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 반 사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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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대 상 지 : 월악산
- 나. 등반방식 : 능선 종주
- 다. 일 시 : 2001년 6월 9~10일(토, 일)
- 라. 등반대원 :
- 고창조, 김정복, 박기배, 박기숙, 여재홍, 이상호, 이순명, 이재하, 전영희, 진항교,
- 손님 : 김지언, 오마리, 이원도, 이지숙(회원 10명, 비회원 4명, 총 14명)
- - 차 량 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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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배, 여재홍, 이재하 회원의 차량 이용
- 신성동-북대전 IC-증평 IC-증평-괴산-19도로-516도로-사조마을-수안보-미륵리- 닷돈재 야영장(신성동-닷돈재 : 125.4Km)
- - 운 행 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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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운 행 시 간
- 6.09 : 신성동 출발(15:25)-오창휴게소(16:00~16:10)-닷돈재 야영장(17:45)
- 6.10 :
- 닷돈재 야영장 출발(06:25)-차로 이동-만수골 초입(06:30)-휴식 2회-만수봉(08:25 ~08:35)-덕주봉 갈림길(09:10~09:20)-휴식(09:50~10:00)-휴식(10:40~10:50)- 점심(11:25~12:05)-휴식 1회-10m 절벽(13:30)-960봉(14:25)-영봉(15:20)- 중봉(16:30)- 하봉(16:50)-보덕암(19:00?)
- 나. 특 기 사 항
- 닷돈재 야영장은 아직 씨즌이 아니라서 그런지 야영비와 주차비를 징수하는 관리인이 없다.
- 야영비 : 4,500원/4인용 텐트 1동,
- 주차비 : 2,500원/대
- 야영장의 수도, 주차장, 화장실이 비교적 잘 관리가 되어 있으며, 소나무 밑의 야영지는 포근하다.
- 960봉 전의 10m 직벽 보조자일이 필요하다는 구간은 다소 낡았지만 고정자일이 설치되어 있다.
- 가. 운 행 시 간
- - 회 계 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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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수입 및 지출 내역표 *삭제
{{{{ 산 행 일 지 }}}}
6월 9일 토요일 날씨 맑음
오랜만의 산행. 처음 보는 얼굴들이 보인다. 해수와 창수 형이 마중을 나오다. 간다던 태욱이 와 기현이가 안 보인다. 아주 쬐끔 섭섭하다. 차량 3대에 분승하여 출발하기까지 꽤 오래 설왕설래한 다. 무심한 귀와 눈이 잠시 짜증을 부린다. 그건 그렇고 초기멤버였던 진항교씨가 나타나서 반갑다. 옛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출발, 언제나처럼 오창에서 한차례 쉬고 계속 달린다. 고개를 숨가쁘게 차오르는 기배의 이 스타나가 앞의 재하차에 치인다. 5명이나 태운 재하의 아반테가 몹시 힘든 모양이다. 수안보 스키장 고개를 넘어 송계구곡을 향하는 데, 미륵사지에 있던 매표소가 훨 앞으로 나와있다. 직원의 차림새도 외국국립공원의 레인져 복장으로 바뀐 걸 본다. 늙고 외소한 모습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도 별로 어울 리지도 않다. 아파트 경비실에 근무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는 듯 하다.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닷돈재에 짐을 풀어놓는다. 철이 아닌지라 휴게소도 썰렁하고, 계곡의 인파도 드물다. 야영장은 매우 넓고 정돈 이 잘 되어 있다. 세면과 취사가 용이하게 수도시설도 잘 되어 있다. 몇 몇이 자리를 깔고 담소를 하 는 옆에 천막을 친다. 천막 네 동이 쳐지고 취사준비를 하는 중에 회장님과 재하가 내일 산행의 끝자 락에 차를 옮기느라 자리를 뜬다. 스토브에 불을 지펴주고 하릴없이 매트리스에 주저앉아 술타령이 시 작된다. 아이스박스에서 막걸리가 나오고 캔맥주도 보인다. 막걸리 한컵 받아마시고 캔맥주도 따서 좀 마시고 하는데 전영희씨가 연산의 왕주를 댓병으로 내 온다. 창조형 안색이 쭈글쭈글 피어오르는 걸 보니 좀 한숨이 나온다. 술과 안주로 배가 차서 밥 생각이 없는데 밥을 내오니, 먹어야 될 것 같아 밥 도 먹는다. 사람으로 난 죄가 이렇구나 싶다. 마눌 덕에 019 공짜 핸드폰이 생겨 그 자랑을 하다가 산 장비 이바구로 이어진다. 이러저런 야그 끝에 이런 이야기를 한 듯 하다.
