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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환경을 해석하는 방법 볼 수 있도록 우리 눈을 열어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레일루야 삶의 적용을 위해 오늘 스물네 번째 스물네 번째 여러 환경을 환경을 해석하는 환경을 해석하는 법입니다. 환경을 해석하는 법 여러분 우리는 삶 가운데 크고 작은 환경 크고 작은 일 사건에 항상 노출되어 삽니다. 우리 삶이 그렇기 때문에 혼자 있어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여러분 지금까지 누차 말씀을 여러 번 드렸습니다. 제가 문자와 영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린 바가 있고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때도 언급한 적이 있고 얼마 전에 부흥회 할 때도 여러분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되는가 그때도 말씀을 드린 바 있었는데, 오늘은 종합해서 이제 어떻게 하면 환경을 보는가 여러분 이 환경이 곧 성경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보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은 이것으로 이제 어떻게 하면 환경을 대할 때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런 것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되게 중요한 부분이라 여러분 한 번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하는 것으로 해서 이제 거의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여러분은 어떤 환경이나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일을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대부분의 여러분 우리는 습관적으로 대처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곧바로 대처를 하죠. 간단하게 그렇게 합니다. 아면 어떤 일이 생기면 곧바로 우리는 머리가 바로 돌아갑니다. 이런 걸 어떻게 해결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해결된다. 라는 것까지 우리는 이미 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웬만한 거에는 이제 끄떡도 잘 안 합니다. 이건 이렇게 하면 되고 저건 저렇게 하면 되고 공식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지금까지 경험의 공식으로 풀어낼 수 없는 걸 주십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러분 그런 환경을 대할 때 우리 손으로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그런 환경이 우리 앞에 전개되면 우리 경험으로는 해결 안 되죠.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걸로도 안 되죠. 돈이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게 더 많죠 여러분 그렇지 않던가요 너무 그게 너무 허무해요. 보면 돈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목구멍에 물 넘어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보니까 우리 이 사모님 보니까 돈이 아무리 있어도 목구멍에 물을 못 삼키게 하더라고요. 그걸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손가락 까딱하는 것도 여러분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것은 아주 허무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인간의 능력과 지혜는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 불과하더라고요. 감기도 못 고치지 않습니까? 그렇죠. 맞습니까? 조만간에 이제 암 환자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암 환자가 될 거라고 감기처럼 유행할 거라고 하던데 그런 말 들어보셨어요. 암 보험은 다 들어 놓으셨나요? 2개 3개 중복적으로 들어놓으시기 바랍니다. 네 자 어쨌든 우리는 환경을 대하는 방법이 다 개인마다 다르고 그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또 다르고 그 사람의 성장 배경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르게 나타납니다만 변하지 않는 게 딱 하나 있습니다. 뭔가 하면 그 환경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환경을 어떻게 하면 그 환경을 어떻게 해석해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답이 나오죠. 그렇죠. 어 어쨌든 우리는 보이는 것에 우리 자신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날 때부터 어쩔 수 없는 존재라고 그렇게 함께 우리가 지금까지 나눠 왔었는데 그게 우리의 본능이죠.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무조건 반사처럼 그냥 팍팍 나가죠 무조건 반사처럼 우리 몸 조건 반사도 아니고 무조건 그냥 그냥 나가고 보는 게 우리의 육신 육에 속한 육체인데 그것이 참 저주받은 자아라는 걸 이제 다 아시죠. 우리 육체가 맞습니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그것이 육체죠 자 이 그림 기억나죠. 인형극을 이런 게 지난번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때 잠깐 봤던 그림인데 인형극 제가 수없이 말씀을 드렸죠 그렇죠. 관객들은 인형밖에 안 보이지만 그 인형을 움직이는 것은 그 아래 손이 수없이 위에서 달려 있는 게 그 모습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그 인형을 보고 막 난립니다. 좋아라 눈물을 흘렸다가 그렇죠. 우리 인생이 똑같습니다. 그거랑 우리는 환경에 그렇게 희로애락을 느끼고 환경에 그렇게 우리 생각부터 시작해서 우리 모든 것이 환경에 따라 좌충우돌 업다운 난리죠 우리 인생이 참 약합니다. 그런 걸 보면은 그런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이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날 때부터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걸 능력을 소유하겠다고 힘을 기르고 능력을 기르고 다 해도 결국은 별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은 자기가 극복할 수 없는 어떤 환경이 닥치면 거기에 다 넘어가게 돼 있고 좌절하고 어쩌면 세상을 막 떠나버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 환경이 발생할 때 그렇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많았고 그게 우리 힘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이제 겪게되는데요. 문제는 이제 우리가 보이는 환경에 길들여져 왔다는 건데 그 보이는 환경에 우리가 길들여져 올 수밖에 없었던 게 우리 저주받은 자아라고 그랬죠 이 저주받은 자아가 여러분 이 사기꾼이라고까지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할 때 말씀을 드렸죠 어쨌든 우리는 보이는 것에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보이는 것에 반응하는 거는 당연한 일입니다. 거기에 따라 여러분 우리가 슬퍼하고 기뻐하고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낙망하고 우울해지고, 당연한 건데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제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겁니다. 보이는 것에 반응하면 안 되는 겁니다. 이 보이는 것이 문제는 보이는 것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죠. 오늘 본문 말씀이 히브리스 11장 3절입니다. 히브리스 11장 3절 두 말씀 오늘 말씀의 부제목 바로 환경 속의 진리를 보는 눈을 열어라 진리가 말하게 하라 우리 이 삶의 적용 원리 1번하고 16번 참고를 좀 하시고 그리고 기초원리 여러분 기초원리 10번을 보시면 10번에 여러분 영사기 그림이 나오는 게 10번입니다. 그걸 보시면 허상과 실상에 대해서 나오죠. 기억을 더듬어 보시지요. 여기 있죠. 상과 실상에 대해서 말씀을 해 놓은 게 바로 기초월 20분입니다. 그걸 참고하시고 본무 말씀에 오늘 요한보훈 9장 로마스 7장 8장 고령도전서 2장 나중에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이걸 11장 3절에 가면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렇죠.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라고 돼 있고 창조하신 것은 여러분 우리가 보이는 거죠. 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아 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죠. 천지천하만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고 말씀으로 운행된다 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히브리스 1장 3절에 가면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 그게 괄호에 설명하는 대로 아들은 피조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붙잡고 계시고 그분의 의도하신 목적으로 세상을 이끄신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변화는 누구 손에 있다고요. 바로 그 아들의 손에 있다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운행을 하신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환경이 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나오는 거예요. 만물이 죽기로 말미암고 죽게에 의해 유지가 되고 죽게로 돌아가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주의 손으로 말미암고 주의 손으로 행하여지고 주의 손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걸 우리 손으로 어떻게 해보려 하죠. 여기에 바로 인간의 어리석음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고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훈련을 받았죠 그렇게 길들여졌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경험을 해왔는데 그걸 떠나라 라고 말하죠. 그게 어디입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선물로 준다고 하실 때 아브라함에게 한 말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라고 그랬죠 본토 친척 아베 지금 다 했습니다. 내가 길린 것 내가 지금까지 훈련받아서 내 안에 만들어진 것 이 모든 것에서 내 자신을 내려놓으라 그 말이죠. 이 세상의 모든 사고 관념 모든 경험 지식 체계로 다 떨어져 나와라 이 말이거든요. 그래야 어디로 간다고요. 가나안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데 여러분 다 내려놨습니까? 안 내려놓으니깐 이 환경이 파도치는 데마다 같이 이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오늘은 좋았다가 내일은 또 막 난리 났다가 이게 이제 우리 인생이 그러면 그걸 이제 우리 인생 원래 그런 거야. 라고 이제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체념하고 살기도 하고 때로는 이 철학자들의 말을 빌어서 뭐 또 별별 걸 다 갖다댑니다. 거기에다가 그렇죠. 갖다 대기도 하고 말씀을 가지고 또 갖다 대기도 하고 별 걸 다 갖다댑니다만 뾰족한 답을 잘 찾아내지 못합니다. 이 모든 답은 여러분 1번 그림 안에 있습니다. 미리 결론을 말씀을 드리면, 그렇습니다. 1번 그림 안에 모든 답이 다 있습니다. 자 여러분 천지만물 모든 운행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래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왼쪽 그림에는 여러분 사람 대표로 사람을 그려놓은 겁니다. 환경을 여기다가 그려놓으면 똑같습니다. 내가 당하는환경 내 상태 나의 모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여기다 그려놓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근데 그게 인형극에서 보면 막 움직이는 게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죠. 내 마음대로 물론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자유의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그걸 아십니까? 마귀도 하나님이 부리는 하나님의 수단이죠. 그렇기 때문에 다 그 안에 있어요. 여러분 이 요법을 병들게 하고 엽이 가진 거 다 뺏어가 버리고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죠. 마귀도 하나님이 허락하는 것만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우리 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고, 우리 원하는 대로 가는 것 같지만 물론 우리에게 그걸 허락하신 건 하나님이죠. 우리를 로보트로 만들지 않으셨죠 왜 그렇게 안 만드셨을까요? 죄도 안 짓게 로보트로 그냥 로보트처럼 죄라는 걸 싹 빼버리고 아예 죄가 뭔지 모르게 그냥 해 놓으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하나님과 교제를 못하죠. 하나님은 우리와 뭔가 함께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거지 뭐 로봇처럼 만들어 놓고 단추 누르는 대로 왔다 갔다 하고 그걸 원하는 건 아니죠. 그렇죠. 예를 들면은 로봇 청소기를 갖다 놨는데 너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청소하라 이렇게 하진 않잖아요. 가서 니 마음대로 청소해라 그 대신 깨끗하게 해라 그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자유의지도 그 안에 다 있는 거죠. 하나님의 손 안에 다 그것이 돌고 있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그걸 다 하는 것처럼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거죠. 그게 다 허상이라는 겁니다. 나중에 보니까 눈이 열려서 보니까 이것들이 보이더라는 거죠. 위에 인형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손이 있고 줄이 다 묶여져 있어서 투명한 줄이 있어서 낚싯줄로 하면 안 보이거든요. 이해합니까? 그게 보여야지 되는 거죠. 자 문제는 그렇습니다. 모든 만물을 마치 하나님이 이렇게 움직이듯 다 천하만물을 관리하신다고요. 그게 히브리스 1장 3절이고 13절의 말씀입니다. 절대 우연은 없다고 그랬죠 참치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절대 우연은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연 우연 절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데, 그게 안 보이는 거죠. 