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애유집 서문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문장으로 이름을 남기거나 공적으로 이름을 남기는 경우는 있으나, 덕과 업적을 함께 이루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드물다.
낙애 오선생은 시례의 가문에서 태어나 집안의 가르침과 스승의 교화 속에서 자라 젊어서부터 큰 뜻을 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를 따라 군무를 도와 충의의 기개를 보였다.
전쟁 후 관직에 나아가 백성을 다스림에 청렴하고 공평하였다.
그러나 당쟁이 심해지자 형세를 보고 물러나 낙수 위에 은거하였다.
뒤에 모함으로 유배되었으나 끝내 원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면되었으나 귀향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문은 대부분 흩어졌으나 후손이 남은 글을 모아 한 책으로 엮어 세상에 전한다.
이 책은 단지 한 집안의 글을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 선비의 절개를 보여 주는 것이다.
2026년 4월 일 후손 홍재
厓遺集目錄 낙애유집목록
卷之一 권지일
詩 시
歳戊戍避兵于加恩 止 因詠所懐
세무술피병우가은지인영소회
무술년 병란을 피해 가은에 머물러, 그 심회를 시로 읊다.
述懐 술회
심중의 회포를 적다.憶庭闈 억정위
부모 계신 집을 생각하며.
次金陵倅黄一之韻
차금릉졸황일지운
금릉 수 황일지의 시 운에 차운하다.
題鳥嶺站舎 제조령참사
조령의 역참에 제하다.
重陽前一日留星竒驛詠懐
중양전일일유성기역영회
중양절을 하루 앞두고 성기역에 머물러,
마음속 회포를 시로 읊다
聞春坊 止 見諸作次韻
문춘방지현제작차운
춘방에서 지은 여러 작품이 드러난 것을 보고 차운하다.
次甘文倅姜君 永錫 韻
차감문졸강군영석운
감문 수 강군 영석의 시에 차운하다
.過星山呈牧伯趙希輔
과성산정목백조희보
성산을 지나는 길에, 목사 조희보께 시를 지어 올리다.
九月以天將支送 止 勸賔驛偶吟
구월이천장지송지권빈역우음
9월,천장을 호송하여 가는 길에 권빈역에 머물며 우연히 시를 읊다.
詠懷 영회
마음속 생각을 시로 읊다.
過清溪洞 과청계동
청계동을 지나는 길에.
憶洛厓江舎 억낙애강사
낙애, 강가에 있던 옛 거처를 생각하며.
敬次李攻承 稷韻 경차이공승직운
이공승 직의 시 운에 삼가 차운하다.
入直玉堂次趙裕善而淑韻
입직옥당차조유선이숙운
옥당에 숙직하며 조유선 이숙의 시 운에 차운하다.
洛厓詠懐 낙애영회
낙애에 머물며 심회를 읊다.
入直玉堂 二首 입직옥당
이수 옥당에 숙직하며 지은 시 두 수.
景虚赴青松 경허부청송
경허가 청송으로 부임하니.
八溪倅安璹伻書遺﨎鯉以詩謝之
팔계졸안숙팽서유륭리이시사지
팔계현감 안숙이 사자를 보내 편지와 함께 예물을 보내왔기에 시로써 답하다.
題洛厓江舎 제낙애강사
낙동강 언덕 강가의 집에서 제하다.
挽金鐡原 立 만김철원 립
철원 김립을 애도하다.
挽朴叅判 而章 만박참판 이장
참판 박이장을 애도하다.
挽金鶴峯夫人 만김학봉부인
김학봉 부인을 애도하다.
挽金陵倅權景虎 만금릉졸권경호
금릉수령 권경호를 애도하다.
送李埁赴豊基 송이잠부풍기
이잠이 풍기로 부임함을 전송하다.
낙애유집 서문
공자가 「동인괘」에서 말하기를“군자의 도는 때로 나아가고, 때로 물러나며, 때로 침묵하고, 때로 말한다.” 하였고,『논어』에서는“사람은 곧음으로 살고, 곧지 못한 자가 사는 것은 요행일 뿐이다.” 하였다.
나아가고 물러나며 말하고 침묵하는 것은 모두 때를 따르는 도리이다.그러나 곧은 도는 사람의 삶과 함께 태어나는 것이다.
次李譚韻 차이담운.
이담의 운에 차운하다.
次德美移居韻 차덕미이거운
덕미가 이사한 곳에 차운하다.
又 우挽朴鶴巌 廷璠 만박학암 정번
학암 박정번을 애도하다.
挽金尚坤 만김상곤
김상곤을 애도하다.
舎季日暮還路 사계일모환로
여러 아우를 두고 날 저물어 돌아오는 길.
導水闢土 도수벽토
물을 끌어들이고 땅을 개간하며.
獨居 독거
홀로 거처하며.
題昇巌 제승암
승암에 대하여 시를 짓다.
新蕨 신궐
새로돋은 고사리.
揭三縄字 게삼승자
세 가지 승자를 들어 밝히다.
聞捉豹 문착표
표범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松陰 二首 송음 이수
소나무 그늘. 두수
邦叔送竹筍又兼一絶故吟和 방숙송죽순우겸일절고음화
친척이 대나무 새순을 보내주어, 나는 또 한 편의 노래로 이에 화답하노라.
