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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회

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12)_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습관적인 자아가 불쑥 튀어나올 때(엡3:16-19,고전15:3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26.06.19|조회수45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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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12)_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습관적인 자아가 불쑥 튀어나올 때(3-16-19,고전15-31)

 

 

Amen. 이렇게 제가 한 6개월을 소리도 안 나게 잠겨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매일 밤에 가서 죽어라. 목소리를 방언으로 죽어라. 고함 친 적 있어요? 사람들은 너 이제 병신 된다고? 앞으로 이제 사용 못할 거라고 막 겁을 졌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안 그러시더라고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왠만해서는 안 쉬는데 이번에는 너무 정열적으로 하다 보니까 쉬었습니다.

 

여러분께 전해드릴 게 너무 많은데 바울에게 전수한 비밀이 너무 큰 나머지 여러분에게 쏙 빨려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냥 한계를 넘어버렸어요. 그래서 그런 겁니다. 별다른 게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여러분도 가끔 넘어보면 괜찮습니다. 부엉의 때 말씀을 드린 것을 계속 제가 반복하면서 심화하고 있어요. 반복 심화. 반복 심화. 그래서 계속 이 마음에 새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계속 하고 있는 중이에요. 부엉에 대한 영원과 지금을 한마디로 한 단어로 말하면 크리스도라고 그랬습니다.

 

크리스도 안에서 여러분 그 비밀만 깨닫고 그 비밀 안에서 내가 구하기만 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끝입니다. 더 이상 이 땅에서 절대로 매여서 휘둘리지 않습니다. 염려 근심 아주 우스운 게 돼버리고 맙니다. 두려움 우리 앞에서 초라한 것이 되고 맙니다. 정말 그렇게 됩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면 그걸 누려야지 그리스도인이죠. 그걸 못 누리면 그냥 교회 다니시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수십 년 동안 교회 다니셨는데 누리셨습니까?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마귀는 옆에서 막 박수 쳤을 거예요. 얼마든 다녀라.

 

얼마든지 다녀라. 그렇게 옆에서 막 소리 질러도 모르죠. 오늘 오후에 반복하는 것들이 정점에 갈 예정입니다. 질병으로부터 완전한 자유암에까지 이루고자 합니다. 물질로부터 완전한 자유암은 지난 시간 부흥회 때 말씀을 드린 거고, 오늘 오후 마지막에 질병에서부터 완전한 예방에까지 갑니다. 여러분 오후 예배 집에 가지 마시고 그냥 계세요. 계세요.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만 계시면 좋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를 이제 지금 이루어야 하는데 그걸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게 가장 안 되는 게 어떤 것 같아요? 왜 그런 것 같습니까? 왜 그게 가장 안 되는 것 같아요? 고직습관 생각. 지난주에 부흥회 할 때 그 매뉴얼 말씀을 드렸잖아요. 해보셨어요?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가로쳤어요. 되죠? 될 때도 있고 아 그러면 성공한 겁니다. 한 번만 성공하면 됩니다. 일단 그게 중요합니다. 안 하고 안 된다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이건 내가 지어낸 게 아니고 성경에 나오는 거예요.

 

그게 전부 그리스도 안에서 영어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되는 것으로 그걸 단지 과학적인 면에서 제가 섞어서 말씀을 드렸을 뿐이죠. 그렇죠? 이제 좀 전에 말씀을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너무 꿈 같은 이야기 같지만 아닙니다. 우리는 존재가 원래 그래요. 원래 원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거는 사실 생각할 것도 아니에요. 이거는 그렇죠? 내가 왕이면 왕처럼 사는 걸 오늘 생각해야 돼요. 맞다. 내가 왕이지. 왜 거지같이 살지? 이렇게 왕이 그런 거 봤어요? 왕이 안 돼봤어. 부자가 맞아. 내가 이것 때문에 벌벌 떠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부자라는 걸 기억해내야 압니까? 안 해도 알죠. 그렇죠?

 

내가 그 안에 있는 걸 꼭 기억해내야 그 안에 있는 건가요? 아니요. 그만큼 우리가 잊고 살아서 그래요. 모르고 살아서 그래요. 그래서 그 안에 있는 꿈도 못 꾸고 살았고 천국은 죽어서 가는 것이라고 단정 지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그냥 고생하면서 살아도 그냥 혼자 스스로 위안하죠. 나중에 좋은 데 간다고. 잘못된 거예요. 그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 존재를 가장 망각하게 하는 건 바로 습관이에요. 습관. 습관적인 자아 때문에 그래요. 그게 편도체 해킹이라고 했죠. 그래서 뇌 자체가 게을르다고 그랬습니다. 자극이 오면 곧바로 반응하는 게 중간 과정 생략하고 왜요?

 

이미 고속도로가 뚫려 있기 때문에 그냥 달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뇌자율주행이라고 해요. 자율주행 해봤어요? 여러분 요즘 많이 나왔죠? 자율주행.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이 되더라고요. 그것처럼 내 습관, 자아의 습관이라는 게 수십 년 또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분 나이만큼 습관이 됐잖아요. 그거를 하루아침에 크 아니다 라고 하려니까 너무 힘든 거죠. 습관적 자아를 이제 처리해야 될 부분이에요. 그게 여러분 우리가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걸 의식적으로 자꾸 처리하려고 하는 데 더 문제가 우리는 뇌를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그것 또한 방법이에요.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거기 때문에 방법인데 그것보다도 본질적인 것들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돼요. 그것은 자꾸 습관적인 자아를 누르려고 하는 거기서 더 실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게 자아의 행동방식이잖아요. 그럼 자아가 다시 자아를 누르려고 하는 거예요. 모순에 빠지는 거죠. 그런가요? 그래서 잘 안 되는 거예요. 방법은. 그래서 다른 자아로 채워.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있는 존재잖아요. 그게 바로 오늘 본문의 에베소스 3장 16절 해서 17절이에요. 여기를 한번 볼까요?

 

습관적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이 자아 때문에 습관적으로 욱 나오는 것 때문에 인생이 무지하게 아프고 괴롭고 관계가 다 쪼개져 버리고 어떤 큰 일을 망쳐버리고 이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죠? 옛날에 히딩크 감독 아시죠? 2002년 밤바로바로 지금도 그렇죠. 히딩크 감독이 얼마나 똑똑한 분인지 여러분 잘 모를 거예요.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면 이태리하고 그때 월드컵 4 강을 앞두고 격돌했죠. 그때 어떤 일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에요. 아세요? 거기에 반대편의 이태리 선수 중에 아주 성질이 불같은 놈이 하나 있었어요. 누군지 아세요? 걔 있잖아. 누구?

 

유산 막 이렇게 막 때리고 난리 났었잖아. 그때 피나고 막 그래요. 토티인가? 토티 튀게 생겼잖아. 톡 톡 튀게 생겼잖아. 히딩크 감독이 걔한테 자꾸 달라붙더라고. 몸싸움을 하라고 분명히 퇴장당한다. 무조건 달라붙더라. 그러니까 안 두 사람한테 수비한테 그걸 맡긴 거예요. 올라오면 무조건 달라붙으라고 그래가지고 삐익 한 번 불고 아니 한 번 불면 대상 아니지 성질 얼마나 나겠어요? 옆에서 막 달라붙는 진드기처럼 계속 달라붙으니까 그놈이 전적이 그렇게 많았던 거예요. 계속 진드기처럼 붙었던 거야. 그래서 한 방 팍 치고 그냥 픽 하고 아웃된 거예요. 그리고 이긴 거예요. 그리고 그래요.

 

제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아시죠? 톡 튀는 것 때문에 그놈 아마 데려가서 엄청 욕먹었을 거야. 어떤 나라 꼴피운 공항에 갔다가 살인당했잖아요. 자살골. 먹었다고 먹었다고 뭔가 자기가 뭐 그렇죠? 콜롬비아인가 뭐 어딘가 그 정도로 여러분 우리 혈기나 이런 것들이 습관화되어 있잖아요. 그렇죠? 그것만 있어요. 조금만. 그러면 우울하고 염려에 푹 빠져버리고 물론 이미 많이 나눴지만 이런 것들이 그런 것만 있어요. 그런 것들은 어떤 성품 부정성과 관련되어 있지만 그거 말고도 이런 게 있어요.

 

그냥 밥 먹고 나면 무조건 커피 한잔하면서 이렇게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 아무 생각 없이 자동으로 그것도 자동이잖아요. 이걸 내가 주님 산책을 나갈까요? 하기 전에 이미 저만큼 가 있죠. 성질을 확 내는 거랑 같아요. 그게 습관이라는 거야. 습관. 그렇죠? 이런 것들이 물론 이제 우리에게 콕 나오는 이런 부정성이지만 이미 십자가에 다 죽었고 그렇죠?

