에서 63장 10절 보고만 칠게요. 이서에서 63장 10절 읽어볼까요?
그들이 반역하여 죄성신을 근신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고 친히 그들을 치셨다니 성령의 인도함을 거부하고 성령을 근신케 하면은 지극히 인격적이시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우리를 회유하고 감동하고 오라고 말씀은 하긴 하지만 고집을 계속 꺾지 않고 있으면 성령께서 화내요. 이렇게 우리의 태정이 되었다. 그렇게 해야 돌아올 거 아니에요. 대적이 되어서 우리를 칩니다. 이 육체를 쳐야죠. 그래야 돌이켜. 다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언약한 걸 그대로 이룰 거 아닌가요? 그래서 징계가 임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12장에 나오는 징계의 내용이요. 12장.
오젤리아에 보면 내용이 쫙 나와요. 읽어보시면 됩니다. 그러면은 이 그럼 돌이키고 고집부리고 꺾지 않고 그런 과정에 있더라도 하나님은 길을 다 열어놨어요. 아주 쉬워요. 그게 바로 요한위서 1장 1절 1장의 구절이에요.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그랬죠. 죄를 자복하라고 그랬죠. 그럼 우리 죄를 사시고 모든 풀이하면서 우리를 깨끗해 하면 이제 보여를 이름을 힘입어 바르시아 하면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죠. 들어가 교제하고. 그렇죠? 도움을 구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이루고 상주시는 분이라고 했죠. 그런가요? 그래서 그런 과정에 그런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즉각 돌이켜야 돼요. 분별하지 못하고 언젠간 나아지겠지 하면 큰일 납니다. 안 좋아져요.
절대로. 절대로 안돼요. 그래서 그걸 정확하게 분별하고 깨달으셔야 돼요. 그래서 슬퍼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정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왜 자신을 목숨 같이 버리시면서 우리를 구원했다라는 그 얼마나 엄청난 사랑이 그 사랑하기 때문에 돌이키게 하려고 우리의 대적이 되어서 우리를 치는 거예요. 그래서 돌이켜 놓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죄로 인해서 상처받고 본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그런 데까지 각이 안 두는 거예요. 즉각 돌이키기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경고할 때 바로 들어야 돼요. 그래서 성령님과의 교재 말씀을 읽고 교재 이런 게 되게 중요한 거예요. 내 자신을 보면서 뭐가 드러나게 하고 뭐가 잘못됐지? 이런 건 즉각즉각 들어켜야 돼요.
즉각즉각 안대를 키고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고집부리고 친돌을 쌓는다고 그랬죠. 게시록에 보면 차곡차곡 쌓는다고 그랬잖아요. 그런 폭발하는 거예요. 돌이키게 하는 거예요. 대적이 돼서 나를 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고통에 임하게 되는 거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지금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 내면의 완화감을 꺾어야 돼요. 말씀을 보고 드러나고 깨닫게 되면은 통하면서 그걸 제거해 달라고 돌이켜서 그 안으로 들어가서 제거해 달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신다고 그랬잖아요. 그렇게 우리를 도우시거든요. 그래서 솔직하게 자백하고 돌이키라는 거예요. 요한일사 일장구사 그러면 성령님이 기다렸다 라는 듯이 바로 우리 마음을 씻어주는 거예요. 얼마나 엄청난 원이에요. 씻을 준비가 돼 있다니까요. 딱 들고 지금 바로 오면 박박 문질러서 씻어버리는 거예요.
준비를 하고 계신다니까요. 그 정도로 안전장치 다 해놓고, 기다리고 계시는 거예요. 딱 맨발 벗고 기다리고 언제 오나? 그게 성경림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그런 영적이나 욕증이나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고 고통과 괴로움이 지속되고 이럴 때 영적으로 다운이 되어서 뭔가가 침체되고 이럴 때는 빨리빨리 캐치를 하셔야 되고 돌이켜야 돼요. 성령님 안에 가서 자신을 보여달라 해야 되고 말씀으로 나를 드러나게 해. 달라 해야 되고 그러면 드러나고 보여주고 그러면 빨리 돌이켜야 돼요. 보열로 씻어달라 하고 10편 11편처럼 시서 우절초로 나를 정결케 하시고 나를 새롭게 하소서 그러면 즉각 성령이 반응하셔 보증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그 안으로 우리를 돌이켜 들어가게 하고 규제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그다음에 이걸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능력으로 역사를 하시는 거죠.