敬次文郞公金先生慶州東閣韻 경차문랑공김선생경주동각운
공경하는 문랑공 김 선생 경주 동각 운에 화답하다.
俞相哲甫處歸時贈别 유상철처귀시증별
유상철 보가 부임하여 처음 자리에 있을 때 이별하며 주다.
見洞中少年鄕解落魄詩以慰之 현동중소년낙향해백시이위지
동네 소년이 향시에는 합격했으나 (이후의 일로) 실의에 빠진 것을 보고, 시를 지어 그를 위로하다.贈别金仲植甫 증별김중식보
김중식 보를 증별하며.思孫児 사손아
손자를 생각하며.案山層巌 안산층암
안산에 겹겹이 쌓여 있는 바위(혹은 절벽) 成橋曳石 성교예석
다리를 놓으며 돌을 끌다. 尚州科時送児曺科日雨下馳慮 상주과시송아조과일우하치려
상주에서 과거를 볼 때 아들을 보내며, 시험일에 비가 내려 마음이 달아나다.登山即景 등산즉경.
산에 올라 즉흥으로 경치를 읊다.
贈邦叔 증방숙
나숙에게 드림.勧送學童獵前溪 권송학동엽전계
앞 시내로 사냥 가는 학동을 보내며.聞營白日場設行 문영백일장설행
영(營)에서 백일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니.贈文大仲還故 증문대중환고
문대중 환이 고향으로 돌아감에 부치다.贈崔士益 증최사익
최사익에게 주다.
贈姜凞源 증강희원
강희원에게 주다. 見争田人偶吟 견쟁전인우음
밭을 다투는 사람을 보고 느끼다.甞春醪 상춘료
봄 막걸리를 맛보다.次春坊諸僚韻 二首 차춘방제요운 이수
춘방여러 동료의 운에 차운하다. 두수
甲寅春以内翰受由歸寜滯雨竹山詠懷 갑인춘이내한수유귀령체우죽산영회
갑인년 봄, 한림으로 재직 중 휴가를 받아, 비에 막혀 죽산에 머물며 회포를 읊다.
江陽舘書懐 강양관서회
강양관에서 회포를 적다.
次朴季直樅茂韻 차박계직종무운
박계직 종무 운에 차운하다.
憤世吟 분세음
세상을 개탄하며 읊다.
述懐贈朴上舎樅茂 술회증박상사종무
심정을 서술하여 박상사 종무에게 주다.
自勉 자면
스스로를 경계하다.
詠蘇武 영소무
소무를 읊다.
文山先生遺像 문산선생유상
문산 선생의 초상을 보고.
詠懐 영회
회포를 읊다.
飮老 음노
노년을 마시며.
次景虚韻 차경허운
아우 경허의 운에 차운하다.
福堂 복당
복된 집.
次徳美韻 차덕미운
덕미의 운에 차운하다.
寄舎弟景虚 기사제경허
아우 경허에게.
述懐呈成秀才夏康 술회정성수재하강
성수재 하강에게 마음을 술회하여 드림.
自歎 자탄
스스로 탄식하다.
辛未九月移配端川到黄樹院作 신미구월이배단천도황수원작
신미년 9월 단천으로 이배되어 황수원에 이르러 짓다.
次李僉使弘明亭舎韻 차이첨사홍명정사운
첨사 이홍명의 정사 운에 차운하다.
賦 부
亞鷄賦 아계부
벙어리 닭을 두고 짓다.
書 서
答朴季直書 답박계직서
박계직에게 답하는 편지
答朴季直書 답박계직서
박계직에게 답하는 편지
䟽 소
辤司諫院司諫䟽 사사간원사간소
사간원 사간을 사직하는 상소
箋 전
大明皇子誕生賀箋 代作 대명황자탄생하전 대작
명나라 황자 탄생의 상서로운 징조와 온 나라의 기쁨. 대신 지은 글
正朝賀箋 代作 정조하전 대작
새해 아침의 상서로운 풍경. 대신 지은 글
追崇賀箋 代作 추숭하전 대작
추숭하례 전문. 대신 지은 글
祝祭文 축제문
西川祈雨文 金泉時 서천기우문 김천시
서천에서 비를 기원하며 김천 재임시
北山祈雨文 金泉時 북산기우문 김천시
북산 산신에게 비를 기원하며 김천 재임시
祭外舅鶴巌朴公廷璠文 제외구학암박공정번문
장인 학암 박공 정번에게 올리는. 제문
傳 전
堠人傳 후인전
길을 지키는 사람. 전기
雜著 잡저
自叙寄舎弟 자서기사제
나의 속마음을 스스로 정리하여 아우에게 보내는 글
銘 명
江舍銘 강사명
강가의 집에 붙이는 명
卷之二 권지이
附錄 부록
與諫長書畧 여간장서략
사간원 장에게 보내는 서략
後識 후지
贈遺 증유
端川返櫬時日記 단천반츤시일기
家狀 가장
行狀 행장
墓碣銘 後識 묘갈명 후지
墓誌銘 後叙 묘지명 후서
實錄 실록
䟦 발
洛厓遺集巻之一낙애유집권지일
詩시
歲戊戌避兵于加恩縣己亥還龍潭改搆别墅而萱闈逺隔榮川因詠所懷세무술피병우가은현기해환용담개구별서이훤위원격영천인영소회。무술년에 가은현으로 피란하고 기해년에 용담으로 돌아와 별서를 다시 짓고 어머님이 영천(영주)에 멀리 계시니 이에 회포를 읊다.
