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상징 구역이 된 가학동
임좌순(林左淳)
2025년 8월 5일, 국정기획위원회는 대한민국 행정수도 완성을 위하여 대통령
임기 내에 세종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건립하는 것을 신속추진과제로 선정하였다.
또한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행정수도 세종특별자치시의 심장이 될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master plan·기본계획)이 공개됐다. 국가상징구역에는
대통령 세종 집무실과 국회 세종 의사당이 들어선다. 이곳은 단순한 공공시설을
넘어 국정 운영 및 입법의 상징이자 국민과 국가가 만나는 공간이다.”라고 보도하였다.
따라서 국가상징구역은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가 함께 자리하는 대한민국 중추
공간이자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간이다. 행복청은 그동안 도시를 건설하며 그 안에서
시민들 삶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현장에서 경험해 왔으므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도록 주민들의 총의를 잘 이해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주체가 국민이고 삶의 기록이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국가상징구역의 중심축이 된 가학동이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과연
그곳은 어떤 지역이었던가 알고자 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에 있다.
가학동은 신석기시대에 촌락이 형성되고 청동기시대부터 수렵생활과 농경의 터전이
되었다고 전한다. 현대까지 마을이 유지되며 촌락을 형성되어온 것은 이 지역의
부안임씨 입향조였던 임난수로부터 비롯되었다. 고려 공조전서였던 임난수는 조선의
개국에 동참하지 않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면서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된 후로부터
대대로 후손들이 터전을 삼아 세거하면서 동족 마을이 형성되어 왔다.
가학마을은 동쪽으로 전월산이 있고 서쪽으로 원수산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병풍산이
둘러있어 천혜의 산자수려한 마을이었다. 고려사절요의 기록에 의하면 원수산은
고려 충렬왕 17년에는 원나라의 합단적의 기병들이 침입하였을 때 원의 평장사 설도간과
고려의 한희유와 김훈등의 연합군이 크게 이긴 전략지이기도 하였다. 또한 군사의
요충지로서 옛 성터와 많은 돌무더기들이 남아있어 연기대첩의 주요 전승지였다.
조선 중엽부터는 가학동을 비롯한 주변 동리인 백동, 성전, 원곡 등과 함께 향약을
제정하여 유교의 성리학에 기반한 향촌사회의 경제와 질서를 유지해왔다.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보급하고 도덕질서 확립과 미풍양속 진작을 도모하였으며, 재난시의 상부상조를
위한 규약을 지켜왔다. 이렇게 그들만의 삶의 터전과 규칙을 기반으로 하여 원수산
산신제가 있었다.
주민들의 안온한 생활과 풍년 및 역병 등 재액 방지하기 위하여 하늘과 산신에게 비는
뜻에서 매년 추수가 끝난 가을철에 마을 공동으로 참여하는 제사였다. 이 제사는
중요한 연중행사로 매년 가을 추수가 끝난 다음 원수산 산제당에서 산신제 형식으로
드리는 마을 고유의 풍속으로 이어져 왔다. 제사 후에는 제수로 마을의 전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 잔치가 있었고 공동체적인 친목을 다지는 기회였으며, 숙종조 이후
현재까지 계승되온 으뜸가는 중요한 민속 행사였다.
원수산에 남아있는 유적으로는 효성이 지극한 용곡 임정이 6년간 시묘살이를 하여
원수양봉을 하사받았다는 시묘비와 병자호란때 절조를 지켜 순절한 한산이씨의 열려비가
있다. 임정은 고청 서기와 율곡 이이의 문인으로 선조24년(1591년) 문과에 급제하여
내직으로 호조좌랑과 한성부 서윤, 시복시정 등과 외직으로 부안현감, 진산군수, 전라도사,
경상도사 등 여러 내외직을 수행하였고, 인조13년(을해1635년)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효종5년(1654년) 가선대부 한성부 우윤 겸동지의금부사에 증직 되고 연이어
정려의 명이 내림과 아울러 특별히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공은 한결같이 청백으로
조행을 삼았고 금서를 스스로 즐겨 태연히 속된 세상을 벗어난 지취가 있었다. 어버이를
섬김에 정성으로 봉양하였고 노년에 이르러 연이어 양친의 상을 당하여 육년을 시묘하여
원수산 양봉을 하사받았다. 후손들은 시묘비를 세워 그를 추모하였고, 형제간의 우애와
효행의 독실함을 아름다운 행실로 칭송하며 본받아왔다.
전월산은 강물이 삼태극의 형상으로 돌기 때문에 달밤에 전월산에서 동쪽에 있는 금강을
굽어보면 강에 비친 달이 도는 것 같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정상에 는 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에 명주실로 돌을 매달아 넣으면 명주실이 금강으로 나온다는 전설이 있는
용천 또는 영천이라 부르는 용샘이 있다. 용샘 가에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 샘에서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고 전한다. 또한 며느리바위의 전설과 고려유신
임난수가 등정하였던 상려암과 서쪽으로 부왕봉, 성왕봉의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가학동에는 400여년간 마을을 지켜온 거목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군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사계절 동리 주민들의 쉼터와 모임의 장소였고 어린이들의 강학 장소요,
절기 때마다 모여 농악을 울리며 놀이를 하던 곳이었고, 주민들의 주요 행사가 수시로
열리는 소통의 장소로 활용되어 왔다. 행정도시가 본격적으로 개발되자 마을 사람들이
경향 각지로 흩어졌지만 홀로 마을을 지켜오고 있다. 이후에는 원근 각처에서 기존
주민들이 모여 마을 잔치와 문화 행사로 모였던 곳이고 고향을 그리워 하며 늘 생각나는
마을의 수호신처럼 산증인이 되어 신목으로 여겨왔다.
올해 초부터 마을 주변의 산림을 제거하고 펜스도 둘러치고는 금방이라도 공사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살던 마을에 대통령실이 온다하여 많은 관심과 우려가 있다.
남아있는 이 터전에 오랫동안 유지되온 향토 문화와 유적들이 온전히 보전되어야 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재 해석하고 개발하여 더욱 발전하는 세종문화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촌락은 가장 기반적인 전통문화를 보유하는 기층문화의 터전인 만큼 현존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잘 간직되어 우리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국가상징구역은 세종행정중심복합도시의 핵심 공간으로, 대통령 세종집무실·국회세종의사당
등 국가중추시설과 시민공간을 함께 담아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공간적으로 구현하는
구역이다. 따라서 국가상징구역이 우리부안임씨의 630여년전 낙향지이고 문화재가 소재한
지역으로 동족마을의 핵심지역이었다.
부안임씨들의 문화유적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전통과 현대가 병존하는 도시개발 방향이
설정되어야 하고 국가상징구역이 국가적 표본이되어 세계속으로 부상하는 대한민국의
기초가 되어 미래 대한민국의 이상적인 도시로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