그게 성령의 보정하심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그와 같이 가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 이 땅에 나타나도록. 완료된 것을 시간 안으로 끌고 가. 지금 행하시는 보증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고 그게 보증금이에요. 그게 인체심의 보증이에요. 그래서 반드시 우리의 그걸 이루고 말기 때문에 예술을 믿는다 라면 그 일을 각오하셔야 돼요. 성년과 떨어져서 절대로 못 삽니다. 두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래서 우리에게 고통이 있고 사업에 실패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막 심하게 넘어지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허용하시는 이유가 그런 거예요. 그걸 통해서 계속 돌이키게 하는 거죠. 계속 돌아오게 하고 기다리는 거예요. 돌아오라는 신호예요. 빨리 들어오라. 그 안에 지금 가라. 지금 그 안에 가라. 지금 그 안에 가라. 계속 그 말을 하시는 거예요. 지금 그 안에.
것을 다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성령과 성도
1-1. 성령의 역사와 조건
- 에베소서 1장의 영과 현재의 우리를 연결해주는 것이 성령이라 함
- 성령은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아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임을 의미함
- 성령을 통해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음
- 성령은 우리가 시간 안에 집행할 수 있도록 역사함
- (중요)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우리가 이루어지고 누릴 수 있도록 보증하심
1-2. 성령의 능력과 부정
- 성령은 우리가 영원한 힘으로 완성된 것, 보증금을 받으면 누릴 수 있음
-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영원한 힘이 완성된 것임
- 성령의 인도하심은 교제를 통해 이루어짐
-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임
- 성령을 거스르면 육체의 소욕이 생기고,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름
1-3. 성도의 삶과 교제
- 성도는 성령을 쫓아 행하는 자임
- 성령을 쫓아 행한다는 것은 조건이 아님
- 성령을 쫓아 행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됨
-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옛사람을 만족시키는 것과 같음
-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함
2. 성령과 신앙의 관계 이해
2-1. 성령의 교제와 그 역할
- 성령은 감동을 통해 교제하나 강제로 가르치지 않음
- 성령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결과로서 이루어짐
- 성령은 우리가 잘못하면 막아주고, 감동시켜 깨닫게 하며, 음성을 주심
- 성령의 부정하심은 성령이 중간에 있다는 것을 의미
- 성령의 존재 없이는 신앙 생활이 불가능하며, 이는 율법 아래 신앙이 죽음을 의미
2-2. 성령의 가르침과 그 우선순위
- 성령은 가르치시는 대로 주안에 거하라고 함
- 성령이 가르친다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실들을 가르쳐 행하게끔 함
- 존재와 행함이 성경신학의 우선순위이며, 동시에 역사함
- (중요) 성령의 역사에는 말씀이 필수적임
- 성령의 존재는 이미 말씀이 응했으며, 말씀이 없이 성령의 사역은 불가능
2-3. 성경의 섭리와 그 이해
- 성경은 존재와 행함이 먼저고, 그 다음에 오는 것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면서 섭리하게 됨
- 성령은 이미 섭리가 되어있으며, 이를 통해 천사들도 굴복하게 됨
- 성령의 역사하에 모든 것이 거처지고, 모든 것이 굴복함
- (중요) 성경신학의 의미보다는 성경의 존재와 행함이 먼저라는 것이 중요
3. 성령의 인도하심
3-1. 성령을 쫓아 행함의 원칙
- 그리스도 안에 이미 신분적으로 완성되어 있음
-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증거를 보증함
-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이자 필수적임
-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성경을 읽고 깨닫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
- 성령은 내 안에 깨닫게 하고, 존재를 보게 하며, 고치고 제거하게 함
3-2. 성령의 인도하심과 영적 지표
- 성령을 쫓아 행해야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증거가 나타남
- 성령은 절대 내 안에서 떠나지 않으며, 계속 가르치고 인도함
-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말씀을 깨닫고, 존재를 보게 됨
- (중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의심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여야 함
-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정체성의 문제이며, 행위로 돌아가야 함
3-3. 성령의 역사하심과 그리스도 안의 존재
- 성령은 생명의 성명의 법이 역사하는 구역임
- 성령이 통치하는 구역은 정확히 성령이 통치하는 영역임
- 육체는 재화사망의 역사로 표현될 뿐, 성령의 역사가 중요함
-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따라 살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됨
-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킴
4. 영적 존재와 행위
4-1. 영적 존재 이해
- 성령은 내 멋대로 사는 것을 반대하고, 성령의 소역대로 이끌어야 함
-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정시키고, 그 안에 있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자이며, 성령의 통치를 받게 됨
- 성령을 고백하는 순간, 성령으로 인해 역사하게 됨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통치를 받게 됨
4-2. 행위와 존재의 관계
- (중요) 행위가 존재를 결정하지 않으며, 열법과 복음의 차이를 알아야 함
-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것은 뿌리가 내리고 있는 존재 자체를 의미함
