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년의 비극
화자는 1622년(임술년)에 부응교라는 관직에 임명되었으나,“이미 속세와 거리를 둔 선언을 하듯”세속의 영달을 버리고 강사江舎로 숨어들며 이 시를 지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1623년 계해정변(인조반정) 직후, 광해군 시절의 관직 이력이나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갑산甲山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挽金鐵原 立만김철원 립。 철원 김립을 애도하다.
化屋交相厚 화옥교상후,
교유한 세월이 두터웠고,
通家契又深 통가결우심。
두 집안의정의 또한 깊었네.
高風賢者後 고풍현자후,
높은 풍모는 어진 이의 후예답고,
惠政齊民欽 혜정제민흠。
은혜로운 정사는 온 백성이 흠모했네.
凖擬仁人壽 凖의인인수,
어진 사람은 오래 살리라 여겼는데,
那知二竪侵 나지이수침。
어찌 알았으랴, 병마가침노할 줄을.
山陽一掬淚 산양일국루,
산양에서 한 움큼 눈물을 쥐고,
沾灑倍傷心 첨쇄배상심。
눈물 흘리니 더욱 마음 아프구나.
※ 덕과 정치를 함께 기린 뒤, 병마의 무정함 앞에서 한 움큼 눈물로 마감한 단정한 만시.
挽朴參判而章만박참판이장。참판 박이장을 애도하다.
幸接芳隣警誨承 행접방린경회승,
향기로운 이웃으로서 경계와 가르침을 받았고,
龍門當日幾番登 용문당일기번등。
그날 용문에 몇 차례나 올랐던가.
遺安清德傳家世 유안청덕전가세,
남긴 편안하고 맑은 덕은 집안 대대로 전해지고,
醫俗嘉猷在國乘 의속가유재국승。
세속을 고친 아름다운 계책은 국사에 실릴 만 하네.
蘭玉槐庭餘慶遠 난옥괴정여경원,
훌륭한 자손이 조정에 서니 남은 경사가 멀리 이어지고,
貂蟬耀後聖恩弘 초선요후성은홍。
공경의 관복이 빛나니 성은이 크도다.
騎箕一夕天文晦 기기일석천문회,
기미를 타고 간 듯 하루아침에 별이 어두워지니,
和淚題詞痛不勝 화루제사통불승。
눈물 섞어 글을 적으니 슬픔을 이기지 못하네.
학맥으로 얽힌 어른을 잃은 날, 공론의 언어 속에 개인의 눈물을 숨긴 만시. 그러나 계해정변(인조반정)에 무고한 자가 박이장 아들 박충구였으니 당시 상황을 알 만하다. 또한 박이장은 부친 오운과 종유하였고 오운 만사를 지었다.
挽金鶴峯夫人만김학봉부인。김학봉부인을 애도하다.
詩禮名門夙作配 시례명문숙작배,
시례로 이름난 명문가에 일찍 배필이 되었고,
宜家宜室位夫人 의가의실위부인。
집안을 잘 다스리는 부인의 자리에 있었네.
幽閑懿範全三德 유한의범전삼덕,
그윽하고 온화한 본보기로 삼덕을 온전히 갖추었고,
貞淑嘉儀式四隣 정숙가의식사린。
곧고 맑은 행실로 사방 이웃의 모범이 되었네.
蘭玉盈庭膺厚福 난옥영정응후복,
훌륭한 자손이 뜰에 가득하니 두터운 복을 누렸고,
鄕閭化善服深仁 향려화선복심인。
마을 사람들까지 그 어진 덕에 감화되었네.
星文一夕淪南極 성문일석륜남극,
별빛 같은 문채가 하루아침에 남극에 떨어지니,
遙慰欒欒孝思純 요위란란효사순。
멀리서 자식들의 애통한 효심을 위로하노라.
※ 학봉선생문집: 오여은吳汝檼: 원주原註에“호는 낙애이고, 죽유 오운의 큰아들이다.”〔원문에는 오여온吳汝穩으로 오자誤字〕
※ 이 작품은 여성 개인의 덕행을 찬양하면서도 실제로는 퇴계 이황–학봉 김성일–죽유 오운, 퇴계 학맥의 도덕적 계보를 기리고 있다. 특히 혼맥(오여벌은 손녀 사위다.) 관계를 고려하면 이 만시는 가문 공동체의 애도문에 가깝다. 학맥과 혼맥으로 이어진 명문의 안주인을 잃고, 가문 전체의 별 하나가 진 것을 슬퍼한 만시.
挽金陵倅權景虎만금릉졸권경호。
금릉수령 권경호를 애도하다.
吾愛金陵丈 오애금릉장,
나는 금릉의 어른을 사랑하였으니,
真淳長者風 진순장자풍。
참으로 순박한 장자의 풍모였네.
持身循軌範 지신순궤범,
몸가짐은 법도를 따랐고,
為政愼疲癃 위정신피륭。
정사에 임해서는 늙고 병든 이를 먼저 살피셨네.
仁壽嗟難必 인수차난필,
어진 이는 오래 산다 하나, 아, 어찌 그것이 반드시 그러하랴.
天心亦不公 천심역불공。
하늘의 뜻 또한 공평하지 않구나.
平生一掬淚 평생일국루,
평생가슴에 고여 있던 한 움큼 눈물,
沾灑倍傷忡 첨쇄배상충。
쏟아도 다 마르지 않아 슬픔만 더욱 깊어지네.
※ 법도를 지킨 장자를 잃고, 하늘의 공평함까지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애도의 만시.
送李埁赴豊基人송이잠부풍기인。
이잠이 풍기로 부임함을 전송하며.
南國文明地 남국문명지,
남국은 예의와 문명이 융성한 땅,
東風五馬行 동풍오마항。
봄바람 속에 오마를 타고 떠나는구나.
異恩光某樹 이은광모수,
특별한 은총이 가문을 빛내고,
榮養享專城 영양향전성。
영광스럽게 부모를 봉양하며 한 고을을 맡았네.
起廢才堪大 기폐재감대,
폐한정사를 일으킬 큰 재능을 지녔고,
蘇癃攻尚平 소륭공상평。
노쇠하고 병든 백성을 소생시킬 정사가 공평하리라.
長亭遙紫闥 장정요자달,
긴 정자에서 멀리 자달을 바라보며,
短律寄難情 단율기난정。
짧은 율시로 다하기 어려운 정을 부친다.
※ 문명 지역 풍기로 떠나는 벗에게, 민생을 일으킬 수령이 되기를 기대하며 보낸 공론적 송별시.
次李譚韻차이담운。이담의 운을 따라 지은 시.
烟樹微茫一望平 연수미망일망평,
안개 낀 수목 아스라히 들판은 한없이 트이고,
滿城春色屬新晴 만성춘색속신청。
봄빛은 온 성에 차 새 하늘에 걸렸네.
東風何處調羌笛 동풍하처조강적,
동풍은 어디서 피리를 부는가,
吹起江南萬里程 취기강남만이정。
그 소리 따라 강남 만 리 길이 열리네.
次徳美移居韻차덕미이거운。덕미가 이사한 곳에 차운하다.
聞道城南有僻村 문도성남유벽촌,
듣자 하니 성 남쪽에 외진마을에,
青山繞屋水圍藩 청산요옥수위번。
산은 집을 안고 물은 울타리을 둘렀다네.
多君畝迹林泉下 다군무적림천하,
그대 발자취 숲과 샘 아래 깊어,
占得天時學灌園 점득천시학관원。
하늘이 준 때를 얻어 밭을 가꾸는구나.
又 또
城西幽閴自成村 성서유격자성촌,
성 서쪽 그윽한 곳 스스로 마을을 이루었네,
車馬無塵樹擁藩 차마무진수옹번。
수레 먼지 끊기고 나무만 울타리가 되니
松菊依然彭澤里 송국의연팽택리,
소나무와 국화는 마치 팽택고을 그대로요,
茂林還似仲長園 무림환사중장원。
무성한 숲은 중장통의 정원과도 같구나.
이 시는 단순한 이사 축시가 아니라, 관직·세속을 벗어난 삶에 대한 찬미 자연 속 학문 수양의 이상 도연명적 귀거래 정신의 계승 을 담은 작품이다. 특히“학관원學灌園”은 벼슬보다 스스로 가꾸는 삶을 택한 선택을 높이 평가한 표현이다.
挽朴鶴巖廷璠만박학암정번。학암 박정번을 애도하다.
命矣斯人也 명의사인야,
아, 이 사람의 명이여,
嗟乎彼蒼哉 차호피창재。
슬프도다 저 푸른 하늘이여!
如何仁不壽 여하인불수,
어찌하여 어진 이는 오래 살지 못하는가?
無乃道將頽 무내도장퇴。
혹 도道가 장차 무너지려는 것인가.
秋月浮來舍 추월부래사,
가을 달빛은 그의 집 위에 떠오르고,
春風舊釣臺 춘풍구조대。
봄바람은 예전 낚시터에 불어오건만.
琴盡誰是主 금진수시주,
거문고는 다하여 이제 누가 그 주인이 되랴,
梅竹總成哀 매죽총성애。
매화와 대나무마저 모두 슬픔이 되었구나.
※ 처 숙부이자 내암 정인홍 문하 선배, 동지들과 함께한 모임의 연장자, 의병 선배의 죽음을 통해 도학과 향촌 질서의 쇠퇴를 걱정한, 지역 사림 공동체의 통곡.
挽金尚坤만김상곤。김상곤을 애도하다.
南金之貴屬吾公 남금지귀속오공,
남쪽의 금과 같이 귀하신 분이 우리 공이시거늘,
今世誰知美價崇 금세수지미가숭。
이 세상 누가 그 높고 아름다운 값을 알아주랴.
麗澤硏工黌舍並 려택연공횡사병,
학문은 서로 연마하며 학당에서 함께하였고,
僑隣論議積年同 교린논의적년동。
이웃하여 지내며 여러 해 의론을 같이 나누었네.
瓌才大擬溟鵾化 괴재대의명곤화,
뛰어난 재주는 큰 바다의 곤붕처럼 날아오를 인물이었건만,
晏景空然櫪驥窮 안경공연력기궁。
만년에는 마구간의 준마처럼 뜻을 다 펴지 못하였도다.
可惜騷壇盟主去 가석소단맹주거,
아아 애석하다 시단의 맹주가 떠나가니,
文星半晦碧霄東 문성반회벽소동。
문운의 별이 동쪽 하늘에서 반쯤 빛을 잃었구나.