"젤 중요한 장비가 몰까요?" "몸이지요 몸이 부실하믄 산에 다니기 힘들지요. 건강에 유의해야 합니 다. 헌데, 산에 올라가기 하루 전에 이처럼 술로 몸을 혹사하고 있지요" "그 담 중요한 장비는 몰까 요?" "돈이지요. 돈이 없으믄 아무리 천하없이 좋은 장비가 보여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지요. 열씨미 돈을 벌어야 해요" 왁자지껄 웃는 와중에 또한번 개그가 이어지는 데,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또 무슨 장비가 필요할까요?" "그건 머리예요 머리가 좋아야 해요. 머리가 좋아야 필요한 장비와 쓸모없는 장 비를 구별하는 눈이 생기지요. 열씨미 공부하세요" 허무개그 세 방으로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데, 노래 를 부르고 싶어진다. 동질감의 공유로 특정 집단의 차별감을 먹이로 하는 산노래가 들먹여지는 데, 좀 재미가 적다. 어째 좀 억지스런 강요로 느껴진다. 멍석이 펼쳐지긴 했는데, 노래하는 입이 없다. 제 멋 에 취해 노래를 부르려는데 생각나는 노래가 없다. 가까스레 건진 노래는 노랫말이 아스라하다. 노래 방이 사람을 망쳤다. 기계가 없으믄 즐길 줄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나? 암튼 저 홀로 취한 주정이 따분 해질 무렵 회장님의 취침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두더쥐처럼 텐트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잠을 청한 다. 진항교 회원과 재하는 비박을 하고, 개울가에는 몇 몇의 채워질 줄 모르는 삶의 허기로운 술판이 실낱같이 이어진다. 열시가 조금 넘었다.
6월 10일 일요일 날씨 맑음
텐트벽은 아직 어두운데 밖엔 달그락거리는 기척이 있다. 아주 잠시가 지난 듯 했는데, 밖이 환하고 밤새 술앓이에 잠을 설치셨을 창조 형이 벌써 일어나 계신다. 살림살이를 밖으로 끌어내고 텐 트를 걷는다. 그 새 아침 준비가 다 되었다. 누른밥을 시에라컵으로 두어컵 배속에 넣으니 더 생각이 없다. 당일 쌕을 준비하지 않아서 45리터들이 배낭을 그대로 등에 지려니까 기배가 제 이스타나의 뒤 에 만물상처럼 싣고 다니는 물건 중에 작은 당일쌕을 꺼내어 쓰라고 한다. 잡주머니(나침판, 호루라기, 헤드랜턴), 우의 1벌, 밥 한 콕헬, 알미늄 수통 하나, 비상식으로 지급하는 오이 세 개, 그리고 쵸컬릿 과 양갱 등을 빼꼭이 채우고 루트를 물어보니, 만수봉을 거쳐 960능선을 경유하고 영봉에서 중봉 하봉 코스로 보덕암 지나 수산리까지 이르는 장장 15킬로미터 정도의 여정이란다. 아주 된통 걸린 기분이 다. 언제나처럼 얼마나 걸릴까? 하는데, 10시간이면 충분하다 뭐 이렇게들 의견을 내어놓는데, 내 생각 으로는 12시간 정도는 충분히 잡아먹으리라는 견적이 나온다. 왜냐구? 늙었쟈나. 게다가 옛날처럼 지 쳐 힘들어 달팽이 기어가듯 하는 꼴을 닥달할 힘도 없쟈나. 내 엄살이 도지지나 않으믄 다행일 것이 다. 그리고, 능선 길 내내 물이 없는 것이 좀 켕긴다. 물 좀 많이 챙기라고 말하고는 싶었지만, 나도 0.7리터 수통 한 개로 버틸 요량인데, 남들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기가 좀 찜찜하다. 회장님과 상호 형 이 나서서 물 준비를 충분히 하라고 십자가를 진다. 6시 반 경에 만수골 초입에 발을 들여놓음으로 산 행이 시작된다. 만수골은 자연학습현장으로 잘 다듬어 놓았다. 