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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1

오키나와 평화기행 3 - 긴조 미노루의 한의 비(恨之碑)ㅣ남북교육연구소 250607

작성자이병호|작성시간25.06.06|조회수288 목록 댓글 0

등록: 2025.06.07.12:16
작성: 이병호 
 
 '권영길과 함께하는 2025 오키나와 평화기행' 3일차. 오늘은 전날 보지 못했던 가데나 미해병대 비행장 전망대와 전시관 탐방 후, 오키나와현의 전신 류큐국의 문화와 전통이 잘 보존 전시되고 있는 류큐촌(류큐무라)을 탐방한다. 이어 잔파곶의 서쪽 방향으로 이동하여 '한(恨)의 비'로 유명한 긴조 미노루(金城実, 73)를 만나 그의 삶과 예술 세계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때 미군의 상륙에 따라 자연 동굴로 피신하였으나, 동굴 밖으로 나가면 미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는 잘못된 교육과 인식으로, 동굴로 대피한 140명중 85명이 집단 자결한 치비치리가마(동굴)로 이동한다. 이어 긴조 미노루 아뜰리에로 이동하여 그의 작품들을 보고 긴조 미노루측이 준비한 식사와 우리 일행이 준비한 선물을 선사하는 등 한일간 평화와 교류를 위한 협력과 단합의 시간을 갖는다. 
 

부모님이 모두 류큐인인 긴조 미노루 조각 예술가(73세)가 스스로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는  '한(恨)의 비' 앞에서 권영길 평화철도 이사장과 나란히 앉아 참가한 일행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병호
평화기행 한 장소를 노란점으로 표시했다. 맨 아래가 가데나 미해병대 비행장(기지), 오른쪽 위가 류큐촌(류큐무라). 왼쪽의 위 붉은 표시 부분은 치비치리가마, 왼쪽 노란점은 '한(恨)의 비' 장소. 자료 구글지도
가데나 미비행장을 볼 수 있는 5층 높이의 전망대와 전시관. 후텐마 미비행장과 같이 주변에 주택이 밀집되어 있다. 한국과의 차이는 국가나 현(한국의 도) 차원에서 이런 전망대 설립을 허가하고 상세한 박물관 또는 전시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도 학생등 젊은이들을 포함한 많은 탐방객을 볼 수 있었다. 사진 평화철도
전날 25. 5.15 평화행진에 함께 참가했던 일본 평화운동가가 가데나 미 비행장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를 이윤수 가이드가 통역하고 있다. 이가이드 뒤 임동호 전 민주당 울산지역당위원장, 옆에 강진욱 전 연합뉴스 기자. 사진 평화철도
전날 미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 출입구에 걸려있던 시위 깃발, 이 깃발은 위 사진의 일본 평화운동가가 사용한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이 운동가는 매일 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한다. 한국의 미군이나 미군부대 시위나 항의에 대한 통제나 제제 조치보다는 느슨한다는 느낌이 든다. 사진 이병호
'류큐 독립', '비핵', '비무', '비전국'(오른쪽), '입헌공화제', '인권주의', '정무분리'(왼쪽), '류큐선주민족'(가운데)란 표어가 쓰여있다. 사진 이병호
'류큐촌(류큐무라)'라고 쓰여 있다. 450여년의 역사를 가진 류큐국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 일본의 한 부분(현)이 되었다.이곳에서는 하나의 '촌(부락)'으로 더욱 작고 낮게 불리어지고 있다.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불법· 강제 병합으로 부득이 1919년 4월 상해 임시정부에서 국가 건립을 선포한 '대한민국'이 일본으로 부터 독립되지 못했다면, 오늘날 류큐국 또는 류큐인의 모습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즉, 세계 10위의 경제 및 재래식 무기 기준 5위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이 '강꼬꾸(한국)현' 또는 '한국촌' 이란 명칭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국(조선)말, 한국(조선) 문화 및 전통은 류큐국 처럼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 조상 또는 선배들은 강제 병합 35년만에 독립을 이루었다. 그러나 우리 기성세대들은 분단 80년을 맞이했는데도 분단과 적대적 남북관계의 지속과 반복은 계속되고 있다. 남북의 평화통일이 어렵다면 평화통일의 과정과 절차 이기도 한 김대중, 노문현 대통령 시절 정도로도 돌아가지 못할까?
류큐 전통복장을 한 시민이 전통 류큐소를 통해 사탕수수 즙을 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열대 지방 주민 답게 베트남 등에서 볼 수 있는 모자를 쓰고 있다. 소도 베트남 등에서 볼 수 있는 소와 닮았다. 사진 이병호
류큐의 전통 무용과 음악을 젊은이들이 공연하고 있다. 이날 일곱살짜리 어린아이도 공연을 했는데 대단한 솜씨였다. 이 전통 무용과 음악에는 무엇보다 류큐인의 힘과 결기가 크게 느껴진다. 사진 이병호
류큐의 전통 무용과 음악을 젊은이들이 열연하고 있다. 공연후 관객들과 함께 사진 촬영도 했다. 대단한 호응과 큰 박수를 받았다. 촬영 이병호
류큐의 전통 가옥을 이축한 건물들이 몇 채 있다. 오래된 건물은 200여년 되기도 하였다. 목재 구조의 집이고 집안에는 실제로 친절하고 자상한 한 여성이 아름다운 무늬의 천을 만들고 있었다. 신발 벗고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가라고 물으니 가능하다고 하여 안으로 들어가 살펴봤다. 한 남성이 류큐의 전통 악기인 삼신(三線)을 가지고 애잔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사진 이병호
여성이 짠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천을 보면 류큐국의 의상이 어떠하였을까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비단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을 재료로 한 아름다운 무늬의 천 모습은 한국, 중국, 일본의 천과 다를바 없어 보인다. 사진 평화철도
류큐국의 상징인 대형 시사가 조각되어 있는 이곳에서 긴조 미노루를 처음 만났다. 이 조각상 옆에는 류큐국이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로 이동 또는 교역할 때 사용했던 커다란 모형의 배도 있다.
긴조 미노루 조각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 중 최고로 여기는  '한(恨)의 비'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병호

