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적용원리(16)_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_새창조의 메카니즘 안으로 들어가라!_말씀의 실재화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26.01.15|조회수55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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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문제해결의 방법 새창조의 메카니즘
 
오늘은 삶의 적용 원리 16번입니다. 열여섯 번째 시간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 솔깃하죠. 여러분 오늘 제목이 솔깃하죠. 문제 우리는 인생에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만 어떻게 해결하는지 사실은 정확하게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성경을 봐도 시원하지가 않고 여러분 문제 해결은 너무 간단한 곳에 있음을 우리가 성경을 너무 복잡하게 알고 있어서 뭔가 잘 안 보이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열심히 잘 해결을 해야 되겠지만, 여러분 문제의 본질을 알면 금방 해결하는 방법도 알게 됩니다.
 
여러분 문제의 본질 뭔지 압니까 다 기억나시죠. 이 그림입니다. 여러분 삶의 적용 원리 1번에 할 때 왜 문제가 발생하는가? 거기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문제 발생의 근본 원인이 뭐였습니까? 네 에 이 분리되어 하나님과 단절되면 나타나는 증상이었죠. 그렇죠.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그 자원과 자원으로부터 분리되는 거죠. 그렇죠. 하나님과 분리 하나님과 분리 단절이라고 그러는데요. 그죠 단절되면 여러분 기억납니까 제가 어떤 예를 들었던지 그때 아버지가 조그마한 애를 애가 길을 잃고 아버지를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 거잖아요. 그렇죠. 그거 기억나시죠. 예 그겁니다.
 
에 잃어버리면 벌써 두려움이 오기 시작하죠. 그 다음에 염려근심이 오기 시작하고 이제 혼자 살아야 되잖아요. 그게 우리 인생의 슬픔이에요.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하죠. 하나님과 분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원과 분리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하나님의 지난번에 했던 기억나죠. 여기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과 분리되죠. 하나님의 성품은 여러분 사랑이잖아요. 사랑과 분리되고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하고 많죠 온유하고 이름과 분리되니까. 우리에게 사랑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우린 날 때부터 사랑이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이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 또 하나님의 생명 영생이라 하는 거죠. 이것과 분리됐어요. 그러니까 우린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죠. 중국의 어떤 왕이 여러분 불로초를 구하려고 열심히 진시황인가요? 진시황이 언제 죽었는지 아십니까? 몇 살에 49세에 죽었어요. 끼케야 그거 살려고 부하 불로초 구하러 간 부하 이름이 뭐죠 머리가 이렇게 나쁘니 불로초를 구해오라니까 없는 줄 알고 어떻게 도망가 버렸잖아요.
 
안 돼 없는 걸 구해보라고 그렇게 오래 살려고 발버둥 쳐봐야 49세 50세 하나님과 성품 하나님의 생명과 분리됐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사망 가운데 거하고 있는 거죠. 이미 우리가 날 때는 이미 죽은 자예요. 목숨은 살아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죽은 자로는 아는 거라고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다고 그랬죠 그래서 하나님과 생명과 분리되다 보니까 질병도 생기고 여기에 하나님과 성품 염려 사랑도 없고요. 염려 근심 두려움 이런 것들이 막 생기기 시작하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능력과도 다 분리돼 버리죠 하나님의 능력은 창조의 능력이고 기적을 일으키는 모든 능력이 천하만물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모든 능력이 그 속에 다 있는데, 그것과는 분리돼 버렸죠 그다음에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말씀이라 하셨죠. 그죠 말씀은 곧 율법 법 율법인데 이 율법과도 분리가 돼 버렸어요.
 
그럼 이건 아주 처참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뭔가 하면은 하나님 말씀과 분리되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가 없죠 그렇죠. 이 말씀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고 구약에 쫙 나오잖아요. 그러면 우리 날 때부터 우리는 복 받을 자격이 없고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그랬죠 이 분리는 실로 엄청난 겁니다. 근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던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시를 한번 보세요. 창세기 1장 28절에 다스리고 정복하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생육 번성이다. 이거거든요. 점점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마되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이 창조되었잖아요. 이걸 잃어버린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을 그러니까 이제 완전 인간이 돼버린 거죠. 말 그대로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여러분 정글의 법칙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인간들 사이에 그런 일이 서로 마치 동물이 사는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것처럼 인간들 사이에도 그렇게 약육강식 그런 것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그죠 그게 인간의 본질이라고 해서 문제가 어디서 왔는가 전부 다 하나님과 분리되면서부터 일어났던 일이에요. 그 분리는 죄로 인함이죠. 죄로 인해 아담의 죄로 인해서 돌이킬 수 없는 여러분 하나님의 분리라는 그런 결과를 가져와 버렸죠 그래서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살아가야 되는 인생이 되어버렸던 겁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 그 모습이죠.
 
그들이 사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뭘까요? 영원히 죽기 위해서 사는 겁니다. 슬프지 않습니까? 근데 왜 교회 와도 영원히 죽으려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그게 문제라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과 분리되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성경을 보면 율법을 지키면 복 받는다고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지키려고 애를 쓰고 애를 쓰고 지금까지 해보셨죠 우리의 피해입니다. 아무리 지켜도 안 되잖아요. 다 지켜야 되는데 그 많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안 지키면 안 지킨 거라고 그랬죠 갈라디에스도 나오고 단어 근데 여러분 지킬려고 지금도 애쓰고 있잖아요. 잘 보이려고 하나님한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잘 보여서 받으려고 그러니까 안 된 거예요. 지금까지 안 되는 이유가 뭐 있겠어요.
 
뻔하지 이 안전이 분리돼 버렸네요. 하나님 말씀과 분리 그러니까 잘 보세요. 말씀과 분리되는 순간 말씀이라고 그게 문법이에요. 여러분 법 조항 의문 그 보이는 말씀은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말씀이고 그 말씀을 우리는 행하여서 지키려고 할 수밖에 없도록 본능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말씀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지켜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그런 본능에 빠지게 되어 있는데,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게 이제 초등학문이죠. 초등학문 그래서 말씀과 분리되어서 말씀을 지킬 수가 없게 되어버렸고 에덴에서 쫓겨나서 여러분 다 말라버렸다고 했죠. 이 그림들 다 기억납니까 이상태 원인은 전부 하나님과 분리해서 오는 문제였습니다. 그렇죠. 맞아요.
 
근데 여러분 신명계 28장이나 레이비계 26장을 보면 앞부분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이런 보고를 받는데 뒷부분으로 넘어가면 전부 저주가 나와 있죠. 거기에 보면은 질병도 있고 쫓겨나고 뭐 이런 거 쫙 나오죠. 그게 우리가 다 해당되지 않던가요 그게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게 말씀대로 된 거잖아요. 그렇죠. 안타깝지만 그걸 우리는 해결하려고 이제 노력을 하죠. 그걸 해결하려고 이제 노력을 해서 해결하려고 해결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어떻게 해결합니까?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은 여러분 하나님과 형상과 하나님의 형상이 없어져 버린 거죠.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 자신인데 그죠 하나님 자신의 형상이 파괴돼 버렸죠 그러니깐 인간의 모습만 남아있는 동물적인 인간의 모습만 남아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다 보니까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인데 여러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인들이 하는 노력이 뭔가 하면 우리가 잘 아는 바로 여러분 문화라는 거예요. 문화지식 기술 과학 의술 이런 것들 여기에 취미생활도 있고 기쁨을 줄 수 있는 것 다 있죠. 잔뜩 여러분 셀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인간이 개발해내기 시작했는데 이게 하나님을 대체하는 거죠. 맞아요. 이게 발달하면 발전할수록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과 점점 멀어가고 요즘은 이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려고 사람을 창조하려고도 해보고 그렇죠.
 
우주 끝까지 가서 어떻게 해보려고 해보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인간의 노력이 이만큼 왔어요. 어쨌든 그런데 이걸로 하나님이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고 여기 이걸로 행복해지려고 하는 거죠. 왜냐하면, 행복의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과 분리되어 버렸거든요. 그렇죠. 나와 행복의 본질이 나 하나님과 분리돼 버렸어요. 그래서 이 인생 아담들은 이걸 통해서 행복해지어 보려고 노력을 하겠죠. 그게 인간의 역사라는 거예요. 근데 되나요? 안 되잖아요. 온갖 이데올로기 뭔 철학이 나오고 뭔가 나오고 막 엄청나게 뭐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행복해 요즘 요즘 병이 더 많죠 아 뭐가 하나 질병이 해결되고 나면 또 다른 병이 생기고 뭐 이제 코로나 지나가고 나면은 뭐 다른 게 나올 거예요. 멜로나가 나오든지 뭐 다른 게 나올 답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인간 스스로는 답을 낼 수가 없는 거예요. 이 땅에서는 왜냐하면, 하나님이 떠나버렸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오.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상급이시여 나의 뿌리시오. 나의 행복이시오. 다 없어져 버린 거죠. 인간이 그걸 자신이 창조해서 만들어내야 되는 거예요. 인간은 창조의 능력이 없잖아요. 그렇죠. 하려니까 땅이 저주받았죠 저주받은 땅에서 생산해낸 모든 것이 행복이 될 수 있을까요?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저주의 증폭에 불과한 거죠.
 
