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13)_'가라사대'_성령께서 이미 완료된 그 '가라사대'를 현재 사건이 되게 하신다_질병으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26.06.19조회수62 목록 댓글 0https://youtube.com/live/TMpNzVpMBZo
영원과 지금(하나님 나라를 지금 누리는 법)(13)_'가라사대'_성령께서 이미 완료된 그 '가라사대'를 현재 사건이 되게 하신다_질병으로 부터 자유(눅4-4,8,10, 사53-5).
마지막 시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시간에는 질병을 정복하는 데까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난은 다 정복하셨죠? 아멘 실제가 안 되나요? 아직 실습을 하면 바로 됩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걸 잘 기억하세요. 여러분 에베소스 1장이 그 전체적인 그림입니다. 완료된 완료됐죠. 이미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완료된 과거예요. 이게 지금 현재 현재 이루어지는 게 1장 23절이었죠. 그렇죠? 그런가요?
이 통로가 성령이라고 그랬습니다. 성령의 보증. 그렇죠? 인침 이 부분을 항상 그림에 넣고 계세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완료된 과거를 현재 사건으로 실제로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사는 것이 아니라 완료된 과거를 현재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하게 그게 그리스도인의 시간관이에요. 영원 안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영원의 쓰임이 완료된 것들이죠. 지금까지 계속 십자가에 못 박았다. 하고 못 박아라. 그 안에 있는다. 거한다. 하는데 또 거하라. 다 죽었다 하는데 또 죽어라.
예수님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박고 나를 따르라. 이게 전부 다 시간 안에서는 완료돼 있는 겁니다. 그렇죠? 그런가요? 여태까지 우리가 신약, 성경, 여러 부분을 통해서 다 본 거예요. 같은 원리, 전부 같은 원리입니다. 거기에는 성령의 보증이라는 게 들어가 있고 성령의 보증이 그 완료된 것을 현재 시간 안에 그대로 나타나게 한다라는 거죠. 그래서 성령의 사역입니다. 현재 시간 안에서는 물론 그 성령께서는 말씀을 가지고 역사를 하시죠. 그런가요? 거기까지는 다 아시죠?
성경이 어쨌든 몸의 행실을 이미 다 죽었다고 그랬는데 죽이라고 하는 것은 매일의 몸의 행실을 지금 시간 안에서 죽이는 것은 성령이고 과거에 이미 한번 완료되었던 것을 지금 시간 안에서 재현하는 거라고 그랬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 라고 하고 그 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거기에 해당되죠. 그렇죠? 영적인 과거 영에서는 과거가 아니고 영에서는 현재죠. 영에서는 그 영원한 현재죠. 그래서 영적인 현재를 시간 안에 현재로 끌어당겨서 이게 우리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본분이에요. 본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사는 방법이에요. 아시겠죠?
우리는 어떠한 것에서도 매이지 않습니다. 오직 영혼의 하나님 안에서 완료된 것 그 안에만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건 반드시 현재로 나타날 수밖에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과거를 현재로 쓰고 과거를 현재로 쓰고 이미 아직 이미 아직 그게 계속 드러나는 겁니다. 오늘은 그래서 과거를 현재로 사는 우리의 모습에서 지난 부흥의 아내에서는 할 때 가난한 완전히 벗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부한자로 가난하게 되시면 우리 가난한 우리로 부화하게 하려 합니다. 그건 예수님의 부화한 것과 우리의 부화한 것이 동일한 거라고 그랬죠. 우리도 그렇게 사는 거라고요.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이 이미 완성해 놓으신 모든 것을 그 발 아래 무릎을 꿇게 하고 다스리는 만물을 충만케 하는 그 자리에 우리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건 지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가요? 그래서 이건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우리 일상 속에서 실제로 살아내라 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죽어라 거하라. 그다음에 이미 완료됐다. 이런 전부 완료된 것을 지금 현재 속에서 살아내라는 명령이에요. 그러니까 완료된 것을 본분 그대로 살아내라는 거예요. 살아낼 수 없는 걸 살아내라고 한 게 아니죠. 성경이 하라고 하는 것은 전부 할 수 있는 것만 말합니다. 왜요?
이미 완료됐기 때문에 하라는 거지 할 수도 없는 걸 우리 육체에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그 부분에서 우리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전환되어야 됩니다. 그렇죠? 지금까지 나눴던 이야기입니다. 죽었다라는 것을 전제로 죽어라 라고 하는 것은 죽을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세 사람인 우리 안에 와 있다라는 증거죠. 그런가요? 이건 대단한 겁니다. 지금 그 능력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언제든지 그 능력을 행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거죠. 그리고 산다는 거예요. 예수님처럼 산다는 거죠. 그런가요? 여기까지 이제 다 접수 완료됐죠. 마치 노예해방과 같다고 그랬습니다. 그렇죠? 노예는 해방받고 나서도 계속 빠뜨롱 빠뜨롱 한다고 그랬죠. 주인님. 주인님 노예건성이 있다고.
남아있다고 혈관 속에 뇌 속에 마치 습관으로 남아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미 자유인이죠. 자유인으로 할 일은 뭡니까? 매일 아침마다 규정 나는 너의 노예가 더 이상 아니다. 그 노예의 눈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현재 살아있는 아직도 남아있는 거기에 굴복하지 말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 저도 아침마다 그걸 계속 고백한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이상 옛것에 내 존재를 맡기지 않는다. 옛것에 내 존재가 휘둘리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허약한 자도 아니고 질병으로부터 헤매는 자도 아니고 계속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이미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요. 옛날부터 한 거지만 그런 것들을 여러분 이제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현재를 사는 우리의 특권이에요. 1023년의 특권이라고 얘기해. 지금 지금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우리에게 전가했고 예수님이 머리로 내 몸을 통해서 지금 이루고자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를 통해서 이루는데 내 입을 통해서 내 행동을 통해서 이루겠다라는거죠. 그러니까 완성된 것을 레이블 통해서 선포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지겠다는 거죠. 아멘 무조건 내 이기적인 욕망을 선포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완성된 진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조명을 받은 것으로 선포하는 겁니다. 그렇죠? 그 부분을 이제 반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안에 아직 육신의 찌꺼기 애들이 있죠. 아직은 이것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만 그 밑동은 이미 잘렸어요. 완전히 잘렸어요. 그래서 남아있는 부분은 말려 죽이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놔주면 이제 말려 죽게 돼 있어요. 그런가요? 말려 죽이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항상 내가 인식하고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누가 본 구장 23절에 날마다 십자가를 치고 나를 따르라 라는 것은 내가 살아서 내 의지로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겠다. 라는 게 아니에요. 이제 아시죠?
그걸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는 게 아니고 이미 대단한 일을 해내신 예수님의 완성품을 내가 그냥 지금 시간 안에 2천 년 전에 이미 완성된 것을 지금 아메 시간 안에서 그대로 당겨 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현재로 사는 사람 이게 은행 계좌라고 그랬죠. 그걸 우리가 가서 그냥 사용하는 거라고까지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매일 십자가를 치고 나를 따라오라 자기를 부인하라 라는 것은 완성된 것을 상기하면서 그렇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는 그 옛것에 매여서 살면 안 된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거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그런 의미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뭔가 엄청난 것을 해내겠다라는 그런 내 힘으로 능력으로 뭔가 해내겠다는 게 아니고 오히려 매일매일 나는 내 삶의 현장에서 맞다. 칼라디아스 2장 20절 말씀처럼 이미 죽었다. 라는 것을 떠올리고 더 이상 그 죽은 나로는 살지 않는다. 라고 기억해내는 겁니다. 그래서 그 기억이 능력이 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기억이 능력이 되는 거라고 열심히 능력이 되는 게 아니고 열심으로 종교활동, 신앙생활 하는 게 능력이 되는 게 아니고 아시겠죠? 그건 율법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것도 율법도 이 고착화되어서 습관이 돼가지고 자꾸 습관적으로 율법을 이 시간 안에서 살아내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건 실패의 원인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부분을 정확하게 깨달으셔야죠. 다시는 휘말리지 마세요. 제발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바울이 말하는 죽이라 라는 명령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에요. 내 뜻대로 내 힘으로 자를 죽어 없애라는 고행의 그런 요구도 아니에요. 무릎으로 계단을 올라가고 그런 것도 아니라고 그랬죠. 그건 그게. 그러니까 과거 율법안에서 헤맸던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사도 발급을 했고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 누구인지 세 사람 누구인지 잊지 말고 그 신분에 걸맞게 매일의 일상을 살아내라는 승리자의 삶을 촉구하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승리자의 삶을 촉구하는 거라고요. 그런가요?
그러면 이제 결론적으로 우리는 과거를 현재로 사는 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 그게 천국의 삶의 방식이에요. 자 그러면 증거를 증명을 해보죠. 예수님 에베소스 1장에 보면 이미 그 피가 있었죠. 1장에 이미 피로 제4항을 통해서 우리가 아들이 됐고 그 모든 유업을 우리에게 이미 다 물려줬고 상속했다고 그랬죠. 그런가요? 그러면 스님이 이 땅에 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야 됩니까? 이미 그 피로 십자가에 피를 올려주고 그리고 부활한 것이 지금 시간 안에 오셨으니까 그대로 일어나야 되겠죠. 그런가요?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그대로 일어난 거예요. 왜요? 예수님은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미 완성해 놓은 것은 말씀으로 표현이 되어 있고 그 말씀의 본질이 자신이 이 땅에 왔기 때문에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건 당연하고요. 맞나요? 그건 2사에서 53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사에 쓰고 싶은 점 여기서 중요한 비밀을 캐내야 돼요. 원리를 알고 우리 삶에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충 사는 사람들이 절대로 아닙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요.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한숨 쉬는 사람도 아닙니다. 자 3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그가 여러분 예수님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실어 버림바 되었으며 강고를 많이 겪었고 예수님이 오기 한참 전이죠. 그런가요? 이사에서가 기록된 건 한참 전입니다. 그렇죠? 버림받으었고 광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골을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고 보지. 보지 않음을 받는 자가 차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질병을 말합니다. 질고 질병.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든. 이건 슬픔, 고통, 비통, 예통. 우리 분리된 아담 안에 남아 있는 수고와 슬픔, 고통, 괴로움, 질병, 연약함 그러죠? 그런가요? 부정성.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죠.