 

왼쪽이 '여한비', 오른쪽이 '한의 비'. 태평양전쟁 오키나와전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을 기리기 위한 ‘오키나와전 전사자 여한비’의 제막식이 2004년 7월 3일 경북 영양에서 열렸다. 오키나와전은 태평양전쟁시 일본에서의 유일한 지상전으로 약 24만 여명이 전사했으며, 그 가운데 경상북도 관내에서 약 3천 여명의 조선인 군부가 강제동원되어 희생됐다. 이렇듯 지난 세기 비극적인 전쟁의 하나인 오키나와전에 강제동원되어 억울하게 희생된 동포들을 기리고자 생존자 ‘강인창’ 선생은 지난 1997년부터 일본의 양심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한편, '한의 비'는 5년 전 1999년 세워졌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클릭하면 알 수 있다.

태평양전쟁 오키나와전 희생자 여한비 제막식 열려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행사 참가자들의 모습, 왼쪽부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황금주 할머니, 1.20동지회 정기영 회장, 오키나와 강제동원 피해자 강인창님, 서정복님, ‘평화와 생활을 맺는 모임’ 대표 마메다 토시키씨.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긴조 미노루의 '한의 비'는 세개가 있다. 첫째는 1999년 한국 조각가가 주조한 경북 영양 '한의 비'의 원형으로 오키나와 긴조 미노루 아틀리에 야외 전시장에 있다. 둘째는 경북 영양에 있는 것이고, 세째는 긴조 미노루 아틀리에 근처 동산에 있다. 세번째 작품은 25년 현재 기준 10년 전 있었던 아래 평화인권기행 동영상에서 잘 소개되고 있다. 이 영상 끝부분엔 방학진 민족문학연구소 박사가 질의하는 장면도 나온다(13분 30초경 부터). 
 
방학진 박사는 해설사에게 "일본 및 오키나와에서는 이런 평화와 역사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락고 질문했다. 이에 유영자 오키나와 평화해설사는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유 해설사는 "먼저 교사 양성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라고 한다. 즉, 평화교육이라는 것이 현실적(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들면 "여기 이런 비가 있었다", "전쟁은 안됩니다", "우리앞으로 열심히 합시다"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같은 유해설사의 발언은 한국의 평화와 평화통일교육에서도 똑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독립 또는 개별 교과가 없어서 교사 양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똑 독립 교과목이 없어서 교육목표나 교육내용, 교수학습 방법이나 평가 등 교육의 주요 요소에 대한 교육전문가들의 연구와 협의, 토론이 부재한 상태이다. 일본 오키나와와 같이 말로만 평화교육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평화통일'에 대한 교과목 개설의 필요성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필자의 칼럼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평화통일’ 교과목 따로 만들고 교육시간 늘리자 [왜냐면] (hani.co.kr)
 

긴조 미노루의 '한의 비' 옆에는 '한의 비' 제작 동기와 과정이 세겨진 비문이 있고, 그 옆에는 한국인 징용자를 추모하는 일본인의 시가 있는 비석이 있다. 사진 이병호

'한의 비' 제작에 결정적 역할을 한 강인창 선생은 일본 패망이 4개월도 남지 않은 1945년 4월 강제 징용되어 오키나와 본섬 주변섬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이때 함께 온 한국인이 배가 고파 음식물을 조금 훔친 것이 발각됐다. 이에 일본군은 이 한국인을 총살하기로 하고, 강인찬 선생에게 흙 구덩이를 파게했다. 흙 구덩이가 만들어지자 일본군은 이 징용자를 구덩이 앞에 무릎 꿇게 한 뒤 뒤에서 머리에 총을 쏴 구덩이로 떨어지게 했다. 이 사실을 강인창 선생은 1980년대 일본에서 2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대한 조사와 반성 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일본 사회에서 밝혔다. 이에 일본의 어느 목사가 공론화하여 기금을 마련하였고, 한국에서는 이들의 고항인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 건립하게 된 것이다.참고: [오키나와여행] 한의비 '한(恨)의 비':네이버 블로그 [오키나와여행] 한의 비(恨之碑)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신계륜 전 민주당 의원 (4선, 성북구 을)이 오사카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 참가한 뒤, 본 기행에 합류하여 이후 일정을 함께했다. 신 전의원은 고려대 학생회장으로 1980년 5월 17일 서울에서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뒤 바로 광주로 내려가 5월 18일에는 광주 현장에 있었다

