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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첫 설법 (초전법륜 : 初轉法輪 )

작성자범하스님|작성시간09.05.30|조회수87 목록 댓글 2

Dhammacakkappavattana-sutta

담마짝까빠바따나-경


부처님의 첫 설법 (초전법륜 : 初轉法輪 )


 진리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다

 

                                                                  

 

《상윳따-니까야 Samyutta-nikaya》(相應部) LVI, 11 
〈담마짝까빠밧따나-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한역아함 대응경전: 轉法輪 (雜阿含15-17)
                        轉法輪經 (安世高옮김 大正藏 2-503)
                        三轉法輪經 (義淨옮김 大正藏 2-504)

 

                                                                                

 

부처님의 첫 설법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에 세존께서는 바라나시 근교의 이시파타나(눈뜬 이들의 휴식처)에 있는

*"사슴공원"(鹿野院)에 계셨었다.

 

거기서 당신은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셨다.


 

비구들이여,

가정생활을 떠나 진일보하려는 사람(出家者)은

이 두 극단을 행하여서는 안  된다.

그 둘이란 무엇인가?

 

하나는 감각적 쾌락을 탐닉하는데 전념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등하고, 천하며, 그저 그런 사람들의 생활방식이고,

무가치하고, 무익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억제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무가치하고, 무익하다.


이 두 극단을 피했기에, 

여래는 "가운데 길"(中道)를 실현하여왔다.
그것은 눈뜨게 한다. 그것은 알게 한다. 그것은 고요하도록,

통찰력을 갖도록, 깨닫도록, 열반을 이루도록 이끌어준다.


 

그러면 "가운데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거룩한 여덟 길"(八正道)이다.

즉,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생계를 꾸리고, 바르게 마음을 깨어있게 하고,

바르게 정신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여래가 실현한 "가운데 길"이다. 

그것은 눈뜨게 한다. 그것은 알게 한다.

그것은 고요하도록, 통찰력을 갖도록,

깨닫도록, 열반을 이루도록 이끌어준다.


 

"둑카에 대한 거룩한 진리"(苦聖諦)는 이런 것이다.


 

태어남은 ****둑카(苦)이다. 나이 먹는 것은 둑카이다.

병드는 것은 둑카이다. 죽음은 둑카이다.

슬픔과 비애, 아픔, 통한, 절망은 둑카이다.

싫어 하는 것과 인연을 맺는 것은 둑카이다.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은 둑카이다.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둑카이다.


- 간단히 말해서

"집착하려고 하는 다섯 가지 모임들"(五取蘊)이 둑카이다.


"둑카의생겨남에 대한 거룩한 진리"(集聖諦)는 이런 것이다.


그것은 열렬한 탐욕에 노예가 되어 또다시 존재하려하고

또다시 생성하려 하는 이 목마름(욕망)이다.

그 목마름은 지금  여기저기서 신선한 환희를 찾아낸다.

즉, 그 목마름이란 감각적 쾌락에 대한 목마름이다.


존재하려고 하며 생성(生成)하려는 -즉 윤회에 대한- 목마름이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으려는(자기 파괴)에 대한 목마름이다.


"둑카가 그침에 대한 거룩한 진리"(滅聖諦)는 이런 것이다.


 

그것은 열렬한 목마름을 완전히 그치는 것이다.

포기하고,단념하여, 자신을 목마름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며 

목마름으로부터 초연하게 되는 것이다.


 

"둑카가 그치도록 이끌어 주는 길에 대한 거룩한 진리"(道聖諦)는

이런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거룩한 여덟 길"(八正道)이다.

즉,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생계를 꾸리고, 바르게 마음을 깨어있게 하고,

바르게 정신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둑카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

그것은 눈뜸이요, 앎이며, 지혜이고, 과학이고, 빛이었다.

예전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이 둑카가 거룩한 진리라고 철저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그것은 눈뜸이요, 앎이며, 지혜이고, 과학이고, 빛이었다.

예전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이 둑카가 거룩한 진리라고 철저히 이해하였다." 

그것은 눈뜸이요, 앎이며, 지혜이고, 과학이고, 빛이었다.

예전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둑카가 생겨남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

그것은 눈뜸이요, 

 

"거룩한 진리에서 이 둑카가 일어남은 버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눈뜸이요,

"거룩한 진리에서 이 둑카가 생겨남을 버리게 되었다."