※ 이 시는 화자가 교유하던 김상곤의 죽음을 애도한 만시이다.수련은‘남금南金’으로 고인의 인품과 학덕을 비유하고, 세상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음을 탄식한다. 함련은 서원·향교 등에서의 강학과 장기간의 학문적 토론을 회상한다. 경련은 『장자』의 곤·붕과 준마 고사를 원용하여, 재능은 크나 시운이 따르지 못했음을 대비한다. 결구는 고인을‘소단맹주騷壇盟主’라 칭하며 지역 문단의 중심 인물이었음을 밝히고, 그 죽음을‘문성반회文星半晦’로 형상화하여 문운의 쇠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舍季日暮還路사계일모환로。
여러 아우를 두고 날 저물어 돌아오는 길.
嗟嗟諸季別懷托 차차제계별회탁,
아아, 여러 아우와 이별하며 마음을 맡겨 두고,
馬首山河已夕陽 마수산하이석양。
말머리 돌리니산천은 이미 저녁 햇살이로다.
借問前程餘幾里 차문전정여기리,
묻노니, 앞길은 아직 몇 리나 남았는가?
也應童僕俟橋頭 야응동복사교두。
아마도 아이종과 종들이 다리 머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 영주 초곡은 부모·형제 거주·고령 용담은 새로 구축한 별서, 임진왜란 이후 가문이 분산된 상태에서 영주는‘혈연의 공간’고령은‘자신의 정착 공간’따라서 이 시는 단순 귀로시가 아니라 혈연 공간을 떠나 새 정착지로 돌아가는 심리적 이동을 담은 작품이라 볼 수 있다.
導水闢土도수벽토。
물을 끌어들이고 땅을 개간하며.
勤導川流闢陌阡 근도천유벽맥천,
힘써 물길을 이끌어 들여 길과 밭두둑을 새로 열고,
漑根將見足民天 개근장견족민천。
뿌리에 물을 대니 장차 백성의 하늘(생활)이 넉넉해질 것을 보겠네.
倘教季子觀乎此 당교계자관호차,
만약 계자로 하여금이 모습을 보게 한다면,
不必當年願郭田 부필당년원곽전。
굳이 옛날 곽씨의 전답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 이 구절은 향촌 실무 능력을 고대 이상 정치에 비견하고 지역 지도층의 공덕을 성왕의 치적과 나란히 세우며 향촌 자치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향촌의 치수와 개간을 성왕의 이상 농정과 나란히 놓아 찬양한, 지역 자긍심이 강한 송덕적 수사.
獨居독거。 홀로 거처하며.
滯迹僑庄問幾旬 체적교장문기순,
객지의 마을에 자취가 머문 지가 몇 달인지 알지 못하노라,
夢中虛度故園春 몽중허도고원춘。
꿈속에서 덧없이 고향의 봄을 보내었도다.
休言幽寂為心恙 휴언유적위심양,
고독을 두고 마음의 병이라 말하지 말라,
時有山禽故向人 시유산금고향인。
때로는 산중의 새가 일부러 사람을 향하여 오느니라.
※ 타향의 고독을 담담히 토로하면서도, 새들과의 교감으로 스스로를 위로한 은은한 독거시.
題昇巖제승암。승암에 대하여 시를 짓다.
竒石始形九鑄前 기석시형구주전,
기이한 바위는 구주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이미 형상을 갖추었고,
火風嘉號孰先傳 화풍가호숙선전。
화풍의 아름다운 이름은 과연 누가 먼저 전하였던가.
江中若不藏其體 강중약부장기체,
강 가운데 그 몸을 감추지 아니 하였다면,
應遇媧皇也補天 응우왜황야보천。
마땅히 왜(여)황을 만나 하늘을 보수하는 데 쓰였으리라.
※ 승암昇巖은 낙동강 변에 우뚝 솟은 절벽으로, 강물이 병풍처럼 둘러 흐르는 형세를 이루는 곳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강중 암벽은 조선 문인들에게 단순한 경물이 아니라 천지의 기운이 응결된 형상으로 인식되었다.
① 태고적 시간으로의 확대“기석시형구주전奇石始形九鑄前”이 한 구는 승암을 단순한 절벽이 아니라 천지 주조 이전의 존재로 상상하며. 낙동강의 유구한 흐름과 그 가운데 움직이지 않는 암석의 대비가 “태초적 존재감”을 낳았다.
② 신화적 결말“응우왜황야보천應遇媧皇也補天”여기서 승암은 강가의 바위가 아니라 여와가 하늘을 보수할 때 쓸 수 있었을“오색석五色石”의 반열에 오른다. 이 수법은 현실의 바위를 신화적 우주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 즉, 대상의 위격을 격상시키는 제영의 수법이다.③“강중약부장기체江中若不藏其體”승암이 강 가운데 몸을 감추고 있다는 표현은 단순한 경물 묘사일 수도 있으나, 혹시 유배·은거 상황과 겹쳐 보면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재목材木이 쓰이지 못한 큰 돌이라는 자의식이 은연히 스며있을 가능성도 있다.
新蕨신궐。 새로 돋은 고사리.
西山遺草漸看長 서산유초점간장,
서산 들풀도 점점 자라나고,
新味端宜病口甞 신미단의병구상。
새 맛은 참으로 병든 입에 알맞구나.
試使叉鬟言采采 시사차환언채채,
시험 삼아 계집종을 시켜 캐어 오게 하니,
芳菲春色滿傾筐 방비춘색만경광。
봄빛 고운 향초가 기울인 광주리에 가득하도다.
유배 속에서도 봄은 오고, 새 풀은 돋고, 입맛은 되살아난다. 격조는 낮추었으되, 품위는 잃지 않았다.
揭三繩字게삼승자。
세 가지 승繩자를 들어 밝히다.
為學須當祖武繩 위학수당조무승,
학문을 함에는 반드시 선조의 법도를 본받아야 하며,
不宜書肄索胡繩 불의서이삭호승。
글 공부 하면서 어찌 그릇된 법도를 찾겠는가.
專心小技遺工業 전심소기유공업,
하찮은 기예에 마음을 쏟아 본업을 잊고,
虛度居諸罪可繩 허도거제죄가승。
세월을 헛되이 보내면 이는 꾸짖을 만한 죄다.
※ 이 시는 단순한 문자 유희가 아니라,‘승繩’자의 다의성을 통해 학문의 계승, 형식주의 경계, 본령 회복, 도덕적 책임을 단계적으로 제시한 작품이다.
聞捉豹문착표。표범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隱霧磨牙閱幾年 은무마아열기년,
안개 속에 숨어 이빨을 갈며 여러 해를 보냈고,
嚙肥殆盡四方祈 교비태진사방기。
살진 것들을 거의 다 물어 없애니사방에서 잡히기를 빌었네.
南山錦彩堕馮手 남산금채타풍수,
남산의 비단 같은 무늬 사냥꾼 손에 들리니,
美價能求鉅萬錢 미가능구거만전。
아름다운 가죽 값은 거만금을 받을 만하구나.
※ 표범은 단순한 맹수가 아니라 난후亂後 권력을 독점한 세력의 상징으로 판단된다.
은무隱霧: 정치적 음습함 마아磨牙 탐욕 교비嚙肥 이권 독점.
금채錦彩: 겉은 화려함.
거만전鉅萬錢: 권력은 결국 이익으로 환산됨.
마지막 구는 특히 냉소적이다.“미가능구거만전美價能求鉅萬錢”이는 정의실현의 환희라기보다, 권력이 또 다른 이익 구조로 환원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어조에 가깝다.
松陰송음。소나무 그늘。
蒼髥能解制炎蒸 창염능해제염증,
푸른 수염 드리운 소나무는 능히 여름 더위를 누그러뜨리고,
好播清陰不使汗 호파청음불사한。
맑은 그늘을 펼쳐 사람으로 하여금 땀 흘리지 않게 하도다.
論厥豐功功莫尙 논궐풍공공막상,
그 풍성한 공을 논하건대 그보다 높을 것이 없거니와,
肯為榮爵五株伴 긍위영작오주반。
영화로운 벼슬을 마다하고 다섯 그루 벗으로 서 있도다.
移却蒼髥作一傘 이각창염작일산,
그 푸른 수염을 옮겨다 한 자루 우산을 삼는다면,
涼颷永至不憂汗 량표영지불우한。
서늘한 바람길이 이르러 다시는 더위를 근심치 않으리.
日哦清趣憑誰語 일아청취빙수어,
날마다 맑은 취미를 읊노라니 이 뜻을 누구와 더불어 말하랴,
欣對騷人為好伴 흔대소인위호반。
기꺼이 소인을 마주하여 좋은 벗을 삼노라.
※ 화자는 임진왜란기 의병으로 출발하여 관료로 참여하였으나, 조정의 문란 속에서 사직소를 올릴 만큼 도덕적 긴장을 유지한 인물이다. 그는 부친 오운의 교조적 도학이나, 스승 정인홍의 급진적 정치성과는 일정한 거리를 보였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유배를 감수하면서도 의리를 바꾸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실 순응형 관료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그의 시문에 나타나는 절제된 관조와 상징적 표현은 난후 정치에 대한 거리두기이자, 체제 내부에서 명분을 지키려는 태도의 문학적 형상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화자는 은일가나 개혁가라기보다, 참여 속에서 의리를 견지한‘절의 관료형’사림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邦叔送竹筍又作一絶故吟和방숙송죽순우작일절고음화。
친척이 대나무 새순을 보내주어, 나는 또 한 편의 노래로 이에 화답하노라.
雨下淇園潤厥屋 우하기원윤궐옥,
화창한 비가 기원에 내려 내 집의 푸른 새싹들을 적시고,
碧芽方茁月之五 벽아방줄월지오。
봄의 다섯째 달, 새싹이 막 돋아나며.
芳菲春色窮廬及 방비춘색궁려급,
집안 구석구석 향기로운 봄빛이 가득 차올라,
嘉貺深情我自取 가황심정아자취。
깊은 정성과 선물의 마음을 나는 스스로 즐기고 누리노라.
敬次文郎公金先生慶州東閣韻경차문랑공김선생경주동각운。
문랑공 김 선생경주 동각 운에 화답하노라.
雞林甲第擅樓華 계림갑제천루화,
계림의 높은 집이 누각의 화려함을 누리니,
騷客幾登倒紫霞 소객기등도자하。
풍류 시객들 몇 번이나 올라 붉은 노을에 취하였던가.
柳色即春金躍百 유색즉춘금약백,
버들빛은 곧 봄이라 황금빛 물결이 뛰놀고,
月光浮夜燭盈家 월광부야촉영가。
달빛은 밤에 떠올라집안에 등불처럼 가득하네.
水聲亂澈清牕外 수성란철청창외,
맑은 창밖에는 물소리어지럽게 흐르고,山影遙沉暮日斜 산영요침모일사。
멀리 산 그림자는 저녁 해 기울며 잠겨 드네.
為步先生東閣韻 위보선생동각운,
삼가 선생의 동각 시의 운을 따라 지어며,
竚看壁上籠青紗 저간벽상롱청사。
벽 위 청사에 싸인 글을 오래 바라보노라.