湖海塵初靜 호해진초정,
호해의 티끌이 이제야 겨우 가라앉고,山南起敝廬 산남기폐려。
산 남쪽에 초라한 집을 다시 세웠네.隆中諸葛寓 융중제갈우,
융중의 제갈량처럼 이곳에 우거하고,劍外杜陵居 검외두릉거。
검각 밖 두릉의 두보처럼 살고 있구나.八望雲千里 팔망운천리,
여덟 번바라보아도 구름은 천 리요,搔心雁一書 소심안일서。
근심 어린 마음, 기러기한 통의 편지.蒼茫歲又暮 창망세우모,
해는 저물고 세월은 또 저무는데,何日返吾閭 하일반오려。
어느 날이나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랴.
※ 전란 이후의 재건 은일의 자의식, 고사적 자존, 모친에 대한 효심, 이 한 수안에 응축 되어있다. 특히 제갈량·두보를 끌어오되 과장되지 않고, 마지막을“하일何日”의 미완으로 맺은 점이 좋다. 격조는 담담하나 속정은 깊다. 난후 사대부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述懐술회。회포를 서술하다.
洛江江北魯山南 낙강강북노산남,
낙강 북쪽, 노산 남쪽,
一劍行裝數間庵 일검행장삭간암。
한 자루 칼, 행장, 몇 칸 암자.荊樹有花餘慶遠 형수유화여경원,
가시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선대의 복이 멀리 미치고,
萱闈無恙聖恩覃 훤위무양성은담。
어머님께서 평안하시니 성은이 두루하다.黃雲遍野近重九 황운편야근중구,
누런 곡식이 들판을 덮고 중양절이 가까워 온다,白酒滿甕成月三 백주만옹성월삼。
흰 술이 항아리에 가득하여 석 달은 넉넉하구나.
富貴倘來安可慕 부귀당래안가모,
부귀가 갑자기 찾아온들 어찌 부러워하겠는가?
吾心不負是真男 오심불부시진남。
내 마음 저버리지 않으니 이것이 참된 사내다.
※ 공간 자립 (검과 암자) 가문·효·왕은 부귀 초탈과 자존 앞선 작품이 그리움의 시였다면 이 작품은 자기 확립의 시다. 정서보다 의지가 앞선다. 감상보다 결단이 선다. 난세를 건넌 뒤, 비로소 자기 마음을 지키는 남아의 선언이다.
憶庭闈억정위。 어버이를 그리며.
己酉秋余以金泉察訪迎侯巡使于茂溪驛詠懷기유추여이김천찰방영후순사우무계역영회。 기유년 가을, 내가 김천 찰방으로서 순사를 무계역에서 맞이하고 회포를 읊다.
具慶堂前秋又暮 구경당전추우모,
부모 계신 집 앞에는 가을이 또 저무는데,天涯遊子思何窮 천애유자사하궁。
천애의 나그네, 그리움은 어찌 다하랴.終宵無夢茂溪雨 종소무몽무계우,
밤에는 꿈도 없이 비를 맞고,盡日披簑洛水風 진일피사낙수풍。
하루 종일 도롱이 입고 낙수의 바람을 맞는다.歲晏郵亭人未去 세안우정인미거,
세안이 되어도 역관을 떠나지 못하고,雁稀荊浦信難通 안희형포신난통。
기러기 드문 형포에는 소식조차 막히었네.殘年驛頭成白鬢 잔년역두성백빈,
역에서 세월을 보내는 사이 머리는 희어 가고,時對青山面暈紅 시대청산면훈홍。
가끔 푸른 산을 대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① 효심 — 구경당具慶堂 ② 객지 고단함 — 우雨·풍風·우정郵亭 ③ 노쇠 자각 + 울분 — 성백빈成白鬢 / 면운홍面暈紅 특히 마지막 두 구는 매우 인상적이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몸’에 대한 도덕적 자책이 내면에 깔려 있다. 머리는 희어 가고 얼굴은 붉어진다 → 세월 앞의 무력감 + 부모를 향한 부끄러움 + 직무에 묶인 현실. 역정驛亭의 비바람 속에서, 효심은 더욱 깊어지고 세월은 머리에 내려앉는다.
次金陵倅黃一之韻차금릉졸황일지운。금릉태수 황일지의 시에 차운하다.
五馬臨南郡 오마림남군,
오마가 남군에 임하니,三春頌太平 삼촌송태평。
온 봄날이 태평을 노래하도다.郵亭今戶醉 우정금호취,
우정의 문 앞에서 지금은 취하였으나,京洛昔年情 경락석년정。
서울(京洛)에서의 옛 정이 떠오르는구나.世事浮雲幻 세사부운환,
세상일은 뜬구름처럼 덧없고,交情末路成 교정말로성。
벗의 정은 길이 다한 뒤에야 더욱 굳어지네.男兒心寸鐵 남아심촌철,
사내의 마음은 한 치 쇠와 같으니,莫負歲寒盟 막부세한맹。
세한의 맹약을 저버리지 말지어다.