이름 모를 갖가지 풀들의 이름을 통나 무 얇게 썰은 판에 새겨 설명까지 곁들여 놓았다. 군데군데 산길에 톱밥을 깔아 발 밑의 감촉이 좋다. 곧 좌측의 능선으로 진입한다. 예전에 없었던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등짐이 가벼워 몸이 홀가분한 탓인지 오르막에도 큰 힘이 들진 않다. 다만, 어제 늦으막까지 세상 술을 모두 먹어야 성이 찰 듯 했 던 창조 형과 기배가 힘이 든 모양이다. 쉬는 짬에 누군가 창조 형 걱정을 한다. "그 형님은 초장엔 원래가 그러세요" 재하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가볍게 응대한다. 초장에 헤메시는 것은 그노메 술 탓이 다. 근데, 형님의 술 없는 초장이 어떠할 지가 심히 궁금해진다. 하기사 덕분에 다리심 없고 깡다구 없 는 분들의 흔들보행이 방관되는 은혜를 입을 것이 아닌가? 만수봉 바로 전의 뾰족봉을 우회하고 만수 봉에 도착. 예전부터 고인돌이니 뭐니 논란이 많던 너럭바위에 올라앉아 바람을 기다린다. 바람이 다 죽었는지, 메마른 길의 황토먼지조차도 잠잠하고, 하릴없는 코털만 파르르 떤다.
여기는 서너번 정도 온 곳. 그런데도 지도와 나침반을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멍잡기 좋은 곳 이다. 만수골 계곡을 경유하여 올라오는 길과 덕주봉 갈림길, 그리고 960리지로 빠지는 길들이 얼기설 기 얽혀 있는 곳이다. 아니나다를까 중간에 이상하다고 빽하려다가, 맞을지도 몰라 하고 내빼서 계곡 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안부의 이정표를 보고서야 발길을 돌린다. 이정표의 포암산 표시가 틀렸다 는 확신을 공고히 해 준다. 꼭 찍어먹기 전에는 알아보기가 어렵다. 허기사 중간에서 아는 척 빽하다 가 멍잡는 일도 허다하기는 매한가지. 각도 틀린 길은 한 십여분 계속하기 전엔 확신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시행착오는 별로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것이 없으믄 인간은 성장할 수가 없다. 이것이 돌고도 는 인생의 법칙이니 재수좋게 제 길 가는 이들은 전생의 선업 탓이니 절대로 지 잘났다 폼 잡지 않을 일이다. 돌고도는 걸 알기까지는 그저 관찰이 최고이다. 이건 아주 피곤한 일이다. 저 위에 입산금지 팻말이 덕주봉과 960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 입산금지로 위법을 하고 조금 더 나아가다가 오른 쪽으로 틀어야 한다. 입산금지 팻말이 서 있는 수풀을 지나니 영봉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비로 소 그 전모를 보인다. 앞에 만만챦은 바위 봉우리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어 험난한 앞일을 예견케 해 준다. 지도에 보조자일 필요 위험구간이라고 표기된 곳이 어디쯤일까? 아주 오래전 십수년 지난 옛적 에 폼으로 넣고 다니던 보조자일을 비로소 풀었던 일이 있었다. 그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기 는 했지만, 그 때는 월악리의 지릉을 거쳐 960봉 바로 직전이었으므로 이 릿지의 전모는 여전히 수수 께끼이다. 암튼 가보는 수 밖에......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까 흰바위 속살이 요염하게 드러난 암봉군들이 지척이다. 