당하여 그는 우리를 생각하길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합니다. 이스라 53장 오늘 다 외우고 계시죠?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요. 찔허, 상죄, 징평, 체나 이렇게 찔허, 상제, 징평, 체나 여러분 머리가 좋으니까 통째로, 외우시고 저는 두 자리라서 찔허, 상제, 징평, 체나 이렇게 외웁니다. 그거 뭐하러 외워요 뭐하러 써먹으려고 잘난 척하려고 누구 한 수 가르치려고 잘 들으세요. 잘난 척하는 사람 되게 많아요.
이런 걸 가지고 이사에서 53종 우주를 외울 수 있어. 그러면서도 그러면서 맨날 질병에 허덕여 맨날 성질만 성질부리하고 이거는 꽝이죠. 보세요. 찔리면 십자가에 죽기 전에 먼저 찔렸죠.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예전에 이미 낳은 사람들이에요. 지금 제가 말씀드린 건 그게 아니에요.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께 그대로 대입해서 풀기 위해서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이미 완성된 과거에서 영혼에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영혼에서 시간 안으로 타임머신 타고 오셨잖아요. 우리도 맞나요? 이제 알죠? 엄청 중요한 개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가는 것만 지금 율법 안에서 입력되어 있어 가지고 이런 것들을 들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무지하게 쉬운 건데 모릅니다. 생소해서요. 상암은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 찔리면 허물 허물은 반역, 범죄 위반 이런 걸 허물이라고 그러고 그다음에 상암은 죄악이 불법 부정 타락이 죄악이고요. 그다음에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는 평화는 뭘까요? 평화로도 아니고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된 걸 말하지. 징계를 받으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도움을 구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고 이 모든 것을 다 해결받을 수 있는 걸 말합니다. 그다음에 채찍에 맞음으로 나움을 입었다.
오늘 할 게 채찍이 맞음으로 나음을 잇는 거예요. 여기에 보면 그래서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였다는 것 안에 이 네 가지가 들어가 있고 질고와 슬픔의 모든 것은 우리가 분리되었을 때 우리가 겪는 모든 저주의 본질들이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이것을 확정하는 신약 성강에 나오면은 갈라이드 3장 13절이라고 그랬죠. 그걸 외우고 계셔야 돼요. 그래야 적용하죠. 저주의 증상이 나타날 때 곧바로 그 말씀으로 제압해야 돼요. 이해 가시죠? 그걸 위해서 지금 하고 있는 중이에요. 자, 보세요. 여기 이사의 53장에도 이미 예언되어 있죠. 예언이. 보세요. 예연한 예수님이 나타나기 전에 벌써 한참 전이죠. 아브라함에게도 말할 때도 400년 후에 일어날 일을 말했죠.
그러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하면서 동시에 400년 후에도 이미 있다. 라는 거죠. 그렇죠. 이사야에서 예언할 때도 이사야에서는 지금 그 당시에 지금 말하지만 예수님이 와서 당할 일을 이미 보고 말하는 것하고 똑같죠. 그럼 이사야가 그때도 있고 예수님이 온 그 당시에도 예수님 이사회가 있었나요? 그건 아니고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아는 거죠. 그런가요? 그럼 성령은 시간이 없죠. 영원과 현재. 그 다음에 마지막에 끝나는 시간 안에까지 알파야 오메가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다 있는 거죠. 그래서 성령은 현재밖에 없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그럼 성령 혼자 있네요. 성부성자성령 다 그 시간을 시간에 메이지 않는 영원한 현재 속에 있죠.
그래서 영원한 현재 속에 이미 완성된 거예요. 완성된 것을 지금 시간 안에서 예수님이 왔을 때 이미 이사에서 53장은 이미 선포되어 있었고, 그렇죠? 그건 이미 에베소스 1장에 보면 만세전에 이미 완료돼 있었죠. 그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면 완료된 게 나타나야 되죠. 당연하지 않나요? 그래서 질거를 당하고 채찍에 맞고 이렇게 해서 그대로 보여주고 집착하에 못 박혀 죽고 이사에서 보면 뒤에 다 나오죠. 이런 내용이 싹 다 나오잖아요. 그거는 이미 과거에 완료된 사건이 이미 완료되어 영원 안에서 그래서 그게 시간 안에서 펼쳐질 때는 그대로 일어나야 되는 거죠. 당연하죠. 우리 안에도 그대로 일어나야 되겠죠.
지금 제가 질병으로부터 자유함을 이르는 목표를 향해서 가고 있는 중이에요.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합니다. 여기에 그냥 빠져버리면 압니다. 안 되죠. 그렇죠? 그래서 십자가도 영원 안에 이미 일어난 사건이죠. 그러면 시간 안에서 그건 성령의 집행을 통해서 일어나겠죠. 그게 바로 그게 바로 히월에서 914, 914 가스포츠 까먹으면 안 됩니다. 가서 다시 확정해보죠. 너무 많이 한 거지만 또 해보겠습니다. 계속 반복합니다. 아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성령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은 시간 안에 계신 분이기도 하지만 영원 안에서 시작과 끝이 없어요. 성룡은 만세 이전이나 지금이나 만세 이후나 동일하게 맞나요? 그러면 영원하신 성룡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리예요. 그렇죠?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해서 피를 흘리게 한 장본인은 성령님이죠. 보세요. 예수님이 시간 안에 왔으니까 그대로 이루어져야죠. 그런데 자기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에 자신을 못질할 수는 없죠. 그렇죠? 이미 시간 안에서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거를 시간 안에서 펼쳐지게 하는 능력은 성령의 보증이죠. 그래서 성령께서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나게 한 거예요. 그런가요?
여러 번 말씀을 드린 내용이에요. 그렇게. 예수님께도 동일하게 일어났죠. 만세전에 이미 십자가에 피가 흘렸잖아요. 그래서 죄를 우리를 아들로 삼았다고 그랬고 그게 신령한 복이라고 그랬고 그 다음에 아들로 삼고 난 다음에 아늘과 땅이 하나로 통일되어서 완성된 것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셨다. 그게 완료된 거예요. 그리고는 그 다음에 성령이 인체신과 보정이 나왔죠. 그리고 인체신과 보정은 이 성령의 능력이 그리스도의 역사에서 십자가 부활, 그 다음에 정세와 근세를 다 다스리고 주관하고 만물을 그 발 안에 두는 게 이제 시간 안에서 이루어졌죠. 성령의 능력으로 맞나요? 그래서 우리도 성령의 능력이 임하고 은사가 임하고 그래서 그건 열려서 보게 해달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완성된 것을 교회의 머리로 주셨고 교회를 통해서 만물을 그렇게 다스리겠다. 라고 했잖아요. 교회는 우리고 우리를 통해서 그걸 그렇게 완성된 것을 지금 집행하겠다는 거죠.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맞나요? 그 주체는 바로 성령의 부정이고 그래서 영어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도 성령 우리가 그 안에 거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성령 이미 완료되어 있는 것을 지금 그대로 일어나도록 해야겠다. 하면 그래서 십자가에 이미 못 박힌 것도 내 삶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도 드러나겠죠. 그대로 우리도 완성된 곳에서 지금 시간 안으로 왔잖아요. 맞나요? 에베소스 1장에 보면 완성되어 시간 안에 우리도 타임머신 타고 온 거하고 똑같아요.
그래서 지금 타임머신 타고 와서 지금 시간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과거예요. 과거에 완성된 것을 지금 마치 무대장치처럼 한 번 더 살아가고 있는 중이죠. 그러면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지는 거죠. 예수님도 그 말씀대로 그대로 이사에서 53정은 이미 완성된 것을 선포한 거고, 예언한 거고, 예언의 실물은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대로 이루어져야 되고 우리에게도 이건 이미 완성된 거기 때문에 지금 당연히 이루어져야 되는 거고, 그 주체는 성경의 부정으로 그래서 성경 안에 있으면 우리는 지금 이 모든 것을 맛보고 누릴 수 있어야 하는가요? 대충 다한 것. 계속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는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 피가 어찌 자기 너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냐 피가 흘러서 이미 우리는 제3을 받고 아들이 됐었죠. 에베소스 1장에서 시간 안에 와서 예수님이 피를 흘렸죠. 그리고 완성했죠. 십자가에서 다 이뤘다. 콜 완성하고 가셨잖아. 그러면 우리에게도 똑같이 너희도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지금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하나님도 당연히 하나님으로 숨길 수 있다. 이걸 말하는 거죠. 그런가요? 그다음에 15절 이로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부이시니 이는 첫 언약 때 범죄한 죄를 속하려고 죽어사 부르시문 입원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됐죠?