 

습관적으로 행하는 이런 것들도 이미 십자가에 다 죽었는데 뇌에 아직도 남아있고 몸에 몸에 이게 습관화 근육처럼 이렇게 안에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아직 시간 안에서 해결이 안 돼서 계속 나오잖아요. 이런 것들이 단순한 예를 제가 지금 들었지만 그것 말고도 습관적으로 싸우는 사람도 있고 습관적으로 밥만 먹으면 이거 이리 와 앉아서 하루 종일 이리 와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죠? 아니면 밥 먹으면서도요. 요즘 횡단보도 건너면서도 오토바이 타고도 보고 중독도 그런가요? 습관이 좀 지나치면 중독이 되죠. 좋지 않은 습관은. 그렇죠?

 

그게 좀 심각해지면 중독 증상이 나타나. 우리도 중독하면 중독된 거죠. 그리스도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만 나타내기를 원하는데 이 습관적 자아가 확 가로채죠. 계속 하이재킹. 그렇죠? 확 가로채죠. 그래서 속에 있는 건 먼저 나온다든지 아니면 아까처럼 밥 먹고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온다든지 그게 나쁘다라는 건 아니에요. 그게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차이가 있다라는 걸 말하고 있는 중이죠. 나와버리고 자동적으로 가버리죠. 이런 게 가장 힘들죠. 습관적으로 행하는 거. 지금까지 내 삶의 루틴으로 계속 행하는 거. 우리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그러면 아침에 일하러 갈 때 주님 내가 일하러 갈까요? 물어봐야 될까요? 그때는 가셔야 돼. 그것까지 말하는 건 아니죠.

 

일하러 가기는 가되 오늘 하루의 일을 주님 안에서 행하길 원한다. 하고 그냥 무의식적으로 계속 그냥 행하는 거하고는 다르죠. 그 차이를 말하는 거요. 이해 가시죠? 거기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계속 그렇죠. 이것 때문에 우리의 삶이 과거의 습관에 매여서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충만함에서 멀어지고 있다라는 거죠. 그걸 해결해야 돼요. 습관적 자아를 해결해야 돼요. 그런데 그거를 이제 우리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거는 내 존재, 옛날의 존재에 관한 거잖아요. 그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도 아직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제 처리해야 할 바가 바로 그건데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먼저 위치, 선점을 하는 거 이런 거 다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거기에 더 깊이 나누도록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불쑥 튀어나올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도대체 여러분 내가 그걸 인식하는 게 엄청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충만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자꾸 나를 충만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 열기 하면서 하는 게 그런 작업들이에요. 계속 충만하게 계속 화가 계속 집어넣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옛날 것이 점점 묽어지도록 이해 가시죠? 그것이 나를 점점 새롭게 만들어 가잖아요. 보세요. 거기서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 이제 세 사람 사람의 습관이죠. 끝에 사람 사람의 습관.

 

이게 세 사람의 습관으로 점점 대체가 되는 거죠. 이거예요. 바로 이거로 핵심은 여기에 있어요. 이것도 길들여져서 됐잖아요. 훈련하고 학습하면서 됐잖아요. 이것도 그렇게 하라는 거죠. 계속. 그러니까 오늘 하루 만에 당장 돼버리면 좋은데 물론 성경이 막 강하게 역사하면 그럴 때도 있긴 하죠. 그렇죠? 그런데 성경 충만은 또 비어지기도 하잖아요. 충만했다가 비어졌다가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좀 비워지고 채우지 못할 때는 이게 또 훅 나오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이 세 사람에 대한 습관을 지속적으로 길들여지게 해야 되는 거죠. 이 편도체가 전두의 화이재킹으로 바뀌는 그거랑 비슷한 과학적인 원리네 이거예요. 그래서 성경이랑 여기에 사도바우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16절부터 보시면은 자 그런데 하나 16절부터 보시기 전에 이 습관 여기에는 하나님 하나님의 충만 하나님의 충만을 말하죠. 그런데 이것도 글로서에서 2장 9절에서 10절에 보면 이미 신성의 모든 충만하므로 있다고 하는데 여기는 또 충만하기를 기도하죠. 사도가 이게 이미 이건 아직 이거는 우리의 존재라고 그랬죠. 우리는 이미 충만한 존재라는 걸 절대로 잊어먹으면 안 돼요. 그래서 시간 안에서 이건 반드시 이루어져야 되는 거죠. 왜? 시간 안에서 이루어져서 완성된 거기 때문에요.

 

그래서 이 충만화라는 게 계속적으로 충만 해소를 하는 거거든요. 그게 16절부터 나오는 사도가을의 항변이에요. 사도바울은 여기에 분명히 글로세서는 완성된 걸로 나오고 여긴 또 충만하라. 사도바울의 서신성의 주특기예요.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죠. 여기 16절에 보면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성녀로 말미암한 너의 속사랑을 강건하게 하옵소서. 여기도 속사람은 하나님 연과 연합해서 새롭게 탄생한 우리 아내 세 사람이에요. 그걸 그냥 두라고 그래요. 잘 보세요. 다시 읽어보죠.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라고요. 강건하게 하는데 방법이 뭐예요? 성형으로요.

 

그래서 어제 나눴던 것처럼 에베소스의 1장에서 23절까지 보면 중간에 성령이 보정으로 껴 있죠. 바로 그거예요. 시간 안에서. 이걸 현재화, 이걸 지금 충만하게 하는 현재화는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을 계속 강건하게 해야 되는 그건 우리의 어떤 강건하게 하는 습관이 계속 들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 물론 우리가 하는 건 아니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거죠. 우리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비밀이 있어요. 내가 하려고 하면 실패해요. 내가 하려고. 달라붙어서 하려고 하면 그때 실패하고 실망해요.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 해도 안 되는구나. 이렇게 가버려요.

 

그게 제일 위험한 거예요. 그래서 그게 속으면 안 돼요. 성형의 인도암을 받는 습관을 계속 들여야 돼요. 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는 게 계속 이미 몸에 배어 있지만 성형의 인도암을 받는 습관을 계속 들으려고 그랬죠. 그게 에세이죠. 1초만 멈추라고 그랬잖아요. 성령님 어떻게 할까요? 그걸 하라고 성령으로 말면 한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성령이 이걸 보정했잖아요. 완성된 걸 보정했으니까 그 성령을 의지해야지 나를 의지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착각을 하는 게 노력해서 이것도 내 날 것을 자꾸 없애려고 덤비는 거예요. 혈기도 내가 없애려고 덤비는 여기서 실패를 맛보는 거.

 

그래서 안 된다고 하는 거죠. 그게 바로 율법 아래서 행하는 거예요. 율법 아래서 우리가 여러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 엄청 해봤죠? 옛날에 사랑하려고 엄청 노력해봤죠. 안 되잖아. 그건 불가능하잖아. 내 안에 없는 건데 우리는 본성적으로 미워하는 자들이에요. 본성적으로 사람들이 더 안 되길 바라는 게 우리 본성이에요. 너무 잔인한가요? 우리 존재에 대한 인정을 먼저 하라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걸 다른 말로 하면 성령 안에서 그래서 지금 시간 안에서 이 완성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분은 성령님이죠. 성령충만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을 의지할 때만 우리는 속사람이 계속 강건하게 살아가는 거죠. 그러죠? 그 성룡은 우리에게 와서 우리 안에 있는 이 속사람을 점점 그리스도 영상까지 자랑하게 하는 분입니다. 이해가시죠? 이게 그 표현이잖아요. 능력으로 점점 강건하게 돼야죠. 물론 법적으로 이미 충만한 완성 상태지만 시간 안에서 우리는 그걸 이루어가야 하는 걸 말하고 거기에 보면은 17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나 이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여기에 보세요. 지금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이거 우리 안에 있는 것 존재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의 다른 표현이죠. 그런가요? 이게 상원해주잖아요. 그러니까 상원해주는 잘 들으세요.

 

내 노력으로 이루는 게 아니죠. 어떻게 이루는 거예요? 믿음으로요. 이제 성령에서 믿음으로 바뀌었어요. 그런가요? 믿음의 주인은 예수님이죠. 그 주인 믿음의 주인이 예수님인데 그 믿음을 우리에게 실제로 이루는 것은 성령이죠. 성령의 연사 중에 믿음의 연사가 있죠. 그래서 믿음은 우리가 생산하는 게 아닙니다. 큰소리로 믿습니다. 한다고 믿으시는 게 절대 아니라고 그랬죠. 그래서 아무리 큰소리를 치셔도 소용없습니다. 이건 성령의 사역이요.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걸 선물로 불어넣어 주시면은 이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걸 믿기 싫어도 이미 그 안에 있구나 라는 걸 내가 알게 돼요.