비로소 앞서 가던 재하가 한마디 한다. 참 재미있는 산이네요. 이제부터 월악산다운 맛이지. 하고 거든다. 갑자기 이중환의 택리지인가 어딘가에 쓰여있다던 예언 비스무리한 말이 생각이 난다. '월악산 영봉의 그림자 가 남한강 물에 드리워질 때 민족의 대운이 열린다' 충주댐이 생기고나서리 티비에서도 이 예언을 주 절대던 일이 있었다. 이 고단한 시절이 민족의 대운이 열린 탓인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신통망통하 기는 하지만, 대운이 열린 민족의 아들은 누구일까? 새우잠자는 노숙자는 어느 민족의 아들인가? 쉬는 날 승용차 몰고 산 나들이 나온 나는 대운이 열린 탓일까? 으~ 이름모를 암봉의 꼭대기에 이르자, 대 운의 향방이 뚜렷해진다. 그걸 한번 음미한다. 사방의 시계가 탁 터지고 멋진 전망이 펼쳐지고 널따란 정상의 바위가 사람 수십명이 놀기에 충분하다. 점심을 들기에 이른 시각이기는 하나, 이른 아침 덕분 에 모두가 배가 고픈 모양이라 예서 중식을 들자는 제안이 나온다. 그러자고 하구 밥을 꺼내는라 배낭 의 내장을 들어내고 한시름 놓는데, 땡볕이라 전망이고 풍치고 그늘로 가자고 또 한무리의 제안이 득 세를 한다. 그러자구 하고서리 배낭을 챙겨 일어섰는데, 바로 밑이 그 그늘이라 한다. 세미 클라이밍이 필요한 구간이다. 뒤에 처져서 내려가는데 창조형은 맨발에 신발을 들고 가신다. 바로 밑이라 해서 맨 발로 내려간다는 말씀이다. 헌데 그 바로 밑이 끝이 없다. 형님이 다시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는 양을 보면서 스멀스멀 웃음이 솟아오른다. 나로서는 희귀한 방황을 구경한 것으로 대운까지는 못되도 중간 은 된 듯하다. 안부의 나무 무성한 좁디좁은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서 중식이 시작된다. 햇볕은 가리웠 어도 바람 한점 없는 날이 섭섭하다. 무상에 몸을 싣다보니 대운은 따로 없드라.
뱃속에 밥 다 챙기고 나서 장딴지 허벅지 무르팍 아픈 님들이 앞길이 얼마냐고 질문을 해댄 다. "이제 다 왔어" 상호 형 거짓말이 숨 쉬듯 튀어나오고, 봉우리 네 개 넘으믄 된다고 정복이 형이 답한다. 그 봉우리 네 개를 넘으믄 영봉이 지척이라는 말일 뿐, 아지 못하는 이들은 무지가 약이라. 등 짐이 뱃짐으로 옮겨가니 요상스레 살만하다. 제법 짠 듯한 바위길이 몇 있었는데, 아마도 바위 인연을 멀리한 탓일 뿐, 그저 감칠맛이 풍부한 길이다. 960봉이 지척에 보이는 데, 내려가는 길이 범상치 않 다. 약 5미터 정도의 직벽에 얇은 나이론 줄이 걸렸는데, 이외로 잡을 곳 디딜 곳이 많아 줄 신세 질 일은 없다. 헌데 그 밑에 진짜배기가 있었다. 역시 옛 기억이 맞기는 맞나보다. 맞다면 이게 그 위험구 간일 것이다. 그리고 영봉까지는 평탄할 것이다. 그 곳은 약 7미터 정도의 직벽. 그 위에 굵은 소나무 한그루에 나일론 줄을 여러겹 감아 놓아 잡고 내려가게 설치되어 있다. 아주 옛날 내가 자일을 걸었던 소나무가 이렇듯이 자랐나보다. 나일론 줄의 매듭을 쥐고 힘주어 댕겨보고 찝찝한 기분으로 체중을 싣 는다. 발바닥이 땅에 다서야 행복한 안도감이 몰려든다. 앞으로 내달은 덕에 참 오래 쉰다. 소나무에 도달한 일행을 위하여 정복이형이 자일을 걸고 창조형이 보울라인으로 신참들을 묶어 8자하강기로 내 려준다. 내려주믄 모해. 줄을 못 믿으니 내려주는 이도 보는 이도 매달린 이도 힘들다. 아니 아니 믿음 보다는 믿는대로 행할줄 모르는 것이 문제로다. 듣는 이가 귀를 버리고 몸으로 내려서고 나서야 비로 소 행함이 어떠한지를 안다.
