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의 시간은 쏜 살이다. 초봄에 만나 만추를 지나 초겨울에 들어선 사내 넷이 인제에 거처를 마련한 사내 덕에 시작한 트레킹, 여름과 초가을엔 껄떡대는 사내들로 득실거렸던 그곳도 이제는 정갈하고 고즈넉한 선방처럼 변했다.
울창한 여름에 거처 앞 송어 횟집에서 사내들 십수 명이 떼 지어 퍼마시고 들어와 게거품 물어대며 각자의 성공담을 과시하다 노래방 기기 음악에 맞춰 고래고래 질러대던 그 호기와 불덩이들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대신 7-8년 전 자연스레 넷만 남아 아침가리 계곡 트레킹으로 시작한 산행. 처음 오전 오후로 하루 6-7시간씩 연속 3일간 인텐시브하게 진행된 이 원칙은 산행 시간만 4-5시간으로 줄어들었을 뿐 그대로다. 이것이 이 만남이 오래 유지되는 비결이다. 自利利他, 내게 유익한 것이 남에게도 유익하다. 초겨울 나무에는 뿌리, 기둥과 가지만 남아있듯, 만난 지 54년 된 우리도 모든 꾸밈과 가식은 사라지고 본질만 남았다. ”각자 두 다리로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자!“ 이보다 더 유익한 타자는 없다.
이번 첫날 설악산 흘림골에서 오색 약수까지 내려오는 4시간 반 산행에서 제일 몸이 가벼운 K가 ”이번 가을에 대청봉 마지막으로 올라갈까?“라고 제안한다. 모두 속으로 군침을 흘리며 말이 없다. 가고 싶다는 얘기다. 7학년들이 주제넘게 욕심을 낸다. 불과 1년 전 전립선 말기 암 수술을 받고, 피나는 노력으로 가장 건강한 몸을 만들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한계가 없다. 샤워할 때 보니까 배에 구멍을 다섯 개나 뚫었다. 우리는 ”오성 장군이네!“하며 조크를 던진다. 인제 주인장은 십수 년 전 폐암으로 사형선고 받고 폐 한쪽을 절단하고 살아남아 걷는다. 사람 몸의 회복력은 끝이 없다. 역시 가슴에 칼자국이 크다. 또 한 친구도 17년 전 아들에게 간을 이식받고 수도승 이상의 절제된 생활로 건강을 되찾은 친구다. 모두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도인들이다. 몸에 칼자국 없는 건 저뿐이다. ”주현이가 비실비실해 보여도 제일 건강하고 오래 살거야!“ ”술 때문에 글렀어. 평생 성실하고 꾸준하게 부어댔어. 공짜가 어디 있어?“
시간은 우리에게 등수를 쓸어내고, 빈부를 쓸어내고, 지위를 쓸어내고, 오직 두 다리를 서로 지켜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