병원은 기업의 약속에 비해서 설정이 나온 거잖아요. 그런가요? 이걸 억제하기 위해서 이수님도 영혼에서 완성된 것처럼 시간원에 와서 그렇게 십작을 지고 죽어서 우리 죄를 피를 가지고 죄를 씻고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했으니까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은 새언약이죠. 이사회 31장 예레미아 그래서 그 세어녁에 중보로 왔으니까 당연히 예수님이 그렇게 행하셨고 우리에게도 그 일이 당연히 일어나서 이미 우리에게 약속하신 기업을 당연히 지금 누려야죠. 그거 말이에요. 그런가요? 우리는 그래서 아들됨의 모든 권세를 지금 다 누리고 이사에서 해비소스 일정 이걸 다 누리고 있어야 되는 걸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영혼 안에서 그렇게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시간 안에 와서 그대로 이루어진 거예요.
우리에게도 이미 피로사함을 받고 그 위업을 상속받고 그대로 이루어져야 되기 때문에 당연히 성령이 우리와 함께 영원히 떠나지 않고 계속 이루겠죠. 그게 우리예요. 여러분 그게 우리라고요. 그래서 십자가는 성령으로 된 것을 방금 보셨지만 시간 안에 오셨을 때 성령께서 이루어진 거예요. 우리도 이제 시간 안에 왔죠. 이미 완성된 에베소스 1장은 지금 이루어져야죠. 우리는 지금 과거를 현재로 이미 완성된 승리를 지금 현재 집행하면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넘어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런가요?
이게 바로 영적인 신비의 핵심을 꿰뚫는 거예요. 우리는 완성된 과거를 현재로 사는 사람들이다. 내 힘이 아니고 성령의 인체심과 부정하심으로. 그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그 완성된 모든 것을 누리고 있어야 하죠. 그런가요? 완성된 게 뭔지 이제 전부입니다. 전부예요. 거기에 질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보도록 하죠. 십자가는. 그래서 오늘날 율법 안에서 자꾸 기념식만 해요. 제가 계속 기념식만 한다고 그랬죠. 사순절대 기념하고 그 십자가에 못 박힌 날 십자가를 큰 만들어 치고 다니고 부활절 날 계란 깨면서 할렐루야 하고 그러고 끝나버리죠. 그거는 기념식이에요. 기념식.
결혼기념일 때 밥 한 번 먹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매일의 삶에 일어나야죠. 그렇죠? 그런가요? 매일 죽고 부활하는 게 내 삶에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편에 앉아 있어서 다스리는 것도 일어나야죠. 그런 건 죽어서 가는 걸로 착각하고 이 땅에서는 고통당하면서 예수님 얼마나 아팠을까? 이러고 하고 가슴을 두드리면서 사순절 지나가고 부활절 지나가고 그러면 또 일상으로 돌아와서 그게 뭡니까? 기념식이죠. 스님이 기념하라고 해서 기념하는 거죠. 기억하라고 해서 그 기억하라고 하니까 기억해서 이 땅에서 맞아 예수님 그랬지? 이게 아니고 그 말씀대로 살라는 뜻이야.
사실 그런 것들을 모르고 기념식만 열심히 하고 있죠. 절기를 지내고 전부 다 사도 마을의 골로세스에 가보면은 그림자라고 그림자. 그러니까 그림자라고 그림자 신앙이에요. 그렇게 사는 것은 그림자예요. 신문이 나타났잖아요. 그럼 그거 더 이상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절기 찍히고 이건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예요. 지금은 실제로 살아내야 돼요. 이걸 실제로 살아내야 될 사람들이 그걸 예배라고 그래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는 안에서 이게 이루어지잖아요. 그리스도 안에서. 그래서 그리스도는 머리로 나를 다스릴 때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 그걸 예배라고 그래요. 우리는 교회 나와서 열심히 찬성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이게 예배인 줄 알지만 이거는 예배 행위의 한 부분이야. 한 부분 그러죠. 이 말씀을 계속 드렸죠.
그래서 기념식이 아니고 영적인 시간 안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 편에서는 시간의 제약이 없죠. 십자가는 영원한 현재예요. 우리가 피로 제3을 받고 그걸 상속한 것도 영원한 현재 이루어지고 있어야 되죠. 지금도 그 영원 안에 포함되는 한 부분이잖아요. 이 모든 시간의 흔적들을 다 포함해서 영원이라고 그래요. 그럼 그건 영원하게 이미 이루어진 거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볼 때 400년 후에 종살이하고 돌아오는 이미 다 이루어져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그게 영원이라는 거예요. 영원을 현재로 사는 거죠. 결국은.
그래서 그 현재로 사는 것 그래서 오늘 나는 오늘 죽었다 라고 고백하는 순간 과거에 십자가에 못 박혀 예수님과 함께 죽었잖아요. 죽은 그 사건은 지금 오늘 나의 현실에서 현재에서 효력을 발생합니다. 이게 바로 비밀이에요. 스님이 집사가에 죽을 때 혼자 안 죽었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죠. 그런데 함께 죽을 때 어떤 모습으로 죽은가요? 내 가난한 모습. 그렇죠? 질병 다 거기 포함되어 있죠. 저주 전부 다 분리로부터 내게 임한 모든 것 거기 함께 아까 질곡과 슬픔 그다음에 모든 것이 부활자로 가난하게 됐을 때 그 가난에 해당하는 거죠.
그게 예수님이 가난한 자로 죽을 때 우리가 거기에 다 전가를 했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가난도 다 죽은 거예요. 그럼 부활할 때 같이 부활했죠. 그건 이미 완료된 사건이죠. 그런가요?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돼요? 그건 나의 관한 나의 질병, 나의 연약함, 나의 저주의 모든 증상들은 그때 죽었잖아요. 그러면 시간 안에서 죽은 거로 나타나죠. 그리고 부활해서 우편에 앉아서 다스리는 것까지 나타나야 되죠. 현현의 연합. 그게 복음이라고 그랬어요. 예수 믿고 복 받아라가 복음이 아니고 십자가의 연합, 무덤의 연합, 부활의 연합, 현현의 연합이 이거죠.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한 것. 내가 닿는 발걸음 아래 다 재정렬 그리스도의 머리로 모든 것이 재정렬, 질병도 재정렬, 가난도 재정렬 다 재정렬돼야 돼요. 어떻게 완성된 거로 그런가요? 그래서 항복과 임재 할 때 내가 그 임재 안에 그리스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이 다 있다. 내가 그를 찾을 때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다음에 그 일이 지금 일어나야죠. 영혼과 현재 이제 확 박혀야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었나니라는 그건 과거에 완료된 거죠.
그럼 지금 이 시간 안에서 내 이 더러운 성질은 십자가의 죽었나니 하면 죽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요. 더 이상 나올 때마다 그게 죽었나니라고 하면 그대로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성명의 역사입니다. 그때 그게 진리죠. 이미 죽은 건 진리죠. 그러면 그 진리를 선포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이걸로 인해서 내가 당하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는 거죠. 이해 가시죠? 그래서 그 선포가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위치 안에서 선포하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서. 그걸 진리를 선포하는 거죠. 그 진리를 선포하고 고백하는 순간에 그 과거의 사건의 연재가 된다고 아시겠어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걸 보정하는 게 성령의 현재화예요.
그래서 거기에 완료된 사건이 현재의 나를 지배하게 이해하시나요?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고 이미 완료된 것을 내가 현재에서 하는 거예요. 됐죠? 뿌리는 과거에 박혀 있고 열매는 현재 맺고 있는 거죠. 그래서 오늘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유혹을 이기는 힘은 내 노력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이미 용서하지 못한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유혹을 당해서 내 원하는 대로 행하려고 하는 것도 못 박혔기 때문에 그 과거의 사실로부터 올라오는 성려의 능력이죠. 그게 바로 성령이에요.
그래서 그 열매를 맺게 하는 거예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그래서 성령의 열매. 그래서 성령이 보장하기 때문에 나를 통해서 성령이 그 열매를 맺게 하는 거예요. 그에 의지하지 않으면 과거 그대로 훅 올라오죠.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과거의 사건이 현재 나를 살게 하는 능력이 되는 거죠. 그래서 기억이 곧 능력이 되는 신비함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우리의 과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잊어버리게 되는 그 순간에 우리는 다시 단절되어서 여기서 내 힘으로 내 힘으로 고단한 햇사람의 삶을 살아야 되는 거죠. 아시겠어요?
여러분의 삶의 수고와 슬픔, 고통과 괴로움, 염려, 근심, 두려움, 아픔 이런 것들에서 아직도 매여 있다고 하면 이 사람을 살고 있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다음에 이렇게 성경으로 말씀을 드려도 이해가 안 오는 건 아니죠. 진리입니다. 여러분. 그걸 기억에서 잊어버리는 순간 옛사람의 관성에 끌려서 옛사람의 상태로 떨어져요. 아까 고속도로로 확 달려간다고 했잖아요. 그런 상태가 거예요. 계속 나는 죽었지 실패하더라도 바로 그 시점에 돌이키라고 했잖아요.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한번 확 열받았다고 해서 저 자식이 날 또 열받게 하지 또 열받게 밤새 묵상하죠. 그래서 스스로 열받아 죽어버린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게 관성이에요. 사람의 관성이에요. 여러분. 그런데 그 과거를 현재로 기억해내면 이제 달라지죠. 맞나요? 맞아. 네가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지. 이미 다 죽었지. 주님이 다 이루셨지? 콜 다 이루었도다. 거기에서 이제 안식과 그다음에 그걸 이루는 권세가 생기는 거예요. 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그 능력이 역사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이루려고 거기에 계속 들어갔어요.