 

그래서 전부 보정하신 성령의 사역이요. 그렇죠? 그래서 믿음으로만 그러니까 내가 뭔가 열심히 해서 교회 열심으로 할 때는 안에 있는 것 같고, 좀 이렇게 자빠져서 아니면은 다운돼서 괜히 이러고 있으면 밖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이러죠. 열심히 할 때는 안에 있는 느낌을 받고 그렇죠? 이게 믿음의 반대 말이에요. 아시겠어요? 여기에 다 함정에 빠져서 헤매요. 부응해하고 그나면 느낌 좋잖아.

 

믿음이 좋아진 게 아니고 느낌이 좋아진 거야. 왠지 불도 오고 춤도 추고 날뛰고 뒹굴기도 하고 왠지 나은 것 같기도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그런데 옆에 붕이 끝나고 나는데 누가 툭 차면 아이고 그 믿음이 어디로 가버렸지? 싹 달아나고 하나도 없어. 바로 콕 올라와서 뭐라고이? 그래서 그 느낌이 다 달아나버렸죠. 여태까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어요. 거기에 육에 속한 사람 그래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안 되는 것 믿고 싶어도 안 되고 아무리 믿으면 다 된다. 하는데 믿어져야지 말이지.

 

교회 열심히 나오고 금식하면 믿어질 줄 알았는데 배만 고프고 안 믿어집니다. 여러분 이건 내가 생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성령의 은사예요. 이번에서 12장 2절 믿음의 주인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 믿음을 우리에게 심어서 시작하고 완성하는 분이라는 뜻이에요. 그게 그럼 내가 하는 건가요? 전부 예수님이 하는데 지금은 예수님의 영인이 아니오셔서 그 일을 하죠. 그래서 믿음을 계속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믿어져 버리는 거죠. 그런 거예요.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부 성령사예요.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너의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그러니까 내 힘으로 노력으로 교회 열심히 다니는 횟수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고 있고 그런 걸 여러분 확장하는 게 아니야.

 

이건 그냥 자고 일어나면 되는 거예요. 되어 있는 거예요. 원래. 그래서 됐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없는 믿음이 갑자기 생겨서 된 머리. 그래서 어순줄날 성령이 확 임하니까 그냥 돼버리잖아요. 마치 그런 것처럼 순식간에 믿음을 부어버린 거예요. 주님이. 그래서 갑자기 뭔가 자기 생전 안 하던 사람이 확 이렇게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후회하고 그러기도 하지만 물 건너 가버렸잖아. 그러지만 어쨌든 성경 인도하심 안에 있는 거예요. 이건 뭔가 하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게 하옵시고 계시다라는 것은 잠시 머물다 가시는 게 아니고 영원히 계시는 거예요. 영구정착. 그럼 우리는 믿음 안에서 그게 연구 정착하는 거예요.

 

그러죠? 내 힘으로 알려고 하시면 안 돼요. 이미 이건 콜로세스 1창 30절의 현재화예요. 이미 우리 안에 있다고 그랬죠? 우리는 그 안에 있고 그러면 더 이상 믿음을 발휘해야 할 건 아니죠. 그런데 여기는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계속 있게 하라 라고 한 것은 지금 시간 안에서 믿음을 잃지 말고 이미 그 안에 있는 것, 실제로 나 안에 있는 게 맞다. 라는 걸 계속해서 믿음으로 발휘하라 라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없는 걸 갑자기 만들어내는 게 아니에요. 이해가시죠? 그런데 전세일장 30절이 맞다. 내가 그러지.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게 맞지. 이걸 나타내라는 거예요. 이미 있는 걸 그 말이죠. 없는 걸 짜내라는 게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 다음에 너희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사랑을 알다. 사랑을 아는 게 뭔가 하면 여기에 그 다음에 뒷부분 하나 있죠.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 박혀 터가 굳어져 여기 보세요. 사랑에 뿌리를 내리라는 거예요. 이 사랑은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 대표적인 성품이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거기에 뿌리내리고 계속 뿌리내리는 건 뭔 말이에요? 빨아올리라는 거잖아요. 그렇죠? 맞나요? 그러면 속사람을 강력하게 하는 것은 계속 빨아올리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계속 빨아올려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없기 때문에 믿음을 계속 이렇게 그걸 우리가 해야죠. 완성됐지만 해야죠. 이 시간 안에서 완성된 모습을 보여줘야 되기 때문에 계속 빨아올리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된다는 거예요.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점점 단단해지죠. 그렇게 되면 지식의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러면 진짜 알게 되는 거예요. 계속 그걸 빨아올려야 되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알다라는 게 뭔가 하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점유하다 이런 뜻이에요. 단순히 아 그렇게 되겠네가 아니에요. 내 것으로 만들어서 완전히 붙잡고 터가 굳어지겠다고 만들어라 그 말이에요. 이거 놀라운 사실이죠.

 

그래서 그 사랑이 뭔가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그렇게 하다 보면 깨닫게 되고 우리가 점점 깨닫죠. 하나님의 사랑이 이 정도였구나. 교회 옳자 말자 깨달았나요? 아니잖아요. 계속 깨달으시죠. 그러면 그게 점점 내 것이 되면서 결국은 어떻게 되는가 보세요. 결과가 뭐예요? 하나님의 충만으로 가요. 이게 논리적이죠.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 안에서 그 사랑으로 점점 충만해지는데 그건 아는 걸 말하고 그렇죠? 그런데 아는게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 이걸 점점 그러면 그걸 자꾸 빨아들이고 알게 빨아들여서 내 것으로 만들게 되면 그게 아는 거라고 그랬죠.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하나님의 충만함이 되는 그걸 해야 되는 거죠. 그건 우리 힘으로는 아니지만, 성령에 인도함을 성령에 의지해서 그래서 계속 이 시간 안에서 보정하시는 성령을 계속 의지하는 거예요. 계속 의지하면서 그걸 흡입해야 되는 거예요. 계속 하나님 존재 자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충만으로 다시 바뀌었어요. 사랑해서. 성령에서 믿음에서 바뀐가요? 결국은 뭐예요? 결론이 충만이죠? 그런가요?

 

이것을 영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결국은 그리스도에 사랑의 뿌리가 박혀서 그걸 계속 빨아들여서 하나님이 충만한 데까지 가면 이제 하나님이 충만하면 깨끗이 점점 희석되어 없어지죠. 그때 머리도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가요? 그래서 우리는 그 충만해서 가는 과정 안에서도 계속 그걸 위치 선점을 하고 말씀으로 선포하고 이렇게 해서 그 안에서 이 습관이 고속도로처럼 달리는 걸 그 훈련을 병행해야 된다는 걸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이건 뭐예요? 내 힘으로 피워내는 건가요? 계속 채우는 거죠.

 

결국 그 계속 채우는 게 계속 피우는 거하고 또 잉크가 이만큼 있으면 물을 계속 보면 쓰게 되죠. 그런 거죠. 그래서 충만해지도록 사도 바울이 계속 구하잖아요. 자신도 그렇게 충만해졌다라는 거예요. 이해가 되네요. 자신도 그냥 된 게 아니에요. 계속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지식을 넘어선 연합 안으로 들어갔다는 거죠. 이건 경험적으로 사도바울이 그렇게 되었다는 걸 말하고 있어요. 사도바울이 다민생에서 고꾸라지고 바로 사역을 한 게 아니에요. 10년이라는 시간이 그 안에 있었다고 했죠. 아라비아의 3년. 그 다음에 타소에서 이렇게 그 교재를 통해서 점점 그거는 충만했었던 거예요. 그 안에서 매일 죽고 이런 것들이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해 가시죠?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어야죠. 교회 올자마자 안 되고요. 율법 안에서는 절대로 안 되고요. 복음 안으로 들어왔어도 그런 시간들이 파울이 율법 안에서 불가능했잖아요. 그때 안탄했던 거 기억나죠? 나는 공고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는 거죠. 그렇죠? 그게 이제 복음 안으로 들어와서 시간이 그만큼 필요했던 거예요. 지속적으로 그 뿌리를 거기에 박아서 계속 발아 흡입했던 거예요. 내 안으로 계속 마음에 채웠던 거죠. 이해 가시죠? 마치 이런 거죠. 여러분. 비어있는 물병이 있으면 채우려면 먼저 쏟아내야 되죠. 그런데 이제 보세요. 이 뚜껑이 열려 있으면 이걸 바닷물에 던져버리면 여기 안에서 출렁출렁하다 보면 계속 바닷물이 들어오게 계속 들어오겠죠?