※ 감성 철학으로, 우정에서 절의로 상승한다. 앞선 효심 시들과 달리 이 작품은 의기義氣의 시다. 세상은 뜬구름이라도, 세한의 맹약은 쇠처럼 지키라.
題鳥嶺站舍제조령참사。조령참사에서 제하다.
天險由來不可攀 천험유래불가반,
하늘이 만든 험한 요새는 본래 오르기 어렵고,南荒橫截是險關 남황횡절시험관。
남쪽 오랑캐를 가로막는 이곳이 요해의 관문이다.
如何漢將無長策 여하한장무장책,
어찌하여 한나라(조선) 장수는 멀리 내다보는 계책이 없어,坐使島夷任往還 좌사도이임왕환。
앉아서 섬 오랑캐로 하여금 마음대로 오가게 하였는가.
※ 화자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양란에 의병으로 활동 하였다. 조령의 지세가 왜적을 섬멸 할 수 있는 요새지만 계책이 없어 왜적이 무혈로 통과하여 한양으로 진격하니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하는 수모와 국가의 존폐가 위태로웠던 것을 상기하며 울분을 토로하였다. 당시 조선의 명장 신립(1546-1592) 장군이 조령을 방어하라는 명을 받고 내려왔으나, 조령의 험준한 지형을 활용하자는 부하들의 건의를 물리치고 평지인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천혜의 요새였던 문경새재는 왜군에게 허무하게 내주게 되었습니다.
화자가 안타까워 울분을 토로한 조령에서 왜적을 막지 않고 1591년 4월 28일 탄금대 전투 상황은 이러하다.
김여물 등이 아군의 수가 열세임을 들어 지형이 험한 조령에서 잠복, 전투를 벌일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신립은 아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병의 활용을 극구 주장하여 군대를 돌려 충주성 서북 4㎞ 지점에 있는 탄금대彈琴臺에 나아가 배수진을 치고 임전태세에 들어갔다.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적과 맞섰으나 중과부적으로 포위되어 참패를 당하자 남한강에 투신, 순절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즉 이 시는 공간 인식(요충지)·전략 인식(장책長策)·국가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어조는 직설적이며, 강경하고 비판적이다. 천험의 관문을 두고도 계책이 없음을 탄식한, 난세 지식인의 울분이다. 효의 시인이면서 동시에 현실을 날카롭게 보는 인물임이 분명하다.
임진왜란 전후의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다.
重陽前一日留星奇驛詠懷중양전일일유성기역영회。 중양절하루 전 성기역에 머물며 회포를 읊다.
淸山風雨近重陽 청산풍우근중양,
맑은 산에 비바람이 지나 중양이 가까워 오고,庭樹生凉菊又黄 정수생양국우황。
뜰나무에 서늘함 일고 국화다시 노란데.比日郵亭多少思 비일우정다소사,
요즈음 우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가,
萱闈入望路渺茫 훤위입망로묘망。
어머니계신 곳 바라보면 길은 아득히 망망하다.
※ 중양重陽을 앞두고 국화는 피었으나, 어머니께 이르는 길은 안개 속에 있다. 마지막을 추상적 공간 이미지로 맺음 → 여운 이 절구는 크지 않으나 효심 시편 중에서도 가장 맑은 편이다.
聞春坊諸僚會話余在旅邸後日入直見諸作次韻문춘방제요회화여재여저후일입직견제작차운。춘방여러 동료들이 모여 이야기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여관에 있다가 훗날 입직하여 그들의 작품을 보고 차운하다.
聞說春坊會夜深 문설춘방회야심,
듣자하니 춘방에서 밤늦도록 모임이 있었다는데,一堂樽酒共論心 일당준주공논심。
한 방에 모여 술잔을 나누며 함께 마음을 논했다지.疏慵臥病城南畔 소용와병성남반,
나는 성 남쪽에서 병들어 게으르게 누워 있으니,展對清詩強和吟 전대청시강화음。
맑은 시를 펼쳐 마주하며 억지로 화답해 읊는다.
風輕日暖小園深 풍경일난소원심,
바람은 가볍고 날은 따뜻하여 작은 동산이 그윽한데,花落黃昏客惱心 화낙황혼객뇌심。
황혼에 꽃은 지고 나그네의 마음은 시름에 잠긴다.入望鄕山雲外碧 입망향산운외벽,
고향 산을 바라보니 구름 밖에 푸르게 아득하고,倚樓空費仲宣吟 의루공비중선음。
누각에 기대어 공연히 중선의 읊음을 허비하노라.
末路相知托契深 말로상지탁계심,
인생의 끝자락에서 서로 알아주니 맹약이 깊고,生憎浮世面輸心 생증부세면수심。
속된 세상에는 얼굴빛에 마음을 내어 보이기 싫다.禁園花繁春如海 금원화번춘여해,
금원에 꽃이 피어 봄기운이 바다처럼 넘실대니,安得清樽共醉吟 안득청준공취음。
어찌하면 맑은 술통 마주하고 함께 취해 시를 읊을 수 있으랴.
