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분황사 원효성사 제문>원효 교학의 의의, 신라 고려 사상사 연결고리, 가까운 불교 원천 소중해/조동일그림 <물성색성(物盛色盛)><기성력성(氣盛力盛)>
작성자연경작성시간19.11.20조회수447 목록 댓글 0義天, <祭芬皇寺曉聖文>(제분황사효성문), <<大覺國師文集>> 권16
의천, <분황사 원효성사 제문>
원문:
維年月日 求法沙門某 謹以茶菓時食之尊 致供于海東敎主元曉菩薩
伏 以理由敎現 道藉人弘 逮俗薄而時澆 乃人離而道喪 師旣各封其宗習 資亦互執其見聞 至如 慈恩百本之談 唯拘名相 台嶺九旬之說 但尙理觀 雖云取則之文 未曰通方之訓
唯 我海東菩薩 融明性相 隱括古今 和百家異諍之端 得一代至公之論 況 神通不測 妙用難思 塵雖同而不汚其眞 光雖和而不渝其體 令名所以振華梵 慈化所以被幽明 其在賛揚 固難擬議
某夙資天幸 早慕佛乘 歷觀先哲之閒 無出聖師之右 痛微言之紕繆 惜至道之陵夷 遠訪名山 遐求墜典 今者 雞林古寺 幸瞻如在之容 鷲嶺舊峯 似値當初之會 聊憑薄供 敢敍微誠 仰冀厚慈 俯垂明鑑
읽기:
維(유) 年月日(연월일)에 求法沙門某(구법사문모)는 謹(근) 以茶菓時食之尊(이다과시식지준)으로 致供于海東敎主元曉菩薩(치공우해동교주원효보살)하나이다.
伏(복)하건대, 理由敎現(이유교현)하고 道藉人弘(도자인홍)하나이다. 逮俗薄而時澆(체속박이시요)하여 乃(내) 人離而道喪(인리이도상)하나, 師旣各封其宗習(사기각봉기종습) 資亦互執其見聞(자역호집기견문)하여, 至如(지여) 慈恩百本之談(자은백본지담)이 唯拘名相(유구명상)하고, 台嶺九旬之說(태령구순지설)이 但尙理觀(단상이관)이나이다. 雖云取則之文(수운취측지문)이라도 未曰通方之訓(미왈통방지훈)이나이다.
唯(유) 我海東菩薩(아해동보살)께서는 融明性相(융명성상)하고 隱括古今(은괄고금)하고, 和百家異諍之端(화백가이쟁지단)하여 得一代至公之論(득일대지공지론)하셨나이다. 況(황) 神通不測(신통불측)이 妙用難思(묘용난사)하나이다. 塵雖同而不汚其眞(진수동이불오기진)하고 光雖和而不渝其體(광수화이불투기체)하나이다. 令名所以振華梵(영명소이진화범)하고 慈化所以被幽明(자화소이피유명)하니, 其在賛揚(기재찬양)을 固難擬議(고난의의)하나이다.
某(모)는 夙資天幸(숙자천행)하며 早慕佛乘(조모불승)하고, 歷觀先哲之閒(역관선철지간)에 無出聖師之右(무출성사지우)하나이다. 痛微言之紕繆(통미언지비무)하고 惜至道之陵夷(석지도지능이)하여 遠訪名山(원방명산)하고 遐求墜典(하구추전)하다가 今者(금자) 雞林古寺 (계림고사)에서 幸瞻如在之容(행첨여재지용)하나이다. 鷲嶺舊峯(취령구봉)에서 似値當初之會(사치당초지회)하나이다. 聊憑薄供(요빙박공)으로 敢敍微誠(감서미성)하며, 仰冀(앙기)하오니 厚慈(후자)로 俯垂明鑑(부수명감)하소서.
풀이:
維(유)는 발어사이다. 年月日(연월일)은 특정하지 않은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이다. “求法沙門某”(구법사문모)는 “법을 구하는 승려 아무개”이다. “謹”(근)은 “삼가”이다.
