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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史

[스크랩] 북한 현대사1 - 해방정국

작성자정암|작성시간16.06.30|조회수46 목록 댓글 0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치하에서 숨죽여 살던 조선민중은 때 아닌 긴급 속보에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일제는 이미 하루 전에 항복 선언을 준비했음에도 계속 승전중이라면서 거짓 선전을 하고 있었던 터라 조선민중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일본 천황은 라디오 앞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나 천황 히로히토는 연합국의 항복 요구를 수락했다."

이때 듣고 있던 조선민중은 그동안 참고 있던 울분을 그대로 표출시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언제부터였던가? 일본은 아시아인의 해방을 위한답시고 아이들에게는 집안의 못까지 빼오게 하고, 절에 있는 종까지 녹이지 않았던가?

수많은 조선청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와 노역장에 끌려가 혹사를 당했고, 부녀자들은 일본인들의 성노리개로 끌려갔다. 그야말로 조선의 살아있는 모든 것은 일본인에 의해 희생을 당해야만 했다. 어찌 보면 살아남은 게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항복 선언이 있게 되자, 그동안 일본 당국에게 감금되었던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여운형을 비롯한 일부 정치지도자들이 건국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켜 국가재건에 힘쓰게 되었으나, 이는 잠시뿐이었다.

조선민중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한반도의 운명은 둘로 나눠져야 할 운명이었다. 조선인 스스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미국에 의한 원폭 두 방에 의한 해방이었기에 조선민중이 36년 동안 피나는 투쟁을 했다고 호소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아리뿐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 등은 일찍이 상해임시정부에서 광복군을 창설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조선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노력했지만, 막판 일본의 급작스러운 항복으로 결국 이루지 못했다.

이때 백범선생은 통탄의 눈물을 흘리며 "우리가 스스로 해방을 이루지 못했으니, 장래 우리의 발언권이 약해질 것"이라고 했으니, 이는 현실로 들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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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푸른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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