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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1] 이승소 <회덕동헌>, 보문산 전설 : 매가 변한 바위, 용왕의 복조리를 보문산에 묻은 과부, 욕심많은 형이 떨어뜨린 복주머니, 흙을 쌓은 복주머니

작성자연경|작성시간18.02.21|조회수170 목록 댓글 0

대전(大田)

 

충청남도 동남쪽에 있다. 동쪽 계족산(鷄足山), 서쪽 우산봉(雨傘峰), 식장산(食藏山) 등의 산이 있고, 중간 분지는 평야이다. 갑천(甲川)이 흘러 금강으로 들어간다.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윤휴(尹鑴) 등의 유학자를 배출했다. 회덕현(懷德縣)이었던 곳에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대전이라는 도시가 나타났다. 충청남도 도청소재지였다가 광역시가 되었다.

 

1. 회덕

2. 보문산

3. 식장산

4. 장자못

5. 아들바위

 

1. 회덕

 

이승소(李承召) <회덕동헌>(懷德東軒)

 

峻嶺踰來大野寬    높은 고개 넘어서자 큰 들판이 시원하고,

一村桑柘俯溪灣    한 마을의 뽕나무밭 시내 물을 굽어보네.

樹老石頑知縣古    나무 늙고 돌 단단해 고을 묵은 줄 알겠으며,

庭空人靜訝官寒    뜨락 비고 사람 없어 공무 한가한가 의심된다.

靑陰滿地松千尺    땅 그득한 푸른 그늘 천 척 높은 소나무이고,

碧色侵階竹數竿    계단 스민 푸른 색깔 몇 그루의 대나무이네.

獨憑彫欄無箇事    홀로 난간 기대 있으면서 아무 일도 없어,

時看鬪雀墮簷端    처마 끝에서 참새 떨어지는 것을 본다.

 

=> 오늘날의 대전은 예전 회덕군에 속했다. 조선 초기 시인이 큰 들판이라고 한 것이 대전이라는 지명의 유래이다. 모든 것이 조용하고 한가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과 너무 달라, 시간이 오래 흐른 것을 알 수 있다.


 

2. 보문산

 

() 보문산(寶文山)이 있는 곳이 옛날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그 때 두 장수가 바다를 가운데 두고 싸웠으나 승패가 갈라지지 않았다. 한 장수가 매가 되어 날아가니, 다른 장수는 장대를 만들어 세웠다. 매가 날아가다가 장대 위에 쉬니 매는 굳어서 바위가 되고, 바닷물이 다 말랐다. 그래서 생긴 바위가 보문산이 되었다.


(1) 옛날에 어느 대사가 소제동 방죽을 지나다가 해가 저물었는데, 갑자기 논두렁에서 "우리 백성이 3년 가뭄으로 다 죽겠으니 우리 백성을 살려 주시요"하는 소리가 났다. 자세히 알아보니 용왕이었다. 대사가 물고기들을 물이 많은 곳으로 넣어주어 구해주었다. 용왕이 은혜를 갚으려고 복조리 하나를 대사에게 주었다. 그 복조리는 무엇이든지 넣으면 수북이 쌓이는 보물이었다.


대사는 망태기에다 복조리를 넣어 가지고 돌아다니다 보문산 근처 사라니라는 곳에 닿았는데 해가 저물었다. 잘 곳을 찾아 솔밭 사이로 사방을 둘러보니, 불빛이 반짝이는 곳이 있었다. 거기 가서 주인을 부르니 부인이 나와서 "어떻게 이러한 누추한 곳에 찾아 오셨습니까?"하고 물으면서 맞이해 드렸다. 집은 어두운데 들어가 보니 단칸방에 애들이 일곱이었다.


"바깥양반은 어디에 무슨 일을 하러 가셨습니까?" 하고 대사가 물으니 대답했다. "저는 일찍이 상부(喪夫)를 하였습니다. 남의 집 일을 해 주면서 간신히 일곱 자식과 살고 있습니다." 부인이 대사의 저녁은 제대로 차렸으나, 아이들에게는 시래기죽을 주었다. 아이들이 시래기죽을 다 먹고 대사만을 바라보고 있어 저녁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대사는 부인에게 복조리를 주었다.


그 복조리는 신기한 것으로, 물건을 조금 담기만 하면 하나 가득 되는 것이었다. 대사는 3년 후에 부인이 어떻게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올 것을 기약했다. 3년이 된 뒤에 대사가 다시 사라니에 가니, 부인은 그 복조리로 쌀과 엽전을 많이 늘려 땅을 사고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 복조리의 신통함을 알게 된 자식들이 그 복조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을 했다. 부인이 그것을 보고 복조리를 강변 모래에다 묻었다. 그 때에 복조리에 모래가 들어가서 점점 늘어나더니 큰 산이 되었다. 그 산이 보물이 들어 있다는 보물산이었는데 보문산으로 변했다.


(2) 나무꾼 형제가 있었다. 형은 욕심꾸러기이고, 아우는 착해서 부모를 잘 봉양했다. 동생이 어디 가다가 뭍에 올라와 고생하는 물고기를 구해주고 나서 물고기가 있던 자리에서 헝겊 주머니를 발견했다. 그 주머니에 엽전을 넣으니 엽전이 수북이 쌓여 그것으로 부모를 더 잘 봉양했다. 형이 욕심을 내서 그 주머니를 뺏다가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주머니에 흙이 자꾸 쌓여 산이 되었다. 그 산이 보물이 들어 있다는 보물산이었는데 보문산으로 변했다.


(3) 옛날 어느 임금이 신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가 개구리가 이상한 접시를 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접시를 가져다 쌀을 넣으니 쌀이 수북이 쌓였다. 무엇이든지 넣으면 수북이 쌓였다. 나중에 흙을 넣으니 흙이 자꾸 쌓여 산이 된 것이 보문산이다. 산의 흙을 파면 어딘가 그 접시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 산이 보물이 들어 있다는 보물산이었는데 보문산으로 변했다.

 

=> ()는 임석재, <<한국구전설화 6 충청남도편>>에만 있는 기이한 이야기이다. 왜 장수들이 싸우고, 매가 바위가 되고 바닷물이 다 말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와는 전연 다른 ()의 세 이야기는 같은 유형의 변형이다. 무엇이든지 넣으면 수북이 쌓이는 보물 용기를 잘못 사용한 탓에 흙이 쌓여 산이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 공통된 내용이며, 과욕을 경계하는 의미를 일제히 지니고 있다.


(1)에서는 보물 용기를 선행을 한 대사가 용왕에게서 얻어 가여운 여인에게 주었다고 해서 소종래를 분명하게 했다. 여인의 아들들이 그것을 차지하려고 다투다가 흙이 쌓여 산이 생겼다는 결말도 의미가 분명하다. (2)에서는 보물 용기가 나무꾼 형제의 선악을 평가하는 구실을 해서 그 나름대로 납득할 만하다. (3)에서는 보물 용기를 임금이 얻었다고 하는 것이 이상하고, 선악 평가가 사라졌다



  * 대전 서구 <명학소 망이 망소이 민중봉기 기념탑>


* <명학소 망이 망소이 민중봉기 기념탑>의 하단 측면


* <도산(道山)서원> 권득기(權得己), 권시(權諰) 부자를 배향하고 있다.





*<도산서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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