 

그러면 점점 바닷물로 차겠죠. 그런가요? 물병이 바다에 빠지면 물병 안에 바다가 있죠. 맞나요? 바다 안에 물병이 있죠. 이 수구리스토리 사랑 안에 잠기면 내가 그 사랑 안에 있는 거고, 그 사랑이 내 안에 있는 거고, 그러니까 내가 예수님께 빠지면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거고, 예수님이 내 안에 그분의 성품이 자연적으로 나를 채우게 되죠. 그게 내가 주하네. 주가 내 안에 바로 상우 내주가 바로 그런 거요. 이해 가시죠? 그렇게 해서 결국은 어떻게 된다고요?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그러니까 이건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어떤 죽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뭔가를 채우는 죽만이 아니고 뭘로 채우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으로 이해가시나요? 그걸 아셔야 돼요. 그게 바로 이거예요. 나의 충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충만 결국은 내가 없어지고 하나님으로 가득한 것 이거죠. 이게 바로 상원외주의 정점이고 그리스도의 형상에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가는 거죠. 그걸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가기까지 가기까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들이 있죠. 그런가요? 사도, 방울도 그래서 머리를 쥐어 뜯을 정도로 오호라 나는 공고한 사람이로다 이렇게 말한 거예요. 우리는 어떻겠어요? 우리도 머리를 쥐어 뜯어야 되는 거예요. 사실은. 만약에 이 말을 잘 보면 영화 7장을 이렇게 잘 더듬어보면 파울도 잘 안 됐나 봐요. 안 됐던 거예요. 위로가 되죠. 큰 위로가 안 돼요. 아 나도 된다.

 

이제 위로를 얻으셔야 돼 사도 바울이 만약에 어떤 특별한 사람이어서 그렇게 됐다면 우리가 절망하죠. 그런가요? 특별하게 불러서 확 채워버리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어. 오늘날 왜 안 일어나느냐고 따지고 절망하겠죠. 그런데 아니에요. 사도바울은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이었어요. 사실은 왜 율법으로 완전히 똘똘 뭉쳐서 가능성 제로 아닌가요? 거의. 그런데 확 꾸꾸러지고 나서 그냥 된 게 아니에요. 10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죽을 때까지 계속 죽는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깐 공부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자신도. 우리는 그런 걸 읽어낼 수가 있어야 돼요.

 

성형 충만하니까 계속 그 일이 일어났던 거예요.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이런 것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서 우리도 그리스도만 나타내기를 원하는데 계속 습관적인 자아가 피어올라오잖아요. 용수철처럼 막 터져 올라오죠. 사더바울도 그랬던 거예요.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래서 이걸 그래서 어떻게 이 신비로운 상온해주를 삶으로 살아내어야 하는가? 낼 수 있을까? 부흥이 됐던 그런 어떤 팁 외에도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미 이루어진 거라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출발해야 돼요. 그렇죠? 이게 얼마나 엄청난 사실인지 아셔야 돼요. 계속 제가 반복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흔히 사람을 자꾸 죽여서 세 사람이 될 되어야 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요.

 

자꾸 십자가를 치라고 하니까 계속 내가 열심히 친 만큼 새것이 될 것으로 착각을 하면 안 돼요. 그게 아니고 이미 되어 있기 때문에 완성된 그리스도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됐죠. 이미십자가에 박혔고 정과 욕심도 박혔고 다 완료형이죠. 성경은 전부 완료형이라고 했어요. 글로세스도 보면 이 사람과 그 행위를 벌써 버리고 세 사람을 이 어선이 전부 과거에 완료되어 명으로 선포가 되어 있죠. 그래서 여기 계속 딜레마에 빠진다고 했는데 율법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 성경 말씀조차도 습관적으로 하려고 그래요.

 

율법에서 행하던 습관적으로. 왜? 그게 길들여져 있어가지고 그러니까 꾹꾹 참는 게 마치 십자가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계신 거예요. 그러죠? 그럼 죽을 때까지 참아도 그거 계속 올라오거든요. 그게 율법 안에서 길들여진 무서운 습관이야. 그래서 기도하라 그러면 곧바로 막 들이대죠. 그거 제가 아니라고 기도할 줄도 모르는데 마구잡이로 그냥 해댄다고 성령관에서 기도하기에 시간하고 지금 부흥해서 그냥 하이재킹 하고 있는데, 아시겠죠? 이거 율법의 습관도 무지하게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신앙생활도 옛날처럼 습관적으로 하려고 그러죠. 그래서 우리 교회에 오면은 여기 도대체 뭐 하는 데야?

 

이상하다. 여기 왜 이러지? 여기 이상하다 이러는 거예요. 도대체 모르겠는 거예요. 십자가를 말하고 복음을 말하는 것 같긴 한데 좀 이상하다. 왜 그럴까요? 율법에 길들여져서 그래요. 복음이 뭔지도 모르고 복음 안에 있는 줄 알았던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 같은 해외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요. 우리가 지금 율법 안에서 순서지 짝짝 해서 그게 성경에 나오는 건가요? 예배는 이렇게 해라. 찬양은 두 번째 넣고 기도는 세 번째 넣고 대표 기도는 그다음에 넣고 10분 이상 절대 하지 말고 5분 안에 끝내고 짧게 끝내고 설교는 20분 안에 반드시 마무리를 해야 되고 이런 게 있나요?

 

찬양대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몇 명이 있어야 되고 낄깽이를 쳐야 되고 이런 게 있어요. 그거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은 아직 예배에 대해서 몰라요. 너무 몰라. 이미 다 나눴지만 요한복음에 그런 거 있던가요? 장소에 메이던가요?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또 저기서도 아니고 앞산에서도 아니고 뒷산에서도 아니고 뭐라고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울 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내 삶을 말해요. 예배는 우리가 만든 형식 안에 메이면 안 되는 거예요. 성경이 인도하심에 따라 예배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예배는 교회에 나와서 하는 한 시간짜리 그걸 예배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러분 이해가시나요? 그 성전을 허물러라고 그랬어요. 이미 성전은 지금 내가 성전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율법 안에 매여서 습관적으로 하던 게 계속 길들여져 있죠. 기도합시다. 그러면 이것부터 하잖아요. 눈 뜨고 기도하면 큰일 나죠. 저는 기도할 때 여기서 눈 뜨고 할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보고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누가 이렇게 마을 목사는 눈을 떠오기도 하네. 이단 아니야? 그런 거 아니에요. 여러분?

 

그건 율법 안에서 잘못된 습관에 매여서 죽어 있는지도 모르는 삶이었어요. 비참하지만 그래요. 저도 율법 안에서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봤기 때문에 너무 잘 알죠? 아니에요. 여러분? 그래서 그런 복음도 자꾸 율법적으로 적용하려고 그래요. 이런 것들도 자꾸 율법적으로 적용하려고 그래요. 그러다 보니까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버려요. 이게 습관이라는 게 그렇게 우리를 얽어매는 거야. 그래서 습관적인 자아가 훅 올라오면 엄청 실망하죠. 내가 SAG 해야 하는데 아이고 묻고 했어야 하는데 아이고 한 몇 시간 지나서야 아이고 안 물었네 어떡하지? 이런 후회가 막 올라오죠. 그런 걸 계속 지금 경험하고 계시죠?

 

하루 종일 생각 안 날 때도 있나요? 혹시 그 정도는 아니죠? 잘 때 되면 한 번쯤은 이렇게 잘 때 회개하라고 하니까 아우 주님 오늘 하루 종일 내면 된 사람 때려 죽여주시옵소서.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또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나가서 물 한잔 마시고, 또 밥 숟가락 닦고 이렇게 시작하죠. 맨손체조 한번 하고 이렇게 해서 습관적으로 아멘 안 해요. 그렇게 안 해요. 그리고 눈 비비면서 가서 쉬하고 가서 오늘 스케줄 점검하고 이렇게 시작하죠. 아닌가요? 잠잠이 할렐루야 할렐루야 잠자미하면서도 또 옛날 습관대로요. 이런 게 우리의 본성이에요.

 

옛날에 아직도 죽었다고 했는데 세포 속에 머릿속에 길들여져 있는 것들이 남아 있잖아요. 여기에 바울도. 그래서 머리를 쥐어뜯은 거 오호라 나는 공관자라도 어찌하면 좋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여러분도 이런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죠. 실망하지 마세요. 여러분. 그거를 몇 시간이 지나서 아이구 또 내가 성령님 안에 성령님께 안 물어보고 또 멋대로 습관적으로 했네. 이건 이미 뭔가 하면 그만큼 성령님으로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벌써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예요. 그러면 이제 2시간이 이제 2시간으로 줄어들고 1시간 됩니다. 울림이 습관을 그것도 훈련시키는 거잖아요.

