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세계외교사(世界外交史)-서문(序文)
이 책은 기존 『세계외교사』를 완전히 재구성하고 다시 집필한 것이다. 1989년에 처음 세상에 내어 놓은 『세계외교사』 상, 하 두 권은 200자 원고지 3,000매 정도의 분량으로 육필로 쓴 필자의 마지막 책이었다. 원고 뭉치와 문헌 카드를 들고 사찰이나 수도원을 전전하면서 끝맺을 수 있었기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지적 산물이기도 하다. 상, 하 두 권을 한 책으로 통합하면서 약간 보완을 하고는 평생 처음 병원을 찾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랑과 미움이 같은 것임을 곧 알게 되었다. 책이 세상에 나와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자 필자에게는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출판사에서 인쇄를 거듭할 때마다 필자에게는 『세계외교사』를 다시 재편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더해갔다. 새로이 세계외교사를 집필한다는 계획을 글 쓰는 인생 역정의 마지막 단계에 올려놓고는 정신적인 위안의 도피처를 찾았다.
그러나 이 도피처도 허망한 것이었다. 정년 다음해인 2003년에 한림대학교에서 세계외교사 강의를 시작하자 몇 가지 절실한 이유에서 세계외교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첫째로 기존 『세계외교사』의 서술체계를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이 서술체계는 외교사 교과서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랐기에 유럽중심주의를 무의식적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년퇴직하면서 『외교사란 무엇인가』(도서출판 원, 2002)란 책을 세상에 내어 놓아 외교사 저술에 나타난 강대국 중심의 서술을 길게 논박한 바 있다.
둘째로 유럽중심주의의 서술을 극복하는 길을 비교문명권의 시각에서 찾아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 바 있는데 이런 관점에 따라 기존 『세계외교사』를 재구성하였다. 세계외교사 인식에 있어서 비교문명권의 입장에 관해서는 위의 『외교사란 무엇인가』와 『세계관 충돌과 한국 외교사, 1866~1882』(문학과지성사, 2001) 제1장 「세계외교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자세히 적은 바 있다.
세계외교사는 여러 문명권들의 충돌의 역사라는 기본 명제에 입각해 새로운 『세계외교사』의 목차를 재구성하였다. 유럽문명권의 세계 팽창, 유럽과 이슬람의 대립, 그리고 유럽과 사대질서의 충돌을 새로운 장절로 삼았다. 다만 유럽과 슬라브 문명권의 투쟁은 19세기 이후 세계외교사의 핵심이어서 따로 장절로 분리해 서술하기가 힘들어 유럽문명권의 통시적인 서술에 포함시켰다.
셋째로 이 책에서는 조선과 세계외교사의 접목에 관하여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였다. 한국에서 외교사를 익히는 근본 목적이 우리의 역사적 대외인식 경험을 추적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것을 ‘대외인식의 역사적 질병’이라고 불러 왔다. 한편 『세계관 충돌과 한국 외교사, 1866~1882』는 절판되어 독자들이 이제 손쉽게 접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제5장에 그 요지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이 역사적 질병의 연구를 독자들이 더 천착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부록」에 따로 조선 관련 기간, 미간 외교문서들의 소재를 밝혀 놓았다.
끝으로 세계외교사의 서술에는 여러 국제적인 사건들이 등장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사건 설명의 늪에 빠져 외교사 흐름의 전체적인 의미를 놓치게 되는 위험이 있다. 이에 30여 개에 달하는 절(節) 앞에 ‘이끄는 글’을 마련하여 그 절의 외교사적인 의의를 설명하였다. 이것은 필자의 외교사 해석에 관한 생각이기도 하다.
이미 발표한 책을 다시 쓰고 보완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작업이라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단시일에 끝낼 수 있으리라는 당초의 구상은 환상이었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새로운 『세계외교사』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한림대학교가 마련해 준 학문적인 여건 때문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드린다.
2006년 4월
봉의산 기슭에서
필자 씀
범례
1. 조선은 1895년에, 중국은 1912년에 그리고 일본은 1872년에 양력을 채택하였으나, 이 책에서는 그 이전의 음력을 모두 양력으로 환산해 적었다. 1917년 소련 혁명 이전의 제정 러시아력(曆)도 양력으로 환산하였다. 제정 러시아력은 양력보다 12일이 앞서 있다.
이들 날짜를 모두 양력으로 환산시킨 것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모든 지역의 문제들은 세계외교사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독자들이 동양 자료를 검색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중요한 날짜인 경우 음력을 병기하였다.
2. 중국과 일본의 인명, 지명은 모두 원음으로 표기하였다. 러시아어의 영문 알파벳 전자(轉字)는 The Current Digest of Post-Soviet Press 방법에 의거하였다. 한글 표기는 한국 교육인적자원부 편수자료에 따랐다. 그러나 각 장 말미에 실린 「주요문헌」 중 중국과 일본의 연구들은 한글음 순서에 따라 배열하였다.
3. 본문에 쓰인 해협이란 낱말은 보스포루스-다르다넬스 해협을 가리킨다.
저자 : 김용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 졸업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한국국제정치학 회장, 외교·행정고시전형위원 역임했다. 현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원장 겸 특임교수, 서울대학교 국제정치학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루소의 전쟁과 평화』(편역, 1972), 『소련국제법이론연구』(1979), 『중·소 국제법이론 및 러시아-소련의 한국외교사연구: 문헌목록』(1979), 『러시아 국제법사』(역서, 1982), 『러시아 국제법』(1994), 『한일외교미간극비사료총서』 50책(편, 1995~1996), 『러시아 국제법학의 전통』(1996), 『한국 외교사 연구』(공편, 1996), 『세계관 충돌의 국제정치학』(1997), 『세계관 충돌과 한국 외교사 1866~1882』(2001), 『장 자크 루소와 국제정치』(2001), 『외교사란 무엇인가』(2002), 『임오군란 갑신정변: 사대질서의 변형과 한국 외교사』(2004), 『세계외교사』(2006), The Five Years’ Crisis 1866~1871: Korea in the Maelstrom of Western Imperialism(2002), Korea and Japan: The Clash of Worldviews, 1868~1876(2006)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범례 (세계외교사, 2006. 5. 25., 서울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