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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扶安) 임씨

보안백 임숙(林淑) 사적

작성자임지수|작성시간26.06.06|조회수9 목록 댓글 0

        보안백 임숙(林淑) 사적 

 

  공의 휘는 숙이다. 보첩에 문신으로서 순성보절좌리공신에 책록되고 금자광록대부

수사공상주국 보안국에 봉하고 시호는 공혜(恭惠)공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충숙왕 십년 서기일삼이삼년 계해 정월에 제주만호로 박순인이 부임하였는데

그 이유로는 당시 제주만호 임숙이 자의로 임지를 이탈하여 행성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어

재임명되었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박순인을 만호로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삼삼일년

충숙왕이 왕위를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하고 元나라에 가 있다가 일삼삼삼년 다시 돌아와

왕으로 재위하려 할때 부자간에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는데 이때 충순군소의 남쪽 다리 아래로

옮겨 놓고 공주를 만호 임숙의 집에 옮기었다(?不聽 入公主殿 王軍 追入射殺之 尸于巡軍南橋下

遷公主于萬戶 林淑第)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당시 충숙왕 재위시 공적이 있어 순성좌리공신으로

수사공상주국 보안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위는 진한국부인 유씨니 정헌공 복화의 여이다. 묘는 송도 고운사 법당 동변 원외 남향에

있으며 묘소 아래 신도비가 있다.

 [참고]  서하공의 장자 충세공은 예천관, 순창관으로 분관하였고 차자 경세공이 숙(淑)과 택(澤)을

생하시였고 부안관의 대를 이었으며 숙공께서는 지허(之?), 희재(熙載), 대광(大光), 난수(蘭秀)를

생하시었으나 일남과 이남은 자손이 무하였다.   

- 시제일 : 매년 음 10월 15일 10시 경세공과 숙공의 설단을 모신 김포군 검단면 마전리에서 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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