 

이 사람도 수십 년 습관이 된 것처럼 이제 세 사람도 자꾸 그걸 하셔야 돼요. 계속 뿌리박고 계속 흡입해서 들어야 돼요. 그래서 이미 과거에 완료된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 기억과 몸이 습관적으로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 습관적으로 이게 나타나긴 하지만 거기에서 실망하면 절대로 안 돼요. 이때 필요한 것은 내 노력으로 그걸 누르는 게 아니에요. 그건 율법이죠. 이해가시죠? 우리 율법에서 많이 했잖아요. 그게 아니고 그냥 나는 세 사람이잖아. 이걸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게 사실은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핵심이에요. 그걸 확 가르치면 이미 자신을 부인했잖아요. 옛날에 자기를. 그리고 그걸 확 죽여버렸잖아요.

 

자기 부인과 십자가는 같이 붙어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내 노력으로 누르려고 자꾸 율법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 마시고 내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죽고 그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라는 그 영적인 사실을 계속해서 환기시키라고요. 그게 영적인 위치선점이라고 그랬죠? 이걸 계속 아셔야 돼요. 그래서 영적인 성장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과정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새로운 존재가 되는게 아니고 새롭게 된 존재 신분을 일상에서 계속 기억해내는 거예요. 습관이 되도록. 나중에는 기억 안 해도 본능적으로 나타나도록 습관이 되면 되죠.

 

그래서 계속 하다 보면은 그냥 바로 주님 이게 뭐죠? 이게 나옵니다. 이거 하면 좋을까요? 나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거 해라 안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인도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마음이 가득 차기 때문에 그렇죠? 그리고 결정하면서 음성이 안 들려도 결정하고 갈 때 그 지렛대가 있다고 그랬죠. 평가. 그래서 이게 맞다면 내게 평가왕을 이것도 훌륭한 방법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머리로 대접을 했잖아요. 내가 안 하려고. 그래서 핵심은 영적으로 새로운 존재로 내가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니고 세 사람이 습관이 되도록 하는 거예요.

 

이미 완성된 세 사람을 습관이 되도록 우리는 나면서부터 누구누구 집안의 두 번째 딸 두 번째 딸로 점점 키워져 가잖아요. 그것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새로운 피조물 완성됐지만 시간 안에서는 계속 드러날 수 있도록 그걸 인식을 해야죠. 그게 자리를 선점하라는 게 바로 그런 내용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나타나지 않도록 사람에게 자꾸 집중하면 오히려 제 습관에 계속 나의 부족함에 고착화되죠. 그걸 나를 망치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습관을 자꾸 완성된 나에게 고정하세요. 왜 안 되지? 나는 별수 없지. 그러면 답이 없어요. 자꾸 끌려가는 거예요.

 

계속 끌려가는 거예요. 그렇게 실패하더라도 곧바로 돌아오세요. 곧바로 나를 자책하지 말고 옛날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노력도 하지 말고요. 왜요? 이미 없는 거잖아요. 없는 거. 그렇죠? 그때 상어 내조를 이루는 비결이 나를 고치는 노력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잊지 않고 바라보는 거예요. 내가 그 안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를. 되새기는 거예요. 그걸 기억해내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는 그 안에 있지 하면서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나는 죽었다. 나는 죽었습니다. 내 아내는 오직 주님만 사십니다.

 

이걸 끊임없이 고백하면서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연존 있는 그 자체를 생각을 하면서 지금 올라오는 걸 죽여달라고 해야죠.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게 성령의 능력이죠. 그걸 자꾸 하시라고 그러면 이제 습관 자아가 점점 힘을 잃어요. 점점 뇌를 프로그램하는 것처럼 이게 바로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핵심이에요. 사실은 우리는 그 율법에 매여서 자꾸 참으려고 하고 여기에도 나를 무조건 죽여야지 그걸 나의 노력으로 자꾸 이루려고 하는데 여기에서 잘못하면 실패해요. 잘 안되거든요. 그건 나라는 자아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실패하는 거예요.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죠.

 

그래서 계속 이 수님, 성령님을 기억해야 돼요. 내가 지금 성령님 안에 있지. 그럴 때 이미 나는 나의 죽은 걸 선포하시고 세나로 살게 해달라고 계속 도움을 구해야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이제 팁을 하나 더 드리죠. 그래서 습관대로 지금 훅 이렇게 나왔어. 그때가 바로 찬스예요. 습관으로 훅 나와버려. 또 저질러버렸네, 그러면서 한숨 푹 쉬죠. 그렇죠? 그런가요? 그렇게 그게 습관이야. 그것도 습관이라고 영적인 습관이 그렇게 들어본 거예요. 땅이 꺼지도록 한숨 쉬죠.

 

그게 아니고 그때가 바로 찬세예요. 훅 나와버렸잖아. 나왔는데 뭐 어떡하라고 이게 아니고 나오기 전에 먼저 선점하는 게 우선이지만 훅 나오잖아. 어쨌든 그때가 바로 찬스야. 그때가 바로 찬스. 왜 찬스냐? 그때가 바로 성령님이 일할 때구나 라는 그때예요. 그때 훅 나와버리고 나서 아 곧바로 주님 훅 나왔네요. 이걸 인정하고 바로 돌이켜야 되는 거예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크게 흘러보내게 놔두지 마세요. 나온 걸 잡아야지 이제 그때 곧바로 돌이키세요. 자책하면서 뒤로 물러나지 마시고 이제부터 그렇게 하세요. 훅 나오면 아 찬스 아미 아싸 나왔다. 이놈 잡을 때가 됐다.

 

드디어 그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습관이 나온 걸 보여주면은 실망하면 되겠어요. 이미 없어진 건데 왜 실망을 해요? 아직 남아 있는 게 가불고 있다. 그래서 딱 나타났을 때 자책하며 뒤로 물러서지 말고 그때 바로 주님 나오기 전에 잡아야 되는데 제가 잊어버렸네요. 이렇게 바로 그게 틈이라는 거예요. 그 틈을 은혜로 전환시켜야 돼요. 여기서 이쪽으로 곧바로 나와버리면 나왔을 때 우리는 자동실망하죠. 자동실망하지 말고 나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게 두 돼지 있잖아. 여기 올라오면 팍 여기 올라오면 팍 그렇게 하시라고 올라왔네 주님 이렇게 하시라고.

 

아이씨 또 올라왔네 이렇게 하지 마시고 AMEN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안 그러면 그렇게 놔두면 그놈이 활개쳐요. 꼬래에 꼬래를 물고 계속 올라옵니다. 안에서 계속 반복해서 저게 나를 이따위로 제곱했어. 어디 두고 보자. 안에서 막 돌아요. 그러면 걷잡을 수 없이 고속도로 8차선으로 가버린 거예요. 그게 그런 거예요. 올라오더라도 그때 바로 차단하세요. 바로 돌이켜버리죠. 전에 완전 차단이 제일 좋지만 안 되면 그때 물어버리세요. 아멘 그게 가능한 게 성령도 왜냐하면, 그 진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확 돌이킬 때 진리의 영이 역사하는 거예요. 그게 성령의 능력이에요.

 

이해 가시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이런 사람하고 상대하지 마세요.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하고 남편이 그런데 어떡하면 좋지? 상대해야지. 그럼 상대해야지. 곧이 곧대려도 집에 가라. 집에 가라 하지 말고 아시겠죠? 그래서 나를 점점 이 세 사람을 내 안에서 계속 강하게 나타나도록 성령의 능력으로 점점 강건해지도록 계속하셔야 돼요. 계속하시라고 포기하지 말고요. 사도 바울도 머리 쥐어뜯으면서 했다니까요. 힘들었겠어. 그래도 머리 다 빠지잖아요. 사도바울이 빠졌어. 없더라고. 그래서 아이고 주님 또 잊었네요. 그러면서 내 이름으로는 안 돼.

 

그 나의 힘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세 사람의 능력은 성경을 통해서 나타나잖아요. 그러니까 내 힘으로 안 되고 불가능하니 지금 이 순간차를 다스려 달라고 그때 해야 돼요. 그러면은 그때 성경이 확 장악합니다. 보증해서 다스리려고 와 있는데, 다스려 달라고 했는데 니 혼자 해라. 니 혼자 하겠어요. 안합니다. 그게 바로 성령의 초빙이에요. 성령은 강제로 와서 나오기 전에 미리 확 밟아버리고 안 합니다. 절대로 우리 인격을 존중한다니까요. 혈기 내는 것도 존중한다니까요. 아시겠어요? 존중한다니까. 그래서 이렇게 내고 나서 이 벌어진 일을 이제 수습할 거 아니에요. 다시는 안 나게 하겠죠. 타산지성. 그런 걸 성령님은 다 이용해요.