一盞殘燈客夜深 일잔잔등객야심,
한 점 남은 등불아래 객지의 밤은 깊고,
柳風花雨故心翻 유풍화우고심번。
버들바람 꽃비에 옛 정이 뒤척인다.
鑾坡賴有知音在 란파뢰유지음재,
다행히 란파에 나를 알아주는 벗이 있어,
時寄瓊琚慰苦吟 시기경거위고음。
때로 옥 같은 시를 보내 내 쓸쓸한 읊조림을 위로해 준다.
※ 객지의 남은 등불 아래, 지음知音의 시 한 수가 옥처럼 빛난다. 특히“지음知音”과“경거瓊琚”의 조합은 시문 교유를 통한 정신적 연대가 잘 드러난다.
次甘文倅姜君永錫韻차감문졸강군영석운。감문현감 강군 영석의 시에 차운하다.
五載郵亭食 오재우정식,
오 년 동안 우정郵亭에서 녹을 먹고 있으니,天涯未去人 천애미거인。
하늘 끝 같은 이곳을 떠나지 못한 몸.傷心又歲暮 상심우세모,
마음 아프게도 또 한 해가 저물고,華鬢髮邊新 화빈발변신。
귀밑머리에 흰 머리만 새로 돋는다.
過星山呈牧伯趙希輔과성산정목백조희보。성산을 지나며 목사 조희보에게 올리다.
三月京山府 삼월경산부,
삼월의 경산부,
煙花滿一城 연화만일성。
안개와 꽃이 온 성에 가득하고.笙歌何處起 생가하처기,
풍악 소리는 어디서 울려 나오는가,
文物比時成 문물비시성。
문물의 성함이 이 시대에 비할 만하구나.惱客山雲艶 뇌객산운염,
나그네 마음을 어지럽히는 산 구름은 곱고,
藏烏柳條輕 장오유조경。
까마귀 숨기는 버들가지는 가볍게 흔들린다.
還忘歸路遠 환망귀로원,
돌아갈 길 먼 줄도 잊고,
橋外暫停行 교외잠정행。
다리 밖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九月以天將支送到咸陽因以巡使迎侯向武溪宿勸賓驛偶吟구월이천장지송도함양인이순사영후향무계숙권빈역우음。9월에 천장을 호송하여 함양에 이르고, 순사를 맞이하기 위해 무계로 가서 권빈역에 묵으며 우연히 읊다.
一出車塵路 일출차진로,
한 번 수레 먼지 길에 나선 뒤,
年華己五秋 년화기오추。
세월이 이미 다섯 번이나 바뀌었네.幾從荒店宿 기종황점숙,
몇 번이나 황량한 주막에서 묵었고,
又向洛江行 우향낙강행。
또 다시 낙강을 향해 간다.衣薄驚秋氣 의박경추기,
옷이 얇아가을 기운에 놀라고,
官寒覺世情 관한각세정。
관직의 냉랭함 속에서 세상 인정을 깨닫는다.勞勞成底事 로로성저사,
이렇게 바삐 다닌들 무슨 일이 되랴,
羸馬厭宵征 리마염소정。
여윈 말도 밤길 가기를 싫어하네.
※ 이 시의 강점은 추상적 불만이 아니라 구체적 이미지(황점荒店, 의박衣薄, 영마嬴馬)로 감정을 형상화한 점이다. 특히 관한각세정官寒覺世情 이 한 구는 인상적인 구절이다. 가을 기운은 옷을 스치고, 세상의 냉기는 관직을 스친다.
詠懷영회。마음 속 생각을 노래하다.
南去北來人自老 남거북래인자로,
남으로 갔다 북으로 오니 사람은 저절로 늙고,花開葉落歲更殘 화개섭락세갱잔。
꽃은 피고 잎은 지며 해는 또 저문다.勞勞迎送車塵裏 로로영송차진리,
분주히 맞이하고 보내기를 수레 먼지 속에서 하노라,誰識迂儒世味寒 수식우유세미한。
누가 알겠는가, 우활한 선비의 세상맛이 차갑다는 것을.
過清溪洞과청계동。 청계동을 지나며.
楓落楚江天 풍낙초강천,
단풍이 지는 초강楚江의 하늘,煙霞山日夕 연하산일석。
연기와 노을 감도는 산의 저녁.幽人何處宿 유인하처숙,
그윽한 사람은 어디에 묵고 있을까?晩雲尋無跡 만운심무적。
저녁 구름 속, 찾아도 자취가 없다.
憶억 洛厓江舍낙애강사 二首이수。낙동강 언덕 위의 강가 집을 그리워하다.
[첫 번째 수]
数椽茅舎洛江潯 수연모사낙강심,낙동강 물가에 서까래 몇 개뿐인 초라한 내 집,五載虚川夢幾尋 오재허천몽기심。5년 동안 헛되이 꿈속에서나 몇 번을 찾아갔던가.想得花殘鶯己老 상득화잔앵기로,생각건대 꽃은 지고 꾀꼬리는 이미 늙었겠지만,巌邊幽竹保清隂 암변유죽보청음。바위 곁 그윽한 대나무는 여전히 맑은 그늘을 지키고 있겠지.
