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옥정호 지방도 749호선-
그림같은 명품길 달리며 코로나19 스트레스 훌훌
예년 이맘때면 전국 각지에서 들려오는 봄축제 소식으로 떠들썩하겠지요. 하지만 올해는 축제들이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꽃이 피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마음에 여유도 없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바꿔놓은 2020년의 봄 풍경입니다. 바이러스가 종식될 때까지 '잠시 멈춤'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빨리 코로나19가 물러가기만 바라고 있는 형편입니다. 여행만리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봄나들이 나가라고 말씀을 드릴 순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과의 접촉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언택트(비대면) 여행입니다. 비대면으로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봄바람을 즐길 수 있는 드라이브길을 다녀왔습니다. 본인 차량을 이용해 이름난 명소나 아름다운 풍경 속 길을 달려보는 것입니다. 전국에는 많은 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적하면서도 힐링 충만한 전북 임실로 갑니다. 물안개로 이름난 옥정호를 끼고 있는 지방도 749호선이 목적지입니다. 호숫길을 달리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호수를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 한 번 하면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드실겁니다. 시간이 된다면 옥정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국사봉전망대도 올라보시길 권해봅니다. 마스크 꼭 하는 건 잊지 마시고요.
봄, 가을 물안개로 유명한 옥정호를 끼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지방도 749호선은 호반 드라이브명소다. 국사봉전망대에서 바라본 옥정호와 749호선 |
지방도 749호선은 전북 정읍시 산외면과 완주군 동상면을 잇는 길이다. 이중 정읍에서 임실으로 넘어가자마자 오늘의 목적지인 옥정호가 나타난다.
옥정호 호반길(11km)은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다. 운암리와 마암리를 잇는 도로는 완벽한 굴곡의 길이 있고 마치 호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림 같은 길은 드라이브의 묘미며 변화무쌍한 풍광은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쉬엄쉬엄 달려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특히 이 길은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경관도로 52'에 선정되기도 했다. 물길을 따라 거닐 수 있는 13km 길이의 도보탐방로도 만들어져 있다.
호반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떠오르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달리다보면 낮은 해살과 반짝이는 물결로 인해 그야말로 엽서 속 풍경이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민다. 얼굴과 손에 전해지는 봄바람이 싱그럽다. 종일 마스크에 시달리며 갑갑한 생활에 쌓인 스트레스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다. 한참 창문을 열고 느릿느릿 강변길을 지난다. 명경지수 같은 수면 위로 수암리와 발아산 등 시골마을이 겹쳐지며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도로를 끼고 있는 옥정호는 봄엔 벚꽃이, 가을엔 단풍이 만발해 사계절 관광지로 유명하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코로나19가 물러난 늦봄이면 벚꽃 만발한 호반길을 달릴 수 있도록 기대해본다. 호수 조망이 확보되는 길가에 잠시 차를 주차하고 쉬어보자. 산자락과 물결이 만나는 지점이 빚어내는 곡선미를 감상하고 스트레칭도 해본다.
옥정호는 물안개로 유명하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아니라면 봄날의 이른 아침이면 물안개를 보기 위해 몰려든 전국의 사진가들을 만날 수 있다.
물안개와 옥정호 전경을 감상하려면 차에서 내려야한다. 옥정호 드라이브길 중간에 있는 국사봉 전망대주차장에서 한 15분여만 올라가면 된다. 국사봉 오르는 길에 설치된 세곳의 전망대에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옥정호를 감상할 수 있다. 조금 전 지나쳐 온 749호선 지방도가 굽이치면 산과 산사이를 흘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좀더 시원한 경관을 만날 수 있는 오봉산(513m) 정상(제5봉)까지는 전망대에서 한시간 쯤 산길을 타야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옥정호 물길이 입석리에서 용운리 쪽으로 휘감아 도는 지점에 뜬 '외앗날'(붕어섬) 풍경이 압권이다. 이곳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유명하다.
외앗날은 1965년 섬진강 다목적댐이 건설돼 옥정호(운암저수지ㆍ갈담저수지)가 만들어지며 섬이 되었다. 주민들은 '산 바깥 능선의 날등'이란 뜻으로 외앗날이라 부르지만 등산객들이 금붕어를 닮았다며 붕어섬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물안개도 환상이지만 물안개 속에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붕어섬 모습도 아름답다. 안개가 걷히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황금빛 붕어섬을 만날 수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다시 차를 타고 호숫길을 달리면 파란 하늘과 채 걷히지 앉은 구름들이 그대로 호수에 담긴 풍경이 차를 따라 움직이며 길동무를 한다.
임실에선 시끌벅적 관광지가 아닌 숨어있는 호젓한 풍경을 찾는 재미도 있다. 신평면 호암리 두류마을에 있는 '호랑이바위'가 그것이다. 호랑이 바위는 돌을 호랑이 형상으로 깎은 바위인데, 둥그런 얼굴에 이빨을 다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민화 속의 해학적인 호랑이를 연상케 한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저절로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다.
호랑이 바위는 신평면 호암리 두류교차로 인근에 있는데, 논둑길을 걸어 들어가는 깊은 자리에 숨어 있어 동네 주민에게 묻지 않으면 여간해서 찾을 수 없다.
덕치면의 섬진강 정취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로 이어지는 섬진강 구간의 풍경은 우리 강의 원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구간을 대표하는 경관은 천담마을을 지나 강변길 끝인 구담마을의 느티나무 언덕에 있다. 거기서 굽어보는 섬진강 물길은 가슴이 다 저릿해질 정도다. 또 태조 이성계가 기도 끝에 용이 몸을 씻어주는 꿈을 꾸고 '삼청동'이란 글을 남긴 상이암도 있다.
임실=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