신계륜 전 의원이 자체 제작한 동영상은 오키나와 현립 야구장에서 열린 2025 5.15 평화 현민대회 모습과 치비치리가마 탐방 등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다. 
 
(723) [신계륜 토크] 조각가 긴조 미노루의 분노 - YouTube
 

85명의 집단 자결이 이루어진 치비치리가마 입구에서 젊은 일본 해설사가 상세한 설명을 했다. 고인들의 명예와 유적지 보호를 위해 원칙적으로 동굴안에 들어갈 수 없으나 우리 일행은 학술적 조사와 검증 차원에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잠시 확인했다. 첫번째 맞이한 동굴안은 예상보다 넓었다. 그러나 필자는 좀더 허리를 숙여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는데 첫번째 공간 보다 두번째 공간은 적어도 2~3배 이상 컸다. 체포되면 미군에 의해 능욕을 보고 살해된다는 잘못된 교육과 인식으로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하니, 평화의 소중함과 교육의 중요성이 절감한다. 사진 이병호

동굴 옆 오른쪽의 제단 같은 곳은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집단학살을 고발한 긴조 미노루의 조각상이다. 비에는 “집단자결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살아서 포로의 굴욕을 당하고 죽는 오명을 남기지 말라는 황민화 교육과 제국주의에 의한 강제된 죽음이다.”라고 쓰여 있다.

긴조 미노루의 조각품으로 세로로 놓인 공간 속을 보면 유골 조각품이 보인다. 사진 이병호
이번 기행팀이 일본 청년 해설사(오른쪽에서 일곱째)설명을 들은 뒤 기념 촬영을 했다.
긴조 미노루 아뜰리에에 가면 만나는 거대한 조각상. 아이들의 엄마가 아이들을 앞과 뒤에서 안고 또 업고 있는 모습이다. 본래 오사카에 있던 작품인데 지진으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사진 이윤수

 

긴조 미노루 아뜰리에에 있는 '한의 비'. 이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1999년 경북 영양의 '한의 비' 주조의 원형이 되었다. 아울러 긴조 미노루 자택 주위에 있는 '한의 비' (청동으로 제작)의 모형이 되기도 하였다. 긴조 미노루는 처형대로 계단을 올라가는 아들을 그의 엄마가 못가도록 다리를 잡고 있으며, 처형을 당하는 조선인의 모습은 당당하지만 강제 집행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추하다고 하며 인권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제작의 주안점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통역사는 처형장에 오르는 조선 젊은이로 통역했지만, 강제 징용되는 대한민국의 젊은이와 이를 붙잡는 장면 묘사로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사진 이병호
미군기지 철수 등을 위해 전시활동 했던 조각품 들이 아뜰리에 곳곳에 보관되어 있다. 사진 이병호
미군들은 기지 건설을 위해 오키나와인들에게 사용료를 지불할터이니 땅을 내 놓으라고 했다. 이에 오키나와인들이 거부하자 무력으로 쫓아내고 천막에서 이들이 생활하게 했다. 사진 이병호
일본과 미군에 격렬히 저항하는 류큐인들의 모습을 매우 인상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으로 조각하였다. 전시 공간과 시설이 부족하여 마치 방치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아뜰리에가 있는 오키나오현이나 해당 시로 부터 행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이병호
류큐인이 류큐의 전통 악기 산신을 가지고 일그러진 얼굴로 연주하고 있다. 사진 이병호
야외에 설치되어 있는 부조가 태풍으로 인해 손상 받았는데 아직 복원이 안되고 있다. 사진 이병호
긴조 미노루 아뜰리에 내부 모습. 여러 종류의 예술품과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긴조 미노루는 안중근을 무척 존경한다고 하며 일본어로 쓰여진 안중근 책을 소개하고 있다.
나한상. 나한은 불교에서 제시하는 이상적 인물이다. 이 조각품들 역시 재미난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작품들을 보면 류큐국은 불교를 좋아했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긴조 미노라와 일본 사민당 임원과 평화 활동가들의 발언과 발표 후 권영길 평화철도 이사장이 이번 평화기행의 의미와 가치 등에 대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다음 편에는 오키나와 평화기행 4 - '슈리성의 화재와 복원'을 주제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이병호ㅣ남북교육연구소장·'북한교육과 평화통일교육' 저자

북한교육과 평화통일교육 | 이병호 - 교보문고 (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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