※ 이 작품은 경주의 동각東閣을 중심으로 한 풍류 공간의 묘사와 선인의 시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함께 담은 화운시이다.
시의 전반부에서는 경주라는 고도古都의 풍류와 누각의 장관을 그린다.“계림갑제雞林甲第”“도자하倒紫霞”와 같은 표현은 동각에서 바라보는 노을과 누각 풍경의 장엄함을 보여준다. 중간 연에서는 버들빛, 달빛, 물소리, 산 그림자를 배치하여 자연 풍경을 정적인 수묵화처럼 묘사한다. 특히“수성난철청牎외水聲亂澈清牎外/산영요침모일사山影遙沉暮日斜”는 청창 밖의 물소리와 석양 속 산 그림자를 대비시켜 저녁 누각의 고요한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이 두 구는 완전히 당풍唐風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자신의 시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선인의 시에 화답하는 행위임을 밝힌다. 벽 위에 걸린 글을 바라본다는 구절은 선배 문인의 작품을 우러러보는 사림적 존경과 계승 의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시는 단순한 경물시가 아니라 경주의 풍류 공간 + 선인의 문학 전통을 기리는 화운시라는 성격을 지닌다.
俞相哲甫處始時贈别유상철보처시시증별。
유상철 보가 부임하여 처음 자리에 있을 때 이별하며 주다.
今之太守古文翁 금지태수고문옹,
지금의 태수는 옛 선정을 베푼 문옹과 같으니,
儒化旁流屋可封 유화방류옥가봉。
유교의 교화가 사방에 흘러 집집마다 표창할 만하네.
敵慨兵間揚茂績 적개병간양무적,
전쟁중에 적개심으로 큰 공적을 드날렸고,
憂民荒歲濟饘窮 우민황세제전궁。
흉년에 백성을 걱정하여 굶주린 이들을 구제하였네.
刑除秋殺碑喧口 형제추살비훤구,
가혹한 형벌을 없애니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고,
德布春生草偃風 덕포춘생초언풍。
덕이 봄날처럼 퍼지니 백성들이 바람에 풀 눕듯 따르네.
積善從來知有慶 적선종래지유경,
선을 쌓으면 경사가 있음은 예부터 알던 바니,
竚看祥夢恊羆熊 저간상몽협비웅。
장차 비웅의 꿈과 같은 상서로운 일이 있기를 기다려 보노라.
見洞中少年鄕解落魄詩以慰之견동중소년향해낙백시이위지。
동네 소년이 향시에는 합격했으나 실의에 빠진 것을 보고, 시를 지어 그를 위로하다.
大張禮網屬明時 대장예망속명시,
인재를 뽑는 예법의 그물을 크게 펼친 이 밝은 시대를 만났으니,
得失榮枯各有期 득실영고각유기。
얻고 잃음과 번성하고 시드는 것은제각기 때가 있는 법이라네.
莫學韓公清灞涙 막학한공청파루,
한유가 청파에서 흘렸던 눈물을 배우지 말게나,
古人曾詠晩成詩 고인증영만성시。
옛사람들도 일찍이 만성의 시를 읊조리지 않았던가.
※ 이 시는 화자의 따뜻한 성품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공감과 격려: 낙방한 젊은이의 고통을 무시하지 않고, 역사적 인물인 ‘한유’의 사례를 들어“누구나 겪는 과정임”을 상기시킨다.
운명과 노력:‘영고성쇠榮枯盛衰’에는 때가 있다는 유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조급함을 버리고 내실을 다질 것을 권유하고 있다.
贈别金仲植甫증별김중식보。김중식 보를 증별하며.
良友多情扣我門 랑우다정구아문,
좋은 벗 다정히 내 문을 두드리니,
一樽相對細論文 일준상대세논문。
한 동이 술을 마주하고 학문을 자세히 논하였네.
驪駒曲罷西暉暮 여구곡파서휘모,
이별의 노래〈여구곡〉이 끝나고 서녘 햇빛 저무니,
悵離筵不忍分 창이연불인분。
이별 자리 서러워 차마 헤어지지 못하도다.
石室人如玉 석실인여옥,
석실 같은 인품은 옥과 같고
,惟知山水音 유지산수음。
오직 산수의 소리를 아는구나.
清芬照我膽 청분조아담,
그대의 맑은 향기가 나의 마음까지 비추어주니,
塵吝豈萌心 진린개맹심。
티끌같은 인색한 마음이 어찌 내 마음에 싹트겠는가.
※ 김보金甫를 전별하며 지은 작품이다. 술과 문장을 나누는 벗의 정을 먼저 그리고, 이어 송별가〈여구곡〉으로 이별의 정한을 드러냈다. 후반부에서는 벗의 인품을 옥에 비유하여 고결함을 칭송하고, 그 맑은 덕이 자신을 감화하여 속된 욕심이 사라짐을 노래하였다. 전별시이면서도 교유의 도학적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思孫사손。손자를 생각하며.
見舐性牛猶賦慈 견지성우유부자。
새끼를 핥아주는 소의 본성을 보니, 미물조차 자애로움을 타고났구나.
天人豈昧為孫眷 천인기매위손권。
하늘과 사람이 어찌 손자를 향한 이 정을 모르랴.
戀意非持物之愛 연의비지물지애。
그리워하는 마음은 물건을 아끼는 사랑과는 다르니라.
※ 화자는 새끼를 핥아주는 소의 본능적인 자애로움을 보며 깨달았노라.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가 어찌 어긋나겠는가. 내가 지금 손자를 이토록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 또한 억지로 꾸민 것이 아니라, 천성에서 우러나온 지극한 사랑인 것을.
案山層巖안산층암。안산에 겹겹이 쌓여 있는 바위(혹은 절벽)
屹彼層巖雲外浮 흘피층암운외부,
우뚝한 저 층암이 구름 밖에 떠 있는 듯하니,
唐虞舊物獨能留 당우구물독능유。
요순의 옛 기운이 홀로 남아 있는 듯하도다.
峥嶸爾質宜需用 쟁영이질의수용,
높고 험준한 그 자질은 마땅히 크게 쓰일 만한데,
胡棄蝸皇煉補秋 호기와황연보추。
어찌 여와가 하늘을 단련하여 가을 하늘을 보수하던 일을 버리랴.
※ 안산案山의 층암을 노래한 것이다. 층암의 높고 우뚝함을 요순시대의 고풍에 비유하여, 그 기상이 태고의 정기를 간직하고 있음을 형상화하였다. 후구에서는 여와가 하늘을 보수한 고사를 들어, 이러한 바위는 마땅히 천지를 보필할 큰 쓰임이 있어야 함을 암시하였다. 자연물을 통하여 인물의 재질과 포부를 비유한 작품으로 보인다.
成橋曳石성교예석。다리를 놓으며 돌을 끌다.
昔時不受暴脅鞭 석시불수폭협편,
옛적에 난폭한 채찍의 협박을 받지 아니하고,
能記天皇木德年 능기천황목덕년。
천황씨의 목덕 연대를 능히 기억하도다.
病得鄭人追涉意 병득정인추섭의,
정나라 사람의 강을 건너려는 뜻을 얻어,
長驅頑質駕前川 장구완질가전천。
굳센 돌덩이를 몰아 앞내를 건너게 하였도다.
※ 다리를 놓기 위해 돌을 끌어오는 일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토목 행위를 넘어, 억압 없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공사를 이루는 의미를 담은 듯하다. 완강한 돌을 몰아 강을 건너게 한다는 표현은, 강한 의지로 난관을 극복함을 상징한다.
尚州科時送兒曺科日雨下馳慮상주과시송아조과일우하치려。
상주에서 과거를 볼 때 아들을 보내며, 시험일에 비가 내려 마음이 달아나다.
比日天何迷玉麻 비일천하미옥마,
요즈음 하늘은 어찌하여 옥마같은 비를 흩뿌려 어지럽히는가,
方知盛事信多魔 방지성사신다마。
성대한 일에는 참으로 마가 많음을 이제야 알겠도다.
緬思舉子奔忙狀 면사거자분망장,
멀리 생각하니 과거 보러 간 선비들의 분주한 모습이,
楚漢乾坤亦不加 초한건곤역불가。
초한이 천하를 다투던 때보다도 더하지 않으랴.
※ 상주 과거장에 아들을 보내며 지은 작품이다. 시험일에 비가 내려 부친의 마음이 급하고 어지러움을 토로하였다.“성사다마盛事多魔”라 하여 큰일에는 장애가 따름을 말하고, 응시생들의 분주함을 초한쟁패에 비유하여 과거장의 긴박한 분위기를 형상화하였다. 부정父情과 세상살이의 체험이 함께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登山即景등산즉경。산에 올라 즉흥으로 경치를 읊다.
廣津風景最高樓 광진풍경최고루,
광진의 풍경은 높은 누각에서 더욱 빼어나니,
可是騷人陟彼遊 가시소인척피유。
이는 참으로 시인이 올라노닐 만한 곳이로다.
勝地佳期須及早 승지가기수급조,
좋은 경치와 아름다운 시절은 모름지기 일찍 누려야 하니,
滄江烟月漸看虧 창강연월점간휴。
푸른 강의 안개와 달빛도 점차 기울어가는 것을 보노라.
산에 올라 광진 일대의 풍광을 바라보고 즉흥적으로 지은 작품이다. 높은 누각에서 내려다본 강경江景을 시인의 유람지로 형상화하고, 좋은 경치와 시절은 때를 놓치지 말고 누려야 함을 말하였다. 말구에서는 강 위의 안개와 달빛이 점차 기울어감을 들어, 시간의 흐름과 흥회의 덧없음을 은근히 드러내었다. 경치를 노래하면서도 시흥詩興의 유한함을 자각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贈那叔증나숙。나숙에게 드림.
惟君能學七賢心 유군능학칠현심,
그대만이 능히 칠현의 마음을 배우니,
閑坐幽篁趣轉深 한좌유황취전심。
그윽한 대숲에 앉으면 흥취가 더욱 깊어지고.
疏影婆娑送素月 소영파사송소월,
성긴 그림자 어른거리며 흰 달을 보내니,此間端合鼓玄琴 차간단합고현금。
이 자리야말로 참으로 거문고를 탈 만하도다.
※ 벗의 인품을 위진 청담의 이상에 비겨 찬미한 작품이다. 칠현七賢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을 가리키며, 자연 속 자적自適의 경지를 상징한다. 대숲·달빛·거문고의 배치는 은일적 풍류를 완결된 장면으로 형상화한다. 여백 기입어「취전심趣轉深」을 2구에 보정함으로써 정서의 심화가 인물의 품격에서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구조를 이루어, 전편이 안정된 오언 절구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규모는 작으나 정취가 맑고 단아하여 청아한 한 편으로 평가된다.
