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8.목요일
춘심애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5월 3일 <'일베'와 '행게이',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편을 방영했다.
한편 필자는, 작년 5월28일, 29일에 '그것은 알기 싫다' 30회 에피소드 <양비론의 폐해를 지적하는 양비론의 폐해를 지적하는 양비론>편과 <Age Matters #2 요즘 어린것들은>이라는 기사를 통해 일베에 대한 논의를 했다가 거대한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작년 5월 20일, 저 어그로를 끌기 이전에 일베에 글을 남겨놓기도 했다. 위에 언급한 기사를 쓰기 위한 제보 수집 차원이었다. 링크
또 그런가 하면, 작년 5월 15일, 평소와 같이 트잉여짓을 하다가 맨얼굴이 일베에 오르기도 했다. 일베 사이트에 올랐다는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날의 베스트 게시판에 올랐다. (링크 -여담이지만, 이 때 신상 털릴까봐 개 쫄았던 기억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워낙 듣보잡이라 털리진 않았다.)
오해 말길 바란다. 나는 일베에 대해 '쉴드'를 치려는 인간이 아니다. 일베에 대해 남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런 기사를 쓸 때나 내 얼굴이 일베에 오르는 상황이 아니라면 평소에는 전혀 들어가 보지 않는다. 그냥, 일베에 대해서 열분덜과 별 다를 바 없는, 그냥 작년 이맘때 해프닝이 좀 있었던 그런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이 글을 왜 쓰고 있냐고?
죽지않는 돌고래 부편집장이 시켰다.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았으나 난 그저 무서웠을 뿐.
1. 그것이 알고 싶으나 알려주지 않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해당 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일베의 행게이(행동하는 게시판 이용자의 줄임말. 일베 이용자 중 오프라인에서 어떤 실제 행동을 벌여 인증하는 사용자를 지칭함)들은 성범죄, 스토킹, 명예훼손 등의 실질적 범죄행위를 하기도 한다.
- 이 일베는 과거 유명 커뮤니티였던 '디씨인사이드'의 음란물 등 삭제대상 게시물 중 인기 게시물을 미러링하는 목적으로 발생한 인터넷 커뮤니티다.
- 이들은 ‘재미'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혹은 자극적인 범죄를 저지른 '척' 한다.
- 이들은 압도적으로 남성중심의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여성/이주노동자/야권 정치세력/전라도 등에 강한 적대감을 공유한다.
- 이들은 친목을 금기시한다.
-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들은 2010년대 현대 사회의 구조 및 언론이 만들어낸 문화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운영자에 따르면, 항간의 배후설은 사실무근이라고 한다.
일베라는 사이트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이 있었다면, 매우 도움이 될법한 방송이었겠으나, 딴지일보 및 딴지라디오의 똥꼬 깊수키 정신에 익숙한 딴지스들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이미 알고 있거나 들어본 얘기들일 거고, 그렇기 때문에 긴 똥을 싸고나서 한번만 더 닦으면 완전히 닦일 거 같은데 휴지가 떨어져 '또 닦았어도 안나왔을거야'라는 자기위안을 하며 화장실을 나서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을게다.
이러한 어중간했음에 대해 필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공중파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의 한계라는게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똥꼬 깊수키 정신에 의거, 객관적 분석으로 끝장을 보고자 한다는 의도와 대비할 때, 방송 내용 중 어중간했던 부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베는 악(惡)이냐, 아니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류의 '악이냐 아니냐'의 프레임은 논의의 한계를 필연적으로 가져온다. 그 대상이 200명의 아동을 연쇄살인한 살인마라면 저런 프레임으로도 딱히 한계랄 게 없겠지만, 반대로 그런 살인마는 너무 당연히 악으로 평가해야하므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저런 프레임의 논의는 분명 악해보이긴 하는데, 완전히 악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껄적지근함이 있는 대상에 대한 논의이겠다. 그런 프레임 안에서의 논의는, 한쪽에선 "그럼 시발, 이게 악이지, 악이 아니야?"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악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악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하는 구도가 벌어진다. 전자는 후자에 대해 '악을 옹호하는 새끼'라고 생각하고, 후자는 전자에 대해 '말도 못 알아쳐먹는 멍청한 새끼'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그냥 싸우다 끝난다. 그게 대규모 어그로를 끌었던 나의 경험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경멸할 수 밖에 없는 프레임에서는 '논의'라는 게 벌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주제는 일베가 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일베는 '얼만큼' 악하냐가 돼야한다. 이게 또다른 어그로를 끌고싶지 않은 이 글의 전제다.