거는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에는 뭔가 하면 가장 오래된 과거 그게 복음이에요. 그 과거를 신선한 현재로 사는 사람들이죠. 천 년 전에 이미 완료됐고 만세전에 이미 하나님의 성리 안에서 완성이 되어 있었잖아요. 그걸 지금 현재로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그러면은 실패할 수 없죠. 실패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자아에 해당하는 부분이죠. 그런데 그건 결국은 쓸쓸히 죽게 돼 있어요. 급하게 죽어버리면 좋겠죠. 급하게 죽었다니까 급하게 죽어버렸다니까 지금 급하게 죽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지금 급하게 죽어버리세요.
그럼 우리는 매일 현재 죽어버리면 그게 영혼과 현재가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시간을 생각할 이유가 없어요. 지금 죽여버리세요. 그냥 지금 죽여버리세요. 내가 맞어. 이미 죽은 자이지 할 때 죽는 거예요. 그게 자기 부인이고 십자가인 거예요. 그렇죠? 현재로 살고 있다는 이 통찰은 우리가 매일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왜 내가 다시 십자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 이거예요. 이해 가시나요? 눈 뜰 때마다 왜 다시 십자가 있어야 그걸 현재로 살기 위해서 현재 내 것으로 살기 위해서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그것부터 하는 거야.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나가 아니다.
찌질이 나도 아니고 짜증나는 나도 아니고 원망 불평하는 나도 아니고 성질내는 나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모든 부여함, 신성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한 나다 이렇게 그게 자기 부인과 십자가 아닌가요? 맞죠? 그 자기 아니잖아. 세 자기잖아. 그걸로 산다. 나는 그거 하라고 하지만 하시라고요. 그래서 이 하루하루를 이미 완료된 승리를 현재 살면서 계속 멋지게 끌어당겨서 살아야 되는 거죠. 승룡의 보증으로요. 자 이제 질병으로 넘어가 볼까요? 우리에게 임한 저주와 질병 이미 이루어진 과거에는 구원받았죠. 그걸로부터 지찌개 맞음으로 마음을 입었죠.
그럼 지금 나은 것으로 끌어다 적용해야죠. 저주의 모든 증상들도 지금 끌어다 적용해야죠. 그래서 뭐가 올라올 때마다 나는 더 이상 그 부정한 자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아픈 자가 아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그걸 선파할 때 두리뭉실하게 하면 안 되고 두리뭉실하게 하면 안 되고 두리뭉실 뭐가 표준말인지 몰라요. 둘 다 쓴대요.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게 이제 비밀이 누가복음사장 베드로 전사 2장 24절에 정확하게 찍혀 있어요. 누가복음사장으로 가보면 여러분 잘 알죠?
누가복음사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예수님이 시험받는 장면 거기에서 예수님이 이미 완료된 과거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사용하는지 보시죠. 누가 보면 4장 4절 처음에 마귀 성령에 걸려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 죽이고 금식하고 난 다음에 스님이 얼마나 주린 배를 채우고 싶겠어요. 그랬더니, 마귀가 그러자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맞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우리 돌들에게 명하면 떡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우리도 맞죠? 필요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것뿐이에요. 뭘 돌을 떡이 되게 있는 떡을 먹으면 되지. 그렇지 않아요?
우리에게도 이런 동일한 권세가 지금 있다니까요. 그걸 아셔야 돼요.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은 돌명하여 뜨게 되게 하라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래요? 기록하였으되 그렇죠? 두 번째는 7절에 저라면 다 내게 주겠다. 그러니까 8절에 보세요. 거긴 갈아서 돼. 가라사대 아메 여기는 기록하기를 있죠. 하기를 기록하기를 기록하였을 때 또 있습니다. 10절을 보세요. 10절 뛰어내리라니까 기록하였을 때 기록하기를 가라사대 기록하였을 때 이건 뭐예요?
성경에 이르기를 이거죠. 성경에 이미 말하기를 이거죠. 누가 보고 몇 장 몇 자리 가는 사대 하면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돼요. 왜? 기록되었을 때라는 것은 과거에 이미 완료된 거잖아요. 그렇죠? 우리에게도 지금 그러면 이제 저조의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누가 뭐 갈라리어서 3, 1, 3에 기록되었으되 이게 나와야지 그거 완료된 사실이죠. 그래요.
우리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니 갈라데아서 2장 20절, 5장 22절에 기록되었으되 내 더러운 성지는 이미 다 뒤졌다. 더 이상 내 인생에 까불지 마라. 그런 뜻이죠. 그럼 어떻게 될까요? 이루어져야 되겠죠. 그 진리가 선포될 때 진리형이 역사하는 거예요. 이해하시나요? 예수님이 이렇게 했잖아요. 그러죠? 베드로 전세 2장 24세를 가보죠. 베드로 존스 2장 24절 베드로도 똑같이 합니다. 흉내 냅니다. 흉내 이런 건 잘하는 것 같아요.
도망도 잘 가고 베드로 전세 2장 24절 읽어보실까요? 친히 나무에 달려 그의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저가 재치게 맞으므로 너희는 마음을 얻었나니 그래서 여러분도 나에게도 선포하고 옆 사람에게도 예수님의 채찍에 맞으므로 너는 나았다. 이거는 이제 완료된 것을 시간 안에서 끌어당겨서 그대로 일어나게 하는 거죠. 그게 진리죠. 그런가요? 그렇게 하시라고.
내 질병은 예수님이 채찍에 맞을 때 다 없어졌다, 치료받았다, 죽었다, 사라졌다 그걸 선포하시라고 계속 그럼 지금 즉시로 일어나면 땡이죠. 완전히. 그런데 그건 하나님의 때가 있을 수가 있어요. 그 부분까지 가야 됩니다. 여러분 다니엘 기도할 때 21일 걸렸잖아요. 천사가 내려오는데 방해를 자꾸 그런 경우도 있거든요. 자 그러면은 이제 더 이상 기념식만 하면 안 되죠. 그런가요? 성령의 보증을 활용해야 돼요.
성령께서 이 완료된 모든 것을 나를 일치고 보증했으니 성령 하나님께서 지금 내 삶에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요청해야 되는 거예요. 선포하세요. 말씀하시러 베드로처럼 채찍에 맞으므로 가오리의 모든 질골을 죄를 여기 보면 담당하셨다고 그랬죠. 그 다음에 갈라디아 3장 13절에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다고 그랬죠. 그럼 그게 나타날 때마다 카라사대 칼라디아스 3장 13절 이제 이 저주의 중상은 다 떠나가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선포하셔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수 안에 있는 자에게 그래서 에베소 실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에서 아니었죠.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자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있죠. 맞나요?
그러면 이 성을 일부러 기억 안 해도 되겠죠. 굳이 기억해야 되겠어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으면서 엉뚱한 짓을 하는 거죠. 그럴 때는 그 안에 있는 효력이 안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멋대로 살면서 갈라디아 3장 13절을 선포해 보세요. 안 일어나는 거예요. 이게. 이해가시죠? 그래서 앵크리스도 앵크리스도 계속 나와 신약성경에 240번이나 나옵니다. 이해가시죠?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게 다 이루어진 거예요. 무작정 선포하면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 라는 것을 항상 항상 인지하고 그 안에 있다라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를 머리로 내가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고 있다라는 걸 포함합니다. 아시겠죠? 그리스도 안에 결혼했으면 결혼 생활을 하고 있어야 된다는 거겠죠. 그러죠?
그럼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되어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주로 머리로 나는 몸으로 살고 있어야 되는 걸 말하죠. 그렇게 살고 있을 때. 그렇죠? 선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머리에 한 말은 이미 여기 기록된 거잖아요. 갈라디아스 3장 13절 말씀이죠. 이미 그리스도잖아요. 그 말씀을 내 입술로 선포하면 몸을 통해서 나타나야 이루어져야 되죠. 머리 저기 있고 나는 몸은 여기 있고 그러면 선포. 안되는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 안에 있다고 이미 법적으로 이미 완성이 되어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이 완전함을 항상 누릴 수가 없는 거예요. 현재에서. 그걸 아셔야 돼요. 이해하시죠? 그러면 막 맨날 재를 짓는데 어떡하면 좋아.
간단하죠? 뭐예요? 히그리스 1장 구절 말씀드렸잖아요. 자백하고 보열로 씻어달라고 바레시아 해서 들어가면 그 안에 있는 거잖아. 들어가라고 그 안으로 잠깐 재로 인해서 밖으로 떨어져 나온 것 같아도 이미 그 안에 있지만 재로 인해서 그게 거리가 이렇게 됐잖아요. 마치 분리된 것처럼. 그럴 때 곧바로 회개하고 돌이키고 들어가라고요. 보일러시스 달라고. 내가 열심히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한 달 더 새벽 기도 작전 기도하고, 들어가려고 하지 마시고 지금 들어가고 지금 들어가라고요. 지금 우리의 뭔가 종교적인 활동을 하나님 인정하지 않아요. 예수의 피만 인정합니다. 예수님 이름을 인정한다니까요.
