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4주 기도
6월 22일 기도
주님, 오늘도 하루를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이 하루의 시작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맡기며,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기도로 엽니다. 먼저 부모인 제가 자녀를 내 소유로 여기지 않게 하시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온전한 사랑과 섬김의 모범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이라는 넓은 무대에서 붕새처럼 담대하게 날개를 펼치고, 크고 넓은 바다에서 노니는 리워야단처럼(시편 104:25~26) 큰 비전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살아가며 거센 태풍과 맞닥뜨릴 때 도리어 그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게 하시고, 장벽이 앞을 가로막을 때 그것을 도약대 삼아 뛰어넘을 수 있는 단단한 용기와 기개를 주옵소서.
그러나 주님, 자녀가 강할 때뿐만 아니라 약할 때에도 스스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세상의 벽을 뚫고 전진하는 매 순간, 정직한 패배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태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뜻대로 되지 않는 고난 속에서도 피할 길을 내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진정한 위대함은 소박함에 있으며, 진정한 힘은 너그러운 마음에 있음을 늘 기억하는 온유한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세상에서 성공한 이후에 비로소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걷는 오늘의 일과와 일상, 스치는 만남 속에서도 먼저 하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마태복음 6:33) 하옵소서. 매일의 배움 속에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스스로의 감정과 행동을 다스리는 절제의 능력을 더하사, 하늘과 바다를 덮는 선한 영향력을 펼쳐가게 하옵소서.
하늘을 날고 바다를 누비는 것 같은 치열한 삶의 여정 속에서도, 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즐거움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감사의 기쁨을 온 가족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6월 23일 기도
지난주에는 꼬박 사흘 동안 두문불출했습니다. 세속의 번잡함을 차단하고 내면을 깊이 성찰하며 깨달음을 추구하는 스님들의 ‘폐관수행’, 그리고 수도원 안에서 평생 기도와 노동에 전념하는 수도사들의 ‘봉쇄수도원’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그들처럼 고고하고 고결한 수행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또 얼마큼 걸어왔는지를 가만히 짚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40일 동안 광야에 머무르셨는지, 왜 새벽녘 홀로 산에 올라 기도하셨는지도 잠시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고요함을 돈독히 지키라"는 가르침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주님, 때때로 이렇듯 고요함 속에 머물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제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하옵소서. 분주함에 휩쓸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침묵 속에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오늘도 바른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6월 24일 기도
‘대인거리’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심리적 공간을 가지고 있어서, 낯선 사람이 그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불쾌감이나 위협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거리를 쉽게 무너뜨리곤 합니다. 그럴 때 상대를 향한 '친밀 거리'는 어느새 '불화 거리'가 되고 맙니다. 사랑은 가까워지는 것이지만, 상대의 경계를 무시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침범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친밀 거리 안으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배려와 정성,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사랑은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지혜입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살피며, 나의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될 때 비로소 사랑은 사랑다워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3:3). 아무리 큰 희생과 헌신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작은 배려와 따뜻한 예의,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사랑은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려는 힘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며 함께 걸어가는 인내로 영그는 열매입니다.
주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지 않게 하시고, 진정한 사랑을 하게 하옵소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배려하게 하시고, 익숙함 속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게 하소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성을 배우게 하시고, ‘사랑’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6월 25일 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날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하루에 감사하며 성실하고 빈틈없이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손을 놓고 발을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치열하고 치밀하게 자신을 가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흘러가는 대로, 혹해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삶의 고삐를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던 배 위에서 끝내 노를 내려놓고 마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놓치면, 비어버린 하루 이상으로 더 커진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러나 문득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허락하시고 안식년을 명하신 까닭을 생각합니다. 쉼은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사람도 쉬고, 땅도 쉬고, 빚진 자도 숨을 돌리게 하셨던 하나님의 뜻에는 회복과 자비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버렸던 날'을 무조건 잃어버린 날로만 여기지 않으려 합니다. 때로는 멈추어 숨을 고르고, 비우고 정돈하며, 다시 방향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비움은 공허함이 아니라 채움을 위한 준비이며, 쉼은 포기가 아니라 다시 걸어가기 위한 회복의 시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도 쉼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멈추어 선 날들마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비우는 시간을 통해 삶을 정돈하며 다시 나아갈 힘을 얻게 하옵소서.
6월 26일 기도
주변에 대다수가 싫어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대다수가 좋아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논어》 위정편에는 “여러 사람이 싫어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고, 여러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싫어함 가운데에도 배울 점이 있을 수 있고, 좋아함 가운데에도 경계해야 할 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성경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데살로니가전서 5:21)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평가하라는 뜻이 아니라, 무엇이 선하고 옳은지 분별하여 좋은 것을 선택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주님,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고 쉽게 따르지 않게 하시고, 많은 사람이 싫어한다고 함부로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사람의 평판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하시고, 선악과 진실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셔서 바르게 판단하고 사랑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