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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청백리 2인의 교훈

작성자임지수|작성시간26.06.10|조회수5 목록 댓글 0

     ♣ 조선 초기 청백리 2인의 교훈 

 

"조선 초기 어수선할 때에 청백리 두 분이 없었다면 세종 같은 왕이 없었을 것이다.

1. 첫째, 황희 정승께서는 아들 셋 중에서 한 명의 아들이 주색잡기로 방탕하여서

골칫거리였을 때 몇 번을 좋게 타일렀지만 고쳐지지 않아서 하루는 밤늦은 시간까지

관복을 입고서 대문 앞에서 기다리다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오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들어오는 것입니까?” 아들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께서 정중히 말하였다.

“무릇 자식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 집안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이 아니라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이나 마찬가지가 되지요. 우

리 집에 찾아온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것이 예의니까 저는 지금 손님을 맞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무릎을 꿇어서 통곡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2. 둘째, 맹사성 선생은 세종 때 이조판서였는데, 그의 복장은 항상 허름하고 낡은

차림이었다. 하루는 시내를 건너가려고 짚신을 벗고 옷을 걷어 올리는데, 한 젊은이가

맹사성에게 말을 하였다. “제가 시내를 건너야 하는데 제 옷이 젖으면 안돼서 그러니

저를 업어다 건너에 내려주면 10전을 드리겠습니다!”

맹사성은 젊은이를 업어다 내려주고 물었다. “어디를 가는데 좋은 옷을 입고 가는가?”

젊은이가 무심코 대답하였다. “제 부친이 맹사성 이조판서와 친구인데,

저의 관직을 부탁하러 부친의 서찰을 가지고 맹사성 어른을 뵈러 갑니다!”

맹사성은 젊은이를 호되게 야단을 쳤다. “내가 맹사성이다. 자네가 관직에 오를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부친에게 가서 '자식 교육이나 똑 바로 시켜서 관직에 보내라.'고 전하여라!”

벗의 자식이지만 잘못을 지적하여 야단쳤고, 그 청년은 몇 년을 자숙하며 겸손을 깨달은

후 말단 관직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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