“以茶菓時食之尊”(이다과시식지존)은 “차, 과일. 계절 음식의 제물로”이다. “致供于海東敎主元曉菩薩”(치공우해동교주원효보살)은 “해동교주 원효보살께 제사를 지내다”이다.
“伏”(복)은 “엎드려 생각하다”이다. “理由敎現”(이유교현)은 “이치는 가르침으로 나타나다”이다. “道藉人弘”(도자인홍)은 “도리는 사람에 힘입어 넓어지다”이다. “逮俗薄而時澆”(체속박이시요)는 “풍속이 경박하고 시대가 타락한 지경에 이르다”이다. “乃”(내)는 “곧”이다. “人離而道喪”(인리이도상)은 “사람이 떠나 도리가 손상되다”이다. “師旣各封其宗習”(사기각봉기종습)은 “스승이 각기 그 종파의 습성에 닫히다”이다. “資亦互執其見聞”(자역호집기견문)은 “제자 또한 그 견문을 서로 고집하다”이다. “至如”(지여)는 “무엇과 같은 데 이르다”이다. “慈恩百本之談”(자은백본지담)은 “현장(玄奘) 스님의 백본(百本) 담론”이다. “唯拘名相”(유구명상)은 “오직 이름에 구애되다”이다. “台嶺九旬之說”(태령구순지설)은 “지의 (智顗) 스님의 구순(九旬) 설법”이다. “但尙理觀”(단상이관)은 “다만 도리 관념만 숭상하다”이다. “雖云取則之文”(수운취측지문)은 “비록 본받을 만한 글을 얻다”이다. “未曰通方之訓”(미왈통방지훈)은 “널리 통하는 교훈이라고 말하지 못하다”이다.
“唯”(유)는 “오직”이다. “我海東菩薩”(아해동보살)은 “우리 해동보살”이다. “融明性相”(융명성상)은 “성(性)과 상(相)을 아울러 밝히다”이다. “隱括古今”(은괄고금)은 “고금을 드러나지 않게 아우르다”이다. “和百家異諍之端”(화백가이쟁지단)은 “백가가 달라서 다투는 발단을 화합하다”이다. “得一代至公之論”(득일대지공지론)은 “일대의 지극히 공평한 논의를 얻다”이다.“況”(황)은 “더구나”이다. “神通不測”(신통불측)은 “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이다. “妙用難思”(묘용난사)는 “묘한 활용은 생각하기 어렵다”이다. “塵雖同而不汚其眞”(진수동이불오기진)은 “먼지를 동반해도 진실이 더렵혀지지 않다”이다. “光雖和而不渝其體”(광수화이불투기체)는 “빛과 함께 있어도 본체가 변하지 않다”이다. “令名所以振華梵”(영명소이진화범)은 “이름이 중국이나 인도에서 떨치게 하다”이다. “慈化所以被幽明”(자화소이피유명)은 “자비로운 교화를 저승에서도 이승에서도 받게 하다”이다. “其在賛揚”(기재찬양)은 “이것을 찬양하다”이다. “固難擬議”(고난의의)는 “어디다 견주어 말하기 참으로 어렵다”이다.
“某”(모)는 “아무개”이다. “夙資天幸”(숙자천행)은 “천행을 일찍 입다”이다. “早慕佛乘”(조모불승)은 “어려서부터 불교의 진리를 사모하다”이다. “歷觀先哲之閒”(역관선철지간)은 “선철들의 법도를 두루 살피다”이다. “無出聖師之右”(무출성사지우)는 “성사의 경지를 넘어서는 이가 없다”이다. “痛微言之紕繆”(통미언지비무)는 “사소한 말이 잘못 얽히는 것을 통탄하다”이다. “惜至道之陵夷”(석지도지능이)는 “지극한 도리가 무너지는 것을 애석하게 여기다”이다. “遠訪名山”(원방명산)은 “멀리 명산을 방문하다”이다. “遐求墜典”(하구추전)은 “손상된 전적을 널리 구하다”이다. “今者”(금자)는 “이제”이다. “雞林古寺”(계림고사)는 “계림의 옛 절”이다. “幸瞻如在之容”(행첨여재지용)은 “다행히 살아 계시는 듯한 모습을 우러러 보다”이다. “鷲嶺舊峯”(취령구봉)은 “취령의 오랜 봉우리”이다. “似値當初之會”(사치당초지회)는 “그 때의 법회를 만난 것 같다”이다. “聊憑薄供”(요빙박공)은 “오직 변변치 않은 제물에 의거하다”이다. “敢敍微誠”(감서미성)은 “감히 작은 정성을 드리다”이다. “仰冀”(앙기)는 “우러러 바라다”이다. “厚慈”(후자)는 “두터운 자비”이다. “俯垂明鑑”(부수명감)은 “밝게 굽어 살피다”이다.