그래서 지금 바로 돌이켜 그 안으로 죄해 있는 걸 고백하고 사해달라고. 다윗처럼 다윗 맞나? 10편 51편 다윗이 맞죠? 목이 가니까 그것도 가네요. 다윗처럼 우설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옵시고 나를 새롭게 하옵소서 제악을 고백하였더니, 나를 새롭게 떠드리죠. 뼈에 진액이 빠져나가고 눌리고 불 튀어 올라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는데 그걸 고백하는 순간 사회잖아요. 그거 아시라고요? 지금 내가 뭔가 뒤떨어져 있는 것 같고, 영적으로 뭔가 침체되어 있는 것 같고, 넘어져 있는 것 같고, 이럴 때 그럼 그렇다고 그래 한번 선분화 해보자. 그거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해 가시죠?
회개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 안에 있어야 돼요. 하나님은 질서 안으로 들어가야 되죠. 그럼 회귀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내가 순종합니다. 여기 관계까지 다 포함되죠. 그것의 언약이죠. 그렇죠? 그 안으로 항상 들어.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번제들이라고 그랬죠. 나는 주닝을 쉽니다. 이걸 계속하는 이유가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교제하는 골반교제 주야로 우리가 하는 이 말씀을 해서 교제하는 거 이게 그냥 하는 게 아니에요. 그 관계 안에 있다. 라는 걸 증가하는 거예요. 이건 그걸 해서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나온다는 거죠. 그게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그냥 자동으로 되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안 그래요. 그건 내가 그 안에 있다라는 증거예요. 그러니까 그런데 그 안에 있다라는 증거를 매일 보여주는 거죠.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그런데 안 하는 게 자연스럽지 못한 거예요. 사실은. 왜? 그 안에 우리는 이미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잖아요. 그런가요? 그럼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제 내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겠죠? 그게 실제화예요. 그게 베드로도. 그래서 똑같이 말했잖아요. 지금. 그가 채팅에 맞으므로 너희가 남을 입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입으로 은과 금은 없으되 에스크리스도 여름으로 일어나라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해가시나요?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니까 되죠. 그래서 우리도 성령 충만하면 그리스도로 충만 안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성령 충만할 때 이걸 선포하는 거예요. 지속적으로. 그래서 항상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돼 있죠. 그런가요?
오늘 충만 받고 한 달 후에 충만 받고 아니고 항상 충만함을 받으라는 뜻이라고 그랬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게 지금 이걸 현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항상 나타나는 결과물이에요. 그건 그래서 계속 말씀을 드린 거죠. 그래서 예수님처럼 가라사대 어디서 까불어 이렇게 곧바로 되는 거예요. 우리도 가라사데 이거 해야죠. 가라사데 하려니까 말이 하나도 없네. 텅텅 비어 있네. 가라사데 하고 이제 나한테 끌려가는 거야. 암모가 있었는데, 대충 그냥 해버리세요. 안 되면 그래서 화살이 전통에 가득한 자는 창피를 안 당한다고 더러운 것 들어올 때 빼서 한 방에 쏘는 거예요.
예수님처럼 가라사대에 확 이해가시죠? 그래서 육체의 저주받은 본능이 올라온다든지 환경에 뭔가 이런 게 올라오면 그냥 한 방 꽂으세요. 거기다가 가라사대 어디서 까불고 있어요? 하시라고. 성경이 많잖아요. 그런데 평소에 예수님과 맨날 상관없이 살다가 성경 구절만 율법 안에서 달달 외워가고 있는 사람은 1년 내내 선포에 다 늘어집니다. 그래서 선포 및 기도문 가지고 장난하는 거예요. 거기에 그냥 현혹당하는 거예요. 아무리 해도 안 되죠. 저도 막 엄청 해봤어요. 가면은 떠나가야 지하다. 그렇게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했는데 망했어. 왠일입니까? 이거. 그때 내 멋대로 살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고 안 살았는데 무슨 그리스도의 말씀을 내가 선포한다고 되겠어요? 머리로 있어야 이게 선포할 때 되는 거지. 그런데 우리는 항상 그 안에 있는데, 그걸 망각한 거예요.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라는 착각 속에 율법 안에 빠져 있었던 거예요. 잘못된. 신화하세요. 복음을 몰랐던 거죠.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런 식으로 많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버리고 베드로와 예수님의 공통점 이미 완료된 사실을 지금 말씀으로 선보였죠. 가라사대. 사태 우리도 말씀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이 이미 하나님 안에서 다 이루어진 거잖아요. 그래서 말씀을 가지고 선포하는 거예요. 그렇게 돼야 되겠죠.
그러면 가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고린도호소, 팔장구절, 가라사대 그 구절을 먼저 읊어야지 부엉에 때 했잖아요. 위치선점을 하고 그 다음에 성경 나는 지금 하늘이 안치운 자다 라는 그걸 인식을 하고 그 다음에 선포해야지. 그가 부여한데 나를 위해서 가난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이제 부여한 자다. 어디서 가난히 가울고 있소. 그렇게 하시라고. 그게 시간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 하나하나 보세요. 진짜 한다니까요. 진짜해요. 그리고 갈라디아 3장 13절, 고인도서 8장 9절 이거 당연히 외우고 계셔야 돼요.
이사에서 53장 4절, 5절 이거는 다 알고 계셔야 돼요. 그래야 선포할 건덕지가 있어야지. 화살이 있어요. 꼭 장전해야 되는데 총알이 없어. 총알이. 자 보세요. 성령이 어떻게 이용하냐. 말씀, 성령의 거미 말씀이죠. 그러니까 성령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말씀이야 나와야 돼요. 성령은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는 거예요. 성령의 거미 말씀이라고 그랬잖아요. 그 정도는 이제 알죠. 그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형통하게 된다는 게 그거예요. 그게 복이라는 게 그런 말이에요. 아무 근거 없이 막 해보세요. 선포문 가지고. 그건 시간 낭비예요? 안 일어납니다. 여러분 다 해봤잖아요.
몇 년동안? 하나도 안 일어나죠. 그렇죠? 헛수고 한 거예요. 목만 쉰 거죠. 저처럼 그런가요?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법적으로 완료된 첫째, 개에 맞으므로 질구를 짊어졌고 징계를 받음으로 평화를 누리고 그래서 마음의 혼란이 오면 그걸 가차없이 베버리세요. 끌려다니지 마시고 밤새 염려하죠. 일부러. 그 짓 그만하세요. 이제 밤새 염려. 아니 그건 아니라고 내 것 아니라고. 이미 그만하려고.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고 편강을 인출하세요. 지금 편강을 계좌에서 인출하세요. 완료된 계좌 그 안에 잔뜩 있잖아요.
원하는 대로 끄집어내세요. 필요한 거 다 있어요. 현재를 질병 저주 상황에 질문했을 때 나를 낫게 해주세요. 하지 마시고 아시겠어요? 그럼 뭐라고 그랬어요? 예수님이? 다 나았다. 낫게 해달라고 하지 말고 명령해라 귀신 쫓아내 주세요. 하지 말고 나갈지어다 라고요. 이해 가세요? 이미 스님이 밟았잖아요. 우리는 그래서 구걸하는 자가 아니에요. 많은 성령사역자들이 이런 말들을 해요. 막 낫게 해달라고 막 하니까 예수님이 콕 나타나 가지고 읽어보라 이미 나았지 않니? 그거를 니 말로 선포해라 이렇게 하더라는 거죠.
이해가시나요? 이미 치유는 완료됐죠. 여기에서. 그러면 지금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리스 안에서 이 완료된 것을 지금 인출해서 이 과거를 현재로 쓰세요.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거예요. 이해하시나요?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영적인 은행의 인출권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 말로 선포하는 건 바로 그런 믿음이죠. 거기에는 모든 신령한복이 있죠. 치유도 있죠.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자유함도 있죠. 다 입금되어 있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맨날 염려 근심하는 것도 물리칠 수 있는 편광이 입금돼 있죠. 그런가요? 그걸 땡겨서 선포하시라고요.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순간에 저주와 질병의 대가가 다 지불돼서 끝났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 믿음으로 거기 계좌에 있는 걸 당겨서 현실로 꺼내서 쓰세요. 그게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완료된 사실을 보이는 물질의 세계에서 현재 건으로 눈으로 과시화돼서 나타나게 하는 통로가 바로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그대로 일어나는 거예요. 베드로 그 고기잡이가 어떻게 은검은 없으되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려고 벌떡 어떻게 일어나겠어요? 그렇죠?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이미 완료됐기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선포될 때 완료된 게 일어나는 거죠. 다 이루었으니까 이미 완료된 거 그대로 일어나라는 거죠. 이해가시죠? 그렇게 선포하셔야 돼요.
그래서 질병이나 저주가오리를 공격할 때 잘 들으세요. 영적으로 아까도 느낌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느낌은 절대로 아닙니다. 느낌에 휘둘리지 마시고 사실을 선택해요. 사실을. 지금 내가 느끼는데 그래도 아픈 것 같아. 그 느낌에 매이지 말라고요. 사실을 선택하라고요. 이해 가시죠? 그걸 계속 하셔야 돼요. 그래요. 질병이나 저주가 우리를 공격할 때 어떻게 하는가? 하면 우리 몸과 환경에 대해서 너는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저주 아래 있어. 이렇게 속살거리는 거예요. 거짓 증언하는 거. 이해 가시나요? 거기에 속지 말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날마다의 십자가에 지는 삶은 바로 그런 것이에요. 이미 완료된 것을 지금 선포하고 실제로 받아들일 거예요.