勸送學童獵前溪권송학동렵전계。앞 시내로 사냥 가는 학동을 보내며.
強起書生設獵事 강기서생설렵사,
억지로 글 읽는 선비를 일으켜 사냥을 벌였더니,
溪魚漏網不盈器 계어루망불영기。
시내 물고기 그물에 빠져서 그릇을 채우지 못하네.早知所獲今如此 조지소획금여차,
얻을 것이 이처럼 적을 줄 미리 알았더라면,
寧臥清軒喫菜味 영와청헌끽채미。
차라리 맑은 헌軒에 누워 나물 맛이나 즐길 것을.
※ 일상적 체험을 소재로 하여 선비의 처세관을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겉으로는 학동과 함께한 어획의 실패를 읊었으나, 그 이면에는 분수 밖의 일에 나섰다가 얻음이 적음을 깨닫는 자조가 배어 있다. 결구의“영와청헌끽채미寧臥清軒喫菜味”는 청빈을 지향하는 선비적 자의식을 간명하게 드러내며, 소박한 생활 속에서 도를 지키는 삶이 더 값지다는 인식을 보여 준다. 소품이되 풍자와 자성自省이 어우러진 점에서 담백한 미학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營白日場設行문영백일장설행。
영營에서 백일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니.
聞道棠陰白戰場 문도당음백전장,
듣자하니 당음의 뜰이 흰 전장과 같다 하네.
文治列郡輳思皇 문치열군주사황。
문덕으로 다스려지는 여러 고을이 훌륭한 문재들로 모여 드는구나.
各隨意近分優劣 각수의근분우열,
각기 뜻을 다해 지었으니 우열은 나뉘겠으나,
誰失誰參未可詳 수실수참미가상。
누가 뒤처지고 누가 나은지 자세히 가려내기가 어렵다.
※ 과거 백일장의 광경을 전장에 비유하여 묘사한 작품이다. 문치의 시대에 인재가 모여 우열을 겨루는 장면을 그리면서도, 최종의 득실은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하여 인생의 성패에 대한 원숙한 인식을 드러낸다.
贈文大仲還故증문대중환고。
문대중이 고향으로 돌아감에 부치다.
越禽矯翼故枝尋 월금교익고지심,
월나라 새 날개 치며 옛 가지를 찾고,
黃鳥偏悲喚友音 황조편비환우음。
꾀꼬리는 유난히 슬피 벗을 부르는 소리.
渭樹江雲分手後 위수강운분수후,
위수의 나무와 강가의 구름처럼 헤어진 뒤라도,
吳州明月一般心 오주명월일반심。
오주에 뜬 밝은 달은 우리 마음 한가지이리라.
贈崔士益증최사익。최사익에게 주다.
曲罷陽關不小留 곡파양관불소유,
양관의 곡이 끝나도 쉽사리 머물지 못하고,
欲將別意問東流 욕장별의문동류。
이별의 뜻을 동으로 흐르는 물에 묻노라.
前林佳景方春富 전림가경방춘부,
앞 숲은 한창 봄빛이 무르익었으니,
須擲吟笻續舊遊 수척음공속구유。
시 짚은 지팡이 내 던지고 옛 노닐던 길을 다시 이어가야 하리.
※ 양관陽關으로 송별의 정조를 일으키고, 동유東流에 의탁하여 이별의 뜻을 우회하여 드러내었다. 삼구三句에 이르러 춘림春林의 부경富景으로 정조를 전환하여 애상을 누그러뜨리고, 결구結句에 음공吟笻을 들어 구유舊遊를 잇고자 하니, 슬픔에 머물지 않고 풍류의 뜻을 남긴다. 사의辭意가 절제되고 전개가 자연스러워, 송별시의 정격을 보인다.
贈姜凞源증강희원。강희원에게 주다.
携我良朋辨勝遊 휴아양붕변승유,
나의 좋은 벗을 이끌고 빼어난 유람지를 가려 찾아가니,
吟詩能滌滿腔愁 음시능척만강수。
시를 읊으니 가슴속 가득한 여름 더위를 씻어낼 수있네.
林泉不獨風烟好 림천불독풍연호,
숲과 샘물은 바람과 안개만 좋은 것이 아니라,
更向芳洲擬共舟 갱향방주의공주。
다시 꽃다운 모래톱 향해 함께 배 띄우기를 기약하네.
※ 양붕良朋을 들어 승유勝遊를 논하고, 시詩로써 만강滿腔의 수愁를 씻는다 하여 흥취를 먼저 세웠다. 임천林泉의 풍연風烟을 찬미하되 이에 머물지 않고, 방주芳洲로 나아가 공주共舟를 기약하니 뜻이 더욱 넓다. 정감이 소탈하고 기상이 맑아, 교유시의 청아한 풍격을 보인다.
見爭田人偶吟견쟁전인우음。밭을 다투는 사람을 보고 느끼다.
數畝良田會欲陳 삭무양전회욕진,
몇 사람이 좋은 밭을 두고 마침내 서로 다투니,
相爭便作芮虞民 상쟁변작예우민。
다투는 순간 곧 예와 우의 백성이 되는도다.
請看千古周郊俗 청간천고주교속,
청컨대 천고의 주나라 교외 풍속을 보라,
應唾當時汩利人 응타당시율리인。
마땅히 그때 이익에 빠진 사람들을 침 뱉어 꾸짖으리라.
※ 소전小田을 다투는 일을 들어 예우芮虞의 고사를 끌어오고, 주교周郊의 구속舊俗을 들어 경계하였다. 사근이의원事近而意遠하고, 어간이지엄語簡而旨嚴하여 풍자의 힘이 있다. 리利에 빠진 인심을 꾸짖되 격렬하지 아니하고 고사로써 완곡히 경계한 점이 돋보인다.
甞春醪상춘료。봄 막걸리를 맛보다.
玉友無情與我疏 옥우무정여아소,
옥우라 일컫는 술이 무정하여 나와 더불어 소원하더니,牆頭誰送一杯醪 장두수송일배료。
담장 너머로 누가 한 잔의 막걸리를 보내왔는가. 村嫗幸進山城味 촌구행진산성미,
촌노가 다행히 산성의 미주를 올리니,痛飲方知萬慮消 통음방지만려소。
크게 마신 뒤에야 비로소 만 가지 염려가 씻기었음을 깨닫도다.
※ 옥우玉友라 하여 술을 벗에 비유하고, 소疏라 하여 봄 술의 인색함을 희롱하였다. 촌구村嫗가 산성山城의 맛을 바친다 하여 시골의 소박한 정취를 더하고, 결구結句에 통음痛飲으로 만려소萬慮消를 말하니 흥취가 시원하다. 어기語氣가 담박하고 정경이 진솔하여, 전원적 주흥시의 정취를 보인다.
次春坊諸僚韻차춘방제료운。춘방여러 동료의 운에 차하다.
〔첫째 수〕
清宵禁直曉鍾疏 청소금직효종소,
맑은 밤 금직에 새벽 종소리 드물고,鄕夢初回水竹居 향몽초회수죽거。
고향 꿈은 막 돌아와 수죽의 거처에 머문다.梅綻北園春意懶 매탄북원춘의라,
북원에는 매화 피어 봄기운 게으르고,雪殘西郭柳眉舒 설잔서곽류미서。
서곽에는 눈 녹아 버들 눈썹이 펼쳐졌도다.幾多勳業看銅鏡 기다훈업간동경,
그 얼마나 많은 공업을 동경에 비추어 보랴마는,堪笑孤蹤冷玉除 감소고종냉옥제。
외로운 자취 옥계에 서늘함을 웃음 짓는다.憂國願豐成白髮 우국원풍성백발,
나라를 근심하여 풍년 이루기 바라다 보니 머리 희어지고,趁朝閶闔進農書 진조창합진농서。
조회 따라 창합에 나아가 농서를 올리고자 하노라.
〔둘째 수〕
萬事年來付塞翁 만사년래부새옹,
만사는 해마다 새옹에게 맡길 뿐이요,是非名利戒雷同 시비명리계뢰동。
시비와 명리는 우레처럼 같아짐을 경계하노라.胄筵輔道吾何敢 주연보도오하감,
주연에서 도를 돕는다 함을 어찌 감히 말하랴,郞署低回子不逢 낭서저회자불봉。
낭서에서 머뭇거리니 그대를 만나지 못하였도다.綠漲漢江關雪盡 녹창한강관설진,
한강 물은 푸르게 불어나 관설이 다하고,春生嶺樹客思濃 춘생령수객사농。
봄은 산마루 나무에 깃들어 객의 시름 더욱 짙다.強將巴曲清音和 강장파곡청음화,
억지로 파곡의 맑은 음을 화답하니,三峽詞源筆勢雄 삼협사원필세웅。
삼협의 사원처럼 붓 기세가 웅건하도다.
※ 첫째 수는 금직禁直의 적막과 춘의春意의 미묘함 속에 우국지지憂國之志를 드러내었고, 둘째 수는 색옹塞翁의 비유로 세사世事를 달관하면서도 동료同僚에 대한 정의情誼를 잃지 않았다. 경景과 지志가 서로 어울려 문기文氣가 온건하면서도 장중하다. 춘방 관료로서의 직분 의식과 문인의 풍류가 겸전된 작품이라 할 만하다.
甲寅春以内翰受由滯雨竹山詠懷갑인춘이내한수유체우죽산영회。갑인년(1614) 봄, 한림으로 재직 중 휴가를 받아, 비에 막혀 죽산에 머물며 회포를 읊다.
滯兩山城下 체양산성하,
두 산성 아래에 머무니, 行人多少思 행인다소사。
오가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 생각을 품었으랴.心情辭紫闥 심정사자달,
마음은 자달을 떠났고,形影隔庭闈 형영격정위。
형영은 궁정의 뜰과 이미 멀어졌도다.積水危橋斷 적수위교단,
쌓인 물에 위태로운 다리끊겨서, 歸程客日遲 귀정객일지。
돌아갈 길 막히고 객지의 나날은 더디기만 하다.男兒何事業 남아하사업,
사내로서 무슨 사업을 이루었는가,白首笑支離백수소지리。
백발이 되어 지리함을 스스로 웃노라.
※ 수유受由로 관직을 떠나 있으나 자달紫闥을 잊지 못하고, 체우滯雨의 경치 속에 자성自省의 뜻을 담았다. 말구末句에 이르러 남아男兒의 사업事業을 묻고 백수白首를 말하니, 관각館閣문인의 내면적 성찰이 절실하다.
江陽舘書懷강양관서회. 강양관에서 회포를 적다.
協京千里無消息 협경천리무소식,
서울과 천 리나 떨어져 소식이 끊기니,行到江陽客夢孤 행도강양객몽고。
강양에 이르러 나그네의 꿈마저 외롭구나.花落城西人不見 화락성서인불견,
성 서쪽에 꽃은 지는데 옛 사람은 보이지 않고,一春離思滿平蕪 일춘리사만평무。
한 봄의 이별 회포가 들판가득하도다.