2. 옹호와 반박과 재반박과 재재반박
일베에 대해 분노 및 우려를 표하는 이유 중 대중들의 뇌리에 깊이 남겨진 것들은 다음과 같다.
① 전라도 및 5.18민주화운동 비하
② '민주화'라는 단어의 오용
③ 고 김대중 대통령과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④ 여성에 대한 적개심
⑤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개심
⑥ 강간 모의
⑦ 젖병 사건
⑧ 그 외 아동폭행 및 수간 등의 비윤리적 행동 등등.
이에 대한 일베 측의 옹호논리는 이렇다.
"그건 일부일 뿐이다."
반박은 이렇다. ①, ②, ③ 등은 일부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게시판 전체에 매우 만연해 있다. 또한 실제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들이 발생하는 빈도가 비교적 높으며, 그러한 비윤리적 행동 인증 게시물에 대한 인기가 높다는 점에서, 그러한 행동을 조장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이는 일부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것.
일베 측의 재반박은 좀 더 디테일해진다. 일단 그들의 다수는 전라도와 5.18, 두 명의 전 대통령에 대해 "과대평가돼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반대급부로 비판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화라는 것이다. '민주화'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서는 순전히 문화적인 문제이지 실제로 진지하게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윤리적 행동 인증 게시물의 인기에 대해서는, 여느 인터넷 사이트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여기에 재재반박을 하려면 더 디테일해질 수 밖에 없다. 전라도와 5.18, 두 명의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과대평가가 아니다"라는 말만으로 반박이 되지 않으므로, 소위 '팩트 논쟁'이 시작돼야하지만, 한 커뮤니티와 이러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하다. 이는 한 무신론자와 한 기독교신자의 논쟁이 기독교라는 종교의 존재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민주화'라는 단어의 사용방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민주화라는 개념의 가치에 대해서는 한 사회의 교육체계 수준의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하지, 지엽적인 타이름으로 해결될 만한 문제가 아니다. 비윤리적 행동 인증 게시물에 대해서도, 사실 포털 사이트나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반론적으로는 선정성과 윤리성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매우 심도 깊은 논쟁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일베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라는 것에 대한 논의는, 매우 크고 깊이있는 논의가 된다. 그 병폐가 심각해서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쯤 되면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시발 그럼 저 새끼들을 그냥 냅둬야 돼, 그러면?"
일단 릴렉스 하시고, 함 봐라.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모욕한 일베 회원은 검거됐다.
-인기 연예인 수지를 성희롱한 혐의로 2013년 7월 일베 이용자가 검거됐다.
-5·18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5.18 희생자들을 비하한 회원들을 작년 6월에 고소했으며 해당 회원은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11월에는 이희호 여사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한 일베 회원을 고소한 바 있다.
-방송에 나왔던, 일베 게시물을 참고해서 강간을 시도한 위모씨는 당시 검거됐다.
그냥 냅두지 않는다. 이 사회는 잠재적 범죄에 대해 처벌하지 않는다. 단, 범죄자는 당연히 처벌한다. 일베가 얼마나 악하냐에 대한 논의가 복잡하다고 말하는건, 그 많은 병폐를 일단 두고보자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 그 병폐들 중 이 사회가 범죄로 정의하는 행위는 당연히 처벌받는다.
그냥, 복잡하다는거다.
3. 문제를 찾아서
복잡한 문제니 만큼, 냉정하게 보자. SBS 방송에 나온 부분과 방송에서 나오지 않은 부분을 합해서 그냥 있는 사실을 나열해보자. 아무런 가치 평가 없이, 그냥 건조한 사실을 진술하면 이렇다.
일베는 디씨인사이드에서 인기있던 게시물들을 미러링해서, 운영자에 의해 삭제될 게시물을 보존하는 목적으로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남성 이용자 비율이 높고 남성 중심의 문화가 자리잡는다. 매우 다양한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그 중 ⅓ 가량은 정치에 관한 게시물이다. 이 정치 게시물은 대체로 현재 야권과 진보진영에 대한 적개심을 매우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스스로 보수적이라 한다. 정치 이외의 게시물은 일부 범죄 모의 및 범죄 인증, 비윤리적 행동을 모의하거나 인증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일부 극단적인 게시물을 올린 회원들은 검거되거나 기소중이다. 그 밖에도 신변잡기의 공유나 질문, 아무 의미 없는 말장난, 취미나 취향에 대한 게시물 등 과거의 디씨인사이드 게시물들이 보였던 양상과 유사한 게시물들이 존재한다.