저주의 곱하기 3 계속 여기에서는 행복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무수한 철학자들이 나오고 무산 사상가들이 나오고 동양 사상이 나오고 그랬죠 공자의 제자 중에 유명한 사람이 공자에게 물어봤답니다. 공자 공자님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대답이 뭐였나요? 나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걸 왜 물어보느냐 죽어봤어야 알지 이걸 어떻게 알겠어요. 인간은 그러니까 모르는 거에요. 성경을 한 사람만 봤으면 죽으면 심판이 있다. 금방 알 텐데 그죠 그걸 안 믿고 싶은 거죠. 이게 이제 인간의 문제예요. 인간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어 여러분 뭔가 가진 것으로 행복해지던가요 얼마나 가져야 행복의 기준이 될까요? 솔로몬은 다 가졌다고 했는데 행복하지 않아서 헛되다고 그랬잖아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 스스로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 복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복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것과 분리돼버린 인간은 도저히 답이 없는 상태예요. 답이 없어요. 불가능한 겁니다. 여러분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절대로 답이 없는 것을 우리는 하고 있어요. 근데 그게 세상 사람이고 오늘날 교회에 와도 믿는다라는 정도라는 사람들도 똑같이 이 세상에 세상에 이것들이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이걸 그대로 가지고 있죠.
 
그게 행복해지려고 노력했더니, 모든 것이 잘 안 되었는데 예수님을 믿으니까 행복해진다. 하니까 이제 예수님의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고 필요한 걸 다 채워주는 예수님으로 믿고 있는 게 오늘날 기독교와 똑같아요. 예수님이 이 땅의 행복을 채워주러 오신 분이 아니잖아요. 여기서 많은 착각이 일어났죠.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러 오셨죠 우리와 혼인하러 오셨는데 혼인하러 온 사람한테 돈 내놔라 똑같은 꼴이 돼버렸죠 그러다 보니까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장식의 1장에 나오는 그 여러분 문제만 본질만 깨달으면 이제 해결하는 건 쉬워지죠 결국은 분리로 인해서 모든 것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 분리가 그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연합하면 되는 거죠. 그죠 그러면 끝난 거예요. 그러면 그런데 여기 분리된 상태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죠. 예수님을 영접을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도 문제가 아주 크게 발생을 하고 있는 게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똑같은 세상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라는 거예요. 그렇죠. 자 어쨌든 연합이 탑이죠. 연합이 되면은 다 해결됩니다.
 
연합이 어떻게 되는지 사실은 잘 모르죠 자 오늘 우리 나눠드린 이것을 가지고 오늘 하나하나 여러분 짚어가 보겠습니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 지금까지 여러분 제가 그림으로 여는 성경에서 다 한 내용들인데 여러분 마지막에 지금 핵심 내용을 한 번 더 짚어 드리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여러분 분리로부터 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과 분리됐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그 기준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분리가 되는 순간에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사람이 육체가 됩니다 라고 그랬죠 그죠 육체가 됨이라 이건 뭐예요?
 
육체가 됐다라는 것은 그 전에 하나님의 신이 들어오시므로 창조가 일어났죠. 창의식 일장에 그죠 혼돈 권고 허감 아무것도 없고 고통 텅 비고 이런 무인 곳에 그게 지금 우리 분리된 우리의 모습이죠. 그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빛이 오고 성령이 오셨죠 그리고는 일곱 날로 가서 연하화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졌죠 맞아요. 이게 이제 행복이죠. 이게 모든 복익의 근원이 된 거죠.
 
그런데 이 하나님의 형상이 죄를 통해서 깨어지므로 여러분 빛이 임하고 성령이 운행하시고 그 다음에 염 일곱난로 창조가 일어나는데 이 창조된 모습이 바로 이 하나님의 형상의 결마 이 모습이었죠. 그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게 안식이었죠. 안식 그죠 평강 안씨 7날 그게 여러분 죄로 인해서 깨지니까 하나님의 신이 떠났죠. 창세기 6장 3절 떠나고 나니까 사람이 육체가 됨이라 이제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 버린 거예요. 여기에 이제 근본적인 문제가 있죠. 사람의 눈이 여기서 밝아지죠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 인간의 육체가 되어버린 거죠.
 
문제는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의 신이 떠나버렸잖아요. 떠나서 육체가 됐으니까 이 육체로는 땅에 속한 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걸 회복할 수가 없어요. 인간의 노력으로는 안 된다라는 거죠. 여러분 그렇죠. 우리가 노력해서 하나님처럼 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그 자체가 죄였잖아요. 그게 바로 아담의 본질적인 죄였죠 그 완전히 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거잖아요. 모독하는 거잖아요. 그게 핵심이 여러분 선악과 하나로만 보면 안 되고 이 선악과라는 것은 여러분 율법 전체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율법을 지켜서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어보고자 하는 게 아담의 죄였어요. 결국은 이게 자기 육체의 힘으로 그렇게 돼 보려고 하는 거였죠 그게 바로 우상이라는 거예요. 그게 자기 우상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신이 이제 자기가 하나님이라니까 하나님이 필요 없잖아요. 그렇죠. 하나님이 필요 없다라는 말이잖아요. 하나님의 신이 떠나버리니까 이제 혼돈곡의 허감 속에 있는 육체로 다시 돌아간 거죠. 맞아요. 그럼 이게 문제죠 이게 문제의 핵심이잖아요. 그러면 여기에 이제 해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하나님의 신이 다시 와야 되잖아요. 하나님의 신이 들어오면 되는 거죠. 그럼 다 해결되는 거죠. 하나님의 신은 어떻게 옵니까 부풀어서 들어오잖아요. 여러분 에스겔 골짜기 마름대에 훅 부니까 하나님의 신이 들어오고 참 세기에도 하나님 신이 운행하는 게 여러분 그런 모습이지만 물론 우리를 품잖아요. 이 하나님 신이 우리를 품으시면 되는 거죠. 다시 들어오시면 되는 거죠.
 
그게 하나님의 신이 들어오는 모습이 여러분 하나님의 신이 여러분 들어오는 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와요. 그걸 아시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신이라고 하니까 꼭 성령만 생각하시는데 여러분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육체가 되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깨졌다가 하나님의 신이 임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 신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어요. 성령으로 오셨고 창세기를 잘 보세요. 여기에 혼돈 공허감에 빛이 들어오고 성령이 임했잖아요. 이 빛은 그러면 지금 여기도 빛이 와야 될 거 아닌가요 똑같이 예 빛이 오면 되는 거고, 그다음에 이걸로 끝나나요? 말씀과 성령으로 끝나나요? 아니 또 있잖아요. 여기 요움이 있어야지 이게 없으면 안 되잖아요. 잘 보세요.
 
여기서 여러분 이 모든 문제 해결점은 여기 다 있습니다. 오늘 이 그림을 잘 보세요. 맨 왼쪽에 일장 2절이에요. 혼돈공허감 이게 여러분 하느님과 분리된 우리 인생의 모습이에요. 질서도 없고 생명도 없고 텅 비어 있죠. 그리고 좌충우돌 어디 가야 될지도 모르고 진리도 없고 깨닫는 것도 없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고 완전히 분리된 상태 그렇죠. 하나님의 보아하심 행복도 없고 모든 것이 다 없는 살아있으나 동물 같은 그런 삶 네페시에요. 말 그대로 그냥 살아있는 영혼에 불과해 살아있는 영혼 영적인 존재가 아니죠. 육체가 되어버렸으니까 거기에 이제 여러분 창조될 때 그 상태에서 창조될 때 말씀이 빛으로 임하고 성령이 운행하시므로 창조가 되는데 그냥 창조됐어요. 일곱 날까지 갔잖아요.
 
맞아요. 7날에 안 가고 첫날로 끝난 게 아니죠. 일곱 날까지 가서 완성이 됐죠 그러니까 여러분 창조사역의 세 가지 요소 빛과 성령 염 날이라는 거예요. 이 세 가지가 있어야 되죠. 이게 여러분 창조의 모델이죠.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말했던 1번 그림 바로 생명의 설계도에 이 세 가지 요소가 없으면 안 되는 기억납니까 그러면 이대로 여러분 혼돈공학과 말 그대로 동물적인 우리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이 세 가지 요소가 우리에게 들어와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내셨죠 그러면 하나님 사람이 육체가 되고 난 후에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똑같은 게 이게 들어와야죠 세계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럼 이 세계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면 되겠죠. 너무 간단한 거예요. 근데 우리는 여러분 막 교회를 다녀도 이게 잘 안 되고 있는 게 여러분 제가 이 그림이 이 그림을 좀 이따가 설명을 드릴게요. 그걸 잘 꿰뚫으셔야 돼요. 오늘 여기서 완전히 꿰뚫으시고 문제 해결을 완전히 하셔야 합니다. 예 안 되면은 계속 엉뚱한 걸 쫓는다니까요? 여기에 막 은사도 들어가고 막 뭐 의사 치유 축사 기적이 일어나고 막 이런 것들이 일어나는데 예수님이 기적만 일으키던가요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은 전부요 창조의 비유 상징이 전부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보세요.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되죠. 그러면 창세기에서 이걸 딱 못 박아 놓은 거예요.
 