次朴季直樅茂韻차박계직종무운. 박계직종무 운에 차하다.
旅宦即庭事事艱 려환즉정사사간,
나그네 벼슬살이 관아뜰에 서니 일마다 어렵기만 하구나.賦歸何日僕隨歡 부귀하일복수환。
언제나 돌아가 종자와 함께 기뻐할 수 있을까.墻頭花信鄕思惱 장두화신향사뇌,
담장 위 꽃소식은 향수를 일으키고, 窓外松濤客夢寒 창외송도객몽한。
창밖의 솔바람 소리는 객의 꿈을 차게 하네.白髮便從愁裏得 백발편종수리득,
흰 머리카락은 근심 속에서 절로 얻었으니,壯心寧向老來殘 장심녕향로래잔。
장한 뜻이 어찌 늙음에 이르러 꺾이랴.西隣賴有知音在 서린뢰유지음재,
서쪽 이웃에 다행히도 지음이 있어,時寄瓊琚病懷寬 시기경거병회관。
때때로 아름다운 시를 보내주니 병든 마음이 너그러워지네.
※ 이 시는 조정에 재직하던 시기에, 영주에 거주하던 이종 사촌 박종무 시에 차운한 작품이다. 전반부는 중앙 관직 생활의 번거로움과 귀향의 염원을 토로하고, 중반부는 서울의 봄 풍경 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향수를 형상화하였다. 특히“백발편종수이득白髮便從愁裏得 / 장심영향로래잔壯心寧向老來殘”은 정치 현실 속에서 소모되는 자아와, 그럼에도 꺾이지 않으려는 사대부적 자존의식을 드러낸다. 결구에서는 혈연이자 지음인 박계직의 존재를 정신적 의지처로 삼으며, 문학적 교유를 통해 병든 마음을 달래는 구조를 이룬다. 이는 단순한 차운 시가 아니라, 서울과 영주라는 공간 대비 속에서 형제애와 향수를 담아낸 교유시라 할 수 있다.
憤世吟분세음。세상을 개탄하며 읊다.
欺貧妬富貴 기빈투부귀,
가난을 업신여기고 부귀를 질투하며,
附熱而離寒 부열이리한。
권세(뜨거운 곳)에 붙고 가난(차거운 곳)을 떠나네.世情險若此 세정험야차,
세상 인심이 이처럼 험악하니,
始覺行身難 시각행신난。
이제야 처신하기가 어려움을 알겠노라.不容不是病 불용불시병,
세상에 용납되지 못함이 병(잘못)은 아니니,
孤鶴焉能群 고학언능군。
고고한 학이 어찌 (닭의) 무리와 어울리겠는가.所以古君子 소이고군자,
그러하기에 옛 군자들은,
軒冕如浮雲 헌면여부운。
높은 벼슬(초헌과 면류관) 보기를 뜬구름처럼 여겼다네.回瀾難隻手 회란난척수,
도도한 물결(타락한 세태)을 한 손으로 돌리기 어렵고,
土韶非單絃 토소비단현。
순임금의 음악(태평성대)은 거문고 한 줄로 멈출 수 없네.不負碧山在 불부벽산재,
푸른 산을 저버리지 않고 머물러 있으니,
所守期前賢 소수기전현 。
옛 현인들이 지켰던 그 도리를 나도 기약하노라.
※ 이 작품은 세태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담은‘분세시憤世詩’이다. 전반부는 부귀를 좇고 빈천을 멀리하는 세속 인심을 직설적으로 폭로하며, 중반부에서는‘고학孤鶴’의 비유를 통해 스스로를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는 존재로 형상화 한다. 그러나 결구에서는 단순한 냉소로 흐르지 않고,“헌면여부운軒冕如浮雲”이라 하여 명리를 초탈하려는 유가적 태도로 귀결한다. 특히 회란난척수回瀾難隻手 / 토소비단현土韶非單絃은 개인의 힘으로는 세태를 돌리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면서도, 도학적 자존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절제된 선언이다. 이는 광해군 대 정치 환경 속에서 체험한 인사 변동과 세태의 험악함이 배경에 깔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시는 직접적 당론 비판을 피하고, 고전적 군자론으로 정서를 승화시킨 점에서 사대부적 품격을 유지한다.
述懷贈朴上舍樅茂술회증박상사종무。(나의)심정을 서술하여 박상사종무에게 주다.
籬圍方數畝 리위방삭무,
울타리 둘린밭은 겨우 몇 이랑뿐,
未夕日華陰 미석일화음。
해 저물기 전 부터 햇살은 이미 그늘지네.土宇頹催冷 토우퇴최냉,
흙집은 허물어져 더욱 싸늘하고,
秋宵輾轉深 추소전전심。
가을밤을 뒤척이며 깊어만 간다.山川連北虜 산천련북로,
산천은 북쪽 오랑캐와 맞닿아 있고,
言語異南音 언어리남음。
말소리 또한 남쪽 고향과 다르다.何處鄕書達 하처향서달,
어느 곳으로 보내야 고향에 편지가 닿을까,
悠悠故國心 유유고국심。
아득하기만 한 옛 나라를 향한 마음이여.
※ 이 시는 공간적 고립감이 매우 구체적이다.
“리위방수무籬圍方數畝”물리적 협소성“토우퇴최랭土宇頹催冷”생활의 궁핍“산천연북로山川連北虜”국경·변방 이미지“언어이남음言語異南音”문화적 이질감 특히“언어이남음言語異南音”은 단순 방언 차이를 넘어서, 정치적으로 단절된 상태를 상징한다. 마지막 두 구는 절창이다. 하처향서달何處鄕書達 편지를 보낼 길조차 막힌 현실 속에서 / 유유고국심悠悠故國心 마음만이 아득히 옛 나라로 향하고 있다. 이는 유배자의 정서를 가장 정제된 형식으로 표현한 결구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계해정변(인조반정) 이후 유배지에서 지은 것으로 보이며, 공간적 고립과 문화적 단절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수작이다. 전반부는 궁핍한 거처와 싸늘한 기후를 통해 육체적 고단함을 드러내고, 중반부는 변방이라는 공간적 경계를 통해 정치적 소외를 암시한다. 결구의 “유유고국심悠悠故國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정치적 중심에서 추방된 사대부의 자의식을 함축한다. 앞선 「분세음憤世吟」이 도덕적 결단을 노래한 분세시라면, 이 작품은 유배 현실을 담담히 형상화한 체험시로서 상호 보완적 위치에 놓인다.
自勉자면。스스로를 경계하다.
尤怨皆非君子事 우원개비군자사,
원망하고 탓하는 일은 모두 군자의 일이 아니니,上帝臨下在修身 상제림하재수신。
상제께서 아래를 굽어보심은 몸을 닦는 데 달려 있다.日三加勉三乎省 일삼가면삼호성,
날마다 세 번 더 힘써 세 번 성찰하고,夕惕須勤雍也仁心動 석척수근옹야인심동。
저녁마다 두려움으로 삼가 힘써야 한다.安知庸玉汝 안지용옥여,
어찌 평범함이 그대를 옥으로 만들지 않음을 알겠는가,
口緘便學這金人 구함편학차금인。
입을 다물어이 금인을 본받아야 한다.存籬當面連簷聳 존리당면련첨용,
울타리가 눈앞에 있고 처마가 이어 솟았으며,
井觀旻天更自新 정관민천갱자신。
우물 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다시 스스로 새로워진다.
※ 이 시는 스스로를 경계하는 유학적 수양시로, 전편이 경전의 구절과 고사를 촘촘히 엮어 이루어져 있다. 남을 원망하지 않는 군자의 태도에서 시작하여,《논어》의 삼성三省과《주역》의 석척夕惕으로 자기 성찰을 강조한다. 이어 금인金人의 침묵을 들어 언어 절제를 말하고, 마지막에는 우물 속의 하늘을 경계하여 식견의 확장을 요구한다. 결국 이 시의 귀결은《대학》의 일신日新 사상으로 돌아가며, 군자의 도는 외부가 아니라 자기 수양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짐에 있음을 밝힌다.
원망 부정·수신 강조·일삼성.석척(경계)·침묵의 덕·하늘을 우러른 자기 쇄신·특히“우원개비군자사尤怨皆非君子事”는 유배자의 원통함을 스스로 부정하는 선언이다. 또한“구함편학차김인존口緘便學此金人存”은 정치적 언사로 인해 화를 입은 자의 깊은 성찰로 읽힌다. 결구의“관민천갱자신觀旻天更自新”은 유배지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정신을 새롭게 하는 장면으로, 갑산이라는 공간과 잘 어울린다.
詠蘇武영소무。소무를 읊다.
風沙獵獵海雲陰 풍사렵렵해운음,
바람 모래 세차고 바다 구름 어둡거늘,異域孤臣憤不禁 이역고신분불금 。
타향의 외로운 신하분노를 금치 못하네.十載手中持旄節 십재수중지모절,
십 년 세월 손에 한나라 부절을 쥐고,一天頭上保貞心 일천두상보정심。
한 하늘 아래 곧은 마음 지켜냈다.羝羊不乳南鄕遠 저양불유남향원,
숫양은 젖을 물지 않아남쪽 고향은 멀고,塞鴈無傳北窖深 새안무전북교심。
변방의 기러기마저 소식 전하지 못하니 북쪽 굴은 깊다.皓首歸來人事改 호수귀래인사개,
흰 머리 되어 돌아오니 인사는 달라졌고,茂陵煙雨日西沉 무릉연우일서침。
무릉엔 안개비 속에 해마저 서쪽으로 기운다.
작품 해석 (갑산 유배 맥락)
이 작품은 갑산 유배 중 충절의 표상인 소무蘇武를 노래한 시이다.
소무의 고사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우회적으로 형상화하였으며, 특히 “지모절持旄節 / 보정심保貞心”은 정치적 좌절 속에서도 도덕적 절개를 지켰다는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전반부는 변방의 고립을, 중반부는 소식 단절의 고통을, 결구는 귀환 이후의 허무를 암시한다. 이는 단순한 충절 찬양이 아니라, 유배자의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내포한다. 유배기 작품 가운데 가장 상징성이 큰 작품으로,「분세음憤世吟」·「술회述懷」·「자면自勉」과 함께 읽을 때 정신사의 흐름이 완결된다.
山先生遺像문산선생유상。문산 선생의 초상을 보고.