 

그러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을 우리가 계속 인식을 하고 있어야 돼요. 자아의 습관보다 주님이 더 커집니다. 상온의 주는 완벽한 상태가 아니에요. 지금은 시간 안에서 계속 연속적으로 거기에 달하는 과정입니다. 완성됐지만 시간 안에서 그걸 성령이 보정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하면서 계속 성령이 나와버렸네요. 이렇게 해야지. 절망하지 마시고 훅 나오면 어이구 나와버렸네요. 나는 원래 안 되는 놈이에요.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안 나오도록 이거 때려 잡아주세요. 이렇게 하세요. 그걸 하셔야 돼요. 절망하지 마시고 희망회로를 희망회로를 돌리세요.

 

제발 내 안에 있는 분이 더 큽니다. 그놈보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이 속사람의 강건함은 내 연약함의 인정이 먼저예요. 강건하게 하라는 것은 연약하다 라는 반증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원래 아담 안에서 이렇게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라는 걸 제발 인정하세요. 나는 교회오리다 여사 갈 수 있어. 제발 거기에 속지 마세요. 안 됩니다. 내가 지금 몇 년 신흥생활을 했는데 까불고 있어. 마치 된 것처럼 속지 마세요. 절대 아닙니다. 속임수입니다. 나를 속이는 거예요. 그 나라는 이미 없었잖아요. 정확하게 아셔야 돼요.

 

그래서 바울은 그 연약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그리스도 없게 완전히 항복시켰어요.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내 존재의 한계까지 가야 되죠. 그래서 아무리 해도 안 되네요. 주님 이렇게 하고 싶어도 안 되네요. 내가 세 사람으로 사려고 해도 안 되네요. 그것 안 되는 거거든요. 이해가시죠? 그때 학폭을 하라는 거예요. 나는 여기까지가 많습니다. 주님 이게 내 진짜 모습입니다. 이걸 인정하여 그리고 성령에도 오심을 구하라고 그때 성령이 나를 그게 바로 세 사람의 습관을 새롭게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이 오늘 하루 고개를 틀 때마다 그렇게 하세요.

 

주님 내가 주님 안에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래서 오른발 나갈 때 내가 주니 마니 왼발 나갈 때 있습니다. 호흡을 후 할 때 내가 주니 마니 후 내실 때 있습니다. 하고 참지 말고 바로 와버리세요. 아시겠어요? 그렇게라도 세 사람이 길들여져서 나오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그래서 그분의 충만함은 어디나 있다. 라는 걸 계속 자각하세요. 사도바울이 코린던스 15장 31절에 나는 매일 죽노라 라고 고백을 할 정도라니까요. 거기서 용기를 얻으시라고.

 

그러니까 오죽하면 그 대사도바울께서 나를 매일 죽노라. 그러니까 얼마나 쪽팔렸겠어요. 사도바울도. 그렇죠? 그래서 제가 뭐 나오더라도 여러분 목사가 저거밖에 안 돼 하지 마세요. 나는 원래 그래 라고 정당화는 하지 마세요. 나는 그랬지만 이제는 아니야. 인정은 하지만 이젠 세 사람이야. 그래서 세 사람으로 살도록 내 안의 영역으로 역사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가야 되는 거예요. 그걸 가로채는 거예요. 계속 가로채세요. 제발.

 

사도바울의 이 고백은 도덕적인 수양이나 자기반성 억지로 자기를 죽이려는 노력이 아니에요. 아시겠죠? 에베소스에 계속 나오고 있는 상어내주를 완성하는 가정. 강력한 실천적인 열세예요. 이게 나는 매일 죽노라. 지금 이 순간에 올라올 때 그거 죽었지 이거죠. 그렇죠? 그렇게 하면 안 올라오잖아요. 일단 가로 챌 수 있잖아요. 이게 바로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비밀이에요. 사실은 아까 말한 율법 안에서 계속 참으려고 하는 것은 자기 부인과 십자가가 아니고 율법의 습관이에요. 이걸 착각하시면 안 돼요. 내 노력으로 제거하는 게 아니에요. 한계에 부딪혀서 나는 안 된다고 인정하고 성령에 도우심을 그때 항복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성령에 나타나심을 구하라고 할 때 항복부터 하라고 했죠. 그게 바로 그 말이에요. 내 한계에 가야 돼요. 참는 한계에 가야 되고 내 잘난 한계에도 가야 되고 지금까지 해왔던 습관에서 그 한계에 가서 완전히 요업처럼 사도마울처럼 만세를 불러야 돼요. 거기까지 가야 돼요. 거기까지 가면서 자책하지 마세요. 자책. 왜 이렇게 안 되지? 자책하지 마시고 그게 나야 그걸 인정하라고요. 그게 한계 인정해요. 인정하면 그때 성령의 도움을 구할 거 아닌가요? 더 이상 나를 의지하지 않을 거 아닌가요? 그래서 사도박으로 나는 매일 죽노라가 그 고백이에요. 바로 그 고백이라고 내 잘남을 의식하지 마세요. 내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그 계급을 의식하지 마세요. 그게 실패 지름길이에요.

 

죽어도 안 됩니다. 그건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데 이건 진짜 골치 아파요. 약이 없어요. 약이. 그건 아닙니다. 이 사람의 습관이거든요. 이해하시나요? 그래서 매일 죽노라 라는 그 고백은 그래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일어나자마자 그걸 고백하는 거예요. 날 자신의 의지 계획, 나의 자랑, 나의 나대미 지금까지 그리고 실패에 대한 것까지도 그냥 매일 아침 그 앞에 고백하세요. 반납하시라고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그 자를 반납하시라고 그래서 사람이 나올 때마다 또 실패했어. 라는 것은 그 나이에게 집중하는 거죠. 그게 최악인 거예요.

 

그래서 그 나이에게 제발 집중하지 마시고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 이제 내 아내의 그리스도께서 사신바 됐잖아요. 그 그리스도께로 자꾸 나를 집중하라고 그게 세나잖아요. 세나는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 같은 존재잖아요. 거기에 자꾸 집중하라고요. 옛날은 없잖아요. 나는 실패했어. 하는 순간 그 나이에 집중하는 거죠. 그게 속임수예요. 여러분. 실패한 자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거기에 매이지 말라고요. 또 내가 이렇게 우울하네. 거기에 메이지 말라고. 그건 끝난 거라고요. 그래서 계속 그거를 가로채면서 고백하세요. 맞아. 내 안에 주님이 나는 세 사람이잖아. 위치, 선정. 그리고 선포하시라고. 우편해안전.

 

여기서 시장 6장 그걸 하시라고요. 그래서 이미 우리는 단번에 다 죽었죠. 이미 단번에 충만하다고 나왔죠. 그런데 이걸 매일의 충만함과 매일의 죽음으로 끌고 와서 조화가 이루어져야 되겠죠. 이게 완성된 것을 시간 안에서 우리 안에 이루어야 할 비밀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너무 간단한 거예요. 사실은. 그런데 우리가 습관적으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게 계속 나이인 줄 알고 계속 계속 나이인 줄 알고 나는 왜 이렇게 안 될까? 여기에 넘어가는 거예요. 얼마나 이게 안타까운지 아세요? 그래서 바울이 머리를 치고 뜯을 정도로 그게 나는 계속 돌아가잖아요. 아니라고 그게 나가요. 그래서 그 나로 하려는 거 그것조차 이제 포기해야 돼요. 그래서 자신의 한계에 딱 가야 돼요. 나는 안 된다.

 

그 나로는 절대 안 된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라는 그 인정 그다음에 바로 내 아내 크리스도가 사신 그 나가 진짜 나다. 이쪽으로 계속 전환해야 돼요. 계속 너무 간단하죠. 계속 전환해야 돼요. 그런데 계속 실패합니다. 그럴 때마다 실패할 때마다 기억하시라고요. 실패할 때마다 그게 찬스라고 했죠. 먼저 선점하는 게 좋겠지만, 실패할 때마다 계속 계속 또 내가 훅 해버렸네? 그러면 그때 바로 고백하시라고 주님 내 옛날 차 한 개가 여기입니다. 도저히 못합니다. 그게 답이에요. 그러면 성경이 그때 확 개입을 하게 하시라고. 그렇죠. 이해가시죠? 이 습관이 계속 신경세포의 세계에 대해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것 같죠.