드러나 있는 사실 중에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문제는, 역시 실제로 범죄가 발생한 사례가 비교적 많다는 점, 그 범죄행위가 이 사이트에서 인기 있는 게시물과 연관돼 있다는 점, 그리고 범죄로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비윤리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실질적 피해를 야기하는 행위가 벌어지고 있고, 그 행위 또한 인기 게시물과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드러난 '범죄'는 '처벌'받을 일이다. 그렇게 처벌받는 범죄에 대한 분노 여론은 일베라고 특별할 것도 없고, 일베가 아니라서 덜할 것도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범죄 및 준 범죄행위가 일어났다는 게 아니라, 그러한 행위에 대해 동조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조장하는 '문화'가 얼마만큼 확실하게 존재하느냐에 있다.
앞서 말했듯, 일베 사용자들의 논리는 "다른 커뮤니티도 다 그래"다. 아무리 사람이 죽어나가는 참사가 벌어져도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는 여자 사진은 클릭을 부른다. 그 결과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아직 정리는 커녕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지금에도, 뉴스 기사를 보면서 동시에 헐벗은 여자 사진이나 비뇨기과 광고, 성인채팅사이트 광고를 같은 화면에서 봐야만 한다. 물론 이는 범죄는 아니지만,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선택보다 선정성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 양적으로 우세하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대놓고 범죄에 대한 사례도 많다. 과거 디씨인사이드에서도 마약관련 게시물들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으며, 여타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개인정보 침해 및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속칭 '찌라시' 게시물들이 큰 인기를 얻는다. 트위터에서는 허위사실들이 수많은 리트윗을 낳고, 카카오톡에는 '모기업 누구누구랑 누구누구가 불륜사실을 들켜 퇴사'와 같은 게시물이나, 각종 음란물 좌표가 순식간에 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베의 문제가 더 두드러지는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일단 정도의 차이라는 게 있다. 어떤 커뮤니티도 대놓고 강간을 모의하는 게시물이 많은 추천을 받진 않는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일베라는 커뮤니티의 문화가 다른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일반적인 문화에 비해, 범죄에 대한 수용가능 폭이 넓다는 얘기다. 즉, 일베는 수위가 높다. 또 다른 이유는, 일베가 전반적으로 비교적 어린 나이의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져있다는 점이다. 똑같이 음란물이 돌아다니더라도 그 게시판이 50대 게시판인 경우와 10대 게시판인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일베는 실제로 게시물들만 봐도, 10대 중반에서 20대까지가 주를 이룬다. 미성년자 혹은 미성년자에 가까운 어린 성인들의 비율이 높다는 점은, 문제를 다르게 만든다.
축약하면, 수위가 높은 커뮤니티에 비교적 어린 사용자들이 노출돼 있다는 점이, 일베라는 사이트에 대한 우려의 핵심이다.
근데, 이걸로 뭔가 부족하지?
4. 가치판단과 진영 논리
앞서 말한, 범죄 및 윤리성에 대한 수용 범위가 비교적 넓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여론이 일베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우경화'다. 애국보수를 자처하는 일베 사용자들이, 민주화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용도로 쓰면서, 경험치도 않은 5.18 민주화 항쟁을 비하하고, 군부독재를 옹호하는 점. 이러한 문화가 하나의 '놀이'의 모습으로 10대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는다.
문제가 복잡해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민주주의는 일종의 절대적인 가치다. 이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고, 이 명제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은 헌법에 의해 제재가 가해진다. 하지만, 5.18과 민주주의의 연결고리, 군부독재와 민주주의의 관계, 나아가 김대중 노무현과 민주주의의 연결고리에 대해서는, 어른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남아있다. 즉, 아직까지 이러한 연결고리들은 이 사회 전체의 합의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면에서,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치판단의 문제가 된다.
다시.
'범죄'라는 건 도덕적인 측면도 갖고 있지만, 명백하게 '법률'로 정해져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지닌다. 법이 바뀌면 세세한 범죄의 기준도 바뀌겠지만, 어쨌든 법이란 게 그 범죄라는 걸 정의한다. 그러므로 범죄성에 대한 논의는 아주 명백하고 객관적인 기준이란 걸 지닌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합의가 완벽히 일어나지 않은 사안들은 가치의 문제다. 명백한 기준이란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지만원이나 조갑제 같은 인간들이 헛소리를 해대는데 아직까지도 얼빠진 인간들의 지지를 받고있는 이상, 이 문제는 아직까지 '이게 옳다'는 '선언'을 내릴 수가 없는 문제다. 분명히 문민정부 이래로 5.18 민주화 항쟁과 5.16 군사정변이 공식적인 평가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말을 TV에서 들을 수 있고(물론 고소당했지만), 한국은 독재해야 된다는 소리를 종교지도자가 내뱉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당연해야하는 문제가 아직 당연하지 않은거다.