이 새 이걸 통해서 혼돈공화가 죽어있는 너희들에게 내가 생명을 불어넣어서 완성하겠다라고 딱 못을 박은 거예요. 그게 일장일절이라고 그랬죠 하나님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다음에 근데 이 창세기 일장일절도 땅이 이미 있지 않았던가요 땅이 혼돈하고 창조하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잖아요. 그것도 차라리 사실 보면 새 창조예요. 그러니까 그게 이미 다 보여준 거예요. 거기서 구약은 그림자라고 그랬죠 아멘 그러면 이 세 개가 오면은 창조가 일어나잖아요. 창조는 다른 말로 구원하고 똑같은 거죠. 이 혼돈과가 죽어가는 나를 살려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는 거잖아요. 그게 구원이에요.
 
여러분 빛만 들어온다고 아멘에서 예술인만 영접한다고 구원이 끝난 건가요? 아니 이걸 가야 돼 이걸 요 이게 있어야 된다니까요? 이것까지 가야 돼 그래서 현재 과거 미래 구원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다 일어나야 된다고 우리에게 이해 가시죠. 그래서 여러분 이렇게 딱 기술을 못 박으셨어요. 하나님이 이걸 통해서 이게 삼일체 하나님이죠. 하나님은 요걸 통해서 요거까지 가서 완성하겠다라고 계획하셨죠. 이게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 역사를 통해서 완성하겠다. 이 말이죠. 이게 하나님의 형상이죠. 그런데 이게 하나님의 신이 떠나버리시니까 이제 원래 다시 고깃덩어리로 돌아가 버린 거죠.
 
우리는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거기서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 행복에 이루고자 잃어버린 걸 회복하고 그 자신이 만들어내고자 했지만, 불가능한 거예요. 하나님이 오셔야 되는 거예요. 이게 그림자라고 그랬죠 맞아요. 구약은 그림자로 보여주고 그럼 실체 실체는 뭐예요? 그 실체는 예수님의 실체잖아요. 그죠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죠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어요. 똑같이 일이 일어날 거 아니에요. 이거 이걸 예수님이 빛이니까. 그렇죠. 잘 보시라니까 계속 했던 거예요. 맞아요. 고깃덩어리 우리에게 여러분 누가 왔어요.
 
이제 빛이 와야 되잖아요.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죠 맞아요. 이거 다 한 거예요. 여러분 새 창조의 메커니즘을 다 한 거예요. 지금 다시 또 한 번 설명하는 거예요. 성령이 우리에게 또 오셨나요? 아니 보세요. 예수님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혼자 오신 게 아니죠. 요단 강의에서 새로를 받고 나니까 어떻게 됐어요.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죠. 예 말씀과 빛과 성령과 그다음에 이제 요음이 빠졌잖아요. 요음 어디 있어요. 도대체 그러면 예 용은 어디 있어요. 예수님이 오늘날 지금까지가 한 날이다. 내일까지 두 날이다.
 
이렇게 안 하셨잖아. 이 용은 도대체 뭐예요? 그러면 보세요. 참석에 보면 날이라는 게 딱 나와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요입니다. 이는 첫째, 날이라 둘째, 날이라 셋째, 날이라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 계속 나오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저녁을 뭐라고 그랬어요. 다 까먹었어요. 교환 교환 뭐의 교환이에요. 빛과 어둠의 교환이죠. 어둠으로 우리가 죽음으로 또는 혼란으로 없는 것으로 충만했었는데 이제 빛이 들어오니까 빛과 어둠이 점점 어둠이 없어지고 빛으로 바뀌어 가는 걸 말해요.
 
혼란이 없어지고 질서가 세워지고 진리가 없던 것이 진리가 세워지고 생명이 없던 것이 생명이 살아나고 이게 점점 요미라고 이게 그게 하루 이틀 사흘날 지나니까 점점 많아져서 일곱 날까지 가서 요렇게 됐죠 맞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왔었을 때도 그런 일이 일어나야 될 거 아니에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여우면 어떤가요 뭘로 그걸 볼 수 있어요.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 빛과 어둠이 생명과 사망과 생명의 교환이 일어났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사망과 생명의 교환은 무슨 일로 일어났어요.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일어났잖아요. 맞아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부인과 십자가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했어요.
 
나를 따라오려거든. 매일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해요. 매일 그 매염 이해 가세요. 매염 이걸 반복해서 계속 너희가 죽고 살아나고 죽고 살아나고 그렇게 하라는 거잖아요. 맞아요. 그게 참빛을 받으면은 우리 안에 있던 어둠이 죽죠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목격한다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그 안에 크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게 죽은 자가 살아나는 거죠. 바뀌는 거잖아요. 이게 저녁이잖아요. 교환이잖아요. 뭐로 십자가로 니가 예수님과 말씀이 들어오면 내 안에 있는 이런 것들이 말씀을 한 게 죽어야 돼요. 그러면 다시 부활하죠. 그게 산 거죠. 부활할 때 어떤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거잖아요.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여 내 안에 크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요렇게 되는 거잖아요. 맞아요. 이제 이해가요 위험이 뭔지 아시겠어요. 이게 바로 십자가를 말한 거예요.
 
여러분 이 과정을 거쳐야 되는 거예요. 그럼 근데 여러분 우리가 안고 있는 이 모든 문제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야 될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문제 해결이 될까요? 이 고깃덩어리 안에 모든 문제가 다 있죠. 그렇죠.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육체가 되니라 그게 문제 본질이잖아요. 그러면 그게 없어져야 되는 거잖아요. 그게 없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말씀과 성령과 요움이 있어야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줬죠 우리도 이게 있어야 돼요. 우리는 요 두 개는 다 하는 것 같아요. 교회 가면은 근데 아니 이거 두 개 다 아니에요. 이건 더 없어요. 위험이 뭔지 몰라요.
 
이게 변화가 있어야지 뭐 변화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교회 다니면 변하지도 않는데 뭔 소용이 있어요. 변하던가요 왜 안 변할까요? 창조가 일어나야 되잖아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이 이 창조의 모형으로 오셨죠 실물로 그럼 예수님도 똑같이 자신이 말씀이었고 성향을 입으셨죠 그러면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 땅이 어둠이었죠. 바리스인들과 이방인들 충만해서 다 죽어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그럼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거기에 사는 역사가 일어나야 되겠죠.
 
사는 역사가 예수님이 오기만 하면 일어나던가요 예수님이 성령을 받고 나가서 사역하니까 병자가 일어나고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회복되고 이게 전부 창조사역을 상징으로 말해주는 거라고 이해가요 말씀으로 새롭게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창조가 일어났으니까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을 있고 말씀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이 땅에도 창조가 일어나야지요 병만 고치면 되겠어요. 그건 상징이라고 그러니까요? 여러분 예수님이 병 고치는 자들이 따라오니까 어떻게 숨어버리죠 이 사람들이 나를 무슨 의사로만 생각하네 그게 예수님은 의사가 아니고 결혼하러 오셨잖아요. 우리랑 그러니까 숨어버리는 거예요. 그 너에게 보여줄 기적이 없다고 그러죠 요나의 기적밖에 없다.
 
그게 죽었다가 살아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잘 보세요. 이 모델대로 이게 그 모델이죠. 하나님의 형상이 이 빛과 성경에 임하니까 여러분 7날 영업으로 해서 임하니까 하나님이 형상이 됐잖아요. 이게 창조의 모델이죠. 그러면 이 빛이신 예수님이 오실 때나 예수님은 자신을 참 진짜 빛 이게 이건 진짜 빛이 아니라는 거죠. 이게 빛의 그림자 모형 요거 진짜 빛 진짜 빛이 이제 진짜 창조가 일어나야 될 거 아니에요. 맞죠.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창조사에게 일어난 거예요. 병고치러 오신 게 아니고 그건 하나의 상장이에요.
 
상징 병을 고쳐서 회복되는 것이 여기에 한 부분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병 고치는 눈 뜰 때도 보면은 여러분 눈에 막 자신이 흙을 비벼서 침을 뱉어서 붙여버리고 실루암으로 가서 회복되어 보이는 눈으로 왔다고 그랬죠 여러분 창세기에서 눈이 밝아졌는데 이 영은 어두워졌죠 그건 뭔가 하면 예수님이 들어오므로 눈이 떠지니까 영이 밝아졌다라는 거예요. 소경이 눈 뜬 건 그걸 말하는 거라고 그게 구원이잖아요. 이걸 말하는 거예요. 이걸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된 걸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내 제사함을 받았다.
 
