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기행시]<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을 사정없이 꾸짖다 -한밤중 스페인 그라나다 알바이신 언덕에서>내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별빛도
작성자푸른솔작성시간26.04.14조회수216 목록 댓글 1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을 사정없이 꾸짖다
-한밤중 스페인 그라나다 알바이신 언덕에서
-윤동재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한밤중
플라멩코 춤 공연을 보고
알바이신 언덕에서
알람브라 궁전의 야경을
보고 있는데
터번을 쓴 이가
내 뒤에서
알람브라 궁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비켜달라고 했네
불빛에 비친 그의 두 눈 눈물
그렁그렁
누군가 했더니
낯익은 얼굴
1492년 그라나다 함락 때
알람브라 궁전을 떠났던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Boabdil
나는 그를
사정없이 꾸짖었네
“저 붉은 벽돌 한 장
낮에 본 궁전 내부의
이슬람 문양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 아름다움
그 어느 것 하나
당신 손길이 닿은 게 있소?”
“당신의 사치
숱한 사람들의 눈물과 땀과 피라는 걸
아직도 모르오
당신은 여기
찾아올 것이 아니고
당신을 위해
온몸을 던진 분들
한 분 한 분 찾아
사죄부터 하시오
아직도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
구분 못 하오
답답하오”
깊은 밤 불빛에 비친
붉은 궁전을 보며
눈물을 떨구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저 건물을 짓고
저 건물을 꾸미고
당신만 믿고 있다가
통째 빼앗겨버린
당신의 백성이오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당신이 왕으로 있을 때도
당신이 쫓겨난 뒤에도
여기 와서
안이고
밖이고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소
알람브라 궁전은
당신 것도 아니고
나스르 왕조 백성의 것도 아니고
이제는 인류의 공유재산이오
당신 것이면서 내 것이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보압딜
따라온 시종 한 명 없었고
경비병 한 명 데리고 오지 못했지만
몰락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도 왕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네
그날 보압딜은
내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별빛도 없는 알바이신 언덕을
혼자
쓸쓸히
걸어 내려갔네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터덜터덜.
#나스르 왕조 #보압딜 #스페인 그라나다 #알바이신 언덕 #알람브라 궁전 #인류공유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