[두 번째 수]
洛厓東畔晚波生 낙애동반만파생,낙동강 언덕 동쪽 가에는 저녁 물결이 일렁이는데,魂夢依依到舊𠅘 혼몽의의도구정。내 넋과 꿈은 아른아른 옛 정자(집)에 가 닿네.客枕愁多刀斗𥚃 객침수다도두리,나그네 잠자리, 군대(진중)의 군호 소리에 근심만 깊은데,半城凉月照牎明 반성량월조창명。성곽에 걸린 차가운 반달만이 창을 밝게 비추는구나.
※“화잔앵로花殘鶯老”와“반성량월半城涼月”의 대비가 아름답다.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외로움이 자연 풍경과 함께 그려지고 있어. 이 작품도 단순 강호시가 아니라 정치적 좌절 이후의 내면 고백시로 읽히는 작품. 특히“도두刀斗”가 등장하는 점은 당시 긴장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敬次경차 李政承이정승 稷직 韻운。차운하여 이정승 직의 운에 공경히 화답하다.
李政承乃余外七代祖文景公이정승내여외칠대조문경공。鄕居遺址在洛江濱松谷村향거유지재낙강빈송곡촌。余卜築于洛厓여복축우낙애,距松谷纔數里거송곡재삭리。每登覽而感想매등람이감상,幸其偶近先祖遺墟矣행기우근선조유허의。一日偶得文景題詩일일우득문경제시,奉讀再三독재삼,敬次其韻경차기운。이정승 직 주석1)은 나의 외칠대조 문경공이다.주석2) 그의 향거 유적은 낙동강 가의 송곡촌 주석3)에 있다. 나는 낙애에 주석4)터를 잡았는데, 송곡과는 불과 몇 리 거리이다. 매번 올라 바라볼 때마다 감회가 일어나니, 다행히도 선조의 옛 터와 가까이 살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문경공의 제시題詩를 얻어 삼가 두세 번 읽고, 공경히 그 운을 따라 지었다.
冷跡危濱絶漠間 냉적위빈절막간,
차가운 자취, 위태로운 강가, 아득히 끊긴 모래벌 사이에 있고,羈魂長繞洛江灣 기혼장요낙강만。
떠도는 혼은 오래도록 낙동강 굽이를 맴도네.吟來遺衆還多感 음래유중환다감,
시를 읊으며 옛 자취를 더듬으니 다시금 감회 많아지고,松谷風烟怳拜顔 송곡풍연황배안。
송곡의 바람과 안개 속에 문득 그 얼굴을 뵙는 듯하네.
※ 이 작품은 단순한 차운시가 아니라 선조 유허를 마주한 정신적 귀향시. 가문 의식과 자아 정체성의 시다. 앞선「억낙애강사憶洛厓江舍」가 자기 거처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이 시는 선조를 향한 정신적 회귀다.
1) 이직李稷: 조선 전기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시호 문경이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우정虞庭, 호는 형재亨齋. 증조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李兆年이고, 할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이포李褒이며, 아버지는 문하평리門下評理 이인민李仁敏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외칠대조 문경공: 화자의 종고조 할머니 성주이씨 증조부다. 즉 고조부 오석복의 아우 오경복의 배우자가 성주이씨 이직의 증손녀다. 6대조 숙천도호부사 경기수사 충청병마사 오엄과 교유하면서 손자·손녀의 혼인이 이루어졌고, 오엄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亂에 반대하여 단종 양위 후 충청도 옥천으로 은거하였다. 이후 성주이씨 후손들도 옥천으로 이거하였다.
출처: 『고창오씨세보』·경암집(오여벌)『육대조고숙천공유사六代祖考肅川公遺事』「자경퇴거옥천自京退去沃川 구소재構小齋 爲終老之計 인칭동정자야爲終老之計 인칭동정자야人稱東亭子也 한양(서울)으로부터 옥천沃川으로 물러가 살며 작은 집(서재)을 지어 평생을 마칠 계획을 세우니, 사람들이 그를 ‘동정자(동쪽 정자의 주인)’라고 불렀다.」 출처 - 고창오씨高敞吳氏 옥천沃川 입향조入鄕祖 오엄吳淹과 동정자東亭子 유래由來 - 저자 오홍재
3) 송곡촌: 경북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松谷里. 출처: 고령군
4) 낙애: 화자는 낙동강 가 언덕에‘강사’를 지어 스스로 호를 ‘낙애’라 하였다. 위 시에“이직의 유허가 낙동강 가 송곡촌 화자는 낙동강 가 언덕에 터를 잡았고 불과 몇 리라고 하였다.”송곡과 우곡은 낙동강으로 이어져 있고 거리 또한 몇 리다. 필자는 즉 “낙애강사”는 고령군 우곡면 도진에 건립 된 것이 유력하다고 판단한다.
入直玉堂次趙裕善而淑韻입직옥당차조유선이숙운。옥당에서 밤을 지새우며조유선의 시에 답하다.