그것은 눈뜸이요,

예전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둑카가 그침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

그것은 눈뜸이요,


"거룩한 진리에서 이 둑카가 그침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눈뜸이요,

"거룩한 진리에서 이 둑카가 그침을 깨달았다."

그것은 눈뜸이요,

예전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둑카가 그치도록 이끌어주는 길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
그것은 눈뜸이요,

"거룩한 진리에서 둑카가 그치도록 이끌어주는 이 길은 따라야

(수행하여야)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뜸이요,


"거룩한 진리에서 둑카가 그치도록 이끌어주는

이 길을 따라(수행하여)왔다."

그것은 눈뜸이요, 앎이며, 지혜이고, 과학이고, 빛이었다.

예전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각기 관련된

이 세 측면들에서, 즉 이들 ***열두 측면에서,

진정한 앎에 대해 눈뜸이 완전히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높은 완전한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세상의 신들과 마귀들과 범천(梵天)에게, 세상의 사문(沙門)들과

바라문(婆羅門)들에게, 세상의 왕족들과 평민들에게.


그러나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각기 관련된

이  세 측면에서, 즉 이들 열두 측면에서,

진정한 앎에 대해 눈뜸이 명확해졌을 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완전한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외쳤다.


세상의 신들과 마귀들과 범천에게,

세상의 사문들과 바라문들에게, 세상의 왕족들과 평민들에게.

 

그래서 내게는 진정한 앎에 대해 눈뜸이 이렇게 일어났다.

"내 마음의 해탈은 아무도 괴롭힐 수는 없다. 이것은 마지막 태어남이다.

이제 더 이상  생성되는(새로 태어나는) 일은 없다" 라고...


이렇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비구는 환희가 가득하게 되었으며, 부처님의 말씀에 기뻐하였다.
 

                                                                   

 

*

녹야원(鹿野院)은

오늘날의 바라나시(영어로는 베나레스Benares) 근처의 사르나트에 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성지로서

모든 인도인의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석가모니가 첫 설법 장소를 바라나시 근교로 선택한 것은필연적인 것이었다.

석가모니는 부다가야(오늘날의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고는

7일 동안 걸어서 이곳에 찾아와 첫 설법을 한다.

 

**  
이 다섯 비구들은 석가모니가 출가할 때,

아버지인 정반왕이 염려하여 그의 뒤를 돌보도록 출가시킨 사람들이다.

그들은 석가모니가 고행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는 타락했다고 여기고

석가모니를 떠나버린다.

그들은 녹야원에서 다시 부처와 만났을 때,

처음에는 타락한 수행자가 온다고 수군거리며 비난했지만

나중에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감동되어 귀의하게 된다.

 

***
앞서 네 개의 패러그래프에서 보듯이

사성제 각각에 대하여 세 측면의 앎이 있다.

즉, 

1. 그것이 진리라는 앎 

2.  이 진리에 관련된 작용이나 행위가 실천 되어야 한다는 앎  

3. 이 진리에 관련된 작용이나 행위가 실천 되었다는 앎이 그것이다. 

이 세 측면들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 각각에 적용되었을 때,

열두 길이 얻어진다.

 

****

둑카(dukkha)는 단순히 '괴로움'이라고 옮겨질 수 없는 말이다.

그것이 괴로움으로 옮겨지기 때문에 사성제의 첫째를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라고 옮기는등,

불교를 염세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둑카는 일반적인 의미의 괴로움(苦苦) 뿐만이 아니라,

늘 그러하지 않고 변화하는 것(壞苦)과

조건에 구애되는 모든 상태(行苦)를 포함한다.
심지어는 선정(禪靜)과 삼매(三昧)까지도 둑카에 포함된다.

선정과 삼매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이다.

그것이 둑카인 까닭은 괴롭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조건에 구애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중생이 바라보는 모든 것이 다 둑카이다.

즉, 열반의 세계가 아닌 것은 모두 둑카로서, 극복해야 할 것이다.

 

 

 


나마스테(Namaste)
-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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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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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혜정 (서울) | 작성시간 15.11.12 고맙습니다
  • 작성자미르샘 | 작성시간 21.06.06 감사합니다 옴아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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