 

그렇지만 죽습니다. 결국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이 매일 죽는다고 한 이야기는 매일 밀려오는 사람의 습관, 유혹 자아의 고집을 거대한 그리스도 안으로 자꾸 돌리킨 거예요. 죽으려고 노력한 게 아니고 내 힘으로는 안 된다고. 그렇죠? 죽으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참으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계속 그쪽으로 돌이키세요. 그게 진짜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모습이에요. 이해 가시죠? 하면 그렇게 해서 점점 깊이 들어갔어요. 그게 자기를 죽인다는 의미예요. 결국은 그렇게 되면 옛사람이 깨뜨려져 나갑니다. 습관이 깨뜨려져 나가게 돼 있어요. 습관 들인 대로 영원 반복이라고 그랬죠. 제가 계속 반복하다 보면 결국은 그렇게 어느 순간에 염료 안 나오잖아요. 다 있는 거예요. 그게.

 

계속 그게 나 안에서 그 말씀이 창조하거든요. 왜? 이건 진리이기 때문에 되는 거예요. 진리가 아닌데 세상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자꾸 하면 그건 소용없어요. 세상 사람들이 명상하면서 그걸 막 하죠. 바꾸려고 죽어도 안 됩니다. 그건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건 옛사람 길들이기에 불과해요. 그런데 그건 이미 도를 넘어버렸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존재의 본능은 안 돼요. 그건 이건 진리 안에 있기 때문에 진리로 나를 프로그래밍하는 거예요. 실제로. 그래서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 힘으로 안 되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의 영이 역사를 해서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보증이잖아요. 에벤스 1장 13절에 보증이 그거라고.

 

그래서 나를 의지 마 하지 마시고 성령을 의지해서 계속 그 죽음 자체가 실제화되도록 내 안에서 지금 이미 완성된 죽음을 내 안에 완전히 죽도록 실제화되도록 계속 성령으로 의지하는 거죠. 나는 그 안에 있다. 성령님 지금 역사하셔서 그것으로부터 나를 완전히 해방시켜 달라고 그래서 계속 관성처럼 돌아가는 그 옛날 것들에 매이지 말고 신경 쓰지 마세요. 나옵니다. 그러면 나올 때가 찬스라고 그랬죠. 그때 바로 그리스 안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세요. 성령을 선택하세요. 옛사람을 선택하지 말고 성령을 선택하세요. 내가 살아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려고 애쓰는 게 아니고 나는 이미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쪽으로 돌아가세요. 그래서 옛것이 나타나면 죽은 것을 계속 확정하세요. 나는 매일 죽노라. 그래서 그 사랑의 넓이가 얼마나 깊이가 얼마나 엄청난 건지 그 사랑으로 나는 새롭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 계속 자각하시라고. 옛것이 올라갈 때 그것과 싸우려고 하지 마시고 그건 패배합니다. 분노나 불만이나 교만이나 아니면 습관이나 어떤 거든. 그게 고개를 들고 할 때마다 싸우려고 하지 마시고 바울의 고백을 내 언어로 바꾸세요. 주님이 이 순간 나는 죽었습니다. 그거 다 죽었다고 이미 죽은 것은 그리고 어제 내 안에 그리스도만 사십니다.

 

그리스도로 살게 하소서 파스리소스하고 나를 내어드리는 거죠. 그게 자기 부인이죠. 그게 항복이죠. 그게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하는 거잖아요. 머리를 머리에 대접하는 거잖아요. 그때 진리의 영이 역사하는 거예요. 왜? 그게 이미 완성된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의 영은 그걸 이루기 위해서 지금 우리 시간 안에서 현재로 이루기 위해서 와 계신 영이기 때문에 그때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 원리 너무 간단하죠? 심플하죠. 지금처럼 지금까지 율법의 습관에서 자꾸 하려고 단절하세요. 기도도 그렇게 하려고 단절하세요. 율법의 습관대로 와서 하려고 하는 것도 단절하세요.

 

그리스 안에서 그걸 자꾸 내 안에서 나를 장악할 수 있도록 하면 그래서 이런 것들이 올라올 때 이미 죽은 것 과거에 완료된 것을 현재 새로운 내 존재를 다시 붙잡는 거죠. 이해 가시죠? 이걸 쪽을 하셔야 돼요. 이 짧은 고백이 반복될 때 점점 내 중심은 나에게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사도바울이 나는 매일 죽노라고 고백한 영적인 원리 자기 힘으로 죽은 게 아니에요. 그러죠. 사도가 우리 자기 힘으로 죽을 수 있었으면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고 성령이 오실 필요가 없었어요. 그러죠.

 

그걸 깨달으시고 여러분 오늘 삶 가운데 가장 죽이고 싶은 것 죽게 맡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저는 그게 습관이더라고요. 사람의 습관적으로 나오는 그게 가장 가장 해롭게 하는 그래서 우리가 가장 절망을 느끼는 부분도 그 부분이에요. 습관적으로 그냥 입이 저만큼 나와요. 그래서 매일 절망하죠. 그건 절망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때 바로 나가. 누구인가로 돌아가라는 거. 그게 매일 죽노라의 고백의 비밀이에요. 그게 사도발은 자신을 죽일 수가 없었어요. 십자가에 죽은 건 성령이 하셨죠. 그런가요? 스님도 성령이 십자가에서 못 박아버렸죠.

 

그래서 더 깊은 지점으로 들어가는 게 바로 그 찰나의 순간, 본성이 습관이 튀어나온 그 찰나의 순간이 바로 거기에 확 브레이크를 가려는 거죠. 그 회로를 꺼버려야 돼요. 이제는. 앵크리스토라고 외치세요. 아멘. 그 1초의 순간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우리가 아셔야 돼요. 나를 고치려고 하는 한 그 나가 주인이죠. 그래서 오늘 또 나는 또 실패했네 하면 그 나가 주인이죠. 아직도 그게 바로 실패. 그것 때문에 계속 그게 넘어가는 거예요. 이해하시죠? 실패한 거에 대해서 그건 나가 아니다. 라는 고백이 중요한 거예요.

 

또 내가 죽어 또 내가 실패했네 하면은 죽어도 이 관성의 밖에서 못 벗어납니다. 또 죽어. 또 나왔네. 또 내가 나왔네 하는 순간 계속 내가 죽잖아요. 그런가요? 그러면 절대로 거기서 못 벗어나요. 여러분.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한 번 나와서 실패하면 이건 내가 아니잖아. 주님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주님 이제 진짜 나로 예수님으로 살게 해달라고 고치려고 하지 말고요. 그렇게 하세요. 주님 이 고집불통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은 도저히 내가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내가 실패했다 라고 생각도 이제 하지 마세요.

 

그건 당연히 실패하는 거예요. 인정하세요. 그게 옛날 나이입니다. 주님 맞아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나이입니다. 인정하세요. 그래서 주님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렇게 돌아 들어가야죠. 이해 가시죠? 그걸 보정하러 오셨잖아요. 성룡님 이제 보정해서 나를 제발 다스려 달라고 그때 실패를 자꾸 떼내지 말고 이미 완성된 성공한 나, 승리한 나로 데리고 그래서 주님 나는 이 무난함 속에서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죽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제발. 제발. 그렇게 하세요. 실패를 되뇌이지 마시고 이해 가시죠? 그래서 이제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내 혀와 입술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내 습관을 완전히 끊어주시고 새로운 삶으로 살게 해달라고 그렇게 고하셔야 돼요. 그래서 계속 기억을 전이시켜야 돼요.

 

옛것에서 새것으로 계속 그게 위치 선정 계속하세요. 체면 상처 권리 이런 것들은 옛사람이잖아. 거기에 자꾸 메이죠.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군데? 네. 까짓 게 나를 무시해. 이렇게 차가. 괴롭히죠. 내가 네까짓 것한테 무시당할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자꾸 그러죠. 특히 남편한테 더 그렇죠. 반대도 더 그럴 거예요. 아마 그럴 때마다 그걸 인정하라고요. 하면 그 아들 그 이름을 믿으라고요.

 

바로 옛사람의 방식대로 사는 거에 대한 자책을 중단하시고 주님 이제 내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자아가 죽어야 할 시간이네요. 이렇게 가세요. 제발. 자존심 상해 죽겠네 하지 말고 열받아 죽겠네 하지 마시고 아메 그럼 죽은 놈한테 자꾸 매달리는 거잖아. 파묻혀 있는 걸 꺼내서 또 살리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계속 말려들어갑니다. 드디어 죽을 시간이 왔구나 이렇게 너 이제 오늘로 끝이다. 더 이상 안 나올 거다. 이렇게. 그래서 습관화 이게 세 사람의 습관이에요.