南土盡為元土地 남토진위원토지,
남쪽 땅은 다 원나라의 땅이 되고,北朝強半宋朝臣 북조강반송조신。
북조에는 절반 넘는 송나라 신하가 항복하였도다.勁松豈變嚴霜夜 경송개변엄상야,
굳센 소나무 어찌 엄상한 밤에 변하랴,大廈能全板蕩辰 대하능전판탕진。
큰 집이라도 어찌 난세를 온전히 지켜내랴.萬古綱常懸日月 만고강상현일월,
만고의 강상은 해와 달처럼 걸려 있고,一堂遺像儼精神 일당유상엄정신。
한 당 안에 모신 초상은 의연히 정신을 드러낸다.王公生祭非愼識 왕공생제비신지,
왕공이 살아서 제사지냈다 하나 참된 앎은 아니요,宇宙歸來有幾人 우주귀래유기인。
이 우주에 돌아와 설 만한 이가 몇이나 되랴.
※ 이 시는 「영소무詠蘇武」의 연장선이다.충절의 또 다른 표상, 문천상을 통해 절의의 보편성을 확인한다.
문천상의 유상을 보고 충절의 가치를 재확인한 시이다.
남송의 멸망과 항복한 신하들의 현실을 제시한 뒤, 변치 않는‘경송勁松’의 이미지를 통해 절개의 영속성을 강조한다.“만고강상현일월萬古綱常懸日月”은 이 작품의 정신적 중심으로, 정치적 변동을 초월한 도덕 질서의 절대성을 선언하는 구절이다. 유배기의 작품으로 볼 때, 이는 자신의 처지를 소무와 문천상에 겹쳐 보며 절의의 계보 속에 위치시키려는 자의식의 표현이다. 앞선 「영소무詠蘇武」가 개인적 충절의 형상화라면, 이 작품은 역사적 충신의 전형을 통해 그 보편성을 확장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詠懷영회。회포를 읊다.
五倫朋爲一 오륜붕위일,
오륜의 도는 벗의 의리로 하나이니,
所以貴知心 소이귀지심。
귀한 것은 이익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아는 일이다.世道多危險 세도다위험,
세상 길은 위태롭고,
交情亦淺深 교정역천심。
인정은 형세 따라 얕고 깊어지니.黄金存厚薄 황금존후박。
황금의 두께에 따라, 사람의 무게 또한 달라진다.
白首任浮沉 백수임부침,
백발이 되도록 뜨고 잠김은 맡길지언정,何似離儔侶 하사리주려。
뜻까지 함께 흔들릴 수는 없으니, 차라리 무리를 떠나.
含盃獨自吟 함배독자음。
술잔 들고 홀로 읊으리라.
※ 〈영회詠懷〉는 유배지 작품 뒤에 놓여 있어 단순한 세태 감상이 아니라, 작자의 생애 후반 사유를 집약한 작품으로 이해된다. 특히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정국 재편 속에서 변절과 이합집산이 반복되던 현실은, 유배 중이던 오여은에게 인간관계의 본질을 재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시의 전반부는“지심知心”을 벗의 본령으로 제시하며 도덕적 원칙을 천명하고, 중반부에서는“세도다위험世道多危險”“황금존후박黄金存厚薄”이라 하여 권세와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세태를 직시한다. 이는 단순한 인간 일반론이 아니라, 정치적 변동 속에서 체험한 현실 인식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결구“이주려離儔侶”“독자음獨自吟”은 은일의 정조를 띠면서도, 실상은 변절을 거부한 채 고독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여기서 고독은 패배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이며, 이 작품은 체념을 넘어 절의를 자각한 시적 선언으로 평가된다. 따라서〈영회詠懷〉는 화자의 문학에서 세태 인식이 절의 의식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飮老음노。노년을 마시며
今年異去歲 금년이거세,
올해는 지난해와 또 다르니,
具奈吾衰何 구내오쇠하。
이 쇠한 몸을 어찌하랴.嘖嘖蟬嘈耳 책책선조이,
매미 소리 짹짹 귀를 울리고,
搖搖已眼花 요요이안화。
눈앞은 아른거려 꽃도 흐릿하네.形容日憔悴 형용일초췌,
몸은 날로 여위어 가고,
肥膚漸銷磨 비부점소마。
살은 점점 사라져 간다.翻思不須恠 번사불수괴,
가만히 생각하니 괴이할 것도 없지,
愁愁易損和 수수역손화。
근심이 많으면 조화도 쉬이 상하는 법.
이 시는 늙음을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유배가 몸을 잠식하는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구는 수수역손화愁愁易損和 근심이 거듭되면‘화和’곧 기혈의 조화, 생명의 균형—가 무너진다는 인식. 이는 유학적 심신관心身觀에 근거한 자기 진단이기도 하다.
次景虛韻 차경허운。아우 경허의 운을 빌려.
情極還無語 정극환무어,정이 극에 달하니 도리어 말문이 막히고愁多轉似癡 수다전사치。시름이 깊어지니 도리어 어리석은 이 같구나.
相逢重惜別 상봉중석별,서로 만났건만 다시 이별을 아쉬워하고,成歡復含悲 성환복함비。기쁨을 이루었으나 다시 슬픔을 머금노라.
爲學慚三省 위학참삼성,학문함에는 세 번 반성함에 부끄럽고,行身質四知 행신질사지。몸가짐은 하늘과 땅이 아는도리에 비추어보네.
仁風迴棣萼 인풍회체악,어진 바람이 형제의 우애로 돌아오니,莫負暮春期 막부모춘기。저무는 봄날의 이 기약을 부디 저버리지 마세.
※ 이 시는 갑산甲山 유배지에서 형제가 서로 만난 날에 지어졌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가운데, 결국은 스스로 힘쓰고 경계함(자려自勵)으로 귀결되었다.‘기쁨을 이루었으나 다시 슬픔을 머금노라(성환복함비成歡復含悲)’라는 한 구절은 유배 객지에서 나누는 형제간의 정을 남김없이 그려냈다. 시의 끝맺음을‘저문 봄(모춘暮春)’으로 한 것은, 아마도 자신의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을 스스로 깨달은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아우 경허 오여벌의 시와 유배지 갑산 방문 기록은 경암집에도 실려 있다.
福堂복당。복된 집
誰將福字強名堂 수장복자강명당,뉘라서 '복' 자를 가져다 억지로 집 이름이라 하였나,堂得名來也道傷 당득명래야도상。집이 그 이름을 얻고부터 도리어 마음만 상하누나.
可惜古賢猶未免 가석고현유미면,가련하다, 옛 현인들도 오히려 (유배를) 면치 못했으니,終非己孽自銷殃 종비기얼자소앙。끝내 내 죄(얼孽)가 아니거늘, 스스로 재앙을 녹여내리라.
갑산 맥락에서의 해석
유배지에서“복”을 논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복이 있다면 왜 이곳에 있는가? 이 시는 복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복이라는 이름과 현실의 괴리를 말한 것이다. 이는 체념이 아니라 도덕적 세계관을 지키려는 마지막 균형이다.
이 시는 당호를 빌려 복을 논한다. 세상은 복이라 하나 실제로는 복이 아님을 풍자한다. 끝구는 하늘도 사람도 원망하지 않고, 이치를 지키며 재앙이 스스로 사라지길 기다리는 태도이다.
次德美韻차덕미운。덕미의 운을 빌려.
長掩柴扉訪者疏 장엄시비방자소,사립문 길이 닫히고 찾아오는 이 드문데,一春多病似相如 일춘다병사상여。온 봄날 병이 많음은 사상여와 흡사하구나.
西城賴有知音者 서성뢰유지음자,서성에 다행히 나를 아는 지음이 있어,時寄相思綴札書 시기상사철찰서。때때로 그리움 담아 엮은 편지를 보내주네.
蕭然活計益生疎 소연활계익생소,쓸쓸한 살림살이는 갈수록 서툴러만 가고,一味顔瓢任晏知 일미안표임안지。안회의 표박 같은 소박한 맛을 안자만이 알아주네.
海岸雪消春又半 해안설소춘우반,바닷가 눈 녹고 봄도 벌써 반이 지났으니,何時天上鵲銜書 하시천상작함서。어느 때나 하늘의 까치가 (기쁜) 소식을 물어다 줄까.
※ 이 시는 유배의 고독과 병을 묘사하되 뜻을 잃지 않는다. 상여로 자기를 비유하고 안회의 표주박으로 스스로를 지탱한다. 결구의 까치 편지는 아직 희망을 간직함을 보인다. 슬프되 꺾이지 않는다.
寄舍弟景虛기사제경허。 아우 경허에게.
嗟嗟余季今安未 차차여계금안미,
아아 내 아우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一別橫城關塞隔 일별횡성관색격。
한 번 헤어진 뒤 험한 관문과 변방이 우리를 가로막아.思耒直欲陟彼岡 사뢰직욕척피강,
그리움이 밀려오면 저 언덕에 올라, 渺渺南天迷眼力 묘묘남천미안역。
아득한 남쪽 하늘을 바라보지만 눈길은 멀어 길을 찾지 못하네.
危蹤瀕死黑水邊 위종빈사흑수변,
나는 이제 죽음 가까운 변방 흑수강가에서 떠도는 몸,
隔江腥膻靺鞨域 격강성전말갈역。
강 건너는 비린내 풍기는 말갈 땅이고.不忠於國不孝家 불충어국불효가,
나라에는 충성을, 집안에도 효도를 다하지 못했으니,俯仰乾坤無面目 부앙건곤무면목。
하늘과 땅을 우러러 얼굴을 들 면목이 없구나.
尤人亦非自反道 우인역비자반도,
남을 원망하는 것도 옳지 않고 자기반성의 도(道)도 막힌 듯,脉脉無言天日燭 맥맥무언천일촉。
그저 말없이 서 있을 뿐이지만 하늘의 해와 달은 이를 밝히리라.人生孰無兄及弟 인생숙무형급제,
사람 세상에 형과 아우 없는 이가 누가 있으랴,
憂樂鶺鴒如手足 우락척령여수족。
근심과 즐거움을 할미새 처럼 함께 나누는 것이 곧 손발 같은 형제 아니던가.
有酒湑我無則沽 유주서아무칙고,
술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없으면 사다가라도 마시던 그 많은 밤,幾多連牀風雨夕 기다연상풍우석。
한 이불 덮고 풍우를 듣던 날들 지금은 구름 낀 숲 너머.如今雲樹隔萬里 여금운수격만리,
만 리 밖에 떨어져 기러기는 끊기고,鴈斷魚沉消息絶 안단어침소식절。
물고기 편지도 막혀 소식조차 끊어졌고.
秋風已迫授衣郞 추풍이박수의랑,
가을바람 이미 차 겨울옷나눌 때가 닥쳐오는데,
永夜弊裘愁寒勒 영야폐구수한륵。
기나긴 밤 해진 가죽옷 속에서 추위를 견디며 시름하고.窮荒素乏舊相識 궁황소핍구상지,
이 궁벽한 땅에는 예부터 아는 사람도 없으니,
旅恨羈愁誰與說 여한기수수여설。
떠돌이의 한과 나그네의 시름 누구에게 말하랴.