그게 안 보이기 때문에 이 보이는 것도 내가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때요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져 왔죠 뭔가 열심을 내고 뭔가 색다른 조치를 취하고 뭔가를 동원하고 뭐 이렇게 그걸 하면 바꿔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만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게 우리에게 주시겠죠. 그래야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 아니면 순 안에 있는데, 문제는 그 상태 우리가 꿈 하나님이 우리를 지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여러분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왼쪽 1번 그림 왼쪽의 상태 바로 그 상태가 되면은 여러분 모든 것이 하나님과 다 분리된다고 그랬죠 분리된 게 이제 저주의 시작이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고 모든 문제는 거기서부터 출발한다고 분리될 때 우리가 뭐가 분리됐어요.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법 말씀 지난번에 했던 거 다 분리됐어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이거 다 분리됐다고 근데 오늘은 여러분 이 환경 속의 진리를 보는 눈을 열어야 되는데 진리와도 분리돼 버렸습니다. 그렇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잖아요. 하나님의 진리잖아요. 하나님 말씀이 진리잖아요. 그와 분리돼 버렸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우리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고 그게 문제예요. 다른 말로 오직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존재로 타락해 버린 거죠. 하나님과 분리가 가져오는 엄청난 결과가 그거예요. 보이는 것 외에는 볼 수 없도록 우리가 타락한 거예요. 저주로 하나님과 분리해버린 그래서 하나님의 신이 떠난 거죠. 하나님의 신은 성령이죠. 성령은 진리죠 맞아요. 성령은 진리가 맞습니까? 성령은 또한 말씀도 맞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이 영이오 생명이라 하면 성령이 진리라 그것도 다 말씀드린 거예요. 요한일서 5장의 8절에 나오잖아요. 성령은 진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진리라 기름 부음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요 성령이라 삼위일체거든요. 같이 운행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진리 하나님의 신이 떠났다는 것은 진리가 우리를 떠나버린 거거든요. 때문에 모든 환경을 다스리는 이 손길이 진리죠 이걸 볼 수 있어요. 없어요. 볼 수 없는 거예요. 그게 바로 우리의 육으로 나온 우리 운명이에요. 그러니까 세상에 속한 인간들은 세상에 사는 인간들은 보이는 것에 인생이 그냥 놀아나다가 가는 거예요. 얼마나 불행합니까? 평생을 껍데기만 보다가 가는 거예요. 교회 다니면서도 평생을 껍데기만 보다가 하는 사람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어요. 얼마든지 있어요. 말씀 말씀만 해서 말씀만 주야로 막 묵상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거든요. 처음부터 그 하나님의 수련을 믿으면 물론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오시지만 그 영을 의지하지 않고 내가 그때까지 배운 지식 모든 걸 가지고 이 성경을 파고 파고 또 파요 깊은 곳에 우물을 끌어내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에 접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성령을 위치해서 성경을 잃고 성령을 의지해서 말씀을 묵사하고 이런 걸 안 배웁니다. 잘 배운 적이 없고 열심히 묵상하고 기도하고, 이렇게만 가르치죠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그래서 우리는 날 때부터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어요. 하나님의 신이 떠났기 때문에 우리가 육체가 됨으로 해서 눈이 밝아졌다고 한 게 그 말이죠. 이때까지 말씀을 함께 나눈 것처럼 그것이 저주예요. 사실은 그죠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그래서 여러분 왼쪽 그림 이 상태 하나님의 신이 떠난 이 상태에서는 우리가 보이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요. 절대로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근데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겁니다. 환경으로부터 우리는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겁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적게 다니고 이거하고 상관이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신이 나를 주관하느냐 아니냐 그거와 그 차이예요. 여러분 교회를 아무리 다녀도 하나님의 신이 나를 주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래 교회 다녀도 뭔가 하나 탁 일이 닥치면 어떻습니까? 난리 나죠. 안달복달 막 큰일 나죠. 막 안절부절합니다. 그렇죠. 난리 나잖아요. 근데 그 난리 난다고 해결이 됩니까? 그게 껍데기 인생이죠. 결국은 보이는 것만 보고 우리 인생이 반응하는 거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존재라고 그런 존재 그걸 인정하십시오. 그래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다고 그랬죠 그래서 일이 한 가지 생기면 밤새 고민을 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아주 작은 일 가지고 밤새 잠을 못 자고 그런 스타일이에요. 제가 완벽주의였기 때문에 요렇게 될 때까지 완전만 그래서 제가 55km를 넘어본 적이 없어요. 상상이 가요 지금보다 10km에서 10 몇 km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완전히 꼬챙이였어요. 꼬챙이 허리가 안 맞아 바지 사면 맨날 허리 굳히러 다녀야 되고 막 그랬다 그 정도로 예민했어요. 얼마나 예민한지 그러니까 뭐가 되겠어요. 맨날 염려 근심해 막 매여 가지고 끝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살았어요. 제가 되는 게 아닌데 밤새 고민하고 온갖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다 동원하고 해 봐야 다 할 수가 없어요. 안 돼요. 어느 정도까지는 되겠죠. 그렇죠. 내가 할 수 있는 거기까지만 되는 것 아닌가요 그 밖에는 이제 진인사 그러면서 또 열심히 다 했으니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런 건 또 어디서 가져와가지고 크게 써놓고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잖아요. 교회 다니면서도 거짓하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제가 얼마 전까지 계속 똑같았어요. 교회를 얼마나 열심히 다녔게요 그렇죠. 여러분도 그렇게 열심히 다녔잖아요. 저처럼 그런데도 조금만 하나 문제가 생기면은 그 우리 능력 밖에 우리가 모든 걸 다 컨트롤 할 수가 없거든요. 모든 환경을 하느님이 다스리고 있는데,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 멋대로 절대 안 되거든요. 그러면 울고 불고 막 밤새 기도하고, 해도 그것 시원치 않죠 어쨌든 해결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래서 우리는 이 눈으로 껍데기만 볼 수 있는 그런 존재로 타락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보이는 대로 판단을 하고 그 다음에 여기 보세요. 행함으로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행합니다. 배우는 대로 경험대로 지식대로 우리가 가진 걸 총동원해서 판단을 하고 제일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하죠. 것이 바로 여러분 선악지식책이라고 하는 거예요. 선악지식책 그게 바로 선악과예요. 보이는 것을 쫓아가고 자기 눈에 보기에 옳은 것으로 행하는 그게 전부 선악지식이에요. 수없이 지금도 우리는 선악과를 먹고 있는 거죠.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고 이런 걸 가지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하죠. 근데 어떻게 해요. 결국은 그것이 사망이에요. 사망 이걸 하나님은 로마스 입장에 보면 불법이라고 불법을 행하는 자야 그러니까 1번 거리 왼쪽 상태에서 인간이 짜내는 모든 것이 다 불법이에요. 그것이 아무리 선하게 보여도 아무리 괜찮아 보일지라도 불법에 해당 결국은 어떻게 된다고요.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되죠. 그게 바로 로마스 8장에 나오는 말이에요. 로마스 로마스 8장에 지난주에 했던 5절 8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으니라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예를 쫓는 자는 영희의 일을 생각하느니 절대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법에 따라 행하는 거죠.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그래서 왼쪽 상태에서 발버둥을 치는 것 자체가 죽는 거라고 그랬어요. 늪에 빠져서 더 빨리 빠지는 것하고 똑같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래서 인간의 이 지식의 한계는 하나님을 절대로 뛰어놀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천하만물을 어떻게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그게 비애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 나면서부터 인간은 저주받은 상태로 나는 거예요. 그래서 왜냐하면, 이 보이는 세계에 떨어져서 그 보이는 세계에 그냥 죽어가는 겁니다. 죽기 위해서 태어나는 겁니다. 아닌 것 같아요. 어때요 죽기 위해서 태어나죠. 죽기 위해서 공부하죠. 죽기 위해서 결혼하죠. 죽기 위해서 애도 낳고 그렇죠. 너무 비극적인가요? 그렇잖아요. 나중에 보세요. 영혼 속에서 보면 그건 한 점도 안 되는 거거든요. 발버둥 쳐서 살려고 하는데 결국은 늪에서 막 이러고 있는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인간은 그래요. 그게 바로 유가로 난 인간이에요. 그래서 유가로 난 것은 유기요 0으로 성령으로 난 것만 0이다. 그래서 우리 6으로 생산해내는 모든 것은 6이라고요. 이게 육신은 6은 하느니까 원수가 되는 거기 때문에 절대로 해결책이 못 되는 거예요. 왜냐 우리는 보이는 것만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외모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죠. 단적인 예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영에 온전하게 반응을 할 수 없었던 젊을 때 보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이스마엘을 낳죠 그런 거예요. 자기가 보기에는 이게 하나님의 말씀하고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거예요. 우리도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너는 복이다. 주면은 그 말씀을 가지고 이제 복을 이루어내려고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어 낼려고 막 하죠. 그게 육에서 나온 거라면 전부 다 허수가라는 거예요.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 상태는 깨닫는 게 여러분 죽기 전에 못 깨달아요. 세상의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죽기 전에 절대로 못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신이 다시 우리에게 들어오시면 되겠죠.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육체가 됐으니까 이제 하나님의 신이 임하고 다시 하나님과 연합하면 될 거 아닌가요 그게 답이에요. 여러분 진리와 우리는 분리됐지만 다시 진리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 되죠. 그러면은 진리를 볼 수가 있죠. 그게 진리의 영이죠. 그게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신 예수 그리스도죠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진리라고 그랬고 성령도 성령이 진리라 그랬거든요. 그래서 성령 하나님의 신이 떠났으니까 진리가 떠났죠.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다시 임하시면 되죠. 그게 5순절 날이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와 계십니다. 근데 하나님의 신을 무시하죠. 하나님의 신 대신 우리는 습관적으로 육적으로 배웠던 이 경험을 먼저 내놓습니다. 그걸 내놓고 성령을 갖다댑니다. 도와달라고 하고 뭐 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렇게 완전히 거꾸로 가죠 항상 그래서 여러분 육적인 게 먼저 앞서기 때문에 계속해서 실패합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만 아직도 볼 수가 있어요. 계속해서 하나님의 신이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장악해야 되는데 장악하지 못하죠. 우리가 성령을 장악하죠. 아니 우리가 성령을 장악해서 필요할 때마다 와서 해결사 노릇을 해야 되는 게 그게 우리 신앙생활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맨날 보이는 문제나 해결하려고 성령에 오셔야 되는 거예요. 마치 이게 이거하고 똑같애 뭐예요? 이거 이렇게 생긴 거 있잖아요. 예 요술램프 알라딘의 램프 그러니까 우리가 필요한 우리가 육적으로 보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게 필요한 거 아니에요. 하나님도 그때 필요하고 예수님도 그때 필요하니까 그건 다른 말로 우리 눈이 아직도 완전히 닫혀 있는 증거잖아요. 어떤 환경에 내가 곧바로 반응하고 거기에 넘어지고 일어나고 좋으면 막 그랬다가 나쁘면 이랬다가 이런 것들은 전부 아직도 내 눈이 닫혀 있다라는 증거죠. 아닌가요 교회 다니는 사람 안 그래요. 예 100명 중에 100명이 다 그래요. 그렇지 않던가요 교회 목사님들도 마찬가지고 난리 납니다. 선거할 때 가보세요. 치고받고 돈이 확 똑같아요. 여러분 저도 똑같습니다. 아멘 잘못 온 거 아닌가요 자 어쨌든 간에 우리 인생은 그래요. 내가 어떤 기도를 하고 있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내가 지금 노력하고 있는 그걸 보면 금방 알아요. 나는 눈이 열렸다 안 열렸다 영안이 열려 뭐 이건 여러분 영안이 열리면 신비한 게 보이고 이러면 영안이 열린 걸로 생각을 하는데 그거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눈이 영안이죠.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하나님의 눈이 열리면 환경의 모든 것을 다 열려서 볼 수 있어야 돼요. 안 그래요. 성경책을 보면 그 안에 영이 싹 보여져야 돼요. 보여요. 말씀이 열려서 이제 보여지죠 많이 열렸죠 여러분 그렇죠. 아 이건 이게 아니야. 맞아 이거야. 많이 아시죠. 이제 많이 열리신 거예요. 그렇다고 환상이 막 큰 칼라로 보이고 이걸 갖다 대면 절대 안 돼요. 