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가볼만한곳] 한옥마을 교동미술관 <박순복개인전 아버지의 정원>수국 장미 모란꽃에 담긴 자연, 동심, 고향, 김예원의 몽환적 세계
작성자연경작성시간26.06.11조회수56 목록 댓글 0<교동미술관 박순복개인전>
교동미술관은 화가들이 탐내는 전시관이다. 경기전 바로 옆, 중앙국민학교 뒤쪽, 공장부지터에 자리잡고 있다. 박화백의 전시는 꽃을 주제로 한다. 꽃은 꽃이 아니라 바람이고 햇빛이다. 흔들거리는 하늘거리는 시들어가는 꽃잎들의 화려하면서도 온존한 모습은 바람과 햇빛과의 대화이다. 바람에 맡기고 햇빛에 공손한 꽃의 모습에 세상을 보는 작가의 시선이 어려있다. 교동미술관, 국왕도 노동자도 아이들도 함께하는 공간에 서니 작가의 꽃과 자연이 고향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1.방문지대강
명칭 : 교동미술관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89
입장료 : 없음
방문일 2026.6.2.
2. 둘러보기
경기전 담벼락 옆, 중앙초교 아래에 있는 교동미술관, 한옥마을의 몇 안 되는 중요한 미술전시 공간으로 지역 작가라면 모두 이곳에서의 전시를 꿈꾼다. 이번에는 전주 작가로 첫 개인전을 갖는 박순복 화백의 작품전을 만난다. 꽃과 고향 중인리의 풍광을 주로 그려온 작가의 세계에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고향, 전주의 느낌을 흠씬 담고 있다.
미술관은 의류를 생산하던 공장터에 지어졌다. 앞쪽으로는 경기전이, 옆으로는 경기전의 일부 땅에 들어 있던 중앙초교가 임자에게 땅을 내주고 새로 지어나온 지 오래인 중앙초교가 자리한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이 모셔진 궁전이다. 궁전 땅을 헐어내 학교를 지은 일제의 민족정신 훼손 의도를 바로잡은 이전이다.
그 학교를 6년 다녔지만 무심했었던 어린 시절, 그런 흉계가 숨어 있었던 줄은 차마 몰랐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그곳 아이들의 동심을 훼손하지는 못했던 것이라 할까. 등하교 때마다 만나던 경기전 대문 안의 홍살문, 낮은 담벼락 너머로 건너오던 경기전의 기운이 오히려 아이들을 더 건강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모두 나처럼 건강하게 일상의 인간으로 잘 자라 잘살고 있는 거 같으니 말이다. 의도가 훙악하다 하여 결과도 흉악한 것은 아니니 다행이다.
구리의 동구릉에는 태조 이성계의 릉이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다른 왕릉은 곱게 떼를 입혀 단장하고 있는 반면, 태조의 릉은 억새로 봉두난발, 봉분이 들쑥날쑥 어지러운 모습이다. 유언대로 고향 함흥의 억새를 가져다 떼를 입혔기 때문이다.
중국 명13릉의 엄청난 규모와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日光東照宮의 화려함과는 전혀 다른 엄숙함과 수수함에서 풍기는 인간의 격조가 이곳 경기전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서모가 데려온 자식마저 동생으로 거두며 극진히 살폈다는 태조의 인간미가 조선을 그처럼 격조 높은 국가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풍모가 교동미술관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의류공장이라는 생활공간이 그대로 예술공간이 되어 예술과 생활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거 같다. 아이들의 동심과 경기전에 남은 국왕의 백성과 같은 눈높이가 그대로 박순복의 그림세계로 전이되었으니 전시장과 전시품이 하나가 된 것이다.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동심을 내마음, 아심으로 삼으며 살아온 작가는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수국 그림을 통해 동심과 자연의 세계를 보여준다. 꽃은 작가에게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모란과 장미, 꽃이 작으면 수만겹으로 크면 몇 겹으로 세상에 자기를 던진다.
탐스러운 꽃잎의 아름다움도 바람 앞에서는 하늘거리는 유연함, 햇빛 앞에서는 겸손한 수혜자이다. 흐들거리는 꽃잎과 시든 꽃잎들은 자연과 하나되는 자연의 모습이다. 그것은 어른보다 자연에 더 가까운 동심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아래는 찬조작품. 개인전을 여러번 가진 적이 있는 젊은 작가 김예원 님의 작품이다. 몽환적인 색상과 구상으로 박순복 작가와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며 전시회를 빛내준다. 작가의 따님이니 모녀 화가의 전시회다.
*박순복 화가가 개막식에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3. 관람 후
한옥마을 구경
경기전 담장길. 황혼에 불이 하나 둘 켜지고 있다.
경기전 정문
경기전 귀퉁이. 이 귀퉁이를 돌아가면 중앙국민학교가 있었다. 담장 끝에는 구멍가게가 있었고, 거기서는 번데기를 팔았다. 한 봉지를 사면 집에 갈 때까지 먹을 수 있었다. 참 소중하고 맛있었던 간식이 어른이 되어 외국인에게 혐오식품으로 인식되는 것을 보고 어린 시절이 훼손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었다. 추억이나 전통이 없는 사람들이 외양만 보고 접근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은 충격에서 헤어나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음식 기호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처음 인지하게 된 계기였다.
이곳은 번데기 외에도 아마도 체머리증세 앓으셨으리라 추측되는 할머니 할아버지 거지 내외분이 앉아서 구걸을 했던 곳이었다. 앞에 작은 양은그릇을 놓고 끊임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그 절을 받으면 큰일 난다고 저 멀리서부터 긴장을 하며 그곳에 오면 날 듯이 보폭을 크게 하여 뛰었다. 거길 안전하게 건너는 것이 하굣길의 큰일이었다.
나중 보니 그 거지할머니 내외분 얘기를 최명희 작가가 단편소설에서 눈에 보이는 듯이 잘 그려내고 있었다. 나처럼 그곳을 날아서 뛰어본 추억이 없는 사람도 그 거리를 눈에 잡힐 듯이 그려낼 수 있도록 섬세하게 말이다.
전동성당. 해질녁에 붉은 성당을 보니 마치 다낭의 핑크성당을 연상시킨다. 그보다 훨씬 육중하고 기품있는데 말이다. 1914년 프랑스 신부가 건축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베트남 핑크성당도 프랑스 신부가 지어서 둘이 비슷하게 보이는 걸까.
어릴 때는 이곳이 구슬치기 공간이었다. 학교에서의 놀이가 충분치 않으면 하굣길에 이곳으로 들어가 패싸움도 하고 구슬치기도 했었다. 엄숙한 종교 공간 이전에 우리들에게는 놀이공간이었다. 나중 <약속>에서 주인공의 언약 장면 배경지여서 왠지 내 어린 시절도 영화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남창당한약방. 경기전 담이 끝나는 곳, 중앙성당 앞에 있는 그 약방이 지금도 있다. 동암고교를 만든 이사장, 그 한의사의 전설이 지금도 계속되는 곳이다.
풍남문 광장. 전주(全州)는 태조 이성계의 고향이어서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 불린다. 한고조 유방의 고향을 이르는 말로 왕조의 발상지를 이르는 보통명사로 쓰인다. 풍남문도 그 풍패에서 온 말이다.
광장에 위안부 소녀상이 있다.
풍남문. 석양에 빛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풍남제를 지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교동미술관, 박순복그림전시회를 보고 한옥마을을 또 한번 둘러보는 행운을 누렸다. 작가의 필운이 풍남문처럼 지속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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