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합니다/김정한
나의 작고 차가운 손이
당신에게 닿으면
당신의 마음을 다 덮고도 남을
그런 손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 서야 알았습니다.
세찬 비바람에도 끄덕하지 않은
외길 인생의 고집스런 마음도
당신이 떠나고 나니
내게는 어울리지 않은 사치처럼
한낱 보잘것없이 허물어진다는 걸
이제 서야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정작 그리워하는 마음이
뼈속 깊이 사무쳐
하루 하루 감당하기가 힘에 부치고
당신의 가식없는 내리사랑 앞에
이기적이고 경솔했던 내사랑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드러내는 것이 더 힘든 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나의 엷은 웃음과
조금 덜익은 듯한 마음이
나를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한평생의 기쁨을 다 가진 사람처럼
기뻐하시던 당신,
살아가는 내내 받기만 했던
당신의 내리사랑이
내 삶의 생명수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정한시집그대에게띄우는편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