여러분 환상의 칼라로 엄청 잘 보는 사람도 보니까 뭐 문제 생기면 난리더라고. 막 그 문제 생겼는데 그 하나님의 이 손은 안 보이는 거야. 그러니까 뭘까요? 도대체 그게 영이 열리는 겁니까?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말씀이 0이죠. 말씀으로 충만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면 말씀이 진리잖아요. 진리가 충만해지면은 진리를 다 알죠 그런 단순한 이치도 모르니까 그런데 막 신비한 곳에 빠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진리가 분리되었는데 그 진리신 성령이 다시 오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오셔서 기름을 부으면 어떻게 됩니까? 묶인 게 끊어지고 눈이 열린다고 그랬죠 소경에 눈을 뜨게 하리라 자 어쨌든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 우리는 이 과정을 거쳐 가야 되죠. 자 우리는 보인 것에 반응하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존재로 낳았지만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한테 다시 오셨잖아요. 그래서 진리가 우리 안으로 다시 들어오셨어요. 성령에 오셔서 불같이 임하시면 기름을 부으시잖아요. 그러면 눈이 열려서 보인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우리가 비늘이 가린 비늘이 여러분 사도가오리의 비늘이 가려서 안 보였던 게 죽으니까 보였잖아요. 성령이 오셔서 안수를 하니까 성령이 열어서 보게 하셨잖아요. 그렇죠. 예수님을 만나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죠. 예수님을 만나니까 육적인 자아가 팍 고꾸라지고 열려서 눈이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여러분 그 비늘이 뭔가 하면은 비늘이라는 단어가 나무껍질이라고 비늘이 벗겨지다 그건 뭔가 하면 나무껍질을 확 까서 벗기는 거하고 똑같은 말이에요. 다른 말로 우리 육적인 껍데기를 벗기는 거하고 같은 말이죠.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눈에 비늘이 벗겨진 것은 육적 몸을 벗는 거였어요. 여러분 이것이 다 보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육적모음이 벗어져야 되는 거예요. 결국은 그렇죠. 육성을 육적인 몸이 벗어지려면 하나님과 연합을 해야 되죠. 육적모음이 벗어지는 게 십자가죠 그래서 여러분 오직 십자가가 답이에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육성인 걸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외모로 보고 판단하는 이 모든 것들이 다 깨뜨려져 나와요. 그게 자기부인이죠. 그게 십자가죠 그러니까 외모를 보고 판단하고 모든 것을 동원해서 최적의 것을 가지고 행하는 그게 유기죠 맞아요. 그게 나죠. 그게 자기 자아죠 그거를 부인해야 된다고요. 이해 가죠 그게 자기 부인이에요. 자기 부인은 십자가하고 같은 말이에요. 사실은 내가 깨어지는 거잖아요. 그 육적인 자아가 깨어지는 게 십자가죠 결국은 여러분 우리가 융이 열려지려면 육적인 자아를 벗는 거예요. 육적인 자아가 깨져야 되는 거죠. 그게 육적인 오감각을 완전히 깨뜨려내야 되는 걸 말하죠. 그리고 보이는 것으로 들리는 것으로 옆에서 아무리 속살거려도 꿈쩍 안 해요. 아무리 뭔가가 앞에서 왔다 갔다 해도 꿈쩍을 안 해요. 이게 오감각에 우리는 반응하잖아요. 보고 들리고 느껴지고 그쵸. 이런 것들에 대해서 꿈쩍도 안 하는 나이가 돼야 되는 거죠. 그런 나이가 다 되셨나요? 죽을 때까지 안 돼요. 그거는 되는 게 영적으로 그 나이가 돼야 돼요. 영적으로 100세가 돼야 돼요. 100세 아우라함이 100세가 되니까. 여기 우리 로마스 사장이 나왔잖아요. 자기 몸에 죽은 것과 사람 몸에 태가 다 끊어지고 죽은 것을 알고도 믿음이 오히려 약해지지 않고 더 강해졌다고요. 그게 이제 믿음이 제일 강해질 때가 그때예요. 그러니까 100세가 되면 육적인 감각이 다 잘라지고 없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보이는 것에 반응을 안 하는 거예요. 그렇죠. 마치 안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되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눈을 뽑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잖아요. 그래서 눈으로 보는 것으로 판단하고 죄를 자꾸 지으니까 눈을 뽑아버려라 한 게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비늘을 벗겨버리라 이 말이죠. 그러니까 육적 눈이 이제 싹 가고 영이 영적인 눈이 열려지는 거예요. 인간의 그 오감각대로 느껴지고 보여지고 들려지는 대로 행하지않는거죠. 그게 100세라고 그랬죠 기억납니까 그래서 그때쯤 되면 이제 내 환경에 반응을 안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반응을 하겠죠. 이해합니까? 그래서 이 진리가 우리와 분리가 되었는데 진리와 연합되는 것은 오직 십자가로 다시 진리와 연합합니다. 진리는 말씀이니까. 지난번에 말씀에 대해서도 할 때 똑같이 했죠. 율법과 복음할 때도 그러니까 연합되려면 십자가를 통과해서 다시 똑같이 가는 거죠. 기억나죠. 하나님의 말씀과 분리됐잖아요. 하나님의 말씀과 다시 연합하려면 내가 없어져야죠 연합의 원리가 거기에 있죠. 그래서 연합하려면 쌍방이 가진 것 중에 하나가 완전히 없어져야 연합을 할 수가 있다고 그랬죠 우리 더러운 게 없어져야 깨끗한 주님과 연합할 수 있죠. 그게 십자가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진리와 다시 연합하는 거죠. 강제로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시죠. 그래서 강제로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거죠. 그쵸. 그래서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임하는 사건이 바로 그 오순절날 역사가 일어난 그 사건입니다. 그걸 통해서 그 일이 일어났던 거죠. 그래서 오늘날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으리 하리라 우리 안에 와 계셔서 행하시는데 우리의 보는 것이 너무 강하니까 아직도 본능적으로 바로 보이는 대로 행하잖아요. 들리는 대로 옆에서 누가 한마디 하면 바로 전화기 가져와 바로 그냥 해서 팍 한마디 하고 그렇죠. 그렇게 안해요. 그게 뭐라고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중에 그렇게 된다니까요? 끝까지 그렇게 하면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미 예수님 우리 육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죠. 갈라디아스 2장 20절 로마스 6장 이스테라비아니까 함께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한에서 산 자라고 했죠. 안 죽고 그게 너무 강하게 살아 있으니까 이게 계속해서 안 되는 거예요. 계속 지는 거예요. 그렇죠. 육에 속한 거예요. 계속 지죠 여러분 뭔 일 생기면은 난리 나잖아요. 난리 이제 난리 안 나죠. 이제 대단해지신 거야. 이제 꿈쩍도 안 할 거야. 이제는 꿈쩍도 안 할 거야. 이제는 어 그래 기다려 괜찮을 거야. 그렇게 될거에요. 그러니까 이 십자가를 지는 이유가 사도 바울이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 놓은 구절이 바로 고려인도서 4장 10절이에요. 내가 예수 죽인 것을 내 몸에 짊어지면 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랴 예수의 생명이 진리죠 말씀이죠. 법이죠. 능력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법 예수님의 진리 예수님 자체가 진리니까 그게 나타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내가 죽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 죽인 것을 내가 십자가에 쥐는 이유는 그러니까 진리가 나에게 나타나게 하려면 내가 진리가 나타나게 못하게 하는 그것을 없애야 되는 거죠. 그렇죠. 그게 십자가인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십자가에서 육적인 자아가 다 깨뜨려져 가는 거죠. 아브라함이 100세 때 그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100세 때 믿음이 오히려 약해지지 않고 강해지니까 그때 어때요 이삭을 낳았는데 기쁨으로 충만해지죠 그 전에는 기쁨이 없었어요. 계속 난리 났잖아요. 이랬다 저랬다 이랬다 저랬다 마누라를 두 번씩 팔고 그렇죠. 이 스마일 나 그거라도 내가 대를 잇겠다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 몰아내라 하고 기분이 어떻겠어요. 자기 나름대로 옳게 판단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한 거 다 무효야 전부 다 죽을 때까지 그런다니까요? 우리는 여러분 그게 안 되죠. 그래서 우리가 우리 힘으로는 안 죽으니까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우리를 끌고 가면서 아브라함도 끌고 가면서 다 죽인 거예요. 그래서 할례를 받은 게 할례 다음에 그 일이 일어났죠. 그렇죠. 우리도 활례를 당해야 되는 거예요. 육적 몸을 벗는 할례 다음에 비늘을 벗기다 그게 껍질을 나무껍질을 벗기는 거 육적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걸 말해요. 할례를 말하죠. 결국 할례를 누가 해요. 성령이 오셔서 벗겨버렸잖아요. 말씀이 와서 확 고꾸러뜨리고 성령이 오셔서 확 벗겨버리죠 예수님을 만나니까 고꾸라졌잖아요. 그리고 성령이 없어서 완전히 벗겨버렸죠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면 고꾸라집니다. 육적 자아가 고꾸라진다고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요? 말씀이 읽으면 만나져요 그게 바로 영이 생명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때 바로 영적으로 우리가 이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면 되는 거죠. 예수님은 영이니까. 하나님은 영이니까. 영일 때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거죠. 아 하고 깨달을 때 그때 영적인 깨달음으로 오면 주님을 만나는 거고, 그때 내가 고꾸라지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에 오셔서 그 말씀대로 역사하여 내 육적인 자아를 깨뜨려내죠 그런 과정을 거쳐가고 있어요. 말씀이 여러분 깨달아지고 기름보험이 임하니까 내가 조금씩 조금씩 떨어져 나가죠 이 염려 의심이 떨어져 나가죠 조금씩 이제 웬만해서는 꿈쩍 안 하잖아요. 아멘 그렇게 돼요. 예 꿈쩍 안 해요. 진짜로 제가 보세요. 꿈쩍하는가? 바람이 불어도 몸무게는 약해서 모르지만 모래주머니 차고 다닙니다. 웬만해서 꿈쩍도 안 해요. 왜 꿈쩍을 안 하는지 이제 결론을 내려보죠. 여러분 우리는 그걸 십자가를 통과해야 다시 진리와 연합이 됩니다. 어쩔 수 없어요. 우리가 연합될 수 있는 길이 그거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할수없잖아요. 그렇죠. 우리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그랬거든요. 그렇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목 박혀 죽었다고 그랬는데 그걸 피하고 싶은 게 이거잖아요. 왼쪽의 상태에서 피하고 싶은 게 왼쪽 상태에서 하나님이 오셔서 나를 도와주는 거죠. 하나님이 오셔서 내 문제를 싹 해결해 주는 거죠. 그런 일은 안 일어납니다. 여러분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안 일어나요? 더 권한 가운데서 깨닫게 하시죠. 그것이 다 깨뜨려져 없어질 때까지 왜냐하면, 그 문제가 해결되면 또 문제가 뇌 속에 문제를 잔뜩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다고 그랬잖아요. 요암에서 8장 17절 그죠 선한 것이 없고 내 안에 진리가 없다고 그랬죠 맞아요. 요양보험 8장 22절 너희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그랬잖아요. 너희는 너희 아비 거짓 마귀에서 났나니 맞아요. 지난번에 했던 거예요. 너의 아내 진리가 없나니 로마스 여한복음 8장 22절 진리가 없음으로 계속 속는다고 그랬거든요. 나를 죽이려고 한다. 자유하지 못한다. 종노릇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교회 다니면서 종 노릇 실컷 하고 있는 거예요. 보이는 것에 속아서 말씀에 속아서 왜 칠리를 못 보기 때문에 껍데기 문자 보이는 환경만 보이듯이 이 성경도 껍데기 문자만 보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안 보이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면 예수 그리스도계에 가면 수건이 벗겨진다고 그랬죠 주혜영이 계신 곳에 자유암이 있다고 그랬죠 예스쿠에스 예수께로 가면은 그게 보이는데 이 성경을 볼 때 예수께로 가지 안 보이고 계속 말씀만 문자만 의경 말씀 법만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로 못 가고 법이 밖에 예수님이 밖에 서 있는 거라고 했잖아요. 지난번에 율법과 복음할 때 예수님이 밖에 있으면 율법이고 내 안에 들어있으면 복음이라고요. 안에 들어오려면 어떻게 해요. 이걸 통과해야 같이 연합이 돼서 내 안에 오시죠. 물론 지금 오셔서 그 일을 하고 계시는 거죠. 그게 안 되니까. 계속 밖에 계신 예수님만 보이는 이게 밖에 계신 예수님만 보이면 내 육적인 행동으로 이끌어간다고 그랬죠 그렇게 되니까. 그 말씀이 나를 속여서 결국은 죽인다 로맨스 8장 11절이었죠. 이제 거기까지 바삭하게 꿰뚫고 계셔야 합니다. 다시는 말씀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말씀을 만나야죠 그쵸. 말씀을 지켜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거예요.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씀을 드려야 그게 진리죠 그렇게 되고 있어요. 그렇게 돼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점점 이 오감각이 깨뜨려져 나가야 되죠. 결국은 우리를 그렇게 깨뜨려져 나가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고 그랬죠 그렇죠. 하나님의 믿음이 아브라함을 끝까지 끌고 갔다고 그랬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간 게 아니라고 그랬죠 이해가죠 다 한 거예요. 자 그래서 여러분 이 영적인 눈으로만 이걸 볼 수가 있는 거예요. 이 노란 선 이건 오직 영으로만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날 때부터 저걸 볼 수가 없고 교회 다닌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어쩌다가 하나님이 보여줄 때도 있고요. 맨날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 여동치 않지 그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요동합니다. 진리만 알게 되면 그 환경의 진리만 알게 되면 절대로 요동치 않죠 이게 진리거든요. 보이지 않는 것 진리가 알레데이야 기억납니까 덮어놓은 걸 딱 벗겨서 안에 딱 보이는 게 그게 진리라고 그랬죠 환경이 이게 지금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게 아니라고 그랬죠 이게 껍데기잖아요. 허상 이걸 가서 안에 있는 이게 딱 보여야 그게 진리라고요. 성경도 그게 딱 문자를 딱 벗기고 안에 있는 게 보여야 그게 진짜 진리라고 그랬죠 레마 영적으로 깨달음이 올 때 그래서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고 그랬죠 그게 쫙 보여집니까 지금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 환경에서 이 손길이 보여집니까 안 보여지면 아직도 내가 영적인 경험을 수없이 하고 환상을 수없이 잘 보더라도 그건 아닙니다. 