邊聲五夜獨無寐 변성오야독무매,
변방의 소리 오경 내내 들려와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紙牕耒窺有關月 지창뢰규유관월。
종이 창을 스치며 관문 위 달빛이 비치니.風威浙浙露為霜 풍위절절로위상,
바람은 사납고 이슬은 서리가 되었는데,念及先壠淚先滴 념급선롱루선적。
조상 묘소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흐르고.
手種松柏今幾長 수종송백금기장,
손수 심어 둔 소나무 잣나무는 지금 얼마나 자랐을까,香火春秋憑展謁 향화춘추빙전알。
봄과 가을 제사는 누가 대신 올리고 있을까.關山連塞關路難 관산연새관로난,
관산이 이어져 길은 막히고 험하니,青眼重逢在何日 청안중봉재하일。
다시 반가운 눈빛으로 서로 만날 날은 언제일까.
人間從古有遠謫 인간종고유원적,
세상에는 예부터 먼 귀양살이가 있었지만,弟兄相思唯我獨 제형상사유아독。
형제를 그리워하기는 나처럼 절절한 이가 또 있을까.
※ 이 시의 명구들을 보면 특징이 분명하다.
1. 중심 핵심 정서는 형제애 가문 의식 유배 고독이다. 정치 비판은 거의 없다.
2. 중심 대표 이미지는 흑수黑水(변방), 관월關月(밤) 운수雲樹(거리) 선롱先壠(조상) 이 네 이미지가 시를 구성하였다.
3 윤리 의식으로 특히 이 두 구절은 화자 정신의 핵심이다.
“불충어국불효가不忠於國不孝家”나라에는 충성을, 집안에도 효도를 다하지 못했으니,
“부앙건곤무면목俯仰乾坤無面目”하늘과 땅을 우러러 얼굴을 들 면목이 없구나.
“념급선롱루선적念及先壠淚先滴”조상 묘소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흐른다.
이 구절은 유배 문학 전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진실한 눈물의 시다.
이것은 조선 사대부의 도덕 세계관을 압축한 구절이다.
述懷呈成秀才夏康술회정성수재하강。성하강수재에게 마음을 술회하여 드림.
絶塞年將暮 절새연장모,
먼 변방 요새에 한 해가 저물어가는데,
栫籬風色寒 전리풍색한。
가시 울타리 사이로 바람 끝이 차갑구나.
先秋霜氣勁 선추상기경,
가을도 되기 전 서리 기운은 매섭고,
未夕日華殘 미석일화잔。
저녁도 되지 않았는데 햇빛은 이미 쓰러지네.
禦魅危蹤冷 어매위종냉,
도깨비(악귀)를 막는 위태로운 발자취는 쓸쓸하고,
全生聖澤寛 전생성택관。
목숨을 보전함은 오직 성상의 은혜가 너그러우신 덕이로다.
星星雙髩白 성성쌍빈백,
희끗희끗한 두 귀밑머리는 하얗게 세었으나,
皎皎寸心丹 교교촌심단。
밝고 밝은 일편단심(충성심)은 붉기만 하네.
鄕思三危若 향사삼위약,
고향 그리움은 삼위산의 고통과 같고,
邊聲五夜䦨 변성오야란。
변방의 소리는 깊은 밤이 다 가도록 들려오네.
籬荆掩白日 이형엄백일,
가시 울타리가 밝은 해를 가리고,
關雪接天山 관설접천산。
관문의 눈은 하늘 끝 산과 맞닿아 있구나.
弟妹驚孤夢 제매경고몽,
동생들은 외로운 꿈속에서 놀라고,
妻見隔複関 처견격복관。
아내를 만남은 겹겹의 관문으로 막혀 있네.
塞翁知倚伏 새옹지의복,
새옹처럼 화와 복이 엎치락뒤치락함을 알거니와,
隍鹿任悲歓 황록임비환。
구덩이의 사슴처럼 슬픔과 기쁨을 운명에 맡기노라.
素患吾何敢 소환오하감,
평소의 근심을 내 어찌 감히 피하겠는가,
求仁古所難 구인고소난。
어질 인(仁)을 구함은 예부터 어려운 법이라네.
椘猿焚野木 초원분야목,
초나라 원숭이는 들불에 나무가 타서 괴롭고,
魯酒禍邯鄲 노주화한단。
노나라 술 때문에 한단이 화를 입듯.
世道元同轍 세도원동철,
세상의 도리는 본래 같은 궤도를 도는 법이니,
髙人故大観 고인고대관。
높은 식견을 가진 그대는 부디 크게 보아주시게.
慇懃知己道 은근지기도
지기의 도리를 은근히 바라노니,
莫作䒭閑㐲 막작등한간
부디 이 마음을 예사롭게 여기지 말아주오.
※ 요약하자면: 화자는 이 고사들을 통해“나는 억울하게 휘말려 이곳에 왔지만(노주·초원), 이것 또한 운명이라 여기며(새옹·황록) 오직 임금을 향한 붉은 마음(촌심단寸心丹)이라 하여 충정의 붉은 마음은 변하지 않고 간직 하겠다”는 메시지를 성수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自歎자탄。스스로 탄식하다.
癃蟄窮荒備苦狀 융칩궁황비고장,
병든 몸 변방에 웅크려 온갖 고생을 겪으니,傷時白髮幾千丈 상시백발기천장。
세상을 걱정하다 보니 흰 머리 몇 천 길이나 되었구나.君臣素志終虛負 군신소지종허부,
임금과 나라 위해 품었던 뜻은 끝내 헛되이 되었고,只待周文善老養 지대주문선노양。
오직 주나라 문왕처럼 노인을 잘 대접해 줄 때만을 기다리노라.
※ 이 시는 화자의 유배 심정을 가장 간결하게 압축한 작품이다.
핵심 구절은“군신소지종허부君臣素志終虛負”임금과 나라를 위한 평생의 뜻이 끝내 허사가 되었다. 그러나 원망보다는 “지대주문선노양只待周文善老養”그저 노년을 편히 보내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라는 체념적 인식이 나타난다. 유배 후반기의 평정된 심리를 보여준다.
辛未九月移配端川到黃樹院作신미구월이배단천도황수원작。신미년(1631) 9월 단천으로 이배되어 황수원에 이르러 짓다.
駄身羸馬任遲遲 태신리마임지지,
여윈 몸을 병든 말에 맡겨 느릿느릿 가니,雲棧緣崖石磴危 운잔연애석등위。
구름 잔 도는 벼랑을 타고 돌계단은 아슬아슬하다.霜落楓林披繡幙 상낙풍림피수막,
서리 내린 단풍 숲은 비단 장막을 펼친듯하고,菊芳幽澗展羅幃 국방유간전라위。
그윽한 골짜기 국화 향기는 비단 휘장을 드리운 듯하다.佳辰不做羈人興 가진불주기인흥,
좋은 계절이건만 나그네의 흥은 일어나지 않고,美景還添逐客悲 미경환첨축객비。
아름다운 경치는 도리어 귀양살이 슬픔만 더한다.日暮行裝何處托 일모행장하처탁,
해 질 무렵 이 몸 둘 곳이 어디인가,倚巖殘店故無扉 의암잔점고무비。
바위에 기대 선 허름한 여관에는 문짝도 없구나.
※ 이 시는 여행시 + 유배시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특히 뛰어난 부분은 자연 묘사이다.
상낙풍림피수막 霜落楓林披繡幙 / 국방유간전라위 菊芳幽澗展羅幃
단풍과 국화를 비단 장막과 휘장에 비유한 표현은 조선 시에서 흔히 보이지만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곧 이어 “미경환첨축객비 美景還添逐客悲” 아름다운 경치가 오히려 귀양살이 슬픔을 더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비애가 대비된다. 이런 구성은 유배 여행시의 전형적 구조다.
次李僉使弘明亭舎韻차이첨사홍명정사운 二首이수。 첨사 이홍명의 정사 운을 빌려 지은 시 두 수.
첫째 수
心情天北極 심정천북극,
마음은 하늘 북극에 두었고,形影地南頭 형영지남두。
몸과 그림자는 땅의 남쪽 끝에 있네.是實邦之彥 시실방지언,
참으로 나라의 준걸이건만,初非隱者流 초비은자류。
처음부터 은자의 무리는 아니었지.名歸塞老馬 명귀색노마,
명성은 변방의 늙은 말처럼 돌아왔고,身狎海翁鷗 신압해옹구。
몸은 바다 늙은이의 갈매기와 벗하네.李廣人爭惜 이광인쟁석,
이광을 사람들이 모두 애석히 여기듯, 由來不得侯 유래불득후。
예로부터 그런 이는 제후가 되지 못했네.
두 번째 수
俗險簸波上 속험파파상,
세속의 길 험해 파도위에서 흔들리고,時危九折頭 시위구절두。
시세 위태로워 아홉 번이나 고개를 꺾네.昧機元欲浪 매기원욕랑,
기미를 몰라 본래 세상 물결 따르려 했으나,知止智安流 지지지안유。
멈출 줄 아는 지혜로 흐름 속에 편안하네.雲水隨琴鶴 운수수금학,
구름과 물 사이 거문고와 학을 따르고,烟霞伴鷺鷗 연하반노구。
노을 안개 속에 백로와 갈매기 벗하네.翶翔林下老 고상림하노,
숲 아래서 늙은 몸으로 자유로이날지만,誰識勝於侯 수지승어후。
그 누가 알랴, 제후보다 나음을.
※ 이 시는 화자의 시 가운데 정치적 자의식이 가장 강한 작품이다.
특히 : 심정천북극心情天北極 / 형영지남두形影地南頭 → 마음과 몸이 완전히 분리된 상태를 표현하였다.
충신의 불우함
마음은 임금을 향했지만 변방에 유배된 처지, 한나라 장수 이광처럼 공이 있어도 봉후되지 못하는 현실.
은일적 초탈
세속의 험난한 정치에서 물러남, 구름·학·백로와 벗하며 사는 삶, 결국 “제후보다 낫다”는 정신적 자유 즉 충절과 은일이 함께 나타나는 조선 선비 시의 전형적인 정조이다.
고상림하노翶翔林下老 : 이 구절은 낙애 시 가운데에서도 상당히 품격이 높은 표현이다. 특히 구조가 아주 좋다. 고상翶翔 — 림하林下 — 노老 → 자유로운 비상 — 은자의 공간 — 노년의 삶
그리고 결구에서 수지승어후誰識勝於侯 : → 누가 이 삶이 제후諸侯 보다 낫다는 것을 알겠는가 라는 은자의 자부심으로 끝을 맺었다.
