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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POP예술학교 백청강 스승 허광 "청강이가 세계적인 월드스타가 되길 바래요”

작성자동포세계|작성시간11.07.28|조회수2,434 목록 댓글 0

"꿈은 이루어진다"는 멋진 글을 잊을 수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의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관중석에서 수만명이 만들어낸 글이다. 가수가 된 백청강은 조선족청소년 뿐만 아니라 조선족 사회에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준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조선족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조선족 연예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연변POP예술학교>의 꿈도 이루어지고 있다. 허광 교장을 본지 단독 인터뷰를 하였다.[인터뷰=김용필 본지 편집국장]


"청강이가 세계적인 월드스타가 되길 바래요”

연변POP예술학교에서 3년간 백청강을 지도한 스승 허광의 꿈

 

“청강이는 초심을 잃지 않고 반드시 세계적인 월드 스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MBC,스타오디션 프로 위대한 탄생에서 1위를 차지해 스타 반열에 올라선 백청강의 예술학교 스승 허광이 백청강에 대해 갖는 기대이다.
 백청강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2004년 연변POP예술학교에 입학해 노래, 댄스, 악기 등 음악가로 가기 위한 전문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변POP예술학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백청강은 입학 할 때부터 인상적인 것이 자신감이 아주 강했습니다. 뭔가 해내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요.”
 허광 교장은 POP예술학교 입학당시 백청강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서 말한다.
 “네 꿈은 무엇이냐 묻는 물에 청강이는 큰 스타가 되어 부모님께 자랑스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백청강의 부모는 당시 한국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청강의 고백은 MBC 위탄 오디션에 통과하고 한국에 가서 가수가 되고 쉽다고 밝힐 때도 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은 남달랐다.
 “저는 백청강이 그 꿈을 꼭 이룰 것이라 믿었습니다. 무엇을 맡겨도 책임감 있게 잘했고 목표를 정하면 꼭 이루고 마는 강한 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허 교장은 백청강이 야무진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연변TV 출연 기회도 많이 주고, 크고 작은 오디션 프로에도 참여 기회를 많이 주었다고 한다. 무대에 자주 서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었기 때문에 MBC 오디션프로에도 담대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코리안드림을 이루고 금의환향한 백청강은 지난 7월초 연변TV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김태원 스승님이 저의 멘토였다면, 연변에서는 허광 스승님이 저의 멘토이십다.” 라고 말해 POP예술학교가 그의 성공의 커다란 밑받침이 되었음을 밝혔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허광은 절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13년간 견지해온 POP예술학교가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었고, 허광 교장의  꿈도 하나하나 현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7일 허 교장은 한국에 재외동포 비자를 받고 입국하였다. POP예술학교가 배출한 예술인들을 규합해 한중문화교류 활동에도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이해된다.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지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남다른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POP예술학교의 설립 배경은?

 

“조선족청소년들이 꿈과 재능이 많지만 그 재능을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역 예능인들이 그 기회의 장을 스스로 만들어보자, 조선족청소년들에게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자 해서 POP예술학교를 설립했던 것입니다.”
 허광 교장의 말이다. POP예술학교 설립 당시 주위 반응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연변의 대중문화는 한국의 방송 영향으로 조선족 가수들이 한국 가수 그늘에 가리고, 연변의 POP(대중가요) 수준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따라가기란 수월하지 않았다. 또한 연변지역의 특수성도 있다.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 대중가수에 대한 인식도 낮았다.
 따라서 POP예술학교는 출발할 때부터 재정적 어려움속에서 ‘오로지 세계적인 스타를 만들어보자’는 꿈 하나만으로 시작했다고 말하는 허광씨는  설립때부터 현재까지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POP예술학교는 1998년 당시 연변조선족사회에서 한 가닥하는 20, 30대의 젊은 연예인들이 뭉쳐 만든 연변의 유일한 사립 예술학교(중등전문학교)이다. 그때 중심에 섰던 사람이 가수 허광이다. 김철(가수), 이호원(가수), 손용인(댄스), 이종천(성악), 김성삼(가수, 2006년 작고), 김문유(가수), 전광혁(기타리스트) 등 7인과 함께 허광은 연변에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POP예술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는 한국의 예술고와 같은 곳이다. 이들은 연예 활동을 하면서 가수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10대 조선족 청소년들에게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멘토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 결실은 기대 이상이었다. 98년도에 설립된 POP예술학교는 1기생이 주축이 된 아리랑그룹을 배출했다. 아리랑그룹은 99년도에 결성되어 2001년에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중국북경CCTV 스타오디션 프로에 도전하여 대상을 차지했다. 이는 조선족사회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커다란 관심을 받을 만한 연예계의 빅뉴스가 되었다.
 아리랑그룹의 활동은 여전히 왕성하다. 2008년에는 POP예술학교 출신인 김매(보컬)가 한국의 KBS와 SBS방송연예계에서 조명을 받았다. 또한 올해 7개월 동안 금요일 밤을 뜨겁게 달구었던 MBC <위대한 탄생> 백청강이 바로 POP예술학교에서 3년간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음악과 댄스 교육을 받았다.
“현재까지 약 600여명의 학생을 배출했습니다. POP예술학교는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엄격한 통제하에 음악교육을 받습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는 조선족청소년들이 모인 곳이죠. 학생들은 대부분 부모님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 등으로 출국하였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20여명의 교사들의 보살핌 속에서 가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POP예술학교의 1년 학비는 한화 150만원.  기숙사에서 먹고 자면서 교육을 받는다고 볼 때 150만원은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그러나 더 올려받을 수 없는 것이 이 돈 마저 내기 어려운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허광 교장은 말한다. 후원의 손길이 절실한 것이다.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하는 글로벌예술학교를 만드는 게 나의 꿈"
 
 허 교장은 연변 조양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유치원때는 북을 잘 쳐서 연변자치주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부모님은 교원 출신으로 아들이 공부해서 교원이 되길 원했지만 공부는 하지 않고 음악에만 빠져 있어 반대를 했다고 한다.
 연변대 예술대학에 들어가 94년도에 졸업하고, 97년도에는 중국과 홍콩이 함께 하는 스타오디션 프로에 도전해 은상을 받았다. 그리고 98년 POP예술학교 설립할 때 부모님도 교육의 길을 가는 아들을 지지해 주었다고 한다.
 허광 교장은 가수이자 드럼 등 타악기를 잘 하는 만능 엔터테이먼트이다. 그의 대표적은 노래는 <이 밤도 달은 둥글다>로 연변 동포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이다. 
 30대를 POP예술학교에 모든 것을 받친 허 교장은 40대에 접어들어 그의 꿈은 더욱 무르익어간다.
 “연변POP예술학교를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하는 글로벌예술학교로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아리랑그룹은 연변 고향에 오면 POP학교에 와서 후배들한테 특강을 해줍니다. 백청강도 아리랑그룹으로부터 댄스를 배우게 되었고, 전광혁으로부터 기타를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배 예술인이 후배를 가르치고 도와주는 ‘멘토정신’이 연변POP예술학교에 있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전통이 백청강을 낳았고,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백청강도 POP예술학교에서 학생회장을 지내고 졸업을 앞두고 6개월간 강사로 활동하며 후배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기도 하였다고 허광 교장은 말한다.

 

@동포세계 2011.8.1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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