진리가 안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그거는 은사죠 맞아요. 자 어쨌든 진리를 열어보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사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셔야 우리가 볼 수 있죠. 근데 수시로 우리가 그걸 항상 볼 수 있으려면 내가 육적인 자아가 깨뜨려져 나가고 없어야 그 진리의 영으로 충만해지면 되죠. 진리의 영은 또 말씀의 영이죠. 그럼 진리를 충만하려면 말씀으로 충만하면 되겠죠. 그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죠 맞아요. 그래서 고려대전서 이장으로 가면은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어떠한 것도 우리 육적인 인간의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고 할 수가 없다고 그랬죠 근데 그걸 할려고 시도하는 게 인간이라고 사람처럼 되어보려고 그게 선악과예요.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예요.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닌다고 해도 되는 게 아니에요. 이해 가시죠. 그러니까 보이는 것으로만 반응하는 거죠. 지금도 그래요.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뭔가 조그마한 일 하나만 있으면 걸려 넘어져서 교회를 안 나오고 넘어지고 시험 돌고 막 이러는데 완전히 생판 초짜하고 똑같아요.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똑같은 거예요. 안 그래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면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어때요 그러니까 그걸 전부 남의 잘못으로 돌리죠 난 저 사람 때문에 교회 못 나오겠어 난 이 교회야 진짜 맘에 안 들어 다른 교회 가면 더 마음에 안 들 거예요. 좋은 교회 찾지 말고 좋은 사람이 돼야 되는데 아무리 좋은 교회 찾아보세요. 있나 없다니까 내 안에 선이 없는데 진리가 없는데 어떻게 진리를 보겠어요. 좋은 기회를 어떻게 알겠어요. 자기 눈에 마음에 드는 게 그게 선악과인데 그래도 모를 거예요. 뭔 말인지 그러니까 가려져 있는 게 열려서 보이려면은 내가 가려져 있는 걸 먼저 벗겨내야 되는 거죠. 그게 비늘이 벗겨진다고 한 거고,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오셔서 말씀과 성령으로 행하셨던 거죠. 껍데기가 벗겨져 보이는 게 바로 이거예요. 그게 여러분 우리 힘으로 능력으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거죠. 신령한 것은 오직 신령한 것으로만 분별한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내게 하나님이 신에 임하고 충만하게 돼서 내 이 육적인 자아를 완전히 가로막고 앞서 나가서 행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죠 그 우리는 그렇게 잘 안 되죠. 본능적으로 그냥 배부르면 하품하는 거하고 똑같이 우리는 그냥 행하거든요. 자동으로 전자동이에요. 이건 오토매틱 바로 그냥 나가죠 바로 나가죠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우리는 모르고 살았어요. 그게 자유의지 멋대로 해도 된다. 죄만 안 지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 자체가 죄예요. 그 자체가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요. 그걸 깨달으면 여러분 되는 거예요. 그걸 깨달으면 돼요. 고려노사 4장 18절에 보면 우리들이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죠.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니 누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리오 영원한 것이 진리죠 변하지 않는 게 진리죠 보이는 것은 잠깐 항상 변하잖아요. 그게 진리가 아니라고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건 오직 진리의 눈 영의 눈 이 수고리스도의 눈밖에 없는 거죠. 우리 육적으로는 절대 볼 수가 없다고 그랬잖아요.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고 오직 진리의 영이 오셔서 깨닫게 해줘야 그게 된다고 그래서 진리의 영이 오시면 어떻게 한다고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리니 그래서 진리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진리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기름을 부어야죠 이해갑니까? 진리의 여행을 우리가 계속 진리의 여행을 구하잖아요.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딱 만나면 그게 진리죠 예수님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내가 길이라 했으니까 이 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그게 진리가 되죠. 구획성경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만 가르친다고 그랬죠 똑같은 말이죠. 진리와 연합이 돼야 되죠. 진리와 분리된 것이 다시 진리와 연합이 되면 우리가 이 환경 가운데 진리를 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 환경이 무엇인지 우리가 해석을 할 수가 있죠. 이해갑니까? 진리를 해석하려면 진리와 연합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보려면 진리가 내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 성격만 보면 이게 다 진리를 아는 것 같지만 껍데기 껍데기 문자 그게 의문이라고 했죠. 의문은 우리를 죽이는 거라고 그랬죠 고인도사 삼자 그쪽으로 달려가는 거 자꾸 행함으로 가서 내가 행할 수도 없는데 행하려고 해서 속아서 죄를 짓는 거 아주 멋진 죄를 짓죠 열심히 애를 열심히 내어서 죄를 짓는 게 돼버린다고 그랬죠 그게 말씀에 속는 거라고 그랬죠 다 기억합니까? 자 그래서 진리를 분별하려면 진리가 내 안에 오셔야 하는데 진리가 내 안에 연합해서 하나가 되려면 내가 없어지는 수밖에 없죠 자 그러면 이제 가운데로 갑니다. 여러분 이게 진리예요. 보이지 않는 것 보는 그 눈이 진리입니다. 가운데를 그럼 어떻게 하면 눈이 열립니까 이거 알면 되겠죠. 칠리의 영임 첫 번째 날 때부터 소경의 눈을 여서 이게 여러분 요한법원 구정에 가면 예수님이 소경에 눈을 뜨는 장면이 나오죠. 날 때부터 소경된 자들이 오죠 그때 예수님이 어떻게 합니까? 진흙을 이겨서 눈에 확 붙여서 실로암에 가서 씻고 와라 그랬죠 그 다 말씀을 드렸어요. 침을 뱉는다면 지혜거든요. 예수님의 지혜를 말해요. 예수님의 입으로 나오는 게 말씀이죠. 지혜죠 능력이죠. 그것이 내 몸과 하나가 돼서 내 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눈은 내 모든 걸 말하잖아요. 마음의 등불이라는 말도 있고 여기다가 바르니까 내 그러니까 눈에 비늘이 벗겨지는 거 하고 똑같애요. 그러니까 내 육적인 자에다가 예수님이 확 발라버리는 거죠. 예수님 자신을 덮어버리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예수님의 눈이 다시 떠지겠죠. 그래서 가서 육적인 걸 씻어버려라 실루하면 본외침을 받은 자죠 예수님이죠. 예수님의 말씀으로 씻으라는 뜻이죠. 예수님의 말씀으로 씻고 예수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시면 되는 거죠.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죠 들어왔는데도 아직은 육적인 게 너무 강해서 보이는 것만 보는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걸 씻어내야 되는 거예요.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이 책 계속 그걸 씻어내시죠. 이해갑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강제로 들어와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경이 혼자 눈을 뜰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별 노력을 다 해서 그걸 하려고 하는데 그게 되는 게 아니고 성경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에요. 예수님이 직접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라고 발라서 뜨게 한다고요. 수동이라고 뜨게 하신다고 말씀을 실로염에 가서 씻는 건 내가 가는 거죠. 그러니까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서 내 안에 더러운 것을 벗겨내는 걸 내가 하는 거예요. 그때 성령이 나를 도우시겠죠. 당연히 그러니까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안에 행하시는 그걸 통해서 내가 벗겨지는 거예요. 눈이 떠지는 거예요. 맞아요. 그게 바로 요한본부장의 소경이 눈을 뜨는 방법이고 그게 날 때부터 왜 소경이라고 했을까요? 그냥 소경이라고 하면 될 걸 우리도 날 때부터 소경이잖아요. 날 때부터 이거밖에 안 보이잖아요. 교회 다녀도 이거밖에 안 보여요. 여러분 얼마 전까지 저도 그랬어요. 열심만 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열심으로 죄만 짓고 있었던 거예요. 그게 선이 없는데 어떻게 선언하겠어요. 진리가 없는데 어떻게 진리를 분별하고 진리에 따라가겠어요. 말씀만 보면 그게 진리인 줄 알았는데 어쩌다가 가끔씩 깨달아질 때도 있지만 거의 지식적으로 봤기 때문에 그게 진리로 내게 오지 않고 진리를 만난 바 되지 못했다고요. 진리를 만나야 내가 자유케 되는데 이 환경으로부터 자유케 되는데 그렇죠. 그걸 못 한 거예요. 그러니깐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내가 그 환경에 모여서 조금만 뭐가 변하면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 지금도 그런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여러분 그렇게 된다고요. 오래 다닌다고 되는 것 같았는데 더 안 돼요. 더 율법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더 안 되는 거예요. 그걸 벗겨내려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사도가 오죽하면 고꾸라지겠어 두 번째 바울의 눈에 비늘이 벗겨진다 사전 연구장에 나오는 말씀 지난번에 했어요. 그렇죠. 거기에 보면은 이 다면석에서 확 예수님을 만나자고 그러지죠 우리도 예수님을 진짜 음성을 들으면 고꾸라지는 거예요. 말씀을 통해서 깨달음이 확 오면은 그냥 고꾸라지는 거예요. 안 그렇던가요 어떤 놀라운 깨달음이 오면 그냥 고꾸라지죠 제가 이 십자가를 깨달았을 때 진짜 고꾸라지더라고요. 아 내가 예수님을 죽인 게 맞네요. 그러고는 진짜 고꾸라졌어요. 몇 개월 동안 울었어요. 진짜 그게 고꾸라진 거죠. 그런 경험이 없나요? 말씀을 볼 때 안 고꾸라져요 막 회의가 일어나고 내가 진짜 예수님을 죽였다. 내가 바로네요. 그러고 보니까 그렇죠. 내가 베드로네요. 내가 예수님을 팔아먹 아니지 내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맞네요. 그게 깨달으실 때 어때요 않게 떨어졌구나 말이 안 다 했잖아요. 여한복음 그럴 때 막 고꾸라지죠 그러면 그때 이제 성령이 역사하는 거예요. 성령의 역사에서 안수하죠. 우리는 누군가를 통해서 안수를 받을 수도 있고 그러면은 그게 눈에 비늘이 벗겨지고 사도바울이 보이는 눈으로 왔더라 그 전에는 사도바울은 보이지 않는 눈을 밝히 보나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지고 우리하고 똑같은 썩은 눈이죠. 그게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눈 여러분이 이 눈하고 이 눈하고 다르죠 잘 보세요. 이건 썩은 눈이고 이건 칼라 눈이잖아요. 이까 칼라를 볼 수 있는 눈하고 썩은 눈하고 다른 거예요. 그리고 이거 십자가를 통과하면 요렇게 되는 이 눈이 되는 거 아멘 괜히 그려놓은 거 아니에요. 여러분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그림 똑똑히 보세요. 나중에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대충 그냥 집에 가서 처박아 놓고 그래 봐요. 평생 업다운 하지 안 그래요. 그래서 바울의 눈이 벗겨지는 것도 말씀과 성령이었어요. 그리고 눈이 벗겨지니까 다시 바울이 음식을 먹고 정신을 힘을 내죠 벗겨지니까 이 말씀이 생명의 양식으로 내게 들어오기 시작해요. 그러니까 힘을 얻고 바울이 장생하여서 나가서 예수는 그리스도로 증가하는 거죠. 우리도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때까지 아무리 봐도 이게 예수는 그리스도로 안 되거든요. 이 양식으로 못 먹었다고요. 그러니까 배고파서 맨날 가라지 교회 다녀도 이 교회에 저 교회 막 얼씬덜락해봐 맨날 가려도 안 되죠. 가라지 않던가요 그러니까 여기까지 오셨겠지만, 아무리 그거 봐도 이건 문자는 양식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를 가는 거예요. 막 어떤 일이 터지면 이를 가는 거예요. 내가 얼마 동안 교회를 믿고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했는데 이 모양이냐 하고 이를 빡빡 이해갑니까? 그러면서 넘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을 못 만났기 때문에 그런 그게 꼬꾸라지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눈이 열려지고 말씀이 보일 때 이게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와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냥 옵니까 내게 말씀을 하시지 그렇게 되면은 그것이 내게 생명의 양식에 대해서 내가 점점 강건해진다고요. 그러니까 사도와월이 그때부터 뱀과 전갈을 밟고 막 독을 마셔도 꿈쩍도 안 하잖아요. 그게 뭐 진짜 뭐 독사에게 살모사에게 물린 걸 방울뱀에게 물려도 끄떡도 안 하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곤란해요. 전도하러 외국에 선도하러 선교하러 가가지고 뱀에 물려서 죽는 사람 있어요. 말라리아 걸려와서 죽는 분들도 있고요. 그거 왜 그래요. 그럼 꿈쩍도 안 해야 되는데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어쨌든 그런 양식을 내가 그러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양식이라고 그랬죠 그걸 노예로 살게 한다고 그랬죠 그래서 파울이 강건해진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 눈이 열리면은 이제 이게 말씀이 자꾸 와서 깨달아지고 보여지면 점점 강건해집니다. 말씀이 열려서 이게 보이는 사람들은 꿈쩍 안 해요. 여러분 웬만해서 꿈쩍도 안 하면 제가 봤어요. 많이 우리 교회도 이제 제법 많아요. 아멘 자신이 없나 사모님도 아멘 안 하는 거 보니까 아직 보이는 눈이 밝아서 그래요. 예 이해합니다. 보이는 눈이 밝으니까 자 그래서 그게 보이기 시작하면 그게 전부 생명의 양식이거든요. 그걸 먹고 강건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예수님처럼 막 나가기 시작합니다. 사도바울이 그 삶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잖아요. 근데 그게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고 사도가 얼도 많은 시간이 있었던 그 사이에 아라비아의 3년 뭐 이런 과정들이 우리도 시간들이 필요하죠. 그래서 눈이 떠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간들이 필요한 거예요. 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최소한 3년이 필요합니다. 