그러니깐 낳아서 가는 자들에게 뭐라고 그러는가 하면은 모세의 법에 정한 대로 어디야 거기 제사장에 가서 내 몸을 보이고 뭐 하라고 그러죠 그게 뭔가 하면은 그 제사장으로 한테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은 거룩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요? 웃을 초로 뭐 씻고 바르고 뭐 이런 게 있는데, 그게 뭔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요. 그러니까 병 고치는 곳 기적을 일으키는 것 전부 다 이 스님이 하신 말씀은 전부 십자가를 말하는 거였어요. 그게 십자가로 통과해야 부활연합해서 완성이 되죠. 그렇죠. 그게 위험이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준 건 전부 그거라고요. 사실은 예수님이 참빛으로 오시고 성령에 임하셨으니까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새롭게 창조가 일어나야죠 그러니까 그 땅도 살아나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도 살아나야 되잖아요.
 
그걸 보여주는 게 병을 고치는 거고, 기적이 일어나는 거고, 이것들을 그 과정을 하나씩 비유로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해가십니까 그래서 이것과 똑같은 이게 그림자니까 실물이 왔으니까 똑같이 창조가 일어나야 될 거 아니에요. 맞아요. 창조의 위험은 십자가를 통해서 일어났죠. 그러니까 저녁이 되면 아침에 내 안에 있는 이 육적으로 살아있던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죽으니까 부활 연합해서 일어나니까 그게 새 생명이죠. 그게 저녁이죠. 변했잖아요. 아침이 됐다. 아침에 빛이 확 뚫고 들어오는 거라고 그랬죠 그렇게 된 거 아니에요. 이게 빛은 생명이니까. 죽어있는 내가 살아나죠. 그게 변하는 거죠. 그게 염이잖아요. 일곱 날까지 가야 되는 변해서 7날 가야 되죠. 그래서 7날 가면 어떻게 돼요. 문제는 다 없어지는 거죠.
 
문제 해결이 되는 거죠. 맞아요.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아니면은 병 뭐 하나 고치고 문제 하나 해결하고 막 이런 거에만 신경을 신앙생활 거기에만 집중하니까 이게 다 틀린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것은 전부 구현사역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의 상징이었다니까요?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참빛으로 오셨고 성경을 입고 활동하니까 당연히 여러분 창조의 사역이 일어나 구원이 일어나는 걸 말하는 거예요. 전부 예수님이 그래서 하나님이 일을 한다고 그랬잖아요. 하나님께서 자신이 안에 계셔서 그 일을 한다고 하나님의 일은 이거죠.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그 일이 일어나야죠 그건 바로 창조예요. 여러분 죽은 자가 살아나는 거죠.
 
병 고치는 게 핵심이 아니라고 기적을 일으키는 데 핵심이 있는 게 아니라고 500 이어를 먹고 졸졸 따라오는 그런 것을 예수님이 좋아한 게 아니라고 다 가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가라 안 해도 다 가버리잖아요. 이해 가요 핵심을 놓친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그 일이 똑같이 일어났죠. 맞아요. 당연히 똑같이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요음이 들어가야 되는 그게 십자가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그래서 매일의 십자가라고 한 거예요. 예수님의 매례십자가는 그런 뜻이에요. 매염요 일곱 날 안으로 들어가서 말씀과 성령으로 지어져 가라 그걸 말하고 있는 거 이해가십니까 그게 예수님 자신이 원래 우리 모습이었죠. 여기에 비밀이 큰 비밀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우리와 똑같은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잖아요. 죄는 없지만, 근데 그가 어떻게 완성이 돼요.
 
십자가를 지고 죽고 부활해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연합하죠. 새롭게 되신 거죠.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 창조를 그대로 보여준 거잖아요.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서 우리는 말씀과 성령으로 죽고 십자가로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게 되는 거죠. 하나님 예수님도 하나님과 연합 내 안에 하나님께서 행하셨다 그게 이루어졌죠 이해갑니까? 그래서 우리에게도 여러분 이 문제 해결이 일어나려면 성형이 임하시고 말씀이 들어와야 되고 위험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똑같이 일이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나려니까 어떻게 했어요. 성령이 오셨죠 맞아요.
 
빛이 우리 마음으로 임했습니까? 아니면 빛을 보고 있어요. 열심히 보고 있죠. 눈이 밝아서 보고 있으니깐 안으로 안 들어오면 어떻게 돼요. 창조가 안 일어나잖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 게 그거라니까요? 그러니까 교회를 다녀도 문제 해결은 절대로 안 돼 이것 해결되면 저거 터지고 왼쪽 막으면 오른쪽이 터지고 앞에 막으면 뒤통수 터지고 계속 반복이 되면서 하나님이 깨달으라고 하는데 못 깨닫고 죽을 때까지 안 깨달아지는 거죠. 그게 맞아요. 예수님은 영접했잖아요. 예수님은 영접했는데 들어오긴 했는데 이 예수님을 안 따라가지 매일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매일 요 십자가로 가야 되는데 안 가고 예수님이 가셨으니까 이제 나한테 필요한 거를 문제 해결이나 해 주세요. 이게 기도잖아요. 문제 해결이나 해달라고 예수님이 문제 해결하러 오신 분이 아닌 거예요. 본질을 바꿔서 문제가 없게 하러 오신 거지 우리는 그걸 착각하니까 이게 신혼생활이 안 됐던 거예요. 안타깝게도요 주요 헛살았네요. 그 말이죠. 지금 예 그래서 이 여러분 보세요. 저녁이 되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게 있어야 된다. 그래야 창조가 일어나잖아요. 그건 변화를 말하는 거죠. 더러운 성질이 좋은 성질로 저녁이 되니 바뀌어 가는 거예요.
 
뭘로 찬빛이 말씀으로 들어오고 성경이 불가친에게 임해서 기름을 부어서 일곱 날로 굴러가야지요 구르는 게 집착하죠. 그러니까 여러분 말씀이 밖에 있으면 안 들어오잖아요. 여러분 성경책이 밖에 있죠. 이해 가는가 몰라 지금 성경책이 밖에 있어 지금 안으로 안 들어오고 그러니깐 변화가 일어나겠어요. 내 속에 밖에 있으니까 밖에 있는 걸로 보고 배워서 행하는 걸로 가지 그러니깐 바리세인 전부 바리세인 돼버려 외모만 자꾸 행해서 바뀌어 가는 걸로 근데 예수님은 나는 외모를 안 보고 마음의 중심만 본다 하니까 이게 난리 난 거잖아요.
 
이게 완전히 꼬이는 거잖아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왜 안 되는지 이제 아시겠어요. 창조가 일어나야 되는데 안 일어나는 거예요. 갑갑해 죽겠죠. 아무리 해도 안 되죠. 교회 아무리 오래 다녀도 더 안 되죠. 더 바리스인 되죠. 더 율법주의자가 돼버리죠 갑갑한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신이 임하고 말씀이 임하는데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신은 영이죠. 성령이죠. 그런데 성령이 우리에게 여러분 임하고 하나님의 영이 또 있어요. 말씀이 영이라고 그랬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그랬죠 그러니까 말씀이 0으로 내 안으로 들어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살리는 것은 0이니 6은 무익합니다. 그러니까 육체가 된 우리가 보는 이 성경 보는 성경 이건 무익하다 그건 그냥 의문이라고요. 법 조항이라고요. 문자라고요. 이해 가나 모르겠어요. 빛이 안 됐다고 그게 밖으로 그냥 확 비치는 거예요. 우리 안으로 안 비쳤다고요. 이해 가시죠. 정말 이해 가요 음 하나님은 영이시잖아요. 그래서 영이 되려면은 영이신 하나님과 연합해야지 우리 육체로는 하나님과 연합이 안 돼요.
 
그걸 좀 아시면 좋은데 이해 가십니까 자 이제 설명을 기준으로 표를 보세요. 여기 보시면 맨 왼쪽이 창조가 일어났고 창조가 일어났는데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이죠. 그런데 죄가 들어왔죠 죄가 들어오므로 하나님과 원수 됐죠 분리됐죠 근데 그 아래 보면 빛과 성령과 일곱념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됐죠 이게 창조죠 이 새 창조의 모델이라고 이게 이게 지금 여러분 생명의 설계도라고 제가 보여드렸던 1번 그림이에요. 1번 그림의 모든 문제 해결이 거기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똑같은 역사가 있는데, 예수님은 참빛으로 오셨고 성령이 비늘같이 임하셨고 그다음에 예수님이 행하신 건 전부 십자가였잖아요. 자기 부인과 십자가 그게 요미라고요.
 
일곱날까지 가는 용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까. 우리가 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여러분 말씀이 빛으로 내 안에 들어오는 건 0이 돼야 되고 영적인 말씀을 깨달아야 하는 거고, 두 번째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해서 기름을 부으셔야 되고 성경과 능력이 우리에게 충만해야 되고 그 다음에 7요움을 7가지 우리 염 하는 하루 둘 셋 넷 굴러가야죠 그게 예술고리스도 십자가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말씀과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창조가 일어나야 되잖아요. 무조건 왜냐하면, 이렇게 창조가 일어났듯이 반드시 우리에게도 창조가 일어나죠. 일어나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실물로 보여준 것처럼 우리 아내도 그렇게 실제로 일어나야죠 이게 그림자예요. 예수님이 오신 게 실물이죠.
 
