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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국방

담대한 우국충절…기병 70기로 홍건적 격퇴한 충신, 안우 장군

작성자신으로|작성시간16.05.03|조회수153 목록 댓글 0

 

담대한 우국충절…기병 70기로 홍건적 격퇴한 충신

담력 남달랐던 안우 장군

 

 



 

배짱 두둑한 고려말 명장

안우(安祐·?~1362)는 고려 말의 명장이다. 탐진 안씨(耽津安氏)로 검교중추원사를 지낸 안원린(安元璘)의 아들이다. 탐진은 지금의 전남 강진군이다. 안우 장군은 담력이 대단했던 인물이다. 간이 크고 배짱이 두둑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화가 많이 전한다. 그 일화를 소개해 본다.

고려사 열전의 기록이다. 홍건적과 대적해 싸우던 때였다. 안우가 기병 70여 기를 거느리고 전장으로 가다가 산 위에 올라 말과 함께 쉬던 중 적장 모귀양(毛貴揚)이 지휘하는 대군과 마주쳤다. 고려군 장졸들이 모두 겁에 질려 대경실색했지만, 안우는 태연히 웃고 이야기하면서 세수와 양치질까지 마쳤다. 유유히 말에 올라 군사를 이끌고 바로 진격해 청천강(淸川江)을 등지고 진을 쳤다. 적의 기병 몇 명이 다리 위에 올라 창을 휘두르면서 기세를 높이자 고려의 병마판관(兵馬判官) 정찬(丁贊)이 칼을 휘두르고 크게 소리치면서 다리 위에 올라 적장 한 명을 죽이니 적들이 물러섰다. 이 전쟁에서 안우는 대승을 거두었고 공민왕이 사신을 시켜 안우에게 금대(金帶)를 하사했다고 한다.

안우가 또 전장에 나갔는데 평소 정세운(鄭世運) 장군이 왕에게 총애를 받는 것과 안우·김득배·이방실 등의 큰 공을 시기하던 평장사(平章事) 김용이 정세운을 죽이라는 내용의 가짜 문서를 만들어 조카인 전 공부상서 김림(金琳)을 시켜 몰래 안우 등에 주면서 왕의 교지라 속였다. 그러면서 “정세운이 본래 경들을 꺼리니 적을 격파한 뒤엔 경들이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라며 꼬드겼다. 안우와 이방실은 김득배를 설득해 1362년(공민왕 11년) 1월 22일 정세운을 꾀어 술자리에 불러들이고 그가 안심하고 있는 틈을 노려 옆에 서 있던 장사에게 눈짓을 보내 정세운을 죽이게 했다.



간신배의 모함에 빠져 피살

안우가 개선해 돌아와 궁으로 나아가 왕을 알현하려 할 때, 김용의 지시를 받은 목인길(睦仁吉)이 안우를 중문(中門)으로 끌어내 문지기가 안우의 머리를 때려 죽였다. 안우는 죽기 전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세 번이나 차고 있던 주머니를 들어 보이며 “조금만 기다려라. 주상의 앞에 가서 주머니 속의 이 글을 보인 뒤에 죽음을 받겠다”고 외쳤지만, 간신배의 모함에 빠진 왕은 이를 듣지 못했고 안우는 결국 피살되고 말았다.

안우가 말한 주머니 속의 글은 정세운을 죽이라고 지시한, 왕명을 빙자해 김용이 위조한 왕지(王旨)였다. 위조된 왕지를 전했던 김림도 자신의 소행이 누설될 것을 우려한 김용에 의해 피살됐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이방실과 김득배 역시 김용이 보낸 사람들에 의해 각기 용궁현(龍宮縣)과 산양현(山陽縣)에서 살해되고 말았다.

포은 정몽주의 제문

이 슬픈 역사에 대해 유명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왕에게 청해 시신을 수습한 후 다음과 같은 제문을 지어 제사 지냈다.

“아아, 하늘이여! 그의 죄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아, 황천이여!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듣건대,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탐욕스런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은 하늘의 이치이며, 선한 이에게 상을 주고 간악한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은 사람의 일입니다. 하늘과 사람이 하는 일은 다를지라도 그 이치는 하나입니다. 옛사람들은, ‘하늘이 정한 운수는 사람을 이기나, 사람들의 중론은 하늘을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하늘이 정한 운수가 사람을 이긴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이치이며, 사람들의 중론이 하늘을 이긴다는 것은 또한 어떤 이치입니까?

지난번에 홍건적이 침입하자 임금께서 어가를 타고 피란 가시니 국가의 운명은 실오라기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공께서 앞장서 대의(大義)를 부르짖으니 온 나라가 호응하였으며,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 계책을 수립함으로써 삼한(三韓)의 대업을 회복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땅에서 먹고 이 땅에 잠잘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공로이겠습니까? 비록 죄가 있더라도 공로로 죄를 덮어주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죄가 공로보다 무겁더라도 반드시 그를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한 뒤에 처형해야 옳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전쟁터에서 흘린 땀도 마르지 않았고 개선의 노래도 그치지 않았는데, 태산(泰山) 같은 공로를 도리어 칼날의 피가 되게 하였습니까? 이것이 제가 피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묻는 것입니다. 저는 그 충성스럽고 장한 혼백(魂魄)이 필시 아득한 후대에까지 구천(九泉)의 지하에서 눈물을 삼킬 것을 잘 압니다. 아아! 운명이란 것이 어찌 이러한가? 어찌 이러한가?”



국왕의 우매함으로 충신 잃어

제문의 내용은 실로 폐부(肺腑)를 찌르는 절절한 사연으로 읽고 듣는 이는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고 전한다.

고려사에는 자신의 우매함으로 충신을 죽게 한 왕은 안우가 죽은 뒤 그의 어린 아들이 벌거벗고 길에 돌아다닌다는 소식을 접한다. 왕은 크게 슬퍼하며 아이를 궁중으로 불러다 돌아갈 곳을 묻고 위로했다. 이를 본 안우의 휘하 사졸(士卒)들이 놀라 흩어지자 왕이 불러들여 술과 음식을 주며 위로했다고 한다.

또 고려사 열전에는 당시 나이가 열 살 남짓이던 안우의 아들이 이방실의 아들과 함께 저자에서 놀고 있으면 개경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편안히 자고 먹고 하는 것은 저분들의 아버지 원수(元帥)님의 공”이라며 저마다 음식을 주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충신을 모함해 죽음으로 몰아간 간신들의 소행도 괘씸하지만, 판단력 없는 국왕의 우매함도 원망스럽다.

<박희 한국문인협회 전통문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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