3년이라면 진짜 1 2 3 이렇게 하시는데 그게 아니고 제 하나님의 역사에서 내 안에 완전하게 될 때가 3이라고 아시겠어요. 3년 지났다고 막 눈 감긴 채로 나가고 그러면 안 돼요. 다 알아요. 나는 이게 눈이 떠졌는지 감겨 있는지 다 아는데 자기는 떠졌다고 그러면서 강력하게 주장을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업다운이 아직 엄청 심한데 막 결계도 엄청 많은데 다 된 줄 알고 그건 아니거든요. 3번 성령이 임하시면 기름을 부으시고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마귀로 인해 강야로 시험을 받으러 가시고 그 시험을 통과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들이 있죠. 이사야설을 인용해서 강론하시면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죠. 거기에 보면 은혜 해를 선포하고 그 내용 다 했어요. 거기에 성령이 너의 얘기가 있으면 기름을 부어서 묶인 것이 끊어지고 눌린 것이 해방되고 눈먼 자가 보게 한다. 라는 내용이 나와요. 기름을 부어서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면 우리 눈이 열어집니다. 아멘 그걸 말하는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해져요 성령에 불이 그래서 우리가 불이 와야 돼요. 불이 임하면 기름을 부으셔서 우리 눈을 여신다고 그래서 기름 부음이 자꾸 채워 기름 부음이 자꾸 충만해지면은 눈이 열어진다니까요? 그것만 있어도 안 되죠. 말씀이 같이 가야죠 그래서 성령님은 말씀을 가지고 우리 눈을 열거든요. 그래서 주야로 말씀도 목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씀을 먼저 만난 거예요. 그리고 성형이 맺죠 그게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시면 돼요. 우리는 그걸 시간 안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지만, 그건 그냥 영혼 안에서 여러분 그걸 이해할 수 있는 묵시 안에서 이해를 할 수가 있어야 돼요. 이해가십니까 자 성령이 임하시면 그렇게 되죠. 1번 그림에 나오는 것 그대로예요. 이게 4번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면 어둠에 다니지 여러분 우리가 보이지 않는 건 어둠이죠. 눈을 뜨고 있으나 이게 안 보이는 게 지금 영적으로 어둠이 있는 거잖아요. 소경이잖아요. 그걸 볼 수 있는 게 빛이라고요. 눈에서 빛이 나가면 보이는 거죠. 예수님이 빛이라고 그랬죠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면 그게 보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4절 4절 네 번째 나를 따르면 어둠에 다시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을 얻으리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라가야 생명을 얻는데 어둠에 다니지 않는다고요. 이게 여러분 요양보험 8전 12절의 내용인데 여러분 그 절기에 가서 물 붓고 할 때 그거 내용이잖아요. 이거 그 안에 막 불을 피워놓고 빛이다 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그 앞에 가서 내가 빛이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이놈들은 절기 지켜서 너희가 빛을 볼 수 있을 것 같으냐 안 된다. 거기에서 나오는 말이죠. 내가 나를 따라라 쓸데없이 가서 물 붓고 확 횟불 피워놓고 막 그 엉뚱한 짓 하지 말고 다른 말로 여러분 이 말씀을 막 보고 문자를 보고 막 지식으로 알고 행하려고 하지 말고 이 말이에요. 그게 해봐야 소용없다. 나를 따라라 내가 빛이다. 어떻게 따라요. 예순위를 봐야 따르죠 그러니까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봐야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고 어둠이 다니지 않는다고요. 이해 가죠 그래서 성경 안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돼요. 그게 영이죠. 하나님의 예수님도 영으로 지금 계시잖아요. 물론 6을 입고 오셨지만 근데 그 예수님이 성경의 말씀이 예수님인데 그것이 살아있는 영으로 보여요. 내가 너에게 있는 이런 말이 영이 영 그때가 생명이고 살아 움직이는 능력이 되는데 그게 안 보이는 우리는 영적인 눈을 못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게 안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보는 걸로 문자대로 해석하고 가는 거예요. 행하는 걸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빠져 속아서 죽는다고 그랬던 거예요. 이해가죠 다시는 속지 마세요. 여러분 제발 속지 마세요. 뭐가 진리인지 깨달으셔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오시아하고 성령님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눈을 열어야 보이는 거예요. 그게 바로 열리는 거예요. 그렇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셨죠. 맞아요. 그들이 노력해서 눈을 연 게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힘으로 절대 할 수 없는 거예요. 우리 힘으로 능력으로 내가 가진 경험으로 이건 절대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해 낼 수가 없어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이 맛이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인도함을 받아야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을 만나는 거죠. 예수님이 진리니까 보이는 것 안에 들어있는 이 진리 이해 가시죠. 엘리사와 개화 시 그 보이는 안에 있는 불말과 불변거 그게 진리잖아요. 눈을 여니까 보였죠 우리 눈도 열어 달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엠마 오라 가는 제자들을 열어서 예수님을 포기하신 것처럼 그렇죠. 환경 모든 부분에 있어서 그 안에 예수님을 다 깨달아 설명하니 그들이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했죠. 기름 부으면 이때 확 또 이만한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죠. 그 즉시로 눈을 떠나서 예수님을 보게 되니까. 예수님이 없어졌죠 그때 내 안에 들어온 거죠. 이해갑니까? 그때 우리도 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깨달 영으로 깨달아져서 예수님을 보게 되면 내 안에 예수님을 낳은 거예요. 그게 여기까지 가야 하는데 아시겠어요. 그게 soum을 내 안에 낳은 거라고요. 그게 빛이에요. 그게 점점 커지면 뭐 광명체가 되죠. 넷째, 날이라면 광명체가 생기잖아요. 그 광명체가 있으면 내 안에 등이 이렇게 딱 빛나고 있잖아요. 그럼 어디로 가든지 갈아서 하다 이게 나오죠. 어떤 환경에 와도 가라사다 이게 나오죠. 그런데 그 광명체가 없으면은 이 환경에 오면 또 죽었네 또 이런 일이 이렇게 나오고 이 가라사대가 안 나오지 경애 말씀하시되 이게 딱 나와야 되는데 예수님은 마귀가 싹 오자마자 가라사대 어디서 까불고 있어 이렇게 딱 나오는데 우리는 환경을 만나면 경해 말씀하시되 몇 장 몇 절에 나오기를 이게 안 나온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이게 딱 나와야 되는데 그게 안 나오고 일단 염려부터 하고 그 다음에 나중에 와서 막 울며 불며 막 그때 그 말 쓰고 또 속았네 또 속았네, 그렇게 나오는 거죠. 여러분 이해가요 그래서 예수님이 빛이에요. 빛이 임하면 어둠이 밝아지죠 이게 지금 어둠이잖아요. 밝아지면 이게 보이죠. 그게 진리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고 내가 빛이고 하면 예수님을 만나면 해결되는 거죠. 사도보로 예수님을 만나니까 고꾸라져서 눈이 떠지고 그 만난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서 점점 강성해지고, 우리도 그렇게 돼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야 해요. 지금은 말씀드리기 지금 벌써 몇 년 했잖아요. 이제 눈이 조금씩 열려 보이죠. 그게 이제 시작이라고 근데 그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져요 그 다음에는 순식간에 이게 확 열려서 보이게 됩니다. 여러분 보세요. 그러면 내가 웬만한 환경에도 꿈쩍도 안 할 뿐더러, 이미 염려근심도 없어져 버려요 내 안에 빛으로 충만한데 염려근심이 있겠어요. 형의 능력으로 기름보험이 충만한데 염려근심이 올라오겠냐고요. 아무리 큰일을 당해도 염려근심 안 나옵니다. 없는데 어떻게 나와 없는데 예수님이 염려하는 거 보셨어요. 못 만나서 못 보죠. 우리도 그렇게 된다고요. 지금 되어가고 있잖아요. 아멘 염려 안 하죠. 권사님 옐루야 염려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거는 반역이에요. 여러분 5번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니까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되는 게 똑같은 말이죠. 말씀이 들어올 때 영으로 들어와야죠 레마 깨달아진 말씀 그래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다고 요소 1장에 나오는 말이 그 말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데 이 문자적으로만 묵상하고 마음의 감동 정도로만 내가 어떻게 행해야 되겠다. 뭐 이렇게 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많이 말 저도 말씀을 엄청 묵상했어요. 일기장 쓰듯이 써놨다니까요? 근데 거기서 빛이 되어서 나를 인도한 것도 많고요. 안 그런 것도 엄청 많더라고요. 옛날에는 보니까 그냥 내가 그냥 이국적으로 깨달은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되는 게 너무 많더라고. 초등학문 수준이죠. 나를 인도할 수 없는 말씀들이 많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 와서 보면 그거 보니까 유치해서 못 보겠더라고. 그때는 그거 먹고 막 눈물 흘리고 난리 났었는데 지금 보니까 아이고 쪽팔려가네 그래도 기념으로 내가 가지고 있어요. 아 이게 때가 되면 달라진다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데 그 말씀을 내가 가진 걸로만 묵상을 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 수준 안에서 아무리 묵상해도 되나 그 나물에 그 밥이지 안 되는 거예요. 성령의 도움심을 통해야 이게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깊은 하나님을 깨닫게 하는 건 진짜 성령밖에 없다고 분명히 그렇죠. 고려논서 2장에 나와 있는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묵상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많이 읽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엄청 읽어대고 엄청 묵상하고 다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때그때 물론 많이 인도해 주시긴 했지만, 그래도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주야로 묵상하는 내용이 이런 내용인 줄 몰랐어요. 깊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되는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야 말씀이 0이고 성령이 0이잖아요. 영적인 진리를 깨닫게 되는데 내가 가진 이 6적인 걸 가지고 6으로 나온 것은 6밖에 없어 안 되더라고요. 그게 그래서 그게 그래도 뿌듯하죠. 많이 했네 많이 그래도 소용없어 똑같애 또 똑같애 나 여러분도 다 했을 거예요. 안 되는 거 이제 아시니 자 그래서 말씀이 진리가 되려면 진리는 예술 그릴 수도 있고 말씀 속에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 거예요. 아니면 예술이 뭔가 나에게 말씀을 해주셔야 돼요. 그걸 가지고 따라야 그게 환경을 깨뜨려 환경을 해석해내는 능력이 되는데 그게 안되었다. 6번 진리의 영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진리의 영이 너희에게 임하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를 하는데 그게 안 됐던 거예요. 완전한 인도 성령의 인도하심 기름부음 이런 것도 제대로 몰랐다 성령 존재만 알았죠 성령 충만 말을 많이 하죠. 성령 충만합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뭐 그것만 했지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 받는지 몰랐다니까요?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 받아요. 모르지 뭘 알겠어요. 말씀이 0이잖아요. 그 영적인 말씀을 자꾸 묵상하면 충만해지죠 맞아요. 그러면 그게 진리죠 그러면 환경 가운데 가라사대가 나오는 거예요. 등만 있으면 뭐 해요. 불을 밝혀야지 말씀을 드렸죠 어떤 환경이 확 오는데 66권 가지고 있으면 뭐 하냐고 66권 중에 말씀이 하나 탁 올라와서 그걸 딱 해석해야 되는데 아 그걸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게 안 됐던 거예요. 제가 많이 읽었다니까요? 성경 안 되는 거예요. 그 말씀이 딱 나와서 쫙 해서 그걸 탁 해내야 되는데 그게 안 됐던 거예요. 근데 요즘은 바로 되죠. 사모님이 병원 가서 그거 나오고 바로 기도하니까 바로 쫙 나오잖아요. 그럼 제가 뭐 염려하겠어요. 아이고 올 게 봤구나 곧 되겠구나. 그리고 평안하지 나는 아무리 길길이 날 뛴다고 돼요. 그게 하나님이 뭐 하시는지 딱 해석해 주고 이 환경을 바로 해석을 해 주시잖아요. 그러니까 아면 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돼야 되고 또 이거 하세요. 저거 하세요. 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때하고 지금은 전 달라요. 그때는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갈아서도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왜냐면, 기름 부음이 없으니까 그 성령이 이 말씀을 해석해서 영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못하니까 아무리 말씀을 묵상해도 그 사이에 있는 그런 어떤 지식적인 것밖에는 그 감정까지는 터치하죠. 울기도 하고 뭐 별짓 다 하죠. 그런데 환경을 진리로 막 해석하는 게 안 되는 거예요. 불을 밝혀야 되는데 기름이 있어야지 뭐 불을 밝히지 성령충만은 아는데 어떻게 충만 없어 불이 뭔지도 모르고 기름법이 뭔지도 몰라요. 아 몰라요. 근데 불불하는 데는 말씀이 도통 없어요. 불 불만 하지 센 불 몇 도 몇 도 이런 것만 따지지 말씀이 없어도 된대요 그 사람들은 놀랄 노 자예요. 그럼 뭐하러 말씀 이거 기록해 놨어요. 이거 다 태워버리지 안 그래요. 교활은 뭐 하러 와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쨌든 간에 그게 안 됐는데 어느 순간부터 되기 시작하다 그때가 이제 기름부음도 임하고 말씀을 볼 때 기름부음 임하는 거 알죠 여러분 말씀이 0으로 열릴 때 0이 기름 부음이요. 말씀이잖아요. 그걸 아셔야 돼요. 여러분 자꾸 불만해서 막 그걸 원하시고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 그것도 물론 틀린 건 그것도 임해야 되지만 그게 임해야 또 우리 눈도 열고 이렇게 해서 복합적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데 말씀이 열릴 때 0이거든요. 0은 뭐라고 했어요. 0이요. 생명이요. 기름 부음이 말씀이요. 그렇죠. 맞아요. 