-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본능적인 행위이며, 우리는 이미 세 사람의 원성으로 성령을 쫓아 행함
- 세 사람의 원성은 육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의 본성으로 인해 나타남
- 세 사람의 원성과 성령을 따라 행하면 사랑, 애락, 화평과 같은 열매가 나옴
4-3. 그리스도 안의 성령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에 따라 행하는 것이 본성이 됨
-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은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함께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함
- 뿌리에서 가지로 영양분이 올라가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가지를 맺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님
- 성령을 쫓아 행하면 사랑, 애락, 화평과 같은 열매가 나타남
5. 성령의 역사
5-1. 성령을 쫓아 행함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임을 선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
- 본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임을 알면 삶이 자연스럽게 변화함
-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함
- 본인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이 역사하심
- 성령이 역사하려면 말씀과 성령이 함께 가야 함
5-2. 앵클리스토의 중요성
- (중요)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앵클리스토'라는 표현을 먼저 사용해야 함
- 내 생각대로 하려는 것은 '내 생각대로' 행하는 것임
- 말씀과 성령의 기름 부으심, 말씀의 깨달음, 새겨짐을 통해 변화가 일어남
- 뇌도 새롭게 창조되어 변해가고 있음
-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주술이 아닌, 이미 성경에 박힌 것임
5-3. 앵클리스토의 삶
-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통해 자유함을 누리게 됨
- 내 생각대로 하려는 죄를 멀리해야 함
- 육체의 본능과 죄를 따라 자신을 내어주지 않게 됨
-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아가게 됨
- 더 이상 육체의 본능과 죄를 따라 살지 않게 됨
6. 성령의 인도
6-1. 성령의 인도와 몸의 행실
- 육체의 모습이 강하면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못함
- 성령의 인도를 따르려면 성령 안에 있는 살아있는 생명의 증거가 필요함
-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함
- 성령은 신사적이고 인격적이며 섬세하심
- 말씀 안에서 성령이 인도하심을 받아야 함
6-2. 성령의 역사와 승리
- (중요) 성령은 시간 안에서 과거의 완료된 것을 현재로 사는 것과 같음
-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영혼을 누리도록 함
- 이미 죽었음과 죽어야 함에 따라 성령이 보정하심
- 성령은 신사적이고 인격적이며 시간 속에서 역사하심
- 성령의 역사로 과거의 완료된 것을 현재로 사는 것임
6-3. 성령의 실제화와 승리
- 성령은 말씀과 영의 가치관으로 나타남
- 말씀 안에서 교제가 중요함
- 이미 이루어진 영적인 사실을 시간 속에서 실제화하심
-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영혼을 누리도록 함
- 성령의 인도하심은 물리적인 몸과 습관, 내 관성들을 넘어서야 함
7. 성령의 능력
7-1. 행실 제압
- 행실을 자꾸 죽여감으로, 원함을 쫓아가는 것들에 집중함
- 다리 뻗어지지 않게, 머리와 몸 가려움 등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함
- 로마서 8장 13절을 근거로, 성령의 능력으로 몸의 행실을 제압해야 함을 강조함
- 성령의 능력으로 몸의 행실을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함
- (중요) 예민함이 있어야 몸의 행실을 제압하고, 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음
7-2. 성령의 능력
- 성령의 능력은 성령의 인도함을 통해 나타남
- 몸의 행실을 성령의 능력으로 제압해야 함을 강조함
- 몸의 상처, 질병, 마귀의 공격 등에 대응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이 필요함
- 성령을 의지할 때, 이미 십자가의 죽음이 완성되었음에도 시간 안의 집행이 중요함
- 성령은 실재화의 주체이며, 시간 안에 죄와 부정한 것들을 제압하고 완성시킴
7-3. 성령 충만
- 성령 충만을 구하고, 명령을 받으면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함
- 성령 충만을 구하면, 육체의 소욕을 안에서 밟아내고, 몸의 행실을 누릴 수 있음
- 성령은 우리의 힘으로 죄를 죽이려는 율법주의와 금욕주의에서 벗어나야 함
- 성령을 의지하면, 힘입고 부정하던 것들을 죽이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함
- 성령을 통해 죄를 죽이고, 완성된 성령이 시간 안에 효력을 발생시켜야 함
8. 죽이면 살리라
8-1. 육체의 죽음과 새 생명
- 에베소서에 따르면, 우리는 모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성령의 도움으로 새 생명을 얻음
- 성령의 도움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변화시키시고 성령을 의지하면 질병과 저주의 부분도 제거시킴
- 성령은 우리를 완성된 자로 만들어주시고,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하심
- 크리스천은 성령 안에서의 삶을 통해 영원히 현재에 거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됨
-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시간 안에서 완성된 것을 이루어 가시도록 도와주심
8-2. 죽이면 살리라
-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 수 있다고 하심
- 우리는 죽이면 살리라는 말씀을 따라, 죽으면서 현재로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함
- 우리는 영원히 현재에 거하며 완성된 것을 이루어 가시도록 성령을 의지해야 함
- (중요) 성령은 우리가 완성된 것을 이루어 가시도록 도와주시고,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하심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질병과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심