960봉 오름길도 매우 가파른 경사다. 오르고나니, 덕주골 마애불 지나 온 등산객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시간이 어느결에 3시가 넘었다. 영봉의 위세가 보는 눈을 주눅들게 하는 동창교 갈림길 에 이르러 애초의 산행계획에 대하여 논의를 한다. 지친 일행을 위하여 동창교로 내려설 것인가? 아니 면 중봉과 하봉을 경유할 것인가? 월악에 온 많은 이들이 영봉을 지척에 두고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설악산 소청마루에 올라 대청을 눈맞춤하고 발길을 돌리는 아쉬운 심정을 그 누가 알 리요. 하지만, 오르고 나서 지친 몸의 아픔을 또한 누가 있어 알아줄까? 일단 영봉으로 발걸음을 옮긴 다. 영봉과 중봉 갈림길 그러니까 영봉의 허리를 감고 설치된 철난간에 기대어 꼭대기를 오를까 말까 갈등을 한다. 제 걸음으로 왕복 20분은 족히 걸리리라. 시간보다도 소진되어가는 힘을 빤히 쳐다보는 고통을 본다. 뒤처진 일행이 한 이십여분 지나도 보이지 않는다. 재하가 기다리다가 올라가 본다고 자 리를 뜨고나서 허기를 느낀다. 배낭을 뒤져 쵸컬릿 양갱 따위를 꺼내 닥치는 대로 입에 넣는다. 그리 고 철난간에 누워 잠시 잠을 청한다.
영봉 머리를 답사한 일행이 일부 자리를 뜨고, 마지막 일행이 도착하고나서 중봉을 향해 걸 음을 옮긴다. 표고차 80여미터는 금방이다. 중봉의 내리막 길은 철난간을 설치해두어 비교적 안전하다 하지만, 매우 가파른 바위길이다. 살펴보니 철난간이 없어도 문제가 될만한 곳은 없겠으나, 상당히 위 험했을 것 같다. 어쩜 철난간 구조물 덕분에 안전사고가 더 빈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영봉 갈림길 에서 보덕암까지 3.7킬로라고 이정표에 있었지만, 지도상으로는 약 2킬로미터 정도이다. 익숙한 이는 보덕암까지 시간 반이면 도착할 듯. 진항교 회원, 기배, 그리고 재하와 회장님이 차를 가지러 먼저 내 려가고, 나머지는 달팽이 걸음이다. 여자 분들이 많이 지쳤다. 하기사 험한 산길 15킬로 정도를 걸었으 니 힘들고말고...... 내 무르팍도 슬슬 신호가 오는데, 오죽하겠나 싶다. 하봉의 암봉 허리를 돌아 내려 가는 길도 상당히 가파르다. 500미터 간격으로 이정표가 나오고 그 근처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일행을 기다리고 하다가 드디어 보덕암. 진항교 회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웬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원들이 분주 히 돌아다닌다. 보덕암 바로 뒷 봉우리가 할공장인 모양이다. 몸을 대충 씻고, 진항교 회원이 풀어놓은 미싯가루를 마시고 하다보니 일행들이 도착한다. 잠시 후 기배가 차를 몰고 나타난다. 덕분에 수산리 까지 2킬로 정도의 노가다를 생략할 수 있었다.
2001년 6월 12일 보고자 이 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