그러니까 말씀이 열리니까 길혼부음이 임하지 그러니까 엠마오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열어서 보여주니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게 그게 이렇게 길혼부음이 강하게 임하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말씀을 볼 때 막 이 기름봄이 쫙 이만한 게 느껴지기도 하죠. 아멘 왜 안 해요. 빨리 하세요. 아멘 많이 임했을 거야. 이제 그게 느껴지죠 그러니까 여러분 막 뭔가 무조건 뜨거운 것만 막 이런 것만 하면 안 된다고요. 자꾸 말씀을 죄야로 묵상하면 흉토하다는 게 그거예요. 귀로 무음이 임하면서 사도바울처럼 꼬꾸라지고 눈이 벗겨지고 그것이 생명으로 내 안에 들어오고 이게 자꾸 반복이 돼서 장성해지는 거예요. 강건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깐 환경이 오면 가라사대 바로 나오죠. 그게 그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을 볼 때 막 몸이 확 마비되어 버리고 몸에 불이 확 이면서 막 이런 경우 많지 않아요. 있죠. 많으냐 아니도 조금 있죠. 가끔씩 실망시키지 마세요. 제발 그런 경우가 있잖아요. 그걸 자꾸 해야 되는 그래서 말씀을 묵상할 때 영어로 풀어주고 깨달음이 오면 막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쫙 퍼지고 이런 것들이 그런 거예요. 왜냐하면, 영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래요.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몸이 풀어지고 그때 막힌 통로가 확 열리고 막 이런 그래서 기어가 없어지고 난 그러니까 가진 자에게 더 주지 더 풀어지는 거예요. 있는 거 없는 거는 있는 것까지 다 뺏어버려 더 안 되는 거예요. 말씀 목사님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어요. 그게 성령 충만이에요. 말씀 충만이 성령 충만 말씀 충만이 믿음 충만 아세요. 믿음 충만 믿음 달라고 하지 마시고 믿음이 예수님의 믿음이잖아요. 내가 믿음의 주요 그럼 믿으면 예수님 말씀이잖아요. 말씀이 영적인 말씀으로 충만해지면 믿음으로 충만해지는 거예요. 당연히 당연한 거 아니에요. 예수님이기 때문에 충만해지죠 영으로 충만하려면 6은 점점 없어져야 되죠. 그러니까 6이 없어지는 거 그게 맞는 말이죠. 그게 십자가죠 결국은 그게 이 코로 딱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해 가시죠. 그래서 여러분 말씀이 이 7번 등과 길어 마태복 25장에 보면은 슬기로운 처녀 다섯 처녀 10처녀가 나오는데 그 비유 말씀 많이 드렸잖아요.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어야 이게 말씀이죠. 말씀이 아무리 들고 있어도 뭔가 환경이 바뀌면 또 고꾸라지고 막 난리 울고 불고 막 난리 나는 일을 하니 그게 뭔 내 발의 등이야 그게 그게 뭐가 내 길의 빛이야 그게 소경이지 깜깜하지 말씀 수십 번 읽었는데도 환경에 몰아치면은 어떡하면 좋아요. 이러면 뭐예요? 그게 내 발에 등이 댔어요. 내 길에 빛이 됐나요? 이거밖에 안 보이지 이거밖에 아닌가요 근데 발에 빛이 되고 내 길에 등이 되고 뭐 내 발이 거꾸로 됐네 될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러니까 기름이 있어야죠 이 기름만 있으면 돼요. 등도 있어야지 등은 예술 그래서도 말씀이 등이라고 그랬잖아요. 우리는 그냥 말씀만 많이 보기는 했어요. 율법의 문자에 의문의 말씀 그게 0으로 와야 길음부음이 임하고 진리가 되어서 나를 인도하고, 어디로 갈지 나를 보여주는데 그게 못 됐던 거예요. 그런 부분도 없고 그래서 말씀을 묵성해서 깊이 영적으로 깨달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지식 안에서 맴돌았다. 그냥 마음의 감동을 받죠. 이 수님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건 초보 때 하는 거고, 그 예수님이 아픈 걸 강조하기 위해서 그거 뭐 써놓은 건가요? 그러니까 그것도 보이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느끼는 감정 수준이잖아요. 영은 그거 아니거든요. 영적인 감동이 와야 되는데 그게 능력이 되고 생명이 되고 기름보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돌아가서 길을 밝혀내는 능력이 되는데 그게 안되는 거예요. 말씀이 여러분 필요할 때마다 빛이 쫙 돼서 밝혀져야 되는 거죠. 그게 여러분 영적인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빛이 되려면 살아서 움직이는 말씀이 돼야 되죠. 아니면 그래서 여러분 이 성경도 환경을 외부적인 눈에 보이는 걸로 기록했기 때문에 그 보이는 것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게 율법 안에 있을 때 그런 지식이고 이것을 진리로 우리가 깨달아지려면은 진리의 영역이 우리에게 임해야 되는 거예요.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와야 되는 거죠. 그러려면 내 육적인 자아가 점점 깨뜨려져 나가야 되는데 말씀을 볼 때마다 그것이 진리가 되어서 날 깨뜨려내야 되는 거 그게 이제 이 과정이죠. 그래서 말씀과 성명으로 우리한테 일이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쪽 보세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봐야 하는데 여러분 이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가르쳐 드릴게요. 말씀을 드릴게요. 우리는 그런 환경을 맞닥뜨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되는데 이 환경을 해결해 달라고 우리는 무조건 매달리죠 주님 살려주세요. 물론 급할 때는 그런 기도 당연히 나오죠. 살려달라 하면 살려주시죠. 근데 그걸 여러분 그 환경이 왜 일어났는지 모르면 계속 그 기도만 합니다. 이해가시죠. 그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길을 제시하는지 모른다고 그걸 알아야 되는데 모르기 때문에 그게 자꾸 반복이 되기 때문에 또 넘어가고 또 계속 그 기도만 하게 되는 거예요. 그게 아니에요. 물론 그 기도 하죠.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게 빠트려져 있어요. 그게 뭔가 하면 보세요. 첫번째 그래서 여러분 어떤 환경이 닥치면 우리는 환경에 푹 빠진 채로 하나님을 이해를 못하고 환경에만 빠집니다. 여기 환경에 푹 빠진 채로 하나님을 이해하려 그러니까 환경에 빠져서 그 환경에 빠져서 하나님을 이해하려니까 안 되는 거예요. 환경만 보이는 거예요. 이해 가십니까 뭔 말인지 환경에 빠져 있지 말라고 말이에요. 그 환경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이해해야 되는데 환경에 빠져 있는 상태로 하나님을 이해할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왜 이럽니까 내가 왜 이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 이거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 이게 아직 이게 안 된다라는 거예요. 그걸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염려 근심하면서 막 기도해 봐야 응답이 오는가 안 돼요. 그 환경에 빠져버리면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냥 환경만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해결해 달라 뭐 어떻게 해달라 이것만 막 보이는 거죠. 근데 그 환경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못 보면 그게 가라사다에 안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걸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두 번째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하나님께 환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돼요. 뭔 말인지 아시겠죠. 환경에 푹 빠져서 환경만 바라보면서 기도하면 안 된다. 그게 첫 번째 두 번째는 그 환경 속에서 이 환경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해 달라고 이거 이 노란 선 이걸 보이지 않는 걸 보게 해 달라고 이 말이잖아요. 이게 그걸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된다. 그게 진짜 기도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환경을 바라보라고요. 우리는 우리 관점에서 보이는 대로만 반응을 하니까 계속 실패하는 거고, 성경도 우리 입장에서 보이는 대로만 보고 받아들이니까. 그냥 행함으로 나가는 거고, 속아서 넘어가 그런데 하나님이 이 성경도 쓰셨고 하나님이 환경을 창조하시고 다스리고 운행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왜 움직이는지 그걸 봐야 될 거 아니에요. 그걸 못 보고 와 왜 나에게 일이 일어납니까 막 그거 빠져서 그것만 고쳐주세요. 살려 이것만 한다라는 거 그게 아니라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요. 하나님이 이걸 있게 하시는 게 하나님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내 손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하나님이잖아요. 이 환경을 다스리는 게 이 손길을 보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죠 이해가시죠. 그렇게 기도해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 기도해 그때는 기도하고, 바로 못 들을 수도 있어요. 그럼 중요한 것은 기도하고, 기다려야 돼요. 하나님께서 이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해주시도록 우리는 기도하고, 끝까지 기다려야 된다고 그냥 뛰쳐나가서 행하면 안 된다고요. 이해 가세요. 아브라함처럼 이스마엘을 확 놔버리면 안 된다고 이해 갑니까? 환경을 어떤 환경에 확 맞딱 떨어지면은 막 이런 게 인제 1단계 우리 초보가 했던 기도고 그게 아니고 크게 빠져서 기도하면 하나님 뜻을 모르잖아요. 해결해 달라고만 하지 그게 아니고 하나님 왜 이 일을 내기에 일어나게 하셨는지 하나님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내가 따르겠습니다. 이게 그런데 다 하면 바로 응답이 안 올 수도 있죠. 그러면은 내가 뭔가 나서서 할려고 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이게 맞다. 이렇게 해서 일이 일어났다라는 걸 깨닫게 해 주실 때 기다려야 된다고요. 이해 가십니까 그러니까 내 육신의 생각대로 하면 어떻게 돼요. 사망이라고 그래서 사망으로 죽지 마시고 죽음으로 달려가지 마시고 그 환경을 딱 보고 내 생각대로 기도하고, 행하면은 바로 죽는 거라고 이해 가시죠. 아 줄여 살려 달라고 이거는 다 포함할 수 있겠지만, 그건 차원이 다른 기도예요. 이해 가십니까 그런 환경이 오면 하나님 이 환경이 왜 일어나게 나에게 이 환경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코로나가 왜 이 세상을 덮치고 있습니까? 물어보시라고 이해가세요. 그럼 대답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내가 막 행하면 어떻게 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화이오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야죠 하나님의 생각 깊은 곳에 성령이 통찰한다고 그래서 성령으로 인도해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보세요. 성령께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환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구하고 기다려야 되는 거죠. 이해합니까? 이 단계를 지키셔야 돼요. 무조건 어떻게 조치를 해서 인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거 막으면 이쪽 터지고 저 이렇게 된다니까요? 여러분 절대 그거 안 돼요. 사망이라고 그 육신의 생각은 이 환경에 하나님의 뜻이 뭔가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줄을 가지고 지금 올리고 있는데, 하나님 빨리 내려놓으세요. 이거 안 되잖아요. 왼쪽 올리세요. 올리세요. 이빨이 올리세요. 안 되잖아요. 지금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올리고 계신데, 이거 끊어버리고 왼쪽 올리라고 하면 되겠냐고요. 우리 기도가 그렇다 그러니까 지금 줄이 어디에 매달려 있지요 이걸 봐야죠 이해 가십니까 그걸 보는 게 성형이라고요. 성형이 진리 예형이잖아요. 그게 이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는 게 나타난 것으로 된 거잖아요. 보이지 않는 거 그걸 보는 눈이 성형이죠. 그게 진리죠 이 까 놓으면 이게 보이잖아요. 그게 진리죠 진리의 영이 오면 그걸 보게 하신다고요. 그러니까 진리의 영을 구하고 진리의 영을 그걸 밝혀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기다려야죠 성령이 인도하심을 기다려야죠 이해 가시죠. 그냥 행하시면은 안 된다고요. 그게 사망이라고요. 그래서 막 기도해도 안 되잖아요. 우리가 안 될 때 얼마나 많아요.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서 이렇게 하려고 작정을 해 놓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 하셔요 그렇죠. 근데 내가 보기에 이게 안 보이고 이거 앞에만 보이거든. 그러니까 빨리 아니요. 이쪽 말고 이쪽으로 가게 해 달라고 막 기도하잖아요. 그럼 되겠냐고 이게 헛고생만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기도도 응답 안 된다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막 삽대질하고 떠나가죠 그거 아니에요. 이게 이렇게 가는 걸 하나님이 여러분 이렇게 가도록 한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 이것 때문에 하셨군요. 그러면은 가면 되죠. 근데 안 가는 사람도 많아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순종하겠습니다. 그 마음이 없으면 안 가르쳐 줍니다. 이해가세요. 뭔 말인지 반드시 그 인도한 대로 나는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마음이 없으면 안 가르쳐줘요 가르쳐줘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 목적지가 내 눈에 보기에는 엄청나게 불리해 보여도 따르겠습니까? 그 준비가 되어 있어요. 나는 죽어도 목사하기 싫은데 목사하는 길로 간다고 딱 게시를 해 주시면 가겠어요. 나는 내 목표는 그게 이미 아니라고 날 때부터 정해놨는데 이럴 때는 이게 안 보여요. 하나님이 안 가르쳐 줍니다. 물론 가르쳐 주시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보게 해서 끌고 갑니다. 그 길로 왜냐하면, 그게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그게 진리예요. 진리가 생명이 그게 편강이형 심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해 가세요. 1번 그림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이쪽으로 가는 길인데 우리 보기에는 아이 그 좀 니가 마음에 안 들거든.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순종할 준비가 돼 있어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이것도 보이는 거예요. 이것도 들리는 거예요. 이해 가세요. 그래서 그 다음에 마지막 줄 그게 있는 겁니다. 그 인도하신 대로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나의 환경을 통해 하나님이 하고 계신 그 일에 맞춰라 하나님이 이 환경을 조성을 하시는데 그 환경을 통해서 뭘 하시는지 다 목표점이 있잖아요. 