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으로 말하기
우리는 언제나 말을 하고 산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특권이다.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는 수단으로서 말은 더 할 수 없는 편리함을 준다. 이렇게 좋은 의사소통 수단이 부적절하게 사용되어 화를 부르는 일이 많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마디면 넘어갈 수도 있을 일을 오만불손한 말 땜에 감방에 갇히기도 한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고 일렀다.
우리는 누구와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의 톤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그 톤에 맞추게 된다. 상대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면 따라 올라가게 되고, 같이 흥분하게 된다. 흥분하게 되면 감정이 격해져 이성적 합리적 판단이 결여된다. 그 결과는 나중에 후회로 돌아온다. 따라서 말은 조곤조곤하게 하는 것이 좋다. 말을 조곤조곤하게 하면 이성적 뇌가 작동하기 때문에 논리적이 되어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흥분을 하지 않으니 여유가 있어 전체 맥락을 파악하기가 쉽다. 이렇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면 어느 누구도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대화에서 자신이 목적한 바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말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고 하더라도 한 박자 늦게 말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모임에 가서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오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분위기 파악을 하느라 가만히 있다가도 자기가 아는 주제가 나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끼어든다. 아마 잘난체 하고자 하는 속물근성의 발현이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화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므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꼭 말을 해야 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게 하면 분위기와 맥락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르던 것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내용을 알게 되어 자신의 생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의 기분은 어떨 것이며 상대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야 한다. 말을 잘하려면 상대의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우리를 둘러싼 사회 환경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고려해서 말을 해야 한다.
화나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성질대로 내지르면 속은 시원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반드시 후회한다. 속상하고 화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표현해야 하는지를 잘 선택해야 한다.
화난다고 막 해대거나 때려 부수고 나면, 대인관계의 감정 채권이 다 날아가 버리고 오히려 부채를 안게 된다. 화나고 억울할 때는 채권자지만, 해대고 나면 그 채권을 다 써버린 꼴이 된다. 지나치면 오히려 부채를 지게 되어 감정 채무자로 바뀐다. 성질이 나서 해댈 때는 감정이 고조되어 흥분상태가 된다. 흥분하면 무리하게 되고 도를 지나치게 된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부채를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정이 대개 이렇다.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그냥 해대고 본다. 나중에 후회할 거라는 생각같은 것은 아예 하지 않는다. 그런 성정을 부추기는 문화가 우리 곁에 있다. "화끈해서 좋다."라고 부추기는 문화다. 정말 좋을까? 우선 당장은 좋겠지만, 엄청난 직·간접적 손해를 보게 된다. 지금 좋은 만큼 이자를 붙여 나중에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
주변국 일본과 중국 사람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힘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고 돈이 있어도 표시를 내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과 국가 생존과 번영을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우리는 그 화끈한 성정 때문에 우리의 속내를 다 드러내고 있으니 어떻게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 국력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우리에게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한데 우리의 속내를 다 드러내 놓고 어떻게 전략을 만들고 구사할 수가 있나? 아마도 주변국들은 이런 우리를 보고 속이 없는 바보로 생각할지고 모른다. 전략의 기반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정치인에게 말하기는 보통 사람들의 말하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중요하다. 정치인에게 말은 곧 무기다. 말 한 마디로 표심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말로 먹고 사는 정치인은 말 한 마디가 가져올 영향력을 심도 있게 정밀 분석하여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정하고 사전에 리허설을 한 다음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말하는 사람의 뒤에는 전략가가 있어야 하고 그 전략가의 지침과 방향에 맞게 글을 쓸 수 있는 스피치라이터가 있어야 한다.
세계의 유명한 정치인들은 스피치 라이터를 따로 두고 단어 하나, 음절 하나에 공을 들이고 상황에 맞게 사용한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이나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은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고도의 전략적 계산으로 정제된 단어를 선별한 연설이었다. 이런 시스템이 없으면 좋은 호재를 만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품위 없는 말을 함으로써 오히려 경쟁 상대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그러므로 국가수반은 공식행사에서 ‘원고에 없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관련 고위참모들이 전략적 판단을 기초로 스피치 라이터가 토씨, 쉼표, 음정까지 고려한 원고를 써서 제공한다. 그 틀을 벗어나면 의도한 전략에서 어긋날 수가 있으며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도 격식 파괴를 좋아해서 참모들이 써준 원고를 무시하고 즉석에서 연설을 가감하는 바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처럼 신중하게 앞일을 내다보면서 전략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좋다.
정치 논쟁의 말은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내용물이 아무리 좋더라도 포장이 격에 맞지 않으면 고객들이 사지 않는 것처럼 비판의 내용이 정당하더라도 표현 방법이 저속하거나 격에 맞지 않으면 논쟁의 중심이 ‘내용에서 표현 방식’으로 이동한다.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를 가지고 난타전을 벌이게 된다. 본말이 전도되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말은 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전달되어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품위 있고 세련되게 준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통 저질스럽거나 비속어를 접하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고, 저질스러운 집단에 속해있는 불쾌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상관없는 사람일수록 존중받는 느낌을 받고 싶어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콩깍지가 씌어서 어떤 말이라도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은 상당히 객관적 입장에서 받아들인다. 정치는 중도층 지지획득 경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중도층이 반감을 사지 않을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공격수의 입장에서 뱉었던 말들이 수비수가 되면 모두가 부메랑( boomerang)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므로 후일을 생각하면서 전략적으로 생각하여 말을 해야 한다.
예비역 육군소장 김진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