실물은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연합해서 하나님을 형성하게 되셨죠 우리도 말씀이 오고 찬빛 영적인 말씀 살아서 운동력을 가진 말씀이 0이죠. 말씀이 영으로 깨달음으로 들어오고 거기에 기름 부음이 임해야 하고 그 다음에 기름 부음의 능력을 통해서 내가 내 자신을 부인하고 나라고 생각했던 내가 행복해지려고 했던 그 모든 것이 아니다. 라는 걸 깨달으셔요 그럼 그때 나를 죽이기 시작하겠죠. 그게 십자가죠 십자가를 통해서 내가 육체에 속한 것이 죽어지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혔느니라 여기서는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이 빛이 들어오니까 나눠졌죠 분리되고 아래위로 분리되고 그다음에 씨가 떨어져서 올라왔죠 거기에 십자가가 다 들어가 있고 넷째, 날로 가면 계속 말씀과 하나가 되니까.
 
말씀이 나아지고 나아지고 많아지고 어둠은 없어지고 없어지고 없어지고 그게 용이잖아요. 우리 아내도 그 일이 일어나는 게 십자가를 통해서 나는 없어지고 예수님의 생명이 자꾸 더 부활연합되고 없어지고 연합되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이 없어지죠 그게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죠. 용 집착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성령이 충분해지고, 말씀이 여기로 들어오면은 내가 참인지 아닌지 가짜인지 진짜인지가 나누어져서 보여지게 되잖아요. 여러분 진리의 말씀이 들어오니까 다 알아지죠 그게 문자로 볼 때하고 진리의 말씀을 볼 때 완전히 다르죠 로마 살 때 엄청 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아 이게 아니구나라는 게 그게 0이라고 그게 하늘과 땅이 분리되는 거라고요. 윗물과 아랫물로 나눠지는 거라고 빛과 어둠이 나눠지는 거라고 그게 내가 어둠으로 충만했는데 어둠의 율법은 어둠이었죠. 그게 벗겨지잖아요.
 
그게 빛이죠. 그게 0이라고 그게 0 영적인 말씀 깨달음 말씀이 빛으로 들어오니까 아이고 내 안에 어둠이 많구나 이게 깨달아지고 성령과 능력을 통해서 그것이 십자가로 가서 죽어지고 다시 부활 연합해서 예수 그리스의 생명이 내 안에 연합해서 하나로 이루어지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래서 그리스도 형성이 이루어지기까지 간다고 그랬죠 그러면 7날 이게 이루어지는 거죠. 이해가요 그 일이 그대로 일어나야 되는 지금 우리가 말씀을 볼 때는 빛이 들어와야 되는 거예요. 말씀이 지식으로 문자로 머릿속에 있으면 율법이 이거 밖에 있으면 지켜야 할 대상이죠. 안으로 안 들어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을 새 언약을 너희에게 주리니 너희 마음에 새긴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은 쇄신을 너희에게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부어주리니 너희가 내 말씀을 지킬 것이오 그랬죠 지키면 복 받잖아요. 그렇죠. 못 지켰잖아요. 아담은 예수님이 지켰잖아요. 지키는 예수님이 내 안으로 들어왔으니까 내가 지키는 거죠. 지키는 존재로 되어가는 거죠. 이해가요 그래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십자가 안에 7명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부활할 때 하노니가 연합돼서 완성이 됐잖아요. 그래요.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연합이 안 된다고 그랬죠 맞습니까? 그림으로 성경열기 5번 6번 연합은 오직 예수군에서 십자가를 통해서 일어나는 걸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죠. 그러면 여러분 보세요.
 
이제 그 다음 그림으로 가면은 여러분 하나님과 단절 분리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연합이 됐죠 다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예수님이 우리 안에 구세주로 들어오셨죠 예수님이 구세주로 들어오셨어요. 구세주는 요게 구원의 모델이죠.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구원이 일어나야 되는 거잖아요. 구원은 내 안에 있던 것을 없애야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그게 예수님이 들어오면 시작이에요. 예수님이 들어왔으니까 이제 끝난 게 아니고 이제 참빛이 들어왔으니까 요모로 가야 되잖아요. 안 가고 들어오면 우리는 끝난 걸로 하고 그때부터 교회에 와서 원하는 걸 구해서 채워 넣는 게 신앙생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완전 헛다리 짚은 거라고요.
 
이해 안 가시는 것 같아요. 오늘 진짜 중요한 내용이에요. 방송도 안 되잖아. 그러니까 별수로 다 썼는데 자 보세요. 이 창조인 모델이 지금 우리 안에 일어나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여러분 보세요. 이 상태에서 예수님을 영접해요.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과 연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거죠. 완성된 게 아니에요. 이 수님이 오시면 빛이 임하면 빛이 그냥 임하는 걸로 끝이던가요 어둠을 나눠야지 아랫물 위를 나눠야지 그리고 씨가 떨어져 생명이 올라와야지 풍성해지고, 많아지고 형상이 이루어져 여기까지 가야죠 우리 안에 이루어졌어요. 형상이 안 이루어지게 빛이 안 들어오고 밖에 있으니깐 문자로 계속 문자로 밖에 있잖아요. 성경이 그러니까 안 들어오니까 일어나겠어요.
 
그리고 성경도 요즘 없잖아요. 밖에 있지 우리처럼 확 불임하고 기름보험 사역하고 이런 많이 없어요. 해도 다른 방향으로 해 제가 좀 이따가 여기서 말씀을 드릴게요. 자 이걸 마무리할게요 이 상태에서 예술림이 들어왔잖아요. 그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죠 이 모델대로 7날까지 가서 완성이 되는 게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영접하자마자 다 된 걸로 착각한다니까요? 구원은 현재 구하고 미래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이 이루어지는 데까지 가야 될 거 아니에요. 그렇죠. 맞아요. 디머니도우스 4장 18절 에비소스 2장 12절 여러분 구원을 이루어 가라 맞아요.
 
에비소스 2장 8절 9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어 그다음에 빌리버스 2장 12절로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룩하라 그게 성화죠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 완전히 연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체로 변하는 거죠. 우리가 그렇죠. 하늘의 형체를 입는 거 여러분 고린도 없어 고린도서 15장에 가면 나오잖아요. 그렇죠. 그게 영화예요. 예수님의 몸처럼 우리가 그렇게 변하는 단계 그거는 재림세 이루어지죠 거기까지 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 예수님 믿는 걸로 끝난 게 아니면 믿으면 그거는 이게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그렇죠. 일어나서 바뀌어 가고 있어요. 안 바뀌어가고 있잖아요. 계속 원하는 걸 취하는 게 신앙생활인 줄 알고 있으니까 안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 안에서 우리가 다 죽어있는 그대로 그래서 예수님하고 영접하면 이제 예수님이 영접하면 우리 성령에 임하죠.
 
우리에게 그러면 새 이 창조가 일어나야 될 거 아니에요. 이 창조는 여러분 안에 있는 어둠이 물러가는 게 창조잖아요. 다른 말로 역창조라고 그랬죠 내 안에 있는 원치 않는 나가 다 깨뜨려져 나가야죠 그걸 십자가로 일어나는 거죠. 예수님이 간 길이 그대로 우리가 가는 거죠. 왜냐하면, 내 안에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자기의 길로 가겠죠. 그래서 내가 길이라고 한 거예요. 그 길로 우리는 가는 거예요. 근데 그 길로 갈려니 뭐를 어떻게 온다고요. 매일 내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십자가를 지고 내 길로 따라오라 그랬죠 근데 그렇게 따라갑니까? 당연히 힘들죠 내가 하는 게 아니니까 왜 힘들고 왜 힘들어요. 오셔서 나를 죽이니까. 힘들지 창조를 지금 하고 계시잖아요.
 
