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공사원(副公事員) 임명장
2. 해제
행 고성군수 겸 분사무장 위 차정사 양읍 좌지사 부공사원 차정 위거호 불경찰임향사 합하앙 조험시행수지첩자.
우하 부상 허재우 준차 기해(1899년) 9월 일. 분사무장.
- 고성군수 겸 분사무장이 부상 허재우를 좌(左는 負을 뜻함)지사 부공사원으로 임명하니 업무에 철저를 기할것.
기해 9월 일. 분사무장(군수)
※ 보부상은 보부상의 접장(우두머리)가 임명하였으나 조선말부터 관(군수)명으로 임명한 문서는 가끔 보이나 군수가
보부상 직책인 분사무장으로서 임명한 것은 처음 보기때문에 카페에 올립니다.
3. 보부상 이란
보부상은 잘 알려진봐와 같이 조선시대 지역사회의 행상으로서 경제에 한 부분을 차지했다. 보상(褓 포대기보 : 값비싼
사치품 등 잡화를 보에 싸서 다님) 부상(負 짐질부 : 부피가 큰 수제품, 생활용품 등을 지게에 지고 다님) 둘을 합하여 보부
상이라 했다. 1883년 전국에 산재해있는 조직을 규합하여 관에서 관장하다가 1899년 상무사를 두워 중앙에 社長을 두고,
지방의 관찰사가 分社長을 맡고, 군수가 분사무장을 맡아 관장했다.
그 유래는 알수 없으나 조선시대 이전으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조선개국에 공헌하여 그 조직을
허용 받았으며, 임전왜란때 행주산성 전투에 수천명이 참여했고, 병조호란때 남한산성에 식량운반을 하기도 하여 벼슬을
하사하려 하였으나 사양하여 대가로 어렴, 목기, 수철 등의 전매권을 부여하였고, 정조때 수원의 화성 축조시 삼남도접장
(三南都接長)들이 보부상들을 징발하여 석재, 목재를 운반하여 장안문(북문)건설에 기여 하였고, 1866년 병인양요때 정족
산성 전투에 참가하여 프랑스군을 무찌를떄 기여 하였다 한다.
1882년 임오군란 후 흥선대원군이 국정을 관장 할 떄 민영익이 비밀리에 경기도와 강원도 보부상을 동원하여 한성으로
진입한다는 소문이돌아 백성들의 민심이 흉흉하여, 朝廷에서는 전투태서를 갖추고 각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보부상 거주지
파악과 이동을 검색토록 지시하고 삼군부에서 통할하도록 하였다. 이 외도 동학농민운동때 官에 동원되어 동학농민과 전
투를 하고, 독립협회 강연 떄 훼방을 하는 등 나쁜 방향으로 보부상을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