가난도, 저주도, 질병도 다 끝났다고요. 너는 불법이다. 법적으로 완성됐기 때문에 불법이다. 법정에서 이미 했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다시 검사가 또 끄집어내고 안 되는 거예요. 완성된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그래서 영화 안에 있는 나는 완전히 구원받았다. 나는 완전히 이미 나은 자이다. 이걸 계속해서 하셔야 돼. 그런데 기억해야 할 부분 하나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거예요. 그건 뭔가 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그 선포된 말씀을 시간화해서 실제화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세죠.
지금 될 수도 있고 내일 될 수도 있고 그건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건 진리예요. 그렇죠. 하나님의 주권이죠. 그건 과거의 승리를 현재로 끌어올 때 즉각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정지된 것처럼 변화 없을 때도 있어요. 처럼 그렇다고 느낌에 따르지 마세요. 아시겠죠? 이때 중요한 것은 몸으로 체감하는 느낌이 아니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에요. 계속 그 말씀을 따라가야 되는 거예요. 말씀을. 암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은 이미 뿌리가 잘린 거잖아요. 옛것. 그렇죠? 결국은 말라 없어지게 돼 있어요. 완료된 승리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 완료된 승리를 강력하게 선포하는 게 바로 이 기도의 원리죠.
이해가시나요? 지금 그 권세를 노려야 돼요. 그래서 지금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 지금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라고 하는 거. 그렇죠. 나의 모든 분리로부터 나타나는 원치 않는 부정성들과 저주의 증상들, 질병부터 시작해서 가는 모든 것이 다 거기에 포함되어 있죠. 그런가요? 그래서 이걸 선포할 수 있는 법적인 토대 바로 말씀이에요. 그게 로고스라는 거예요. 로고스 기억나요?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그 힘과 힘에 의지 그러죠 그게 말씀이라고 그 구조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이 로고스 말씀이라고 그 말씀에 근거해서 선포를 하는 거예요.
그걸 현재로 선포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내 감정도, 내 의지도 내 기분도 아니에요. 오늘 기분 좀 괜찮다고 강력하게 선포하면 큰 소리로 선포하면 아니요. 개미 같은 소리로 하더라도 이 큰 거 말씀 안에서 그걸로 선포할 때 그게 법적인 토대의 법전이잖아요. 이미 판결난. 그래서 그게 이루어지는 거죠. 그런가요? 그렇기 때문에 아까 베드로가 이사에서 53장을 말한 거고, 스님이 가라사대 그거 구약에 나와 있는 것들을 인용해서 말한 거거든요. 이사에서 53장을 인용해서 말했죠. 그런가요?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되는 거죠. 예수님처럼 우리도 똑같이 영원해서 왔잖아요. 그게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이 모든 통치권을 회복했죠. 예수 그리스 머리로 모든 것이 그 발아래 재정렬. 만물충만케 하는 그 통치권 여기 보면 20절에서부터 나오죠. 그게 지금 통치권을 회복한 그 안에 우리가 있잖아. 그럼 당연히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선포를 하세요. 그걸 가지고. 아시겠어요? 그리고 제가 어떤 병력기를 기도할 때 어떤 말씀으로 기도하면 좋겠어요? 빨리 기력이 안 나요. 죽게 생겼네. 지금 이사에서 53장도 있지만 막아보고 16장, 17, 18, 막 161728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정이 있다.
그러니 이상한 방언도 말하고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손을 언젠든 나으리라 그러면 손을 얹을까요? 하면 언제라? 그럼 무조건 난다. 니가 원고 무조건 하면 또 안 될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 안에 있어야 하니까 그 안에 있다라는 것은 질서 안에 있는 걸 말하고 성령이 말할 때 언제든지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 손을 언제 낫게 하라. 그러면 올리고 나을 지어다 하면 낫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아니에요. 질서에 순종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애쓰는 것보다 일하는 것보다 성과를 내는 것보다 교재 그 안에 거하는 거. 그게 먼저라고 그 안에 거한다. 라는 것은 그 안에 있다. 라는 것은 상호 내수. 언약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모시고 있는 그 상태를 말하죠.
그러면 머리 지령하는 대로 하면 무조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세상의 능력자, 많은 능력자들이 보면 자기가 한 게 하나도 없다 라고 하는 거예요. 내원능력의 모든 근본은 성령 안에 있다. 그래서 성령이 교조로부터 말미암는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집회를 하는 동안 계속 그 음성을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2층 오른쪽 가열 23번에 앉은 사람 안병 치고 죽었답니다.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해가세요? 그러면 그게 암벽이 확 나와버리는 거죠. 그럼 제가 여기서 한번 떼내보려고 하면은 안 되는 그건 그래서 밖이에요. 이해 가시죠? 그래서 이걸 철저하게 깨달으세요. 그리스도 안에. 그게 모든 게 다 있어요. 그래서 주야로 골반교재부터 말씀하신 교재.
이게 얼마나 엄청난 건지 아시겠어요? 그 능력이 지금 실제로 내 삶 가운데 나타나게 하는 통로예요. 그게 과거를 현재 끌어다 은행에 인출해서 사용하는 것 맛보아 알게 한다고 그랬잖아요. 성령이 보증으로. 그러니까 보증은 성령이 했으니까 성령에 안에서 성령의 지시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게 그리스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럴 때 성령이 인도화물마다 저도 그래서 예배할 때 그걸 항상 엄청 신경 쓴다고 그랬잖아요. 찬양할 때도 할까요? 말까요? 말씀할 때도 여러분 엄청 신경 써요. 그래서 제가 알지도 못하는 게 막 나올 때도 있고 이런 것들이 성령이 그때 누군가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한 사람에게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그 말이 훅 나오는 거예요. 훅 나오는데 나는 누구를 위해서 이 말이 나오는지 알아요. 그게 알게 돼요.
그 한 사람을. 그래서 제가 어떨 때 그런 말을 했죠? 오늘 누구 한 사람을 위해서 예배합니다. 이런 적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바로 그 성령의 왕은 머리로서의 행사하심이잖아요. 그래서 우린 그 안에 있어서 도구여야 할 뿐이에요. 그럼 내가 머리로 돼서 저거 오늘 한번 나사야 되겠다. 그러고 달려들면은 발가벗고 도망가는 일이 생기는 거 제가 말씀을 드렸던 그 옛날에 사모님처럼 40일 금식하고 나서 기도 확 했다가 신장이 딱 달라붙어. 평생 그렇게 한 거예요. 내가 바울도 알고 게바도 알고 누구도 아는데 넌 누구냐? 그래가지고 빨가벗고 막 도망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안에 그래서 교재가 먼저예요.
항상 이게 먼저 우리는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돼요. 내 삶의 완전한 행복을. 그리스단이 이루어 놓으신 그 완전한 것을 지금 내가 행사하고 누리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그 위치에 있기 위해서는 나는 몸이에요. 머리가 아니고 그 예수님이 머리 노릇을 해주고 해야 뭘 기대를 할 건지 말 건지 하지 내가 맨날 머리가 되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집회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뭘 해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오늘 병으로 한번 나서 보려고 하고 수고와 슬픔이죠. 열심을 내면 될 것 같죠. 쳐다도 안 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열심히는 죄악이에요. 그건 선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것도 모르고 열심을 냈죠.
그래서 법대로 심판을 받고 여기까지 여러분 오신 거예요. 저도 여기까지 왕 그렇게 해서 왔고요. 이제 마무리를 하죠. 예수님이 태복음 28장이 마지막에 선포를 한 게 있죠. 그렇죠?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나의 너의 얘기 아니에요. 나에게 예수님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셨잖아. 이 에비소스 1장이 나오잖아요. 그 모든 발 아래 무릎 꿇게 하시고 모든 것을 소유가 되게 하신 그거거든요. 예수님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세잖아요. 그럼 우리는 이제 그 안에 있잖아요. 그건 뭐예요? 우리에게도 임했다라는 거죠. 그러므로, 너희는 가려요. 그거 왜 말하겠어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나에게 줬는데 그러니까 너희도 가라.
내가 너희에게 그대로 주겠다. 그래서 가서 선포하라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죠? 그래서 왕에 대해서는 왕의 이름으로 하면 그대로 이루어져야 되죠. 그런 거죠. 그분의 권세를 대행하는 자죠. 그래서 동력자예요. 동력자는 내 멋대로 하는 거 아니죠. 맞나요? 그게 동력이에요. 그래서 이 말에는 그래서 창조의 능력이 있는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러죠. 성경이 아니라도 그런 말은 있잖아요. 성경에서 나오는 걸 거예요. 이런.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 한마디는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있어요. 진짜로 그래요. 시험해보세요. 금방 됩니다. 진짜로 그래요.
이 썩을 놈아. 이 썩을 놈아. 맨날 해보세요. 진짜 썩어요. 절대로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야 이거 흥할 놈아 이거 흥할 놈아 해야지 흥하지 안매 그리고 마가복음 11장에 23절 잘 아시죠? 성경 구절 케네스 에겐이 즐겨 사용한 내가 진실로 너에게 이르는 누구든지 이 산을 들리어 바다에 던져라 하며 아니지 그대로 되리가 아니지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 말하는 거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성령 안에서 민감한 교재 안에 있을 때 전화해라 하면 이루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루겠다는 거예요. 뭔가 그 전화하는 걸 통해서 내가 뭔가 엄청난 걸 아니면 사소한 것부터 이루겠다는 뜻이거든요. 그것도 모르고 오늘 전화는 한번 해볼까? 이건 아니죠. 오늘 전화는 한번 해볼까? 심심한데 그러면 전화하면 야 이 자식아 뭘 가문에 콩 나듯이 전화하고 그래 끊을 자식아 이러지. 돈 필요하냐? 이런다니까요. 필요해서 전화했구나. 바쁘다. 야 그만해라 이렇게 하죠.