새 창조를 새 창조를 하시니까 힘든 거잖아요. 그게 문제 해결이라는 게 보여요. 그게 문제 해결이라고요. 내가 행복해지는 길로 지금 가고 있는 거라고 그게 맞아요. 하나님의 형상 이게 여러분 복이라고 그랬잖아요. 근데 교회 오면 다 복 받은 걸로 이미 착각 물론 완성이 돼 있지만 그 과정을 가야 된다고 몇 번 제가 말씀을 드린 내용이 그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상태에서 두 부류가 나타나는 거예요. 한 부류는 말씀을 영으로 성령의 기름 부부심을 통해서 자신의 죽에 관한 역창조를 통해서 새 창조가 완성되는 유효 과정으로 가고 그렇게 가고 있어요. 다른 부류는 뭐예요? 이 아래 부류 재화 사망의 법에 묶여 죽어요. 로마스 6장 7장 그 말이에요. 여러분 이해갑니까? 그게 왜 그런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해서 깨져서 완전한 연합 하나가 되죠. 그게 위에 길이에요. 이 길이에요. 이 길 자기 부인과 십자가 역창조를 통한 새 창조가 일어나는 그 새 창조의 메커니즘 안으로 들어가는 게 생명의 길이죠. 내가 길이다. 그 길로 예수님이 그 길로 가셨죠 그러니까 그게 길이라고 그래서 하나님과 보자 우편에 하나가 앉아 계시죠. 우리도 예술인과 안에서 이미 앉아 있다고 그랬죠 그럼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교회 왔는데 이쪽으로 간다니까 이쪽으로 가는 게 왜 그럴까요? 그게 아래예요. 여기 아래 이거예요. 여러분 보세요. 이게 뭔가 하면 여러분 위에 보세요. 파란색으로 쓰는 것이 같은 말씀 같은 성형인데 그러나 다른 말씀 다른 성형이에요. 이게 웬일입니까? 여러분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여러분 분리해서 연합으로 가면 다 해결되죠. 모든 게 다 해결됩니까? 아멘 해결되고 있어요. 예 해결되고 있어야지 이제 3년이 넘었잖아요. 3년이 넘으면 이제 시작되는 거예요. 완성되는 줄 아시고, 또 여기까지 끌려오셨는데 자 보세요. 이거 이제 이 도표예요. 말씀과 성려 하나가 빠졌잖아요. 요미 있어야죠 이게 요미죠 이게 이해 가요 이게 요미라고요. 그게 예수님은 자기 부인과 십자가로 간 길이죠. 그게 날 매일 날 쫓아오는 게 그게 날이라고요.
 
근데 여러분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시면서 여기 왜 내가 같은 말씀 같은 성령인데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른 말씀 다른 성령으로 받아들여요. 쉽게 이야기하면 교회에서 원하는 걸 채우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게 다른 말씀 다른 성경이에요. 다른 성령이라고요. 저녁이 되면 아침이 돼야 되잖아요. 교환이 안 이루어지는 거예요. 교환이 안 이루어진 저녁도 아니야. 이건 그냥 그대로예요. 옛날 모습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을 영접을 했는데 예수님이 안에서 힘을 못 쓰고 계시잖아요.
 
여러분 씨 뿌리는 교회 보면 예수님을 다 죽이죠. 어떨 때 죽여요. 세상에 욕심 부릴 때는 예수님이 다 죽어버리지 자기가 말라 죽어버리잖아요. 크다가 우리도 처음에는 으아 하고 교회 와서 막 좋아서 난리를 치고 막 천사 같았잖아요. 한 며칠 동안 그렇죠. 안 그랬어요. 막 둥둥 떠다녔죠 이렇게 좋을 때가 있나 그러면서 달라는 대로 다 줘버리고 그때 막 했어야 하는 건데 야가 빠져가지고, 교회도 책하러 온다니까요? 예수님이 다 죽어버렸어요. 영접을 하긴 했는데 씨는 들어왔는데 다 마르면 마귀가 채워버리고 말라버리고 그렇죠. 염려 근심하면 말라버리고 세상의 것을 쫓아가면 다 죽어버린다고 했죠. 없어요.
 
근데 껍데기만 있어 가지고 달라 달라만 하는 거예요. 교회에서 왜냐하면, 땅에 있을 동안에 매일 그걸 행복해지려고 막 배우고 채우고 했던 것들을 교회에서 똑같이 예수님한테 그걸 해 달라는 거지 근데 예수님이 왜 오셨어요. 그거 해주러 오신 분이에요. 기적을 일으키고 이적을 일으키고 병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냐고 아 본질 이야기를 하잖아요. 지금 창조 예수님이 오면 창조가 일어나야 되잖아요. 그렇죠. 이 모델대로 창조가 일어나야 될 거 아니에요. 그건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면 이게 일어나야 되는 거잖아요. 말 그대로 내가 변해 가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교회 다니면 안 변해요. 안 변해 안 변한다. 해요. 아예 절대 안 변한다고 말하잖아요.
 
먼저 그러니까 나도 성질 더러운 목사니까 알아서 해 이거부터 가르치잖아요. 먼저 안 그래요. 안 변한다. 하잖아요. 예수님은 변화시켜야 되는 거예요. 말씀이 오면 무조건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이 모델대로 아니요. 맞잖아요. 그 일이 일어나야 되는데 우리는 교회에 와서 변화로 오는 게 아니고 원하는 걸 채우러 교회에 오기 때문에 그게 다른 말씀이고 다른 성령이 돼버렸어요. 여러분 위에 거 변화에 집중을 하지 않고 보이는 문제 해결에 집중을 한다. 보이는 문제 해결에 집중을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은 창조가 일어나야 해결이 되잖아요.
 
그런데 이 말씀이 와서 나를 변화시켜서 새 창조를 통해서 이게 되면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을 이미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다 했으니까 이제 원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필요한 걸 채워주시고 이렇게 가는 거예요. 그렇게 가버리니까 이게 안 되는 거죠. 변화가 안 일어나잖아요. 창조가 일어나야 되잖아요. 창조가 일어나려면 먼저 뭐부터 일어나요? 역창조를 통한 새 창조 그죠 이게 일어나야 되는데 이건 나를 완전히 깨뜨려 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안 되는 거예요.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아무리 은사고 막 신비주의가 기적이 일어나고 병거 치고 일어나도 안 돼 안 돼요. 오늘날 교회 말씀과 성령이 다 있다고 합니다.
 
이 되는 곳으로 가면 이 말씀이 영으로 임하죠. 성령이 오셔서 기름을 붓죠 기름 부분이 마음에 묶인 게 풀어지잖아요. 다 이렇게 막 변화가 일어나잖아요. 내 안에 말씀을 따라 일어나죠. 말씀도 0이고 성형의 영이고 영이 와야죠 영이 떠나셨으니까 영이 이렇게 오셔야죠 그런데 이 아래로 가는 것 보세요. 어떻게 하면 이 말씀이 뭘로 오는가 하면 다 문자로 와요. 법으로 와요. 법 율법 지식으로 와요. 그러면 이건 밖에 있는 거죠. 밖에서 나를 어떻게 창조해요.
 
빛이 들어와야 창조가 일어나는데 그 빛이 어디로 내 마음에 비추었다고 그랬죠 고려도서 사상에 내 마음으로 이 문자가 내 마음으로 들어오려면은 살아 있어야 0이 되는 거잖아요. 로고스 올레마 말씀드렸죠 우리는 껍데기만 지금 계속 공부하고 있거든요. 율 법을 많이 배우면 이제 어떻게 돼요. 사법고시 보면 뭐가 돼요. 판사가 되잖아요. 여러분 다 판사님들이야 여러분 성경 66권을 다 필하고 오셔서 판사가 되어서 이제 쇄신자 들어오면 너 에베소스 1장 2절 이게 아니야. 10시 연락에 기도하라고 했지 왜 안 해 이렇게 가는 거지 근데 자기는 어떻게 해요.
 
자기는 똑같이 그 속에 혼돈 그거 뭐 충만하죠. 혈기 분노 이런 거 그렇죠. 염려 근심 두려움 분리해서 나타나는 이 문제 질병 고통 괴로움 아픔 이런 것들을 그대로 있고 이건 엄청 공부했죠. 머리로 다 판사가 됐어 전부 다 판사가 되면은 뭐 병을 안 앓아요. 판사는 감기 안 걸립니까 이거 두 살 걸려 골치 아파서 잘난 척 해야 되고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 여러분 말씀이 그래서 이게 바리세인들이 말씀이 밖에 있어서 지키는 대상이 됐죠 우리가 이렇게 법전 보듯이 이걸 보면은 우리는 곧바로 행동을 해서 복을 받아야 되잖아요. 그게 율법주의예요. 자기 가치를 인정받아야 되죠. 아멘 그래서 고달픈 거야. 얼마나 짐이 무겁겠어요.
 
교회 다니면 다닐수록 짐이 막 무거워서 못 견뎌 무거워서 짐을 안 주는 대로 막 찾아다니지 이게 여러분 두 가지 길로 간다니까요? 이 길로 안 가면 이게 좁은 길이거든요. 이게 생명의 길이거든요. 그건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이거든요. 그게 요미예요. 근데 이건 안 움직이잖아. 안에 저녁이 되면 아침에 안 되고 있잖아요. 지금 이게 저녁이 되면 없잖아요. 내 속에 그대로 있는데, 자꾸 배우기만 하잖아. 머리로 안 들어왔잖아. 언제 변해요. 안 변하지 그러니까 그 안에 죽어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스인들한테 다 회칠 안 묻으면 죽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에서 이 성경을 이렇게 가르치면 다 죽어있는 거예요.
 
행하는 것만 있죠. 그 죽은 사람들이 그 차 있으면 큰 무덤 큰 공동묘지 예 이해 가요 거기에 선이 나오나요? 인간이 보는 선은 잔뜩 나오죠. 규모도 커지고 화려해지고, 와 멋지잖아요. 근데 그 속에 생명이 없으면 끝이잖아요. 근데 이렇게 간다니까요?
 
