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보의 차이를 알고 귀의하기
차이를 아는 상에서 귀의하는 것은 무착보살이 쓴 <집학론>에서 여섯가지 차이를 아는 상에서 귀의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삼보 각각의 뜻이 무엇인지 정의의 차이를 정확이 알고 귀의하는가 아닌가에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복덕 늘어나는가의 차이, 부처님을 기억하는 차이, 믿음의 차이 등입니다. 이와같이 차이를 아는 상에서 귀의하여야 합니다.
3) 삼보를 인정하는 상에서 귀의하기
다음에 인정하는 상에서 귀의하는 것입니다. 불보를 구제해주는 법보를 보여주는 분으로, 법보는 실제로 구제해주는 법으로, 승보는 구제해주는 도반으로 인정하며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병을 낳으려고 할 때 의사 약 간호사가 필요한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이 부처님을 의사로, 법을 약으로, 승가를 도와주는 간호사로 생각하여 귀의하면, 이것이 삼보를 인정하는 상에서 귀의하는 것입니다.
외도와 불도의 귀의처의 차이를 아는 상에서 귀의하는 것입니다.
외도에도 불교의 삼보와 같이 귀의처가 있습니다. 설법자, 가르침,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와 외도의 귀의처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서 귀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하고... 이런 식으로 안하기 때문에 잘안됩니다.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 무상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나도 언젠가 죽습니다. 죽은 뒤에 다음 생에 대해 생각하면, 믿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불법을 배우고, 어떤 사람은 고생 많이해도 배우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보면 인과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 인과 따라서 있기 때문에 다음 생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전생 다음생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중간에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하신 것 수많은 전생 이야기들이 다 가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찰나찰나 모든 것이 변하는 것입니다. 영원하다면 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하듯이, 부처님 가르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꾸준히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참선에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어느정도 되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상 하나에 대해 집중하는 것입니다. 비빠사나는 사유, 분석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공덕에 대해 많이 생각하면 신심이 더 커집니다. 죽음, 무상에 대해 사유 많이 하면 수행정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