三月秦京花滿城 삼월진경화만성,
삼월이라 한양 도성 안에는 꽃이 가득 피어 있는데,東風疏雨客多情 동풍소우객다정。
봄바람에 흩뿌리는 가랑비는 나그네의 시름(정)을 깊게 하네.一年芳草來還去 일년방초래환거,
한 해의 꽃다운 풀들은 왔다가 또 그렇게 가버리는데,鄕夢徒勞雲樹程 향몽도로운수정。
고향 가는 꿈은 구름과 나무 사이 먼 길을 헛되이 오가네.
※ 이 시는 화려한 서울의 봄꽃(화만성花滿城)과 대비되는 나그네의 쓸쓸함(객다정客多情), 그리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방초芳草) 속에서 결국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향몽鄕夢)을 노래하고 있다. 옥당이라는 화려한 관직에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고향 강가 집을 그리워하던 화자의 선비다운 면모가 잘 드러난다.
洛厓詠懷낙애영회。 낙애에서 회포를 읊다.
病起南湖上 병기남호상,
병을 이겨 남쪽 호수에 나아가니,金風火已流 금풍화이유。
금풍(가을바람)이 이미 흐르고.蟬輝清覆骨 선휘청복골,
매미의 맑은 울림 뼛속까지 사무치고,瀣氣冷侵頭 해기랭침두。
이슬 기운 서늘히 머리를 적시네.四海干戈在 사해간과재,
사해에 아직도 창과 방패그치지 않고,三年進退憂 삼년진퇴우。
삼 년을 나아감과 물러남 사이에서 근심하였도다.孤臣霜鬢白 고신상빈백,
외로운 신하서리 같은 귀밑머리 희어지니,天末獨憑樓 천말독빙루。
하늘 끝 누각에 홀로 기대 서 있노라.
※ 5구절:“사해간과재四海干戈在”의 실감성 따라서 사해간과재四海干戈在는 관용적 수사가 아니라 화자의 과거 체험 나라의 붕괴(임진 정유재란)을 직접 목격한 기억과 개인사와 직결된 사건을 함축한 구절이다. 즉, 전쟁은 화자의 인생 경로를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入直玉堂입직옥당 二首이수。 옥당에 입직하며. 두 수
[첫 번째 수]
東風無計破愁城 동풍무계파수성,
동풍이 불어도 시름의 성은 깨지지 않고,青瑣春光惱客情 청쇄춘광뇌객정。
궁중의 봄빛은 객의 정을 더욱 괴롭히네.獨倚西樓勞遠望 독의서루로원망,
홀로 서루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니,微茫煙樹隔鄕程 미망연수격향정。
아득한 안개 속 나무들, 고향 가는 길을 가리웠도다.
[두 번째 수]
一園疏雨晚來晴 일원소우만래청,
한 동산에 가랑비 그치고 저녁에 개니,簾外幽花照眼明 염외유화조안명。
발 밖 그윽한 꽃빛 눈을 밝히네.徙倚畫欄春晝靜 사의화난춘주정,
난간을 거닐며 기대니 봄 낮은 고요하고,隔林時聽苑禽聲 격림시청원금성。
숲 너머로 때때로 궁중 새소리 들린다.
※ 첫 수는 내면 중심, 둘째 수는 외부 정경 중심. 그러나 두 수 모두 ‘의倚(의지하다)’의 동작이 반복된다. 몸은 궁궐에 의지하고 있지만마음은 고향에 의지하고 있다. 옥당의 봄은 밝으나, 그 마음의 성城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景虛赴青松경허부청송。 경허가 청송으로 부임하니.
一別庭闈下 일별정위하,
부모슬하를 한 번 떠난 뒤,
經冬又送春 경동우송춘。
몇 번의 겨울을 지나 또 봄을 보내었네.
鄕人應笑我 향인응소아,
고향 사람들은 아마 나를웃을 것이다,
乾没老風塵 건몰로풍진。
풍진 속에서 헛되이 늙어간다고.
※ 동생은 길을 떠나는데, 형은 풍진 속에서 스스로의 늙음을 먼저 돌아본다.
八溪倅安璹伻書遺雙鯉以詩謝之팔계졸안숙팽서유쌍리이시사지。팔계현감 안숙이 사자를 보내 편지와 함께 예물을 보내왔기에 시로써 답하다.
故人心契厚 고인심결후,
오랜 벗의 마음 맺음이 두터워,
遺我雙鯉魚 유아쌍리어。
두 마리 잉어를 보내왔네.
呼童使之前 호동사지전,
아이를 불러 사자를 앞으로 오게 하니,
中有一尺書 중유일척서。
그 속에 한 자 길이의 편지가 들어 있네.
展對宛清範 전대완청범,
펼쳐 마주하니 완연히 맑은 풍모요,
交情知不踈 교정지불소。
우리의 교정이 성글지 않음을 알겠네.
相思閱幾蓂 상사열기명,
그리움 속에 몇 번이나 달이 바뀌었는지,
芳草生庭除 방초생정제。
뜰에는 향기로운 풀이 자라났네.
青杉困吾子 청삼곤오자,
푸른 산 고을에서 그대는 수고롭고,
紅塵非我居 홍진비아거。
붉은 먼지 세상은 나의 거처가 아니네.
相知貴知心 상지귀지심,
벗을 사귐은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귀하고,
世道浮雲如 세도부운여。
세상일은 뜬구름과 같네.
