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
-윤동재
내 생일이라고
중국집에 가서 집 사람이 사준
짜장면 한 그릇 군만두 한 접시 먹고
마지막에 나온 여지
하나 손에 들고 먹다가
툭, 떨어뜨렸다
내 눈앞에 갑자기
양귀비의 노한 모습
사천성 부주에서 난 여지를
네 따위가 어떻게 감히?
색깔도 향도 맛도
하나 변하지 않은 걸 보니
금방 싣고 온 게 틀림없다며
말 수천 마리 피를 쏟게 한
내 지고한 사치를
네 놈은 기껏 짜장면 한 그릇 후딱 먹고
낼름 받아먹을 수 있나
그때만이 아니었다
중국집 디저트 접시나
결혼식 뷔페에서 여지를 볼 때마다
먼지를 날리며 달려와
내 가슴도 그냥 밟고 지나가는 말밥굽
양귀비의 시퍼렇게 날이 선 눈총
여지가 나오면
뒤돌아서서 얼른 껍질을 벗겨
아무도 모르게 씹지도 않고 삼켜야겠다
탈이 나든 말든
양귀비의 눈총보다는 낫겠지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다
#여지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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