그런데 성령님이 전화해라 그러면 전화하면 내가 며칠 전부터 너 생각했는데 내가 갑자기 돈이 이만큼 생겼어 쓸 데가 없어 가지고 쓸 데가 없어 가지고 생각해도 너밖에 줄 사람이 없더라. 야 그러고 있는데, 전화가 띠리니 온 거예요. 아시겠어요? 야 너 어떻게 내가 돈 줄 줄 알고 전화했니? 그럼 아멘 하면 되는 거지. 죽야 스시게 다 하라 하더라 이렇게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러면 땅 파서 언제 그거 다 하겠어요? 그렇죠? 땅 파는 거는 하나님께 맡겨놓고 말로 해버리세요. 그냥 하면 그게 바로 능력이에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실상 이루어진 것을 말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보이는 세계로 끌고 오는 거예요. 바라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닙니다. 이게 성경적인 선포예요. 그래서 성경 말씀이 근거해야 돼요. 아시겠어요? 질병도 똑같아요. 정복하셔야 돼요. 우리가. 낫게 해달라고 하지 마시고 그 근거 말씀을 갖다 대고 계속하세요. 손뽀하세요. 이렇게 손을 올리면 난다고 했으니까 제가 계속 기도할 때 그럴게요. 누가보검? 아니 마가보검 16장, 17, 18장에 손을 올린 정당하리라 하셨으니까 손을 올립니다. 낫게 하소서 줄이 그렇게 기도합니다. 많이 이루어져요. 여러분 기도하고, 나면 한참 후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고요. 이해가시죠? 그런 것들을 여러분 믿음으로 하는 거예요.
그리고 선포하고 나면 잊어버리세요. 아 이루어질까 말까?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왜 내가 합니까? 주님이 알아있으면 하고 나서 손 틀어버려야 돼. 그다음엔 주님이 하실 일이요. 자꾸 그걸 가지고 의심을 하죠. 그러면 곤란합니다. 여러분 자 이제 마무리하죠. 우리는 영적인 신분이 어떤 사람입니까? 에베소스 이 장일절 그 안에 이미 안 치운 자, 암에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머리가 되신 그분은 이 만물을 통치하길 원하세요. 그 정사와 근세에 마찬가지예요. 천사들도.
그래서 예수님이 누가 복음 사장에 그 시험을 통과하고 나니까 천사들이 수정을 들죠. 그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진리 안에서 그리스 안에 있으면 천사들이 수종되는 거예요. 그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도 역사하지만 천사들도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 선포한 대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건 주님께 맡기세요. 그 다음에는 그래서 질병과 저주를 우리에게 그런 것들이 있을 때 땅에서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면서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하늘에 안초인 나 여러분 어딨어요? 지금? 맞아요. 이 땅에 앉아 있구만 내용은 저 하늘을 디디고 사네.
거기에 우리 존재가 있잖아요. 실물은 거기 있고 여긴 그림자죠. 맞나요? 예수님이 올 때 이거 다 벗어버리잖아요. 진짜 실물 입잖아요. 실물은 거기 있어요. 지금. 거기에 이미 이루어진 권세를 가지고 지금 이 땅에서 선포하는 거예요. 올라가면서 해주세요. 해주세요가 아니고 빌어먹는 게 아니고 아시겠어요? 그리스와 함께 보자. 하늘이라고 했죠.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역이라고 했죠. 하늘들 거기에 앉아있는 신분으로서 내 발 아래 질병과 저주를 갖다 놓고 명령하세요. 그게 우리의 권세예요. 그게 바로 기록된 말씀으로 선포하는 그래서 기록되었을 때 예수님이 말했고 성령의 금,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래서 성령의 말씀이 선포할 때 성령이 그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는 거예요. 그게 성령의 금이에요. 이해 가시죠?
그게 기록된 법전을 낭독하는 거지. 내 생각을 막 하는 게 아니에요. 이해하셨어요? 그래서 이미 나으면 입었다고 기록했기 때문에 선포하는 거지. 오늘 나을 것 같은데,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그 말씀을 선포할 때 잘 들으세요. 영계의 영적인 세계는 그 말씀이 이미 영계의 법전이잖아요. 법적인 근거가 있기 때문에 영계가 굴복하는 거예요. 그 말씀에 말씀이 하나님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선포하라 하면 선포하는 하나님이 직접 해도 되는데 왜 굳이 나를 통해서 선포하러 갈까요? 같이 일하려고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이해하세요? 그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기록된 법전을 가지고 그 감동을 받아서 선포하죠. 그러면 그 말씀을 이루는 천군천사가 10편, 103편, 19절에서 22절 그래서 이 말씀을 잔뜩 묵상해야 돼요. 계속 그래서 어느 먹는 순간 묵상한 내 말씀이 떠오르면 그냥 행하세요. 그대로 행하세요. 선포하고 행하세요. 이해 가십니까? 그래서 기도하려고 하더라도 성령이 감동이 없으면 절대로 안수하면 안 돼요. 헛수고야. 헛수고 뒤집어 써요. 잘못하면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지. 그래서 사랑을 행해야지. 잘못하면 뒤집니다. 여러분. 그래서 질병을 향해서 이사에서 53장을 선포하세요.
완료된 사실을 내 몸에 적용했어요. 저주받은 질병, 나를 괴롭히는 질병은 떠나가라고 그 성경 말씀을 가지고 지금 내 몸에 적용해서 선포하세요. 기록된 말씀으로 암에 저주와 두려움이 올 때도 똑같이 갈라데스 3장 13절을 가지고 어떤 저주도 내게 머물러 있을 법적인 근거가 없다. 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되었음을 선포한다. 이렇게 선포하세요. 그래서 갈라디아 13절을 말하면서 선포하세요. 그게 이미 완료된 걸 지금 시간 안에서 그래서 가라사대를 지금 시간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가라사대 하는 것 현재 사건으로 그게 인치고 부정하신 성령의 능력이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승리밖에 없어요. 이미 모든 걸 다 그 발 아래 두었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 물질 가지고 벌벌 떨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물질에 뭐가 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나는 이미 하늘에 안치운 자다라는 걸 먼저 인지하고 그 다음에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코린도우사 팔장구절도 가난에 대해서 말하는데 지금 가난도 거기 계속 가지 얼마 전에 했는데 그 사이에 그렇게 까다쳤어 그래 빌리퍼스 41 그게 419혁명이라고 제가 말을 했는데 이 모든 것을 풍성하게 쓸 것을 풍성하게 그리스도의 수안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수안에 지금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것에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선포하라고요. 아시겠어요? 이루어진다니까요. 그걸 하시라고요. 그래서 마태봉 6장 33절 하세요.
이 모든 것을 달라고 헛수고 하지 마시고 나는 이미 그 나라 안에 있다. 그의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것도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 다 더하리라 그러고 기다리세요. 아메 흔들리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되나 안 되나? 책임은 제 게 아닙니다. 말씀이 책임집니다. 저한테 따지지 마세요. 말씀히 하실 거예요. 암에. 그래서 가난도 정복하시고 저주도 남아있는 거 다 정복하시고 즐거움도 정복하시고 다 정복하세요. 일어날 때마다 나는 완전한 자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도 나를 매워놓을 수 없다.
계속 그 안에서 나를 새롭게 하세요. 계속. 그러면 진짜 나는 더 이상 피곤하지 않다. 내 기력은 절대로 죽을 때가 있어야 하지 않을 거다. 아메 그리스도께서 내 지혜에 있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무지한 자도 아니고 멍청한 자도 아니다. 이제부터 내가 나이 들면 더 몸은 후패하나? 내 마음은 날로 새롭기 때문에 더 지혜로워진다. 기억력은 점점 더 새로워진다. 이미 저주의 정상이 떠났잖아. 그걸 선포하시라고요. 그리고 성경을 보시라고요.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고 기억이 납니다.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나요. 이제 더 이상 찌질이같이 살면 안 됩니다. 내가 왜 이럴까? 더 이상 그러지 마세요. 네. 은혜가 내게 족하다. 그거 하지 마세요. 안 족합니다.