이 구절은 세속의 벼슬과 부귀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 오히려 제후의 지위보다 낫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는 조선 선비 시에서 흔히 보이는 은일적 가치관과 초탈의 정서를 보여주는 표현이다.“고상림하노翶翔林下老”라는 표현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유배 시문에서 자존을 지키는 표현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이 시는 단순한 은일시가 아니라 “유배 속에서 스스로를 은자에 비긴 시”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첫 번째 시가 비분悲憤이라면 두 번째 시는 초탈超脫이다.
啞鷄賦아계부
客有身也隍鹿객유신야황록,功名沙鷗공명사구。萬里鴈塞만리안새,秋氣初周추기초주。思輾轉而不寐思전전이불매,塒鷄胡為乎含默시계호위호함묵。我生不天아생불천,遭時孔棘조시공극。賦鵩年來부복년래,禦魅荒域어매황역。絶彩鵲於雲間절채작어운간,隔鳳闕於日下격봉궐어일하。付是非於亡羊부시비어망양,較得失於塞馬교득실어새마。烏飛兮兔走오비혜토주,星霜乎侵성상호침。一瓢兮生涯일표혜생애,萬事兮無心만사혜무심。畜司晨之一禽축사신지일금,伴孤寂於知時반고적어지시。日暉暉以易暮일휘휘이역모,苦夜漏之建建고야루지건건。簾影黑兮籟寂염영흑혜뢰적,堂廡空兮人稀당무공혜인희。一壁寒燈일벽한등,四起邊聲사기변성。夜如何其야여하기,斗轉河傾두전하경。叢萬慮於孤枕총만려어고침,任轉側於殘更임전측어잔갱。側耳塒上之鼓翼측이시상지고익,了無引吭而長鳴료무인항이장명。噫爾禽之為物희이금지위물,貴報曉而不爽귀보효이불상。何嘿嘿以秘聲하묵묵이비성,主人之豢養주인지환양。鳴輒斥去명첩척거,戒仗馬者耶계장마자야。言發禍隨언발화수,效喑啞者耶효암아자야。人不慎其樞機인불신기추기,懼災厄者耶구재액자야。世利口之覆邦세이구지복방,惡啑啑者耶악잡잡자야。天明日出천명일출,終無一聲종무일성。將畜爾以奚為장축이이해위。早作為善조작위선,舜徒憑何以孜孜순도빙하이자자。雞鳴出關계명출관,孟嘗將無以得脫맹상장무이득탈。常念不己詠於周詩상념불기영어주시,連翼同塒載於戰國연익동시재어전국。鳴達四境명달사경,齊國孟嘗제국맹상。聲聞中夜성문중야,祖生起舞조생기무。斯家畜而戶養사가축이호양,孰云栖欄之凡鳥숙운서난지범조。豈五彩之徒美기오채지도미,和漏聲而催曉화루성이최효。羈愁苦恨기수고한,交集於胸中교집어흉중。永夜短檠영야단경,竟寂然於耳邊경적연어이변。吾將烹而供之오장팽이공지,效為黍於前賢효위서어전현。遂反以為之箴수반이위지잠 曰왈 掉舌生禍도설생화 開口興戎개구흥융 則爾吞聲칙이탄성 默以敕躬묵이칙궁
벙어리 닭(아계부)을 두고 짓다.
나그네 된 몸은 성 안에 몰린 사슴같고, 공명은 모래 위 갈매기같아 붙잡을 수 없네.
만 리 변방 기러기길에 가을 기운이 막 돌기 시작하니, 생각에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데 홰 위의 닭은 어찌하여 침묵하고 있는가.
내 삶은 하늘의 복을 얻지 못해 세상 형편이 몹시 험하였고, 가의賈誼가 부엉이 부(복부鵩賦)를 지은 나이쯤 되어 황량한 변방에서 요사한 귀신을 막고 있네.
구름 사이의 길한 까치와는 멀어지고 해 아래 궁궐과도 막혀 있고,옳고 그름은 잃은 양이야기로 맡기고 득실은 변방 늙은이의 말(마馬)이야기로 헤아릴 뿐.
까마귀 날고 토끼달리듯 세월은 성상星霜속에 스며들고, 한 표주박이 내 삶의 전부이니 만사에 마음 둘 곳도 없네.
새벽을 알리는 닭한 마리를 길러 때를 아는 벗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해는 빛나며 곧 저물고 긴 밤 물시계소리는 괴롭네.발 그림자는 어둡고 바람 소리도 멎었고, 빈 집에는 사람도 드물고 벽 아래 찬 등불 하나 사방에서 변방의 소리만 들리네.
밤은 얼마나 깊은가 북두는 돌고 은하는 기울고, 외로운 베개에 만 가지 생각이 쌓이고 남은 밤에 몸만 뒤척이네.
홰위에서 날개 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만 목을 길게 빼고 우는 소리는 전혀 없네, 아아 너라는 새의 본성은 새벽을 알리는 것이 귀한 일인데 어찌 그리도 소리를 숨기고 주인의 집에서 길러지느냐.
울면 곧 쫓겨날까 두려워 의장용 말처럼 경계하는 것이니, 말을 하면 화가 따르니 벙어리를 본받으려는 것이냐.
사람이 말의 기미를 삼가지 못해 재앙을 두려워하는 것이니, 세상에는 혀 잘못 놀려나라를 뒤엎는 자가 있으니 그 시끄러운 말을 싫어하는 것이냐.
날이 밝고 해가 떠도 끝내 한 번 울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너를 기른들 무엇 하겠는가.
옛날 순임금이 새벽부터 부지런했던 것은 닭 울음 덕이 아니었겠는가,맹상군이 닭 울음을 흉내 내 함곡관을 빠져나온 일도 있고.
주나라 시에도 닭이 노래되었고 전국시대에는 함께 홰에 앉는 닭 이야기까지 있는데, 닭 울음은 사방에 알려져 맹상군의 명성을 도왔고.
한밤중 닭 울음에 조적이 일어나 춤추기도 했는데, 집집마다 기르고 문마다 길러지는 새인데 어찌 난간에 사는 평범한 새라 하겠는가.
오색깃털이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라 물시계소리에 맞추어 새벽을 재촉하는 존재이거늘, 그러나 나그네의 근심과 한이 가슴 속에 뒤엉키고 긴 밤 등불아래 귀에는 끝내 아무 소리도 없구나.
차라리 잡아 삶아 옛사람처럼 제사 음식으로 삼으리라, 이에 돌이켜 경계로 삼아 말하노니.
혀를 놀리면 화가 생기고 입을 열면 전쟁이 일어나고, 그러니 너는 소리를 삼키고 침묵으로 몸을 경계하라.
※ 이「아계부啞鷄賦」는 유배지에서 지은 정치적 우의寓意의 부賦이다. 화자는 새벽을 알리지 않는 닭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다. 닭은 본래 시간을 알리고 세상을 깨우는 존재이지만, 여기서는 화를 두려워하여 침묵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는 곧 당쟁 속에서 말 한마디로 화를 입는 정치 현실을 비유한 것이다.
작품은 가의의「복부鵩賦」, 맹상군의 계명구도雞鳴狗盜, 주나라 시경의 닭 노래, 조적의 문계기무聞雞起舞 등의 고사를 폭넓게 끌어와 닭의 상징적 의미를 확장한다. 그러나 끝내 닭은 울지 않고 밤은 침묵 속에 흐른다. 그 침묵은 곧 유배자의 고독과 억눌린 정치적 현실을 상징한다. 마지막의“도설생화掉舌生禍 / 개구흥융開口興戎”이라는 잠언은 작품 전체의 결론으로, 말의 위험성과 침묵의 처세를 강조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풍자나 해학이 아니라, 조정의 당쟁 속에서 화를 입은 사대부가 체험한 비극적 자기 경계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이 대목“도설생화掉舌生禍 / 개구흥융開口興戎”혀를 놀리면 화가 생기고 / 입을 열면 전쟁이 일어난다.
조선 사림 문학에서 정치적 자기 검열을 보여주는 대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특징이 세 가지다.
가의 「복부鵩賦」계열 유배문학·정치 풍자 사물부·닭 상징을 통한 처세 철학, 이런 작품을 보통“사물우의부事物寓意賦”라고 할 수 있다.
書서
答朴季直書답박계직서
承情問圭復以來승정문규복이래,怳接顔面황접안면,真所謂忘却在長沙者也진소위망각재장사자야。況侍履眷集황시이권집,俱得慶福者乎구득경복자호。生殘生絶域생잔생절역,萬事黃髮만사황발,而松楸一念이송추일념,寤寐耿耿오매경경。不忠於國불충어국,不孝於家불효어가,時復長吁시복장우,忽然忘生홀연망생。喪中顱痛之證상중로통지증,入冬轉劇입동전극,如癡如醉여치여취,悶悶민민。惠來銀唇紅尾혜래은진홍미,感領至意감령지의。此地荒惡차지황악,不得魚鮓불득어자,村民或有不知魚味者촌민혹유불지어미자。人間復有如此等處乎인간복유여차등처호。天實為之천실위지,亦奈何역내하。只望侍侯益珍지망시후익진。
박계직에게 답하는 편지
정성 어린 안부를 받고 보니 마치 얼굴을 마주한 듯하여 참으로 장사에 있으면서도 근심을 잊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집안 어른을 모시고 가족들이 모두 평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기쁩니다.
저는 늙은 몸으로 변방 유배지에 있어 세상일은 이미 백발이 되었고 선영의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자나 깨나 간절합니다.
나라에는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집안에는 효를 다하지 못하였으니 때때로 길게 탄식하다가 문득 삶조차 잊을 때가 있습니다.
상중에 얻은 두통이 겨울이 되자 더욱 심해져 마치 취한 듯 멍하고 괴롭습니다.
보내주신 은빛 입과 붉은 꼬리의 물고기를 감사히 받았습니다.
이곳은 몹시 황량하여 생선 젓조차 얻기 어렵고 마을 사람 가운데는 생선 맛을 모르는 이도 있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곳이 또 있겠습니까.하늘이 이렇게 한 것이니 또 어찌하겠습니까.
다만 바라건대 어른을 모시며 더욱 몸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 이 편지는 유배지에 있던 낙애가 이종사촌 박계직(빅종무)에게 보낸 답서로, 유배 생활의 고통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진솔하게 드러난 글이다. 그는 변방의 황량한 환경과 궁핍한 생활을 전하면서도, 가장 먼저 선영을 떠나 있는 불효를 한탄한다.“불충어국不忠於國 / 불효어가不孝於家”라는 구절은 조선 선비가 지녔던 충과 효의 윤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병으로 인한 고통과 유배지의 궁핍함 속에서도 친족이 보내 준 작은 음식에 깊이 감사하는 모습은 인간적인 정감을 드러낸다. 전체적으로 담담한 문체 속에 유배자의 고독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배어 있는 서간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