溪漲絶塵蹤 계창절진종,
시냇물 불어 속세 발자취 끊기고,
松關掩草廬 송관엄초려。
솔문 닫힌 초가집에 묻혀 있네.
一麾臨廾四 일휘임공사,
한 번 부임하여 고을을 다스리고,
五馬光生閭 오마광생려。
오마의 위세가 마을에 빛나네.
題洛厓江舎제낙애강사。낙동강 언덕 강가의 집에서 제하다. 주석 1)
壬戌冬率家累移寓江舍有召命而未赴作九以敍懷임술동솔가루이우강사유소명이미부작구이서회。임술년겨울 가족을 거느리고 옮겨 살다 조정의 부름이 있었으나 나아가지 아니하고아홉 수를 지어 회포를 서술하다.
尋眞占得别一區 심진점득별일구,
참된 곳을 찾아 별천지에 왔으니,
象外烟霞隔塵土 상외연하격진토。주석 2)
형상밖의 안개와 노을이 속세를 막아주네.
懸崖截出俯碧潯 현애절출부벽심,
절벽이 끊어져 푸른 물굽이를 굽어보고,
草廬三椽庇風雨 초려삼연비풍우。
세 칸 초가가 비바람을 가려주네.
功名都付已破甑 공명도부이파증, 주석 3)
공명은 이미 깨진 시루처럼 내버려두었고,
白鷗伴眼窮朝暮 백구반안궁조모。주석 4)
흰 갈매기와 더불어 아침저녁을 보내네.
芒鞋竹杖春草邊 망혜죽장춘초변,
짚신에 대지팡이 짚고 봄 풀가를 거닐고,
短棹烟波秋雨後 단도연파추우후。
짧은 노 저어 가을비 뒤 물결을 건너네.
顔瓢一味足生涯 안표일미족생애,
안회의 표주박처럼 한 가지 맛으로 삶이 족하고,
衣輕乘肥非我取 의경승비비아취。주석 5)
가벼운 옷, 살찐 말 타는 부귀는 내가 취할 바 아니네.
年來世事不入耳 년래세사불입이,
근래 세상일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掉頭風塵成白首 도두풍진성백수。
풍진 속 고개 돌리다 보니 백발이 되었네.
論思豈合庸瑣流 논사개합용쇄류,
조정에서 논사하던 사람이 어찌 용속한 무리에 합하랴,
石室嵯峨任潦倒 석실차아임료도。
높은 석실에 맡긴 채빈궁함을 달게 받네.
二憂那免范子懷 이우나면범자회,
두 가지 근심은 범중엄의 마음을 어찌 면하랴,
一竿終作江湖老 일간종작강호노。
한 낚싯대 들고 강호의 늙은이가 되리라.
噫噓嘻人間萬事已可知 희허희인간만사이가지, 주석 6)
아아, 인간 만사는 이미 알았으니,
天放優游從所好 천방우유종소호。주석 7)
하늘이 놓아준 대로 순수한 바를 좇아 유유히 살겠다.
화자의 삶과 시의 맥락. 주석 1). 2). 3). 4). 5). 6). 7).
1)‘낙애洛厓’: 화자의 호로, 낙동강 절벽 근처에 집을 짓고 스스로를 ‘낙동강가의 외로운 선비’로 자처했다.
2)‘노장老壯적 색채의 실체’: 시 속의 “심진(尋眞, 진리를 찾음)”“상외(象外, 형체 너머의 세계)”“연하(烟霞, 안개와 노을)” 등의 표현은 전형적인 도가(노장)적 탈속 경계를 보여준다.
3)‘파증破甑’의 결단: “공명은 이미 깨진 시루(파증)에 맡겼다”는 선언은, 당시 북인 정권 아래에서의 관직 생활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덧없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4)“백구반안궁조모白鷗伴眼窮朝暮”아침저녁을 갈매기와 다하겠다 는 것은 단순히 좋아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담았던 세계(북인 정권)가 끝났다 는 사실을 받아들인 자의 고독한 선택이다.
5)“의경승비衣輕乘肥”: 옷은 가볍고 말은 살찐 것은 내가 취할 바가 아니다 라고 한 구절이 유배지에서의 고초와 대비되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6)“이허희인간만사기가지噫噓嘻人間萬事己可知”예언적 탄식: 시의 마지막 탄식은 단순히 감탄사가 아니라 절망의 비명에 가깝다. 이 구절은 곧 닥쳐올 피바람(반정)을 암시한다. 자신의 스승이자 인척인 정인홍 일가가 겪게 될 참혹한 운명을 예견한 대목이라 볼 수 있다.
7)“천방우유天放優游”: 하늘이 놓아준 대로 노닐겠다는 선언은,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운명론적 체념’을 뜻한다.
유유자적(우유優游)을 꿈꿨으나, 시대의 풍랑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던 셈이다.
화자에게 이 시는 퇴로를 차단한 ‘정치적 유서’와도 같다. 대북의 몰락을 예견하면서도 그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았기에, 노장老長의 무위를 빌려 마음을 비우려 애쓴 것이다. 결국 이듬해 반정으로 갑산 유배를 가게 된 것은 그가 예감했던 ‘천명天命’의 현실화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