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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서>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다. 왜 이날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기리게 되는가?
간악한 일제로부터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발렌타인데이를 이렇게 들뜨게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일본 상인들이라는
사실이다.
발렌타인데이와 초콜릿을 연결시킨 나라는 일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안중근의사께서 갇히셨던 감방앞에 있는 설명문
안중근 의사 께서 갇히셨던 감옥의 창문
죄수들을 사형시켰던 교수대
( 당시 안중근 의사 께서도 이곳에서 돌아가신듯 ....)


의거 직후 중국 뤼순 감옥의 안중근 의사(맨 왼쪽).
의거 다음날 1909년 10월27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서 찍은 안 의사 부인 김아려 여사와 아들 분도, 준생(오른쪽 위).
안 의사의 둘째 아들 준생, 동생 정근, 정근의 아들 원생, 안의사의 딸 현생, 동생 공근의 아들 우생.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제공>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3의사 묘역과 안중근 의사 가묘(맨 왼쪽) / 효창공원>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시신을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형된 그날 밤 한 일본 간수가 그의 시신을 뤼순 감옥 터 뒤에 황급히 매장했다고 한다. 이후 1945년 11월 중국에서 돌아온 백범 김구는 순국한 독립운동가의 유골을 찾아 국내에 봉환하기로 한다. 이듬해 6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세 분의 독립운동가의 유골을 일본에서 찾아온 후 효창공원에 안장하지만 안중근 의사를 위해서는 네 번째 '허묘'를 만든다. 이것은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꼭 찾겠다는 김구의 결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1949년 김구 역시 안두희의 암살로 사망하고 2008년 남북 정부는 광복이후 처음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공동 발굴에 나섰지만 유해는 찾지 못하고 위치 또한 찾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독도(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거국적인 '독도(다케시마)의 날'행사를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초콜릿 물결이 부끄럽지 않은가?
심지어 공공기관인 서울한강사업본부에서는 '발렌타인 콘서트'까지 연다니...한심, 또 한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