말씀을 전부 그래서 말씀이 0이 되어야 0이 들어와야 되잖아요. 영이 떠났으니까 그래서 살리는 것은 0이라 했거든요.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은 0인데 0이 아니고 다 문자가 되어서 밖에 있으니까 못 지켰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새 언약을 주니 말씀을 내 안에 새기겠다고 그랬죠 그리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 내 자녀가 되리라 그랬다 그게 새언약이에요. 그러니까 새언약대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죠 근데 오셨으면 이게 일어나야 되잖아요. 성령이 여러분 내가 죽기 위해서 성령 구하는 사람 있어요. 아니죠. 왜 성형 구하셨어요. 은사 능력 왜 구하셨어요.
 
불 안수 왜 이것 구하셨어요. 이거 문제 해결해 보려고 구했잖아요.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해서 해볼려고 능력을 한 방에 문제 해결해 버리고 아 예언이 탁 일어나서 내일 뭐 할지 가르쳐 달라고 그렇죠. 이사하는 날 가르쳐 달라고 사업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가르쳐 달라고 다 문제 해결이죠. 그게 그렇게 해서 문제 해결이 되나요? 그러니까 우리는 보이는 눈만 가지고 있으니까 이 은사도 외부적으로 보이는 문제 해결에만 이용되는 거였어요.
 
외부적인 외부적인 보이는 문제 해결에만 위해서 은사를 달라고 했고 능력도 있어야 되고 풀도 달라고 했고 내가 그렇게 해서 문제 한번 안 써도 열나게 그래서 받아야 되고 이렇게 이게 여러분 성형이긴 한데 이게 엉뚱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성령이 오시면은 뭐 해요. 7명을 거쳐서 창조가 일어나서 이렇게 돼야 성령이 하시는 일이죠. 성령은 여러분 이 일을 위해서만 오신 거라고 성경에 나타나시면 우리가 이 상태에서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볼 때 그게 분별의 영역인지 분별의 영역이죠. 믿음은 뭐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고 믿음으로 끝까지 쫓아가는 그런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죠. 믿음의 은사 그다음에 영분별의 은사 방언의 의사 방언통별연사 다 0을 아는 것들이죠.
 
맞아요. 능력을 행하는 의사 전부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 나타나심 성령이 왜 나타나요? 이걸 통해서 창조를 이루기 위해서 나타나는 거죠. 그게 뭔가 의사를 통해서 뭐 이걸 위해서 그거는 아주 부차적인 부분이라고요. 질병도 고쳐서 어쨌든 몸도 고쳐지면서 그다음에 내 안에 있는 병도 고쳐져야 될 거 아니에요. 내 안에 말씀을 가지고 그래서 영이 성령 교수님이 칠리의 영으로 오셔서 내 안에 죄가 뭔지 어둠이 뭔지 이런 것들을 보게 하고 깨닫게 하고 그걸 없애도록 십자가를 우리로 끌고 가고 이게 성령이시라고요. 근데 그걸 요것만 오늘 성령 성령하는데 전부 요것만 하거든요.
 
외적인 문제 외적인 보이는 문제 해결을 집중해서 요걸 하는데 이게 에이 해결되면 b 생기고 다시 에이로 돌아가고 뱅뱅 돌아가서 문제 해결 안 돼요. 은사 병 고친 은사 축사의 은사 통해서 병은 이렇게 고쳐지지만 내 안이 변하나요? 안 변하면 뭐예요? 그게 그래서 예수님이 병 고쳐지고 확 따라오니까 숨어버리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문제 해결 그걸로 문제 해결이 되는 게 아니라고요.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되고 그건 보이는 것에 어떤 한 부분에만 해결될 수 있지만 그거를 통해서 하나님은 병을 줄름발이를 일으켜서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돌아와서 복음을 듣고 자신이 없어져서 여기까지 가기를 원해서 하나의 도구로 그걸 하나의 상징으로 보여주신 거잖아요. 근데 그걸 자꾸 본질로 생각을 해서 그걸로 쫓아간다고 그래서 은사 보이는 것도로 막 그걸로 쫓아 신비한 것 쫓아 남들이 못하는 걸 나도 하네 막 그러면서 그게 흥분돼서 만족감을 얻고 그래서 성절이 변하던가요 염려근심이 없어졌던가요 눈이 여러분 환상이 잘 보이니까. 염려근심이 없던가요 아니잖아요. 갑갑해 죽겠어 진짜 그게 아니잖아요.
 
안수 받으면 다 해결되던가요 성질도 안수 받으면 고쳐지던가요 가능성이 있지 왜냐하면, 불이 들어와서 이제 말 시민에게 보이게 하고 나를 끌고 가서 고치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그러니까 3년 반 3년 반 제가 왜 시작이야 그게 시작 제자들도 3년 반 지나니까 성령이 불같이 임해서 끌고 어디로 가야 전부 십자가로 가잖아요. 답답해 죽겠어요. 아직도 이걸 쫓아가서 막 문제 보이는 문제를 어떻게 해버리냐 이 문제는 내 안에 들어와서 이게 일어나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새 창조가 일어나기 위해서 내 안에 오신 거라고 그걸 위해서 우리는 성령을 구하라고 기도할 때 계속 말씀을 드렸죠 그걸 위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하나 반짝하는 걸 위해서 이렇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변화가 안 일어나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요. 그게 그것도 필요하죠. 축사도 그러니까 이제 제가 치유에 대해서 축사에 대해서 내측치유에 대해서 할 거예요. 축사 한번 쫓아내면 끝나나요? 아니 내 안에 있는 그 이 창조가 안 일어나는데 창조가 일어나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돼서 하나님의 형상 바로 평화로우다 평화로우다 천국이 임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문제 해결되는 거잖아요. 그게 본질이에요. 여러분 그런데 이런 데 매달리는 그런데 오늘날 이 두 개 중에 없어 둘 다 없어요. 어떻게 가는가 하면 어떤 데 가면 말씀을 영해만 해요.
 
영해 크 영해만 한다고 그러면 성경 필요 없어 말씀이면 영입만 하든지 문자적인 지식만 연대기로 막 해서 하든지 아니면 아예 율법적이든지 이런 거 이건 없어 근데 이걸 여러분 경우의 수를 나누면 네 가지가 나오죠. 그죠 영적인 말씀 육적인 말씀 이 성령에 나를 깨뜨리러 온 창조의 성령 아니면 은사와 능력 불 이런 것들을 위한 성령 이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죠. 경우의 수 다 안 되는 거예요. 이거 말씀과 성령이 이 일을 위해서 오신 거예요. 그럼 그 일이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만 진리인 거예요. 여러분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 일어나야 된다고 내 안에 그게 안 일어나면은 아니요. 이건 아니요.
 
여러분 속지 마세요. 제발 아니라고 제가 그렇게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시더라고요. 너도 좀 신령하면 알 텐데 막 그럼 여러분 이 아래쪽으로 가면은 사망의 열매를 맺는다니까요? 그렇죠. 로마스 할 때 다 했잖아요. 사망의 열매 생명의 열매 그러니까 성경에 오시면은 성경도 창조의 영이라고 그랬죠 성령께서 창조하시고 다 한 거예요. 여러분 그 그림으로 여는 성경할 때 전부 다 한 거예요. 그 일이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그게 구속사예요. 구속사 구원 그게 복음이고요. 그렇죠.
 
그게 일어나야 되는데 자꾸 말씀이 문자로 율법으로 내 안에 오고 지식으로 막 지켜야 할 대상이 되고 그게 몸의 사욕이라고 그랬죠 에피데미아 기억나요? 희생 재산 이걸 지켜서 내 가치를 인정받는 걸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말씀으로 들어오고 성령과 능력은 막 큰 부를 뿜고 능력을 행하고 병을 고치고 이런 의사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하는 거예요. 나는 안 변하고 안 변하고요. 병을 고쳐도 내가 안 변하잖아요. 여러분 보세요. 예수님이 문둥병이 열 고쳐놨더니, 다 가버리고 하나만 왔잖아요. 그게 예술인과 연합되는 거예요. 그게 이 연합이 돼야 되는데 병 고쳤다고 끝났다는 거예요. 다 했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나도 이제 능력이 있다라는 거예요. 나도 불 좀 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해 가요 성경 수십 번 읽었다라는 거지 이제 알 만큼 다 안다라는 거지 관상도 보이고 불도 나가고 화면 안수를 많이 받아가지고, 이해를 하십니까? 그래서 그리스도 형상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그게 최종 목적지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형상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고 그랬죠 아닌가요 그러니까 여러분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걸 통해서 자꾸 하나님이 부르고 계신 거예요. 돌아와 돌아와 이 창조가 일어나려면 무라는 게 전제가 돼야 되죠. 없으면서 창조가 일어나잖아요. 그러니까 내 안에 세워진 거 다 깨뜨려낼려니깐 그게 길이라니까 그게 안 하기 싫은 거예요.
 
