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南越왕박물관>
박물관 명칭이 좀 희한하지만 광주에서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유적이 바로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멀리서부터 박물관다운 맛이 느껴지는 건축물이었다. 황색 토벽인 듯한 건물은 기원전 국가 남월의 느낌을 충분히 담고 있는 거 같다. 실제로 건물 자체가 중국20세기경전건축으로 지정되었다. 박물관은 2008년에 국가1급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
관람일 : 2019.12.18.
입장료 : 10원, 60세 이상 5원, 70세 이상 무료
행운인지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입장료가 면제되는 날이라 한다. 시민들에게 박물관 관람을 권하기 위해서라는데 기념품점의 상품들까지 할인이어서 행운이 겹쳤다. 외상도 아닌 무료라는 말에 남월 문제의 전시품을 먼저 보고, 점심을 먹고 와서 나머지 전시실은 쉰 후에 다시 봤다. 두 번을 입장했으니 정말 오늘 관람 공부는 완전히 공짜 덕을 제대로 봤다.
1983년 남월 2대 황제 문제(文帝)의 묘지가 발굴되어 나온 부장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1988년부터 박물관이 정식 개방하여 민간에 공개되고 있다.
남월은 무제가 1대, 문제가 2대이다. 文王이 아닌 문제인데, 박물관 명칭은 남월왕이다. 황제라는 명칭을 남월 황제에게 쓰지 않겠다는 시각이 반영된 거다.
남월은 BC204~ BC111년까지 중국 남방에서 베트남 북부까지 걸쳐 존속했던 고대국가다. 중국 군웅 조타가 이곳 광동성을 중심으로 장족을 피지배층으로 건설하여 5대째에 한무제에게 멸망되었다. 우리 위만조선 시대가 바로 그때다. 한무제는 이곳에 9개의 군현을 설치하였고, 이후 다시 힘을 모아 고조선을 쳐서 이른바 한4군을 설치하게 된다.
우리 위만조선 시대는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역사 고구하기도 쉽지 않다. 동시대에 남월의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는지 보면서, 아마 우리 당시 고조선 시대도 이러했으리라 짐작하고 보면 우리 역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아다시피 중국과 베트남은 남월 관련 역사적 논쟁을 안고 있었다. 사기에는 충분히 기술되지 않은 사실이 대월사기전서에는 상당히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베트남은 중국에 이 시기를 양보하였고, 중국은 중국의 역사로 삼아 버렸다.
박물관 이름이 기이하게 두 개의 왕조명으로 된 이유다. '서한남월'이 무슨 말인가. 서한은 전한의 다른 이름이다. 서한 시대의 남월이란 말일 것이다. 그럼 우리 고조선도 서한조선이라 해야 하나. 역사를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생겨나는 모순이 현재형 박물관 명칭에까지 담겨 있는 셈이다.
남월을 자신의 역사로 만든 중국, 오늘 본 박물관에 전시된 남월 당시 지도이다. 남월의 강역이 현재 중국까지로 되어 있다. 남월은 한나라와 강력하게 대립하던 국가인데 마치 당시에도 중국의 강역을 그대로 다른 고대국가가 유지하고 있었던 거 같은 인상을 준다. 남월은 현 월남 북부까지 차지했던 나라다.(나무위키에도 이렇게 기술됨)
남월 1대 무제, 조타가 한족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고 있는데 대월사기전서에는 한나라에서 파견된 신하가 왔을 때 조타를 보니 신발도 안 신고 풀어헤친 머리에다 복색이 완전히 현지인과 다름없었다고 한다.(외사씨 왈) 조타는 이미 한족이나 중국과는 관련없는 완전히 동화된 현지인이었던 셈이니 한족 여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남월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남월 문화재 박물관이 서한남월왕박물관이다. 거기다 서한 시대 유물이 있다면 두 단어가 병렬적 관계라 할 수 있겠는데 서한 유물은 없었다. 현대 국가가 아니면 이전 국가는 그냥 이전 국가대로 다루면 어떨까. 현재형 국가 개념으로 과거를 보면 현재가 달라지면 매번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남월, 중국의 관계에서 이런 우려의 현실화를 본다.
그럼에도 우리가 더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남월과 동시대인 고조선에 대한 관심이다. 조타가 세웠던 남월, 한문 문명을 찬란하게 꽃피운 남월과 같은 수준으로 본다면 우리 고조선의 유물도 어쩌면 어디에선가 이렇게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 우리 앞에 이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오늘 보았던 유물은 다 엄청나게 섬세하며 찬란한 문화의 흔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서각형옥배'라 한 옥술잔이다. 옥을 떡 주무르듯이 하며 오늘날 공예로도 만들기 힘들다는 옥공예품을 만들어냈다. 서각은 물소뿔을 말한다. 물소뿔모양 옥잔이라는 말이다.
부장품 전시실 맞은편 이곳이 발굴해낸 무덤터다. 일반인에게 거의 대부분이 공개되고 있다. 이렇게 오랜 세계적 유산이 이처럼 온전하게 발굴되고 보존되어 오늘날 우리까지 볼 수 있게 된 것은 시대를 잘 타고 발견된 덕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돈황석굴의 수많은 문화재가 중국이 힘없이 무너져 있을 때 발견되어 얼마나 많이 유럽으로 건너가야 했던가.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 원형을 알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중국이 살만한 때 발굴된 문제의 문화재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배추잎벌레 옥조각품에 버금가는 최고의 유물이라는 생각이다. 관람하다 만난 이 분은 옥공예품 전문가였다.
이렇게 깊게 옥의 속을 파내면 깨지기 십상이라 한다. 문양의 정교함이나 수법과 구조 등은 오늘날도 만들기 어렵다 한다. 잔의 밑부분이 평평하지 않으니 술을 마시고 난 후 어떻게 상에 놓았겠느냐는 질문에는 아마 당시에는 나무로 된 이 잔 전용 받침을 사용했을 거라 한다. 물론 이것은 무덤 부장품이니 당시에는 사용했을 가능성이 없겠지만 말이다.
옥잔을 왜 물소뿔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아마 당시에 술잔은 모두 물소뿔로 만들었을 것이다. 물소뿔보다 더 좋는 고급재료 옥을 사용했지만 잔은 뿔모양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고. 사람은 누구나 보편적 개념에서 못 벗어난다.
영국이고 오스트리아고 유럽에서는 중국의 도자기를 들여간 후 한동안 도자기를 만드는 데는 모두 중국 여자 문양을 넣어 만들었다. 그래야 차이나자기라는 인식이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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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월 관련 사항은 1.리완호공원 항목의 조타 육가 내용 참조
2.조동일 <남월과 한나라> 중국문화 심층탐구(본카페, 문화비교 설파기언 란) 부분 참조 요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