번역: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 법을 구하는 승려인 저는 삼가 차, 과일. 계절 음식을 제물로 하고 해동교주 원효보살께 제사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이치는 가르침으로 나타나고, 도리는 사람에 힘입어 넓어지는데, 지금은 풍속이 경박해지고 시대가 타락한 지경에 이르러 사람이 떠나가 도리가 손상되었습니다. 스승이라는 이들은 각기 그 종파의 습성 안에 닫혀 있고, 제자들 또한 자기네 견문을 서로 고집합니다. 현장(玄奘) 스님의 백본(百本) 담론은 오직 그 이름에 구애되고, 지의(智顗) 스님의 구순(九旬) 설법은 다만 도리 관념만 숭상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비록 본받을 만한 글을 얻는다고 해도, 널리 통용되는 교훈이라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우리 해동보살께서는 성(性)과 상(相)을 아울러 밝히고, 고금을 드러나지 않게 아우르며, 백가가 다투는 발단을 화합하게 해서 일대의 지극히 공평한 논의를 얻었습니다. 더구나 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절묘한 활용은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먼지를 동반해도 진실이 더렵혀지지 않고, 빛과 함께 있어도 본체가 변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중국이나 인도에서 떨치고, 자비로운 교화를 저승에서도 이승에서도 받게 합니다. 이것을 찬양하는 말을 어디다 견주어 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저는 타고난 행운을 일찍 얻고, 어려서부터 불교의 진리를 사모해 선철들의 법도를 두루 살폈으나, 성사의 경지를 넘어서는 이가 없습니다. 사소한 말이 잘못 얽히는 것을 통탄하고, 지극한 도리가 무너지는 것을 애석하게 여깁니다. 멀리 명산을 방문해 손상된 전적을 널리 구하다가, 이제 계림의 옛 절에서 다행히 살아 계시는 듯한 모습을 우러러 봅니다. 취령의 오랜 봉우리에서 그 때의 법회를 만난 것 같습니다. 오로지 변변치 않은 제물을 차리고, 감히 작은 정성을 올리며, 우러러 바라노니, 두터운 자비로 밝게 굽어 살피소서.
논의:
그리 길지 않은 글이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멀리 경주까지 가서 계림의 옛 절 분황사를 찾은 기행문이다. 원효를 해동교주 원효보살이라고 받들면서 제사를 지내는 제문이다. 원효 교학의 의의를 다른 분들과 비교해 고찰한 논설이다. 신라와 고려의 사상사가 이어지는 깊은 층위를 말해주는 자료이다.
이치를 밝히는 것과 정감을 움직이는 것이 둘이 아님을 말했다. 불교의 교학을 멀리까지 가서 배워 오려고 하지만 말고, 가까이 있는 원천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교파가 분열되어 경쟁하면서 자기 교파만 옹호하는 풍조에서 벗어나고 다툼을 넘어서야 진실한 깨달음이 있다고 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선인들의 사상 가운데 어떤 것이 특히 소중하다고 여겨 이어받으려고 힘쓰는가? 너무나도 많은 학설이 들이닥쳐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하는 함정에서 어떻게 벗어나려고 하는가? 모든 시비를 잠재울 지극하고 공평한 논의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물성색성(物盛色盛)>
*<기성력성(氣盛力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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