이렇게 되면, 짜증나게도, 이 문제가 진영논리가 된다. 즉, 어떤 명제가 한 진영에서는 사실로, 다른 진영에서는 거짓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사실의 적시가 존재하지 못하고 어떤 진영의 주장이 존재하게 되는거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는 당위성을 지녀야 할 주장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그 논쟁은 사실과 거짓의 대립이 아니라, 주장과 주장의 논쟁이 되어버린다. 답이 나와야 할 설전이, 답이 나올 수 없는 종교적 논쟁처럼 돼버린다.
이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일베 이용자들에게 설교를 하려 들면, 그건 마치 기독교신자와 불교신자의 대화 처럼 되고만다. 서로 완전히 다른 전제를 지닌 채 구체적 사안에 대해 아무리 논의를 해봤자, 결론은 '니가 병신임, 난 아님'의 반복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간단했어야 할 일베 문제가 이렇게 복잡해진 건, 이 사회가 명백해야 할 문제를 아직 명백하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합의가 일어났어야 할 문제가 아직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 남겨진 숙제
정리하자면, 일베가 문제성을 지니는 건 2가지 문제의 복합이다. 일베는 객관적인 범죄 사실에 대한 수용범위가 비교적 넓다는 측면에서, 범죄를 조장하거나 유도할 가능성을 지닌다. 또한 일베는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한 것으로 평가받아야 할 사람들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해 비하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 사람들이나 역사적 사건을 칭송한다. 전자는 객관적으로 입증 가능하고, 후자는 아직 불가능하다. 이 둘에 대한 분리가 없는 상태로 '이노무 시키들을 그냥!’이라는 태도로 다가가 봤자 후자에 대한 반박으로 명백해야 할 전자에 대한 지적까지 희석돼버린다.
이 두 가지 문제에 해당하지 않는 것 중, 일베 문화가 전반적으로 노인, 아동,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다는 점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 역시, 아직 어른들의 사회에서도 이들에 대한 완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문제와 같은 괘를 그린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해야할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가, 일베를 '철딱서니 없는 애들의 모임'이 아니라 '논쟁거리'로 만든다.
범죄 조장에 대한 문제는, 사실 해결이랄 게 없다. 대중들이 분노를 하든 하지 않든, 그 범죄의 피해자가 고소를 하거나, 혹은 범죄가 발생했을 때 수사기관에 의해, 범죄자는 처벌받는다. 그 처벌은 범죄예방효과를 지닌다. 실제로 5.18 희생자에 대한 노골적 비하는 연이은 고소와 소송 이후 그 양이나 수위가 모두 감소했다. 이 사회의 법률은 다행히도 최소한의 제기능은 하고 있는 셈이다. 혹시 그걸 못한다면, 그건 일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문제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었어야 할 것이 가치의 문제가 돼버린 이 상황을 타개하는 거다. 아동폭행이 아직도 존재하는 사회에서, 어린애 뒤통수 갈기고 도망가는 일게이는 생겨난다. '여편네가 솥뚜껑이나 들지 어디서 운전질이냐'라고 하는 사회라면, '김치녀 구별법' 같은 게시물은 일베 뿐 아니라 어디서든 돌아다닌다. 보수 논객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TV에서 버젓이, 5.18을 북한군의 선동이라고 떠들고서 동네 아저씨의 칭찬을 받는 사회라면, 일베에서도 5.18은 북한군의 선동이 된다.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은 대기업들의 재산을,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선 지 20년이 지나도록 돌려받기는 커녕, 대기업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고 징징대고 있는 사회라면, 일베에서도 독재자를 장군님으로 칭송한다.
작년 이맘때, 필자는 일베가 왜 그런 문화를 지니는지에 대해 나름 심리학적인 관점과 역사적인 관점으로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시발 그딴 거 다 상관 없다, 이제. 일베 이용자 중 제일 악독한 일부보다 몇갑절은 더한 노친네들이 아직까지 지맘대로 설치고 다녀도 작은 불편 하나 못 느낄 이 사회다. 친일파도 군사독재도 수십 년간 청산 못한 댓가가, 어린 몸을 얻고 네트워크를 타고 돌아온 게, 열분덜과 내가 그렇게 우려하는 일베의 모습이다. 국정원이 대선개입에 일베를 활용한 건,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잔재가 자신들의 어려진 몸에 업힌 채 다시 한 번 칼날을 휘두른 것에 다름아니다.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
과거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처칠이 한 말이다.
신채호 아니냐고? 안중근 아니냐고? 저 문장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검색 함 해보시라. 그리고 반성하시길 바란다.
어쩌면 일베의 문제는,
우리가 과거를 잊은 댓가로,
미래 대신 과거의 재림을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