 

상원해줘도 습관화해야 돼요. 아메 나오더라도 인정하세요. 난 원래 자존심 센 놈이잖아. 인정하세요. 그렇지만 이제 자존심. 없어? 나 그거 나잖아. 옛날에 나 예수님이 뭐 그런 거 있나요? 이쪽으로 들어가세요. 계속 이쪽으로 계속 들어가세요. 계속 들어가세요. 사도 보리 고백이 그거예요. 나는 매일 죽느라가 그거야. 어? 나왔네. 인정하고 계속 그냥 가면 돼요.

 

 

1. 습관과 정신

 

1-1. 습관의 영향과 자유함

- 하나님은 우리의 정신을 죽이라고 하지 않으심

- 병신한 사람에게 "너 이제 병신 된다"라는 말을 들었음

- (중요) 근심과 두려움으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기를 바람

- 잠시 쉬어가며 살 때, 정신적으로 더 자유로워짐을 깨닫게 됨

- 여러 사람의 근심과 두려움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바울의 이야기

 

1-2. 습관적 자아와 관계

- 성경에서 말하는 습관과 자아를 통해 뇌의 프로그래밍을 설명함

- 자극에 자율적으로 반응하는 게 뇌자율주행임

- 자율주행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자아로 인해 어려움을 겪음

- 습관적 자아를 의식적으로 관리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실패로 이어질 수 있음

- 뇌의 프로그래밍을 변경하려는 시도보다, 자아를 깨닫고 다른 자아로 채우는 것이 중요함

 

1-3. 습관적 행위의 결과

- 습관적 행위로 인해 우울, 염려, 나쁜 생각 등이 습관화될 수 있음

- 히딩크 감독의 예를 통해, 작은 습관의 변화가 누적되면 큰 영향을 미침을 설명함

- 이미 십자가에 죽은 습관들도 몸에 남아 습관적으로 행할 수 있음

- 단순히 이리저리 대며 우울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습관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중요함

 

2. 습관적 자아 극복

 

2-1. 습관적 자아의 위험성

- 습관적 자아가 심화되면 중독 증상이 나타남

- 우리가 습관에 지나치면 중독이 되고, 삶에 영향을 미침

-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 있음

- 일상에서 지나치게 습관적으로 행하면, 하나님이 주신 삶에서 멀어짐

- 습관적 자아를 해결하고, 힘과 능력으로 습관적 자아를 통제해야 함

 

2-2. 하나님의 충만함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먼저되어야 함

- 성령을 통해 계속적으로 충만해지도록 해야 함

-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강건하게 해야 함

- (중요) 성령은 우리에게 속사람을 자랑하게 하심

- 성령 안에서 행할 때, 속사람이 강건해지고, 그리스도 영상으로 자랑하게 됨

 

2-3. 믿음의 중요성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도록 해야 함

- 믿음의 주인은 예수지만, 믿음의 연사는 성령임

- 믿음은 우리가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임

- 믿음의 표현은 크게소리로 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내야 함

 

3. 믿음의 확장

 

3-1. 믿음의 반대와 위험

- 믿음 없이 열심히 하는 것 같으면, 내면에 있는 믿음이 희미해짐을 일깨움

- 믿음의 반대는 아무리 열심히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믿음이 발휘되어 가는 것임을 강조함

- 무리해서 노력이나 교회 출석만으로 믿음을 갖추려는 것은 잘못된 접근임을 경고함

- 믿음은 우리 스스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임을 기억해야 함

-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내 안에 계시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함

 

3-2. 믿음의 성숙과 완성

-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완성됨을 설명함

- 믿음이 잃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함이 중요함을 역설함

- (중요) 믿음의 완성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다는 것임을 강조함

- 믿음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완성된 모습을 보여줘야 함을 역설함

-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고, 사랑의 뿌리를 내리게 함으로써 사랑을 알게 해야 함을 말함

 

3-3. 사랑의 실천과 중요성

-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는 성품이며,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아야 함을 말함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뿌리내리고, 내 것이 되면, 그 사랑은 점점 깨닫고, 결국은 하나님의 충만이 됨을 설명함

-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해지는 과정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지속적으로 완성해야 함을 강조함

- 지식의 넘침이 아닌, 사랑의 뿌리가 굳어지는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사랑을 깨닫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함을 말함

- 사랑의 뿌리가 굳어질수록, 하나님의 충만이 되고, 우리는 그 충만을 통해 완전히 깨끗이 점유하게 됨을 설명함

 

4. 바울의 삶

 

4-1. 믿음의 여정

- 바울은 믿음의 여정에서 흔히 겪는 어려움이 있음

- (중요) 믿음은 바다에 빠진 구걸하는 자가 자리를 비우고 바다로 나설 때와 같음

-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충만이 됨

-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높일 수 있음

-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높일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을 수 있음

 

4-2. 습관적 신앙생활

-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죽여야 한다'는 착각에 빠짐

- 우리는 종종 십자가를 치고, 복음보다는 예배 형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음

- 성경은 우리가 이미 완성된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완성되었음을 가르침

- 우리는 율법을 지나치게 숙지하여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려 함

- 기도할 때, 율법을 떠나 눈을 뜨는 것에 어려움을 겪음

 

4-3. 바울의 고뇌

- 바울은 율법에 숙지되어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 실패함

- 그는 율법의 길들여짐으로 인해 힘들었고, 결국 죽을 때까지 실패함

- 사도바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힘들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사람임

- 우리는 습관적 자아가 피어오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

-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완성된 충만함으로 완성되었음

 

5. 영적 습관

 

5-1. 습관, 자기 부인, 십자가

- 습관은 우리가 이미 정해진 규칙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을 말함

- 우리는 습관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음

- 습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용서받을 수 있음

- (중요) 자기 부인과 십자가는 우리가 신앙을 갖추고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는 것을 의미함

- 우리의 노력이 아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함

 

5-2. 영적 성장, 새로운 존재

- 영적 성장은 우리가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임

- 이 변화는 우리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기억하고 노력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짐

- 우리는 계속 진화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

- 습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역할을 감당하게 됨

- (중요) 이 과정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성령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음

 

5-3. 습관의 결과, 실망과 다시 시작

- 습관이 이루어지면, 우리에게는 실망이 찾아올 수 있음

- 하지만 이 실망은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됨

- 습관을 통해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고,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함

-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하는 것이 필요함

-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해야 함

 

6. 세 사람으로 사는 삶

 

6-1. 성령의 인도하심

- 성령은 강제로 내는 것이 아니라 미리 확 밟아 놓고 안 함

- 우리는 혈기, 머리, 말, 행동 등 인격을 존중함

- 바울은 자아의 습관보다 주님이 더 커짐을 알려줌

- 우리는 시간 안에서 연속적으로 완성됐지만, 성령의 보정이 있음

- (중요) 성령을 의지하면서도 계속 성령이 나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함

 

6-2. 연약함의 인정

- 바울은 속사람의 강건함은 내 연약함의 인정에서 비롯됨을 말함

- 우리는 원래 아담 안에서 길들여져 왔기에, 주님과 동일한 연약함을 인정해야 함

- 성령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 세 사람으로 사도록 인도하심

-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성령에 나타나심을 항복하는 것이 중요함

-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비밀을 통해 주님과 동일한 연약함을 인정해야 함

 

6-3. 세 사람으로 사는 삶

- 바울은 매일 죽노라 고백을 할 정도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함

- 우리는 매일 죽고, 매일 주님과 동일한 연약함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함

- 자기 자책 대신, 스스로를 인정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함

- 실패에 집중하기보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으로 나아가야 함

-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세 사람으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함

 

7. 습관에서 벗어나기

 

7-1. 자기 부인과 십자가

- 바울은 매일 죽는다고 고백함 - 자기 힘으로는 죽고, 참거나 노력하지 않음

- 죽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계속해서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드리라고 함

- 이것이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모습이며, 결국 자기 깨뜨려 나가게 함

- 습관이 깨뜨려 나가면, 옛사람이 되어 버리게 됨

- 습관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받아들이고, 자기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을 인정해야 함

 

7-2. 성령의 역사

- 자기 부인과 십자가는 진리 안에 있는 존재의 본능으로 가능함

- 진리 안에서 자신을 프로그래밍하고, 자기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을 인정해야 함

-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역사하며, 스스로를 완전히 해방시키려고 함

-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옛사람을 선택하지 말아야 함

- (중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함

 

7-3.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

- 죽고 싶은 것을 맡기고, 죽이는 것이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비밀임

- 사도바울은 자기 힘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죽었음을 고백함

-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역사하며, 스스로를 장악할 수 있도록 함

- 현재로 진리의 영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미 완성된 것을 현재의 존재로 붙잡아야 함

- 자기 힘으로 죽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실패한 것을 자책하지 말고, 주님께 돌아가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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