근데 그걸 위해서 이 환경을 만들어 가시는데 내가 싫다는 거지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뭐 간단해요. 매 맞으면서 끌려가면 되는 거예요. 매 맞으면서 끌려왔어요. 제가 그래서 이제는 이제 매 안 맞지 이제는 예, 알겠습니다. 죽어도 하십시오. 이렇게 해야지 알겠어요. 여러분 그걸 아셔야 된다고 그걸 모르고 막기도 해봐야 시간 낭비하고 고통이 더해지고, 이걸 또 그래도 또 뭐 그게 다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그래서 환경을 보면은 환경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셔야 돼요. 내 생각에는 이런데 하나님 절대 갖다 대면 안 돼요. 내 계획은 이러이러한데 하나님 왜 자꾸 이러시는지요 이러면 이거 안 돼요. 이거 진짜 덜 맞았을 겁니다. 몇 매 맞아봐요. 얼마나 아픈가 맴매 그렇게 하지 마시고 하나님 뭘 원하시는지요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원한다. 그럼 가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데 대부분이 안 가요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올 때 땅의 걸 목표로 가져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표치하고 안 맞을 때가 많아요. 이해가세요. 1번 그림으로 귀결이 됩니다. 아래로 내려갈게요 성경에서 환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읽어내지 못하면 보이는 것과 보이는 문자 말씀에 속아서 종노릇한다는 그게 노예예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이것이 아담이 보이는 것에 속아서 선악지식으로 판단하게 하여서 죽음으로 몰고 가는 막이다. 지난번에 한 거예요. 그러나 보세요. 진리 영이 오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보이는 것 안에 있는 실제 진리를 보게 하신다는 거죠. 그게 진리의 영이에요. 그럴 때 진리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서 가면 그게 영이요. 생명이요. 편광이라고 그랬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편광이라 그게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죠 성경은 또한 요한일소장 7절의 진리죠 그래서 성경을 최하로 묵상해야 되는 거예요. 묵상해서 그 안에 영적인 진리를 깨달아야 내 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거예요. 만나면 그게 내가 예수고일스를 갖는 거예요. 내 안에 예수고리스도 충만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말씀을 문자로 읽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주야로 묵상해야 돼요. 지형적인 진리를 발견하고 깨달아서 내 안에 생명의 양식으로 들어와서 내 안에 계셔야 되는 거예요. 그게 빛이 되는 거고, 어둠을 밝혀내는 거예요. 그래야 어디로 가든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길이 형통한 길이죠. 내 일이 잘 풀린다고 그게 형통하다고 하면 안 돼요. 아시겠어요. 내일이 형통하기 위해서 오셨죠 그거 내려놓으셔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형통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형통하는 길이 훨씬 더 거기엔 염려도 없고 근심도 없어요. 아멘 마지막에 결론 내려갑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모든 환경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관점을 드러내시기까지 기도하고, 기다리세요. 뭔 말인지 아시겠죠.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돼요. 그냥 행하지 마세요. 제발 제발 망할려고 노력하지 마시라고 제발 죽으려고 몸부름 치지 마시라고 아시겠어요. 절대 어떤 상황 속에 환경 속의 진리를 그 환경을 보고 판단하면 안 돼요. 보이는 것으로 절대 판단하지 마세요. 이 보이는 것으로 다 속아 넘어요. 여기에 이걸 해결해 달라고 계속 우리는 기도하죠. 다 헛된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걸 통해서 하나님이 뭘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데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으니까 안 맞는 거예요. 계속해서 엉뚱한 짓만 하는 거예요. 여러분 뜨겁지 않아요. 지금까지 뭔 기도를 했는지 여러분 아시겠어요. 그걸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그걸 해결해 달라고만 기도를 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답답한 일이에요. 그래서 다른 일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자유함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환경을 보고 절대 판단하지 마세요. 그 환경 속의 진리를 알기 전에는 절대 내 멋대로 판단하고 행하시면 그건 죽음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그 다음에 예수님께로부터 듣기 전에는 절대로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자기 부인이에요. 내가 이렇게 할려고 하는 걸 부인해야 돼 절대 예수님께로부터 들으려면 영이신 예수님과 만나야죠 바로 성경을 죄야로 영적으로 깨달음이 올 때 만나는 거잖아요. 그걸 말합니다. 027년생명이니까. 그 깨달음이 오도록 계속 주야로 우리는 성경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서 묵상을 하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말씀을 볼 때 거기에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그때 그 환경이 왜 일어나고 왜 이 일을 일으키는지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고 아시겠어요. 그게 기도예요. 여러분 그래서 성경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런 말을 말하는 거지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성경 구절 딱 갖다 대놓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이거 문제 이사회에서 41장 뭐 딱 대놓고 주야로 그걸 말씀으로 기도하는 거라고 하지 않아요. 그거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그거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여러분 그건 내가 내 환경의 나를 끼워 맞추는 거지 그걸 말하는 그게 하나님이 그 환경의 그날 그걸 말씀하셨나요? 그럼 맞아요. 그 말씀으로 나를 인도해서 거기에 꽉 꽂히게 하셨나요? 그러면 맞아요. 내가 지금 막 불 가운데 크게 뜨거워서 타고 있는데, 그 이사에서 41장 말씀으로 인도해서 그 말씀을 보여주시면 니가 불가운데로 가도 내가 안 태운다라는 게 확 떠오르면 그건 맞아요. 그런데 그게 아닌데 이사여 41장 내가 평소에 외우고 있는 말씀으로 확 갖다 대서 안 돼요. 그건 그거 문자예요. 여러분 그렇게 되는 거 아니에요. 이해가시죠. 왜 묵상이 필요한지 그러니까 그 묵상이 곧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그게 기도라고요. 기도 우리가 강구하는 건 기도가 아니죠. 강구 강구 기도죠 그건 기도는 하나님과 왔다 갔다 하는 거잖아요.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왔다 갔다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거죠.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깨달음이 올 때 아 이거 맞나요? 아 이거군요. 이게 대화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게 오면은 그다음 단계로 또 넘어가죠 아 이걸 왜 이렇게 됐죠 그러면 성경을 보면서 또 묵상하면 또 예수님이 영으로 만나지면 또 그게 아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되네요. 이렇게 가는 거지 막 이렇게 돼서 가는 게 아니라고 아시겠어요. 그래서 여태까지 안 됐던 거예요. 갈아서 하더니, 안 되는 거예요. 그 환경이 딱 오면 바로 기계 탁 나가서 이게 어디 까불고 있어 이게 딱 어디 이걸 가지고 나를 속이려고 이게 팍팍 나와야 되는데 안 나오죠. 여러분 이해 가세요. 묵상이 뭔지 아시겠어요. 여러분 똑바로 하세요. 제발 말씀 목상에 대해서 한번 제가 할려고 했는데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오늘 이걸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게 진짜 묵상이에요. 그 속에 칠리의 영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영적인 교감이 일어날 때 그때 만난 거예요. 이미 말씀을 다 해 놓으신 거잖아요. 예수님이 뿅 나타나서 바울아 너 이렇게 해라 이걸 기다리시죠. 지금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안 일어날 거예요. 내가 다 주지 않았니 이미 게시가 완성됐어요. 여러분 아시겠어요. 그래서 말씀하느라 들어가야 돼 왜 말씀을 죄야로 묵상하라고 그랬어요. 왜 환상으로 예술님을 보려고 애쓰라 이렇게 안 하고 말씀을 조야로 묵상하라 하겠어요. 여러분 아시겠어요. 이제 말씀을 성경의 진리 영향의 임금을 받아 묵상하세요. 그러면 그 환경 가운데 그 환경을 가지고 성령님 하나님 이 환경을 통해서 제게 무엇을 말씀으로 하시고 원합니까? 그러면서 성경을 보세요. 성경을 읽다가 어떤 것에 걸리면 거기에 묵상을 하세요. 이 말씀이 내게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영적으로 어떤 뜻입니까? 자꾸 물어보면 그때 그 환경과 연결이 돼서 말씀이 임한다니까요? 금방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럼 될 때까지 가야 돼요. 무조건 행하지 마세요. 절대로 딱 해서 많이 튀기는 대로 가려고 하지 마세요. 절대 안 돼요. 계속 그래서 고생만 하는 거예요. 계속 이 목표는 여기다 정해놨는데 자꾸 요렇게 가려고 끌려가는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끌리면 얼마나 아파요 안 딸려가니까 환경을 확 치고 일어나는 거죠. 그게 인재학 7가지 이해 가세요. 그래서 그걸 꼭 하셔야 돼요. 말씀을 환경을 그렇게 묵상 환경 속에 빠지면 안 되고 환경을 진리의 영향으로 묵상하셔야 된다고요. 아시겠죠. 그 다음에 왜냐하면, 왜 그게 안 되는가 내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내 속에 진리가 없는데 아무리 묵상해 봐요. 되나 아무리 읽어봐요. 되나 진리 예형으로 인도함을 받아 그렇게 하셔야 돼요. 예수님만 진리이기 때문에 그래요. 아멘 그래서 예수님이 내게 말씀하시면 다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보이는 것은 문자 외모 여기에 가려져서 진리가 드러나도록 가려져 있는 그 진리가 드러나도록 어둠의 빛이 착 임하면 밝혀져서 보여지도록 그것처럼 안개로 가려진 거에 해가 뜨면은 안개가 싹 벗겨지죠 그것처럼 그래서 말씀이 빛이 되어서 그걸 비춰낼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그게 말씀묵상이에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서 그걸 알게 하셔야 돼 왜 일이 일어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도해서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께 말씀하실 거예요. 성경을 가지고 내게 그 환경을 해석할 수 있도록 말씀을 하실 거예요. 그게 말씀이 충만하면 진리고 충만해지죠 기름보험이 충만해지면 눈이 열려서 그 환경이 보여지기 때문에 성경이 내게 말씀하시게 하셔야 돼요. 아멘 제발 섣불리 하지 마시고 서두르지 마시고 어리석게 내 생각 계획대로 막 으샤으샤 하지 마시고 믿음 아멘하고 믿음이 좋아요. 이렇게 해서 죽는 거예요. 육으로 난 것은 전부 6이에요. 하나님과 원수 결국은 다 죽게 돼 있어요. 여러분 교회 와서 죽는 짓 하지 마시고 제발 여러분 똑바로 하셔야 돼요. 여러분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이제 아시겠죠.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말씀 열기예요. 그게 1번 그림 전부 그 안에 있어요. 말씀과 귀로운 모음이에요. 그걸로 다 일어납니다. 그래서 영적인 말씀이 자꾸 열려지면 이 어둠의 빛이 되기 때문에 자꾸 열려서 그 하나님의 행하심이 보여진다니까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만들어 가시는가 금방 깨달음이 와요. 왜냐하면, 내 안에 빛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아시겠어요. 그걸 하세요. 거기다가 시간을 투자하세요. 엉뚱한데 제발 막 신비적이고 막 이런 데 매달리지 마시고 그건 열려가면서 하나님이 다 주셔요 진짜 다 주셔요 여러분 은사도 능력도 다 나온다니까요? 아멘 제발 그러니까 여러분 엉뚱한 데 시간 보내지 마시고 칠리 안으로 들어가시기를 스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그래야지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칠리의 성령을 구하겠습니다.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1. 환경 해석 1-1. 환경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중요)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짐 - 우리는 삶의 모든 사건에 노출되어 있으며,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함 - 성경은 우리가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가이드임 - 우리의 경험과 습관은 환경을 극복하는 능력이 되지 못함 - 하나님은 우리가 경험의 공식으로 풀어낼 수 없는 문제를 풀어주심 1-2. 저주받은 자아와 환경 - 우리는 환경에 무조건 반응하는 존재임 -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저주받은 자아에 속해있음 - 인형극을 통해 관객의 기대와는 달리 슬픔과 기쁨을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환경에 따라 좌충우돌 업다운 난리임 -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환경에 길들여져서는 안 됨 - 우리가 보이는 환경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다스리시는 것임 1-3. 진리가 말하게 하라 - 본문은 히브리스 11장 3절을 인용하며, 우리가 환경 속에서 진리를 보도록 권고함 - 요한복음 9장, 로마서 7장, 고린도전서 2장 등을 참고할 것 - 히브리서 1장 3절에 따르면,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고 운행되고 있음 - 하나님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환경을 통해 자신의 운행을 보여주심 - 우리는 환경 속에서 주의 손을 사용하여 주의 손에 의한 행적과 회귀를 추구해야 함 2. 인간의 타락과 저주 2-1. 인간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 - 인간이 배운 지식, 훈련 등을 이용해 세상을 다스리려 함 -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언급함 - (중요) 인간의 모든 사고, 경험, 지식 체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가피한 결과임 - 본인의 위치와 지위를 내려놓아야 천국에 갈 수 있음을 강조함 2-2.