하나도 안 족합니다. 내은혜는 만물의 충만함으로 충만한 은혜예요.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 그건 하기 싫어서 게으른 사람들이 말하는 거예요. 저주는 떠나갈지어도 아세요? 그건 사도 바울이라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 그 케이스에만 해당되는 거예요. 나도 그 케이스에 해당되고 싶어요. 특별히 내가 가난을 벗 삼아 살고 싶어요. 내 은혜 가족하다. 앞으로 대궐 같은 집에서 할 거예요. 나는. 아메 불만 있어요. 기분 나쁘면 따지세요. 우리는 지금 이 땅에 있지만 우리 실체는 보좌우편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1. 과거를 현재로
1-1. 영원한 현재
- 영에서는 과거가 아닌 현재가 중요함
- 영에서는 완료된 과거를 현재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시간관임
- 성령의 보증은 완료된 것을 현재 시간 안에 나타나게 함
- 성령은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심
- 성경은 몸의 행실을 이미 죽였다고 가르침
1-2. 완성된 것을 현재로
- 예수님은 이미 완성해 놓으신 것을 발 아래 꿇고 다스리게 하심
- 우리는 이미 완성된 것을 본분 그대로 살아내라는 명령을 받음
- 죽어라, 거하라, 과거에 이미 완료된 것을 지금으로 사는 것이 중요함
- (중요) 성령은 우리가 이미 완성된 것을 현재로 살아내도록 가르치심
- 우리는 매일 아침, 규정이 '내 노예가 더 이상 아니다'라고 선포하며 살아감
1-3. 완성된 것을 상기함
- 우리는 이미 완성된 것을 상기하며 살기로 함
- 과거를 현재로 사는 우리의 특권을 기억해야 함
-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일상 속에서 실제로 살아내라는 명령임
- 육체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음
- 우리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현재에 매여 살 수 있음
2. 성령의 완성
2-1. 고통받는 예수님
- 고통받는 것, 내 뜻대로 죽이는 것, 내 힘으로 일으키는 것 아님을 밝힘
- 고통받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잊지 말고 매일의 일상을 살아내라는 승리자의 삶을 살라고 촉구함
- (중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이 천국의 삶의 방식임을 알아야 함
- 이사야서를 통해 예수님은 이미 죽었으며, 부활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기록됨을 설명함
- 이사야서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 질병, 슬픔, 고통, 괴로움, 연약함을 지고 슬픔을 당하셨다고 밝힘
2-2. 예수님의 피로 얻는 것
- 예수님은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미 완성해 놓은 것을 말씀으로 표현하고, 그 본질이 자신이 이 땅에 왔기 때문에 그대로 죽었다고 설명함
- 예수님은 어릴 적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고, 강고를 많이 겪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음을 받았다고 밝힘
-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질고를 지고 질병을 말하며,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다고 밝힘
- 이사야서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고난을 당하셨다고 설명함
- 예수님은 찔리고, 상제받으며, 징평과 체나의 저주의 증상을 극복하고, 채찍에 맞고 나음을 입었다고 밝힘
2-3. 성령의 집행
- 예수님은 이미 죽고 부활한 후에도 성령이 영원한 현재 속에 완성되어 있다고 설명함
- 성령은 영원하고 현재이며, 성령 혼자 있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이 시간을 허물지 않고 함께 있다고 밝힘
- 예수님은 시간 안에서 성령의 집행을 통해 죽음을 당했으며, 이사야서에서도 이미 이러한 일이 있었음을 선포함
- 질병으로부터 자유해지는 목표를 위해 정신을 차리고 십자가를 이르는 중이라고 밝힘
- 십자가는 영원한 현재에 이미 일어난 사건이며, 시간 안에서 그대로 펼쳐질 때 성령의 집행을 통해 성취될 것이라고 강조함
3. 성령과 영원
3-1. 성령의 능력
- 성령은 시간 안에 계시면서도 영원한 분이 됨
- 성령은 만세 이전이나 지금이나 만세 이후나 동일하게 맞음
-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고, 성령의 보증으로 완성되었음
- 성령은 인체신과 보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역사와 만물의 발 안에 두었음
- 성령의 능력은 교회의 머리가 되어 만물을 다스리겠다는 의미임
3-2. 완성된 예수님
- 예수님은 이미 시간 안에 완성되었고, 그래 있어 십자가에 못 박히심
-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고, 하나님께 드리게 된 것은 성령의 보증이었음
- 예수님은 완성된 만물을 지금도 현재로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져야 함
- 우리는 완성된 만물을 현재에 집행하며 사는 사람들이기에 실패할 수 없음
-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통해 영원히 완성된 삶을 살아야 함
3-3. 예배와 삶
- 절기나 기념식만을 행하는 것은 그림자 신앙이며, 잘못된 것임
- 우리가 기억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사도 마태복음 16장의 말씀을 따라야 함
- 성령 안에 계시면 시간의 제약 없이 영원한 현재가 되어 예배가 이루어짐
- (중요)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고, 그 말씀 안에 머물며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함
4. 죽음의 현재화
4-1. 과거의 죽음과 영원의 이해
- 아브라함이 400년 후에 돌아올 때 이미 하나님의 볼 때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었음
- 과거의 죽음을 현재로 사는 것이고, 현재로 사는 것임
-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효력을 발생시킴
- (중요) 예수님과 함께 죽은 후, 질병, 연약함, 저주의 모든 증상들이 죽음
- 부활할 때, 질병, 연약함, 저주의 증상들을 모두 재정렬해야 함
4-2. 죽음의 현재와 성령의 역할
-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가난한 자로, 질병, 슬픔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죽음
- 죽음을 현재에 연합하면 현현의 연합으로 복음이 이루어짐
- 예수 믿고 복 받아라가 복음이 아니라, 십자가의 연합, 무덤의 연합, 부활의 연합, 현현의 연합이 중요함
- 모든 충만함으로 그리스도의 머리로 재정렬되어야 함
- 과거에 죽은 자로서의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모든 부여함, 신성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한 내가 됨
4-3. 죽음의 현재와 영혼의 변화
-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면 과거의 사건이 현재로 잊혀짐
- 우리가 노력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과거의 사건이 현재로 잊혀지고 현재의 내가 됨
-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를 살아감으로써 현재의 내가 됨
- 스스로가 급하게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해야 함
-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을 맺게 하는 것이 중요함
5. 예수님의 완성과 우리의 회개
5-1. 예수님의 완성과 그 의미
- 예수님이 이미 완성된 과거를 자신의 것으로 사용함
- 마귀 성령에 걸린 후, 예수님은 돌들에게 떡을 만들어 주겠다고 명령함
- 돌을 떡으로 만들어 내는 권세가 이미 우리에게 존재함
- (중요) 예수님의 완성은 과거에 이미 완료되었다는 것을 의미함
- 지금, 예수님의 완성은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함
5-2. 완성된 예수님의 선포
- 예수님의 완성은 성경에 기록됨
- 완성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함
-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채찍에 맞으면서 모든 질병을 담당하셨다고 말씀함
- 예수님은 갈라디아를 통해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다고 말씀함
- 예수님의 완성과 그 선포는 성령의 보증을 필요로 함
5-3. 완성된 예수님의 삶과 우리의 회개
- 완성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함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몸을 통해 나타나야 함
- (중요) 예수님의 말씀을 해서 교제하고 그 안에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로 섬긴다는 것을 의미함
- 회개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순종하는 것을 의미함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가 주된 머리가 되고, 그가 우리의 몸이 되어 나타남
6. 성령 충만과 믿음
6-1. 성령 충만의 중요성
- 베드로가 채팅을 통해 여호와께 충만해짐을 강조함
- 성령 충만한 자만이 그리스도로 충만해짐을 의미함
- 성령 충만은 지속적인 노력과 함께 항상 유지되어야 함
- 예수님도 가라사대에서 하셨듯, 우리는 말씀으로 선포해야 함
- 완성된 말씀을 가지고 현재에 선포하는 것이 중요함
6-2. 성령의 도움과 믿음
- 성령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심
- 성령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성령의 거룩한 말씀을 의미함
- 말씀을 묵상하며 형통하게 되고, 복이 생김
- 성령의 도움으로 치유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음
- 이미 완료된 사실을 현재에 선포하는 것이 믿음임
6-3. 믿음의 역할
- 믿음은 영적인 은혜의 인출권과 같음
-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완성된 것을 선포할 때 자연스럽게 일어남
- 베드로가 예수 이름으로 일어난 것은 이미 완료된 것을 선포했기 때문임
- (중요) 우리는 이미 완료된 것을 선포하고, 질병과 저주에서 벗어나야 함
- 우리는 완성된 사실을 가지고, 현실에 적용해야 함
7. 성령의 왕이신 그리스도
7-1.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
- 그리스도의 권세로 인해 우리가 이미 완전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함
- 그리스도의 말씀은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할 수 없는 과거의 승리를 현재로 이끔
-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중요하며,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핵심임
- 우리의 몸이 아닌 말씀이 증상이며, 말씀에 의해 승리된 것을 강력하게 선포해야 함
- (중요) 완료된 승리를 현재로 선포하는 것이 기도의 원리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이룸
7-2. 통치권 회복
-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후 통치권을 회복하셨고, 이는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의미함
- 예수님은 통치권을 회복한 후, 우리가 그 안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심
-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며, 이는 법적인 토대가 됨
-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성령의 인도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에서 시작됨
-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필요할 때 나타남
7-3. 왕의 행세와 완전한 복음
-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고, 우리는 그 안에 거한다고 선포해야 함
-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선포하는 것임
-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을 현재로 선포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그 복음을 나타내야 함
-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 때, 우리의 삶은 완전한 행복과 지배를 이루어 냄
- 그리스도 밖에서의 열심은 죄악이며, 성령 안에서의 열심이 중요함
8. 기록된 말씀의 능력
8-1. 기록된 말씀의 능력
-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이룬 자임
-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
- 예수님은 천사들을 통해 말씀을 선포하고 기다리게 함
- 성령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천사들을 이끌고 역사함
-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은 역사하고, 천사들은 기다림
8-2. 성령의 역사하심
- 예수님은 하늘에 손을 올려 말씀을 선포하심
-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받아 역사하심
-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이룬 자임을 선포하심
- 성령은 말씀을 통해 천사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
- 기록된 말씀은 하늘의 법전이시며, 말씀을 통해 질병과 저주를 내쫓음
8-3. 믿음의 실상
- 믿음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실상을 이루어지게 하는 통로임
- (중요) 믿음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행하면 이루어짐
- 성령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천사들을 이끌고 역사를 행하심
-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이미 하나님의 뜻을 이룬 자임을 선포해야 함
- 우리는 말씀을 통해 질병과 저주를 내쫓고, 승리를 이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