8-3. 성령의 인도와 도움
-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완성된 것을 이루어 가시도록 도와주시는 분임
- 우리는 인식하고, 성령을 의지하여, 이미 죽은 자임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임을 알아야 함
- 성령은 우리를 통해 나타나도록 하고, 우리가 완성된 것을 이루어 가시도록 내 안에 보증해 주심
- 우리가 예수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생명이 나타나도록 해야 함
- 성령을 의지하면 질병과 저주의 증상을 없애고, 생명이 나타나도록 하심
9. 성령의 인도하심
9-1.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화
- 성령은 완성된 것을 현재 집행하는 형이라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중요함
- 육적으로 행해서는 수고와 슬픈 고통을 면할 수 없음
-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면 성화된 삶을 살 수 있음
- 성화된 삶은 신의 성품으로 사는 것을 의미함
- 성령은 미완성된 시간 안에서 현재화된 정체성을 선포하는 것임
9-2. 성령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마음
- 성령은 말씀, 환경, 감동, 음성, 꿀물, 타라 등을 통해 가르치심
- 몸에 드는 것과 편하게 하는 것은 반대되어 마음에 드는 것을 주로 해야 함
- 성령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성령이 가르치는 것과 육체의 소욕을 통해 반대되는 것을 주로 해야 함
- (중요) 우리가 성령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마음을 갖으면, 영원을 현재로 사는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음
-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누리게 하기 위해 성령이 부르심
9-3. 성령의 동행과 부흥회
- 에베소서 2장 24-27절에 따르면, 성령은 이미 완성된 것을 보정하여 우리를 성령 안에 거하게 함
-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가르치고, 완성된 것을 누리게 함
- 성령은 우리가 성령 안에 거하도록 가르치고, 우리가 성령 안에 있는 것을 누리게 함
- 성령의 인도하심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일어남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을 함으로써 헌신하게 됨
10. 성령 인도하심
10-1.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
- 신분을 인식하고, 성령에 인도함 따라 교제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임
- 성령은 천국을 보증으로 보내심으로써 우리가 천국에 거하기를 가르치심
-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신분은 절대 변하지 않음
- 성령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말씀을 통해 감동을 얻고, 고집을 꺾어야 함
-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지구 온몸으로 나타내는 것임
10-2. 성령의 가르침과 순종
-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예수님과의 교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됨
- 성령은 우리가 주님을 의식하고, 기도하며, 하루를 선택하는 것 이상의 삶을 인도하심
- 성령은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하루를 살기를 선택하고, 교제하며, 예배하고, 섬기는 것이 능력임을 가르치심
-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애씀보다 일하는 것, 성과를 내는 것보다 교제하는 것을 누리며 삶
- (중요)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교제하고, 순종하며, 감동을 얻는 것임
10-3. 성령의 인도하심과 삶의 변화
-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예수님과의 교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됨
- 성령은 우리가 주님을 의식하고, 기도하며, 하루를 선택하는 과정을 인도하심
- 성령은 우리가 주님을 의식하고, 기도하며, 대화하고, 교제하는 것이 삶의 당연한 부분임을 가르치심
-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고집을 꺾어야 함을 가르치심
-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우리의 삶이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릴 수 있음
11. 돌아오라
11-1. 돌이키기
-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죄를 인정하고 돌이켜야 함
- 돌이키지 않고 계속 거부하면 인생이 힘들어지고, 성령님을 제어하게 됨
- (중요) 계속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성령님은 분해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경고함
- 돌이키면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감
- 지속적으로 약속을 지키면 성령님은 반응하심
11-2. 대적과 친히
- 계속 가르치지만, 거부하면 바로잡고 돌이키게 함
- 성령님은 우리의 태도를 분별하여 우리를 회개시키고 돌이키게 하심
- 고집을 꺾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함
- 대적이 되어 돌이키면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언약을 이룸
- 성령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고 구원하심
11-3. 돌이키는 방법
- 성령님은 우리를 정제하기 위해 돌이키게 하심
- 죄를 자복하고, 사과하고, 용서하면 성령님이 우리를 향해 반응하심
- 우리가 내면의 완화감을 꺾고, 말씀을 보고 깨닫면 돌이키게 하심
- 솔직하게 자백하고, 성령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함
- 성령님은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돌이켜 들어가게 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