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인간이 저주의 상태로 전환 - 하나님의 신이 떠나면 인간은 바뀌어야 할 환경에 놓임 - 이로 인해 인간은 진리를 깨닫는 능력이 없어짐 - (중요) 육체로 전환된 인간은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음, 진리에 접할 수 없음 - (중요) 진리가 없어진 상태는 마치 저주 상태,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짐 2-3.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그 결과 - 인간이 보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문제가 됨 - 성령, 즉 진리가 없어진 상태에서 우리가 진리를 알 수 없음 - 교회를 오래 다니고 적게 다니는 것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신이 떠나면 우리 인생이 저주 상태가 됨 - (중요) 강사는 진리를 깨달는 능력이 없어지고,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함 3. 선악과의 교훈 3-1. 환경과 하나님의 주관 -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의 주관 없이는 자유로울 수 없음 - 일에 탁이라면 난리 나고, 문제가 생기면 울고 기도해야 함 - 문제가 생겨도 해결될 때까지 고민하며, 보이는 것만 보고 반응함 - 사람은 껍데기 인생이 되기 쉽고, 완벽주의에 빠질 수 있음 - 예민하고, 작은 일에도 근심하며, 다 함부로 다 함 3-2. 선악과의 교훈 - 사람은 보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고 판단한 후 행동함 - 이렇게 하면 사망에 이르게 됨, 로마서 8장 1절에 나옴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육신의 법에 굴복시킴 - (중요) 우리는 육적인 존재이기에 보이는 세계에 떨어져 죽음으로 가게 됨 - 보이는 것을 쫓아가고, 판단하고, 행하는 것이 선악과임 3-3. 진리와의 연합 - 진리와 연합하지 못하고, 육적인 생각에 장악당함 - 예수님을 믿으면 진리가 우리 안에 들어와 볼 수 있음 - 우리는 성령을 갖다댑고,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함 - 육적인 생각은 완전히 닫혀 있다는 증거이니, 보이는 것을 멈춰야 함 - 우리는 진리의 영,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받아들임 4. 말씀과 연합 4-1. 육적 자아 벗어나기 - 우리는 기도하고 문제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에서 금방 알 수 있음 - 하나님의 눈인 영이 열리면 환경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음 - 성경은 영이 보여져야 함을 가르침 - 영이 보여지는 것은 말씀이 충만해지는 것 - 말씀이 충만해지면 진리가 다 보임 4-2. 오직 십자가를 통한 자아 깨뜨리기 -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눈의 비늘이 벗겨져야 함을 말함 - 비늘이 벗겨지는 것은 육적인 몸을 벗는 것과 같음 -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육적인 자아가 벗어나고, 눈이 열리면서 진리가 보임 - (중요) 자기 부인은 십자가와 같은 말이며, 깨어지는 것을 의미함 -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육적인 감각을 깨뜨리고, 비늘이 벗겨짐 4-3. 자아 깨뜨리기의 결과 - 우리는 100세가 되면 육적인 감각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됨 - 이는 영적으로 100세가 되는 것을 의미함 - 로마서의 성령은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함 -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진리가 나타나도록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진리가 나타남 -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그 결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가 됨 5. 영적 깨달음 5-1. 육적 자아의 십자가 - 100세 때 믿음 약해져 아브라함 이삭 낳음 - 아브라함 이삭 낳은 후 삶에 기쁨이 찾아옴 - (중요) 아브라함 이삭 낳은 건 자기 나름대로 옳게 판단한 것 - 우리는 힘으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함 - 아브라함도 할례를 당해야 했음 5-2. 영적인 깨달음과 육적 자아 - 영적인 깨달음 얻으면 육적 자아가 깨뜨려 가고 하나님이 함께 함 - 우리는 예수님 만나면 육적 자아가 고꾸라지고 영적으로 깨달음 - 말씀이 읽히면 영이 생명이 되고, 예수님을 만나면 영적으로 깨달음 - 말씀을 통해 생명 얻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 중요함 - 육체와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심 5-3. 진리와 연합 - 진리와 연합하려면 십자가 통과해야 함 -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들은 깨닫게 하심 - 진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함 - 만나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씀을 듣고, 말씀을 행해야 함 -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중요함 6. 진리의 영 6-1. 진리 분별의 중요성 - 본인의 마음과 안목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함 - (중요) 좋은 교회나 좋은 사람이 아닌, 선과 진리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 - 가려진 것을 먼저 고쳐내야 진리를 볼 수 있음 -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행하시는 것이 진리임 - 껍데기(겉새)를 벗겨 내는 것이 중요함 6-2. 예수님을 만난 후의 변화 - 소경이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만난 후의 시작임 - 예수님의 말씀과 연합하여 내 안에 진리를 이룸 -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면 진리를 아는 것이 됨 - 진리가 연합되어야 환경(문화, 교회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짐 - 말씀을 통해 씻어내는 것이 중요하며, 성령이 도와주심 6-3. 소경의 눈을 뜨는 법 -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내 안에 더러운 것을 씻어내야 함 - 말씀과 성령으로 행하시는 것을 통해 내 안의 비늘이 떠짐 - 소경이 혼자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연합해야 함 - 진리의 영이 내 안에 들어와야 함을 기억해야 함 - 고꾸라지는 경험을 통해 진리를 찾는 것이 중요함 7. 눈먼 자 7-1. 성령 임재로 인한 변화 - 깨달음은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라는 말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남 - 성령 임재로 인해 눈먼 것이 보이기 시작함 - 보이는 눈과 보이지 않는 눈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짐 - 눈이 열리면 생명의 양식에 대한 강건함이 생김 - 사도바울은 눈이 떠진 후 3년의 시간이 지나야 함을 깨달음 7-2. 생명의 양식과 성령 - 눈이 떠졌는지 감겼는지는 스스로 알 수 있음 - 성령이 임하면 기름을 부어 눈먼 자를 보게 하고 눈을 열어줌 -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기름을 부어 눈을 여겨 생명을 얻게 됨 - 성령의 임재로 물이 생명이 되고, 생명은 예수님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임 - (중요)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볼 때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됨 7-3. 눈먼 자의 삶 - 사도바울은 눈이 떠진 후, '나를 따르면 어둠에 다니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전함 - 성령이 임하면 문자와 말씀이 아닌, 생명을 얻게 됨 - 생명은 예수를 통해 내게 옴 - 말씀은 생명의 양식으로, 말씀을 먹고 강건해짐 - 예수를 막 나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강건해짐 8. 깨달음의 과정 8-1. 진리의 보여주심 - 성령이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해 보이게 함 - 예수님을 만나고 보게 되면, 그 안에 진리가 있음 -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열어 예수님을 만나게 하심 - 예수님을 알게 된 제자들은 눈을 떠나 예수님을 보게 되고,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내 안에 낳게 됨 - 깨달아진 말씀을 묵상하면, 그 말씀이 빛으로 인도하고, 염려와 근심이 없어짐 8-2. 진리와 성령의 인도 - (중요) 예수님은 빛이시고, 그 빛이 우리에게 임하면 진리가 됨 - 진리는 예술이거나 말씀 속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 또는 말씀을 통해 환경을 해석하는 능력이어야 함 -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말씀이 진리가 되고, 성령 충만받을 수 있음 - 성령 충만받는 방법은 말씀을 묵상하고, 깨닫게 하는 것임 - 많은 것을 해석하고 노력했지만, 진리의 영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몰랐음 8-3. 환경과 빛의 비유 - 진리의 영이 임하면 환경을 바로 해석하고 깨닫게 됨 - 말씀을 묵상하고, 빛이 되어 나를 인도하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함 - 염려와 근심이 없어지고, 말씀이 빛으로 충만할 때, 빛으로 충만한 자는 어떤 환경에도 꿈쩍도 안 하고, 염려근심도 없어짐 - 이처럼 환경에 와도, 말씀이 나와야 함을 깨닫게 되고, 그 빛이 되어 나를 인도하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함 9. 성령충만의 능력 9-1. 말씀을 통한 길 - 기름부음은 성령충만의 결과로, 말씀을 통해 이루어짐 - 성령충만은 지식적인 것뿐 아니라 감정적인 것도 포함함 - 환경을 진리로 막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 - 불을 밝히려면 기름이 필요하듯, 말씀이 없으면 성경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음 - 생명을 나타내는 말씀이 등이 되어야 함 9-2. 믿음의 능력 - 믿음으로 인한 충만은 성령충만의 결과임 - 믿음은 예수님의 믿음으로, 말씀을 통해 인도받고 보여지며, 생명이 됨 - (중요) 6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말씀을 통해 6이 없어지고 길이 열림 - 성령충만은 믿음으로 인한 능력으로, 예수님의 믿음을 의미함 - 영적인 말씀을 통해 등이 되고, 길이 열리며, 생명이 됨 9-3. 기도하는 법 - 환경에 빠져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환경을 해결하려 하지 말아야 함 -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만 반복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 - 환경에 빠진 상태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하면 안 됨 - 문제를 통해 하나님이 제시하는 길을 알아야 함 - 기도를 통해 환경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이해해야 함 10. 환경 깨달음 10-1. 환경에 대한 올바른 관점 - 환경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함 - 올바른 관점에서 환경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함 - 성경에서도 우리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록되어 있음 -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환경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도록 기도해야 함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아서 넘어가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기도하고 기다리면 응답하심 10-2. 기도와 응답의 관계 - 기도하고, 끝까지 기다려야 함 - 기도한 후,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오지 않을 수도 있음 - (중요) 내 생각대로 기도하고 행하면, 바로 죽음에 이를 수 있음 -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함 - 내 생각대로 기도하고 행하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 됨 10-3.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 - 내 생각대로 기도하고 행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음 -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그 길로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함 - (중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도 소용없음 -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불필요함 11. 성경 묵상 11-1. 환경 속 진리 인식 - 보이는 것에 속아 선악과를 판단하게 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임 - 진리 영이 오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보이는 것의 실제 진리를 보게 함 - 진리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영적인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함 - 요한일서장 7절의 진리 또한 성경을 최하로 묵상해야 함 - (중요)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함 11-2. 성경 묵상의 자세 - 주야로 성경을 묵상하여 지형적인 진리를 발견하고 깨달아야 함 - 성경의 진리와 생명의 양식으로 내 안에 계셔야 함 - 말씀을 문자로 읽는 것이 아니라 주야로 묵상해야 함 - 환경 속의 진리를 알기 전에는 자신의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됨 - (중요)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함 11-3. 기도와 묵상 - 성령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환경 문제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심 -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며, 행하지 말아야 함 - 환경 속의 진리를 알기 전에는 자신의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됨 - 말씀을 통해 깨닫고 기도하면 환경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음 - 성경을 묵상함으로써 자신의 상황을 바꾸고 하나님께 인도받을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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