교회 와서 왜 죽어 죽기는 잘 나가도 지금 그냥 그럴 판인데 지금 죽으라고 하니까 이게 교회 싫은 거야. 이제 나하고 안 맞다. 이거지 그렇죠.
 
맞는 교회를 가야지 아멘 그래서 의사의 능력만 하는데만 불불하는 데만 가서 어떻게 팔자 한번 고쳐보려고 하시든지 아니면 야 이게 이형적으로 다 원어로 막 진짜 끝내줘 봐봐 이게 일어나야 되는데 예수님이 오면 그 땅에서 구원이 일어났던 것처럼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내 마음 땅에서 구원이 일어나야죠 그게 염려가 없어지고 근심 두려움도 없어지고 수치도 없어지고 시기도 질투도 원망도 불평도 우울한 것도 실패했고 상처도 이런 중독 증세도 다 없어져야 되는 거잖아요. 그게 신의원사 하나로 다 해결됩니까? 그럼 그 과정으로 가는 것 중에 하나의 방법으로 주신 거예요. 성령에 나타나심 성경이 왜 나타나요? 창조를 하시려고 나타나시잖아요.
 
그 본질을 이해를 못하고 계속 보이는 거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그 화려한 것 화려한 예배 화려한 모습 화려한 뭔 시스템 이런 거에 집중할 우리 눈이 본질을 놓쳐버린 거예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그래서 문제는 해결되는 듯 하는데 안 되는 거예요. 만족함이 없는 거예요. 절대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그 이적과 기적 행하심은 뭔가 하면 전부 십자가 사역을 상징하는 거예요. 다 요한보험 할 때 제가 다 풀어드렸잖아요. 근데 그걸 여러분 병 고치는 그 하나에 집중하게 만들고 거기에 모든 사용에 집중되고 그러면 어떠해요.
 
그게 뭐 심장병이 치료됐으면 염려근심도 치료됐나요? 안 되고 있으면 뭐합니까? 또 생길 텐데 안 그래요. 예수님은 구원자죠 예수가 우리 안에 오시면 그리스도가 되시고 주가 되셔야 되죠. 그건 변화를 말해요. 내가 주에서 예수님이 주가 되려면 내 안에 주인을 행세하는 건 다 없어져야죠 그게 성령이 하시는 역사예요. 요 저녁이 되며 아침 주인이 바뀌어 가는 거죠. 근데 우리는 이미 다 된 걸로 생각하고 지금부터 예수 이름으로 뭔가 행하려고 하는 거예요.
 
능력도 행하려고 하고 을사도 불을 받아서 뭔가 행하려고 하고 사역에 집중하고 나를 사역해 기억하세요. 엉뚱한 데 집중을 하고 있다고요. 그 본질적인 원인이 뭔가 하면 바로 이거예요. 말씀이 있긴 한데 전부 이걸로 있고 성령도 이걸로 있는 거예요. 말씀이 불가침해서 금으로 와서 나를 찔러 쪼개고 깨뜨리는 이 영이 아니라고요. 살아서 운동력을 가지고 있어야 0이죠. 여러분 우리가 말씀 열기가 커요 그러니까 살아서 운동력을 가진 말씀이 내게 와서 나를 찔러 쪼개 어깨뜨리라고요. 그래서 말씀이 내가 불이요. 금이요. 방망이요.
 
망치요 양전물 표백하는 거요 그런 역할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이 말씀이 전부 지식 문자법이 되어서 지켜서 뭔가 오래 해서 헌신하고 뭐 해서 복을 받는 것으로 그런 말씀으로 생각을 해버리는 거예요. 진짜 복은 이 말씀과 성령이 일곱 나라를 통해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다 깨뜨려서 새롭게 창조해서 이게 형성이 되었을 때 그게 복이라고 그러는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복으로 착각을 해서 그걸 구하는 도구가 돼버렸어요. 전부 예수님도 그걸 위해서 오신 분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 내 안에 있는 이 더러운 세상의 것들 생명 아닌 사망의 것들을 싹 쓸어내고 생명으로 충만하게 해서 나와 연합해서 여러분 혼인 잔치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인데 그걸 여러분 그걸 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일곱 날인데요. 그걸 말씀과 숙령에 오면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는 여유기 창세기에 못 박아 나간 거예요. 그래서 개시욕에 가면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 더러운 것들이 다 없어져 버리고 새하늘과 새 땅이 창조가 완성된 모습으로 드러나잖아요. 그게 지금 우리 안에 일어나서 우리 안에 있어야 하는 거예요. 말씀과 성경에 오시면 근데 안 일어나는 것은 둘 중에 뭐가 잘못되어 있다는 거예요.
 
말씀이 이렇게 왔던지 성령이 이런 신비주의나 의사와 능력을 행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고 그 의사와 능력에 집중하는 이런 것으로만 왔던지 본질을 고치러 가야 돼요. 새롭게 창조하러 오신 창조의 영이라고요. 창조주 하나님 예수님이에요. 말씀이 우리 안에 영으로 와서 살아서 역사하면 나를 찔러 쪼개고 깨뜨려서 생명을 새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그게 진짜라고요. 그래야 문제가 해결돼요. 여러분 염려근심을 축사해서 될 것 같아요. 오래된 상처를 축소하면 그건 난데 그건 나를 쫓아내버리면 돼요. 그게 그건 분리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예요. 축사의 대상이 아니라니까요? 이해 가세요. 연합되면 없어지는 거예요.
 
근데 그걸 축사해서 되냐고 그러니까 축사도 잘못 알고 있고 치유도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내적 치유 잘못된 거예요. 물론 제대로 된 부분도 있지만 그게 지속적이지 못한 것은 여러분 하나의 현상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본질로 접근을 못 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요 우리는 제일 큰 오해가 그거였어요. 내 노력으로 내 힘으로 이 분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의사와 능력 말씀 이런 것들도 이용해 보려고 하는 거죠. 그게 안되는 거예요. 창조는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창조의 대상이에요. 성령과 말씀이 오면 내가 그냥 끌려가면서 깨뜨려져 가는 거예요. 내가 노력해서 나를 창조한다고요.
 
피존물이 그게 우리가 하는 짓이에요. 지금 그 율법주의가 하고 있는 짓이에요. 그게 내가 내가 해보려고 그게 죽어야 되는데 그걸 할려고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갑갑해요. 제가 봐도 갑갑해 죽겠는데 못 알아들어요. 여러분 우리 노력으로 절대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됩니다. 여러분 저녁이 되고 아침에 되어야합니다. 변화가 일어나야 돼요. 그 변화 새롭게 창조를 위해서 우리에게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트의 진리의 말씀이고 그리고 진리의 성령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그것이 강물처럼 내 안에 흐를 때 모든 것이 소생하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그랬죠 그게 말씀이 뭐라고 했어요.
 
여러분 내 말하고 그랬죠 나를 먹어라 그러면 너희가 살리라 그 예순이 자신을 말하죠. 전부 그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결국 살리는 건 영이에요. 영 우리 자신이 아니에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고요. 분리된 인생은 절대로 거기에 접근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만이 우리를 연합할 수 있고 그게 십자가였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에게 그거예요. 모든 건 십자가를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하나 뚝 떼어내서 기적이 일어나고 질병을 고치는 그런 수준으로 완전히 격화시켜 버렸어요. 그래서 성경을 오해하니까 우리가 안 변하는 거예요. 망으로 달려가는데도 몰라요. 영이 들어와야 영적인 존재가 되죠. 영적인 존재가 되어야 영이신 하나님과 교류가 일어나죠. 그래야 생명이 되지 않겠어요. 그래야 영이 되어야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겠어요. 유기됨이라 절대 안돼요.
 
그걸 해결하러 오신 분이 이건데 그래서 창조를 해서 이 상태로 만들려고 오셨는데 우리는 그걸 이용할려고 하는 거죠. 기적을 그냥 원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기적을 너희가 아직도 기적을 원하느냐 내가 보여줄 기적은 그것밖에 없다. 라는 거죠.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다 실패한 겁니다. 지금도 이걸 갈기갈기 쪼개서 말씀만 있으면 된다. 어떤 때는 성령만 쫓아서 방어만 하는 데도 있고 의사와 능력만 구하는 데도 있고 불불해서 막 불박동 그래서 우리가 말씀과 기름 부흥 교회가 되면서 이전의 것을 다 버리라고 했던 거야. 하나님 싹 잃어버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거 가지고는 절대로 교회가 될 수가 없다라는 거예요.
 
생명이 살아날 수 없다는 거죠. 그게 이상한 데로 사망으로 달려가는 여러분 그 생명의 길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게 장세기 일정의 생명의 설계도에 1번 그림이에요. 여러분 그게 성경에 전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다 그렇게 해서 다 복 받은 진짜 복이 뭔지 복 받은 자가 다 되셔야 합니다. 아멘 그래서 그 생명의 길로 들어가셔서 생명으로 충만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전두산 이제 끄시면 돼요. 녹화 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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